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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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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쥐라기공원, 재벌공룡을 파괴하라!!

출판편집팀 | 사회진보연대
재벌이 세상을 지배할 때.
‘인간에 의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채 창조된 공룡은 결국 ‘인간에 의한’ 통제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천국을 건설한다. 무자비한 파괴와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쥐라기 공원. 공룡을 관리․지배할 수 있다는 자존심은 도망치듯 섬을 떠나는 주인공들의 모습속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만다. ‘살았다’라는 안도감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쥐라기 공원’은 결국 통제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재벌이 세상을 지배하는 99년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았다’라는 안도감으로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여지조차 있는가? 재벌만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무자비한 구조조정과 경쟁속에서 제한없는 이윤창출을 꾀하는 남한에서 민중들은 과연 계속되는 배제와 억압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게 하기 싫으면 떠나거나 죽으면 되는가? 영화처럼..

97년 11월 21일 전격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한국경제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60년대부터 세계경제의 계속된 불황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왔던, 한때 3저호황에 편승해 흑자경기를 기록했던 ‘한강의 기적’이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하루 2000건이 넘는 부도와 대량실업의 발생, 서울역으로 밀려드는 노숙자의 행렬속에서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김대중정부가 취임 직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이라는 슬로건 아래 강력한 개혁을 추진, 경제회생을 실마리를 풀고자 온갖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생의 기미는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부실금융기관 퇴출, 대기업 계열사 정리 및 인수합병...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그리고 지금 99년. 증시호황과 경기 회복이 이야기되고 있다. 정리해고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노숙자는 점점 늘어갈 뿐인데, 재벌의 사세확장은 멈출 줄 모른다. 오히려 이를 강제하는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기가 쉽상이다.

재벌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위기.
외환금융위기로 표출된 위기의 표면적 원인은 관치금융, 부실종금사(해외단기자금차입과 장기자금 대출), 재벌지배(족벌경영가 사업다각화, 중복/부실투자 등), 관료들의 무능, 국제수지/외환관리의 실패 등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표면적인 원인들을 가져온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도 학자들 사이에 많은 이견이 있다. 과잉생산/과잉축적이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순환적 위기를 거론하는 학자가 있는 반면, 세계자본 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종속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혹은 재벌지배체제의 문제점에 집중하는 입장도 있다. 여하한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경제위기가 결코 정부와 재벌이 지적하고 있는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비합리적인 노사관계(여기에서는 항상 전투적 노동운동의 폐해가 강조되기 마련이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는 거리가 멀다라는 것에는 대다수가 동의한다. 이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과 경제회생 계획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대내적인 합리화(구조조정)와 대외개방/자유화, 엄격한 긴축정책(흑자재정과 긴축금융), 시장원리에 입각한 한계기업과 부실금융기관 정리(제3자 인수합병 또는 파산정리 절차), 재벌구조 정리와 시장경쟁 강화, 노동시장의 유연화(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무역/자본/금융의 급속한 자유화(외국자본에 의한 산업, 자본시장, 금융기관의 인수합병) 등”
현재 IMF와 정부에 의하여 추진중인 경제회생 계획이다.

위의 계획들이 핵심적으로 포괄하는 있는 기조는 재벌구조의 재편을 통한 새로운 축적구조의 마련과 함께 그 비용과 고통은 대다수 국민에게 전가시키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재벌구조 정리’라는 것은 LG-현대의 반도체 빅딜, 삼성-현대 자동차의 빅딜을 비롯하여 각종 부실기업의 매각/정리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재벌체제 개혁이라는 것과는 반대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또다른 형태의 독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현대전자 주가조작에서 드러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과정에서의 비용이 국민들을 우롱하여 모은 자금이라는 것은 경악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무역/자본의 자유화’라는 것은 사회적 공적 기능을 가진 공기업을 국민적 동의없이 자본의 논리로 해외에 매각하는 것일 뿐이다. ‘시장경쟁의 강화’는 재벌의 이윤축적을 용이하게 해 주기 위한 금융규제의 완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은 일방적인 정리해고와 고용불안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흑자재정을 운용’하기 위한 세수 확장의 계획은 국민의 호주머니로부터 시작된다.

경제성장의 신화라는 허황한 선전 속에 은폐되어 왔던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세계 자본운동의 변화추세에 맞물리지 못하면서 발현된 위기는 민중생존의 위기임과 동시에 새로운 축적구조를 양산하지 못하는 한국 재벌의 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위기 탈출의 해법은 위에서 보고 있는 바와 같이 또다시 재벌의 지위를 강화시켜 줄 뿐이다. ‘재벌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위기’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재벌의 지위 강화는 경제분야의 구조개악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에 간과되었던(혹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영역으로 자본 침투를 통하여 좀더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추구한다.

보이지 않는, 그러나 거대한!!!
올해 현대전자 일부 사업장에서는 R/F Card제를 도입하겠다고 하였다. Radio - Frequency(라디오 주파수) Card 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전자장치로 일일이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령, 작업도중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어느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 모든 전자신호에 의하여 감시되고 이것이 철저하게 기록되면서 그 사람의 작업 진행여부가 판단되는 것이다. ‘007’같은 영화에서 빨간 불이 움직이면서 주인공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 기록결과에 따라서 정리해고나 인사고과 여부가 판단될 수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R/F Card 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노동현장에서 새로운 형태의 통제방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억압당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좀더 높은 노동강도를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민중의 삶에 침투하는 자본의 힘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현대상선에 의하여 추진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이 그러하다 할 것이다. ‘50년 분단의 숙원이 드디어 풀리게 되었다’라는 류의 수사를 받으면서 시작된 금강산 개발은 남북경협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는 것과는 무관한 오히려 남한 자본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일 뿐이다. 공해산업, 유사시 신속한 자본 후퇴가 가능한 서비스산업 중심의 대북진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경협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마치 ‘분단모순의 해소, 새로운 전환점 마련’을 위한 것으로 포장된다. 50년동안 국민 대다수에게 강제력을 행사한 분단의 감정이 새롭게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재벌에 의한 언론의 독점은 어떠한가? 스포츠문화의 독점을 통한 일등이기주의의 확산은? 공적 기능을 담당해야 할 교육이 또다른 상품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또 어떠한가?

이처럼 민중의 생활 곳곳을 침투하고 있는 재벌의 힘은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제활동 영역에서의 민중지배와 함께 말이다. 그 가운데서 민중들의 소외와 배제는 최근 교육계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왕따’현상과 다를바 없다. 소수 권력과 자본에 의한, 다수 민중에 대한 왕따.

정복할 것이냐, 정복당할 것이냐..
왕따의 공간을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한국사회 전체로 확장시켰을 때,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서 발견한다. 20:80의 사회로 재편되고 있는 현재의 남한 사회에서 현재의 사회권력으로부터 소외된 80의 사회계층은 실제적으로 우리나라 사회의 왕따로 자리매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조정과 빅딜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간의 생존권의 문제는 염두에 두지 않는 개발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는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권력으로부터의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있다. 하지만, 소외의 모습이 현실화된 우리가 발딛고 있는 곳에선 ‘국민화합’ ‘고통분담’ ‘다시뛰자’의 이데올로기가 성행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관계를 역전시키기 위한 계획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민중의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도, 또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도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의 전환이 제기되어야 한다. 전환의 방향은 시장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현실의 객관적 요구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바의 국가적 또는 사회적 조절을 강화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국가 또는 공공부문의 확대와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 그리고 재벌지배 체제의 해체와 사회화 정책, 이것이 방향전환의 핵심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곳곳에 침잠해 들어오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이 조직되어야 한다. 공공의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교육과 의료/언론분야에서부터, 국민의 사회적 보장권을 대표하는 연금/보험제도까지 국민생활의 전반에 대한 민중적 가치의 복원이 절실하다. 이러한 영역들이 또다시 무한한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민중의 생존권은 경제력의 파탄과 함께 총체적으로 허물어질 것이다.
재벌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 나아가 재벌이라는 거대한 몸짓의 공룡을 해체하는 것이 지금 99년을 사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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