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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6.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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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의 쟁점과 함의

수열 | 정책위원
2011년 3월 11일, 규모 9.1의 대지진이 발생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럼에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애초 지진해일로 말미암아 원자로 내부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이 마비된 것이 사태의 시작이었기에, 원자로 내부의 전력 시스템만 복구된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력 공급이 재개된 이후에도 사태는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악화일로

지난 4월 17일, 원자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이 제공한 로봇이 후쿠시마 원자로 건물 내부로 투입되었다. 로봇의 측정치에 근거해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이 다음날 밝힌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1호기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최대 49mSv, 3호기는 최대 57mSv였다.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가 핵발전소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의 연간 최대 피폭량을 처음에는 100mSv로, 나중에는 250mSv까지 상향 조정했지만, 원래는 50mSv다. 따라서 3호기의 경우 1시간 정도만 있어도 연간 최대 피폭량을 넘기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따라서 당분간 원자로 내부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사고 등급을 최고 단계인 7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고인 1986년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등급이다. 대기와 바다로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의 양을 합하면 앞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유출되는 방사능의 양이 체르노빌 사고 때보다 많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 과학자연맹의 수석 연구위원인 에드윈 리먼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기의 원자로가 폭발한 체르노빌과는 달리)일본은 6개의 원자로가 문제이고, 그 중 몇 개는 아마 핵 연료봉이 녹고 있다. 현장의 방사능 누출 규모는 체르노빌보다 더 클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원자로에서는 끊임없이 방사성 물질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대기로 새나가는 방사능의 양과 농도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원자로 냉각 작업의 진행도 심각한 상황이다. 노심 냉각을 위해 원자로에 쏟아 부은 수만 톤의 바닷물 때문에 핵발전소의 지반이 약해져 추가 균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원자로에 쏟아 부은 바닷물이 고농도의 방사능 오염수가 되어 발전소 배수구에 들어차, 이를 옮기지 않으면 냉각장치 복구 작업은 불가능하다. 4월 19일 도쿄전력의 발표로는 오염이 심한 2호기 터빈 건물 안팎에 고인 오염수의 표면에서는 시간당 1000mSv에 이르는 방사선량이 측정되었다. 도쿄전력은 이 중 오염이 심한 1만 톤을 우선으로 옮길 예정이지만 이 작업만도 26일이나 걸릴 전망이다. 1-3호기 터빈 건물 안팎에 있는 오염수는 지난 5일 모두 6만 톤 정도로 알려졌지만, 18일에는 67,500톤으로 수정 발표됐다. 파괴된 원자로에서 오염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4호기 원자로 건물에는 수심 5m에 달하는 대량의 오염수가 고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언제쯤 이 오염수를 모두 치우고 냉각작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의 원자로는 모두 폐쇄될 예정이다. 폐쇄 방법은 1986년에 사고가 난 체르노빌 핵발전소와 같이 콘크리트 무덤을 만드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사고 발생 7개월 후 가로세로 100m, 높이 165m의 콘크리트로 덮였다. 30만 톤의 콘크리트와 1만 톤의 철근이 투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반경 30km, 서울의 5배에 달하는 지역이 완전히 소개되어 유령도시처럼 남아 있다. 콘크리트를 공중에서 쏟아 붓는 데 사용된 대형 헬기를 포함, 작업에 투입되었던 군용 차량 등 모든 도구는 새로운 오염원이 되어 이곳에 버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폐기 방식도 쉽지 않다. 일단 콘크리트를 덮는 작업만 해도 몇 개월이 걸린다. 방사성 물질 때문에 작업은 더 어렵다. 정상적으로 운전하다 중단된 핵발전소라 할지라도 방사성 물질이 일정 공간 안에 고립되어 있어 폐기하는 과정이 힘들다. 그러나 지금은 방사성 물질이 뒤섞여 있는데다 원자로 건물 등 주변 구조물의 형체도 많이 손상되어 폐기과정 자체가 훨씬 더 복잡하다. 시기의 문제도 겹친다. 체르노빌의 경우도 사고 직후에 콘크리트로 덮은 것이 아니다. 사건 발생 후 7개월 동안 강력한 오염원을 제거한 뒤에야 콘크리트 무덤을 만들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경우는 핵연료 자체가 강력한 방사선 오염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콘크리트로 덮으면 몇십만 년 동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 위험은 줄일 수 있지만, 두고두고 인류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 수개월이 걸리는 콘크리트 작업 이전에 오염원을 줄이는 작업, 즉 핵 연료봉의 냉각과 제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무덤을 만든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사고가 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체르노빌 핵발전소 4호기의 콘크리트 무덤은 곳곳에서 균열과 붉은 녹물이 관찰된다. 석관 안에 아직도 180톤 정도의 방사성 물질이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새어나온 방사성 물질은 대기만이 아니라 땅으로 스며들어 심각한 토양 오염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콘크리트 무덤의 서쪽 벽이 무너지기까지 했다. 이로 말미암아 체르노빌에서 130km가량 떨어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는 방사능 수치가 평균의 300배가량 높게 측정되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콘크리트 석관 교체 작업을 시작했지만, 완공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공사비를 충당하지 못해 원래 2010년으로 미뤄졌던 완공 일정은 현재 기약 없이 연기된 상황이다. 유럽연합이 ‘체르노빌 25주기 원자력 안전 정상회의’를 통해 사고 지역 안정화 및 환경안전 사업에 1억 1천만 유로(약 1,650억 원)를 지원할 예정이지만, 전체 공사비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12일 저녁, 한국의 고리 핵발전소 1호기가 가동을 중단했다. 원자로 내부의 각종 펌프에 전원을 공급하는 차단기의 내부 연결 단자가 과열로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해 가동을 멈춘 것이다. 고리 핵발전소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리 원자력본부는 ‘가정집으로 비교하면 두꺼비집이 내려간 정도의 아주 가벼운 고장’이라고 말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놀란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는 않는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에 건설되었다. 1호기의 설계수명이 30년이므로, 원래대로라면 2007년을 끝으로 가동을 멈춰야 했다.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고리 1호기의 운행 중단과 폐쇄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고리 1호기의 10년 수명 연장을 승인했다. 핵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려면 수조 원이 필요하지만, 부품 교체 등 정비만 하면 되는 수명 연장에 드는 비용은 수천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리 1호기는 건설 이후 수많은 고장과 사고를 일으켰다. 지금까지 고리 1호기에서 일어난 사고는 127건으로 전체 643건의 20%에 달하는 수치다. 1990년대 이후에만도 45건이나 돼, 1980년대 가동을 시작한 다른 발전소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치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김영환 의원은 14일 라디오에 출현해 “고리 1-4호기가 전체 핵발전소 사고의 43%를 차지한다”라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2007년 정부가 고리 1호기의 수명 연장을 승인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수명을 연장해 운영 중인 핵발전소들의 예를 들었다. 그중에는 이번에 사고가 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가 난 후 정부는 한국의 핵발전소는 후쿠시마와 원자로 방식이 달라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발전소는 원래 위험하다는 얘기가 되는데,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이 필요할 때에는 ‘안전한 핵발전소’로 소개되었다가 사고 후에는 ‘우리와는 달리 원래 취약한 핵발전소’로 취급되고 있다.


과소평가된 한국의 지진 위험성

한국에서 공식적인 지질 관측이 시작된 것은 1978년이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관측된 지진은 9백여 차례이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규모 3.0 이상의 지진은 280여 회 정도 발생했다. 이 중 규모 5.0 이상도 다섯 차례 기록되어 있다. 한수원은 최근 25년간 고리 인근 지역의 최대 지진규모는 4.2로 기록되었다며, 한국 핵발전소의 내진 설계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5년이라는 기간은 한반도의 지진 안전을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통계량이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문제가 되고 있는 방사성 물질 세슘-137의 반감기는 30년이다. 이것이 통제 가능한 정도의 위험 수준이 되려면 300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플루토늄의 경우는 2만 4천 년이 걸린다. 핵폐기물의 관리까지 사고해야 하는 핵발전소에서 25년이라는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지층의 활동으로 봐도 그렇다. 지층의 활동은 공식적인 지진 관측 기간인 30년보다 훨씬 더 긴 시간대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질 전문가들은 30여 년의 지질 관측값만이 아니라 역사 자료를 통해 지진을 파악한다. 인조 21년인 1643년의 기록에는 ‘경상도에서 지진이 나 봉화대와 성첩이 많이 무너졌다. 울산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다’라고 나와 있다. 숙종 7년인 1681년에는 ‘강원도 양양에서 바닷물이 요동치고, 설악산 신흥사의 거암이 붕괴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서에 기록된 이 지진들은 규모 6.7 정도로 평가된다. 지질 전문가들은 공식적인 지진 관측이 시작되기 전 1900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6.7의 강진만 22차례 발생했다고 추산한다.
이런 강력한 지진은 역사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3월 19일 한반도에서는 규모 6.3의 강진이 발생했다. 중국 상하이에 있던 지진 관측기에 포착된 이 지진은 평양 서쪽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세계 지진 목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지질 전문가들은 일본과 중국에서 강진이 잇따르고 있어 한반도에 지진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고리 1호기는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가 되어 있다. 2007년 12월,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을 검토하기 위해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1호기의 내진 설계를 7.0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보강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공사 때문에 몇 달 동안 핵발전소 가동을 중지하는데 손실이 막대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경상도 해안 지역에는 활성단층이 있어 활발한 지진 활동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에서는 지층의 위아래 경계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단층면이 쉽게 관측된다. 지진은 이런 단층면을 따라 발생하기 쉽다. 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대규모 활성단층 지대로 평가된다. 부산대 지질환경학과 손문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수렴단층이 월성 핵발전소와 수 km 내로 굉장히 가까이 있어, 핵발전소 옆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활성단층 지대는 수도권 일대에서도 관측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활성 단층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행된 바가 없다. 지진의 위험성, 특히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도를 자랑하는 경남ㆍ북 동해안 지역에서의 대규모 지진 위험성이 심각하게 낮게 평가되고 있다.


숫자놀음에 불과한 사고 확률

1975년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자로 안전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 책임자 노먼 라스문센의 이름을 따 ‘라스문센 리포트’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원자로 사고의 확률을 화재나 항공기 사고 등 여타 다른 사고의 확률과 비교함으로써 원자로의 안전성을 보여주었다. 이 보고서는 1969년 인구를 기준으로 100기의 원자로가 운영되면 원자로 사고로 사망할 확률을 50억분의 1로 평가했다. 미국의 핵 산업계는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원자로에서 노심 용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양키스타디움에 운석이 떨어질 확률 정도에 불과하다’라거나, ‘수 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핵 산업계의 선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1979년 3월 28일, 미국의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의 TMI 2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몇 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다고 했던 사고가 4년도 채 안 되어서 발생한 것이다. 냉각수 조절기능의 고장으로 원자로가 가열, 노심이 용해되고 방사능 물질이 방출되었다. 인근 주민 10만여 명이 대피해야 했다. 스리마일 섬 사고로 미국은 지금까지 단 1기의 핵발전소도 추가로 건설하지 않았다.
인류가 처음 핵발전소를 시작한 것은 1954년 6월이며, 상업용 원자로는 1956년 10월 영국에서 처음 가동되기 시작했다. 발전용으로 핵 기술을 사용한 역사는 6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 기간에 민수용 핵 시설에서 방사능이 외부로 대량 유출된 사고만 해도 5건에 이른다. 핵 산업계가 선전하는 핵발전소 사고 확률은 한낮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통제 불가능한 기술

100%의 안전은 있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지극히 복잡한 핵발전소 시설에서 사고를 발생시킬 수 있는 요인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설계자인 오구라 시로씨는 지난 3월 16일 도쿄의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설계 당시 지진해일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말했다. 규모 8.0의 강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그보다 더한 지진과 이와 함께 발생하는 지진해일에는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의 주요 핵발전소 사고를 보더라도 그 요인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러나 아주 작은 사고에서 시작되었더라도 핵발전소 사고가 미칠 영향은 너무나 치명적일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서방의 정부들과 핵 산업계는 소련 정부의 사고 은폐 시도와 함께 체르노빌 핵발전소 자체의 문제를 대형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격납 용기와 같이 방사능의 유출을 막아줄 수 있는 차폐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의 핵발전소는 다중의 차폐시설을 갖추고 있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차폐시설도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수소폭발과 압력제어장치 폭발 때문에 격납용기가 파손되었고 방사능 유출은 막을 수 없었다. 또한, 추가적인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서 격납 용기에 구멍을 내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증기를 끊임없이 배출해야 했다. 다중 차폐시설은 이제는 원자력 안전 신화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사고 수습의 어려움도 한편에서 핵발전 기술의 통제 불가능성을 말해준다. 사고 초기, 헬기로 원자로에 바닷물을 쏟아 붓는 작업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 장면을 보면 산불 진압 때처럼 헬기가 원자로에 근접해서 정확하게 물을 붓지 못하고 이동하면서 흩뿌려, 물이 원자로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헬기 운전자의 피폭 위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사능이 기계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실리콘에 영향을 줘 직접 회로의 오작동을 일으킨다. 따라서 헬기도 방사능을 뿜어대는 원자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로봇 강국이라는 일본이 미국이 제공한 로봇을 원자로 내부에 투입한 것도 일본에는 방사능에 견딜 수 있는 로봇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핵발전 기술의 통제 불가능성은 단지 사고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핵발전을 하고 남은 폐연료봉인 고준위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핵폐기물은 방사능 수치가 통제 가능한 수치로 떨어질 때까지 격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플루토늄-239의 경우 반감기만 2만 4천 년에 달한다. 이러한 과정을 10번은 거쳐야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위험 상태’가 된다. 이에 비한다면 콘크리트 차단벽의 수명은 순식간에 불과하다.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기고 지하수가 스며들면 폐기물이 들어 있는 드럼통을 부식시킨다. 이렇게 유출된 방사능은 주변 지하수와 토양, 바다를 오염시키게 된다. 또한, 폐기물을 담고 있는 드럼통의 부식도 문제다. 격리된 드럼통은 내부 습기나 압력 때문에 점차 부식되고 망가져 방사능이 유출되게 된다. 2003년 일본 로카쇼무라 저준위 핵폐기장에 반입된 15,000개의 저준위 핵폐기물 드럼통에서 구멍이 발견되어 이를 철판으로 때운 적이 있다. 조사 결과 총 4,747개의 드럼통이 부식되거나 구멍이 생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염은 세계화되지만

로봇에 대해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자. 애초 프랑스, 독일, 중국이 로봇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일본은 계속 거절했다. 또한, 미국의 아이로봇사가 3월 23일에 로봇 4대를 제공했음에도 25일 정도가 지나서야 실제 투입되었다. 왜 일본 정부는 여러 나라의 제안을 뿌리쳤는지, 로봇이 마련되었음에도 상당한 시일 동안 어째서 투입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각종 탐지 장비를 갖춘 다른 나라의 로봇이 핵발전소 내부를 관측하면 후쿠시마 사고의 실제 오염 정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대기 중에 방출되는 방사능 수치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상태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닷물의 오염도 심각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자로 냉각을 위해 쏟아 부은 물은 고농도 오염수가 되어 핵발전소 내부에 들어찼다. 고농도 오염수가 흘러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나마 오염 농도가 낮은 물을 그대로 바다에 들이붓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앞바다에서는 방사성 세슘이 기준치의 110만 배가 검출되었고, 인근 해역에서 잡힌 까나리에서도 방사성 세슘이 검출되어 전량 폐기되었다. 일본 어민들은 자신들과 어떠한 상의도 없이 방류를 강행했다며 분노했다. 오염수의 바다 방류는 일본만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일본 어민들은 물론 주변 국가들에 어떠한 사전 설명도 없이 방류는 강행되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사태는 악화되었고, 그만큼 유출된 방사능의 양도 늘어났다. 이는 일본만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 세계 여러 나라에 그만큼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오염과 피해는 세계화되지만, 그만큼의 책임을 찾아볼 수 없고, 그것을 강제할 수도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가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도 일본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염수의 방류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다른 나라에 피해가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만 한다.
일본 정부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부와 핵 산업계, 핵 산업에 의지하는 학자들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당연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문자메시지와 SNS를 통해 방사성 물질의 한국 상륙 가능성을 알린 사람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검거했고, 편서풍을 믿으라고 강요하며 방사능 비의 가능성을 부인했다.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뒤에는 ‘요오드 검출 기록이 없다’라고 거짓말하다가 하루가 채 안 되어 한반도 전역에서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됐다고 시인했다.
핵과 관련된 기술은 철저하게 통제된다. 핵발전소나 핵무기는 국가 기밀과 시설을 보호하고, 절멸의 전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민중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가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 과정에서 민중의 의사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그렇게 보호된 핵발전소가 사고를 일으켜 민중들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순간이 와도 사건 규모를 숨기려는 일본 정부나, 원자력 신화가 깨어질까 두려워하는 한국 정부처럼 민중들은 제대도 된 정보조차 받지 못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말하고 있는 것

얼마 전 유튜브에는 일본 미나미소바시 시장의 동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되었다. 물자반입이 정말 어려워 고통을 겪고 있어 사람들의 지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 지역으로부터 20km까지를 소개 범위로 지정하고, 미나미소바시가 속한 20-30km 지점은 실내대피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2만여 명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고립되었다. 방사선 피폭 위험 때문에 정부도, 자원봉사자도 찾아오지 않았다. 주민은 방사능 공포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미나미소바시의 주민이 겪고 있는 공포와 생존의 위기는 핵발전소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인류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후쿠시마 사고는 진정되겠지만, 그 영향은 최소 수십 년간 남아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후대에까지 피해를 줄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지진과 지진해일이 겹쳐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는 수십만 년에 한 번 나올 수 있다는 확률 계산은 의미 없는 숫자놀음일 뿐이다. 사고는 일어났고,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그 피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찬핵론자들이 주장하던 훌륭한 안전 시스템은 무력했다. 기실 안전장치는 사고가 일어나봐야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사전에 점검해 완벽하게 작동하게 한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인간이 예측하거나 대처하기 어려운 자연재해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 당장 내가 사는 땅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부득불 우리는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핵 산업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수십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까지 대비하면 핵발전소의 수지가 맞지 않을 지경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더는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서라도 안전 설비를 강화해야 하는가?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엄청난 세금이 투입될 것이고, 전력 생산 비용이 올라가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에 그것이 반영될 것이다. 설사 그것을 감내한다고 하더라도 사고 요인을 100% 통제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우리가 진정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분명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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