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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1-2.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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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력파견업체 <맨파워>와 금속노조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임필수 | 정책위원장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고용하는 민간기업에는 굴뚝,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생산시설과 트럭과 같은 운송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쇠와 쇠가 부딪쳐 나는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어디에서도 금속과 금속을 잇는 리벳, 플라스틱, 강철을 찾아 볼 수 없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만들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분명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제품을 만드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56만 명의 노동자를 거느린 맨파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임시직 알선 서비스 업체다. 매일 아침이 오면 이 회사의 직원들은 일당을 받는 일용직으로 미국 방방곡곡의 사무실과 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는 GM이나 AT&T가 아니다. 맨파워라는 파견용역회사다. 이 기업의 직원들은 계약에 의해 다른 회사에 파견용역을 제공하는 비정규직 직원으로 일한다.
1996년에 초판이 나온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1980년대 이후 미국 노동현실의 급격한 변화를 묘사한다. 1993년 2월, 당시 미국 두 번째 규모의 은행인 뱅크아메리카는 1,200개의 풀타임 일자리를 시간제고용으로 전환하기로 발표했다. 은행은 가까운 장래에 회사 직원의 19% 이하만이 풀타임 일자리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뱅크아메리카는 지난 2년간 기록적인 이익을 올렸지만 좀 더 많은 일자리를 시간제로 돌리기로 결정했다. 또 하나의 사례. 멤피스의 나이키 배급소는 시간당 13달러 이상의 임금과 부가급부를 받는 120명의 종신직원과 60명에서 255명에 달하는 임시직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1980~90년대 미국 전역에 걸쳐 종신직 풀타임 핵심 직원과 파트타임이나 계약직과 같은 주변 인력으로 구성된 이층 고용시스템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미국에서는 인력파견회사에만 적용되는 법적 규제가 없었다. 모든 작업장에 적용되는 차별금지법(연령, 성, 인종, 종교)과 산업안전법을 준수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에 따라 1982년부터 1990년 사이 임시직 고용이 전체 고용에 비해 10배나 빨리 성장했고 임시직, 계약직, 파트타임 노동자가 미국 노동력의 25%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기업은 임금을 삭감하고 의료보험, 연금, 병가, 유급휴가와 같은 복지성 지급을 회피하려 했다. 1990년대 미국 기업은 ‘적시고용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혁신적 경영기법이라도 되는 듯이 구하기도 쉽고 자르기도 쉬운 임시직 고용을 확대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이층 고용구조를 확장하는 데 첨병 역할을 했던 회사가 임시직 서비스 회사다. 앞서 언급한 나이키 배급소 사례에서 그 역할을 맡은 파견회사는 노렐 서비스였다. 노렐 서비스는 시간당 6.5달러를 받아 2달러를 챙기고 나머지를 노동자에게 준다. 6.5달러는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 해당한다. 맨파워와 노렐 서비스와 같은 임시직 서비스 회사는 단순직, 비숙련 노동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급격히 성장했고,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매일 150만 명 이상의 임시직 노동자를 공급하게 되었다.
맨파워의 사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인력파견 비즈니스는 우리의 미래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0월에 발표한 <국가고용전략2020>를 통해 직업소개, 직업훈련, 파견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는 복합고용서비스 기업을 도입하여 민간고용서비스기관의 대형화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했다.
이에 앞서 2010년 5월 한국노동연구원은 <노융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노융’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도입한다. 한마디로 말해 금융산업이 금전을 융통하는 산업이라면 노융산업은 노동력을 융통하는 산업이다. 그렇다면 인력서비스산업을 굳이 금융산업에 유비하여 노융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20세기에 금융산업이 블루오션이었다면 21세기는 노융산업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저자의 희망이 담겨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맨파워는 가장 중요한 선례가 된다. 현재 세계적 인력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한 아데코와 맨파워는 2007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각각 261위와 408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한국의 포스코(244위), 현대중공업(422위)과 맞먹는 수준이다. 현재 맨파워 그룹은 전통적인 상용직, 임시직, 계약직 인력공급을 담당하는 <맨파워> 외에도 특수전문분야 인력을 제공하는 <맨파워 프로페셔널>, 주로 보건, 국방, 공공부문 전문가를 공급하는 , 경영인사 인력을 공급하는 <제퍼슨 웰스>, 경력관리와 조직컨설팅을 담당하는 <라이트 매니지먼트>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맨파워는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률을 낮춤으로써 미국 경제에 매우 긍정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영광스러운 명예까지 얻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1980~90년대 미국에서 인력파견업체의 성장과정을 되돌아 본 것이다. 맨파워의 성장과정은 미국에서 철저한 이층 고용구조의 안착, 곧 수많은 미국 노동자의 고통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로 제조업 부문 인력파견사업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재벌기업이 앞다투어 사내하청의 형태로 파견노동력 활용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이런 현실에서 이명박 정부가 복합고용서비스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그 궁극적 목표는 파견노동의 전면적 확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복합고용서비스업의 육성도 궁극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금속노조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그 갈림길에서 우리가 세우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사회운동 2011년 1-2월호 특집은 이명박 정부 집권 하반기 정세전망으로 구성했다.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한반도 위기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세력의 움직임과 최근 부상한 연합정치론에 대한 평가시각을 다뤘다. 또한 민주노총의 제안으로 다시 시작된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 경과에 대한 평가도 실었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2011년 7월로 시행이 예고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에 대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방안을 집중 분석했다. 또한 진보대연합 또는 진보대통합의 근거로 제시되는 복지국가 담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이번 호부터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사회운동이 다루는 주제가 말해주듯이 어느 해와 마찬가지로 2011년에도 험난한 여로가 우리의 눈앞에 있다. 사회운동은 그 길의 동반자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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