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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9.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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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삼각김밥, 팔레스타인

오기형 | 회원

#1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대개 그러하듯, 이번에도 역시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맥주를 홀짝이며 하루를 마감하는 걸 즐기고 있었고, 그건 나에겐 하나의 습관 이상이었다. 나를 비난하고 싶은 어떤 날 그건 자기연민의 시간이었고, 반대로 세상을 비난하고 싶은 날엔 오만한 자기도취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또 누구도 비난하지 않아도 좋은 어떤 날엔 머쓱한 보상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내가 이 허영인지 낭만인지를 즐기는 와중에 맥주와 삼각김밥의 어울림이 절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들의 어울림은 절묘하다기보다는 적절한 것일 테다. 그 이상의 다른 어떤 조합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조화롭다기보다는 서로가 적절한 어우러짐의 균형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를 고양시키기에 충분한 정도로만 자극적이다. 자기절제와 균형감각. 더 없이 올바른 술과 안주의 역분이다.
게다가 이 조합은 아버지의 무심한 가르침을 실행하는 데도 그만이다. 󰡐밥은 술과 함께󰡑(󰡐술은 밥과 함께󰡑를 잘못 쓴 것이 아니다)의 지론을 항상 몸으로 실천하시는 아버지는, 당신을 닮아 언제나 술 언저리를 서성거리는 아들에게 종종 󰡐술을 씹어먹을 줄 알아야 진짜 애주가󰡑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국이나 탕, 찌개 없는 마른 밥을 먹을 때 이 󰡐술 씹어 먹는 법󰡑의 진가가 드러날 것은 자명한 일. 더운 여름 우걱우걱 삼각김밥을 씹으면서 꿀꺽꿀꺽 넘기는 맥주 한잔. 쾌락의 말초.
무덥던 8월 초, 그 날도 맥주와 삼각김밥을 사들고 땀을 줄줄 흘리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집에 들어왔다. 최고의 불쾌지수, 흐르는 땀, 차가운 맥주와 삼각김밥. 나르시시즘의 시간에 빠질 모든 준비가 끝났다. 뭐 빠진 건 없나? 그래, 만화책. 아마 만화책이 이 자위적 유희의 부족함을 완성시켜 줄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방을 둘러보다가 적당한 책을 발견했다. 조 사코(Joe Sacco)의 『팔레스타인』. 얼마 전 유학간 친구녀석에게서 싼 맛에 충동구매한 50권의 책들 중 하나였다. 음. 이 여름밤의 낭만에 비판적 지성까지 동참하는군. 이제 맥주와 삼각김밥은 더 이상 B급 조합이 아니다. A급 조합을 구성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며 만화책의 첫 장을 넘겼다. 그리고.

#2
『팔레스타인』은 코믹 저널리스트 조 사코가 15년 전의 겨울,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보낸 두 달간의 기록이다. 사코는 무슨 대단한 인도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용기있는 인권운동가라거나 국제평화주의로 단호히 무장한 종군기자가 아니다. 사코 자신의 말처럼 그는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시덥잖은 만화가일 따름이다. 자신의 만화가 뜨려면 갈등이 필요하고 평화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몰래 뇌까리는 그런 속물 만화가일 따름. 조 사코 스스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팔레스타인 문제』가 그를 팔레스타인으로 이끌었다고 술회하고 있지만 초반 얼마간 국제분쟁에 관해 뚜렷한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닌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여기 팔레스타인까지 날아와 투덜거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만화에서 읽혀지는 조 사코라는 캐릭터는 분명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서방의 저널리스트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만화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건 사코의 가벼움이다. 스스로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코메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객관화하고 희화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코는 자신의 만화에서 자기를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는 소리 높여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짜증내고 투덜거리고 또 두려워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코의 모습은 고민조차 치열하지 못한 나의 안이함을,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 쉬운 결론을 내리려는 내 게으름을, 합리화해선 안될 것들을 합리화하고 있는 우리의 비겁함을 서서히 깨닫게 한다.
그제서야 내가 이 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기묘한 경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얼마간은 작가인 조 사코를 비웃다가 또 다음 얼마간 그를 백안시하게 되지만 결국 어느 순간 그의 감정에 공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나면 사코가 겪은 답답함이 내게 전이되고 그가 느낀 공포를 내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저널리스트 사코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인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서도 무거운 역사에 현실감각을 불어넣었던 것은 바로 진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하는 캐릭터의 설정이 아니었던가? 사코는 자신의 위험하고 곤혹스러웠던 팔레스타인 여행이 여느 코믹에서처럼 영웅적인 무엇으로 포장되는 걸 겸연쩍어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독자들을 설득하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캐릭터를 작가와 동일시할 수 있도록 명석한 장치를 삽입했던 것이다. 여기에 절묘한 앵글과 예리한 세부묘사가 더해져 어둡고 지루할 수 있는 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현실이 시각적 충격과 결합한다. 진정성은 그렇게 획득된다.

#3
『팔레스타인』은 각각 대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야만적 탄압에서부터 시오니스트 정착민들의 일상적인 테러, 팔레스타인의 여성문제, 제1차 인티파다와 그 와중에 전개되는 정치조직들 사이의 알력 등의 주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팔레스타인의 현재를 투사한다. 비록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지만 그것이 현재성을 잃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아는 한 적어도 팔레스타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 아니 폭력들. 팔레스타인에서는 법에 기반한 제도적 폭력과 물리력에 기반한 비제도적 폭력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여 일상을 이루고 있다. 정부와 군대, 언론과 기업은 일사분란한 조직적 분업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엄을 파괴하는 체계적인 메카니즘을 구축한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지역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은 난민촌과 점령지 근무병으로 차출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학습하고 집단수용소의 감시병들은 짐승처럼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보며 그들을 인간이 아닌 무엇이라고 인식하도록 훈육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억압적 국가기구로서 기능하고 있는 장치들이 반대로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넘쳐나는 다채로운 폭력들의 박람회 같은 팔레스타인에서도 가장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건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대빈곤이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유대인들은 󰡐땅 없는 백성에게 백성없는 땅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팔레스타인을 침략했고 1년 만에 수십만이 살고 있던 400개의 마을을 파괴했다. 이스라엘은 인티파다 이후 4년 동안 12만 그루의 올리브나무를 잘랐고 매년 수백 채의 가옥을 파괴하고 있다. 어떤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자지구에 있는 자발리아 난민촌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한 지역이라고 한다. 면적은 신림동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인구는 목포시 인구의 3배에 육박한다. 물론 이는 15년 전의 자료다. 그러면 지금은? 점령정책은 계속되고 있고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상황이 좋아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정 팔레스타인은 거의 모든 근대적인 문제가 밀집한 곳이다. 극단적인 종교관을 바탕으로 한 인종주의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고, 서로의 존재 자체가 무한폭력과 인권유린의 핑계가 된다.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는 신이 내린 선물인 석유를 위해 민중들의 인권을 대가로 패권을 강화하려 기를 쓴다. 군산자본과 결탁한 서방의 언론들은 오리엔탈리즘을 선동하고 서방의 일부 학자들은 󰡐문명의 충돌󰡑 운운하며 전쟁의 나팔을 불기에 여념이 없다. 팔레스타인을 제외하고 어떻게 감히 지옥을 운위하겠는가?

#4
『팔레스타인』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무언가 계속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혼자 덩그러니 방안에 남겨져 있음을 깨닫는 것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추천사부터 박홍규 교수의 권말언까지 다시 읽었다. 더 읽을 게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분명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건 평소라면 대여섯 권의 만화책을 읽었을 정도의 시간동안 방치된 맥주와 김밥이 증명하고 있었다. 맥주는 김이 빠졌고 김밥은 딱딱하다. 맥주와 김밥의 조합이 절묘한 것인지 적절한 것인지를 따져 묻는 것은 이제는 사치다. 평온해야 할 여름밤은 파괴되었다. 이스라엘과 미국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 때문에? 아니면 조 사코 때문에? 그렇지 않다. 아마도 그건 맥주와 김밥 때문이었을 거다.
김이 다 빠져나간 반쯤 남은 맥주를 들이킨다. 그리고 반쯤 남은 삼각김밥을 다시 입 속에 들이밀었다. 내가 씹고 있는 게 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걱우걱 꿀꺽꿀꺽. 맥주는 무겁고 삼각김밥은 목이 메이는데 다시 우걱우걱 꿀꺽꿀꺽.

같은 시간 베이루트를 집어삼키고 있을 포연처럼 그렇게. 우걱우걱 꿀꺽꿀꺽.
주제어
평화
태그
파업 화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