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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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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세계화와 한반도 전쟁위기

박하순 | 집행위원장
*편집자 주 : 아래 글은 9월 11일 테러 2주년을 맞아 WTO 5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칸쿤에서 진행될 무역과 전쟁 포럼에서 발제할 글입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1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반전투쟁의 성과를 모아내고 또한 9․11테러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군사적 세계화 즉,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반대투쟁을 호소하는 목적으로 아래글을 칸쿤 현지에서 발제할 계획입니다.

911 사건을 애도하는 적절한 방식
먼저 2년 전 오늘 뉴욕에서의 불행한 사고로 희생을 당한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보냅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은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시 행정부를 비롯한 세계의 지배세력들이 이들의 희생을 ‘테러와의 전쟁’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으면서 세계를 더욱 커다란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슬픔을 표하는데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나 군사력의 증강이 아닌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통해서만 그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애도를 표하는 적절한 방식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곳 칸쿤까지 오는 길은 매우 험난했습니다. 지배세력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의 결집을 막아 보려 했습니다. 테러의 위험을 내세워서 자국을 경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비자를 요구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는 그들의 ‘테러와의 전쟁’이 세계평화를 테러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해도 우리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였다는 이 작은 승리는 우리의 투쟁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희망은 이라크침략에 반대하여 조직되었던 세계적인 반전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첫 걸음일 뿐입니다. 침략 이후, 이라크 민중들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에 고통을 받고 있고 자기-통치를 위해 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소위 ‘악의 축’이라 불리는 다른 나라-이란, 시리아, 북한-에게로 자신의 목표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부시가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무한한 전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지속적인 그리고 전지구적인 저항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들을 분석하고 반전운동의 공동의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전쟁: 무장한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와 군사주의의 세계화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담론과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에 평화가 아닌 폭력, 파괴 그리고 전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신의 내재적인 한계와 자신에 대한 저항에 직면하여 위기에 처하게 되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보다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911 이후의 소위 부시독트린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교리는 이러한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부시독트린은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을 세계화의 보호로 정의하였고 잠재적인 적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자본의 세계화와 군사주의의 관련이 더 밀접해 지는 세계화의 새로운 단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를 ‘무장한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세계를 절멸의 위협으로 빠뜨린 두 차례의 세계전쟁의 원인은 19세기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식민지의 분할과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의 격화였습니다. 이와 비교해서 21세기 초에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 속에서 ‘새로운 전쟁’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전운동이 ‘테러와의 전쟁’과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주의화에 대한 반대를 조직해야 하며,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총체적인 반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의 핵의혹 사태의 본질
무장한 세계화의 시대에 나타나는 전쟁위협의 증대와 군사주의의 강화는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강화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주장과는 다르게, 미국 정부에게 한반도의 위기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 정부가 미국의 대북특사가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제시했고 이를 북한이 시인했다고 발표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측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근거 없는 의혹을 제시하여 북한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핵문제의 역사적인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한반도에서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계획을 수립해 왔고 핵무기를 한반도와 그 근방에 배치해 왔습니다. 76년 당시에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 총수는 대략 600-700개로 추산됩니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데탕트의 물결을 타고 한반도비핵화의 문제가 제기가 되었으나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회의적으로 일관하면서 93년 북한의 핵시설의 사찰을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첨예화되어 심지어 전쟁 발발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습니다. 1년여의 공방 끝에 94년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북미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수로를 제공하는 내용의 합의가 채택됩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제네바합의를 고의로 위반하였습니다.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해야 하나 공사는 의도적으로 지연되었고, 관계정상화의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크게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보장하는 한편 안전을 보장해야 했음에도 군사력 증강과 체제 위협은 계속되었습니다. 클린턴 정부 후반기에 본격화된 북한에 대한 ‘접촉(engagement)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로의 경제적 통합을 목표로 하여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하여 평화공존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북아 내에서 한미일 군사공조체제의 강화를 전제함으로써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자극할 여지를 가졌기 때문에 모순적 측면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911 이후의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더욱 강경하게 변화해 왔습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옵션’을 재차 천명했으며 북한의 정권교체를 대북정책의 목표로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제시하여 제네바합의의 이행을 방기해 온 자신의 책임을 북한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이익을 더욱 관철할 수 있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부시 정부의 강경책에 북한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과 이에 따른 강경한 대응은 당연한 것이며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한편으로는 정당한, 하지만 매우 위험한 대응을 계속 해 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한반도의 위기의 일차적인 원인은 제네바합의의 고의적인 위반 이후에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여 계속해서 북한에 대한 위협을 높이고 있는 미국의 태도이며, 이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전쟁위협의 증대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주의의 강화
미국은 북한의 어떤 요구와 행동도 ‘무시’하는 전략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라크 침략 전쟁 이후에는 각 국 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북한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조체계를 갖추어 나가며 외교적,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외교적 해결을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적인 협상이 평화를 보증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6자 회담을 통해서 양측의 대화가 재개된다하더라도 미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회담을 성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중국이 6자 회담 이후에 ‘미국이 걸림돌’이라며 불만을 터뜨린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더구나 6자 회담의 이면에서 미국은 9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봉쇄를 대비한 군사훈련을 계획하는 등 경제제재나 군사봉쇄의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더구나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구실로,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확장과 일본 및 남한의 군사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21세기 안보의 중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지역 내의 미국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있고,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는 군사전략을 수행하기 적합한 체계로 재편이 되고 있습니다. 미군 기지와 미 주둔군의 활동영역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팽창은 한-미-일 3국의 동맹의 강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의 목표가 ‘무장한 세계화’에 적합하도록 변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유사시에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유사법제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전쟁포기를 규정한 헌법조항을 개정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확장을 보조하기 위해 군사력 증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국방예산을 무려 20% 이상 증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 3국은 선제공격력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혁신을 위한 선제공격 당한 그룹의 반격을 예방하기 위해 MD를 구축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전운동을 위한 몇 가지 제안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미 제국주의를 제어하는 것에서부터 그 해법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미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무장한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각 국의 지배세력은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따라서 전쟁과 군사력증강,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남한 민중, 그리고 전 세계 민중의 투쟁을 통해서 전쟁을 조장하는 정치, 군사적 체계를 실질적으로 해체,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미국이 선제공격옵션을 실질적으로 폐기해야 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에서의 군사력 증강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지만 이는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수많은 핵무기의 폐지를 포함하는 한에서만 그렇습니다.
또한 우리의 투쟁은 동아시아 전역에서의 전쟁반대와 평화군축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고 군사주의의 강화를 막기 위한 투쟁이 세계 반전운동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빠르게 동아시아 전역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오랜 검열을 뚫고 이제 막 반전운동이 조금씩 꿈틀대며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작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의 열기는 이라크 전쟁반대와 한국군 파병반대 운동을 거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대중적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조장하는 세력들의 압도적인 무장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이 민중들의 연대 속에 있음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무장한 세계화’의 폭력에 맞선 당신들의 투쟁과 우리 모두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알리고 한반도 전쟁위협과 동아시아에서의 미 제국주의 및 군사주의의 강화에 반대하여 평화와 군축을 주장하는 운동을 조직하기를 제안합니다. 우리는 이 것이 포럼에서 반전운동의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공동의 행동의 방향을 제안하려 합니다.

∙ 한반도 전쟁위기의 현재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그 진실을 널리 알립시다.
∙ 북한에 대한 어떠한 제재나 봉쇄에도 반대하고 만약 강행 될 경우 이를 무력화시키는 운동을 조직합시다.
∙ 미국에게 ‘선제공격전략’을 포기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합시다.
∙ ‘무장한 세계화’에 조응하는 미 제국주의 및 한국과 일본의 군사주의의 강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합시다. 동아시아에서의 군축과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운동을 건설합시다.

평화는 그것을 염원하는 행위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단지, 전쟁을 조장하는 세력과 제도들, 가공할 전쟁도구들을 제어하기 위한 민중의 권력을 형성하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장한 세계화’를 패배시키고 또다른 세계를 위해 나아갑시다.PSSP
주제어
평화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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