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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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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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을 걷어내는 민중의 평화투쟁

이소형 | 조직교육부장
5월 4일, 처참했던 폭력진압은 전쟁기지를 만들기 위해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일종의 ‘전쟁’이었다. 사방곳곳에서 수백 명의 전투경찰이 방패와 곤봉을 내리찍으며 운동장으로 들이닥쳤을 때, 노래를 부르며 연좌해있던 시민들은 눈을 의심했다. ‘반미폭도’로 매도된 학생과 노동자들은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에 있어 다만 ‘적’에 불과했기에, 머리가 깨지고 이빨이 부러져 피를 흘리면서 개처럼 끌려나왔다. 한 차례 유혈진압으로 끝나자 국민을 적으로 삼아 진압작전을 펼친 공권력은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마치 해치워야 할 한바탕의 일손을 끝낸 여유로움으로. 공권력의 점심시간은 융통성도 없이 철저하여 오히려 웃음이 나는 상황이었다. 다시 시작된 ‘작업’은 물대포를 쏘아대며 건물 안의 시민들을 군화로 짓밟고 끌어내는 일이었다. 불과 30분 만에 대추분교는 무너져 폐허 더미가 되었다. 대추리 골목골목 선연한 핏자국이 흩뿌려졌던 오후에, 자신의 키만 한 긴 곤봉을 든 군인은 70살 할머니를 논바닥으로 밀어제치고 25Km의 철조망을 세워갔다. 5월 4일은 저물었고 평화공원 어스름에 610일차 주민촛불이 밝혀졌다.

국방부가 주민과의 대화의사를 밝힌 지 닷새만의 일이었다. 국방부는 농사를 중단하고 공사를 막지 말라는 조건 아닌 조건을 내세우고는 대화의 파기는 범대위의 책임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쳤고 지배세력의 여론 조작이 시작되었다. 강제집행에 군부대 투입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폭로되었으며, 이 어이없는 군사작전이 몰고 올 폭력을 중단하고 사태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즉각 대화에 나서라는 주장은 범대위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평택전쟁기지가 지배세력의 전략적 이해의 산물이며 그 이해가 민중의 평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군사보호구역’의 철조망을 인정할 수 없었다. 5월 5일 1차 범국민대회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복종행동으로 이어졌고 철조망을 끊고 무장한 군인에게 항의하며 우리가 일군 논밭을 돌려달라는 상식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지배세력은 사태의 본질을 치밀하고 철저하게 은폐했다. 방송과 신문은 일제히 ‘반미폭도세력’인 범대위와 주민대책위의 요구가 애초부터 달랐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90여 가구 2백 명“의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영농행위에 대한 보상‘이고 범대위의 요구는 주한미군 철수와 반전반미이기 때문에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각본을 짜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5월 5일 들판의 철조망을 뚫고 군인과 충돌한 ’반미시위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사태의 핵심문제로 등장시키고 있다.

폐허 위에 평화의 깃발을 꽂다

부서진 대추분교 폐허 위에 누군가 ‘평화’라는 글씨가 쓰인 깃발을 꽂았을 즈음, 군부대와 철조망을 용납할 수 없는 한국의 국민들은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평택 전쟁기지 확장을 막아내고 올해에도 농사짓고 살아가야 한다는 주민들의 주장을 ‘주민보상문제’로 일축시켜버린 지배세력은 스스로의 논리적 허점을 불법적인 원천봉쇄를 자행하는 것으로 드러내고 있다. 국민을 적으로 한 군사작전의 기억이 언론의 매도로 묵살되고 있는 동안 범대위 투쟁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서울, 경기 부산, 대구, 전북, 경남, 울산, 대전, 충남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와 규탄투쟁이 벌어졌다. 5월14일 분노에 찬 7천 명의 대오는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본정리 입구에서 2차 범국민대회를 진행하였다.1)
그러나 7천명의 시민들은 지배계급이 쳐놓은 ‘불법’의 저지선을 넘어서지 못했다.2) 국민을 적으로 삼은 국가의 군사작전은 맨몸뿐인 국민을 치떨리는 공포로 몰아넣었고, 법의 허울에 의존한 평화/폭력이라는 이데올로기전은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국민의 분노를 스스로 검열케 하였다. 창조적이고 다채로운 대중의 불복종 행동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5월 4일 이후, 노무현 정부는 여론전을 펼치며 ‘폭력과 불법을 행한 시위대’를 고립시키고 동시에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평화시위는 보장하겠노라며 대중의 분노를 관리하려 했다. ‘반미를 주장하는 세력’이 현행법이 허용하는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사태해결의 출발점이라고 호도했다. 그러나 폭도로 매도된 시민들에게 법이 허용한 ‘권리’란 사방이 전투경찰로 둘러싸인 제한된 장소에서 주어진 시간에 집회를 마치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단 한걸음 분노를 행동으로 옮겨놓겠다는 대중의 의지가 표명되는 순간 ‘시민의 권리’는 순식간에 박탈되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시민들은 폭도로 규정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시민의 권리’에 군부대를 철수하고 농사를 보장하라 요구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유혈진압에 대한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쟁은 또다시 준비되고 있다. 무너진 대추리와 도두리의 평화 마을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경찰은 이를 차단하려 원천 봉쇄를 강화할 것이다. 주민들의 트랙터는 또다시 황새울 들판과 전국을 누빌 것이며 국방부와 법원은 또다시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6월 18일 3차 범국민대회와 7월 9일 평화대행진으로 민중들은 다시 대추리로 전진해 갈 것이며, 10월 말로 예정되어 있는 주민들의 강제퇴거를 위해 군부대는 또 다시 군사작전을 준비할지도 모른다.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한국정부의 폭력은 가차 없이 계속될 것이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반대하는 민중의 요구를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그런 점에서 모순적이다. 철조망 설치로 인해 올해 농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방부는 최근 주민대책위와 ‘조건 없는 대화’를 하자며 공문을 보내놓은 상태이다. 분노를 ‘불법의 틀’을 가둬두고, 대추리 도두리 현지는 철저히 고립시키는 작업을 완료한 뒤에야 정부는 비로소 주민들의 요구였던 ‘조건 없이 대화’에 임하겠다는 아량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군사보호시설을 기정사실화하고 농사가 불법으로 규정된 상태에서 대화를 하자는 의미는 다 빼앗긴 주민들을 구석에 몰아넣고 협의매수에 응하라는 협박일 따름이다.
지금 ‘불법과 폭력시위’의 규정을 벗어나 대중의 힘으로 한걸음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떤 법의 테두리로도 가둘 수 없는 평화에 대한 민중의 요구를 행동으로 옮겨내고 그 정당성을 확보해내는 것이다.

철조망을 걷어내는 평화투쟁의 정당성: 문제는 ‘평택민군기지 확장’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지배계급이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에 전략적 이해를 걸고 있다는 의미는 곧 기지이전협상의 대상이 한국의 민중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과 미국 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는 이미 완료된 상태이고 따라서 한국정부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기정사실화롤 간주한다.3)
주한․주일 미군의 동북아 신속기동군화는 현 시기 한․미, 미․일 군사동맹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며 변화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기본적인 구상이다.4) 한․미 군사 동맹에서 평택 미군 기지를 포함한 서해안 벨트의 역할은 단지 미국의 대북선제공격 전략을 완성하는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동북아의 신자유주의 경제통합의 요충지로서의 한국과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보호가 보장받는 대신 각 군사동맹을 통해 미국의 ‘사활적인 이해’를 자국의 군사안보전략으로 삼게 된다. 미국에 있어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역할은 유럽과 중국의 부상을 제압하는 군사패권을 보장해주는 한편 아시아 지역의 집중되어 있는 빈곤의 문제와 다양한 분쟁으로부터 미국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만약 팽성 주민들에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이는 곧 한․미동맹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위를 민중의 손에 맡기는 것이 된다. 따라서 한-미 군사동맹을 파기하지 않는 한 평택미군기지 확장계획은 이미 처음부터 민중의 의사표현이 분명히 배제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빈곤과 착취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시아 대륙을 휩쓸고 간 결과 수많은 분쟁, 약탈, 폭력이 미 본토와 미국의 우산 아래 있는 동맹국들의 상대적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남한 땅의 지정학적인 우연으로, 혹은 한국정부가 미국에 갖다 바친 충정으로 한국은 미국의 군사동맹의 보호아래 있다. 그러나 팽성 주민들은 미군의 철조망을 거두고 농사를 지을 민중의 권리를 제기한다. 그리고 이는 한-미 군사동맹에 의문, “한반도의 평화가 도대체 어떤 것이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FTA와 농업 개방에 직면하고 미국의 군사패권아래 철조망이 쳐진 대추리, 도두리에 주민들의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들의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추리 땅에서 함께 외치고 있는 남한 민중들의 평화란 첨단 군사력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답해야 한다. 이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한-미군사동맹의 철조망 앞에서 우리를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법’의 저지선을 한걸음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평택미군기지확장을 저지하는 민중의 저항의 행동이 절실하다. 황새울의 철조망을 모조리 걷어내고 민중의 평화를 쟁취하자.


1) 범국민대회를 원천봉쇄한 5월 14일, 도두리로 들어가는 길목인 본정리 입구에 범국민대회 장소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새벽을 꼬박 지새며 진행되었다. 조직된 노동자, 청년, 학생대오는 본정리 진입을 시도하기 위해 평택 평야를 밤새 행진하였고, 아무도 없는 새벽 논밭에서는 경찰의 무차별 연행과 폭력이 자행되었다. 본문으로
2) 2차 범국민대회는 범대위 차원에서 분명한 정치적 목표아래 전술을 고민하면서 기획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범대위의 다양한 입장의 단위들이 불법/평화투쟁의 이분법을 넘어서 정당한 평화투쟁의 기조를 합의하고 결의하는 과정이 시급하다. “5월 5일 투쟁 이후 주민들과 범대위를 분열시키고 평택문제를 철저히 ‘지역 문제화’하면서 범대위를 ‘폭력’, ‘외부불순’세력으로 규정화하는 여론공세와 투쟁방식을 둘러싼 범대위 차원의 이견을 하나로 모아내지 못하면서 힘 있는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14일 대회의 의의와 투쟁방향과 관련된 충분한 논의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각 단위의 장점을 극대화하지 못했다.”-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 44차 집행위원회 5.14 투쟁평가서 중. 본문으로
3) 2003년 ‘주한미군 이전에 관한 협정비준동의안’(용산기지 이전안)과 한․미 연합 토지관리계획협정에 관한 개정협정비준동의안”(연합토지관리계획 LPP)을 거쳐 2004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와 한․미 미래안보정책구상(FOTA)를 통해 논의되어왔던 주한미군 감축과 기지이전 협상을 배경으로 한다. 이 협상은 한미 군사동맹의 현대화의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군의 한국군 작전권을 비롯한 10개 임무 이양, 한미전력 증강방안 논의와 궤를 같이 한다. 이는 2006년 1월 20일 1차 한․미 장관급전략대화를 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한 것을 끝으로 모든 법적, 제도적 절차가 마무리된 상태다. 본문으로
4) 첫째, 미국의 대북 공격 전략은 이미 작전계획5030에 이르러 선제 핵공격전략과 ‘인권외교’ 강화를 통한 북한정권교체라는 선제공격전략으로 완성된 상태이다. 주한미군을 한강이남지역으로 재배치하여 북한 측 공격의 사정권을 벗어나는 한편, 북에 대한 공격적 태세를 강화하는 역할은 한국군의 이른바 ‘자주국방’ 강화․보완을 통해 이전하고 주한미군은 평택과 오산을 주요 거점으로 하여 안정적으로 영구 주둔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공격 전략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한․미․일 지역동맹을 한층 광범위하게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대만 분쟁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에 이른 수많은 종족적, 종교적 군사 분쟁에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한편, 역으로 아시아 지역의 광범위한 빈곤과 폭력 등의 불안정성이 동북아 지역의 경제적 통합력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판의 역할이다. 본문으로
주제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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