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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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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대회, 그리고 남은 이야기

공성식 | 집행위원
1.
11월 13일 전국농민대회가 있었다. 3000 여대의 버스를 타고 10만 여명의 농민이 이날 서울로 올라왔다. 10만 명의 농민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이 날 농민대회는 엄청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농민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투쟁에 대해서 언급하지도 않던 언론들이, 이 날은 앞다투어 농민대회를 보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마'하다가 화들짝 놀랐으리라.
그러나 이 날 대오의 규모에 놀란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 날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사무실에 설치된 상황실에서 농민대회 지원 활동을 했다. 나의 역할은 상황실 전화를 통해 전농 경북도연맹의 상황을 점검하고 대회가 원활하게 치루어 질 수 있도록 경북도연맹에 소속된 참가 대오에게 당일 지침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10만 여명의 대오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통신원 역할이었던 셈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대회가 한창 진행되었던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계속 전화를 돌리고 받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일의 육체적 강도 때문이 아니라, 10만이 넘는 대오의 움직임을 전화 몇 대로 파악하고 제어하는 일 자체가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곤란은 이 날 대회의 준비와 진행의 책임을 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이 날 대회를 애써 무시하려 했던 사람들만 그 결집된 대중들의 규모와 열기에 놀란 것이 아니라, 대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조직했던 주최측 역시 자신의 희망이 현실적 실체로 나타나는 순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10만의 대중들이 무사히 대회장에 집결하고 돌아가는 것이 주요한 고민되었다. 대회장에 원활하게 진입하기 위한 교통의 흐름을 제어하는 문제,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문제가 이 날 대회의 성사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로 되어 버렸다. 고속도로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각 지역마다 출발시간 및 이동경로가 조정되었다. 여의도 일대로 3000 여대의 차량이 모여 대회장 진입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오금동 올림픽공원, 발산역 부근 등 서울 외곽에서 버스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전술을 실현하는데 인력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본 대회 이후의 전술 역시 대회장에 결집한 사람들이 안전하고 수월하게 대회장을 빠져나가 버스를 타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졌고, 행진은 이를 위해 그 규모와 방식이 축소되었다. 결국 이 날 대회의 모든 전술의 초점은 '10만이 넘는 대오의 원활한 이동'과 '이를 침해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던 셈이다.
물론 대회 전체를 책임지는 주최측으로서는 당연한 고민이다. 그러나 자신의 요구를 자신의 힘으로 쟁취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수의 대중을 결집시키고자 했던 전농의 기획이 오히려 전술 운용의 제약조건으로 되어 버린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운동주체들의 기획과 제안을 때로는 훌쩍 넘어서는 대중운동의 복잡한 움직임과 그러한 역전의 과정을 운동주체들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에 대한 소중한 교훈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술이 '대중들의 살아 있는 공동의 행동지침'이기 위한 관건은 준비된 전술이 대중운동의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을 때 발생하는 갈등을 '제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중운동 속에서 전진적이고 개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일 것이다.

2.
13일의 '사건'에 대한 또 하나의 지배적인 반응으로 이날 대회에 참석한 노무현, 정몽준의 두 대통령선거 후보자(당시)들 및 주요 언론들의 반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대규모 군중집회에 대해서 '집단 이기주의'와 '교통혼잡으로 인한 시민 불편 야기'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만 보도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주요 언론사들은 농민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는 누가 보아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마주칠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날 대회에서 농민의 요구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이들 둘 다 자신을 '농민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최대한 '농심(農心)'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물론 대통령후보들이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라면 어떤 감언이설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반응에는 '농업, 농민문제'가 다루어지는 어떤 지배적인 지반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객관적인 분석으로 논증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농민/농업이 배제되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농업의 발전은 계속 지체되어 왔고, 농촌의 삶은 의료, 교육 등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곳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한국경제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농민/농업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결국 언제나 그 고통은 알겠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되풀이되며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들의 이 희생과 불가피한 배제를 동정하는 일 뿐이다.
더구나 이러한 동정은 동정을 받는 자와 동정을 하는 자에서 사랑을 베풀기 위해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자와 그 사랑에 감동하는 자로 교묘히 위치가 바뀌어 재등장한다. 이런 태도를 최근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집으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집으로"가 던지는 메시지의 이면에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배제된 대상으로서 농민이 대가 없는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할머니의 위치에 놓임으로서만 도시에서 자라난 아이와 세대와 도-농간의 차이를 넘어 결합할 수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영화에서 '할머니'는 벙어리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러한 인물설정이야말로 감독의 한계를 극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 이런 방식은 도시인들의 농민/농촌에 대한 자신의 부채감을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순화시킬 뿐이며, 이 과정에서 배제된 자로서의 농민/농촌은 또 다시 배제된다. 아마 이러한 방식이 가지는 폭력성이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이 무서워 감독은 그 할머니의 입을 막아야 했으리라.

3.
이러한 희생/동정의 태도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농업/농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 보인다. 잘 알다시피 한국사회의 6-70년대 자본주의적 축적은 농업의 수탈과 농촌의 해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저곡가 정책이 유지되었고, 농업의 발전을 억제함으로써 농촌에서 도시로 노동력을 이동시키고 광범위한 상대적 과잉인구를 창출하였다. 80년대 이후에는 농업에서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각종 정책이 실시되었으나 아직까지 이것이 성공했다는 지표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관측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 농가에 정책성 부채만이 가중되었을 뿐이다.
동시에 우리는 농업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이 아니라 비(非)-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역사적 시도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그리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나에게는 다음의 질문들이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농업/농촌은 공업/도시의 발전을 위해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닌가? 대규모 생산이 우월하다는 것에 대한 반대의 논거들이 제기되고 있다. 기술의 혁신을 바탕으로 한 생산력 증대는 농민으로부터 자신의 생산에 있어서 지적요소들을 축출하고 점점 더 초국적 기업이나 연구소에 의존하게 만들어 왔던 것 같다. 결국 다시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질문은 비-자본주의적 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일 것이다.

4.
어쨌든 11월 13일 전국농민대회는 끝이 났다. 10만 여명의 농민들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아직 이 거대한 '이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왜냐하면 이날의 대회는 농업/농촌의 참담한 현실과 이에 대한 농민 일반의 분노의 감정-우리 모두가 이미 예감하고 있던-이 현실적 실체로 드러난 그곳에서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주체의 기획이 대중들의 진전을 따라 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로 되어 버리던, 혹은 배제한 자를 다시 배제하는 상징적 폭력들이 존재하던 혹은 전략적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았던 채로 남아 있던, 대중들의 투쟁은 이미-항상 이를 뛰어 넘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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