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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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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의 제국 : 두개의 좌담 (1)

알랭 족스 |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방위사회학/전략연구, 실베르 로트린저 | Semiotext(e)편집인
Alain Joxe, Empire of Disorder(MIT Press, 2002), pp. 47-75.

무질서의 제국: 두 개의 좌담 (1)

알랭 족스 Alain Joxe |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방위사회학/전략연구.
실베르 로트린저 Sylvre Lotringer | Semiotext(e) 편집인

[역자해설] 여기 번역/게재하는 글은 작년 2002년에 발간된 알랭 족스(Alain joxe)의 저서, {무질서의 제국}(Empire of Disorder, Semiotext(e), 2002)에 수록된 저자 자신과 Semiotext(e)의 편집인인 실베르 로트린저(Sylvere Lotringer)와 해를 달리하며 진행한 두 개의 좌담이다. 좌담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미 국역된 [무질서의 제국에서 지정학과 문명]({이론} 제10호)의 내용을 은유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평이하게, 때로는 고대 정치철학 및 역사를 현재와 유비하면서 동시대의 '세계의 상황'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좌담은 해를 달리하며 두 번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 좌담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화두로 삼아 심화되어 가는 인종적, 민족적 분쟁과 폭력사태를 논의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금융의 세계화와 민족국가의 변화가 세계 군사질서와 그 성격의 변화를 관련지우며, 그리고 '무질서의 제국'으로서 미국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두 번째 좌담은 9·11 이후 사태진전에 보다 초점을 두고 현재 부시행정부가 벌이려 하는 전쟁의 성격을 미국(이라는 국가)의 구조적, 기능적 위기의 심화에 대처하기 위한 이른바 '착취방식'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미국이 국내적으로는 군사 케인즈주의를 유지/재생산하고 국외적으로는 '초-자유적' 질서를 강제하고 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결국 족스가 좌담에서 지적하듯이 현재의 세계는 '제국의 강력함이라기 보다는 제국의 허약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만하다. 마지막으로 족스는 부시행정부가 추구하는 전쟁으로의 경향이 바로 '서로 괄목하던' 사람들과 운동들의 세계적인 저항과 연대를 요청하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현재 남한의 사회운동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1. 모든 곳에서의 내전 Civil Wars Everywhere

- 파리, 2001년 5월.

동결된 평화 무질서와 복잡성 공산주의의 해체 국가의 재건 종교가 아닌 지역, 코소보 자유시장경제 세계의 형성 "모든 것에 대한 지식" "디테일리스트"(detailist) 시대 "파노폴리틱스" (panopolitics) 세계에 대한 지배 콜롬비아와 알제리 "유나이티드 유럽"(United Europe) 기술적 군사지배 신자유주의와 파시즘 완벽한 지배 정복과 패배 미국의 무능력 군사 케인즈주의 "군사혁명" "우수한 통치"(Good Governance) 법인 문화 종족전쟁은 계급전쟁이다

실베르 로트린저(이하 SL) 당신은 동결된 평화(frozen peace)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동결되어 왔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알랭 족스(이하 AJ) 예,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단 평화프로세스 동안 전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었을 때는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는 전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었지만 동시에 대량학살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고, 적대자들은 자신의 무기고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평화프로세스는 동시에 전쟁을 확대하는 프로세스입니다.

SL 대량학살은 군인에게 벌어졌습니까 아니면 유고슬라비아 특히 코소보처럼 군인 사상자는 제한적이고 대부분 민간인에게 벌어졌습니까?

AJ 내전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대량학살이 발생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전쟁이 모든 경우에 항상 내전이기 때문입니다. 종교 전쟁이라는 허구는 현실과는 꽤 다릅니다. 어리석거나 불행한 이유로, 심지어는 야만적인 이유로 모든 종족간 전쟁에는 내전의 양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내전, 다른 말로 계급간 전쟁 또는 뚜렷한 사회-정치적 동맹들간의 전쟁의 경우에도 종종 행동주의의 문제가 발생하며, 어떤 경우에는 종교적 행동주의가 일어납니다.

SL 냉전이 끝난 후에 내전, 종족간 전쟁, 종교전쟁이 증가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까 아니면 두 개의 블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가시적이게 된 것입니까?

AJ 두 블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게다가 식민 제국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가시적이게 된 것입니다.

SL 소비에트 블록의 분열은 그 이전에는 대부분 봉쇄되었던 모든 종류의 충돌과 분쟁이 형성되거나 또는 표현되게 하였습니다...

AJ 제국의 해소는 소규모 전쟁, 발칸화(Balkanization), 레바논화(Lebanonization)나 그와 비슷한 사태들을 생산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과거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또는 단지 인식이 변한 것인가? 제국 내부에서는 폭동들과 진압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러한 폭동과 진압은 우리가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반란과 억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라고 불렀습니다.

SL 모든 종류의 충돌과 분쟁은 우리에게 두드러진 것 이상으로 보여지고 있으며, 최소한 현재는 실시간 정보를 통해서 그러합니다. "세계-도시"(global-city)에서 모든 것은 더욱 가시화됩니다.

AJ 그렇습니다. 체첸에서의 전쟁과 스탈린의 체첸인 억압에 관한 텔레비전 방송이 없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식민 제국의 종결과 양극 대치의 종결 속에서 텔레비전은 지역적 현상을 확산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결합합니다. 과거에 지역적 현상은 동서분쟁 아래의 전장이었습니다. 앙골라나 모잠비크의 전쟁은 냉전의 일부분과 같았고, 아무도 그것을 충실히 방송하기 위해서 갈 수 없었습니다.

SL 전쟁은 분석되기 이전에 이해되고 있습니다.

AJ 그렇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것은 동쪽의 잘못이다 또는 서쪽의 잘못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복잡성에 관한 연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치가들에게는 피곤한 것이지만, 저널리스트에게는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모든 것이 특별한 무언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상황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을 지닌 사람을 보내야만 합니다. 그것은 더욱 복잡하지만, 무엇도 무엇보다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SL 그렇다면 당신은 혼돈(chaos)로부터 출발해야만 합니다.

AJ 아닙니다. 당신은 복잡성(complexity)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합니다. 혼돈은 세계에 대한 이해지만, 지역적 상황은 일반적으로 세계에 드러나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덜 혼돈스럽습니다. 당신이 콜롬비아의 상황을 철저하고 세밀하게 분석한다면, 당신은 그 전쟁이 극단적으로 잔인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대한 분석도 동일한 결론을 얻을 것입니다. 러시아는 본래 더욱 복잡하고 더욱 혼돈스러워 보일 것인데요, 이는 러시아의 크기가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SL 러시아에서는 영토분쟁이 있지만 동시에 종족분쟁 또는 종교분쟁이 있습니다.

AJ 그러나 러시아의 모든 곳에서 행위자들은 분명한 언어를 사용하여 그리고 언론에서의 토론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있으며, 매우 야만적인 조건에서도 그러합니다. 가장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곳은 아마도 보스니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정한 동기부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종족청소"(ethnic cleansing)에 대한 세르비아의 의지는 나라의 아무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으며, 이와 반대로 공동체는 종종 행복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미스테리입니다. 그것은 해방전쟁 속에서의 유고슬라비아의 탄생을 자세히 이해해야지 해결될 수 있습니다.

SL 또한 티토(Tito)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대안적 공산주의라는 기치를 통해 유지하던 혼합물의 마지막은 종족적 질서나 다른 것과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든 종류의 요소들이 떠오르게 했습니다. 공산주의 권력의 해체에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것은 새로운 요소입니다.

AJ 그것은 새롭습니다. 공산주의 권력은 한때 구성되었지만, 오늘날은 해체되었습니다. 이러한 해체의 유래가 종족적이건 또는 종교적이건 또는 다른 무엇이건 간에, 아무도 그 해체가 공산주의와는 독립적으로 발칸의 상황이 항상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구조가 정치적 정체성(identity)과 같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종교적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종교적 구조는 하나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일차적인 설명은 전쟁 이후에 창설되었던 공산주의 체계의 해체의 결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은 티토주의(Titoism)와 같이 나찌에 대항하는 투쟁 속에서 자율적인 저항투쟁 운동 - 그것은 러시아에 빚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영국에게도 거의 빚진 것이 없습니다 - 에서 유래한 것을 포함해야 하며, 티토가 권력을 잡은 후 재생산된 것을 포함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마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과 체코슬로바키아의 소련의 영향에서의 해방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우리는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에 대해 열쇠가 없으며, 유고슬라비아는 말문이 막힌 채로 남아 있습니다.

SL 그래도 그것은 영토적 야망, 민족적 정체성, 권력투쟁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AJ 그것은 국가의 위기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권력 의지와 같은 것이 유고슬라비아의 노멘클라투라(nomenclatura)의 특정 부문들에서 형성되었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권력을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후에 사태가 나빠졌고, 일부 나라에서 국가는 공격적이며 극단적으로 민족주의적인 파시즘으로 변하였는데, 이는 티토주의와 상반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직구조를 가졌으며 정치적 세력을 키웠고, 국가는 파시스트 독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일당체계의 붕괴로 인하여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동반하였기 때문에, 그리하여 우리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파시스트 독재라는 개념을 고안해야만 하는 수수께끼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사례도 우리의 이해를 돕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승리를 거둔 선거는 일당 선거였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새로운 것을 고안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왜 파시스트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는가? 단지 다른 말이 없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군대의 일부가 아닌 상태의 무장 그룹이 존재하며, 그들은 길거리에서 인민을 죽일 권리를 갖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파시즘이라고 부르는데, 파쇼(fascio)[묶음 또는 결속]의 정의, 즉 무장 그룹이라는 정의에 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준(準)군사조직이며, 그들은 특별한 제복이 있으며, 그들은 민병대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콜롬비아, 알제리 등 다른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SL 흑색 중대(black squadron)....

AJ 그들은 실제로 야만적인 행동을 하였고 테러를 확산했습니다.

SL 그리고 그들은 종종 국가에 고용되었습니다...

AJ 그렇습니다. 그러나 언급하지 않은 것은 국가에 고용되었다는 점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 국가에 고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기존 국가의 해체가 있었습니다―우리는 실제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티토주의 국가의 파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혁명은 단지 국가들을 추구한 게 아니라 공화국들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국가는 파괴하고 재건한 무엇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아직까지 완전히 재건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유고슬라비아에는 민병대가 있으며, 최소한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떨어져 나온 국가들에서는 그러합니다. 밀로세비치가와 군대가 있지만 그러나 민병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완전히 재건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데, 왜냐하면 합법적인 폭력의 완전한 독점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명대는 SA[나치스돌결대]나 SS[나치스친위대]보다 야만적입니다. 히틀러가 "사투의 밤"(the night of the long knives) 동안 한 일은 통제되지 않는 무장대인 SA를 청산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SS는 국가기구였습니다.

SL 히틀러는 독일 군대에게 안전을 보증했어야만 했는데요...

AJ 군대는 안전보증을 받았어야만 했는데 왜냐하면 군대는 여전히 하나의 세력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르비아 군대에서는...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고슬라비아의] 해체가 일족간의 상쟁으로 되돌아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매우 정밀한 정치적인 책략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놓치게 됩니다. 먼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민족주의 전쟁을 창조했고 그 다음에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합의를 이루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스니아가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부코바(Vukovar)―모스타(Mostar)와 함께 크로아티아인과 이슬람교인이 완전히 말살된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의 마을―의 사례처럼, 도시들의 모든 다종족 사회를 파괴하기 위한 전략이 존재했습니다. 테러를 가했던 민병대는 종족에 관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는 마을로부터 출발해야만 했는데, 왜냐하면 도시들에서는 그런 기억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테러는 도시로 퍼졌습니다. 그 주제에 대해 주목할만한 작업을 하여 학위를 받은 나의 학생이 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 갔었고, 그 지역에서 조사활동을 했고, 어떻게 살인이 시작되었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그 시작이 공산주의 국가의 위기였고, 일부 엘리트들의 재영유(reappropriation)였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은 이 엘리트들을 테르미도리안(Thermidorian)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모든 것들을 가져가 버렸고 사유화했으며, 따라서 그들은 극단적 민족주의(ultra-nationalist) 엘리트가 되었습니다. 그 엘리트들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전에 공산주의자였으며, 그것은 공산주의가 이미 위기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민족주의가 아니거나 또는 어떤 경우에도 그렇게 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동맹은 축구 갱의 지도자였던 아르칸(Arkan)과 같이 명백히 산적 패거리였습니다.

SL 민족주의는 어떤 것들은 분리시키지만 어떤 것들을 끌어당겨 합치기도 합니다. 티토는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를 이용했습니다.

AJ 티토는 티토주의 유고슬라비아가 폭발될 위험이 있을 정도로 항상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SL 그러나 또한 러시아에 대항하는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가 있었습니다.

AJ 네, 그것은 옳습니다. 그것은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 이를테면 민족적 정체성의 첫 번째 기미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은 뿔뿔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충분히 자연스럽게도 미국인도 또한 유럽인도 그것이 일어나길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조차 그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그후 그들은 그 방향으로 나갔지만, 그러나 그것은 프로그램의 일부는 아니었습니다.

SL 당시 미국의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다? 미국은 그 상황에 어떻게 적응했습니까? 무엇보다도 그들은 간섭하기를 중단했는데...

AJ 미국은 중재를 하는데 그들의 시간을 이용하였습니다. 사실상 이는 더욱 깊은 연구를 해야 할 주제입니다만,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정당하게도, 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석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코소보의 갈탄 광산은 보통 우리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폭발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교리가 막 형성되기 시작되기 시작했고, 미국의 개입의 성격에 관한 특징은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개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평화합의가 먼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상군을 파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유럽을 위해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유럽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유럽도 개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때까지 중앙 집권화된 권력을 조직하지 않았습니다. 1992년 당시 유럽연합(EU)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시점부터 약간의 진전 과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은 유럽연합 건설 논의가 시작될 무렵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존재했지만, 유럽연합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SL 유고슬라비아의 위기는 어느 정도 유럽통합 과정을 가속화했습니다.

AJ 유럽의 정체성에서 변화가 생겼는데, 그것은 아마도 유고슬라비아 문제에 대응해야한다는 요구의 결과입니다. 현재 유럽의 정체성은 더욱 확립되었고 방위의 문제를 고려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로 코소보에 따른 것입니다. 보스니아 문제를 거치면서 정치적·외교적 정체성이 어느 정도 분명해졌지만, 여전히 취약합니다.

SL 물론 여전히 미국과 예를 들어 프랑스나 또는 최소한 특정 유럽 나라들 사이에 이해 갈등이 존재합니다.

AJ 네, 그러나 논쟁은 없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결코 정식화된 바 없으며, 오직 가짜들뿐입니다. 일례는 프랑스가 친(親)-세르비아라고 이야기됩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때문인데, 그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프랑스 민족의 관해서 참으로 진실은 아니며 또는 국가의 관해서 판단하자면 진실이 아닙니다. 프랑스는 친-세르비아가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세르비아는 여성과 아동을 학살하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친-세르비아는 친-체트닉(Chetnik)을 의미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밀로세비치와 마찬가지로 친-체트닉이 될 수 없습니다. 유고슬라비아라는 대(大)오케스트라가 소집되었고, 지휘봉은 밀로세비치가 쥐고 있습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하여 우리는 밀로세비치와 협상을 하였고, 그래서 그는 카라지치(Karadzic)를 숙청하였지만, 이러한 입장이 수반한 문제들은 코소보 사태 때까지 완전히 명백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밀로세비치는 혼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보스니아 전쟁에서 밀로세비치는 "나는 세르비아의 이익을 위해 개입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리를 선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크로아티아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상황이 올바르게 나가도록 다루지 않았습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복합적인 것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민족적 기준의 재건을 동반하는 공산주의 체계의 해체가 무엇과 같은 것인지 우리는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공산주의를 제거할 수 없으며 동시에 모든 민족국가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민족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누구도 폴란드에게 폴란드를 제거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나 유고와 같은 연방국의 경우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는 더욱 파괴적이었습니다.

SL 그런데도 러시아인에서 독일인까지 모두가 항상 폴란드에게 정확히 그것을 하였습니다.

AJ 유고슬라비아의 경우에 공산주의와 민족의 파괴는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했는데,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여러 유형의 민족주의가 다시 발전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의 자율성에 관한 진정한 능력의 견지에서 본다면 기괴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국가들이 서로서로에게 의존하는 것과 같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된] 모든 나라들이 유럽 경제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세르비아와 일부 크로아티아는 오직 마피아의 돈에 의존함으로써 자율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SL 알바이나의 경우도 그러한가요?

AJ 알바니아에도 진실입니다.

SL 알바니아에 국가가 있을 때는 제외하고 그렇죠.

AJ 진실입니다만, 그러나 국가는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알바니아는 근대화로 밀쳐졌고 모든 것이 일련의 완벽히 기괴한 마피아 그룹으로 바뀌었고, 알바니아는 거의 완전히 침몰하였습니다. 알바니아 역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진실이지만,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덜 심각합니다...

SL 알바니아의 위기는 코소보 사태에 주목할만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이는 알바니아인이 코소보에 있는 세르비아인에 대항하여 억압적인 수단을 취하기 시작했던 얼마 후에 밝혀졌습니다.

AJ 그것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알바니아에 있는 알바니아인과 코소보에 있는 알바니아인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코소보에 있는 알바니아인은 10년간의 군사점령을 경험했고, 살아남기 위해서 이중경제(parallel economy)를 발전시켜야만 했습니다. 이중경제는 마피아를 포함하여 디아스포라(diaspora)[국외로 추방되어 무리를 지어 사는 분산된 장소]들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민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일족간의 전쟁을 끝내는데 성공했고 따라서 민족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상호복수의 시대를 끝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군사재판소의 창설과 함께 유럽에서 도시국가를 창조하는 시작이었으며, 에우메니데스[복수의 여신인 세자매]가 상징하는 귀족 가문간의 상호복수를 끝냈고, 안티고네[테바이에서 추방된 오이디푸스의 맏딸]와 그녀의 역사에서 벗어났습니다...

SL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테네의 기초였습니다.

AJ 맞습니다. 그것은 아테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코소보는 선거들을 치루었고 - 비밀선거였습니다 - 그리고 정상적으로 그들은 민주주의 단계로 움직여 나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은 외국의 과두지배에 대항하여 대중적 저항을 행동하였을 때 민주주의를 실천하였, 분명히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훨씬 잘 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알바니아의 알바니아인 보다 준비가 더욱 잘 되어있었습니다.

SL 그리고 세르비아의 세르비아인보다도 그렇습니다.

AJ 그리고 세르비아보다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SL 그들이 사실 원했던 것은 독립입니다.

AJ 네, 그렇습니다. 그곳은 진정 민주적인 독립을 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보스니아 또는 그중 남은 곳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들은 일족간의 분할을 넘어 움직였고, 민주주의를 원했습니다.

SL 이러한 상황은 당신이 이 책[무질서의 제국]에서 홉스에 관해 설명하면서 "정상적인 국가를 찾아서 무질서에서 탈출하기"라고 말한 대목과 닮았습니다.

AJ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후 유럽과 미국은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가장 고통을 당했던 두 지역―그리고 실제로는 대부분 이슬람교도가 거주했던 지역―의 인민들은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오히려 더 잘 준비하였습니다. 반면 예수의 중요한 말씀과 모순되게도 이웃들을 살해하는 데 온 정신을 쏟았던 한 무리의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는 종교전쟁이 아닙니다. 이제 누구도 그것이 종교전쟁이라면서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종교전쟁이라면 그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이념에 맞지 않습니다.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아닙니다.

SL 이러한 종교들은 다양한 민족주의적 목표에 이용되었습니다.

AJ 이 전쟁은 일당제 공산주의 국가의 소멸을 대신하여 정체성의 폭력적인 분할을 재창조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종족적-파시즘적(ethnico-fascist) 일당 체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투즈만(Tudjman)은 그것을 시도했지만, 그러나 그는 성공하지 못했는데 크로아티아가 주변 서방국들과 여러 문제가 얽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밀로세비치는 일당을 창조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러나 그는 극단적으로 민족주의적인 정당과 단일한 경찰세력을 창조했습니다. 그 지역은, 종교가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SL 각각의 경우에, 민주주의로의 길에 관해서 가장 잘 이해한 사람들은 이슬람교도였습니다.

AJ 그들은 민주주의로의 궤도 위에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스스로를 압박을 받는 소수자로 여길 수밖에 없었거나, 또는 보스니아에서 상대적으로 다수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세속적인 공화국을 건설했던 신교도와 유대인의 경우도 진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이슬람교도와 프랑스의 신교도-유대인 사이의] 그 관련성은 실제로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특정한 상황에 관한 것입니다. 정체성이 완전히 흩뿌려지지 않았던 때에 종교는 특정한 상황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SL 일정 정도로 코소보의 방어는 형성되기 시작했던 민주주의의 방어를 의미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민주주의가 무너지도록 도왔습니다.

AJ 물론 지금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두머리가 없이 이루어진 국제적인 위임과 그 나라를 점령하고 있지만 수족이 없는 군대, 그리고 국제적으로 봉급을 받는 NGO(비정부기구)들의 존재는 특정한 국제적 과두정치를 창조했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탄생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보호령입니다. 그리고 게다가 레바논의 3공화국 사례를 포함하여[레바논은 1990년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교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교 시아파, 국방장관은 이슬람교 드루즈파, 군사령관은 마론파 출신 중에서 선출되도록 하였다], 리요테(Lyautey)[프랑스의 식민지 행정관]나 다른 인물들이 했던 것같이, 중앙 집중화된 나름대로의 전망도 없습니다. 레바논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보세요, 우리는 스스로 민주주의로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 무엇으로부터? 오히려 민주주의는 앞으로 이루어져 할 것입니다. 레바논에서 그들은 종교적 공동체를 어설프게 만지작거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행하였습니다. 코소보는 동일한 언어를 말하고 동일한 종교를 공유하기 때문에 3공화국의 대표들은 정당 - 루고바(Rugova)[2002년 코소보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인물] 정당-을 동반하는 보통선거 유형의 민주주의를 재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루고바는 약간 부드럽고 U.C.K 정당은 약간은 마피아 단원들이지만, 모든 도시에 존재하며 일부는 마피아 단원이고 일부는 다소간 민주적인 사고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있을 것인데, 다소는 극좌이며 매우 견고합니다 - 견고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마피아를 제거하라고 세계은행이 제기한 조건이 존재할 것입니다. 세계은행은 이 나라의 미래를 마피아의 제거와 연결시킵니다. 글쎄 U.C.K.는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군사 이력을 지닌 정당이 될 것이며, 알바니아 민족에 관해 민족의 분할이라는 전망을 가질 것입니다. 그는 알바니아에서 온 알바니아인들에 관한 특별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네델란드에 갈 때, 플랑드르인은 네델란드 말을 합니다...

SL 그러나 현재 그 모든 것 대신에 우리는 '동결된 평화'라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AJ 그렇습니다.

SL 이제 우리는 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합니까?

AJ 그것은 국제적인 합의로부터 나왔다는 의미에서 평화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휴전입니다. 어느 누구도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복된 쪽에게 부과되어야 할 정치적 조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패자를 창조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패배했지만 정복되지는 않은 이들을 창조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이라크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패퇴했지만 정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의 조건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화 협상이란 없었습니다.

SL 그것은 "비-전쟁"(non-war)이었습니다.

AJ 그것은 "비-평화"(non-peace)엽니다. 데이튼(Dayton)은 이른바 평화합의라고 불리는데, 마찬가지로 그것은 평화 협정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것을 뭐라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미국에서조차 그들은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튼 합의에 관한 비판이 존재하며 그것은 최소한 수사적으로나마 유럽과 미국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남동 유럽을 위한 안정 조약'(the Stability Pact for South-East Europe)[1999년 6월 쾰른 정상회담에서 채택됨]이라는 발의안의 출발점입니다―하지만 이것도 조약은 아닙니다.

SL 그리고 그것은 근래의 일입니다.

AJ 그렇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밀로세비치가 패배를 시인하기 바로 하루 전 날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군대를 퇴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1999년 6월이었습니다. 이는 그것이 약속된 시간보다 빨리 이루어졌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미 그 이전에 유럽에서 [무장충돌이 조속히 끝나게 하라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아마 미국에서도 그러한 비난이 있었거나, 또는 미국이 유럽의 생각에 가까워졌습니다―그들은 그것이 마치 다른 방식인척 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단지 휴전선을 따라 그려진 것일 뿐인 평화조약 밖에도 이루어져야 할 다른 무엇들과,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큰 영역에 관한 합의와 같은 것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당연히 그것[밀로세비치의 결정]은 중상주의 체계의 "확장"(enlargement)이라는 미국의 영광스러운 전망과 부합했고, 따라서 수량-집약적이며 실속있고 규모가 큰 행진을 하기 위해 광활한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전쟁이 벌어지거나 휴전선이 있는 경우에 이러한 일들이 어려워질 뿐입니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국가가 제거되지 않은 이 공간을 너무 신속하지는 않게,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국들간의 새로운 접촉, 주변국들과의 선린관계, 재건을 위한 새로운 관계 정립을 통해서 말입니다. 미국은 당연히 주변국 문제에 대해 덜 관심을 기울이며, 국가들간에 "광범한 기능"을 증진하는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돈은 유럽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SL 코소보는 어떻습니까?

AJ 세르비아를 포함하여 발칸 지역 전체가 한때 민주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Montenegro)가 세르비아의 일부였을 때조차도 이미 그러했는데, 이미 분리되는 와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SL 마치 공산주의로 향하는 단계에 관한 이론처럼 들립니다...

AJ 맞습니다, 단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맑스주의가 규정한 그 단계들처럼 조절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SL 그러한 단계들이 실제로 그렇게 잘 작동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AJ 단계들에 대한 사고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럽과 미국이 단계들에 관해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중요한 논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SL 유럽에서, 그것은 모두 국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반면 미국은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오로지 돈의 흐름을 원할 뿐입니다...그들이 먼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때에 한에서 말입니다.

AJ 미국에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이 문제가 이론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최소한 항상은 아닐지라도, 실제로 그들이 국가를 파괴하는 것을 원하는지 또는 아닌지 여부를 아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합니다. 설령 그들이 국가를 다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최소국가(minimum state)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국가가 경제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의미하는 셈입니다.

SL 최소한 표면상은 아닙니다. 또는 항상 그런 것도 아닙니다.

AJ 그러나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미국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리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SL 최근 상태는, 자유무역,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미국으로 통합니다.

AJ 국가는 공식적으로 자유무역에 호의적으로 개입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은 '비개입'인 것처럼 보입니다. 만일 여기에서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약간의 역사적 깊이와 정치 문화를 덧붙인다면, 그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상당히 제한된 방식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는 명백하며, 그리고 모든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개입이 정치·사회적 형태를 "형성"(shape)하는 의도라고 말합니다. 형성은 "세계를 형성하자", "유럽을 형성하자"라고 말할 때의 표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정치는 소멸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단지 정치적인 세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법인기업(corporation)의 직접적인 활동에 유리합니다. 사물에 관한 이러한 설명이 불가능한 건 분명히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을 비(非)정치적인 정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입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정치이자, 경제적인 정치이며, 심지어 군사적인 정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군사적 주둔에 의해 수행되는 "형성"도 있습니다. 동시에 "국가의 건설"은 군대, 정치, 경제의 조건을 건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칸에 대한 유럽의 프로젝트와 미국의 프로젝트 사이의 충돌에는, 정상적이게도 완전히 현실적인 민감한 논쟁점이 있어 왔습니다...

SL "형성"에 대해서 부연하자면...

AJ ...형성에 대해―도대체 "형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의미에 관한 합의가 전혀 없다면, [전략]투사지대(projection zone)들에서 혼란이 일어나거나, 심지어 공개적인 분쟁이 나타나거나, 그리고 어떤 경우 동결된 평화라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SL 정확히 그렇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그들의 형상을 찾아야 합니다. 현 시점에서 그것은 이라크, 코소보의 전쟁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고, 또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분쟁과 독립적으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전략에 관한 군사적 개념으로 형성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AJ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 잠시 판단을 유보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군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죽음의 위협을 표현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근본적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은 권력의 창조에 본질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죽음의 위협이 정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군사적 수단으로 영토를 취하는 것을 거부하며,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군대를 배치합니다.

SL 미국이 원하는 것은 세계입니까?

AJ 그들은 세계를 원하지만, 세계를 침략하길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의 군사적 행동은 이러한 위협을 이용하여 세계를 관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목적일까요? 경제가 목적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목적이 세계에서 순수한 자유시장의 군림을 창조하는 게 정확히 아니며, 왜냐하면 그 '군림'이 위협에 열려 있고 그 위협에 의해 해 조절되는 시장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이것을 미국인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자신의 관대하고 민주적인 국가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수송관을 따라 내려오는 것은 그것입니다. 미군들도 이를 걱정합니다. 코소보에 관해 조차도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중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이 '군사적 혁명'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내가 말한 그 이유를 결코 분명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명백히,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라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략이다"라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공연한 전략이 전세계에서 독재국가를 끝장내고 민주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라면―왜냐하면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 들어보시오. 우리는 우리 나라 군대를 수송 중이오. 그러나 밀로세비치 체제와 같은 [독재]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재건하려 한다오, 밀로세비치는 파시스트오, 등등..."

SL 하지만 당신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독재국가가 있던 때에 그들이 이러한 전략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AJ 글쎄, 왜 그들이 거기에 대해 그렇게 때늦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미스터리는 현재 더욱 거대한데,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코소보에 있는 갈탄은 여전히 미국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는데, 미국은 지난 십 년 동안 그들이 발전시킨 자신의 관심거리에 흥미를 가집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의 군사적 지도력을 과시하고 [군사적으로 지배받는 이들에게] 그것이 이롭다는 것을 말할 때 미국이 보인 관심사는 군사적 지도력은 경제에 본질적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전세계적입니다. 지역적 관계에서 이것이 항상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코소보에서 이러한 현상을 잘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의 주둔이 직접적으로 약탈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SL 새로운 전쟁억지(deterrence) 체제를 수립하려는 시도에 관해 말해 볼까요―당신이 억지 문제에 관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핵 위협과 동등하지는 않더라도, 패배시킬 수 없는 기술적이며 컴퓨터화된 군사력이라는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AJ 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디테일리스트"(detailist)의 존재의 형성을 통한 강압의 위협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명백히도 푸코와 벤담의 원형감옥(panopticon)이 적절할 수 있는데, [군사적] 수색 및 조준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라면 그것은 행성의 모든 범위 즉 매크로, 메조, 마이크로 등등의 수준에서 완벽하게 지배한다는 일종의 편집증입니다. 수색 및 조준 능력의 지역적 수준의 실연은 세계적인 전략 가치를 지닙니다.

SL 얼마 전 키신저는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을 선택해왔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워싱턴에는 펜타곤을 위해 매일 모든 이미지와 메시지를 분석하는 만 명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또는 최소한 그것은 우리를 위해 미국이 그리는 그림입니다.

AJ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내가 만일 키신저가 매우 지적인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가 미쳤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진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는 그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SL 그것은 전쟁억지의 한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미국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쟁억지의 일부분이지 않을까요?

AJ 나는 그렇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전쟁억지는 완벽한 안전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응징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항상 완전히 사소한 것까지 응징해야 할 것인데, 이는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이를 위해서는 정찰기와 위성해독기뿐만 아니라 대량의 군대가 필요합니다...

SL 항상 적의 존재가 필요합니까...

AJ 잠시만. 원리상 적은 조화로운 교역이 이뤄지는 부드러운 세계 외부에서 강하게 단련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통제된 국가 체계로 이끕니다―또는 모든 진압이 자동화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정보를 자동화하면 그것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쪽에 마피아가 이웃을 교수형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을 징벌하고 무력화시키기 자동조준 화살을 쏜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공상과학소설의 세계와 거친 상상으로 떨어집니다.

SL 잠시. 여기서 핵 억지와 우리가 오늘날 묘사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전자화·컴퓨터화된 억지 체제를 비교해 봅시다.

AJ 핵 억지는 그것이 작동되기만 하면, 자신의 배를 불태우는 셈이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작동한다. 대개 이런 식입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그런 식으로 우리를 위협한다면 나는 죽을 것이며 당신도 나와 함께 데려갈 겁니다." 드골은 흐루시초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죽어야 할 것입니다, 서기장." 그러므로 당신이 그 순간에 일단 도달한다면, 당신은 정치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거대한 폭발에 대해 공통의 위협은 협상을 선호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냉전이 항구적인 협상이었던 까닭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그렇고 유고슬라비아나 그밖에 어디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결코 발발하지 않았는데, 그 누구도 측정할 수 없는 핵 폭발력이 상징하고 잠재적으로 충족하는 공통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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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국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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