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7-8.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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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8갈월동기행-곽경호.hwp

갈월동 지기 3개월

곽경호 | 회원,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사무차장
갈월동에서 생활한지 3개월이 지났다. 사회진보연대의 모범회원임을 자처하며 쓰기로 했기 때문에 이번은 정말 갈월동 기행답게 갈월동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갈월동 4층 사무실은 여러 단체가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민중의료연합, 사회진보연대, 민중복지연대, 진보교육연구소, 교육비평, WTO반대 국민행동 등 많은 단체들이 바쁘게 활동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하지만 단체의 수에 공간의 규모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밀도는 높은 편이다. 작은 건물 한 층일 뿐인 이 좁은 공간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매일 각 단체의 상근활동가를 합쳐 30여명쯤이 공간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회의와 각종 논의를 위해 오는 사람들을 합치면 유동인구가 100명이 되는 날도 있는 것 같다. 좁은데 사람이 많은 탓도 있는 듯 하고, 자연의 열기를 그대로 흡수하여 건물 안으로 그대로 나누어주는 탓인지 이곳은 너무 덥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노릇은 겨울에는 춥단다. 이런 사무실이라도 있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하는 것인지, 한탄을 더 해야하는 것인지 아직 판단은 못하겠다. 지금은 더운 것말고는 좋다. 뭐 어쨌든 이 글의 목적은 갈월동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은 것을 쓰려는 의도니까 상관없다.
이 사무실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은 곳은 흡연 가능한 휴게실이다. 복사기가 있는 이 휴게실은 창고 같기도 하고, 아주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어떤 이는 가끔 이곳에서 애인과 전화통화를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고, 회의하다가 답답해질 때 머리를 식히러 이곳에 들어오기도 한다. 컴퓨터랑 마주 보고 일한다는 것은 너무 각박한 일인데 그나마 그 공간이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물론 비흡연자들의 문제는 지금 고민 못하고 글을 쓴다는 전제 하에서). 어떤 때에는 컴퓨터가 보기 싫어 방황할 때가 있다. 물론 일하기 싫어서 그렇다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어쨌든 그럴 때에 이 좁은 휴게실은 많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또 아무리 벽이 없는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단체별로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기는 하다. 넘나드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휴게실은 공동의 공간으로 다른 단체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사실 사람들이 너무도 바빠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여기뿐만 아니라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여기는 이런 경로를 통해서 인간관계가 다시 맺어진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진보교육연구소의 워크샵이 어떤 주제로 언제 진행되는지, 세계사회포럼에서 무슨 논의를 하는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단체 상근활동가들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명절 때 집에 가서 느끼는 기분과 동생들의 얘기를 하며 손뼉을 치고,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대화도 나눈다. 진보교육연구소 언니가 그렇게 재미있는 언니인지, 사회진보연대 편집실장 언니가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한지 다 휴게실에서 알았다. 담뱃값이 올라서 담배를 끊게 되면 정신 건강에 안 좋을 테니 건강이 좋아진다고 말하는 것은 틀릴 수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하지만 담배가 없다고 해서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일하는 민중의료연합의 사람들 중 담배를 끊은 사람들은 담배를 피지 않음에도 그 공간에 들어와 담소를 나누는데 같이 한다. 담배를 끊으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담배 연기를 타박하면서도 같이 앉는다. 재미있다.
휴게실이 아닌 곳에서 다른 동지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했나 반성해보게 된다. 우리 사무실 고양이 ‘봄’이 덕에 자연스러운 것도 좋고, 더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앞으로는 해로운 담배말고, 투쟁하면서 굳건한 동지애가 만들어지겠지 하는 교과서적인 기대를 하며 여기서 갈월동 기행 끝!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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