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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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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출산 그리고...

김준우 | 회원, 기자단
새로운 이주자들

자고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의 진정한 기의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살기 힘들면 울고 웃던 정든 땅을 벗어나 새로운 땅을 향해 가던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구조적 약자들이었다. 강제 징용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던 이 땅의 선조들이나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로 팔려갔던 흑인들이 가장 극단적인 경우라면 새로운 땅으로 자신의 삶을 건 도박을 걸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던 아일랜드인, 이태리인들이며 머나먼 땅 호주로 새 생활을 시작했던 영국의 죄수들 그리고 100년 전 머나먼 태평양을 넘어서 하와이에서 멕시코에서 농노와 같은 삶을 감내해야만 했던 애니깽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는 7,80년대 중동으로 건너가서 熱沙의 땅에서 피땀을 바쳐야 했던 한국의 노동자들과 바로 지금도 동아시아 전역에서 건너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역시 살기 힘들어서 떠나온 이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국 땅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국을 버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른바 배제된 땅 혹은 버려진 땅의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두뇌유출(Brain drain)의 물결이 이제는 한반도의 남녘 땅에도 미쳐 새로운 이주자들을 낳고 있으니 그 표상이 바로 '원정출산'이다.

글로벌 휴먼

Globalhuman.co.kr 그럴듯한 세계화론자들의 모임을 연상케 하는 이 홈페이지 주소의 실체는 다름 아니라 미 원정출산 전문 업체다. 최근 미국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각광받고 있다는 캐나다 쪽에 업체들의 이름은 <해피캐나다> <캐나다드림>이다. 제법 우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구호를 앞세운 원정출산 업체들은 이렇듯 인터넷 상에서 친근하게 접선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의 선입견과는 달리 원정출산은 이미 은밀한 브로커나 가까운 친지를 통할 필요도 없이 공개적으로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얻고 추진할 수 있게 될 만큼 일반화(?)된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원정출산은 어느덧 조기유학, 기러기아빠와 함께 더 이상 새롭지도 그렇지만 여전히 달갑지 않은 단어들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뉴스의 한 꼭지씩을 꾸준하게 채워주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작년 L.A TIMES 5.25일자에 따르면 한 해 5000여명의 한국인 산모들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오고 있으며 서울 강남의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는 산모들의 출산은 대개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이 '매력적인'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미화로 만 오 천불쯤은 아낌없이 써야한다고 하니 원정출산은 이제 한국에서 상류층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원정출산이 우리나라에 특수한 상황만은 아닌데 실례로 최근 우간다의 대통령은 딸과 며느리의 독일 원정출산으로 정치적 공격에 직면하고 있는 외신이 보도된 바도 있다. 바햐흐로 한반도 남쪽에서도 신유주의 세계화 된 나라에서 '글로벌 휴먼'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서 '원정출산' 더 나아가 '두뇌유출'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한 산모가 무리한 원정출산으로 유산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이들이 떠나는 데는 모두 다 아는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원정출산의 속내는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합중국에서의 출산을 통해 자녀가 영주권을 획득하면 중심부 국가의 교육/의료 혜택을 조기 유학 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줄 수 있으며 남자아이의 경우에는 병역면제라는 획기적인 생일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전쟁의 위협이 상시적인 한반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가족의 이민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미 언론에서는 이를 빗대어 가족이민을 보장받을 수 있게끔 미국에서 출산하는 한국인 유아들을 가리켜 '닻 아기(anchor baby)라고 부른다. 한 결혼정보업체의 설문조사에서는 예비신부의 40%가 원정출산을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한 대학신문의 자체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학생의 44%가 자신이 이중국적자일 경우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택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와 원정출산의 배경은 한국사회에 결여되어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무엇인지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원정 경기 승률이 더 높아진 동방예의지국

본디 원정이라 함은 타지의 기후와 식·습관 그리고 언어의 문제로 많은 불안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현대 사회에서 원정이라는 의미가 가장 어울리는 스포츠 경기에서는 특히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거나 단체 경기일 경우에는 홈경기의 승률(기록)이 원정 경기보다 단연 높다. 주지하다시피 기형적인 엘리트 스포츠의 강국 한국은 바로 이의 가장 좋은 표본이자 수혜자였다. 88년 서울 올림픽 4위이나 2002 한-일 월드컵 4강이라는 사기성 농후한 성적 역시 단연코 홈 어드밴티지 덕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홈 어드밴티지는 스포츠 게임에서나 적용되는 수사가 되어버렸다. 이제 홈그라운드에서 죽치고 있어봤자 주어지는 것은 어드밴티지가 아니라 페널티뿐이다. 원정(출산)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원정지에서의 정착의 가능성 뿐 아니라 홈에서의 성공 또한 보장할 수 있는 길까지 포괄하니 명실상부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겠다. 결국 이 땅에서 진정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는 이제 룰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스포츠 게임도 아닌 운에 더 승부를 걸어야 하는 도박판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선택받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갈수록 요원해졌으며 오로지 매주 주말마다 각종 복표에만 자신의 유일한 운을 걸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상류계층의 탈출을 그 자체로 욕하고 나무란다고 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교육비 세계 1위의 나라에서 강남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해외로 이주하는 것이 더 저렴한 기이한 나라에서는 그들의 새로운 이주는 남한사회가 얼마나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를 보여주는 거울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기에 이 문제는 단순히 한국의 강렬한 21세기 판 '맹모삼천지교'만으로 해석할 일도 아니며 도덕성 실종을 개탄할 일도 아니다. OECD국가 중에서 사교육비 1위 도시생계비 8위 아파트 및 사무실 임대료 8위, 물가상승률 12위, 신용카드 발급 4위의 나라에서 여유로운 자들의 개인적인 방식의 문제해결 방식을 지적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가당치도 않은 원정출산을 둘러싼 저들의 해법

이미 많은 장관들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이중국적이 문제시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대법관 출신의 대쪽이라 자처하던 '昌'역시 97년 아들의 병역 의혹에 이어 2002년 대선에는 손녀딸이 하와이 원정출산이 강한 감표 요인이 되었으니 위정자들 역시 이러한 위기를 범상한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하기에 연일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몇 몇 우파 지식인들의 분석과 진단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메리카 드림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가봤자 미국의 '이등국민' 밖에 안 된다며 냉소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이도 있고 한국에서 그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노불리스 오브제'의 실종을 성토하는 지식인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이중국적은 대세이니 너무 보수적인 입장도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며 제법 코스모폴리탄을 읊조리며 소심하게 원정출산을 비호하는 이도 있다. 물론 새삼스럽게 다시 '昌'을 안주 삼아 '그러면 안 된다'고 제법 준엄하게 훈계하는 무능한 도덕론자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쯤에서 右국충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야기란 국부유출과 국익을 염려하며 중산층들이 한국을 뜨지 않으려면 '자립형 사립고'를 필두로 한 '학원특구' 얘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신자유주의식 문제풀이 방식뿐이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요, 동문서답이다. 한 편에서는 그나마 성공하고 부유한 자들조차 가지고 있는 주어진 부와 안락을 대물림하기 위하여 원정출산을 도모하게 하는 나라, 같은 하늘아래에서 살던 또 다른 이들은 살기가 너무 힘들어 분신, 자살이라는 선택을 강요하게 하는 나라에서 무슨 망언인가 ! 두 가지 방식의 BYE KOREA가 같은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도대체가 어불성설이다. 누구는 태평양을 넘어 영주권을 획득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같은 바다를 넘어 이국의 언어로 죽음을 선언해야 하는 나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이렇게 암울한 풍경의 대/한/민/국에서, 파국의 한반도號에서 남겨진 길은 하나는 죽음이요 다른 하나는 탈출뿐이니 있는 자는 떠날 것이고 없는 자의 선택은 잿빛이라 영락없는 '타이타닉'의 재림이다.

두뇌유출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하지만 현재의 새로운 이주의 형태들이 한국사회의 크나큰 적신호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진단은 섣부른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저임금의 이주노동자와 형태만 달리 할 뿐 이미 소위 '고급두뇌'를 가진 상류계층의 이주 역시 5%만을 위한 세계체제의 재생산을 위한 또 하나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미 두뇌유출이 활발히 진행된 많은 나라에서는 그 상황이 상당히 심각한데 러시아에서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모두 50만 명의 러시아 과학자들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아랍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 "2003년도 아랍 인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1995-1996년 사이에 아랍지역 학사 학위 소지자 30만 명중 약 25%가 국외로 이주했고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박사학위 소지자 1만5천명이 이주했다는 것이다. 또 호주의 교사들은 영국으로 미국으로 이주하며 필리핀의 간호사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국의 경제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두뇌유출이 착취 그 이상의 의미를 남쪽 나라들에게 던져는 주겠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년 정부에서 이공계 위기에 대처하여 유학을 장려한다는 시책이 발표되자 두뇌유출을 정부가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정몽준은 장기적으로는 '두뇌순환(brain circulation)'의 관점에서 사안을 인식해야한다고 소견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이 문제 자체는 체제의 대단히 위기를 즉각적으로 도래시킨다기보다는 이미 붕괴한 민족-국가 모델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이며 부와 기회의 양극화를 더욱 극단화할 것임을 의미한다. 즉, 배제와 갈등의 방식은 더욱 정교해지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전선을 형성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그리 녹록치 않은 문제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준다. 동시에 지난 35년 동안 2배나 증가하여 1억7천500만 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왜 '정치의 장소'인지를 상기하게끔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겨진 자들의 몫

이민 상품이 홈쇼핑 채널에서 매진되고 다시 7, 80년대의 방식으로 죽음을 택하는 노동자가 있는 나라에서 남겨진 자들의 몫이 과연 무엇인가? 비행기를 타지 못하여 서러운 이들이건 '열사정신계승'을 외치는 자들이건 간에 비록 그/녀들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해결 방식은 다르더라도 지금 동일한 문제가 그들 앞에 던져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답할 것인가?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복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열사들의 죽음과 조국을 떠난 자들이 남기고 간 질문에 대해서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이들의 권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대답을 바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PSSP
주제어
여성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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