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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6.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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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신자유주의 시대 도시의 현실

문승희 | 회원
도시는 공해, 범죄, 자살 등 각종 문제로 인해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시골지향적인 나에게 도시의 모습을 떠올리는 그 자체만으로 우울하게 만드니까 이 정도로 패스! 어쨌든 오늘날의 도시는 다양한 도시문제를 해소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의 낡은 건물, 주택, 공원등을 더욱더 화려하고 세련되게 ‘재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도시마케팅’이라는 날개를 달고 더욱 더 활발하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작 도시를 건축하고, 청결하게 만드는 건설노동자, 청소노동자, 각종 서비스직종 노동자 등의 임금수준은 변화된 도시에 발붙이기 민망할 정도니까 이들은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결국 이 책의 제목처럼 자본주의 국가에서 조성하는 파라다이스는 소수의 고소득층들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일주일에 6일 이상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피와 땀,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다 강제출국 당하기도 하는 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도시가 사유화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그려질 도시의 청사진이 사회양극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일부 지배계급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아카이브, 2011)는 이와 같은 도시의 패러다임이 전세계적으로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지를 마이클 데이비스를 필두로 각 도시를 연구하는 필자들이 반신자유주의 관점으로 집필한 책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책에서 도시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도시발전의 실천적 대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본에 의해 배제되는 도시민들과 획일화되는 도시의 모습,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각 필자들의 직관으로 엎어도 보고 뒤집어 봤다는데서 475페이지 분량의 책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18곳의 도시를 고발하고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18개의 도시는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양극화 현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크게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각 도시를 살펴볼 수 있겠다.


노동착취형 도시: 두바이, 베이징

재벌, 헐리우드 배우들이 선호하는 휴식처이자 관광지로 유명한 두바이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땅을 개간하고, 기록적인 건축물을 건설함으로서 매년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세계적 관광도시, 부동산 활성화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이 책의 첫 장에 소개되는 두바이의 경관은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갈 정도로 놀랍다. 멋대로 재현된 모습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조차도 62㎢의 산호색 군도의 환상적인 광경과 실감나는 쥬라기 공원의 공룡에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적절히 배합된 쇼핑과 오락시설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 가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환상적인 모습을 뒤로하고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두바이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알 필요가 있다. 두바이의 기적은 석유자원을 통해 이룩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석유는 국내총생산의 10%밖에 안 된다. 대부분의 자본축적은 부동산 투기, 이란-이라크 전쟁에서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수혜, 적극적인 외국인직접투자유치, 생산자서비스업 육성으로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두바이는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서도 최첨단의 업적을 이룩했다. 노동조합 결성, 파업, 일체의 선동행위가 불법이다. 민간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의 99%는 언제라도 국외 추방할 수 있는 비시민권자이다. 단 한 명의 고용주에 묶여있는 전체주의적인 사회통제 속에서 한 해에 880명의 건설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사망했다. 두바이 정부는 이를 은폐했다.
베이징은 초대형 쇼인 올림픽을 통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탈피와 경제성장을 세계인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국립극장 1개 건축물에 들어가는 3억 5,000만 달러의 예산은 중국이 1년에 빈곤 경감에 지출하는 액수의 10배에 달했다. 국제공항 제3터미널은 3만 5,000명의 건설노동자가 3교대로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일하여 만들어졌다. 정부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대규모 토지를 민간 개발업자에게 임대하여 큰돈을 벌었으며, 30만 명의 시민이 집에서 쫓겨난 채 자신의 집이 철거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개발업자가 고용한 철거용역은 실제 가치에 턱없이 못 미치는 보상금을 던지고,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물과 전기를 끊거나 고의로 집을 부수어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철거확대로 인한 박탈감과 사회적 동요, 그리고 끊임없는 철거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베이징 시민들은 무력감과 박탈감의 고통이 더해진다.
이처럼 화려한 겉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두바이와 베이징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올림픽 시설로 쫓겨난 거주민들, 값싸게 노동력을 착취한 자본의 폭력을 박태환의 금메달보다 더 유심히 바라봐야 한다.


정부주도의 계획형 도시: 니카라과 누에바 마나과, 이집트 드림랜드

중앙아메리카 중부에 위치한 니카라과와 이집트는 정부주도로 도시정책이 집행되었다. 특히 니카라과는 우리나라와 사정이 매우 비슷한데, 전체 도시 인구의 40%이상이 수도에 살고 있고, 한 대통령(아르놀도 알레만)의 취임을 계기로 대대적인 도시개조 계획이 실시되었다. 심지어는 대기업들에게 세금우대 조치를 시행하는 것까지 유사하다.
1990년에 마나과의 시장이 된 아르놀도 알레만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변모시키기 위한 도시개발 계획을 기획하였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비효율적(호숫가 산책로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고, 대성당의 아방가르드 건축물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이었고, 거리의 아이들과 행상인들은 내쫓겼다. 또 국가주도의 도시 개발과정에서 재정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민간 대기업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시 미화’의 노력은 주로 도시 엘리트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장소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투기적 투자를 행하고 있는 국가와 투자업자, 은행가들의 네트워크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 과연 누가 이 비밀의 뫼비우스의 띠를 끊을 수 있을까?


범죄형 도시: 아프가니스탄 카불,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콜롬비아 메데인

국가와 엘리트 집단이 지휘하는 예방적이고 징벌적인 테러야말로 신자유주의에 문을 열어주는 열쇠 역할을 했다. 또한 테러는 2000년 이후 이루어진 ‘평정’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 메데인이 관광객과 투자자들의 낙원으로 변신하는 데 필요한 개혁을 완성했다.
- 콜롬비아 메데인 편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쟁은 호화 부동산 현상을 낳았다. 비참한 전쟁의 현장이 저편인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미군은 군사정보와 무장 협력의 대가로 많은 군벌에게 무기와 현금을 제공했고 그 결과 무장 폭군들이 권력을 되찾으면서 그 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에 유례없는 건설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또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아편 생산을 눈감으면서 마약경제를 확장시켰다. 마약으로 부를 얻은 무장 폭군들은 유리와 타일로 장식된 화려한 대저택을 지어 자신을 철저히 보호한다. 반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카불의 재건은 지역 주민들의 우선순위와 요구가 아니라, 외국에서 온 서방인들의 선호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카불 공항과 미국 대사관을 연결하는 2.8㎞의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하는 공사가 다른 중요한 일들을 다 제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범죄와 필요충분조건의 관계인 것 같다. 경제적으로 급속히 부흥한 많은 도시들의 이면에는 국제적 엘리트 마피아와 조폭과의 연계가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보호로 지하경제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세계 범죄의 수도’라고 불리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의 경우, 지금은 비즈니스 허브와 평화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고 하지만, 지하에는 아직도 범죄가 도사리고 있었다. 800개 이상의 폭력단을 하나로 통일시켰을 뿐, 메데인의 기득권층은 비공식적으로 금품 강탈, 첩보 수집, 청부 살인, 돈세탁, 사설 보안 등의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
결국 아무리 도시외관을 완벽하게 성형수술해도 자본가들만이 이를 낙원으로 즐길 수 있으며, 더욱더 세련되어 가는 범죄 속에서 민중들은 이에 순응하여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상의 ‘범죄’들은 나아가 ‘전쟁’을 발발시키기도 하고, 이러한 보이지 않는 ‘테러’로 인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이렇듯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의 몫이다.


경계형 요새 도시: 이란 아르그에자디드, 홍콩 팜스프링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국 오렌지카운티, 미네소타, 애리조나

도시생활의 새로운 점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긁어모아서 사무실과 집에 가뒀다는 것이다. 도시생활은 공적 차원을 한층 강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적 차원을 새롭게 발명했다.
- 미네소타와 애리조나 편

각종 사람들이 섞여 사는 도시에는 다양한 도시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각종 매체에서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묻지마 살인은 이웃까지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공포를 연약한 사람이 덤덤히 견디기에는 별별 일들이 많다. 고소득층들은 자신만의 거대한 성채를 구축해야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오렌지 카운티의 파스텔색 대저택 안에서 난장판 파티를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오렌지 카운티의 별장 한 채가 7,500만 달러인 줄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생각 없이 놀고 있는 그들을 보며 돈을 벌고자하는 의지를 불태운다.
게다가 각종 미디어에서는 전통적인 도시공간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겁을 줘 중간계급들도 점점 더 넓은 자기완결적인 공간을 건설하는 움직임을 부추긴다. 보이지 않은 공포는 ‘안전’이라는 요소를 부동산의 새로운 조건으로 부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개인별, 소득별로 공간적 영역이 갈수록 명확하게 구획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는 축소되고, 불평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갈수록 판옵티콘 같아지는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고독해져만 간다.


현대인들을 위한 자위(自慰)형 도시: 일본 모리타워, 미국 산타바버라의 수도원

수도원은 이상적인 휴식공간을 제공한다고 홍보하지만 사람들이 수도원을 찾음으로써 무엇을 얻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몇몇 전문가들은 수도원 피정이 현재 인기를 끄는 것을 ‘영성 쇼핑’이라는 유행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한다.
- 수도원 편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예약하기 가장 힘든 곳은 고급 호텔이 아니라 산타바버라에 있는 성공회 베네딕투스 피정의 집인 갈보리산 수도원의 방이다. 간소한 가구만 있는 방 하나를 주말에 쓰려면 2년 동안 기다려야 한다. 이를 두고 영성쇼핑, 카페테리아식 기독교에 대한 반발이라고도 하지만, 이국적인 유행으로 보든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든 수도원은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세계로부터 도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은 다르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동네(폐쇄형 주택단지)의 매력이 요새화를 통한 안전, 동질화를 통한 질서, 선별을 통한 배타성, 향수를 통한 전통 등이라면 현대판 중세 수도원이 궁극적인 신자유주의의 낙원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오늘날 행해지는 수도원 피정 또한 풍요로운 물질만능주의 세계의 특징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세계 속에서 갈수록 각박해지는 도시에서의 스트레스는 하늘을 치솟고, 이를 버거워하는 이들은 스스로 망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은 것 같다. 무엇이 도시를 공포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일까? 폐쇄형 주택단지 같은 수도원에서 기도한다고 평화를 얻는 것일까? 안전을 얻는 것일까? 이 책의 필자들은 모두 자본주의가 직간접범이라고 고발하고 있다.


환경침탈형 도시: 브라질, 미국 몬태나, 뉴멕시코, 버지니아

얼마 전,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영화 ‘아바타’를 통해 원시자연에 대한 선망이 붐처럼 번졌다. 빌딩숲과 아파트 기지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녹음이 무성한 아마존의 모습이 지상낙원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 속에 그려진 브라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마존의 상황과는 달랐다. 브라질의 76%가 누군가에게 ‘점유’되었다. 브라질에서 자본주의는 농촌을 환금작물의 대량생산 공간으로 개편한 후 가난한 농민과 농업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
또한 생태복원을 빌미로 버려진 황무지들을 사들여 육류납품을 뒷거래하는 테드 터너와 같은 대토지 소유자들이 지금도 눈을 반짝이고 있다. 테드 터너는 CNN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케이블채널을 만든 인물로서 멸종위기종 보호기금을 창설한 ‘환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터너의 생태제국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터너의 뉴멕시코 목장은 엘크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매년 엘크 사냥을 주관한다. 또한 토착종을 복원한다면서 토착종 외의 생물은 모두 죽이고, 보호해야 할 들소를 자기 이름을 딴 레스토랑 체인(테드 몬태나 그릴)에 납품하고 있다.
도시를 사유화한 이들은 이제 자연까지 사유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최고의 환경보호주의자로 추켜세우는 것이다. 도시를 넘어 야생으로, 돈을 넘어 명성으로 뻗어나가는 탐욕의 끝은 없는 걸까?


불편한 진실, 도시에서 찾다

우리는 보통 어떤 지역에 여행을 가면, 그 ‘장소’에서 받은 인상만으로 이 ‘도시’는 좋다, 어떻다 등등 제 멋대로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반신자유주의라는 프리즘으로 세계 곳곳의 도시를 바라본다. 필자들은 도시가 형성되고 변화에 따른 화려한 현상만을 추출하지 않고, 자본주의에 의해 재편되는 도시가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불쾌하리만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우리는 이들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제대로 파악해보려 했던가’는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내 공간을 면밀하게 파악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러고 나서 어쩌라고? 바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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