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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2.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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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문화산업의 금융화 : 문화시장 개방에서 재고해야 할 것들

박준도 | 사무처장
신경제론자들은 미국의 경제회생을 이끌 삼두마차로 대개 다음 셋을 꼽는다. 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 할리우드. 각각 금융산업, 하이테크(정보통신)산업, 오락(문화)산업을 상징하는데, 이들이 오늘날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막대하다.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버팀목 역할을 하는 캘리포니아 주의 년 총생산이 1998년 한해에만 1조 달러가 넘었으니까 이것만으로도 GNP 규모 세계 7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역시 지난 몇 년간(앞으로도 몇 년간) 이 흐름을 뒤쫓으려 전력을 다했는데, 월가를 옆으로 밀어놓고 보면, 고부가가치 지식경제란 애초에 한국의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를 꿈꾼 것에 불과하다. 이 삼두마차가 이끄는 신경제에 대해 몇 가지만 확인해보자. 첫째, 이들이 성장의 원동력이 될 지는 아직 검증된 바 없으며 신경제론자조차도 확신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 단시일 내에 자금을 조성할 수 있고 빠르게 회전(혹은 철수)할 수 있는 금융적 투자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자체의 수익(금융적 수익)에 대한 의존도도 커지고 있다는 것, 셋째 이곳의 종사자들은 포스트 노동사회의 (노동)윤리, 가치 체계의 상징으로 표상되는데, 이것은 노동의 불안정화가 야기한 사회적 파장을 은폐한다. 물론, 이 산업 종사자들의 직업수명이 길지 않고, 몇몇을 제외하면 임금도 전체 산업의 평균보다 높다고 볼 수 없으며, 후생복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때, 문화산업의 지위는 좀더 특별한데,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상징체계 자체가 산업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산업은 단지 경제적 (효과)차원으로 볼 수 없으며, 이데올로기 차원의 분석이 필요하고, 더불어 그것의 정치적 의미를 읽어야만 한다. 이점에서 문화제국주의론은 많은 것을 지적하고 있다. '서구의 지배계급이 피억압 민족들의 가치·행태·제도·정체성을 제국주의적 계급들의 이익에 부응하도록 재편하기 위하여 민중계급들의 문화생활에 조직적으로 침투하고 지배해 들어가는 것이며, 이는 비군사적 수단을 이용한, 반란진압전쟁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 수탈과정에서 식민지 피착취 인민들의 저항을 제어하려고 문화적 침투(미국적 가치의 외삽)를 시도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산업을 지배세력의 지배수단으로만 보거나, 이 차원에서만 비판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인데, 왜냐하면, (반)주변부에서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형성과 함께 근대적 노동사회의 윤리가 (종속적으로) 일반화되면서 대중의 문화적 판단이 변하고 있고, 더구나 오늘날 문화산업은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넘어 지배세력이 기대할 수 있는 이윤창출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규제완화와 '표현의 자유'
- 문화산업 컨텐츠 확보를 위한 전쟁

NWICO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듯 1970년대 말에 이미 '정보자원의 불평등', '미디어 생산물의 분배, 유통 구조에서의 양적 불균형과 질적 왜곡'등이 국제적 의제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는 '전지구적 미디어의 불균형 종식, 국가 발전 목적에 기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지지한다는 모호한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동시에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한 지속적인 보장, 국가의 미디어 독점을 반대하는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였으며, 여기에 '채널과 정보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까지 추가하였다. 사실, 중심부 제도권 인사들에게 NWICO는 재앙이나 다를 바 없었는데, NWICO가 1970년대 광고시장의 급성장이 주도하는 전지구적인 미디어 시장의 형성을 공개적으로 저지하려는 기구로 보였던 것이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의 역사를 살펴보면, 서구에서조차 처음에는 국가 혹은 중앙정부의 통제아래였음을 알 수 있다. 무작위 대중을 상대로 하는 방송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자체가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다가, 이 과정은 대체로 공익성이 강조되면서 타협되었다. 2차 대전을 경과하면서 라디오 방송, 영화의 이데올로기적인 역할을 확인하고부터는 국가차원의 중요성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특히, 신생 독립국의 경우 더욱 그랬는데, 민족적(or 종속적) 발전의 길을 제시하는데 이만큼 유력한 수단(국가기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3세계에는 대체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컨텐츠가 부족했고, 더불어 이에 대한 국가의 완강한 통제(규제)는 컨텐츠를 생산하는데 장애요소로 비쳤다. 미디어 시장이 증가하고, 더구나 광고시장의 성장으로 사적인 제작 가능성이 늘어난 상황에서 이 같은 장애요소는 중심국, 주변국 할 것 없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이를 빌미로 서구의 미디어 회사들은 NWICO와 유네스코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데, 이들은 NWICO 옹호자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언론을 검열하는 독재자라며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험(군부독재정권의 언론·문화 통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말은 꽤 그럴 듯 하게 들렸는데, 여하튼 이 논란을 배경으로 미국과 영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하고, 논쟁점이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이들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1970년대 미국의 탈인플레이션 정책(강한 달러, 고금리)으로 막대한 외채상환 부담(수출적자, 국제금리상승)을 지면서 IMF, 세계은행에 더욱 의존하게된 3세계로서는 더 이상 NWICO를 옹호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3세계 국가에서도 중심부 국가와 마찬가지로 텔레커뮤니케이션의 규제완화, 자유화가 진행된다.
우리나라도 이때부턴데, 영화 및 음반 제작사의 설립제한, 제작사의 수입제한, 금융규제 등등 문화산업에 대한 규제조치가 조금씩 완화되고, 1987년 헌법개정을 통해 '언론 출판에 대한 검열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명문화된다. 유신정권 이래 유보된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것이다.

많은 대중문화 평론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군사독재 치하에서 대중문화는 '질식'상태였는데,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경로가 매우 전근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상품)의 적합한 생산 경로란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문화(상품)생산, 그리고 익명의 대중에 의한 소비일텐데, 이것이 시장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전근대적인 생산방식 즉, 경제외적인 압력(연예인 전속, 불분명한 자금, 사전심의제도로 상징되는 군사독재정권의 강압적인 통제 따위)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중문화의 발전이 지체되었다는 것인데, 이 말은 부분적으로 진실이다. 어찌되었든 문화산업의 주체들이 이 같은 전근대성의 극복에 사활을 건 것은 분명했다.
이럴 때 대중문화에서 '표현의 자유'란 창작자의 문화상품 생산의 자유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사실,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의 자유(문화예술에 대한 권리)라기보다는 노동력을 제공(구입)하는 추상적인 개인의 자유 즉, 창작자의 문화 컨텐츠를 소유하고 교환·판매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의 보증에 더 가깝다. 오늘날 창작자 개인의 법적인 권리가 문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보편적인 권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 탓이다. 따라서, 국가의 위협에 맞서는 개인의 권리라는 '표현의 자유'(국가에 대한 의무에 의해 제약되며, 사적 자본의 영향력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한)는 현실적으로 문화산업 규제완화의 지표로서, 문화 콘텐츠의 산업화 지표로서 역할을 한다.

1989년 12월 연행예술(연극, 음악, 무용 등)의 공연에서 각본 또는 대본의 검열 폐지를 시작으로 사전 심의 폐지가 조금씩 진행된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1980년대 국가적 엄숙주의를 조롱하던 마광수가 1992년 [즐거운 사라]로 구속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간다. '이념'을 둘러싼 지형이 '성(性)'으로 옮겨간 것이다('사상의 자유'보다 '표현의 자유'). 문화콘텐츠 확보를 위한 국내자본의 모든 노력이 집중되던 1995년 영상과 음반의 사전심의제도 개폐 논란은 더욱 뜨거워진다. 1996년 서태지의 4집 앨범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할 때'에 대한 공윤의 사전심의 논란은 논쟁을 대중화했고, 영화법은 영화진흥법으로 개정되었으며, 헌법재판소는 영상 및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해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한 영상 및 음반의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다. 1998년 비디오물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역시 위헌 제청을 받게되고, 2000년 방송위원회의 광고방송 사전심의제도도 폐지된다. 음반 및 비디오 게임물에 관한 법률 역시 2001년에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명목으로 이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는데, 게임물도 등급화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해 인터넷 내용 등급제가 실시된다.
이렇게 모든 법률 및 규제조치들이 문화산업의 육성을 지원하고, 문화 컨텐츠 확보에 어려움이 없도록 완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오락으로서 문화산업

1990년대 이후 미디어 시장의 특징 중 주목할 것이 있는데, 영화·텔레비전·음악에서 할리우드의 매력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순위 정상을 차지하는 TV 프로그램이 대체로 자국 프로그램인 것이다. 할리우드 제품과 견주어 동일한 오락성을 가졌을 경우 대중은 자국의 제작물을 더 선호한다는 것은 이제 문화 산업에서 정설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서도 뚜렷이 드러나는데, TV 드라마는 물론, 서태지로 상징되는 국내가요 시장점유율은 2000년 현재 70%를 상회하고, '쉬리'를 시작으로 국산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급상승하여 이제는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때 전제조건을 눈여겨보아야 할 텐데, 바로 동일한 오락성이라는 전제다. 이는 한국문화의 소비규범이 미국에 동화된 지 오래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국내 문화산업의 컨텐츠가 조금씩 확보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과 주거공간이 분리되고 노동시간의 배치가 주중노동-주말휴무 이렇게 체계적으로 분리되면서 노동과 여가의 경계가 분명해지는데, (대량)소비가 이를 묶는 사회통합의 기제가 된다-'소비에 의해 매개된 노동과 여가의 통합'. 소비가 노동과 여가의 통합을 매개할 즈음 새로운 문화예술이 출현하는데, 산업-디자인예술과 대중문화예술이다. 앞서의 것이 근대적 노동을 찬미하고 이의 판매와 거래를 돕는다면, 뒤의 것은 심미적이며 찰나적인 그리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미를 강조하고 개인의 취향과 (대중적) 선택을 존중한다. 이것이 소비의 대상으로써 상품으로 다뤄지는 것은 미학의 문제라기보다 산업의 문제에 가깝다. 특히 후자의 경우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친화력도 문제지만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에 걸맞은 예술생산체계(예술생산의 테일러화)를 갖추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런 생산방식을 선도했던 것이 영화산업인데, 영화산업 자체가 생산과정의 분업화와 전문화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 경기 침체로 완전고용이 포기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사회-여가생활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탈노동사회로 가는 길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은 근대적인 노동규율에 더 많은 사람을 묶었다. 고용불안을 선두로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어갔고, 이를 재충전하기 위한 여가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지만, 남성생계부양형 핵가족은 해체되고 있었고, 대량 소비를 통한 길말고는 뚜렷한 대안이 없었다. 이에 따라 '소비주의의 열망과 기대가 높아지면서 여가시간마저도 효용을 최대화하려는 노동시간의 생산성 모델을 닮아가고 있었다'.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해소할 수 있어야 했고, 그럴 수 있는 소비대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인데) 이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한편, 모더니스트들이 주도한 현실사회의 그림자 속에서 역사적 진보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과거의 예술형태와 작품의 의미작용을 해체하기 바빴고, 권위에 찬 예술작품보다 참여나 실현, 겉모습에 주목했다. 이런 현상은 대중의 소비 대상인 문화산업에서 더욱 심하게 드러났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부차적이었고, 매체의 이미지, 이벤트, 스펙터클, 헤프닝이 중요했다. '기의'보다 '기표'의 적절한(혹은 다양한) 조합이 관건이었다. 이런 현상은 문화산업에서 생산된 작품의 일시성, 순간성을 더욱 가속시켰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문화산업은 점점 더 짧은 시간 내에 짜릿한 쾌감을 제공할 수 있는 오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금융기법의 활용 : 문화산업의 금융화

따라서, 문화산업에게 다음은 필수적이었다. 스펙터클한 오락과 이미지의 충실한 재현을 위해서는 과거보다 몇 배 더 규모가 큰 재정이 필요했고,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소비수요를 보장할 수 있는 광범위한 유통·배급 네트워크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동일하게 하나의 문제기도 했는데, 작품성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면 이 같은 과정은 하나의 공정으로 통일되어야 했다. 문화산업의 컨텐츠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었고, 응용의 폭이 넓으며, 성공만 하면 영향력은 지속적이었다. 콘텐츠 산업과 유통·배급을 담당하는 네트워크의 통합 필요성은 점점 늘어나고, 이에 따라 문화산업의 수직적 통합이 진행된다. 타임워너, 바이오컴 등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대 미디어기업들은 수 개의 콘텐츠 사업과 수 개의 네트워크를 거느리고 있으며, 지금은 거대 미디어기업들 사이의 합작과 병합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었는데, 최초 투자 재정 규모가 커지는 만큼 성공에 대한 위험부담률이 급증하였고, 문화산업의 기술(특히 디지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제작 초기에 들어간 설비자금은 쓸모 없어지기 일쑤였다. 이런 사실들은 당연히 미디어 기업들에게 재앙이었는데, 이런 위험을 감소시킬 방법으로 이들은 각종 금융적 기법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영화산업에서 이런 현상은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과거에는 전적으로 은행 혹은 기업의 후원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금융시장에서 공개적으로 자본을 모으고, 제작자들 사이·미디어 기업들 사이의 합작 투자로 서로의 위기를 줄였다. 나아가 한편의 영화 제작에 필요한 투자자금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몇 년간 영화제작계획을 내놓고 투자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상을 위해서는 전적으로 제작자(감독)의 권한이었던 영화제작과정이 보다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했다. 각본 공모에서 기술 채용, 배우선정, 촬영 및 편집 과정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투자자들(심지어 일반 소비자까지)은 이것을 지켜보며 최종편집과정까지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의 효과는 분명히 드러났는데, 흥행에 실패(과거 기준으로 보면 더더욱 명백한)해도 영화 자체의 수익구조는 보장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난 것이다. 새로운 소득이 생긴 것이다. 금융적 소득.
이렇게 문화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상품의 포장,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소요되는 잔여적인 것으로 밖에 보지 않았던 기업으로서는 광고산업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산업 자체의 지위에 대해 다시 고려해야 했다. 특히 다국적 기업(혹은 이를 지향하는)들의 관심이 특별한데, 이것이 이미지 재고 차원을 넘는 것임은 분명하다.

앞서 대중문화의 질식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문화시장 자체가 빈약했던 80년대 이전에는 한국의 재벌조차 문화산업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TV 광고시장이 성장하고 각종 가전 시장이 커지던 1980년대 삼성, SKC, 대우, 현대 등 재벌 기업들이 문화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애초에 가전제품 등 단순히 하드웨어의 판매 촉진을 위해 뛰어든 것이었는데, 상황은 단번에 역전되었다. 1987년 3저 호황에 힘입어 문화산업의 내수시장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급증한 비디오 유통시장이 이를 단적으로 반증했다. 이렇게 국내 문화산업의 시장규모가 확대되자 이들 재벌들이 만들어 놓은 유통조직을 이용하여 미국 영화사의 직접 배급이 시도된다. 1988년 UIP 영화직배로 시작되는 유수의 영화 직배회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과도한 경쟁으로 영화 판권료로 급등하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재벌들은 국내 영화 제작 직접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광고시장으로 이미 멀티미디어 산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데다 직접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1992년 삼성이 [결혼이야기]에 직접 투자하면서 이는 본격화되는데, 직배와 금융실명제로 적절한 투자자를 찾지 못했던 충무로에게 이 같은 지원은 단비 같았다. 이를 계기로 상당한 흥행실적을 올리면서 산업으로써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 즈음은 동시에 영상에 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던 해이기도 하다(1995). 그 해에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던 영화업이 산업으로 분류됨에 따라 금융자본에게도 투자의 길이 열렸다. 창업투자회사는 영화산업의 자금회수기간이 빠르고(길어야 1년) 막대한 이윤회수가 가능하다는 이점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였는데, IMF 관리체제 하에서 재벌들이 모두 철수한 상황에서도 창업투자회사는 투자를 꾸준히 늘렸다. 이런 투자들을 기반으로 충무로는 헐리우드와 비슷한 수준의 재미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에 새로 개정된 종합유선방송법은 한 프로그램 제작회사가 다 채널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외국자본의 투자를 보장하면서 국내 혹은 국외 미디어기업들 사이에 수직적 합병(투자)의 기회를 연 것이다.
이때 [그 섬에 가고 싶다](1992)에서 시작한 해외자본의 직접 투자를 눈여겨보아야 하는데,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영화제작에 대한 직접투자는 물론 영화제작사에 대한 해외자본의 투자도 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한·중, 한·일 공동출자에 의한 영화제작도 늘고 있다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해외자본의 직접 투자 비율도 조금씩 늘고 있는데, 2002년 한해에만 세편의 영화가 해외 자본으로 제작을 마치거나 계약을 맺었다. 더불어, 문화산업의 소비 유통망-네트워크에 대한 해외자본의 투자도 확대되고 있는데, 전국의 여러 멀티플렉스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 플렉스'는 일본 소니의 계열사 투자를 받아 시작한 것이고, 세계적인 거대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가 우리나라 케이블 TV 망에 관심을 가지고서 조금씩 투자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문화산업, 특히 영화산업의 경우 문화상품 자체의 생산성 논리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행 참패가 몇몇 투자사의 어려움으로 이어지자, 영화투자자금이 물밀 듯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광범위하게 일었는데, 직후 영화산업의 거품을 빼야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정확한 시장조사와 불필요한 마케팅비, 제작단가 등 거품을 줄여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자체가 이미 산업이므로 과거 전적으로 감독에 의존하던 것을 산업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체질을 바꾸자는 뜻이다. 또한 영화제작과정에서 투자자들의 권한 역시 대단히 제고되었는데, 투자자들은 생산관리자가 매일 작성해 올리는 보고서를 보면서 촬영 진행도, 감독과 배우의 컨디션, 제작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해들으면서 추가투자 여부를 결정하면서, 예산이 과도하게 넘거나 영화의 질(흥행성)을 떨어뜨릴 만한 위기가 발생하면 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영화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안정적인 영화제작기반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흥행에 참패했지만, 과거처럼 막대한 손해를 입지는 않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상황까지 발전한 것이다. 물론, 영화산업에 한정되는 문제겠지만, 영화산업이 문화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생각할 때 이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다.
이제 문화산업이 대상으로 하는 모든 컨텐츠의 권리는 투자자의 권리로 제한될 것이다. 영화자체의 작품성보다 영화의 마케팅이 더 중요해지고, 제작사의 마케팅과 배급 망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다. 흥행수입의 도박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영화의 오락적 기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대중의 소비패턴 변화는 이를 더욱 강하게 보증할 것이다. 영화 밖의 수입(공동투자 등등에 따른 각종 금융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예술로서 영화보다 산업으로서 영화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예술로서 영화는 점점 더 초라해질 것이다. 언제 철수할지 모르는 투자자들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이런 경향을 강하게 할 것이고, 뜻하지 않은 이유로 이들이 갑작스럽게 철수해 버리면 한국 영화는 그야말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점점 영화제작의 투명성이 제고되고, 모든 컨텐츠의 권리는 더더욱 투자자의 권리로 제한될 것이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악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화시장 개방에 맞서는 전략을 다시 사고하기 위해

오늘날 서비스 부문에서는 투자가 무역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띄는데, 최종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소비' 규범을 중심으로 동질화되어감에 따라 서비스의 국제화 과정이 용이해진데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공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조직되었던 대규모 인프라들이 자유화 및 탈규제 운동으로 투자제한을 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일하게 직접 소비 시장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막무가내식 교역 확대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까지 추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문화산업의 경우 이러한 곤란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언어와 문화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않고 사업을 확대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모험이고 기회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문화산업의 기반은 대단히 약한 편이었다. 한국 문화산업의 콘텐츠 부족도 문제지만 문화상품 하나 마땅히 소비할 수 있는 기반이 약하다는 사실도 문제다. 따라서 집중된 자본으로서는 문화산업의 속성상 문화시장 자체를 키우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사실, 스크린 쿼터 등 자국 문화산업의 성장을 위한 몇 가지 제도들은 지금 현재 시점에서 해외자본에게 꼭 불리하다고만 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 이것이 문화적 이질감을 쌓는 장벽이 된다면 그들에게 대단히 심각한 문제일 수 있겠지만, 이것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문화적 동질감(문화산업에 대한 대량소비)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서 스크린 쿼터제도 폐지를 요구한다면 그 말은 진실일 수 있다. 그래야만 어디서든 이들의 문화상품이 소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문화시장 개방 요구를 문화상품에 대한 선진국 '소비규범'의 확산과 이를 위한 각종 규제의 철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영화산업의 무역장벽이라는 '스크린 쿼터' 철폐는 그 중 하나인데, 역시 동일하게 문화산업에 대한 자본의 투자 제한 역시 이들에게는 관건이다. 따라서 이에 맞서는 우리의 싸움은 '스크린쿼터' 사수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동일하게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하게) 한국 문화산업에 대한 해외자본의 직·간접(공동)투자와 문화산업의 금융화도 문제삼아야 한다.

문제가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닌데, 스크린 쿼터로 지킨(혹은 지키려는) 우리의 문화는 무엇인가가 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영화 50%, 우리 음악 70%라는 현실은 결코 낙관적인 것이 아닌데, 앞서 잠시 지적했듯 이 말은 거꾸로 우리 영화와 음악이 헐리우드와 동등한 수준의 오락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근대적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의미에서 탈 노동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구속되어 노동권이 더욱 박탈당하는 사회에서, 실질적인 여가의 실종과 끝 갈데 없는 소비가 이를 대신하는 사회에서, 소비를 조직하고 신용으로 얻어 쓴 소비를 갚기 위해 더욱 강요된 노동을 해야하는, 이 과정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오락으로서 문화가 우리의 문화라는 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인가.
오늘 한국의 대중문화가 지니고 있는 성격에 대한 비판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사고하기 어려운데, 이미 자본주의의 소비문화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미국)자본주의의 주체화 양식에 대한 비판과 동시적이다. 지금부터라도 이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사고해야 한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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