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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가을. 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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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민주노총 30년: 기억, 진단,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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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민주노총 30년: 기억, 진단, 성찰

일시 8월 22일(금) 사회진보연대 사무실

사회 정지현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참석자 김승곤(플랜트노조 경인지부 수석부지부장), 박준도(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박준형(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 서보람(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부팀장), 임성우(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교육선전국장)

 

 

정지현  올해로 민주노총이 출범한 지 30년이 됩니다. 승리의 역사, 진군의 역사를 쓰겠다고 시작한 민주노총이 걸어온 30년의 길이 가치 있는 현재를 만들어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30년을 무엇으로 설계할지 고민해보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은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해 많은 역사적 성과를 남겼습니다. 가장 큰 기여는 노조의 제도화와 합법화 과정에 이바지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전략조직화 사업에 매진하여 제1노총으로서의 입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거시경제 상황과 산업구조, 정부 정책 방향은 민주노총이 출범했던 시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문제는 노동자운동의 현실 인식과 대응 전략은 그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은 기업별노조 체계와 임금 극대화를 추구하는 상황에 고착화되어 있고, 정치적 노동자운동도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노동자운동의 전략과 노선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복원할 가치와 혁신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순서대로, 김승곤 플랜트노조 경인지부 수석부지부장,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 서보람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부팀장, 임성우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교육선전국장, 정지현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노동운동의 전략으로서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

 

정지현  먼저 민주노총 창립선언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산별노조-정치세력화”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주요 노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산별체계가 여전히 진척이 더딘 상황이고 정치세력화 역시 답보상태인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산별노조-정치세력화”는 시효가 만료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어려웠는지, 더 근본적으로 과연 “산별노조-정치세력화”라는 전략이 가능한 시도였는지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전혀 성과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민주노동당 건설을 추동하며 정치세력화를 이루려 노력했고, 금속노조나 보건의료노조에서 산별교섭을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여러 한계를 체감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금속노조 활동을 하면서 고민이 많을 텐데, 임성우 회원께서 한 말씀 해주시죠.

 

임성우  말씀해주신 대로, 금속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산별노조가 가능했냐가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경총을 비롯해 사용자단체가 존재하고, 금속노조와 산별교섭을 위한 금속사용자협의회가 구성되는 등, 금속노조의 투쟁에 성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왜 금속에서 산별교섭 현실화에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생각했을 때, 외부적 요인도 있겠지만 내부조직화의 어려움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산별노조인지 스스로 답을 만들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사용자단체를 압박하고 계획을 세워서 교섭을 현실화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조합원이나 지회 초급간부를 대상으로 산별교섭을 해야 하는 이유, 산별노조 형태로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교육자료는 금속노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산별교섭이 진전 없는 상황이 길어지니 조합원과 간부 사이에서도 그 필요성에 동의지반이 약해지는 악순환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서보람  저는 한편으로 산별교섭 전략이 어떤 흐름에서 제기된 것인지, 그것을 안정적으로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에 대해 합의된 평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 유럽, 특히 독일을 모방해 산별 운동전략을 채택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 전략이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촘촘하게 기획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평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산별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이 무엇을 할 건지보다 산별 조직형태 완성에 집중하는 데에 논의와 논쟁이 집중해 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또한, IMF 외환위기 즈음하여 탄생한 민주노총이 경제위기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욱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심각한 경제상황과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이라는 조건 속에서 기업별노조를 넘어서서 산별노조를 만들 필요성과 이유에 대해 합의를 만들기 쉽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인데, 플랫폼이나 특수고용, 건설업과 같은 특수한 업종에 대한 전략조직화 논의도 있지만,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노조들이 산별 교섭과 산별운동을 이야기하고 이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조건인 것 같습니다.

 

박준형  그럼에도 산별노조-진보정당의 ‘양날개론’을 정리한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양날개론’에 현장파가 초기부터 비판적이었긴 했지만 대체로 수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부재한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에도 산별노조 건설에는 동의했지만, 산별노조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부재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즉, 합의의 취약성이 산별노조 운동의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준도  층위를 구별해보면, 사회경제적 맥락 혹은 노조 운동 층위에서의 산별노조전략이 있을 것이고,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의 확대라는 맥락, 즉 정치세력화 전략이 있을 것입니다. ‘양날개론’의 실패와 한계를 비판했지만, 각 층위에서 이를 대체하는 전략으로 무엇이 추진되었는지 질문해봐야 합니다.

2007년 금속노조의 산별 전환 실패 이후, 산별노조로서 교섭과 조직화, 운동전략을 고민하는 이들이 사실상 사라졌어요. 이른바 ‘산별주의자’들이 사라진 거죠. 그렇다고 산별노선을 대체하는 사회경제적 운동전략이 제시된 것도 아니에요. 초기업-집단 교섭과 초기업 조직화, 총파업 등 산별노조운동의 흔적을 찾고, 이를 유지하거나 활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어요.

정치세력화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분당 이후 진보정당들이 각개약진하는 가운데, 노동운동은 ‘통합’을 주문처럼 되뇌었을 뿐, 전략은커녕 조합원 의식화를 위한 내부 정치활동도 극도로 축소되었죠. 사정이 이러다 보니, 지금은 노동운동 전략을 마련하는 것조차 포기한 거 같아요. 목표 없는 노조 운동을 하는 셈이에요.

그리고 방금 서보람 회원께서 왜 전략조직화를 하는지 합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역시 동일한 곤란함에 봉착했습니다. 전략조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조 혁신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인데, 이와 관련된 논의는 사라졌죠. 노조 혁신의 목표와 새로운 운동 주체의 상에 대한 합의 없이, 집단적인 조직화나 대대적인 조직화를 전략조직화로 이해하고 있어요. 조직화 사업도 목표 없이 하는 상황입니다.

 

정지현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에 대한 고려가 부재한 상황에서 목표와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상황이 장기화된 점을 산별노조운동의 문제점으로 짚어주셨습니다. 그러면 정치세력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임성우  정치세력화는 현실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사실 거의 불가능한 상태인데요. 우선 노동조합이 사회적 혹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관련한 논의를 아예 손을 놓은 것 같아요.

 

김승곤  제가 소속된 건설연맹의 건설노조 사례를 봤을 때, 산별노조로서 전국적 임단협을 체결하는 것 자체는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전망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들어서 실효성 있는 전국 임단협을 체결하고 실제로 현장 조합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해온 곳이 건설노조인데요. 그것 자체로도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산업의 명확한 특징에도 힘입은 바가 있습니다. 기업별 질서가 의미가 없는 산업이기 때문에 전국적 임단협 쟁취가 공통의 목표가 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산별노조의 목적이 ‘임단협을 잘하자’에 그치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적 노동운동 전략과는 관련이 없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통일된 임금과 단체협약은 산업 내에서 조합원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에는 크게 기여했습니다.

 

박준형  진보정당도 앞선 산별노조운동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진보정당도 애초에 정책과 이념이 부재한 상태에서 건설되지 않았습니까? 진보정당이 정치정당으로 건설되려면 정당이 이념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그 이념을 노동운동 내에서 만들고 합의를 형성할 정치적 노동자운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운동이 1990년대 초반 한국사회주의노동당(한사노당) 이후에 붕괴한 상황입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새정치국민회의에 대항해 의회 외곽부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어떤 이념에 기반을 둔 정치적 노동자운동과는 거리가 먼 측면이 있습니다. 이념이 부재한 정당이 지속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고, 결과적으로 의석을 늘리는 것에 집착하려다 민족해방파의 횡포 속에 붕괴한 것이죠. 앞으로도 진보정당의 통합은 어렵다고 봅니다. 공유하는 이념적 기반이 현재 진보정당들 사이에 존재하는지,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사이에는 존재하는지 의문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정당 통합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전망 역시 우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보충해서 말씀드리자면, 결국 대기업 노조는 자기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대기업 노조에 자연히 양보를 바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이를 만회할 계급적 지식과 정치적 의식화를 추동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노동자운동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운동이 무너진 상황에서 노조의 자기 이익추구를 가지고 뭐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도 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인식과 대응

 

정지현  목표가 없고, 무언가를 합의하기 어려운 것이 그동안 노동자운동의 현실이라고 짚어주셨는데요. 자연스레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인식과 대응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가령 조합원이 모이지 않거나 노조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등 현실적으로 위기가 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현상을 마주했을 때, 민주노총이 나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기마다 발전전략위원회나 혁신위원회를 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조직적으로 잘 토론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는 단순한 개선책만이 제시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권력을 획득하면 위기가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국회 의석수를 늘리는 데에 집착하거나, 대중의 투쟁이 고양되기만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여 목표 없이 대중운동의 활성화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인식과 대응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지, 우리는 무엇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라고 생각하는지, 민주노총 내에서의 위기 담론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좀 더 얘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임성우  제가 소속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의 경우, 조합원 수가 늘어났으니 양적인 면에서 위기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보편적인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대전충북지부 조합원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지위에 있고 안정적인 교섭을 지속할 수 있는 데 반해, 한국 사회의 대다수 노동자는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보편적인 노동자의 상과 괴리가 점점 커지다 보니 스스로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말하면서도, 점차 그렇게 말하기 어려워지는 현실에 대한 위기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보람  노동조합의 인식도 보편적인 노동자나 일반 시민의 인식과 점점 괴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기업별로 운영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조합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특히 어느 정도 규모의 힘을 가지고 있고 안정성을 확보한 곳들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포퓰리즘적 요구들이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노동조합 역시도 이러한 방식과 요구들에 자유로울 수 없으니, 산별운동을 자기 과제로 삼는 것이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어요. 결국, 산별노조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현장 조합원들과 간부들을 명확하게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활동가들이 산별운동의 비전을 제시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논의를 안정적으로 이어오고 합의를 만들지 못했던 측면이 이러한 부분을 더 악화시켜왔던 것 같고요.

 

박준형  저는 우선 노동조합이 스스로 위기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묻고 싶어요. 현재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섰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노동부장관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지금이 노동운동의 전성기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정확히 무엇이 위기인가 하면, 계급대표성과 정치대표성의 위기라고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다수 노동자가 민주노총을 노동자계급의 대표로 사고하는가를 생각했을 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이재명 정부만을 바라보며 자족하는 상황이 정말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준도  1990년대 초반 전노협 위기 논쟁과 2000년대 초반 위기 논쟁을 돌이켜보면,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지금 노동운동이 위기를 이야기하는 수준은 단순재생산의 위기를 가리킬 뿐이에요. 조합원 수의 감소와 간부 부족을 호소할 뿐이죠. 계급적 대표성과 사회적 표상을 기준으로 위기를 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대응전략 또한 굉장히 즉자적일 수밖에 없어요. 계급대표성을 위한 조직화 전략이 아니라 조합원 수를 늘리기 위한 조직 확대 방안으로 귀결됩니다. 사회적 표상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가 양성이 아니라 당장 필요한 간부 충원 방법에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금융위기 이후 가끔 소환되는 민주노총 위기 담론은 굉장히 즉자적인 측면이 강해요.

 

서보람  실제로 많은 노조 간부가 계급대표성 강화를 양적 확대 위주로 사고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이다 보니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계급대표성을 자연스레 획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조직화 경쟁을 둘러싸고 산별끼리 경쟁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있고요. 계급대표성이 무엇인지부터 인식차가 있으니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승곤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을 대표해야 한다는 논의를 할 때,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재하다면 노동자나 시민이 민주노총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민주노총 노조들이 단체협상을 해도 단협 적용률이 매우 낮다 보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조직률은 낮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다 보니 시민들도 노조의 투쟁이나 파업에 대해 불편을 감수하고 이해도 해주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념 없는 제도 역시 문제지만, 제도 없이는 이념도 형성하기 힘들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경제위기와 민주노총의 역할

 

정지현  민주노총의 위기인식에 대해 다양한 말씀을 주셨는데요.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정세에 대응하는 민주노조운동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민주노총이 건설된 이후 지난 30년간 크게 세 번의 경제위기가 있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로 나눌 수 있는데요. 각각의 시기별 민주노조운동의 대응에 대해 평가해보고 이를 통해 되돌아봐야 할 교훈은 무엇일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성우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전략은 잘 모르겠지만, 경험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다 보면 기업별로 대응하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적 요구를 하더라도 정부에 계속 고용상태를 유지하도록 해달라는 것, 즉 회사가 망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시기엔 대전충북지부 산하 지회 소속 회사들이 큰 위기에 처하지 않았기에 체감을 덜 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논의를 추동할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습니다.

 

서보람  아이러니한 게, 대규모 사업장에서 투쟁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이 조직된 곳 대부분이 경제위기를 즉각적으로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경제위기 때 주요 투쟁을 생각해보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은 쟁점화가 잘 안되었던 반면 한국GM이나 쌍용자동차와 같은 대형사업장의 사례는 크게 이슈화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산업이 위계화되어 있다 보니 노조들도 그에 조응해 발언권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요. 저는 각 산업에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어려움을 메울 수 있게끔 민주노총이 산별들의 투쟁을 엮고, 확대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현실에서 민주노총의 투쟁은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맞춰서 의제별 논의를 진척시키는 것에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투쟁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축적되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를 포함하여 어떤 요구와 과제를 제안하고 쟁취할지에 대해 조직적인 토론이 잘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시기 원포인트 노사정대화 역시 민주노총이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가 잘 정리되지 못했고, 그 결과 상당한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준도  민주노총이 경제위기를 정말 ‘위기’로 체감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던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민주노총이 조직 전체의 존립을 위협받을 만큼 ‘고용위기’나 ‘임금 삭감 위기’에 처한 적은 없습니다. 주력 사업장들은 대공장과 공공부문에 집중되어 있어 금융위기나 코로나 위기의 충격을 비껴갔기 때문입니다. 또 주력세대가 86세대라는 점에서 ‘저출산·고령화 위기’와도 거리가 있습니다. 한국사회 위기와는 동떨어진 섬처럼 존재해 왔죠.

그러다 보니 내놓는 대책도 조합원의 이해관계에 머물거나, 의례적으로 중소사업장, 비정규직을 위한 몇 가지 요구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대정부 교섭이든 노사정 교섭이든 절박성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사회적 책임감이 커서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는가 그렇지도 않고, 결국 위기 국면에서 민주노총의 책임 있는 역할은 공염불로 끝나고 마는 거죠.

 

김승곤  말씀을 들어보니 앞의 질문과 맞닿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기 진단부터 안 되다 보니, 처방이 있을 수 없는 것이죠.

 

박준형  경제위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대응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개별적, 기업별, 방어적이에요. 이런 투쟁방식은 전체 노동시장에서 영세 중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매우 어려운 방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민주노총의 과거 투쟁을 돌이켜봐도 이들을 위한 투쟁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노동계급의 대표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측면이 더욱 부각되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을까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 위기의 원인과 양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야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갈 수 있는데, 이념이 없으니 가능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이런 근본적 한계에선 경제위기가 반복되어도 대응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김승곤  결국 거시경제를 인식할 수 있는 이론적 자산이나 지적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유실된 기간이 너무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근래 민주노총을 보면 ‘투쟁본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물론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지적 풍토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민주노총은 특히 더 심각한 것이 아닌가는 생각입니다.

 

박준도  실제로 연구자나 연구소 부족 문제는 심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노정연(한국노동이론정치연구소), 영남노동운동연구소, 한노사연(한국노동사회연구소)이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를 대변하는 연구자로서, 정책생산집단으로서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시절엔 몇몇 대학원생을 통해서라도 연구자가 일부 재생산되었는데, 지금은 그런 연구자도 찾기 힘든 상황이죠.

 

정지현  노동운동의 전략은 왜 마련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동안 제대로 된 진단이 없었던 점이 한계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목표와 이념이 부재하며 이를 고민하고 제시할 연구자조차도 없는 가운데, 위기인식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1노총으로서 민주노총과 주체형성

 

정지현  어쨌건 양적으로는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노총의 전체 조합원 수가 늘어났는데요. 2019년에 민주노총은 드디어 제1노총으로 등극합니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전략조직화 사업에 꾸준히 노력해왔고 그 성과의 결실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1노총이 되었다는 것은 외적으로는 사회적 입지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대안 주체 형성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현재 민주노총에서 주체 형성 관련 논의의 초점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는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에 있다고 보이는데요.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나눠보고 주체 형성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성우  어제 지역지부 미조직 수련회를 갔다 왔는데 저한테 교육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해 교육을 진행했는데요. 충북의 경우 전략조직화를 어느 산업단지에 특정한 산업노동자들이 많으니 그곳을 타겟팅하여 유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자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그걸 넘어서는 조직 혁신의 관점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교육에 반영하여 진행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주체를 형성한다고 할 때, 지역의 경제와 산업 상황을 고려해 조직화 대상을 선정하고 계획을 짜더라도 그들과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전략적으로 실패라 볼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했습니다.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 교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어떻게 산별노조 문제의식을 공유할지를 내부에서부터 기조를 잡고, 그에 맞게 초기 상담과정부터 노조 활동가들이 교육하고,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산별교섭에 참여하게끔 내부방침을 세우도록 지원해 3년 내로 산별교섭에 참여하도록 방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그런 방침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들을 최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승곤  어쨌건 정세변화를 인식하는 주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교육도 해야 하고 토론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최근 노동조합에서 책읽기 모임을 하고 인천본부에 정세강좌를 열어달라고 부탁하여 박상훈 연구원(『혐오하는 민주주의』 저자)을 초빙해 최근 정세에 관한 교육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좌를 바탕으로 그분의 저서를 가지고 책읽기 모임을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드는 저의 고민은 젊은 조합원, 간부들의 참석이 저조하다는 것이에요. 열심히 참석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87년 운동권 세대입니다. 그분들은 진지하게 임하고 열심히 임하십니다. 사회진보연대의 연대임금·연대고용 전략에 대해서도 논의할 만큼 학구열이 높으십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약 5년 후에 대부분 은퇴하실 분들이에요. 노동조합 내에서 젊은 사람들은 책읽기 모임을 하자고 하면 기피합니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 저의 활동에 있어서 큰 고민입니다.

 

서보람  저는 오히려 기존 조합원들 재조직화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새로 생긴 곳들은 아무래도 새로운 접근과 시도를 해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초반부터 산별노조의 중요성을 교육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초반에 노조 차원의 내부 교육과 조직화가 없다면, 파업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초반에 어떻게 교육과 토론을 내부적으로 형성하게끔 유도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준형  신규조직화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내에서 이념적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제가 보기엔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대안적 운동을 수행할 주체로서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것, 이를테면 화물, 라이더 등 전략 조직화가 있고 이러한 부문에서 초기업 조직화, 교섭, 투쟁의 시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기존 조합원들과 간부 중에서 이념적 운동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있는데요. 현실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적 혁신을 고민하는 활동가군을 조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의 결합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간 사회진보연대가 이야기하는 사회운동노조도 현장에서 조직하고, 이념적 운동을 하면서도 발전할 수 있는 대중운동적 토대를 만드는 것인데 사회운동노조가 무엇인지 더 고민해보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사회운동노조라는 개념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좋은 것으로만 느껴질 수 있는데, 사회운동노조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해서 말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제시하는 작업, 그리고 활동가들도 그 형상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현실을 조직하는 그런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준도  어떤 정파도 산별교육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없습니다. 정치교육은 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나마 민족해방파는 통일위원회를 매개로 정치교육은 하는데요, 북핵을 옹호하려다 보니 시대착오적인 정치노선을 주입시킬 뿐이에요. 산별교육은 아예 상대화하고 있는 거 같고요. 비정규직 활동가들도 노동권 확대는 보편적 권리의 확대라는 주장만 반복할 뿐, 비정규직에게 왜 산별노조가 필요한지,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교육은 하지 않아요. 과거 산별전략을 마련했던 정파조차 산별노조의 의의에 대해 충분히 교육하고 있지 않죠. 산별노조의 필요성과 의의를 교육하지 않고, 어떻게 노동자가 계급적으로 단결할 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사회운동노조도 총연맹과 산별노조를 개혁하자는 것이지, 기업별노조나 비정규직 노조로 사회운동노조를 하자는 아니거든요.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조합원의 정치의식 관련 교육도 크게 개선되어야 해요. 인민주의와 권위주의가 발호하는 정세라면, 교육 내용도 거기에 맞춰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 교육이 정권 비난과 비아냥으로 대체되면, 헌정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어요. 오늘날 인민주의의 발호가 정당, 언론, 노조 등 대의기관을 상대화하고 파괴한다는 점을 토론할 수 있어야 헌정 민주주의의 대중적 토대를 닦을 수 있어요. 정권에 대한 비판도 제대로 할 수 있고요.

 

김승곤  저희는 산별노조 교육을 하기는 합니다. 다만, 방금 말씀하신 산별노조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이념적 지향이 전제된 교육인데, 그런 함의가 탈각되었을 때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조합원 사이에서 노조 교육에 대한 수용성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까 이야기했던 노조 내 책읽기 모임을 환기해보면, 사실 청년 조합원들도 유튜브 채널을 보며 공부하는 등 지적 욕구가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노동조합에 어떤 교육과 관련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노동조합은 투쟁하고 임단협 하는 곳으로 이해하지, 특히 정세교육을 하는 곳으로 사고하지 않아요. 노동법이나 노조법 교육이라면 몰라도요.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그동안 민주노총을 주되게 운영해온 민족해방파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조합원들에게는 민주노총이 하는 정세교육이라고 하면 통일교육, 반미교육이라는 인상이 강하거든요. 안타깝게도 그 내용이 지금 세대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정세와는 너무 다르죠.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을 앞에 두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거의 없을 거예요. 상황이 이러하니 거부감만 생기고 결과적으로 아예 귀를 닫아버리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합니다.

 

임성우  덧붙여서 노조가 안정화될수록 교육 내용이라고 하는 것도 이념을 탈각한 실용적 교육 위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올해 요구안과 관련해서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지 의미 부여를 하는 정도로 덧붙여 언급하고 간단히 설명하는 것 외에는 실용적 경향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서보람  그래서 저는 노조 내 교육의 기풍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주체 형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편으로 노조가 안정화될수록 다른 노조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게 되는데, 특히 실리만을 추구하는 부정적 경향성은 쉽게 확산할 수 있기에 이 부분을 방지하려면 노조 차원에서 교육, 활동과 관련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전제될 때 주체 형성과 조직화가 맞아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30년, 노동운동 혁신과 우리의 고민

 

정지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민주노총의 혁신은 그동안 다양하게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간 사회진보연대가 노동자운동 혁신을 위해 강조해온 산별노조 운동의 발전과 연대임금·연대고용 문제의식,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부활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더 구체적인 의견들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이번에 노동운동사 책을 내실 박준형 회원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박준형  노동운동이 발전하려면,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여러 가지 유의미한 시도가 있습니다. 초기업 교섭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진행중입니다. 가령 중소사업장들의 경우, 사업자, 노동자 모두 열악하고 어려운 조건이기에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산별교섭이 더 용이한 측면이 있습니다. 건설업, 화물운송업과 같이 반드시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초기업적인 임금기준을 형성하는 운동을 만드는 사례, 금속노조나 보건의료노조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단계적으로 임금구조를 맞춰가려는 시도와 실험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시도들을 민주노총이 잘 받아안고,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를 쟁취한 이후에 라이더 유니온도 비슷한 방식으로 표준 수수료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해왔단 말이죠. 그런 식으로 어떤 한 부문에서 만든 성과를 다른 부문으로 확장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고, 이런 시도들을 산별노조나 총연맹이 자신의 고유한 사업과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각급의 활동가들이 이런 시도들을 자신의 활동공간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실현한 뒤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를 노동운동 내에서 공유하고 환류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시도에 대한 실험과 평가를 지속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는 것이 지금의 민주노총에 필요한 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추가로 말하자면, 운동권 내에서도 과감한 논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금속노조가 2021년 공동결정법 산업전환 추진을 했었는데요. 당시에 많은 반발과 저항 끝에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와 같이 정책 개입을 할 때 논쟁을 과감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 개입이건 노사정 정책 개입이건 모두 거부하고 사업장 투쟁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관념에 발목을 잡히는데, 이런 경향들과 제대로 논쟁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보람  얘기를 들으면서 드는 고민은 노동운동 내에서 다양한 초기업 교섭의 사례와 새로운 시도들에 의미를 어떻게 잘 부여할 수 있을까입니다. 기업 울타리가 없는 새로운 영역에서는 기업별보다는 산별교섭, 산별운동에 관한 고민을 형성, 축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텐데, 노동운동이 상당 부분 기업별로 고착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부문들의 시도와 실험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산시킬 수 있을지가 현재 우리의 과제이자 고민인 것 같습니다.

 

정지현  산별노조운동, 연대임금·연대고용과 관련한 혁신 논의가 이루어지려면 이념적 주체가 마련되어야 하고, 이 부분을 활성화하려면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부활이라는 문제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재 정치적 노동자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운동의 부활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서보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교육을 잘해야 하고 토론하는 분위기와 기풍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노조의 운영에서 논쟁은 거의 소멸하고 어떻게 성과를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더 맞추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노조에서 공부와 토론, 논쟁을 하는 분위기 형성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직선제라는 선거 방식은 임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조합원들의 다양한 요구, 때로는 갈등적인 요구들을 해결하는 데에 많은 역량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 특히 노동운동의 이념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과 토론이 더욱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정지현  그렇다면 정치적 노동자운동 부활을 위한 시도를 역사적 사례나 교훈을 되짚어 보며 더 자세히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박준형  1985년 구로동맹파업 이후에 결론은 정치적 노동자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노련, 인노련이 대표적 사례이지요. 이들은 물론 탄압 속에서 붕괴하지만, 이후에 1987년 인민노련이 탄생하고, 그 위에 여러 PD세력이 발생하는데, 삼민동맹, 노동계급(LC) 조직 등까지 1991년에 통합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정당 건설운동으로 확장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탄원서 사건’이라는 스캔들도 발생하고 외연 확대도 제한되지요. 결과적으로 이 3개 PD정파 통합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자당(준)을 출범했습니다. 이후 민중당과 통합해 선거에 대응했으나 실패하고 이후에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도 실패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점점 붕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건설되었는데, 민주노동당은 정치운동이 주도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PD 3파 통합으로 대표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인민노련의 정치적 노동자운동은 현장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실천이었습니다. 민주노조를 세우며 조직한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인민노련이 표방한 것처럼, 이를 과학적 사회주의와 대중운동의 융합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교육을 통해 정치투쟁을 조직하고, 정치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을 강화해나가는 방식이었고, 이는 전노협 건설에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1991년 이후 정치는 정당에서,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에서라는, 각각의 역할을 분리하는 관념이 확산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1990년대 전반에 정치적 노동자운동이 붕괴하고, 전노협도 약해집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건설된 민주노총은 96~97년 총파업의 결론으로 민주노동당 건설을 추진하지만, 이는 과거의 정치적 노동자운동이 주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민주노동당마저 붕괴한 상황입니다. 여전히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있지만, 과거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취지에 부합하는가를 봤을 때, 큰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노동운동의 혁신이라든가 산별노조를 재건하려면 여전히 어떤 이념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노동자운동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 운동을 고안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가 제가 이번에 쓴 책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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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올 책이 더욱 기대됩니다. 결국,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해선 이념의 복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치적 사회운동을 통해 노동자운동을 건설해 나가자는 의미라고 이해됩니다. 이념의 복원을 통해 운동의 혁신을 만들 것을 다짐하면서 오늘 좌담회에 참석해주신 분들의 소감을 듣고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박준도  오늘 좌담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노동운동의 목표 부재입니다. 목표 부재는 사실 장기 저성장 시대에 사회적 책임이 있는 주체로서 민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시대적 과제 인식이 없다는 이야기이고요.

사회주의 혁명이 비극적으로 종결되고 오늘날 러시아, 중국, 북한에 의해 희화화당하는 상황에서, 혁명은 단순히 체제 전복, 권력 탈취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주체성을 ‘문명화된 방식’으로 변형·재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이론이 없을 것입니다. 혁명의 문명화는 운동기관의 문명화, 즉 정당과 노조의 문명화와 궤를 같이할 것이고요.

위 두 가지를 종합하면 장기 저성장 시대, 오늘날 노조의 현대화 전략은 무엇인가 질문으로 수렴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적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저는 ‘격차축소를 위한 연대임금·연대고용’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적 목표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성우  민주노총의 현 상태라든가, 노동자운동의 전반적인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습니다. 어쨌건 우리가 노동해방을 위한 마음으로 노동자운동에 투신했는데, 현재 노동자운동의 상황이 문제가 많은 것은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의 결론이 민주노총 포기나 비난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문제가 많은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활동가의 책무라고 느끼며 격차를 축소하고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시도들을 조금씩 진전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속한 금속노조에서도 노동조건 표준화를 위해, 중앙교섭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통일 요구안, 중앙교섭 요구안을 쟁취하게끔 내부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금속산업 최저임금도 그렇게 투쟁해서 지역에서 중앙교섭 미참여 사업장 100여 곳도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늘리고 있습니다. 관련 시도들을 더욱 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지역과 현장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김승곤  다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저는 고민을 공유하며 마무리하려 합니다. 어느덧 30대를 오롯이 민주노총에서 보냈습니다.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말 책 한 권 읽기가 힘들 정도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년 임단투 시기가 오면 더 그렇습니다. 오늘도 새벽 출근 선전전을 진행하고 왔지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정치적 노동자운동, 노동자운동의 혁신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거시적 사회인식, 이론에 대한 이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선 많은 노력과 공부가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하고요. 그렇기에 우리가 정말로 노조주의자가 아닌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노동운동의 혁신을 도모하는 정치적 노동자운동을 지향하는 활동가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정말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서보람  아까 노동자계급 대표성을 이야기했는데, 활동가로서 우리가 노동자들의 대변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급단결을 확대하고 대표성을 강화해나가면서 사회변혁을 자임할 수 있을까? 오늘 자리는 이런 고민을 많이 나눈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민주노총도 30년이 지났는데요. 우리 스스로 진지하게 평가하고 반성하고 전진하는 ‘이립’(而立)의 시기를 잘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간 민주노총이 전략으로 사고해 온 과제들의 현재 수준을 잘 진단하고 평가하며, 현시기 노동운동의 전략이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전략마련 논의를 좀 더 치열하게 해나가야 할 중대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준형  저는 올해를 규정할 때 민주노총 30년보다 구로동맹파업 40주년이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구로동맹파업 이후의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형성과 발전, 뒤이은 붕괴 혹은 청산과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민주노총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이 대표하는 사회경제적 노동운동은 30여 년을 지나서 보면 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동시에 그것을 극복할 동력도 상당히 상실했습니다. 그렇기에 마냥 30년을 축하한다고 말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전환은 가능한가?’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아까 말했듯, 40년의 역사로 넓혀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과거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역할에 주목하고 그 붕괴과정을 살펴볼 때,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에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지현  민주노총이 표면적인 위상과 달리 충분한 내실을 기하지 못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과거에 영향력과 힘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들이 있었지만, 민주노총 30년이 된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상황이 나아지지 않음에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서 민주노총이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할 수 있도록 과거의 행태를 돌아보고 그 존재의 위상을 이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진보연대 역시 어두운 시기에 길을 밝히는 등대로서 여러 가지 문제의식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견뎌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오늘의 자리가 이런 고민들을 확장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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