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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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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금지 위헌 결정에 대한 생각

박영진 | 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
저소득층 자녀에게 과외비용을 지원한다?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과외를 금지한 학원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와 제22조 1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주요한 요지는, 헌법은 부모와 자녀에 대한 교육권 및 재산의 자유로운 사용과 처분을 보장하는 재산권 조항을 통하여 부모가 자신의 인생과 교육관과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서로 다른 정도의 금전적 부담을 하는 것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과외금지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훼손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개성이나 창의성 다양성을 지향하는 문화국가원리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고교진학률이 급격히 상승,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온 사회를 뒤덮은 과외열풍에 대해,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이른바 {7·30교육개혁} 즉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의 하나로서 과외금지를 전격 발표했다. 그해 8월부터 재학생 과외교습과 학교보충수업이 전면 금지됐고 단속반까지 편성, 국가적으로 불법과외를 단속했다.

그러나 이 역시 불법비밀과외 등으로 음성화되고 위험부담에 따른 과외비의 고액화를 낳게 되면서, 과외전면금지는 그 이후 예·체능계 및 기술·기능계, 취미활동 과외교습 허용(1981년), 하위 5%의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보충수업 허용(1983년), 고교 3학년 겨울방학중 외국어학원 수강허용(1984년), 학교 보충수업 부활(1988년) 등으로 해제의 폭이 넓어졌다. 1989년에는 대학생 과외와 방학중 학원수강이 전면허용됐고, 1991년에는 학기중 학원수강이, 1996년에는 대학원생 과외가 각각 합법화됐으며, 이번 현재의 과외금지 위헌결정으로 과외는 20년 만에 사실상 전면허용되었다.
정부는 과외허용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외교습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과외등록제와 신고제 등을 도입하여 고액과외를 근절할 것이라는 입장이고 문용린 교육부장관은 "저소득층 자녀 등 과외소외계층이 영어회화교습 등을 받을 경우 정부가 예산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하겠다"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을 정도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학습권을 규제하는 것은 분명 헌법의 기본정신에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과외허용은 단순히 개인의 학습권을 인정해 주는 차원만으로 바라볼 수 없다.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과외는 순수하게 개인의 적성과 특기를 개발시키거나 개인의 심화학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내신을 관리하는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과외합법화가 실시된 배경

신자유주의 시대에 과외를 합법화한다는 것이, 순순히 음성적 과외를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과외합법화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려는 의도로 파악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인 신지식인 양성정책, 열린교육, 7차교육과정정책의 일관된 핵심은 경쟁력을 지닌 '두뇌인력' 양성이다. 이를 위해 초등교육부터 컴퓨터교육, 영어교육 등에 많은 비중을 두어 정보화·세계화에 대비하도록 하였으며 균형적인 교육보다는, 자신이 경쟁력을 삼을 수 있는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교육으로 중심이동을 하게 된다. 특히 7차교육과정은 공통교육과정을 축소하면서 선택중심 교육과정으로 전환하고 우열반 편성으로 능력별 교육과정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과도한 무한경쟁을 동반하게 되고,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사교육(과외학습, 학원 등)-이 요구된다. 영어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외 보충수업으로 영어교습이 필요하다라는 문용린 교육부 장관의 발언 속에서도 드러나듯이, 학교교육을 넘어 개인이 가진 '능력과 부'로 심화학습을 하라는 것이다.
2002년부터 대학입시에서는 20% 이상 특기생, 경시대회 입상자가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게 된다. 벌써부터 경시대회에서 상받기 위한 과외가 생겨나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보충수업폐지, 수행평가 실시 등 일련의 교육정책들도 오히려 또다른 과외를 부추긴다.

과외, 글자 그대로 그 의미는 학과외 교육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재 열풍인 과외는 순수하게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교육의 사적영역을 배우는 의미가 아니라, 학교교육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기제이다. 그러므로 과외 합법화는 교육복지를 포기하면서 자본이 필요한 두뇌인력, 엘리트 인력을 효과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과외 전면허용, 무엇이 문제냐고?

사교육비의 부담 가중

과외가 전면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에도 초·중·고교생의 과외비 지출총액은 6조 7,710억 9,800만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는 교육부 예산의 35% 수준이고 학생 1인당 연간 평균 86만 5,000원, 1가구당 192만 5,000원을 과외비로 쓴 셈이다. 과외가 전면허용되면 고액과외를 제외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교육비가 사교육시장을 형성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내신관리를 위하여 수행평가 과외, 교과목 과외가 지금보다 훨씬 활성화될 전망이고 대학입학을 위하여 경시대회를 위한 과외가 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과외 전면허용에 따른 사교육시장의 확대와 교육상품의 홍수 속에서 민중들은 사교육비의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교육상품의 다양화와 차별화 속에서 교육기회의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벌써 인터넷사이트에 과외를 알선하는 사이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고, 사교육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비효율적인 교육구조

과외나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의 대부분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것들인데, 수월성이 높은 사교육에 점점 익숙해지는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 점점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학교에서 놀고 자고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더라도, 과외나 학원에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외나 학원의 교육이 심화학습이나 보충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학교교육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인 구조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구조가 마치 공교육을 대체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다.
이러다간 학교는 개인별로 쌓은 사교육의 실력을 평가받는 장으로만 전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학교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또한 개인별 교육과정의 한계를 극복하고 집단적 교육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공동체성을 익히는 유효한 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교육의 확대로 인하여 학교교육의 의미가 왜곡된다면 자칫 학교교육의 소중한 유산을 잃을 수도 있다.

개인의 발전만 바라보는 개체주의 교육관

열린교육, 자기주도적 학습에서 보여준 개체주의 교육관의 문제는 과외전면허용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진행되는 과외는 개개인의 발전만을 지향하지, 다른 교육적 의미는 없다. 때문에, 과외가 중심적인 교육의 장으로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외전면허용은 지금보다 더욱 사교육의 비중을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집단적 교육과정, 공동체성이 경시될 수 있다.


과외금지 위헌결정, 그 본질은 무엇인가

과외를 허용하게 된 법률적 판단근거는 자녀교육권, 재산처분권, 인격발현권, 직업선택의 자유권이었다. 과외허용과 기본권, 교육권의 보장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만약 과외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형태가 아니라, 개인 교습으로서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을 남에게 전수하는 기회가 되고 사교육시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권으로써 의미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과외처럼 대학입시의 준비기관의 위상을 갖는다면 기본권과 교육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직도 이 사회에서는 보장받아야 할 여러 권리들이 있다. 노동권, 교육권, 여성권, 인권 등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써 이루어져야 할 기본권들을 뒤로 한 채, 과외라는 사안에 들먹이는 갖가지 좋은 이유들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적 교육시스템을 관철하기 위한 허울좋은 명분일 뿐이다. 또한 과외허용에 직업선택의 자유권리라는 근거를 내세운 데에는 실업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고학력 실업자들에게 임시방편으로 일자리를 주며 실업의 위기를 관리하려는 국가적 의도가 엿보인다.

진정한 의미에서 필요한 과외는 자본의 논리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부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배움의 장이 열려 있는 형태로 과외는 자리잡아야 하며, 자본의 논리에 밀려 폐기처분되고 있는 가치있는 지식들이 재교육되는 과외가 되어야 한다.
또한 과외가 진짜 필요한 사람은 초·중·고등학생들보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있는 일반시민들일 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배울 기회가 적었거나, 지금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진정한 과외이다.
주제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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