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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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9.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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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책과나_김세옥.hwp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복원과 페미니즘 역사의 비판적 재구성을 위하여

김세옥 | 회원, 공공연맹 여성위원장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 가족과 성욕을 둘러싼 쟁점들]
권현정 외 지음, 과천연구실 세미나 19 , 공감



민주노총에서 여성위원회는 조직내 여성의제와 사업의 주체이다. 노동운동현장에서 여성사업이랍시고 열심히 악다구니를 써대지만 우리는 늘 자신에게 반문한다. ‘내가 여성주의자 맞기는 맞어? 진짜 여성주의가 뭐지?’ 우리는 늘 그렇게 헷갈리고 자신없어 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자신(여성)의 역사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역사는 있으되 자신의 것으로 정리되어 있거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군더더기 없이 이 책속에 정리되어 있는 페미니즘의 거대한 통사. 단순한 통사차원을 넘어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진단한 각 시대의 다양한 페미니즘의 깊이와 질량은 우리를 압도한다.

계급모순과 여성모순, 두가지 모순에 동시에 노출되어온 우리에게는 그동안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 그 모순 변혁의 주체로서 운신하려 했지만 여성차별과 억압을 강요하는 조직내에서의 갈등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자기한계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빌려입은 여성학 옷으로 교육이다 토론이다 치장을 했지만 늘 어설펐던 것은 제대로 된 페미니즘 역사와 관점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깨달음은 이 책을 만난 후 얻게 된 것이다.

흔히 페미니즘의 역사를 투표권운동에 주력했던 1세대 페미니즘인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사적. 성적영역의 여성권리투쟁을 전개했던 급진적 페미니즘인 2세대 페미니즘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이책은 이런 접근 자체가 페미니즘이 처음부터 사회변혁과는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존재했다는 분리주의적 관념을 전제로 한다며 ‘잊혀진 전통의 복원’이라는 명제로 실종된 페미니즘의 전통들에 주목함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성적자율성을 사회변혁의 전망속에서 실현하려고 시도한 사회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복원하는 것과 나아가 페미니즘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기한다. 유토피아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의 전망을 어떻게 구체화 시켰는지 그리고 이후 어떤 역사적 과정속에서 이러한 전망이 어떻게 계승 또는 망각되었는지 주목하면서 페미니즘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전화를 위해 오랫동안 초정파적인 연구를 해 왔다는 ‘과천연구실’이 19번째로 발표한 성과물인 이 책은 모두 5명의 공동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운좋게도 저자들이 직접 연구집필의 내용들을 강의하는 것을 들을 기회도 만났다. 막스주의적 페미니즘의 지적충만감으로 흥분한 내게 그녀들은 말한다. 19세기 초 유토피아 사회주의 여성해방사상은 여성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을 사고하게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리가 되는 보편적 권리로 제시되었음을. 하지만 노동자운동이 ‘남성생계부양자모델’과 ‘가족임금전략’을 수용하면서 여성운동과 분리되는 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변혁성은 후퇴되었고 오늘날 노동운동 진영이 여성의제를 노동의제로 다시 복원 결합시킬 때만이 진정한 변혁지향성을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각 단계의 페미니즘들이 각자의 발전단계에서 이전 단계의 페미니즘을 어떻게 수정보완되었는지 설명되지만 한번도 그 완결성이나 지향적 모범성을 지닌 페미니즘 단계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으로 전사회적 시스템을 재편 하려했던 콜론타이의 시도는 주목받는다. 여성권과 노동권의 결합이라는 지점에서 러시아 혁명이후 10년의 사회적 실험을 실천했던 콜론타이의 시도는 변혁성의 모범으로 정리된다. 여자레닌이라 불리우며 레닌의 “국가와 혁명”과 짝을 이루는“공산주의와 가족”에서 가사와 보육의 사회화, 독신을 전제로한 자유결합을 실천을 설파했던 콜론타이의 볼세비키 페미니즘 실천 10년의 의의와 한계는 오늘날 우리의 교훈이 된다.

콜론타이를 지적하며 “어찌 그 시대의 한사람이 한사람이겠느냐“는 저자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피와 땀으로 점철된 치열한 일상적 실천과 투쟁을 엮어가는 무명의 다수들에 의한 것임을 확인 받는다. 소수의 이름씨 뒤에 수많은 무명씨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조직내 여성할당제 쟁취를 위해 한달이 넘게 몸부림을 치고 있는 자신에게 ‘어찌 한사람만이겠냐’고 역사는 위로한다. 동시에 현재의 투쟁이 비록 개별적으로는 각자의 일상을 깍아내는 고통으로 만들어 가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변혁지향성을 가지지 못할 경우 냉정한 한 두줄의 역사적 평가로 남을 뿐이라는 두려움도 200년이 넘는 여성해방사상을 정리한 이 책은 교훈한다. 끊임없이 검증하라. 페미니즘 역사의 변혁성을.

멀리는 1789년 프랑스혁명서부터 서술되는 여성해방 사상과 시대별 각 단계에서의 다양한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통으로 바라보는 각 단계별 페미니즘의 의의와 한계, 분리주의에 대한 해석과 입장, 가깝게는 성전쟁과 성정치, 그리고 100인위원회의 성과와 한계까지, 공부가 충분하지 못한 자신에게 한 장 한 장 만만찮은 주제와 쟁점을 담고 있고 벅찬 과제들로만 가득한 이 작은 책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 하나 여성의제가 자신의 의제이고 실천영역이라면 어찌 이책을 예사롭게 비껴갈 수 있으랴. 여성주의 입장을 정리하는 잣대하나 없이 차별과 억압이 육화시킨 여성의식 하나로 버티던 내게 여성적 코드를 만들어준 이 책은 당분간은 나의 페미니즘 교과서가 될성싶다. 덧붙여 이 책과 더불어 갖게된 소중한 만남들에도 감사한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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