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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9-10.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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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모두에게 건강을!

제3차 민중건강총회와 보건의료운동의 세계적 관점

김동근 | 보건의료팀
7월 6일부터 11일까지 6일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제3차 민중건강총회(People’s Health Assembly 3)가 개최되었다. 2005년 7월 에콰도르 쿠엥카에서 열린 2차 총회 이후 7년 만에 열린 이번 총회에는 전 세계 90여 개 국가에서 800명이 넘는 보건의료 및 건강부문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바로 지금 모두에게 건강을’이라는 구호 아래 6일간 전체토론과 부분토론, 수백 개의 워크숍이 진행되었으며, 마지막 날에는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호소문을 채택하여 발표하고 케이프타운 시내를 행진하는 것으로 전체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민중건강총회의 시작과 현재

민중건강총회는 가시화된 보건의료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중이 주도하는 대안적 보건의료를 모색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78년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공동주최로 열린 ‘일차의료에 대한 국제회의’에서 ‘2000년까지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는 알마아타 선언이 채택되었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조인했다. 이 선언문은 건강을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사람들이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중과 지역사회가 참여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일차 보건의료 중심의 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를 거치면서 중심부 국가들은 일차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 보건의료가 아닌 시장 지향적 의료개혁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초민족자본에게 보건의료개혁의 주도권을 부여함으로써 보건의료에 대한 민중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했다.
이에 알마아타 선언의 이념을 복원하고 보건의료에 대한 민중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1998년 세계건강총회(세계 각국의 보건부 장관들이 모여 건강정책을 논의하는 WHO 개최 회의)의 개최를 계기로 각국의 보건의료관련 사회운동세력이 집결하는 세계보건의료운동의 세력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년여의 논의와 준비 결과 2000년 12월 방글라데시에서 제1차 민중건강총회가 개최되었다. 총회에는 90여 개국 1400여 명이 참여하였으며, 알마아타 선언의 이념을 현실화할 것을 요구하는 민중건강헌장(People’s Charter For Health)을 채택했다.
제1차 민중건강총회의 준비 및 개최 과정의 성과로 민중건강운동(People’s Health Movement)이라는 국제연대체가 조직되었다. 민중건강운동은 세계적 차원의 보건의료운동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민중건강총회를 조직,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2002년에는 제2차 세계사회포럼의 사전 행사로 ‘민중의 건강을 방어하기 위한 국제포럼’을 개최하였으며, 2004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부터는 ‘건강을 위한 세계사회포럼’을 조직하면서 민중건강운동은 대안세계화운동의 일부로 자신을 규정하였다.
2차 민중건강총회는 2005년 7월 에콰도르에서 개최되었으며, ‘바로 지금 모두에게 건강을’이라는 1차 총회의 슬로건을 바탕으로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의 폐지, 세계보건기구의 개혁,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요구했다. 또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대중의 발언과 요구를 지원하고, 각국의 보건의료운동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민중건강대학(International People’s Health University)이 설립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올해 제3차 민중건강총회가 열린 것이다. 총회의 주요 참가국은 주변부 국가였으며 특히 총인원의 30% 이상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참가했다. 참가 단체는 NGO, 지역사회기반 조직, 노동조합, 전문직연합 등의 사회단체들과 각국 정부, 정부간 기구, 학술기관 등으로 이루어졌다.

제3차 민중건강총회

제3차 민중건강총회 및 연관된 활동들은 다음과 같은 목표 하에 이루어진다.

1) 건강과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요소에 대해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토대를 만든다.
2) ‘모두를 위한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전 세계의 활동가들 간 학습과 교류를 통하여 연대를 강화하고 공유를 촉진한다.
3)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개입하기 위한 조직화된 활동을 만들어내고 건강과 보건의료에의 보편적이고 공평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구조와 원동력을 만든다.
4) 정책을 생산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정책 실현을 감시하고 추동하며, 보건의료체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보건의료의 거버넌스(governance) 구축을 위한 생산적 대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대한 시민사회와 활동가의 역량을 강화한다.
5) 활동 및 그 경과에 대한 성찰, 그리고 필요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의 계획과 공고화를 통해 민중건강운동을 더욱 강화한다.
6) 우리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활동가들이 ‘모두를 위한, 더 공정하고 더 나은 건강’을 위해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
7) 전 세계 보건의료 및 건강부문 활동가들의 성취와 업적을 확인한다.
매일 하나의 주제로 진행된 전체토론에서는 세계적 관점에서의 건강의 정치적경제적 배경, 건강을 파괴하거나 향상시키는 사회적물리적 환경, 보편적 보장과 평등이 보장되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보건의료체계, 건강운동의 실천전략 등을 주제로 전 세계의 보건의료 활동가들이 보건의료체계의 성공 및 실패 사례를 공유하고 건강을 파괴하거나 향상시키는 여러 요인들에 대해 분석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실천 방안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부분토론은 전체토론의 내용을 보충하거나 보완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자체적으로 조직된 워크숍들은 각종 주제들에 대해 공통된 관심을 가진 여러 단체들이 교류하며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또한 총회 기간 동안 다큐멘터리전과 사진전이 계속되었으며 저녁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마지막 날에는 호소문이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호소문의 주요 내용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금융, 생태 및 식량 위기와 그 위기를 넘어서 평등한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구성되었다. 이어서 열린 케이프타운 시내 행진은 노래, 춤, 구호 등이 어우러졌으며 각 사안별 부문별 홍보도 진행되었다.

민중건강헌장과 케이프타운 호소문

2000년 제1차 민중건강총회를 통해 채택된 민중건강헌장은 보건의료 및 건강에 대한 민중건강총회와 민중건강운동의 기본이념을 담고 있다. 헌장은 건강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로 규정하고, 건강 위기의 핵심적 원인으로 세계화와 정치적경제적 억압을 지목한다. 따라서 건강의 실현을 위해서 불평등빈곤착취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개선과 건강을 위협하는 핵심 세력인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국제기구와 초민족자본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구체적 방안으로 지적재산권체제의 변혁, 빈곤국가의 외채삭감,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투기적 이동을 규제하는 토빈세 도입, 여성해방과 여성권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의료 및 지역개발에 대한 민중의 참여, 빈곤해결을 위한 민족적국제적 지원 등을 요구하며, 동시에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일차 보건의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의 구축을 위한 행동계획을 제출한다.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열린 이번 제3차 민중건강총회에서는 케이프타운 호소문을 통해 건강 위기의 원인에 대한 더 진전된 인식이 제시된다. 호소문은 국가 내부 혹은, 국가들 간의 건강불평등을 건강의 위기로 사고하고, 이것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모델로 드러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또 호소문은 신자유주의는 불공정하고 비대칭적인 세계경제의 통합, 실물경제에서 벗어난 규제받지 않는 금융자본의 극적인 팽창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증가시켰다고 주장하며,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정부들이 취한 긴축정책은 보건의료와 복지에 대한 지출의 감축을 초래하였을 뿐 아니라 위기를 불러온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을 강화했으며, 금융자본가 계급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호소문에서 제시하는 대안 역시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호소문은 돈의 액수에 따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개인에게 공평한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제기구의 개혁이라는 대안에서 더 나아가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소비, 대안적 무역협정과 금융협정, 노동자 관리기업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요구한다. 보건의료체계에 대해서도 더욱 구체적인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는데, 보건의료체계가 보편적, 통합적, 포괄적이고 성 인지적이며 청소년에게 친화적이며 무상으로 제공되는 일차의료서비스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적 보건의료체계의 상에는 적절하고 충분한 공공재정의 확보, 보건의료 인력의 국외 유출 차단, 대중의 참여 보장, 생태학적 원칙 및 실천과 양립 가능한 보건의료체계 등도 포함된다. 특히 호소문은 보편적 건강보장이 책임성 있는 공공적 공급체계와 분리되어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천계획으로 민중건강총회가 제시하는 방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치·기업·금융 엘리트들로부터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민중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폭넓은 사회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중건강운동은 세계 각지에 지역모임을 건설하고 확장함과 동시에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건설할 것을 천명한다. 두 번째는 대안적 비전, 분석과 담론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수단으로 민중건강운동은 <세계건강감시>(Global Health Watch)를 활용하여 세계의 건강 현황에 대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분석을 수행할 것, 대중교육과 역량강화, 주체화의 수단으로서 국제민중건강대학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킬 것을 제시한다.

신자유주의와 보건의료의 위기, 문제의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의 위기는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가내, 국가간 건강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의료비용의 상승은 의료사유화 정책과 함께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건강권이라는 개념은 수사적으로만 사용되며 실제로는 의료시장의 이윤을 위해 부차화되고 있다. 이러한 보건의료의 위기는 식량, 생태, 경제, 정치적 위기를 포함하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인식과 분석을 통해서만 보건의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민중건강총회에서 제시한 대안은 새로운 경제 환경과 경제 시스템, 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정치적경제적 결정기구들, 세계건강기구의 개혁과 공정한 보건의료체계의 통합적인 변화를 포괄한다. 이러한 대안은 어느 한 단위, 어느 한 지역에서의 단발적인 투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국가, 지역의 보건의료 활동가들이 함께 연대하면서 세계적인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보건의료 및 건강운동의 국제연대를 현실화하고 있는 유의미한 활동으로서 민중건강운동과 민중건강총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케이프타운 호소문은 남한 보건의료운동의 쟁점과 과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민중건강총회는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들이 겪고 있는 건강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폭넓은 운동들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보편적 건강보장이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상품화된 보건의료 시스템 하에서는 보편적 건강보장이 달성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호소문은 보편적인 의료보장은 반드시 책임성 있는 공공적 공급체계의 구축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호소문에는 민중건강운동에 새로 합류하고 제3차 민중건강총회를 주최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초민족적 법인기업이 토착민을 쫓아내고, 식량위기로 인한 기아와 영양실조가 원조, 구호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등에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민중건강총회는 대안적 사회에 대한 명확한 상이 부재한 채 다양한 영역의 운동세력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활동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케이프타운 호소문을 보더라도 새로운 경제학과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전략에 있어서는 UN 기구들의 활용, 세계보건기구의 권한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새로운 경제시스템,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구체적인 조건을 묘사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전략과 이념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민중건강총회가 다양한 조건과 지향을 가진 여러 운동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객관적 조건으로부터 비롯되는 한계일 것이다.
민중건강총회는 대안적 보건의료운동의 흐름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시키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이 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과 결합하면서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세계적 보건의료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보건의료에 대한 민중의 자기결정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적 보건의료 자체를 건강권이 보장되도록 변혁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의 보건의료운동 역시 민중건강운동의 문제의식을 참고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각국의 보건의료에 끼치는 영향을 공유하고, 신자유주의에 맞서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한 전 세계 민중의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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