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보고와 평가
원폭 80년과 돌아온 핵 경쟁,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결의
지난 8월 3일부터 9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대표적인 일본 반핵평화운동 단체인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이하 ‘원수협’) 주최로 2025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이하 ‘세계대회’)가 열렸다. 사회진보연대에서는 필자를 포함한 9명이 참가해 일본과 세계 각국의 반핵평화 활동가들과 교류했다. (원수폭은 핵무기의 주요 유형인 원자폭탄·수소폭탄을 뜻한다.)
이 글은 먼저 세계대회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한 뒤, 원폭 투하 80년을 맞은 올해 대회의 주제를 설명하고 히로시마 국제회의와 주요 포럼·워크숍에서의 논의를 보고한다. 이어 이번 세계대회를 통해 국제 반핵평화운동이 무엇을 합의했고 어떠한 과제를 남겼는지 평가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회는 전후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강대국 간 핵 군비경쟁이 재개된,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위태로운 정세 속에서 ‘모든 핵무기 반대’와 ‘세계 시민의 국제연대’라는 원칙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한 장이었다.
1.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역사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실전용 핵무기인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되었다. 사흘 후인 9일, 나가사키에도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실전에 사용된 핵무기인 원자폭탄 ‘팻 맨’이 떨어졌다. 세계는 단 한 발의 폭탄이 도시 전체를 초토화하고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장면을 두 번이나 목격하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원폭 피해를 직접 경험한 일본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피폭자에 대한 편견, 차별이 만연했을 뿐만 아니라 미 군정청과 일본 정부가 원폭 문제의 공론화를 막았다. 그 결과 원폭 투하를 겪은 당사자들은 10년 가까이 숨죽이며 지내야 했다. 물론 전환의 조짐은 있었다. 1949년 파리와 프라하에서 개최된 ‘평화옹호세계대회’를 계기로 일본에서도 같은 대회가 열리고 일본평화위원회(당시 이름은 ‘일본평화를지키는모임’)가 발족했다. 1950년 3월부터 시작된 ‘스톡홀름 호소문’ 국제서명운동은 ‘모든 핵무기 금지’를 요구하며 “어떤 나라든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전범국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일본 시민 645만 명이 서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피폭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상황은 1954년 3월 1일, 미국이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 실험을 실시하며 바뀌었다. 제5후쿠류마루호를 비롯한 일본 어선들이 피폭되자, 도쿄 스기나미구 주민들이 5월부터 ‘수소폭탄 금지 서명운동’(스기나미 호소문 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들도 이를 계기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원수폭금지서명운동 전국협의회가 발족하여 전 국민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 문제 해결과 핵무기 철폐를 요구하는 반핵운동으로 발전했다.
전국적인 서명운동과 원수폭 금지 운동의 열기는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195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에 맞춰 제1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히로시마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는 일본 46개 도도부현과 97개 전국 조직에서 2576명의 대표가 파견되었고, 대회 전체 참가자는 5천 명을 넘었다. 해외에서도 14개국 52명이 참석해 국제연대의 출발을 알렸다. 이어 같은 해 9월 19일, 일본 원수협이 공식적으로 결성되었다. 당시 원수폭금지서명운동에 참여한 일본 시민은 3259만 명을 돌파했다.
1956년, 나가사키 원폭 투하일인 8월 9일에 개막한 제2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는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들의 전국 단체인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결성된 것이다(이하 ‘피단협’, 국제적으로는 일본어 발음에 따라 ‘히단쿄’로 불린다). 이후 피단협은 자신들이 직접 겪은 핵무기의 절멸적 파괴성과 비인도성을 세계에 증언하며,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이를 통해 핵무기 사용에 대한 국제적 금기를 만들고 UN 핵무기금지조약(TPNW)의 성립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피단협은 202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결성 선언 “세계에 보내는 인사” 제2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 2일차인 1956년 8월 10일, 나가사키에서 (필자 발췌 번역)
원폭으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처음으로 이렇게 전국에서 모일 수 있었습니다. [원폭 투하의] 그 순간에 죽지 않았던 우리가 지금 드디어 일어나 모인 최초의 전국대회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흩어져 살아남은 우리들이, 더는 가만히 있지 않고 손을 잡고 일어서려고 모인 대회입니다.
우리가 일어설 용기를 얻은 것은 작년 8월의 세계대회 덕분입니다. (중략) 우리의 이 감사와 결의의 말은, 그 순간에 무참히 죽고, 또 그 뒤에 원폭증(原爆症)으로 잇달아 죽어 간 30만 명이 넘는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 남편이나 아내의 목소리를 대신한 말로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중략)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체험을 통해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결의를 맹세합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 목소리를 모아 전 세계에 소리 높여 호소합니다. 인류는 우리의 희생과 고난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파괴와 사멸의 방향으로 갈 우려가 있는 원자력을 결정적으로 인류의 행복과 번영의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한 유일한 소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오히려 수소폭탄 경쟁 시대에 접어들어, 위력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천 배인 수소폭탄의 실험까지 행해지고 있습니다. “멈춰달라”는 우리의 피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수폭 실험은 냉연(冷然)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폭 투하 이래로 방사능 병의 무서움에 직면해 온 우리, 올해에만 하더라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여러 사람이 방사능 병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곁에서 본 우리가 공기와 물을 방사능으로 오염하는 수폭 실험을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힘 앞에서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각오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모일 수 있었던 오늘 이 모임의 열기 속에서 뭔가 ‘부활’이라고 불러야 할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난과 부활이 새로운 원자력 시대에 인류의 생명과 행복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와 결의를 피력하며, 이 대회로부터 전 세계에 보내는 인사를 드립니다. |

[상단] 1956년 8월 10일, 나가사키에서 열린 제2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피단협을 결성할 때의 모습. [사진 출처: 일본 《주고쿠신문》]
[하단] 2024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피단협 대표단. 앞줄의 가장 왼쪽과 바로 그 뒤에 한복을 입은 2명은 피단협의 초청으로 시상식에 함께 한 한국인 피폭자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과 피폭 2세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이다. 현수막에는 “노 모어 히로시마, 노 모어 나가사키”라는 구호와 일본 반핵평화운동의 상징물인 종이학이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매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린 원수폭금지세계대회는, 세계 모든 핵무기의 철폐를 촉구하고 핵무기·핵실험 피해자와의 연대를 다짐하는 세계 반핵평화운동 세력이 결집하는 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냉전 시기 현실 사회주의 진영의 핵무장은 세계 각국 좌파를 분열시켰고, 일본 반핵평화운동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1961년 제7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이번 대회 이후) 핵실험을 재개하는 정부는 평화와 인도주의의 적으로 규정한다”는 결의를 채택한 직후, 소련은 8월 30일 핵실험을 재개했다. 이에 원수협 내부에서 사회당계와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계는 소련에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공산당계가 반대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1962년에는 세계대회 중에 소련이 핵실험을 강행해 대회가 혼란 속에 끝났고, 1963년에도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PTBT)’ 지지를 둘러싸고 대회가 무산되었다. 공산당계는 이 조약이 후발 주자인 중국의 핵무기 개발을 제약한다고 반대했고, 사회주의 국가의 핵무장은 침략 방지를 위해 용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워 논란이 되었다. 결국 1965년 사회당, 총평계가 원수협을 탈퇴해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원수금)’라는 별도의 조직을 창립했고, 세계대회도 양측이 따로 개최했다.
1973년, 미야모토 겐지 당시 일본공산당 위원장이 국회 기자회견에서 “중소대립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의 핵실험도 모두 방위를 위해 강요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앞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의 핵실험도 반대한다”고 밝혀, 공산당계가 태도를 전환했다. 이로써 1977년부터 1985년까지는 원수협과 원수금이 공동으로 원수폭금지세계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조직 갈등이 불거져 이후 두 단체는 다시 각각 세계대회를 열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원수협 주최 대회에는 2007년, 2019년, 2020년(온라인), 2021년(온라인), 2025년에, 원수금 주최 대회에는 2007년, 2011년, 2012년, 2014년에 참가했다)
한편, 전국적 반핵평화 여론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3원칙’을 선언했다. 이 원칙은 1971년 중의원 결의로 채택되어 일본의 국가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핵무기 철폐는 폭넓은 합의로 남아있다. 2025년 8월 현재,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70% 이상이고, 전체 지자체의 40%가 일본 정부의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을 요구하는 결의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올해 원폭 투하 80년을 맞아 원수협, 원수금, 피단협 세 단체는 7월 23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입장의 차이를 넘어 핵무기의 비인간성을 일본과 세계에서 호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은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2. 2025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주제와 현황
1) 주제
올해 세계대회의 공식 기조는 “피폭자와 함께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를 만들자!”였다. 이번 대회는 피단협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직후의 대회였으며, 동시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나이의 피폭자가 참가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0’주년 세계대회이기도 했다. 피폭 당시 10세 이상이었던 피폭자는 현재 90세가 넘으며, 피단협 회원의 평균 연령도 이미 86세에 이른다.
피폭자들은 지난 80년 동안 세계에서 핵무기가 다시 사용되지 않도록 일생을 바쳤다. 그러나, 핵무기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이들의 기억을 계승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염원을 이어갈 책임은 세계대회 참가자를 비롯한 남은 이들에게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회 전반에 걸쳐 강조되었고, 원폭 투하 80주년을 맞아 기획된 특별 프로그램 ‘피폭 체험의 계승과 미래’(같은 제목, 다른 내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각각 진행)는 피폭자의 증언과 피폭자 운동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국제적으로는 이번 대회는 원폭 투하 80주년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핵무기 위기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강대국의 핵 군비경쟁 재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핵 위협,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 등이 지적되었다. 미국 《핵과학자회보》(BAS)가 매년 발표하는 ‘지구종말시계’가 2025년 현재 자정 89초 전, 즉 역사상 가장 지구 종말에 근접한 시점에 있다는 사실이 자주 인용되었다.
이번 세계대회 선언문은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이념적으로는 “모든 핵무기와 핵 사용 위협 반대”라는 기준이다. 둘째, 운동적으로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2017년 UN총회 채택, 2021년 발효, 2025년 8월 현재 73개국 비준·94개국 서명)을 두고 국제 반핵평화운동이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침이다. 이에 따라 핵보유국에 핵군축을 요구하는 국제적 흐름을 조직하고, 올해 9월 UN총회, 2026년 4~5월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같은 해 11~12월의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로 결집하자는 계획이 제시되었다.
일본 국내에서는 올해 세계대회 준비 과정에서 ‘비핵일본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원수협은 2024년 초, ‘비키니 수폭 재해 70년으로부터 피폭 80년으로 - 비핵 일본을 목표로 하는 전국 캠페인’을 제안했다. 캠페인은 1954년 비키니 수소폭탄 실험 피폭과 원수폭 금지 서명운동의 70주년(2024년 3월 1일)부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80주년(2025년 8월 말)까지 핵무기·핵실험 피해의 실상을 알리고 피폭자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전국적 활동으로, 일본 정부에 핵무기금지조약 참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포함했다. 세계대회 마지막 날에는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한 해외 참가단도 나가사키 시내에서 서명 모집 활동에 동참했다.
원수협은 이와 같은 캠페인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에 “미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 북한에도 당당히 핵무기 전면 금지·철폐와 평화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먼저 핵무기금지조약을 서명, 비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80주년 집회 무대에 서서, <일본 정부의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요구하는 고교생 서명운동>의 현황을 보고하는 일본 고등학생들. 이들뿐만 아니라 세계대회 기간 동안 만난 일본 청년들은 “피폭자의 기억을 후대에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는 마음가짐을 계속해서 밝혔다.
2) 현황
원폭 투하 80주년을 맞아 열린 올해 원수협 주최 세계대회는 예년보다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합쳐 연인원 약 1만 3천 명이 참가했다. 일본 외 국가에서는 15개국 47개 단체, 4개 국제연대체, 6개 국제기구 및 정부 대표를 포함해 총 228명이 참가했다.
올해 대회도 피폭자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 세계 각지의 피폭자 대표들을 초청했다. 1945년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한국인 원폭피해자, 1954년 비키니 수소폭탄 실험에 피폭된 마셜제도 대표와 1966년 미 공군의 핵탄두 탑재 전략폭격기 추락 사고(팔로마레스 B-52 추락사고)로 피폭된 스페인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11세에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겪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박정순 회원의 증언은 히로시마 국제회의와 특별 프로그램 ‘피폭 체험의 계승과 미래’의 중요한 순서로 배치됐다. 또한, 영국 핵군축캠페인(CND), 미국 평화행동(Peace Action), 평화재향군인회 등 저명한 반핵평화운동 단체들과 국제평화국(IPB), 국제여성평화자유연맹(WIDLF) 등 국제 평화운동 조직들이 함께했다. 특히 한국과 프랑스의 활동가가 대규모로 참가해 대회 기간 내내 주목받았다.
한국에서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포럼평화공감,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사회진보연대, 노동자가여는평등의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청년한의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13개 단체에서 51명이 참가했다(세계대회 자료집에 실린 순서). 특히 민주노총은 최근 일본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 이하 ‘젠로렌’)과의 연대활동이 활발해진 가운데 양경수 위원장이 직접 참가했다. 민주노총이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같은 주요 산별노조를 포함하여 역대 최대 규모의 참가단(11명)을 꾸린 사실은 대회 전부터 일본 《평화신문》(일본평화위원회 발간)에 소개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사회진보연대도 처음으로 회원들의 참가 신청을 받아 9명의 참가단을 조직했다. 참가단은 규모 면에서도 컸던 데다가, 기념 티셔츠, 뱃지, 회원들의 자필 메시지를 담은 구호 현수막, 사회진보연대를 일본어·영어로 소개하는 엽서를 준비하고 세계대회의 여러 일정에 적극 참여해 대회 참가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은 8월 8일 나가사키에서 워크숍 <비핵평화의 일본과 아시아> 발표를 맡았고, 에서 패널리스트로 참여했다. 8월 9일에는 세계대회 참가 소감을 주제로 일본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적기, 赤旗)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8월 9일 해외참가자 송별파티에서, 세계대회 참가 기념으로 맞춘 노란 티셔츠를 입고 회원들의 자필 메시지를 담은 구호 현수막을 든 사회진보연대 참가단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평등의길 참가단의 모습. 오른쪽 현수막을 든 사람이 필자고, 필자 오른쪽이 일본 피단협의 다나카 테루미, 다나카 시게미츠 대표위원이다. 두 대표위원은 2024년 노벨평화상 시상식 무대에 피단협 대표로 섰다. 다나카 시게미츠 대표위원은 9월 10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한국-일본 피폭자 증언대회>에서 피폭 증언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평화운동 단체 ‘평화운동’(Mouvement de la Paix)과 프랑스노총(CGT, 노동총연맹)에서 각각 수십 명 이상이 참가해, 해외 참가국 가운데 최대 규모를 이뤘다. 프랑스 참가단은 유럽의 재무장 분위기 속에서 자국이 핵무력 증강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표명하고, 프랑스가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지에서 강행한 핵실험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결의를 표현하기 위해 대규모로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히로시마 국제회의 선언문 검토회의에도 참석해 관련한 문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각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오스트리아, 멕시코, 이집트 외교관들과 독일 좌파당, 벨기에 노동당 소속 현직 유럽의회 의원들도 참가했다. 명사로서는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전 대표이자 현 하원의원이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코빈은 CND 부의장도 겸하고 있다).
올해 세계대회의 또 다른 특징은 예년보다 각국 노동조합의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민주노총과 프랑스노총 외에도 미국전기기계라디오노동조합(UE), 로스앤젤레스교원조합(UTLA), 스페인노동자위원회총연합(CCOO), 포르투갈노동총동맹(CGTP-IN)이 참가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노동조합은 올해 피단협을 초청해 증언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8월 5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를 위한 국제 노동조합 포럼 ‘United As One’>(하나로 단결하자)에서는 평화와 핵무기 폐기를 위한 노동조합 운동의 역할을 공유하고, 각국의 실천과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 내에서는 주로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젠로렌) 소속 조합원이 다수 참가했다.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은 그중 2019년 교류했던 생활협동조합노동조합연합회(생협노련) 참가단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히로시마 국제회의, 집회, 피폭자 증언 청취, 현장학습 등 세계대회 공식 일정과,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이 별도로 진행한 일본 시민 및 풀뿌리 운동 활동가들과의 교류, 견학 등에 대해서는 《사회운동포커스》에 연재한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에 자세히 담겨 있다. 또한 일부 발표문도 번역하여 소개했으므로 읽어보기를 바란다.
《사회운동포커스》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연재) ①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이 가다!: 히로시마 현립미술관 ‘전쟁과 미술, 미술과 평화’ 전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소개. ② 2025년,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토론과 모색: 8월 3일 히로시마 국제회의 논의 보고. ③ 피폭자의 경험을 미래로 계승하자: 히로시마 국제회의 선언문 채택과 히로시마 원폭 80주년 특별 행사 ‘피폭 체험의 계승과 미래’ 보고. ④ 최초의 피폭지 히로시마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말하다: 니노시마 섬 현장학습,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를 위한 국제 노동조합 포럼 ‘United As One’, 원폭 기념관 도보 투어 보고. ⑤ 피폭자의 목소리가 모토야스강에서 세계로, 널리 흘러가길 바라며: 히로시마 평화기념식 참관 일본 시민 인터뷰, 히로시마 원폭 투하 80주년 집회, 모토야스강 등불 띄우기 행사 보고. ⑥ 인류의 마지막 피폭지, 나가사키에서: 나가사키 원폭 80주년 특별 행사 ‘피폭 체험의 계승과 미래’, 일본 생협노련 간담회, 워크숍 <비핵평화의 일본과 아시아>, 긴급기획 <가자 주민 지원·비핵평화의 중동을>, 포럼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를 위해 – 정부 대표와 시민운동의 교류> 보고. ⑦ “우리가 있어서 80년간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았다” 나가사키 반핵평화운동가들의 이야기: Ring! Link! Zero 청년 심포지움, 나가사키 피폭 명소 현장학습, 나가사키현원수협·나가사키원폭피해자협의회 등 나가사키 반핵평화운동가 간담회 보고. ⑧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들여다보기: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과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의 전시 소개와 감상 공유. ⑨ 핵무기 없는 세계,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자!: 《아카하타》 인터뷰, 나가사키 원폭 투하 80주년 집회, 시내 선전전,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 해외참가자 송별파티 보고.
《사회운동포커스》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발표문 ① 주최 측 기조 발언: 노구치 쿠니카즈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실행위원회 운영위원회 공동대표 ② 한국인 원폭피해자 증언: 박정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회원 ③ 히로시마 국제회의 발표: 캐롤라인 루카스 영국 CND 부의장 ④ 히로시마 국제회의 발표: 마츠이 카즈오 킨키반핵의사간담회 “Don't Bank on the Bomb”(폭탄에 투자하지 말라) 프로젝트팀 사무국장 ⑤ 나가사키 워크숍 <비핵평화의 일본과 아시아> 발표: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
3. 2025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논의
여기에서는 8월 9일 세계대회 폐막식에서 발표된 ‘원수폭금지세계대회·국제회의 선언’ 최종안과 ‘나가사키의 호소’를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번 세계대회에서 합의된 정세 인식과 과제를 설명한다.
원수폭금지 2025년 세계대회·국제회의 선언 피폭 80년- 지금이야말로 결단과 행동을
미군이 히로시마(1945년 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올해로 80년째다. 피폭 80년을 맞는 지금이야말로, 세계는 핵무기의 철폐를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히로시마에 모인 우리는, 핵무기가 남긴 절절한 참상을 재차 상기하며,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로의 길을 열기 위해 세계인에게 호소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사용된 원자폭탄은 유례없는 파괴력과 방사선으로 두 도시를 순식간에 불태워 그해 말까지 2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것은 이 세상의 지옥이라고 불렸다. 지옥의 고통은 살아남은 자에게도 미쳤다. 피폭자들은 사랑하는 자를 잃은 깊은 슬픔과 함께 원폭 후유증에 시달리며 차별과 편견,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지구의 어떤 땅에도, 이 비극을 결코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는 전후 정치의 출발점이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게 준 전쟁의 참해로부터 미래 세대를 구하기’(UN헌장) 위해 창설된 국제연합(UN)은 총회 제1호 결의(1946년 1월 24일)에서 핵무기를 ‘국가의 군비에서 배제할 것’을 결정했다.
이후 미국과 소련의 핵 군비 확대 경쟁 심화와 반복된 핵전쟁 위기 속에서도 핵무기 사용 억제는 피폭자들의 증언과 이에 고무된 세계 시민들의 행동으로 지켜졌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일본피단협)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역사적 공헌을 기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다시 핵무기 사용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특히, UN헌장을 짓밟는 무력행사나 대폭적인 군비 확대를 추진하는 나라들이 공공연하게 핵 무력 의존을 표명하는 문제는 중대하다.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속하는 러시아의 핵 위협,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핵 관련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미국 등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의 ‘핵 억제력’ 강화와 핵무기 현대화, 핵 충돌 위험을 안고 있는 인도-파키스탄의 대립,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긴장과 핵 군비 확대 등 심각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핵무기는 안전보장에 불가결하다는 주장이 핵무기 보유 충동을 유발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핵 사용을 막고 핵무기 철폐로 전진하는 데 핵 억지론의 극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핵 억지는 핵 공격에 의한 파멸적 결말,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재현을 전제로 한 정책으로 인도적, 도의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동시에 핵 억지 정책의 실패나 오작동은 국경을 초월한 파멸적 결말을 가져온다. 실제로 오산과 오인 등으로 인해 핵을 사용하기 직전에 이르는 사태가 반복되어 왔다. 핵 억지로 안전을 보장받을 나라는 없다. 이 비인도적이고 위험천만한 정책의 포기를 핵보유국과 그 동맹국에 강력히 촉구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위기를 극복하고 전진할 확실한 전망이 있다. 힘에 의한 자국의 이익 추구가 아니라 UN헌장에 기초한 질서의 재건이야말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실현하는 길이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목표로 하는 계획은, 그 중요한 일환이다.
핵무기를 불법화하고 그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핵무기금지조약은 73개국이 비준하고 94개국이 서명한 국제적 규범이다. 이 조약을 만든, 피폭자를 선두로 하는 시민사회와 각국 정부의 공동행동이야말로 세계의 주류다. “UN헌장의 목적 및 원칙의 실현에 공헌할 것을 결의”(핵무기금지조약 전문)하며 만들어진 이 조약은, 이제 “격동의 시대에서 희망의 빛”(3차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 정치선언)이 되었다. 핵무기금지조약 지지 여론을 확산시켜 참가국을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다.
잇단 전쟁이나 무력행사 등 힘에 의한 국익 추구를 허용해선 안 된다. UN헌장과 국제법에 근거한 평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다수 국가의 목소리가 세계의 대세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집단학살의 한시라도 빠른 정지와 항구적인 휴전,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을 포함해 국제법과 UN결의에 근거한 팔레스타인 문제의 공정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요구한다. 중동 비핵·비대량살상무기지대 창설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UN헌장과 국제법에 따라 종결시켜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에서 비핵과 포섭의 해법이 권장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긴장과 대립을 일으키는 문제 또한, ASEAN 인도태평양구상(AOIP) 추진을 비롯해 대화와 포섭, 외교로 해결해야 한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구축은 협상에 의해 일체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막대한 군사비 증대를 막는 것은 평화와 삶을 지키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긴장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차별과 분단, 배외주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전쟁에서 피폭당한 유일한 나라인 동시에,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위에서 만들어진 평화원칙을 헌법에 명기하는 나라이다. 피폭·전후 80년을 맞아, 일본의 국제적 책무는 어느 때보다 크다. 우리는 일본 정부에 핵무기금지조약 참여와 피폭자에 대한 국가 보상을 요구하는 일본의 운동에 연대한다. 일본이 ‘확장 억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책정해 미군의 핵 사용을 논의하는 등, 미국의 핵전략에 깊이 가담하는 문제는 중대하다. 헌법에 근거한 평화외교를 요구하고, 군비확대와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반대하는 일본의 운동은 아시아의 평화에 중요하게 공헌한다. 오키나와를 비롯한 미군 기지의 축소, 철거를 요구하는 싸움에 연대를 표명한다.
우리는 핵전쟁 저지와 핵무기 철폐를 요구하는 장대한 행동을 전개하자고 세계에 촉구한다.
-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 체험과 실상을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것을 운동의 중심으로 삼아, 핵무기 철폐를 공통 과제로 하는 행동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하게 전개하자. 피폭자의 초빙도 포함해,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실상, 핵실험 피해의 실태를 널리 알리는 전략을 각국에서 추천하자. 이를 위해 각국 정부와 UN 조직에 지원을 호소한다. 모든 형태의 핵실험 정지를 요구하자. 피폭자와 핵실험 피해자에 대한 보상·지원을 실현하자.
- 핵무기금지조약 참가를 요구하는 여론과 운동을 각국에서 발전시키자. 특히 핵보유국과 그 핵우산에 의존하는 나라에서의 여론과 운동이 중요하다. 피폭자와 핵실험 피해자의 지원, 환경 수복을 위한 노력(핵무기금지조약 제6, 7조)에 참여하고 협력하자.
- 핵무기 철폐를 목표로 하는 각국 정부·UN과의 공동행동을 한층 더 발전시키자. 2026년에 열리는 NPT 평가회의에서 국제 공동행동을 할 것을 촉구한다. 이번 가을의 제80차 UN총회, 2026년의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를, 정부 조직과의 공동행동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삼자.
- UN헌장의 옹호를 내세워, 침략과 전쟁, 군비확대에 반대하고 평화와 군축을 요구하는 다양한 운동과 연대하여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를 지향하는 세계적인 흐름을 발전시키자. 고엽제 피해자 등 전쟁 피해자에 대한 보상·지원과 피해의 근절을 요구하자. 대립과 분단, 군비확대의 흐름을 전환시켜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해결에 자원을 돌리자. 젠더 평등을 평화와 핵군축에 불가결한 과제로 삼자. 또한 환경과 기후위기, 빈곤과 불평등, 차별과 외국인 혐오, 인권,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들과 연대와 협력을 발전시키자.
2025년 8월 4일 원수폭금지 2025년 세계대회 - 히로시마 국제회의 |
원수폭금지 2025년 세계대회 - 나가사키 결의 ‘나가사키의 호소’
“아이가 폭풍에 날려 벽에 달라붙은 채 타버려, 아이의 모습이 새까맣게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일본 정부는 전쟁의 피해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돕는 일을 하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 핵무기는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핵무기란 무엇인가를, 그 결과의 비인도성을, 핵무기가 정말 잔인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세계에 널리 알려, 핵무기를 사용하게 못하게 하고 없애나가는 운동으로 결집해 나갑시다.” <피폭 80년 나가사키의 괴로움>(2025년 8월 7일)에서 다나카 테루미 씨의 피폭 증언
피폭 80년의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 모인 우리는, 피폭자들의 마음의 외침을 상기하며, 여기 나가사키에서 호소합니다.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기 위해 새로운 결의로 행동에 나설 것을!
러시아의 핵 위협, 미국과 NATO 국가들의 ‘핵 억제력’ 강화와 핵무기 현대화, 동아시아에서의 핵 군비 확대 움직임 등 세계가 핵전쟁 위험에 직면한 지금, 핵무기 사용과 위협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핵무기는 ‘안전보장’에 필수적이라는 ‘핵 억지’론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에서 ‘희망의 빛’이 되고 있는 핵무기금지조약을 힘으로 삼아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로 가는 길을 개척해 나갑시다.
UN헌장에 근거한 국제질서를 재건하고 강화하여 분단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확장억제 가이드라인’을 책정하거나 핵 사용도 상정한 모의훈련을 반복하는 등, 미국의 핵전략에 가담하는 일본 정부를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으로 이어지는 배외주의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폭금지 2025년 세계대회 ‘국제회의 선언’을 지지하고 다음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합니다.
1)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일본피단협과 원수협, 원수금이 호소한 국민운동에 부응하고, 지금이야말로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 실상'을 널리 알려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고발해 나갑시다. 전국 각지에서 피폭 체험을 이야기하는 모임에 임해, 피폭자의 소원과 싸움의 역사를 이어서 알립시다. 원폭증 인정 제도의 근본적 개선과 원폭 피해에 대한 국가 보상을 실현합시다. 히로시마 ‘검은 비’의 피해자와 나가사키 ‘피폭 체험자’에 대한 전면 구제를 실현합시다. 세계 핵 피해자의 활동을 지원합시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피해자와 연대합시다.
2) 모든 나라의 정부에 핵무기금지조약 지지와 참여를 요청합시다. 피폭자와 핵실험 피해자에 대한 지원, 오염 지역의 환경 수복 등 조약에 따른 활동에 협력합시다. 2026년 NPT 평가회의에서 국제 공동행동을 성공시키고, 핵무기금지조약 재검토 회의를 위해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 풀뿌리 운동의 공동행동을 더욱 발전시킵시다.
3) 전쟁에서 피폭당한 유일한 나라인 일본의 정부가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비준하도록 강하게 요구해, 서명운동이나 지자체 의견서 등의 운동을 한층 강화합시다. 핵 밀약 파기, 비핵3원칙 법제화를 요구합시다. 비핵고베방식을 지켜나갑시다. ['비핵고베방식'은 1975년 3월 고베시 의회가 핵무기를 적재한 군함의 고베항 입항을 거부한 결의에 따라, 고베항 입항 시 핵무기를 싣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요구하는 정책을 뜻한다]
4)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즉각 중지시키고 항구적 휴전을 요구합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연대를 넓힙시다. ‘중동 비핵·비대량살상무기지대’ 창설을 실현합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UN헌장과 UN총회 결의에 따라 신속하게 종결합시다. 한반도, 남중국해, 대만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긴장은 외교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ASEAN 인도태평양 구상(AOIP)을 비롯 대화와 포섭을 통한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해, 비핵과 평화를 일체로 한 학습과 대화, 행동을 발전시킵시다.
5)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 대대적 군비 확대에 반대합시다. 전쟁법을 폐지합시다. ‘올(All) 오키나와’의 싸움에 연대해, 헤노코 신기지 건설의 중단, 후텐마 기지의 즉시 반환을 요구합시다. 규슈와 오키나와, 난세이 제도의 군사거점화에 반대합시다. 헌법 9조(평화헌법) 개헌을 저지합시다.
6) 핵발전소 제로, 기후위기 타개, 빈곤과 격차 극복, 군사비 절감과 생활·복지·교육 확충, 배외주의 반대,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 등 젠더평등, LGBT 권리 확대 촉구 운동 등 인간답게 살고 싶은 모든 사람과 손잡고 인간의 존엄과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장대한 공동행동을 만들어 나갑시다.
노 모어 히로시마. 노 모어 나가사키. 노 모어 히바쿠샤. 노 모어 워. 나가사키를 최후의 피폭지로!
2025년 8월 9일 원수폭금지 2025년 세계대회 - 나가사키 데이 집회 |
1) 현 정세에 대한 진단 합의
2025년 현재, 세계 각지에서 핵무기 사용 위협을 동반한 전쟁이 지속하는 데다 핵 군비경쟁이 재개돼, 냉전 종식 이후 전례 없이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인식은 앞의 두 문서뿐 아니라 대부분 참가자의 발표와 발언에서도 나타났다. 《사회운동포커스》에서 소개한 영국 CND의 발표처럼, 일부 참가자는 이러한 실태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히로시마 국제회의 발표: 캐롤라인 루카스 영국 CND 부의장 “이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핵무기를 보유한 두 나라,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남은 주요한 핵통제 조약은 2026년 2월이면 만료되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밖에 없습니다. 이 두 나라의 핵전력이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
2) 과제 합의
(1) UN헌장과 국제법, 다자간 협력에 기초한 국제질서의 복원
특히 세계대회 실행위원회는 1·2차 세계대전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거쳐 전후 국제질서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UN헌장과 핵무기 통제 체제가 현 정세에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선언에 “UN헌장에 기초한 질서의 재건이야말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명시하며, 이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주최 측 기조 발언: 노구치 쿠니카즈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실행위원회 운영위원회 공동대표 “전쟁과 갈등을 해결하고 핵전쟁을 예방할 유일한 길은 모든 국가 정부가 UN헌장과 국제 인도주의법에 근거하여, 전쟁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 무력 사용 위협과 사용의 금지, 핵무기의 금지와 철폐라는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뿐입니다.” |
필자는 8월 8일 워크숍 발표에서 UN헌장에 기초한 국제질서 복원을 일차적 과제로 제시했다. 현재 러시아, 미국, 이스라엘 등은 자국 행위를 ‘서방 제국주의 반대’나 ‘생존권’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며, 상대국의 행위를 알리바이로 삼아 세계 각국의 정치와 여론을 진영 논리에 포섭하고 분열시키고 있다.
그러나 UN헌장을 기준으로 보면, 핵무기 의존,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타국 영토·주권 침해, 민간인 납치·살해, 일방적 자국 우선주의 등은 모두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UN헌장 위반 행위로서 세계평화를 위협한다. 따라서 세계 시민은 진영의 유불리를 떠나 이러한 모든 행위에 철저히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핵무기금지조약을 필두로 한 세계 핵 통제 강화
세계대회 선언은 흔들리는 국제질서 속에서도, 특히 극도의 절멸성과 비인도성을 지닌 핵무기에 대한 통제를 복원하여 핵전쟁을 예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누차 언급되었듯, 핵무기금지조약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는 점이 희망으로 제시되었으며, 핵 대결 대신 핵 금지를 세계 각국의 주류 담론으로 확립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되었다. 일본 원수협의 야스이 마사카즈 사무국장은 핵무기금지조약이 국제조약을 넘어, 국제적 운동으로서 갖는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히로시마 국제회의 발표: 야스이 마사카즈 일본 원수협 사무국장 “올해 3월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는 이러한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핵무기금지조약은 외교를 촉진하고 다자주의를 강화하는 데 점점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핵무기금지조약은 이 험난한 시대의 등대다.’ 당사국회의는 핵무기금지조약이 이제 단순한 조약을 넘어선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 조약은 핵무기에 대한 확고한 거부이며, 집단적인 행동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피폭자가 이끄는 시민사회, 그리고 세계 각국 정부의 협력은 핵무기금지조약을 세계의 주류적인 담론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
한편, 각국이 오늘날 핵 군비 확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 ‘핵 억지론’에 맞설 필요성도 다시 강조되었다. 핵 억지론은 세계 반핵평화운동이 핵전쟁 발발을 막았다는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으로, 근본적으로 검증이나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스웨덴평화중재협회 토마스 마그누손은 핵 우산 개념을 비판하며 “우산은 비를 막는 것이지 핵무기를 막을 수 없다”라는 구호를 제시했고, 미국 평화군축공동안보캠페인 의장 조셉 거슨은 “핵 억지론에 맞서는 논리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당장 정치적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회진보연대는 제물을 바치면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과학적 믿음이 실제로 재해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이 되지 않듯, 핵 억지론 역시 검증이 불가능한 주장일 뿐임을 비유로 설명했으며, 이 내용은 《신문 아카하타》 8월 10일자에 실렸다.
(3) 반핵평화운동의 범위 확장 및 기후 정의, 젠더 평등 운동 등 주요 사회운동과 반핵평화운동의 연대
반핵평화운동이 다루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구체적 사례들도 세계대회에서 제기되었다. ‘핵무기 반대’는 세계 각지의 군비 확장과 갈등 고조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피폭자 연대’는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핵실험과 핵발전 사고 피해자와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히로시마 국제회의 세션 3에서는 핵무기 반대를 넘어 군사기지 반대 등 평화운동의 다양한 주제와, 에너지, 반빈곤, 인권운동 등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계를 다루는 발표들이 배치되었다. 특히 필자가 인상 깊게 본 발표는 베트남 대표단이 베트남전쟁 당시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다이옥신) 피해를 소개한 내용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화학무기의 끔찍함을 깊이 인식한 국가로서 NPT와 핵무기금지조약에 적극 참여하며 모든 핵무기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대회장에 비치한 자료들은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가 베트남 사람들과 환경에 끼친, 극도로 비인도적이며 대를 이어 지속되는 피해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반핵평화운동의 범위 확장은 일본 내에서는 공식 ‘피폭자’(히바쿠샤)로 인정되는 범위를 넓히고, 피폭 당사자뿐 아니라 건강 문제나 생활고를 물려받은 2세, 3세에 대한 연대와 지원으로 나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자세한 현황은 세계대회 참가기② 「2025년,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토론과 모색」에 담았다.) 앞 부분에서 소개했듯, 일본 반핵평화운동의 초기에도 수소폭탄 실험 피폭자에 대한 연대가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 운동의 조직화로 이어진 바 있다.
한편, 일본 활동가들의 발언에서는 일본 정부의 공식 담론과 달리, 일본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지 않는 시각이 드러났다. 이들은 과거 전쟁과 한반도·대만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반성하는 것을 전제로 한 역사 학습과 계승, 총체적 반전(反戰) 의식과 평화헌법(일본국 헌법 제9조) 수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후 정의, 젠더 평등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과 반핵평화운동을 결합할 필요성도 세계대회 선언문과 ‘나가사키의 호소’ 결론에 명시되었다. 주요 일정에서는 관련 내용이 많지 않았지만, 세계대회 부대행사로 열린 ‘히로시마 핵무기반대여성포럼’에서는 여성 풀뿌리 평화운동의 실천이 강조되었고, 일부 워크숍에서는 기후위기와 에너지를 주제로 한 발표도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올해 세계대회가 도출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이념적으로는 핵 억지론에 맞서 “모든 핵무기와 핵 사용 위협 반대”라는 원칙을 강화하고, 운동적으로는 핵무기금지조약을 중심으로 결집한 각국 반핵평화운동과 여타 사회운동 간 연대를 강화하며,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에 대한 연대를 핵실험, 핵발전, 생화학무기 등 여타 대량살상무기 피해자와 전쟁 피해자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4. 2025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논의 평가
1) 한계
현 정세에 대한 발표와 토론에서는 핵 군비경쟁과 핵 사용 위협이 높아졌다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으나, 그 원인과 구체적 실태를 정세적으로 분석하는 논의는 부족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일반 언론과 전문가들조차 ‘미중 전략적 경쟁’이라는 개념을 활용하며, 현 국제정세를 ‘신냉전’으로 볼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지만, 세계대회에서는 ‘국제질서의 위기’ 이상의 심층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진핑 시대 중국의 국가전략 변화와 급격한 핵무력 확대, 북러 군사협력 강화 등의 사안에도 불구하고, 주로 서구권 참가자들이 여전히 미국의 군사행동을 가장 중요한 정세적 요인으로 제기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한 정세 변화에 조응해서 움직이는 것인지,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일부 참가자의 발언은 미국이 20~21세기 내내 적국을 만들며 군사주의를 강화해왔다는 서사 속에서 “중국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강조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 연장선에서, ‘반미’라는 틀에 부합하는 중동 정세에 대해서는 서구 참가자들과 비교적 합의가 잘 이루어졌으나, 동유럽 정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 국제회의 폐막식에서 선언 초안을 검토할 때, 한 스웨덴 활동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것뿐 아니라 미국과 NATO의 러시아 포위 정책도 지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세계대회 실행위원회 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종결’이라는 원안을 고수했다.
반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이 UN 헌장 및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표현을 넘어, 1967년 UN 안보리 결의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자결권 관련 결의를 위반했다는 문구를 추가하자는 제안이 선언 최종안에 반영되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불가분의 과정’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었다.
북러 군사협력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정세는 일본 참가자들과 필자를 포함한 한국 참가자들만이 자세히 다루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에 집중하다 보니, 최근 몇 년간 가장 빠르게 핵탄두 수를 늘린 중국의 핵 전략은 세계대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이를 타 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 부족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구 활동가들이 진영론에 따른 ‘역(逆)이중기준’을 보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계 문제의 원인을 서방, 특히 미국의 잘못으로만 보고, 북중러의 군사적·정치적 위협이나 소위 ‘대항폭력’으로서 테러리즘의 위험은 과소평가하는 태도다.
이러한 ‘역이중기준’은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의 좌파 활동가들은, 일부 서구 사회운동이 반서방 진영론에 빠져 러시아와 이란의 시리아 내전 개입을 무시하거나 지지하고, 러시아의 권위주의와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지 않는 행태가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타라스 빌로우스, “자결권과 우크라이나 전쟁”, 《사회운동포커스》, 2022년 5월 20일)
필자는 여기에 더해, 이러한 태도로 과연 핵무기에 맞선 대중운동을 재건하고, 특히 청년층을 조직할 수 있을지 우려한다. 정세에 적합한 분석과 대응은 반핵평화운동을 넘어, 좌파 운동 전체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좌우하는 문제다. 9월 2일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선 북중러 정상의 모습은 세계 권위주의 정권들의 연대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 20세기 미국 주류 외교정책과는 크게 다른 트럼프주의의 부상이 겹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거나 “모든 것이 미국 탓”이라는 주장에 머문 채로 청년과 시민을 조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은 세계대회 중 이러한 평가와 대안에 관해 발언하기도 했다.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⑥: 인류의 마지막 피폭지, 나가사키에서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은 동북아시아의 구체적 현실에 기초한 평화운동, 청년들을 포함한 다수 시민을 조직할 수 있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발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러군사협력, 한국에 대한 실제 사용을 염두에 둔 북한의 전술핵무기 개발은 한국 사회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로 인해 평화운동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은 비관적인 반면 ‘핵 억지력’에 대한 요구는 커지는 현실을 소개했다. 이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평화운동이 변화한 현실을 잘 모르는 세력이나 반미국가는 비판하지 않는 세력으로 보이지 않게 기민하게 분석과 입장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평화 연대 방안을 제시하여 평화를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하며, 그런 매개를 찾기 위해 이번 세계대회에 왔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전제가 되는 것은 북한 핵무기를 포함한 일체의 핵무기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해야만 북핵에 대한 공포로 인해 한국의 ‘핵 억지력’ 확보로 쏠리는 여론을 바꿔낼 수 있다고 발언했다.” |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패권주의, 권위주의, 군사주의를 명확히 비판하고, 이에 구별되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과 반핵평화운동의 미래를 밝히는 길이라는 시각은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주최 측도 공유한다.
예를 들어,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 진행된 일본공산당 강령 개정 과정을 보자. 일본공산당은 중국공산당의 핵무기금지조약 거부,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의 패권주의적 행동, 홍콩과 위구르에서의 인권 탄압 등을 근거로, 이전 강령에서 중국에 대해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탐구가 개시되었다”고 평가한 부분을 삭제했고, “미국 패권주의 반대”라는 구절을 “어떠한 나라의 패권주의에도 반대”로 수정했다.
이에 관해 시이 가즈오 당시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중국의 대국주의·패권주의적 행동으로 인한 사회주의의 부정적 이미지가 일본공산당의 전진에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에 대응해, 개정안이 오해와 편견을 풀고 일본공산당의 매력을 넓혀 가는데 큰 힘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중국의 대국주의·패권주의, 인권 침해에 대해 사실과 도리에 입각한 정면 비판이 세계에서도 약한 가운데, 일본공산당이 지금 중국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세계 평화와 진보로 나아가는 데 대의가 있는 대응이다.”(“지금의 싸움이 미래 사회를 준비한다”, 《신문 아카하타》, 2019년 11월 6일.)
2) 의의
상기했듯, 이념적으로는 “모든 핵무기 반대”라는 축, 운동적으로는 ‘핵무기금지조약’이라는 축을 2025년 하반기와 2026년 정세 대응의 지침으로 합의한 것은 이번 세계대회의 중대한 성과다. 일본과 국제 반핵평화운동 단체는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2026년 4~5월 NPT 평가회의와 11~12월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이미 시작했으며, 한국 사회운동이 어떻게 동참할 것인지가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명확한 합의점은 ‘역(逆)이중기준’이 국제 반핵평화운동 내 진영론적 분열로 이어지는 것을 제어하는 효과를 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핵무기는 절대로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하면, 핵 사용 위협을 일삼고 세계 핵무기의 절반가량을 보유한 러시아나, NPT 탈퇴 후 핵무장에 나선 북한을 ‘정당한 생존권 투쟁’이나 ‘다극화 주도 세력’으로 추켜세우는 주장은 암묵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세계대회에서 그러한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현상 변경을 꾀하는 무력 사용을 금지한 “UN헌장에 기초한 질서의 재건”을 해답으로 부각한 것도 같은 효과를 냈다.
결국, 세계대회에서 국제정세에 대한 구체적 토론이 제한됐던 것은 국제 반핵평화운동 내 시각차와 이견을 반영해 차이를 부각하기보다는 합의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한일연대라는 측면에서도 올해 세계대회의 의의는 컸다. 한반도 해방 80주년이기도 한 올해, 한국 참가단이 51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으며, 사회진보연대도 역대 최대 인원이 참가했다. 일본 원수협은 한국 활동가들의 세계대회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지난해와 올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일연대는 이웃 국가 간 역사적·종교적 갈등이 심화되는 세계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필자는 8월 9일 워크숍 발표 마지막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한일연대 사례와 함께, 재한 러시아 반전 활동가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활동가는 한일연대를 보며 언젠가 러시아 시민도 침략을 반성하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이를 통해 필자는 역사적 원한과 대립을 치유하고, 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를 지향하는 시민 주도의 관계 형성을 한일 시민이 세계에 보여주자고 촉구했다.

한국 참가자들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하며 따뜻하게 환대해 준 미조우라 부부의 집에서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나가사키 피폭자이자 나가사키원폭피재자협의회 이사 미조우라 마사루 씨, 세 번째가 부인인 미조우라 리츠코 씨.
세계대회의 후속 사업으로 9월 한국에서 열린 행사들은 한일 반핵평화운동의 연대를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9월 10일에는 민주노총 주최로 ‘한국-일본 피폭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다나카 시게미츠 일본 피단협 대표위원, 이기열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전 부회장,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피폭 경험을 증언했다. 이어 9월 11일에는 일본 원수협이 주최하고,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한 한국 13개 정당·사회운동단체가 후원한 ‘한·일 반핵평화운동 교류회’가 개최됐다. (자세한 내용은 《사회운동포커스》의 「원폭 투하 80년, 한·일 피폭자와 연대하는 한·일 사회운동」과 「한·일 반핵평화운동의 연대와 모색」을 보라.)
한국 사회에서는 그동안 원폭 투하가 한반도 해방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고, 북한 핵무장에 맞서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반핵평화운동을 향한 관심을 압도해 왔다. 이번 세계대회 참가 경험이 일본 반핵평화운동과 연대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한국 내 반핵평화운동을 활성화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