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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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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특집4a정보감시1.hwp

보이지 않는 눈과 보여지지 않는 육체-감시와 노동

권순원 | 동국대 강사
최근 우리사회의 여론을 달구고 있는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가 소위 ‘O양 비디오 사건'이라고 회자되는 한 여배우의 성적 스캔들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밝혀 둘 사실은 나는 ‘공인이 어쩌구’ ‘도덕성이 저쩌구’ 하는 따위의 진부한 계몽주의적 잣대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문제는 좀 더 심각한 다른 곳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문제는 그저 뉴스의 가쉽(gossip) 거리로 여겨졌던 흔하디 흔한 ‘그런 스캔들’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우선, 그간의 스캔들이라고 불리웠던 사건들이 주로 사실보다는 상상력의 영역에서 관심을 유도했다면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사실의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전의 사건들이 기껏해야 신문의 기사거리나 TV연예프로의 ‘반찬’ 정도로 제한된 상품화에 그쳤다면 이번의 ‘사건’은 사건 그 자체가 텍스트로 상품화되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텍스트의 구성인물인 그 여배우, 즉 보여지는 대상이 수없이 많은 보이지 않는 시선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보호받아야 할’ 아니 그런 따위의 수사까지도 않을 정도로 당연히 ‘보여지면’ 안되는 혹은 ‘보면’ 안되는 영역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 나아가 비난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 즉, ‘도덕’의 전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 현실 …. 이것이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긴장의 핵심이다.

보이지 않는 눈(invisible eyes) - 판옵티콘의 권력학
벤담이 고안하고 푸코가 제시한 바 ‘판옵티콘(panopticon ; 一望감시장치)’은 ‘봄-보임’의 결합을 분리시키는 권력유지의 자동 장치이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감시 중인 중안의 탑을 중심으로 둘러싸인 원형의 건물에 여러 개의 독방이 만들어져 있고 그 독방은 건물의 앞면부터 뒷면까지 내부의 공간을 모두 차지한다. 독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을 향하여 탑의 창문에 대응하는 위치에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면해 있어서 이를 통하여 빛이 독방을 구석구석 스며들어 갈 수 있다. 광선의 효과를 이용하여 주위 건물의 독방 안에 감금된 사람의 윤곽이 정확하게 빛 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탑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완전히 개체화되고, 항상 밖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한 사람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무대들이자 수많은 감방이다. 요컨대, 일망의 원형감시인 이 장치는 끊임없이 대상을 바라볼 수 있고, 즉각적으로 판별할 수 있다. 바로 보이지 않는 눈의 권력효과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제 권력은 더 이상 자신이 가진 물리적인 권위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찰과 분석, 그리고 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 결국, ‘지배자 없는 지배’의 형태로 감시의 양상이 변화되는 것이며 이는 직접적인 지배와 명령이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활동할 수 있는 자기-통제를 목표로 한다. O양 비디오 사건 이후로 사람들이 갖게 되는 무언의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감이 유발하는 자기 보호에 대한 본능적 욕구, 이는 벌써 그러한 감시의 시스템이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다.

감시권력과 작업장 체제
우리시대를 이토록 감시의 긴장지대로 몰고 가는 ‘그 시스템’의 작동이 전자․정보기술과 접합 점차 확산되고 있는 영역이 바로 작업장(Workplace)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보이지 않는 눈의 전형인 CCTV를 이용한 감시는 아주 기본적인 일에 속하며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전화의 내용을 엿듣거나 기록을 하는 행위’에서 ‘자동장치를 통해 전화를 건 날짜, 시간, 통화시간, 전화 건 번호, 통화료 등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는 것 또한 일반화되는 추세이다. 나아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이 어디에 있건 소재지를 파악할 수 있는 RF시스템과 기계장치 자체에 감시기능을 부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것의 가능성은 인간에게 ‘사적영역’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무한히 확장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감시 혹은 관찰은 결국 개인의 특수하고 독자적인 속성에 대한 부단한 조정과 재조정 등을 통해서 권력을 부과하는데, 이를 통해 권력은 규율의 ‘통합적인 체제’로서 등장하고 자율적인 작동의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가공된 인격체로서 규범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전자․정보적 기술을 이용한 감시는 ‘비가시적이고 지속적인 규범화’의 기제이다. 이제 작업장의 노동자는 ‘실제적인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규범화된 ‘가공적 인격체’로 전화된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리모트 컨트롤러’의 조정에 따라 움직이고 정지하며 다시 움직이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그 과정이 ‘무의식적 규범화’의 과정이다. ‘(작업 또는 통제)명령의 발화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신자 즉 노동자는 ’권력‘의 의도된 정보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주목한다. 격리 수용된 감옥에서 엄격한 일과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고 끊임없이 감시 받는 죄수들처럼 노동자들은 메커니즘의 육체가 되어 길들여진다. 푸코식으로 이해하면 이것은 ’처벌하는 이성‘의 역사적 단면이다. 감시의 권력효과는 곧 ’처벌에 대한 공포‘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메커니즘의 육체들은 관찰, 분류, 분석을 통해 이제 여러 가지의 숫자들로 표현되며, 그러한 규범화의 규율은 개인적인 본성이자 특성으로 굳어진다. 예컨대, 아무개씨는 더 이상 아무개씨로 호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번 ○○○○○으로서, 근무태도가 C급정도 되는 노동자로서, 생산능력은 B정도의 수준을 가진 노동자로서 인지된다. 이러한 전 과정은 계급갈등의 여지를 효과적으로 은폐시킨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나, 생산량에 대한 측정 그리고 근무태도 평가 등이 주로 ‘현장관리자(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즉, 눈앞에 ‘보이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 계급갈등의 지점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며 저항의 선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곤 했다. 또한 자료의 정확성 또는 기준의 명확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저항을 조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각 노동자들의 노동생활이나 노동의 결과가 관찰, 분류, 분석되어 데이터로 전화되는 순간 그 데이터는 개별 노동자들을 평가하는 자료로 재정의(redefinition)되어 객관성, 명확성, 엄밀성 등의 탈을 쓴 절대적인 기준치로 제시된다. 이 순간부터 노동자들은 서로를 동료로서 또는 기업주에 대해 공동으로 싸워나가야 하는 동지로서가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서 느끼기 시작한다. 그 데이타의 객관성이나 과학적 엄밀성을 문제삼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개관적’, ‘과학적’, ‘합리적’이라는 이름하에 제시되는 데이타의 결과를 수용하게 되며, 그 결과 이렇듯 계급갈등을 은폐시키고 전도시키는 규범화의 규율은 노동자들의 육체속에 자리잡는다. 보이지 않는 눈에 의하여 길들여 지는 육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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