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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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0.39호

국정원의 자존심세우기 _ 송두율 교수 방한과 테러방지법 제정논의에 부쳐

김준범 | 편집부장

지난 9월 19일 33명의 해외 민주인사들이 꿈에도 그리던 조국을 방문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이유만으로 조국 땅을 밟을 수 없었던 해외 민주인사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들의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이 싸웠던 독재정권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그리고 문민 정권이 들어선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어 가건만 냉전이 갈라놓은 조국의 한편은 그들을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인색했다. 수구 보수 언론과 단체들은 그들을 여전히 빨갱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는 이번 일이 “특별한” 일임을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한국 방문 역시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까라는 우려조차 든다. 머나먼 타국에서 부모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세월이었건만 남한사회는 여전히 빨갱이인가 아닌가라는 냉전적 잣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9월 22일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조국 땅을 찾은 송두율 교수에게는 공항에까지 나가 친절하게도 빨갱이 딱지를 붙여주는 한편 국정원은 조사라는 명목으로 송 교수에게 광기어린 집착을 보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는 국정원의 조사는 마치 지금이 과거 유신시대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국정원은 미친개처럼 날뛰는 것일까.

수지 김 사건과 안풍

최근 법원은 수지 김 사건(故 김옥분氏 살해사건)에 대해 국가가 유족에게 42억원을 배상하도록 판결을 확정했다. 수지 김 사건은 유신시대 조작된 간첩사건의 전형을 보여준다. 있지도 않은 가공의 간첩을 만들고 아내를 살해한 파렴치한 살해범을 피해자로 탈바꿈 시킨 희대의 사기극에 대해 마침내 국가차원의 배상을 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또 이어 수지 김의 남편이었던 윤태식과 과거 안기부 인사들을 비롯한 국정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지 김 사건은 그동안 국가 정보기관에서의 정보조작과 불법적인 활동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지난 97년 대선에서 소위 안풍이라고 불리는 안기부 자금을 대선자금으로 불법 동원한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국정원과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 대해 국민 여론이 심각하게 나빠졌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두 사건들을 놓고 보면 과연 국가정보원이 필요한가라는 생각마저 당연히 갖게 된다. 이렇듯 국정원의 존립근거 마저 의심받는 시점에서 국정원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번 송두율 교수에 대해 국정원이 보여준 광기의 배경이다.

국정원의 몸부림 하나, 송두율 교수에 대한 집착

송두율 교수의 입국을 전후에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혹여 송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철수라 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에서 아무리 조사를 해도 그것이 송교수에게 형법상의 제제를 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러한 법무부 장관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정보수집이란 명목으로 송교수 괴롭히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록 이적 행위에 대한 조사와 정보수집은 국정원의 상표를 과시하는 것이지만 정보수집이라는 면에서 봤을 땐 국정원의 존립근거에 대한 의심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애초 송교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그렇게 귀중하다고 한다면 그동안 독일에 있는 한 개인의 정보조차 알지 못하는 국정원의 무능만을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연간 밝혀지지도 않는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가동하는 국정원이 북한 노동당과의 공식적인 관계도 소원한 독일 국적의 철학 교수가 가진 정보조차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번조사의 목적이 조사가 아니라 송교수에 대한 빨갱이 꼬리표 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정원의 이번 송교수에 대한 조사는 단지 국정원의 위력과 기능을 세간에 과시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해외 민주화 인사들이 귀국하고 과거 민주화 투쟁에 대한 보상과 평가가 이어지는 지금 국정원이 설 곳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국정원으로서는 목숨을 건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빨갱이는 있고 국정원은 그들을 잡아내야 한다는 투정 말이다. 화해와 협력이라는 목표 하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는 참여(?) 정부에서 국정원이 송교수에 대한 이적성 조사에 열을 올리는 것은 국정원의 본래 기능인 진보세력에 대한 압살과 사회통제가 여전히 필요함을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국정원의 몸부림 둘, 테러방지법 제정

최근 과거 무산된 테러방지법제정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월드컵을 대비한다는 명목 하에 추진된 테러방지법은 2001년 국정원이 주도한 정부 입법안이 제출되었지만 국회일정과 반대여론에 밀려 무산되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당시 지적된 몇 가지 조항들을 수정하고 다시금 제정을 위한 물밑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정원은 미국중심의 반테러 연대에 동참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밝히고 있지만 유럽등 해외에서 미국의 반테러연대에 발맞추어 테러방지법을 제정한다는 움직임이 전무하고 또한 미국 측의 직-간접적인 요청이 없었다는 점에서 과연 국정원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그 뿐만 아니다. 국정원 은 법안 상정을 위한 부처간 협의를 마쳤다고 밝히고 있으나 관련 부처에서는 그런 말조차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정원의 테러방지법 제정을 위한 기민함에 국정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음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테러방지법에 따르면 독립적인 기구로서 대테러 방지 센터를 건립하도록 되어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무부를 초월한 독립기구를 국정원 산하에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 화해분위기 속에서 아래로부터 해체 되어가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과거 국정원의 비도덕적 행각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는 지금, 국정원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기구 건설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즉 국정원의 역할 축소와 개혁 요구에 대해 테러라는 새로운 위협을 제기하면서 다른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젖줄인 국가보안법이 개/폐 논의를 겪고 있는 지금 국정원의 지위를 보장하는 길은 새로운 법과 기구에 근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에게 조화를

미국은 전 세계에서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11테러를 막지 못했다. 그리고 부시정권은 과연 9.11 테러를 방지하지 못한 것이 정보의 부족 때문이냐는 의혹에 아무런 답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확고한 증거는 부시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거짓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결국 문제는 정보력이 아니라 정권의 도덕성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정권의 충실한 개로써 민중들의 진보와 민주의 외침을 압살했던 정보기구와 정권의 관계가 미국이라는 땅에서 다시금 출현하고 있다. 결국 정보기구란 국익이 아닌 정권의 유지를 위해 기능할 수 밖에 없음을 선진(?)적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국가인 미국이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지난 98년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안기부는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수지 김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안기부의 기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수지 김은 간첩이었고 살인범인 윤태식은 국정원의 비호로 벤처기업인으로 탈바꿈 했다. 국정원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반대의 길로 달려온 셈이다. 비록 냉전 이데올로기가 사그라지고 있는 시점이지만 테러방지법 제정은 이런 국정원의 생명을 테러라는 가상의 적을 통해 연장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테러를 방지하는 것은 정보력과 통제의 강화가 아니라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뿐임을 미국은 이미 스스로의 실패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테러방지법과 국가정보원에게 조화를 바치고 영면을 안겨주는 것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살해와 폭력과 독재의 암울함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또한 국정원의 부질없는 노력에 답하는 길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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