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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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옷로비수사관으로서의 외도를 마치고

김도형 | 편집위원, 변호사
지난 20세기가 저물어가며
새천년이 하루하루 카운트다운을 하던 시기, 나는 뜻하지 않게 특별검사팀에 특별수사관으로 합류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난 한 해를 이상하게 시끄럽게 했던 옷로비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었다. 사회운동 한 번 해보겠답시고 사회진보연대다, 진보네트워크다, 진보라는 이름 들어가는 단체에는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었지만 실제 하는 일은 별로 없던 차에, 그래도 외도였다면 외도였다. 그러나, 비록 2개월밖에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내가 없더라도 진보운동진영이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문제없이 굴러가는 것을 보니, 나의 존재와 위치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옷로비 특검팀에 합류하는
과정에서는 파업유도 특검팀에서도 나에게 스카웃 공세를 하여 뜻하지 않게 주가를 올리기도 하였다. 현재 프로야구선수협 문제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프로야구 선수들이 자기가 원하는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양쪽 특별검사의 담판에 의해서 특별수사관으로서 일해야 할 곳이 정해져 버렸던 것이다. 이에 술자리에서 내 처지를 한탄하니, 술 취한 선배운동가들이 '김도형이는 파업유도 쪽에 가야 하는데 큰일났다'며 술주정을 하고 나 역시,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는 주사를 부리기도 했다.



특별수사관의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면이 많았다.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었던 것 같다. 밤늦게 야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일요일에도 나가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옷로비 의혹사건을 제대로 풀어달라는 것이 국민의 염원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었다. 자유로운 변호사 생활에 익숙한 몸으로, 상하위계의 질서가 존재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 또한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곳도 특별하지만 '검사'라고 하여, 파업유도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바로 그 폭탄주가 또한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거짓말하는 아줌마들과
싸울 고충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던 바였으나, 아줌마들이 내뱉는 거짓말의 정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 즈음, 고문경찰 이근안이 자수하자 그 진정한 자수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이야기인즉, 옷로비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마지막으로 실력을 발휘해 보려고 자수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농담이지만, 진지한 분위기 아래 오고갔다. 소위 인권변호사들이라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특검팀에서 말이다. 정말 검사 안한 게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특검반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은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무죄 추정의 원칙' 아래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인권 보장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검경을 비판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아파서 조사 받으러 나오지 못하니 다음날 소환해 달라는 사람에게, 어디서 꾀병을 부리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는 모습은 순간적으로 섬뜩하기까지 하였다.


국민들이 갈망하는 의혹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취지와는 달리, 제대로 수사하지 말라는 독소조항이 가득한 특별검사법의 생태적 한계 속에서 그나마 옷로비 특검팀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옷로비 특검팀의 성과는, 어느 정도 걱정은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파업유도 특검팀을 질타하는데 일조를 하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보다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며 많은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추태를 새삼스레 실감한 일이기도 했다. 옷로비 의혹사건의 발단은 김태정 검찰총장 처인 연정희가 저지른 행각을 주위에 퍼뜨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자신에 대한 구속만은 막아보려고 권력층에 말 그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이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이 검찰 내부에서 구속 방침이 결정되자 김태정 검찰총장의 낙마를 노리고 행한 것이다.
과거 한 때 장관의 목숨을 좌지우지한 적도 있었던 재벌의 처지에서는 검찰총장의 옷을 벗기기만 해도 구속은 면할 것이란 발상을 하는 게 너무나도 쉽고 당연했으리라, 이해가 안되지는 않았다.
물론 그다지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었음에도, 사건의 의혹이 증폭되도록 사태를 악화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검찰의 자기 식구 감싸기였음은 다들 알고 있는 바이다. 특검팀에 함께 참여하였던 현직 검사 중 한 사람은 "공안부가 검찰 망신을 시키기는 했어도 특수부가 이러지는 않았는데..."라며 자조와 한탄을 하기도 했다.
현직 검사라는 신분 속에서 많은 고충이 있었을 터인데 꿋꿋하게 검사의 정도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검찰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 두 가지.
첫째, 그만한 나이 잡수신, 체통 있어야 할 장관부인들이 밍크코트에는 왜 그리 호들갑을 떨었는지 아직까지 내복도 입지 않고 그만저만한 추위는 견디고 지내는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렇지만 사진으로나마 본, 문제의 호피무늬 반코트는 정말 예뻤다. 그나마 나이든 양반들에게는 어울린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내 애인이 입고 다니면 정말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하면서 옷장수 아줌마한테 잘 해줬으면 거저 얻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검찰총장 부인에게도 공짜로 주려 했다는데 내 애인한테는 공짜로 주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음직하다.
두번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증고발 요청에 의해서 내가 관련자료를 갖고 국회를 방문했을 때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내가 옷로비 특별수사관이라는 말을 듣고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게 좋아하면서 과분하리만치 칙사 대접을 해주었는데, 그때는 정말 내가 도대체 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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