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6 봄. 194호

공화국을 포위한 『두 유령』과 트럼프 2기 행정부 1년 평가

딥 스테이트 음모론과 단일행정부론으로 무장한 인민주의

박동열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후원회원

 

1. 왕이 아니라는 대통령

 

대통령은 왕을 꿈꾸는가? 2025년 10월 18일, 그렇다고 생각한 미국인들이 ‘왕은 없다’(No Kings)라고 외쳤다. 6월 14일에 이은 두 번째 전국 노킹스 시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하며 자신은 절대 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그저 “우리나라를 위대하게 만들려고 용을 쓸 뿐”(I work my ass off)이라며 말이다. 그는 시위대가 미국인을 전혀 대표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자들이며, 조지 소로스 등 ‘극좌파’에게 사주 받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부터 ‘내가 미국인의 진정한 대표’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인민주의자인 트럼프가 생각하는 ‘진짜 미국인’은 미국 국민 전체가 아니다. 자신을 선출한 유권자, 그래서 자신이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만이 트럼프가 생각하는 진짜 미국인이다.

 

트럼프 같은 인민주의 정치가들은 자신이 통치할 때 어떤 일을 하든 민주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진짜 미국인들에게 ‘이미’ 선출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거 결과가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기에, 트럼프는 임기 중 지지율이 하락하고 반대 여론이 들끓는 데 분노했다. 그는 정부에서 지켜야할 규범이나 절차, 자신에게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진짜 국민의 뜻과 무관한 ‘딥 스테이트’(deep state) 음모로 치부했다.

 

또한 권력을 쥔 인민주의자는 의회 입법이 진짜 국민의 목소리를 관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 같은 행정 수단을 선호한다.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들은 전체 국민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반인 자신만이 전체 국민의 뜻을 왜곡 없이, 즉시 실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간단히 말해, 트럼프는 대표제 민주주의의 제도와 원리를 재해석한다. 그는 전체 국민이 아니라 ‘진짜 국민’을 대표하며,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고 소명해야 할 책임을 선거 결과에 기대어 거부하며, 행정 수단을 통한 직접적인 통치를 추구한다. 다만 트럼프가 내놓은 해석이 미국식 대통령제 민주정이 20세기에 걸어온 길에서 멀리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대통령직이 트럼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미 일어난 변화를 과장하거나 극단적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흔히 쓰는 표현으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자유주의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 2세가 1973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쓴 책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cy)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슐레진저는 한국전쟁에서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전쟁을 시작한 일이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하는 계기였다고 지적하며, 베트남 전쟁의 수행 과정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는 슐레진저가 열렬한 케네디 지지자여서 공화당 대통령인 닉슨에 편향되게 책을 썼다고 평가하지만, 닉슨 대통령이 의회나 행정부 관료들과 갈등할 때 보여준 권위적이고 ‘제왕적인’ 모습들은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되었다. 이에 ‘제왕적 대통령’은 대통령의 비대한 권한이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로 이제까지 쓰이게 된다.

 

제왕적 대통령보다 좀 더 학술적인 표현은 ‘현대 대통령’(modern presidency)이다. 보통은 2차 세계전쟁 이후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만 언제부터 현대 대통령이 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 대통령이 지닌 특징은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지만,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첫째, 현대 대통령은 단순히 법을 집행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현대 대통령은 최고 집행관(chief executive, 행정수반)으로 남지 않고 스스로 정치적인 의제를 가지고 국민을 동원하려 한다. 둘째, 현대 대통령은 개성이 뚜렷하고 개인의 인기를 활용해 통치를 수행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미국 헌정 질서가 이런 현대 대통령과 자주 충돌한다는 점이다. 충돌이 계속되면서 트럼프 같은 아웃사이더가 인민주의적 조치를 관철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

 

현대 대통령은 미국에서 산업화가 진행되고 법인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함께 발달했다. 정확히 말하면, 법인 자본주의가 성립하며 대통령을 포함하는 미국 헌정이 변화한 결과 현대 대통령이 등장했다. (미국은 성문헌법을 한 번도 개정하지 않고, 수정 조항을 덧붙이는 보수적인 방식으로 헌정을 변화시켰다고 알려졌지만, 다양한 정치적 타협을 거쳐 삼부의 관계를 조율하는 제도나 비공식적 규범을 변화시키며 사회변동에 적응해 왔다.) 지면상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현대 대통령은 대체로 세 가지 기능을 지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서 민족경제를 통합하는 전국 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전국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부통령을 제외하고) 유일한 공직자’인 대통령의 위상이 상승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유권자 집단과 직접 관계 맺고 정책 의제를 입법에 관철하는 정규적인 경로를 형성했다.

 

둘째, 대통령은 법인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법인 자유주의를 추진하는 강력한 개혁가였고, 법인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후에도 국민에 호소하며 개혁을 추구하는 역할을 유지했다. 19세기에는 공화당이 미국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지배집단이었다면, 20세기 초 진보주의 세력이 의회와 정당 정치를 불신하면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었기에 대통령이 상당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셋째, 미국은 법인 자본주의가 부상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겪었다. 국가에 축적된 막대한 행정 역량을 통제하는 관리자 역할이 여러 정치적 갈등을 거쳐 결국 대통령에게 부여됐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관과 독립 이사회 영역이 매우 거대하지만, 대통령은 행정 영역을 장악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가 되면서 현대 대통령은 완전히 정착할 수 있었다. 미국의 국제적 지위는 국가 원수로서 대통령의 지위도 공고하게 만들었다.

 

현대 대통령의 결함은 미국 헤게모니가 동요하는 1970년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전쟁 등 대내외적 환경이 변화하며 대통령 권력이 문제시되었다. 의회는 대통령의 군사적 권한과 예산에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일련의 개혁을 수행했다. 이렇게 대통령을 약화하려는 의회 개혁에 반작용하여 강한 행정권을 옹호하는 법학 조류가 부상했다. 이 조류는 ‘단일 행정부’(unitary executive)라는 이름 아래 집결했다.

 

단일 행정부 이론은 삼권 분립 원칙을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대통령이 행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차, 규범, 법률이 대통령 권한에 앞설 수 없다는 주장은 많은 대통령을 유혹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단일 행정부 이론을 회계사가 알려준 ‘절세 요령’처럼 받아들였다. 즉, 자세히는 몰라도 기꺼이 수용했다.

 

단일 행정부주의자 트럼프와 이른바 ‘딥 스테이트’의 대결은 현대 대통령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이 글은 둘의 대결을 주제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보낸 첫 1년을 분석한다. 2025년, 미국 국가와 정치는 미국 헌정에 새로운 모습을 부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스코로넥, 디어본, 킹이 『두 유령』에서 제시한 관점을 차용하여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분석한다.

 

[그림] 『두 유령』

스티븐 스코로넥, 존 디어본, 데스먼드 킹. 『두 유령: 딥 스테이트와 단일 행정부에 포위된 공화국』, 박동열 옮김, 이매진, 2025

 

『두 유령』은 단일 행정부와 ‘국가 심층’의 대결을 주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를 분석했다.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대결이 지속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제 민주정의 역사 속에서 이뤄진 제도 전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두 유령』에서 출발하여 지난 1년 간 이 대결이 심화됐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더 노골적으로 권력 분립 원칙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왕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아직 아니다’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본론 첫 부분(2장)에서는 『두 유령』의 논지를 소개한다. 미국 대통령제 민주정의 역사를 ‘정치적 동원’과 ‘정부 관리’라는 대통령의 두 과업을 중심으로 재구성해보면, 미국 국가는 협치를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정부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대통령이 두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뒷받침했다. 저자들은 이런 정부 조직 원리에 ‘공화주의 원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원칙에 따라 형성된 복잡한 국가 구조가 ‘심층’(depth)이다. 딥 스테이트란 심층을 형성하여 깊어진 국가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현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심층을 형성한 미국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치하는 문제에 닿아 있다.

 

다음으로 트럼프 2기가 보낸 1년에 주목한다(3장). 분석 기간은 짧지만, 이 시기에 1기에서 중단되었던 여러 계획이 재개되고 심화되었다. 첫째, 2기 행정부는 법적 지위가 모호한 정부효율부(DOGE)를 급조하여 초법적인 정부 시스템 접근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정부효율부를 활용하여 공무원을 대폭 감원하고 예산을 불법으로 동결했다. 둘째,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던 국가기구를 더 강하게 공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향한 개입이다. 셋째, 이 과정에서 의회는 입법권을 수호하지 않았다. 정당은 행정부를 장악할 때 얻을 당파적 이익을 더욱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넷째, 2기 행정부는 법원이 사법권을 과잉되게 행사하여 행정권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행정부는 이제 법원에 소송을 걸어 전국적 금지명령을 무효화하는 데 이르렀다. 이미 분열된 사법부는 견제 기능을 더 잃었다.

 

결론에서는 본론을 간단히 요약한 후, 재개된 단일 행정부와 딥 스테이트의 대결 구도가 비상계엄 이후 한국 대통령제 민주정에 시사하는 바를 토론한다.

 

 

2. 『두 유령』의 관점

 

 

1) 상충하는 두 관점: 단일 행정부와 공화주의

현대 국가는 폭넓은 행정 영역을 발달시켜서 다양한 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이 행정 영역은 원칙적으로는 법에 규정된 정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데 기여하는 중립적인 국가기구여야겠지만, 실제로는 관할이 어디냐에 따라 대통령이나 의회 의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행정 수단 역할을 할 때도 많다.

 

『두 유령』은 행정 영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단일 행정부 관점과 공화주의 관점이다. 단일 행정부 관점은 삼권 분립 원칙을 강조하며 행정부 전체를 대통령이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화주의 관점은 삼권 분립 원칙을 보완할 수 있는 협치를 강조한다. 미국 정부는 두 원리가 경합하며 형성되고 변화했다.

 

단일 행정부 관점과 공화주의 관점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단일 행정부 관점은 행정 영역에 위계가 중요하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고 전제한다. 또한 행정권은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보유해야 하며 대통령이 직접 행사해야 한다. 대통령 정당성의 원천은 국민투표에 있다. 단일 행정부 통치 원리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 해석이 헌법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이라 주장하고 다른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국가 심층은 이런 원칙을 거부하는 골칫거리다. 하지만 단일 행정부 관점은 대통령이 자의적인 명령을 강요할 때 이를 거부할 근거를 제공하기 어렵다.

 

 

단일행정부

공화주의

행정영역의 설계

위계 중심

상호 독립, 보호

행정권

개인적 권력

협력적 권력

권한

직접 행사

매개를 통해 행사

헌법에 보이는 태도

형식주의적

실용주의적

정당성의 원천

국민투표를 통한 정당성

자문을 통한 정당성

심층을 바라보는 관점

방해물

자산

주된 골칫거리

자의적 명령 강요

관료들의 전복 행위

 

[표] 경쟁하는 두 행정 체계 (『두 유령』, 109쪽)

 

반대로 공화주의 관점은 행정 영역을 이루는 각 요소가 독립성을 지키면서 교류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또한 행정권을 행사할 때는 협력이 필요하며, 권한을 행사할 때는 다양한 기관이 매개해야 한다. 정당성은 국민투표뿐만 아니라 무결성과 전문성에서도 나올 수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헌법이란 좋은 통치를 위한 수단이며, 국가 심층은 정부에 축적된 자산이다. 그러나 삼부 간 원활한 소통과 협치, 의견 조율을 목적으로 만든 국가 심층은 그 자체로 민주적 통치자를 무시하는 일종의 전복 행위를 일으킬 수 있다. 이익집단이 관료를 포획하거나 관료 자신이 이익집단이 되는 문제는 이 원리의 취약점이다.

 

두 관점은 미국 통치의 역사 내내 경합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안정된 미국 헌정에 던져진 불운이 아니다. 트럼프주의는 미국 국가와 헌정이 발전하며 자라난 문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두 유령』, 4장).

 

2) 제도 배치의 변동: 미국 헌정의 적응성과 국가 심층의 형성

미국인들은 행정 영역이 단일 행정부 원리에 따라 대통령의 강한 통제 하에 놓여야 하는지, 아니면 공화주의 원리에 따라 협치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지 계속 논쟁했다. 이런 논쟁이 지속되면서 미국 정부의 모습도 계속 변화했다. 미국 헌정은 안정적이라고 알려졌지만, 헌법 제정자들이 의도한 통치 원리를 유지하려면 헌법 텍스트 바깥에 놓인 제도들의 관계를 지속시켜야 했다.

 

대통령이 바로 미국 헌정이 유연하게 변했다는 대표적인 증거다. 미국 헌법 2조는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대통령이 정파 갈등에서 초연해야 하고, 동시에 대중에게서도 한 발짝 떨어져야 한다는 의도를 담았다. 하지만 미국 정치에서 그런 대통령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는 늘 정당 간 갈등을 불러왔고, 정당은 대통령 선거를 구심점으로 통합성을 유지했다. 미국 국민은 언제나 대통령 선거에 막대한 관심을 쏟았다. 대통령은 정치에서 분리되지 못했다. 대통령은 국민을 동원하고 국가를 관리하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대통령이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현실 속에서, 대통령이 지지자 동원과 정부 관리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통치 모델이 고안되었다. 19세기에는 대중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놓였다. 3대 대통령 제퍼슨과 그 지지자들은 의원 총회(‘코커스’)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고 지역 유권자를 동원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 이후 전당대회가 관례화되면서 정당의 지위는 더 강화되었다. 남북전쟁을 거친 후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전국적인 지역 정당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지역에 있는 정당 영수가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을 지배했다. 대통령은 정당의 충성 지지자들에게 관직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제도는 엽관제(spoil system)로 알려졌다. 이 시기에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종속시켰다(『두 유령』, 84-89쪽).

 

20세기 초에는 정치 개혁이 일어나 새로운 통치 모델이 생겨났다. 엽관제 때문에 정치가 부패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행정을 정치와 분리하자는 운동이 커졌다. 이 시기에는 연방 정치에서 대통령의 위상이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일방적인 권력 행사 수단이나 권위를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확장된 행정 영역을 조율하는 관리자 역할이 중요했다. 국정에서 정치적 중립, 행정 역량, 전문성을 바탕에 둔 부처 간 조율이 중요했기 때문에, 대통령은 통제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기 힘들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립 행정 기구를 모두 행정부 산하 부서로 전환하려고 시도했지만, 이 새로운 통치 모형 하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두 유령』, 89-93쪽).

 

20세기 초 모델은 국가 행정의 중요성이 계속해서 커진 뉴딜과 2차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유지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행정 영역이 더욱 확장하면서 방향 전환이 시작됐다. 미국 민주당이 추진한 ‘사회 혁명’ 노선, 즉 ‘빈곤과의 전쟁’이나 시민권 확대 시도가 행정 영역을 더욱 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두 유령』, 93-94쪽)

 

전국 정책을 결정하는 연방 정치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지역에서 가능했던 세밀한 타협이나 조율이 점차 힘들어졌다. 이렇게 당파 갈등이 심해지면서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행정 수단이 편리한 방편으로 부각됐다(『두 유령』, 94쪽).

 

정치가 전국화되면서 당내 경선 절차와 선거운동 방식도 변화했다. 전국 유권자들에게 정당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개혁가들은 선명한 정책과 강령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예비선거(경선) 방식을 변화시켰다. 1970년대 초에는 대통령 후보를 중심에 두는 지지조직이 예비선거에서 활약했고, 정당의 매개 기능은 약화됐다. 개인 지지조직이 큰 활약을 보여주며 대통령이 이익집단에 포획되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닉슨 대통령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첫 대통령이었다(『두 유령』, 94-6쪽).

 

따라서 닉슨 시기에 단일 행정부 이론이 등장한 일은 우연이 아니다. 단일 행정부 이론은 독립된 행정 영역이 몸집을 키우면서, 행정 영역을 장악하는 일이 통치에 있어 큰 이점을 부여했기 때문에 등장했다. 대통령은 정치에서 단절된 행정 영역에 민주적 정당성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단일 행정부를 옹호했다.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행정 영역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3) 미국 국가 심층에 대한 단일 행정부의 공격

단일 행정부 이론은 헌법에 있는 ‘권한 부여 조항’(vesting clause)을 강조한다. 권한 부여 조항은 미국 헌법 1조, 2조, 3조의 첫 문장을 의미하는데, 각각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의회, 대통령, 법원에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헌법 2조 1항은 ‘행정권은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속한다’라고 규정하는데, 단일 행정부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행정부가 지닌 모든 권한을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통제해야 하며, 그런 행정부가 ‘단일한’(unitary) 행정부라고 본다. 단일 행정부 이론은 정당과 상관없이 모든 대통령에게 매력적이었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며 단일 행정부 이론에 혁신을 일으켰다. 그는 국가 심층을 형성하는 제도 배치를 딥 스테이트로 비난하면서 이론의 정당성을 강화시켰다. 딥 스테이트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만이 민주적 정당성을 지니며, 따라서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국민의 적’이라는 논리를 집약하는 용어였다.

 

『두 유령』은 이 명칭에도 부분적인 진실이 있다고 지적한다. 20세기 초 통치 문제를 해결하려 고안된 여러 제도가 국가를 ‘깊게’ 만들었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딥 스테이트’라는 명칭은 일군의 관료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저항한다는 음모론을 포함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딥 스테이트 대신 ‘심층’ 개념을 제안한다.

 

심층은 독립성, 절차, 기관의 규율, 관료들의 유대, 행정부와 의회의 연결, 의회의 감독 권한 등,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방지하는 다양한 장치가 국가를 깊게 만든다는 점을 포착한다. 미국 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책임을 여러 부서에 분산시켜야 하고, 부처 간 횡적 교류망도 형성해야 한다. 현대 민주정 국가는 다수의 지배를 보장하는 공정한 투표 체계를 구비하는 동시에 폭정을 제한하는 다층적인 구조를 만드는 제도복합체다. 20세기 미국 국가는 행정 영역을 더 깊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현대 국가를 이루는 심층을 겨냥했다(『두 유령』, 1장).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구체화된 두 ‘유령’의 대결은 다음의 논리를 따른다. 첫째, 딥 스테이트 유령은 삼부 간 협치를 가능케 하는 심층인 동시에 스스로 기득권이기도 하다. 이 유령은 행정 영역의 독립성, 무결성, 책임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국가 심층이 매우 두터워지며 이들이 실제로 공화주의 통치 원리를 따르는지, 국민에 잘 봉사하는지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둘째, 단일 행정부 유령은 전체 국민의 대표로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조했지만 트럼프주의 정치와 연결되며 ‘진짜 국민’만 대표하겠다는 인민주의 지도자가 내거는 구호가 되었다. 트럼프는 두 유령을 대결시킴으로써 적과 아군 사이 전선을 분명히 그렸다.

 

『두 유령』의 2부는 참모, 규범, 지식, 임명, 감독이라는 다섯 범주로 나눠 국가 심층을 분석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부딪친 저항은 이런 심층에서 나왔다. 심층의 의의를 부정한 1기 행정부는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갈등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대결은 대체로 단일 행정부의 승리로 끝났다. 딥 스테이트의 저항은 빠르게 진압되곤 했다.

 

첫째, 참모는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심층이다. 이들은 개인 측근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지원받는 직원으로, 1939년 행정부재조직법을 통해 설립된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참모는 대통령을 보좌하여 집무실(Oval Office)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업무 흐름을 관리하며, 정보를 수합하고 정돈해서 대통령의 의사소통을 돕는다. 이들은 대통령의 측근이자 비서이며, 대체로 여당 소속이라 여당 내 계파를 보여준다(『두 유령』, 5장).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 탈퇴, 한미자유무역협정 파기를 막은 참모들은 공화당 기성세력에 속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자유무역의 가치를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지만 서류를 전달하지 않거나 숨기는 등 고의적인 방해 행위까지 감행하며 대통령을 막아섰다. 반면 피터 나바로 같은 충성파는 대통령의 직관이 옳다고 주장하며 그의 의향을 충실하게 시행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두 유령』, 5장).

 

둘째, 행정부 부처는 대통령의 지시 말고도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법 집행, 수사 기관은 전문성, 중립성, 독립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야 할 의무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법무장관은 대통령 측근이 많았다.) 규범의 심층은 정부 기관의 신뢰성을 지키는 중요한 장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이전까지 두 의무는 모호한 관계를 맺었다(『두 유령』, 6장).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이런 모호성이 점차 문제가 됐다. 러시아가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본인이 수사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방수사국과 뮬러 특검은 강한 압력에 부딪쳤다. 트럼프는 자신이 ‘마녀사냥’의 희생자라 주장했고, 법무장관은 특검 보고서의 내용을 왜곡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은 수사과정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두 유령』, 6장).

 

셋째, 지식은 강력한 권위의 원천이었다. 20세기 이후 정부와 과학이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식이 되었다. 최선의 지식을 활용해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는 기대는 공무원 임용기준, 기술 인력 보호 제도에 반영됐다. 일례로 1946년 행정절차법은 과학적 기준에 따라야만 규제를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지식은 정치적 압력을 막는 심층이다(『두 유령』, 7장).

 

하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지식보다 권위를 중시했다. 대통령이 기상 예보를 착각해 잘못된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올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백악관은 착각을 정정한 기상청 직원들이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했다며 이 직원들을 징계하려 했다. 또한 민감한 보건 데이터를 이용하는 규제를 철폐하려고 시도하며 모든 연구 데이터를 투명하게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에 반대하는 농무부 산하 기관들은 내륙 깊이 이전시켜서 정책 네트워크를 붕괴시켰다. 살충제를 폐에 주입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거하자는 트럼프의 제안은 지식 기반 권위를 무시하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였다(『두 유령』, 7장).

 

넷째, 대통령은 임면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다. 일반 공무원은 법에 따라 신분 보호를 받고, 중요한 직위에는 상원 동의가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직위에 걸맞은 자질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은 행정 인사 통제권을 획득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자격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 지시에 잘 응답하면서도 역량 있는 인재를 찾아야 성공한 인사였다(『두 유령』, 8장).

 

하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는 관료의 응답성에 절대적인 가치를 뒀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행정부 부서와 산하 기관에 완전한 임면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례적으로 명성 높은 전문가를 임명하던 국가안보비서관 자리는 여러 차례 교체되어 결국 전문성을 의심받는 인사가 차지했다. 국가정보장, 국토안보부 및 소비자금융보호국 기관장직은 상원 인준 절차를 피하려 직무 대행을 활용했다. 행정 기관 관련 청문회를 주재하는 행정법 판사의 임면권도 쟁점이었다. 다만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대통령의 압력이 닿지 못하는 최후의 변경으로 남았다(『두 유령』, 8장).

 

다섯째, 미국에서 의회는 행정부를 감독할 광범위한 제도를 발전시켰다. 의회는 이른바 ‘화재 경보’ 방식을 채택했다. 일상적인 감시보다는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 의회에 문제 상황을 상세히 보고할 수 있는 소통 장치를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내부 고발자 보호제도와 감찰관 제도가 신설된 후 계속 보완되었다(『두 유령』, 9장).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압박해 자신의 정적인 바이든을 공격하려 했을 때, 내부 고발이 비공식 경로로 의회에 전달됐다. 탄핵 조사 과정에서는 행정부 하위 공무원들이 의회 증언에 대거 출석했다. 트럼프는 탄핵 조사를 ‘쿠데타’라고 부르며 공무원에게 의회에 협력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트럼프 세력이 볼 때 의회에 협력하는 공무원은 딥 스테이트 소속 요원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했기에 탄핵은 불가능했다. 대통령은 탄핵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 문제를 공격하고 증인에 대한 보복을 실행했다(『두 유령』, 9장).

 

이처럼 트럼프가 단일 행정부 이론에 일으킨 혁신은 입법권과 사법권의 범위를 재조정하려는 시도를 포함했다. 딥 스테이트는 매우 모호한 범주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헌법 원문 그대로의 해석을 강조하는 단일 행정부 논자 중에는 트럼프를 ‘별종’이라고 부르면서 단일 행정부 이론에서 이탈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행정권은 입법권, 사법권과 관계를 맺는 헌정적 권한이므로, 행정권에 대한 특정 해석으로서 단일 행정부 이론은 입법권과 사법권에 대한 견해까지 포함했다고 봐야 한다. 또한 행정권의 확장은 20세기 미국 헌정이 보인 전반적인 경향이다. (단일 행정부 이론이 헌법 원문을 강조하는 게 20세기의 경향에 맞서 건국 초기 헌정으로 회귀하자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경향을 급속도로 진전시킬 동력과 명분을 인민주의를 통해 확보했을 뿐이다.

 

 

3.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두 유령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국가가 복잡한 구조를 발달시키는 과정은 미국 대통령제 민주정의 궤적과 평행했다. 하지만 두 경로는 1970년대 이후 분기했다. 결국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대통령이 나서 국민의 이름으로 심층을 공격하는 데 이르렀다. 이 구도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됐다. 바이든은 국가 심층과 화해하면서도 행정권을 일방적으로 활용해 트럼프의 유산을 지워야 한다는 딜레마에 발목 잡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취소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남발해야 했고, 지지층으로부터는 더 직접적인 ‘적폐 청산’을 요구받았다(『두 유령』, 302-315쪽).

 

저자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세 가지 쟁점을 제기했다. ‘불량 관료’를 임의로 해고할 수 있는 ‘스케줄 F’의 부활, 독립위원회와 독립기관을 종속시키려는 지속적인 시도, 의회가 지닌 세출 권한에 대한 도전, 즉 연방 지출에 대한 통제권 확보였다. 2025년을 평가해보면, 이런 우려 섞인 전망은 실현되었다고 보인다. 게다가 2기 행정부는 단일 행정부를 진전시키고 입법권을 침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법권에 공공연하게 도전했다. 1기 행정부에서도 극단적인 정당 갈등과 대법원 보수화가 문제였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와 함께 시작한 2기 행정부는 짧은 기간에 사태를 더욱 진전시켰다. 3장에서는 대표 사례를 선별해 쟁점을 정리한다.

 

첫째, 2기 행정부는 단일 행정부 경향을 강화했다. 급조된 정부효율부는 연방 정부 시스템에 초법적으로 접근했다. 또한 대통령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행정 영역을 무력화하고자 연방 정부 공무원을 대량으로 감원했다.

 

둘째, 독립기관과 독립위원회에 대한 공격도 심화됐다. 연방준비은행은 가장 핵심적인 사례다.

 

셋째, 의회는 존중받지 못했다. 행정부가 예산, 지출 권한과 조세 권한에 깊숙이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연방 정부 프로그램에 투입될 자금을 불법으로 동결했고, 의회의 조세 권한을 침해할 소지를 무시하고 국가비상경제권한법을 발동했다. 소위 ‘관세 외교’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의회가 입법권을 수호하려는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넷째, 사법부와 대결도 격화됐다. 행정부는 급진적인 행정 조치에 내려진 무수한 금지명령이 그 자체로 행정권의 침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연방대법원은 전국적인 효력을 지니는 금지명령을 무효화함으로써 트럼프에게 ‘대승리’를 가져다주었다.

 

1) 단일 행정부를 완성시키기

(1) 정부효율부(DOGE)와 정보 중앙집중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단일 행정부를 완성하려는 노력은 정보 통제 시도에서 드러난다. 행정명령 14158호는 미국디지털서비스(USDS)를 미국 정부효율 서비스(U.S. DOGE Service)로 재편하여 “모든 비(非)기밀 기관 기록, 소프트웨어 시스템 및 IT 시스템에 대한 완전하고 신속한 접근 권한”을 부여했다. 정부효율부는 정부의 정보를 종합하여 비효율을 없애겠다고 장담했다. 기존에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던 장벽을 위협하는 조치가 잇달아 실행됐고, 반발도 터져 나왔다.

 

첫째, 정부효율부는 납세자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했으며, 연방정부 자금의 유입과 유출을 통제하는 재무부 결제 시스템에 접속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즉각 논란에 휩싸였다. 이 접속 권한을 지니면 개인정보 보호원칙을 위반할 뿐만 아니라 권한을 활용하여 연방 보조금 지원을 실제로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곧 가처분 금지명령이 내려졌다. 둘째, 정부효율부가 사회보장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사회보장국 국장 직무대행이 ‘절차를 따르겠다’라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교체됐다. 하지만 결국 사회보장국의 시스템에 대한 정부효율부의 접근은 일부 차단됐다. 셋째, 교육부와 인사관리처가 정부효율부에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도록 금지명령이 발부됐다. 넷째,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 노동조합회의(AFL-CIO)는 노동부 시스템에 정부효율부가 접근하지 못하게 가처분 명령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결국 6월과 8월, 사회보장국 시스템과 연방 인사, 교육, 납세자 정보에 대한 정부효율부의 접근을 유지해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이후 정부효율부는 상당한 접근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효율부 운영 인가는 2026년 7월에 만료될 예정이다.

 

(2) 대규모 인원 감축 시도

 

정부효율부를 초법적 정보 통제 기관으로 만드는 시도는 기존 행정부 부서와 각종 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을 동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무원 신분 보호를 해제하고, 대규모 인원 감축을 시행했다.

 

1883년 펜들턴 개혁 후, 미국 일반 공무원은 시험 결과에 따라 임명되고 법에 따라 신분이 보장됐다. 집권 정당에 따라 공무원을 교체하던 엽관제에서 벗어나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관료제를 형성하려는 개혁이었다. 이후 시험제에 포함되는 공무원의 범위가 점차 확장하면서 대통령의 자의적인 해임권 행사는 더욱 제약됐다.

하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인 2020년 10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스케줄 F’를 시행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여 공무원 보호 제도를 크게 무력화했다. 스케줄 F는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반직 공무원을 임의 해고가 가능한 정무직으로 재분류하는 조치였다. 스케줄 F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유명무실해졌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며 즉시 철회됐다.

 

트럼프는 2024년 선거운동 내내 1기 행정부에 방해공작을 가한 딥 스테이트 요원을 비난했다. 따라서 당선 후 정부효율부(DOGE)를 창설하고 최대 후원자인 일론 머스크를 수장으로 삼은 일은 명칭과 인선이 놀라울 뿐, 사실 목적은 새롭지 않다. ‘불량 관료’를 제거해야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단일 행정부 명제는 30만 명을 해고하겠다는 호언장담으로 되돌아왔다. 1기 행정부에서 스케줄 F를 설계했던 제임스 셔크가 백악관에 복귀하고 스케줄 F도 부활했다.

 

셔크는 딥 스테이트에 맞서는 단일 행정부라는 명제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 소신은 2022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칼럼에도 드러났다. 셔크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공무원들이 전혀 중립적이지 않았으며,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개인적인 반대 견해 때문에 정보를 숨기고 업무 처리를 지연하는 등 행정부 조치를 방해했다고 증언했다. 그가 볼 때 220만 연방 공무원 중 대통령이 임의로 해고할 수 있는 정무직 공무원의 수가 4천 명에 불과한 사실은 민주주의를 위협했다. “누구도 경력직 공무원에게 투표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선출된 공직자의 정책을 자신들의 정책으로 대체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한 2025년 1월 20일은 이런 인식이 부활한 날이었다. 이날 그가 내린 행정명령은 “미국 헌법 제2조는 대통령에게 행정부에 대한 단독적이고 배타적인 권한을 부여하며, 여기에는 연방 법률의 효과적인 집행을 보장하는 연방 공무원 관리 권한이 포함된다”는 단일 행정부 주장으로 시작했다. 이 명령은 현재 공무원 집단이 설명 책임을 심각하게 결여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가진 모든 권한은 대통령에게 위임받은 권한이며, [이들은] 부통령을 제외하고는 행정부에서 유일하게 미국 국민에게 직접 선출되어 설명 책임을 지는 대통령에게 설명할 책임을” 져야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경력직 연방 공무원들이 행정부 지도부의 정책과 지시에 저항하고 훼방 놓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으며, 이는 충분히 입증됐다”는 것이다. ‘스케줄 F’는 명칭은 ‘스케줄 정책/경력’(Schedule policy/carrier)으로 변경됐지만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같은 행정명령으로 바이든 행정부 때 선포된 공무원 신분 보호 행정명령도 철폐됐다. 이후 2기 행정부는 막대한 감원을 진행했다. 첫째, 유예 사직과 희망퇴직 프로그램으로 7월 31일까지 15만 4천 명이 근무 면제됐다. (9월 30일까지 근무 면제, 급여 및 복리후생을 약속한 후 해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둘째, 임시직 직원을 해고했다. 해고 대상과 범위는 기존 성과와 무관했다. 셋째, 관리예산실과 인사관리처는 각 기관에 인력 감축 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이 조치는 법원이 임시 금지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속됐다. 넷째, 여러 부처에서 공무원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3월 행정명령은 국가 안보 관련 기관에서 단체협약을 해지할 기반을 마련했다. 행정부는 7월 법원 금지명령이 만료된 후 8월까지 최소 5개 기관에서 단체협약을 취소했다.

 

2025년 10월에 시작된 정부 폐쇄 중에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딥 스테이트를 제거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트럼프는 정부 폐쇄를 기회로 대규모 해고를 할 수 있다고 위협한 데 이어, 그 대상은 ‘민주당’ 기관이라고 약속함으로써 당파성도 유감없이 드러냈다.

 

2026년 1월 기준, 30만 명 이상의 공무원이 연방 정부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잠재적으로 대통령을 방해하는 연방정부를 축소하는 조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실행하는 강력한 대통령이라는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단일 행정부주의자에게 필요한 도구는 현재 미국 관료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바라는 도구는 정부효율부다. 이를 통해 연방정부를 운영할 때 필요한, 분산되고 보호받는 정보를 중앙집중화함으로써 단일 행정부를 향한 꿈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2)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 대한 공격

“고집 센 바보 제롬 ‘너무 늦은’ 파월은 지금 당장 금리를 대폭 인하해야 한다. 계속 거부한다면 이사회가 통제권을 장악하고 모두가 해야 한다고 아는 일을 실행해야 한다!”

- 2025년 7월 트럼프 소셜 미디어 메시지 중.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연방정부 정보에 초법적으로 접근하고, 인원 감축으로 기존 행정부 부처를 축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전부터 눈엣가시였던 독립기관과 독립위원회를 대통령이 통제하려는 시도도 더욱 강화됐다. 2025년 2월 18일 행정명령 14215호는 연방소비자위원회, 연방거래위원회, 금융거래위원회를 행정권 관할로 포함하고 예산, 정책 결정, 규제 승인 권한에 있어 대통령 권한을 확대했다.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통화정책 기능은 이 행정명령에서 예외로 인정됐지만, 그런 예외 취급은 연준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을 오히려 강화시켰다.

 

의회가 독립성을 보장한 독립이사회와 독립위원회는 미국 법인 자본주의의 독특성을 보여준다. 국가가 경제를 직접 통제하기보다는 법인 기업과 전문가 등 사회세력이 국가를 활용해 경제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법인 자유주의 구상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인 연준 역시 “방법에서는 과학적이고 통제에서는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요구 하에, 지역 은행 연합 형태로 발족했다.

 

연준은 분권적인 구조 탓에 1930년대 대불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보완하는 1935년 은행법은 대통령의 영향력을 증대시키진 않았다. 이 법은 연준 이사회에서 재무장관과 통화감사원장을 배제하고, 연준 건물도 재무부와 떨어진 국회의사당 근처로 이전했다. 연준 이사는 대통령이 지명하지만, 연준의 목표와 구조, 권한을 규정하는 최종 권한은 의회에 있다. 연준은 정책적 독립성을 보호하는 다양한 제도를 갖췄다. 이사진은 연임이 가능하고, 대통령과 견해차로 해임되지 않으며, 연방준비은행들의 장을 정부가 지명하지 않고, 운영비를 자체 발행 증권 수익으로 감당한다.

 

트럼프는 자신이 연준 이사나 의장보다 이자율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2025년 7월, 연준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 여파를 분석하며 금리 유지 방침을 밝혔을 때, 트럼프는 연준 의장이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이사회가 통제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직접적인 개입은 연준 이사 리사 쿡을 해임하려는 시도로 드러났다. 2021년 모기지 사기 혐의를 근거로 쿡을 해임할 수 있다는 행정부의 주장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승소하면 연준 이사에 대한 해임권을 더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트럼프는 연준 이사 공석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미런을 임명했다. 미런은 연준이 더 ‘민주적인’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런이 제시한 중앙은행의 단일 행정부 판본은 연준 이사가 보장받는 14년 임기를 단축하고, 12개 지역준비은행 이사회를 주지사가 관할하며, 연준 예산을 의회가 통제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상원은 미런의 연준 이사 임명을 찬성 48표 대 반대 47표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전원이 찬성하고 민주당 전원이 반대했다. 미런은 연준 이사로 취임한 후에도 경제자문위원장직을 무급휴직 상태로 유지했다. 백악관에 재직하며 동시에 연준 이사직을 수행하는 사상 첫 사례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9월, 10월, 12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연준은 이 기간에 트럼프의 공격에 최대한 맞대응하지 않는 방침을 유지했다. 쿡 사건이나 트럼프의 압력에 대한 논평을 삼가고, 기후 및 다양성 관련 사업 추진을 중단했으며, 외부 채용을 동결했다. 트럼프 행정부 기조에 맞춰 직원 10% 감원 계획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가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에 얼마나 유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트럼프에게는 독립성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다음 연준 의장으로 캐빈 워시를 지명했다. 워시는 연준 리더십이 붕괴한 것을 비판하며, 연준이 행정부가 추진하는 성장 전략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행정부 재조직법 초안에서 독립 기관을 행정부 부처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관철할 수 없었다. 만약 트럼프가 차기 연준 의장을 임명한 후 연방준비제도에 더 깊이 개입하는 데 성공한다면, 행정 영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셈이다.

 

3) 입법부의 침묵

트럼프 행정부는 단일 행정부를 주장하지만, 활동 범위는 행정부 내로 국한되지 않는다. 2기 행정부는 입법권과 사법권의 범위를 재해석해 행정권을 크게 확장하려 했다. 예를 들어 정부효율부가 겨냥한 기관 중에는 의회 산하 기관이나 의회가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한 기관들이 포함되었는데, 이들에 대한 정부효율부의 예산 동결과 인원 감축 시도는 의회의 제지를 잘 받지 않았다. 앞서 보았듯 스티븐 미런에 대한 상원 인준에서도 완전히 당파적인 표결이 이뤄졌다. 의회가 제도로서 지니는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입법권과 행정권의 관계는 늘 변화했다. 하지만 정당 간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서 입법권을 약화시키는 일은 야당을 무력화하고 대통령 선거 승리를 향한 더 극단적인 당파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입법권을 침해당해도 정당의 이익이 최우선 순위에 놓인다. 예를 들어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입법권 침해 혐의는 부정하더라도 필리버스터를 폐지하자는 대통령의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민주당 우위 상황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조치가 삼권 분립을 정상화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적 정당성의 이름으로 정당 간 경쟁을 마비시키는 중이다. 행정부가 자신을 지지한 ‘진짜 미국인’의 요구를 신속하게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점차 크게 낼 때, 공화당 우위 의회는 입법권 침해를 걱정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의향을 실현하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경우 트럼프 행정부 정책을 논쟁하는 장은 의회가 아니게 됐다. 고도로 당파화된 미국 정치는 단일 행정부에 매우 유리한 지형을 만들었다.

 

(1) 예산, 세출 권한

 

1974년, 의회예산동결통제법은 1921년 예산회계법을 통해 대통령이 맡게 된 예산과 회계 권한을 의회로 복귀시키려는 목적으로 제정됐다. 이 법으로 의회예산처(CBO)가 설립되며 백악관 관리예산실(OMB)을 거치지 않고도 예산 심의와 검토가 가능해졌다. 대통령이 정해진 예산을 지출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동결(impoundment)하는 행태는 법의 이름에도 포함된 중요한 문제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지출 동결에 경종을 울린 기관도 의회 산하 기구인 회계감사원(GAO)이었다. 하지만 이 경고는 실질적인 반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여러 차례 보고서를 제출해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예산을 불법으로 동결했다고 경고했다. 주요 대상은 국립보건원, 질병통제예방센터, (행정명령으로 폐지대상이 된) 소수기업진흥청(MBDA)과 박물관도서관서비스원(IMLS), 대외 원조 프로그램 등이었다. 대통령이 3월에 직접 서명한 예산안 중 260억 달러 가량이 지출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수치는 9월 30일 시한이 만료되는 예산만 계산한 결과였다. 그 외의 불법 중단, 지연, 취소 시도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 동결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러셀 보트 백악관 관리예산실장은 의회가 설정한 예산 규모는 상한선이지 하한선이 아니며, 대통령은 의원들이 지시한 금액만큼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지출은 대통령 소관이라는 논리였다. 또한 백악관과 공화당은 회계감사원 업무를 무시하고 기관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보트는 회계감사원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이번 정부 예산 협상에서 회계감사원 예산을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자고 주장했고, 회계감사원이 의회를 대신해 트럼프 행정부에 소송을 제기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려 했다.

 

회계감사원의 에다 에마누엘리 페레즈 법률고문은 “(의회예산동결통제법에서) 회계감사원의 역할은 자금 현황 정보를 제공하고, 법적 결정을 내리며, 의회가 배정한 자금의 투입 방안을 검토함으로써 의회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소송 제기 여부를 검토할 경우 회계감사원은 의회와 가능한 방안을 협의하고 의회예산동결통제법이 요구하는 25일간의 공식 통지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에 상응하는 의회 차원의 대응은 없었다.

 

2025년 12월 29일로 회계감사원장 도다로의 임기가 종료되었다. 15년 임기를 수행하는 회계감사원장은 양원과 양당이 모두 참여하는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 지명과 상원 인준을 받는 직위다. 후보 명단과 대통령 지명에 따라 백악관이 위협한 기관의 운명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2) 조세 권한

 

2025년 4월 2일, 트럼프는 만우절을 하루 지나 '해방의 날' (Liberation day)을 선언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로 간주하여,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4월 5일부터 대다수 수입품에 기본 상호관세 10%를 매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경제적 독립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같은 달에는 자동차에, 5월에는 차 부품에 각각 25%씩 관세를 부과했다. 6월엔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가 50%로 인상됐다. 8월부터는 한국, 유럽연합, 일본에 관세 15%를 더 매기는 조치를 취했다.

 

관세 논란은 미묘한 쟁점을 포함한다. 수입관세와 무역 규제 관련 권한은 의회에 있지만, 20세기 들어 대외무역은 외교의 일부로, 즉 국가 원수로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상원 동의를 받지 않는 협정을 맺을 수 있는 ‘패스트트랙’을 허용했다. 근거는 대통령이 전국적인 시야를 지니고 국익을 가장 잘 고려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워터게이트 이후 그러한 전제가 크게 의심받았을 때도 대외무역에 있어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의심받지 않았다. 무역은 외교의 도구였다. 이런 인식에 따라 1974년 무역법은 패스트트랙 절차를 폐지하고 대통령의 무역협정 체결 절차에 양원 동의를 추가했지만, 대외무역에서 대통령은 중심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상호관세에 대해 중소기업들과 일부 주 정부가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은 8월 29일, 7대 4로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미국 무역 상대국에서 수입되는 거의 모든 상품에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행정부가 항소하며 관세 문제가 연방대법원의 심판대에 올랐다. 11월 5일에는 연방대법원 구두 변론이 진행됐다. 행정부는 관세 환불 소송에 대처하려는 목적으로 관세 납부 절차의 마감을 추진했다.

 

2026년 2월 20일, 연방대법원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관세와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부과한 국가별 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과 통상법 등을 활용하여 관세 부과를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역확장법 122조에 근거한 10% 추가 관세를 시작으로, 이전과 같은 세율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발표다. 중간 선거가 걸려 있는 공화당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과세권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3) 전쟁과 외교 권한

 

해외 군사 행동도 관세와 마찬가지로 미묘한 쟁점에 속한다. 외교와 안보는 국가 원수가 책임지는 영역이지만, 전쟁 선포 권한은 의회에 속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개시할 때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1973년 전쟁권한법은 이 권한을 복구하려는 시도였지만, 잘 존중받지 못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마크 워너 상원의원을 정보기관 감독직에서 배제하고, 의회에 통보하지 않고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하고, 로스엔젤레스에 지역 동의 없이 병력을 파견하면서 입법권을 크게 해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6년에는 군사 작전을 펼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사로잡아 미국으로 이송했다. 여기에 대한 양당의 반응은 판이했다. 민주당은 의회 승인 없는 불법 침공을 강력하게 비난했지만, 공화당이 이를 군사작전이 아닌 ‘법 집행 작전’으로 옹호하면서 의회 권한 관련 쟁점은 희석됐다.

 

4) “법원에 ‘엿이나 먹어라’라고 말해보면 어떤가?”: 전국적 금지명령 논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사법적인 선례를 남겼거나 남길 예정이다. 판례가 새로운 법으로 작동하며 분열한 사법부에 부담을 가중할 것이다.

 

트럼프 성추문 사건 변호사였던 에밀 보브는 사법부의 난국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브는 법무부 차관보 시절 “법원에 ‘엿이나 먹어라’(F*** you)라고 말해보면 어떤가?”라고 발언했다는 내부고발을 당했지만, 공화당의 지지를 받아 무사히 제3순회 연방 항소법원 판사가 되었다.

 

‘엿이나 먹어라’는 표현은 거칠지만 사법부를 대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태도를 잘 설명한다. 이제 행정부는 법원 판단을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법원의 금지명령(Injunction)에 극심한 적대감을 보여 왔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2025년 6월 25일, 법무부는 연방 이민 단속 조치에 금지명령을 자동으로 발부하는 ‘상설 명령’을 시행한 메릴랜드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불법적인 사법부의 권한 남용을 억제”하겠다는 이유였다. 법무부 보도 자료에 따르면, 패멀라 본디 법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권은 취임 첫날부터 그의 정책을 저지하려는 끝없는 금지명령 공세로 인해 약화되어 왔다”고 주장하며 “미국 국민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 의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선출했다. 즉 이러한 사법부의 권한 남용 패턴은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며 용납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같은 보도 자료에서, 법무부는 지방법원이 2기 행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1900년부터 2000년까지 100년보다 더 많은 전국적 금지명령을 내렸으며, 이 자체가 불법적인 사법권 남용의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틀 뒤인 6월 27일, 대법원은 하급법원이 전국 규모의 금지명령을 내릴 수 없게 제한했다. 출생지 시민권 관련 행정명령에 대한 금지명령이 전국적 효력을 가지면 안 되고, 특정 당사자에게만 효력이 있다는 판결이었다. 민주당 지명 대법관 3명은 반대 의견을 내어 이 판결이 행정부의 “꼼수”라고 비난하며 동료 대법관들이 “부끄럽게도” 이에 동조했다고 규탄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오늘은 출생지 시민권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내일은 다른 행정부가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총기를 압수하거나 특정 종교 신자의 예배 모임을 금지하려 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발언했다.

 

백악관은 ‘대승리’를 선언했다. “더 이상 불량하고 활동가처럼 행동하는 판사들이 권한을 남용하여 미국 대통령의 행정권에 명령할 수 없다. 대법원의 판결은 헌법과 법치, 그리고 대통령직 자체에 대한 압도적인 승리다”라는 문구로 시작한 백악관 성명은 트럼프 대통령과 본디 법무장관이 기뻐하는 목소리를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 “저는 역사적인 (국민의) 위임(mandate)으로 당선되었지만, 최근 몇 달간 극소수의 급진 좌파 판사가 대통령에게 부여된 정당한 권한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려 시도하며, 미국 국민이 사상 최대의 투표율로 선택한 정책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습니다.”

법무장관: “미국인은 마침내 자신이 투표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전국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무효화하는 불량 판사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이제는 없습니다.”

 

단일 행정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판사들이 곧바로 전국적 효력을 가지는 다른 수단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법원은 집단 소송에 있어서 전국적인 효력을 지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또한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법원은 여전히 연방 기관의 법 위반 행위를 무효화할 권한을 지닌다.

 

 

4. 결론: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왕이 아니라 국민의 위임을 받은 최고 행정관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권한을 확대해석했다. 그는 행정부에 소속된 모든 기관과 공무원이 자신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일사불란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단일 행정부주의자였다. 동시에 그는 반대 집단을 ‘딥 스테이트’로 비난함으로써 단일 행정부 이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혁신가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단일 행정부와 딥 스테이트의 대결 구도를 더욱 확장했다. 정부효율부는 행정 영역을 장악하는 것을 넘어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입법권과 사법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해야 달성 가능한 목표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스스로 삼권 분립을 정상화했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의회 내 정당 간 투쟁이 극단화되고 사법부가 분열한 상황을 활용해 행정권을 비대하게 만드는 중이다.

 

사회변동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21세기 미국 행정부는 법인 자본주의의 위기를 암시한다. 미국 대통령직은 부상하는 법인 자본주의에 맞춰 현대화됐다. 미국 경제가 금융화하는 시기에는 단일 행정부 이론이 등장하여 대통령직의 변화를 추동했다. 공화당이 분열하거나 다른 이유가 생겨 트럼프 행정부가 실패하더라도, 그 경향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즉 대통령이 단일 행정부를 추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권력 분립 자체를 무시할 수 있다는 유혹이 지속될 것이다. 용어를 패러디해보면, 이런 유혹에 (단일 행정부 이론에 대한) ‘트럼프 추론’이나 ‘단일 정부(=통치) 추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다.

 

현재 한국 민주정의 문제를 트럼프 행정부에 비추어 볼 수 있다. 심층이 제기하는 문제에는 두 가지 대답이 존재했다. 트럼프는 미국 국가가 발달시킨 심층을 거부하며 대통령이 모든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즉 트럼프는 국가 심층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일을 통제 구조를 단순화하고 일원화하는 일과 동일시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과정에서 연방정부의 작동을 마비시키고 권력 분립 원칙을 훼손하면서 미국 헌정의 기틀을 무너트리고 있다. 이는 미국 국민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없다. 그가 봉사한다는 ‘진짜 국민’은 권력을 집중하려는 변명일 가능성이 크다.

 

비상계엄 이후 출범한 새 한국 행정부는 헌정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정치적 갈등에서 드러나듯, 헌정 질서를 회복하려면 선출되지 않는 복잡하고 거대한 정부 구조를 통제하는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했다. 검찰청 폐지와 법원행정처 개혁, 내란 연루 군인과 공무원에 대한 기소와 처벌, 장차관 공공기관장에 대한 국민추천제 등 여러 개혁은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다.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명분이라도, 권한 체계를 대통령과 다수당에 더 잘 응답하게 조정하는 일은 권력을 지나치게 집중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나아가 이런 조정이 판돈을 키워 정치 경쟁이 극단화될 수도 있다.

 

트럼프를 막아선 ‘딥 스테이트’가 보여주었듯, 민주적 통제가 꼭 정치적 대표의 직접적인 통제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국가 심층을 옹호하는 이들의 답은 트럼프가 내놓은 답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 자체가 그들의 약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갈등의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 갈등도 권력 경쟁이나 과오의 청산이라는 관점으로 환원할 수 없다. 한국 국가 심층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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