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2 겨울.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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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신시대’를 비추는 역사의 거울, 중국공산당 100년사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박진우 |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회원
2022년 10월, 제20차 중국공산당대회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렸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이 당대회에서 올해 69세인 시진핑이 총서기로 선출되고, 새로 선출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시진핑 측근으로 채워지면서 덩샤오핑 이후 약 40년간 유지해오던 중국정치의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졌다. 또한, 시진핑은 당대회보고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하여 직접 “평화 통일을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결코 무력 사용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고, 최근 G20 정상회의 중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대만문제를 분명한 중국의 레드라인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전히 진행 중인 남중국해에서의 무력분쟁, 북한의 제7차 핵실험 전조로 인한 동북아 전쟁위험 등 세계 정세를 위협하는 요인이 나날이 심화하는 가운데,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까지 불사하겠다는 시진핑의 발언은 어느 때보다도 그 위험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우리는 이른바 ‘신시대’라고 불리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는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이 책은 중국공산당의 지난 100년을 크게 네 개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공산당 창당 후 30년간의 혁명을 통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시기, 둘째, 건국 후 30년간의 사회주의 건설 시기, 셋째, 1978년 이후 30년간의 개혁개방 시기, 넷째, 2012년 시진핑 이후 새로운 ‘신시대’ 10년이 그것이다. 그리고 8개의 장별로 정치, 경제, 사회, 대외정책, 문예, 젠더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시기별 중국공산당의 과제와 대응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최근 신시대에서 주목되는 변화는 무엇인지를 서술하고 있다.

서평에서는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의 ‘신시대’가 갖는 특징과 위험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2년 시진핑 집권 시기와 더불어 나날이 심화하는 미중 갈등과 코로나 팬데믹 등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도 기어코 2022년 20차 당대회로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의 ‘신시대’가 보이는 특징이 무엇이며 어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책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에서 설명하는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의 의미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즉 지난 중국의 100년사를 혁명사가 아닌 외부세계에 중화민족 굴기의 투쟁사로 다시 쓰려고 하는 중국공산당의 시도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 동북아 차원의 국제적 민중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단초를 찾아보고자 한다.
 
 

1. 중국공산당 100년,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1921년 창당된 중국공산당의 지난 100년은 대체로 30년 주기로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건국 시기(1921~1949년)를 살펴보자. 19세기 중국은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을 거치며 청나라라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가운데 양무운동, 변법운동, 신해혁명이 모두 실패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이후 이전의 대응을 반성하며 계몽주의를 내세운 신문화운동과, 1919년 중국 베이징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운동이자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인 5.4운동을 거쳐 국민당과 공산당이 창당되었다. 특히 중국공산당은 1917년 러시아혁명과 1차 세계전쟁의 전후처리 과정으로 촉발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코민테른의 지원을 바탕으로 1921년 상하이에서 창당되었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건당과 건국의 시기에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는 ‘문제와 주의 논쟁’, ‘사회주의 논쟁’,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논쟁’ 등 여러 사상 논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 여러 급진사상이 마르크스주의로 수렴되어 중국공산당의 핵심이념이 되었다. 나아가 마오쩌둥은 구체 정세에 따라 주요모순이 변화한다는 모순론과, 중국의 사회성격을 관료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이로부터 공산당이 주도하는 항일민족통일 전선을 통한 반봉건 반제국주의의 신민주주의 혁명노선을 수립했다.

중국공산당은 창당과 함께 노동계급을 적극적인 혁명세력으로 규합하기로 하여 공개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하였고 1925년 전국에 약 560개 조합, 117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중화전국총공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진 중국공산당의 승리에는 노동운동의 지대한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혁명의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노동계급을 영도하는 대중노선이 확립되고, 이후 공회를 포함하여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당)과 부련(전국부녀자연합회) 등 사회단체는 중국공산당만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조직체계로 종속된다.

다음으로 두 번째 사회주의 건설 시기(1949~1976년)를 살펴보자. 1949년 건국 당시 중국은 저발전 농업사회였으므로, 중국공산당은 신민주주의 노선에 의한 발전과 점진적인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냉전 질서가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으로 전개되면서, 안보의 위협을 느낀 중국공산당은 태도를 바꿔 급속한 소련식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였고, 1956년 사회주의로의 개조가 완료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도농격차의 확대, 관료주의의 심화와 같은 모순이 격화되면서, 중국공산당은 1957년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내세운 정풍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내 반우파투쟁으로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한편, “소련은 미국을 추월하고 중국은 영국을 추월한다”를 내세운 대약진운동이 주관주의와 결합하여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가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채 실패하게 되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 후 마오쩌둥은 다시 사회주의 안에서의 계급의 존재와 계급투쟁을 강조하며 당내에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새로운 자본가계급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청운동(장부, 창고, 자재, 노동점수 면에서 간부의 부정이 없었는지 심사하는 운동)을 거쳐 1966년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대중운동으로 이어졌다. 마오쩌둥을 제외한 당과 국가의 지도자를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 삼게 했던 10년간의 문화대혁명 시기는 역설적으로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 개인에 대한 권력 집중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으로 세 번째 개혁개방 시기(1977~2011년)를 살펴보자. 문화대혁명 이후 화궈펑 체제를 거쳐 집권한 덩샤오핑은 1979년 미중 수교가 상징하는 대외관계 변화에 따라, 건국 이후 중국이 선택한 전통적인 사회주의 건설이 아닌 개혁개방을 결정한다. 중국은 서구강대국에 대해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며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방침으로 저자세를 취했다. 미중 협력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키신저 질서’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편승하여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으며, 그 대가로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동맹과 주둔군 배치를 용인하였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농촌개혁과 경제특구로부터 출발하여 1984년 도시개혁, 1992년 남순강화를 계기로 가속화되었다. 1993년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개념으로 공유경제와 자본주의적 민영경제가 공존하는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였다. 중국 정부는 동아시아 수출주도형 경제발전모델과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제성장을 견인하였다. 중국은 2001년에는 WTO에 가입하였고, 2010년에는 일본을 추월하는 명실상부한 G2가 되었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은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증대하는 한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재분배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 시기 공동부유 정책으로 이어졌다.

개혁개방 시기에는 경제개방뿐만 아니라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한 정치체제의 개혁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 개인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종신체제를 문화대혁명의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하고, 권력의 분권화와 종신제 폐지를 통한 승계제도의 규범화를 핵심적인 정치개혁으로 추진했다. 이에 따라 덩샤오핑 이후 1992년 장쩌민 체제, 2002년 후진타오, 2012년 시진핑으로 안정적인 승계가 이루어졌다. 2002년 이후로는 중국공산당에서 68세는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7상8하’ 원칙이 암묵적으로 지켜졌고, 당대회에서 젊은 차기 지도자를 최고지도부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는 관례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사실상 중국공산당 내부 개혁에 그쳤다. 개혁개방 정책이 진행되던 와중에 1989년 봄 베이징대 학생들을 필두로 한 민주화운동인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다. 이때 기존의 공회와는 달리 독자적인 공자련(노동자자치연합회)이라는 자발적인 독립노조가 2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면서 등장하였다. 이 사태의 해결을 둘러싸고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논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중운동을 억압하고 폭력적인 무력진압을 주장하는 강성파가 우세하면서 ‘천안문 사태’는 결국 무참하게 진압되었다. 하지만 농민공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신 노동계급은 2010년 폭스콘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과 난카이 혼다 자동차 기업노동자들의 파업, 2014년에 3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위위안 신발공장 파업, 2017년 개혁개방 시기의 대표적인 성장도시인 선전시에서 일어난 제이식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설립 투쟁과 베이징대, 난징대에 소속된 대학생들의 노학연대 투쟁이 소규모이지만 지속해서 일어나면서 중국의 ‘신 계급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기인 ‘신시대’(2012년~현재)를 살펴보자. 2012년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집권한 시진핑은 ‘네 개의 자신감’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의미하는 ‘중국몽’을 주창하며 G2로 등극한 중국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개혁개방 시기의 ‘도광양회’가 아니라 ‘주동진취’와 ‘주동외교’를 내세우며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할 경우 무력시위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내었다. 

2019년 제19차 당대회에서는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본적 실현’, 2050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내세우며 보편적인 중국의 발전모델, 즉 ‘중국적 보편’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국가주석의 임기를 2기 10년으로 제한하는 헌법 규정을 2018년에 개정해서 삭제하고 시진핑을 중국공산당 중앙의 핵심으로 표현하면서, 덩샤오핑 이후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던 집단지도체제를 포함한 개혁 시기의 분권화가 도로 역전되었다. 

나아가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일대일로’, ‘공동부유’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3연임을 통한 장기집권을 천명하였다. 시진핑의 당 중앙 핵심 지위 확립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즉 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을 뜻하는 ‘두 개의 확립’과, 시진핑의 당 중앙 핵심 지위 수호와 (시진핑을 정점으로 하는) 당 중앙 집중통일 영도를 수호하는 ‘두 개의 수호’를 내세워 시진핑을 중국 인민 전체의 지도자를 뜻하는 인민 영수로까지 추켜세운 것이다. 이로써 제20차 당대회는 기존의 태자당, 상하이방, 공청단 등의 주류 계열들이 모두 탈락하고 시진핑 독점의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본격화된 시진핑 ‘신시대’의 특징과 위험성

 
 
과연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의 ‘신시대’ 지도체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끌며 미국을 뛰어넘고 새로운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러 측면에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개혁개방 시기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편승하면서 오랜 시기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미국 역시 달러 환류 메커니즘의 하위파트너로서 중국을 오랫동안 포섭해왔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특수한 성격을 띤 G2 체제는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표하는 인민주의로 인한 정치경제적 혼란을 겪었고, 현 바이든 행정부 역시 금융화 유지와 불평등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요원해 보인다. 중국 역시 시진핑 취임 이후 대내적으로는 경제성장의 둔화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공산당의 지도부는 이러한 위기의식 하에서 수출과 내수를 활성화하는 ‘쌍순환’ 전략, 첨단산업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제시했다. 제20차 당대회에서도 ‘신발전구도 구축’, ‘과학기술 인재 육성’, ‘공동부유’, ‘경제안전’(안보)을 주된 키워드로 업무보고에 담았다. 특히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건설의 최우선 임무로 경제발전의 고도화를 제시하면서 ‘발전’이야말로 국가부흥을 위한 제1의 임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더불어 ‘공동부유’로 대표되는 분배제도 개선을 통해 취업, 사회보장제도, 의료자원 개발, 의료보장 정책을 통해 분배의 균형과 접근성을 강화하면서 중산층 확대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이러한 정책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최근 중국 부동산업계에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하는 회사가 급증하고 부동산 채권 시장이 폭락하고 있는 등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중국의 경기부양책은 힘을 잃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정책조정으로 다시 한번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금융위기와 국유기업의 줄도산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국유기업의 이익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공산당 내 지배 관료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인프라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 계획 역시, 중국 특유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로 인한 억압적인 사회가 지속하는 한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 더군다나 중국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잘 극복한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최근 폭스콘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공장을 탈출하는 일이 벌어지고 주요 도시에서 ‘백지 시위’가 발생하며 인민들의 불만 역시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불만을 잠재우기는커녕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 개혁개방 시기와 같은 고도의 경제성장이 불투명한 가운데,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은 제20차 당대회에서 중국이 달성해야 할 두 번째 백 년의 목표를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발전’과 ‘안전’이라는 두 개의 기둥이 밑받침되어야 하며, 지금 이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는 만큼 무엇보다 내부 ‘단결’과 ‘분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부세력인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경쟁 속에서 중국공산당과 시진핑만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존재라고 정당화하는 것이야말로 ‘시진핑 사상’의 핵심이다.
 
한편, 업무보고 중 ‘일국양제 견지 및 조국통일 추진’을 살펴보면, 홍콩과 마카오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에 장기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중국 정부는 두 지역의 번영과 안정을 지원할 것이라고 명시하면서도, 애국자에 의한 홍콩, 마카오 통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반중세력과 외부세력의 개입에 대해 견결히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만 문제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면서 최대한 평화 통일을 추구하되, 무력 사용이라는 선택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신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과 함께 대만과의 통일을 이루겠다는 시간표를 제시하면서, 향후 대만해협의 긴장 국면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이후 중국의 대만을 향한 군사행동 감행에 주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1930~1940년대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강대국이 자신의 배타적 주권과 생활권을 내세워 주변 국가를 무력으로 침공하는 영토팽창주의가 공고해진다면,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군사적 팽창주의가 더욱 기세를 부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이 제시하는 ‘신시대’의 함의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3.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쓰기, 

우리는 왜 중국공산당의 100년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제20차 당대회의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에서 ‘신시대’가 가지고 있는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에서 백승욱 교수는 중국공산당의 ‘신시대’가 시진핑 집권기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몇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중국의 역사 다시쓰기를 배경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당이 창립된 1921년부터 2021년까지의 100년을 중국 인민의 혁명사로 보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서세동점의 시기에 외세에 의해 꺾였던 중화민족이 다시 굴기하는 투쟁사로 재규정하고자 한다.

신중국 성립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온 중국 역사학계의 논쟁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 논쟁’이었다. 중국 내에 자본주의 맹아가 존재했지만 외국 자본의 침략과 매판자본의 억압으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아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출현한 것이 관료자본이었으며, 이를 타파하는 데 필요했던 것이 바로 신민주주의 혁명이었다는 게 중국공산당의 공식적 역사해석이었다. 이 자본주의 맹아 논쟁의 바탕에는 세계적 보편성과 중국의 특수성을 결합한 ‘반제국주의적인 자주적 국가 건립의 열망’이라는 정치적 지향이 깔려있었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도 가지고 있다’라는 마음이나 ‘자본주의는 중국 역사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라는 신념은 모두 중국이 반드시 근대 유럽의 발전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리보중, 『중국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책세상, 2006.

그런데 이후의 논의 흐름은 위와 같은 내재적 발전론을 자본주의 맹아론과 연관 짓는 것이 아니라, ‘중국적 특색’이라는 ‘예외성’으로 연결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1970~1980년대 개혁개방 시기가 되면, 중국공산당은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한편 ‘관료자본론’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즉 기존의 전통적인 혁명사 인식에서는 1930년대 당시 국민당의 난징정부가 추진했던 국가부문 주도의 경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제는 항일투쟁에 기여했던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으로 재평가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역사 다시쓰기는 ‘관료자본’을 ‘국가자본’으로 대체하는 시도와도 연결된다. 즉 1930년대의 관료자본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면서, 오늘날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른바 ‘관료와 상인의 결합’의 부패가 GDP 손실액의 15%에 이른다고 지적되는 중국 사회의 현실에서, ‘국가자본’은 언제든지 1930년대와 같은 ‘관료자본’으로 타락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러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여전히 민주 없는 사회주의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대회에서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물질적으로 안락한 중산층 사회)를 달성했다고 선언하면서, 앞으로의 ‘신시대’는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을 위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진핑 일인체제로의 권력 집중과 억압적인 사회통제는 중국 100년의 역사 속에서 당과 국가 주도의 국가발전만이 남고 민주의 주체는 여전히 어디에도 없는 모순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0년간 중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더욱더 벌어지는 중국 내부의 불평등과 계급 격차 문제와 더불어 증대되는 중국 노동자계급의 집단행동은, 현대 사회주의 강국을 만들겠다는 중국 사회에서 왜 여전히 노동자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고 당과 국가로부터 탄압받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한다.

지난 11월에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주민 1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SNS를 통해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19 봉쇄정책으로 건물 입구에 구조물이 설치되면서 화재진압은 물론이고 주민들이 빠르게 대피할 수 없었다는 의혹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결과 중국의 주요 도시와 50개 이상의 대학, 홍콩, 대만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추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11월 30일 저녁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재한중국인의 추모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중국어와 한국어로 “봉쇄를 해제하라!”, “독재가 아닌 투표를 원한다!”,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쳤고, 나아가 “중국공산당 물러나라, 시진핑 물러나라”라는 구호도 외쳤다. 지난 제20차 당대회에서 내부 단결과 분투를 강조했던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의 선언에 정면으로 맞서는 중국 인민들의 목소리가 현재진행형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2022년이 끝나가도록 여전히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무장 문제, 중국이 무력통일까지 언급한 대만 문제 등 세계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따라서 팽창주의에 맞선 반전운동,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투쟁을 위한 국제적인 연대가 어느 때보다도 사회운동의 주요한 과제일 것이다. 지금도 푸틴의 징집령에 맞서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시민과 러시아의 침공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시민, 중국 정부의 정치 탄압과 무력 위협에 맞서 싸우는 홍콩 시민과 대만 시민, 그리고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정책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중국 시민의 투쟁에 연대할 수 있는 저항의 고리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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