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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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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회포럼은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할 것인가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을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쟁점

전소희 |
세계사회포럼은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할 것인가?
-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을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쟁점



전 소 희 |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

급속한 발전, 그러나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선 세계사회포럼

2001년에 시작되어 세계적 확산과 확대를 급속히 거듭한 세계사회포럼이 지난 1월 31일 다섯 번째 회합을 마쳤다.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 역시 기록을 갱신하였다. 135개국 15만 5천명의 인파가 2,500여개 행사에 참여했다. 2001년 세계사회포럼이 처음 시작한 이래로 참가자 수가 무려 10배나 증가한 것이다. 또한 연례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뿐 아니라 일국 차원의 사회포럼은 물론이고, 대륙별 사회포럼, 주제별 사회포럼 또는 "주체별" 사회포럼이 각각 여러 차례 개최되면서 세계사회포럼은 하나의 '과정'이자 그 자체로서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유럽과 브라질 지식인 몇 명이 창안한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정'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한 반전·반세계화 투쟁의 결과이자 또한 국제주의 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계사회포럼 초기에 노암 촘스키는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인터내셔널"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경험하듯이 어떠한 운동이든 성장하고 확산되는 만큼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날카로움을 잃어가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의 전략과 전망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와 성찰, ‘갱신’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사회포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반세계화·반전 운동의 성과를 안고 태어났으며, 향후 지구적 운동의 질적 발전을 꾀한다는 임무를 자임한 세계사회포럼 또한 냉철한 평가와 성찰을 하고 자기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 수 있기 위한 중요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현재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내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의 부재, 여성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와 대표성의 부족, 특정 세력의 주도권, 재력을 가진 소수 엔지오들의 과도한 권력화, 행동이 결여된 '백화점 식' 행사, '다른 세계'로 표현되는 정치적 지향의 모호함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으며,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논쟁은 세계사회포럼 내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핵심적으로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1) 1차부터 3차 세계사회포럼이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됐고 4차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에서 개최된 만큼, 4차 세계사회포럼을 전후로 한 논의는 주로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국제화’, 세계사회포럼 ‘과정’의 확산이었으나,2) 이제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 즉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공간인가 운동인가?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에 의하면, 세계사회포럼은 “시민사회의 집단과 운동이 […] 상호연계를 형성하기 위한 공개된 회합의 장”이며, “어떤 형태의 포럼이든 그 포럼을 대변하여 어느 누구도 모든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입장을 표명할 권리가 없다.” 또한 “포럼 참가자들은 모든 또는 일부 참가자들이 하나의 기구로서 포럼의 입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선언 또는 행동 제안에 대해 투표 방식으로든 갈채 방식으로든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즉 세계사회포럼은 ‘공간’이므로 어느 누구도 세계사회포럼의 명의로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간’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한다는 거시적 지향은 있지만 정치적인 역할을 하기보다 기능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중립적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 다분히 정치적인 - 향후 운동의 전략과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다양한 의견들을 어떻게 하나의 공통된 목소리로 수렴해 나갈 것인가?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규정이 여러 의문을 낳기 시작하자, 세계사회포럼을 ‘공간’이지만 또한 ‘운동’으로 규정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다양성, 자율성, 반권위주의, 조직체계에 대한 거부, ‘기존’ 정치세력(특히 정당)과 결별, 수평적 연대를 구현하기 위해 세계사회포럼이 단지 ‘공간’이어야 하며, 세계사회포럼을 ‘운동’으로 규정하면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3) 반면, '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다양성을 인정하되, 이제는 당파성 내지는 정치적 방향을 가지면서 의견을 모아나가야 하며, 이를 행동으로 표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세계사회포럼을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조직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단지 토론만을 위한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유효성을 다했고, 지금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세계사회포럼 초기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워크샵과 세미나도 이미 여러 번 개최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가지 계기를 통해 국제위원회 내 토론이 한층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2004년 인도 세계사회포럼 폐막식에서 사회운동 활동가총회의 투쟁호소문이 낭독되었는데 언론이 이를 마치 세계사회포럼의 공식 입장처럼 보도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언론의 무지 또는 오해가 아니라 왜 ‘공식’ 폐막식에서 ‘특정 세력’의 호소문이 낭독됐냐는 것이었다. 또한 최소한 이라크 침공이나 WTO 칸쿤 각료회의와 같이 국제적으로 중대한 사안 그리고 국제위원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제위원회 명의로 성명서를 낼 수도 있지 않냐는 제기가 나온 적도 있다. 국제위원회에서 논쟁이 되다가 결국 그러한 문제제기는 이를 ‘금지’하고 있는 원리헌장에 굴복했다. 또한 5차 세계사회포럼에서 제출된 ‘포르투알레그레 컨센서스’ 문서를 둘러싼 논쟁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4) 문서를 작성한 자들이 워낙 유명 인사들인데다가 국제위원들이 여러 명 포함되어 있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간’ 또는 ‘운동’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이 상호 대립적인 개념도 아니거니와 세계사회포럼을 이 둘 간 단 하나로 규정할 수도 없다. ‘공간론’의 약점은 세계사회포럼을 도구적이며 탈정치적인,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 전락시킨다는 데 있으며, 정치적 전망을 봉쇄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 명의로 성명서를 낸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국제주의적 ‘운동’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사회포럼은 참가자들 간 민주적이고 열려 있는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간’이자, 또한 제국주의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국제주의적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진정한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사회포럼이 반전, 반세계화 운동을 한층 고조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며,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일궈내는 데 있어서 어떠한 민주적 절차와 조직적 구조를 수립할 것이냐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이미 생동하고 있는 각국의 투쟁들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모든 운동을 세계사회포럼으로 수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백화점 식 토론을 넘어, 행동으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그 간의 평가 중 하나는 매년 2,000여개가 넘는 워크샵과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는데 논의가 반복되고 있고 어느 곳으로도 수렴되지 않는 채 백화점식으로 나열되고 있으며 토론만 무성하고 행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 초기에는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상징적이었으며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세계사회포럼도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각 나라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적 투쟁과 거리가 생기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열린 ‘공간’이지만 가능한 틀 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실천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위원회는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부터 새로운 ‘방법론(methodology)’을 도입했다. 방법론이란 사회포럼이란 행사를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절차이자 또한 진행방식이다.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은 개최국의 조직위원회가 지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직위원회가 방향과 연사를 모두 결정하는 대규모 ‘중앙’ 행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직위원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져 있으며 참가자들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자, 4차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중앙‘ 행사의 비중을 대폭 줄였으며, 5차 세계사회포럼에는 공식 ’중앙‘ 행사가 아예 없었고 오로지 참가자들이 신청한 2,500개 행사로만 진행되었다. 또한 조직위원회가 주제를 정하지도 않았다. 5차 세계사회포럼의 11가지 주제는 작년 5월부터 두 달 간 전 세계에 걸쳐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정해졌다. 참가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고취하고, 참가자 중심의 세계사회포럼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한편, ‘반복적 논의와 행동의 결여’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각 주제별 다양한 행사들을 가능한 한 통합하고 논의내용을 수렴해나가며 최종적으로 공동의 행동전략을 만들어나갈 것을 독려했다. 예를 들어,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는 반전, 반세계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단위들과 함께 반전총회, 여성총회, 외채반대 총회, 자유무역 반대 총회 등을 진행한 후 마지막 날 사회운동총회에서 각 주제별 회의에서 나온 여러 행동계획을 하나의 투쟁호소문5)으로 모아냈다.
이런 ‘방법론’은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이 보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다. 이런 면에서 긍정적이며 또한 ‘공간이냐 운동이냐’라는 논쟁에 대한 미약하게나마 ‘화해’의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성과를 거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5차 세계사회포럼도 여전히 2,500개 행사의 ‘백화점’이었다. 조직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실천계획을 공유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또한 여성이나 인종 문제는 부문 의제가 아니므로 11가지 주제를 모두 관통하는 횡적 주제라고 결의했지만, 결국 말뿐이었다.
국제위원회는 아직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평가하지 않았다. 국제위원회는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한 첫 실험이었으므로 앞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사회포럼이 현재 보이고 있는 문제점을 단지 새로운 ‘방법론’, 즉 더욱 효과적인 ‘운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즉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투쟁의 전략과 전망을 수립하는 데 세계사회포럼이 어떠한 식으로 복무할 것인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고민 없이는 어떠한 훌륭한 방법론을 도입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중운동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세계사회포럼?

최근 국제위원회 내에서 가장 치열한 쟁점은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다.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은 매년 세계경제포럼이 개최되는 동일한 시기에 개최되었으며, 아울러 국가별, 소대륙별, 대륙별 사회포럼들이 그 사이에 개최되고 있어 사실상 매년 세계 곳곳에서 여러 개의 사회포럼‘들’이 개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현재의 1년에서 2년 혹은 3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이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나왔고,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이 지난 파시그나노 회의에 이어 이번 포르투알레그레 회의까지 이어졌다. 이 논쟁에는 2006년도 개최지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국제위원회는 2004년 인도 개최와 2005년 브라질 개최를 동시에 결정했고, 준비시간이 필요한 아프리카는 2007년에 개최하기로 했다. 문제는 2006년이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여성행진이나 비아깜페시나, 그 외 대중운동을 우선시하는 단위들은 이토록 많은 사회포럼들이 결국 현장에서의 조직화, 각 급 사회운동들의 투쟁에 질곡이 되고 있다는 제기하면서 세계사회포럼을 2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제안에 대해, 세계사회포럼이 세계경제포럼과 동일한 시기에 매년 개최되지 않으면 ‘정치적 공백’이 생기며, 이것은 곧 세계사회포럼의 패배를 의미하므로 매년 개최해야 한다는 반박이 나왔다. 결국 최근 포르투알레그레 회의는 주기에 대해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2006년 세계사회포럼은 여러 대륙 또는 지역에서 분산, 개최한다는 중재안으로 논쟁을 봉합했다.
세계사회포럼 주기에 대한 논쟁은 표면적으로 활동 상 ‘여력’의 문제로 제기되었지만, 이 논쟁 이면에는 역시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견과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늘리자는 측은 세계사회포럼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인정하지만 결국 반전·반세계화 투쟁은 각 국가와 지역 등 ‘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에 우선순위를 두고자 한다. 반면 1년 주기를 유지하자는 측은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가 중요한 힘이자 세력이므로 이를 중심에 두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사회포럼이 투쟁을 조직화하는 과정 중 일부인가, 아니면 전부인가? 주로 사회운동 단위들이 제기하고 있는 2-3년 주기는 반전·반세계화 운동이 비록 세계사회포럼이라는 틀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될지언정, 그 틀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사회운동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장을 이용해 전 지구적 공동 투쟁의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며, 이런 결의를 각 지역과 국가의 ‘거리’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시간’과 ‘여력’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 1년 주기를 유지하자는 측은 주로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를 통해 정당성과 생명력을 유지해나가는 엔지오들이다.6) 이들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틀 내로 활동을 국한시키지 않으려는, 그럼으로써 세계사회포럼의 위상을 그만큼 ‘깎아내리려는’ 사회운동들을 경계하고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회포럼이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하기 위해

위 세 가지 논점은 복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단일한 전선을 형성하지도 않는다. 세계사회포럼을 ‘운동’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방법론이 이를 향한 진일보라 생각하면서 매년 개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세계사회포럼은 엄밀한 ‘공간’일 뿐이며 매년 개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위 쟁점을 관통하는 공통된 축은 바로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에 대한 고민이며, 사회운동들과 몇몇 주요 엔지오들 간 긴장 관계, 그리고 운동의 전술과 지향의 상이함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새로운 전망과 대안,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목말라하는 반전·반세계화 운동의 현 상태를 반영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WTO 각료회의가 무산과 재개를 반복하고,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이라크 침공을 전후로 제국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폭함과 그 속에 내재된 모순의 극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지고 있다. 반전·반세계화 운동은 그 동안 광범위한 저항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 만큼 대안과 전략의 차이가 점차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며, 세계사회포럼이 이 속에서 어떠한 위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위원회 내 논쟁, 즉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이후 전망에 대한 논쟁 속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이냐 ‘운동’이냐를 못 박아 규정하는 것도 아니며 어떠한 ‘방법론’을 채택할 것인가, 또는 주기를 몇 년으로 할 것인가도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논쟁의 이면에는 일국적 수준에서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 격변하는 현재의 정세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여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세계사회포럼은 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실천에 대한 모색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은 운동의 전략과 대안을 생산해낸다는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체되어 있다. 이 논쟁들이 어떠한 결론으로 마무리 되든,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은 이러해야 한다. 즉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의 성과와 성장 곧 몇 명이 모여서 몇 개의 행사를 하느냐, 또는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회포럼‘들’이 개최되느냐가 아니라, 이런 사회포럼들이 진정 투쟁을 조직화하는 데 복무하고 있는가, 전략과 대안을 논의하는 데 적합한 회합인가,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적절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가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PSSP

1)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는 세계사회포럼의 기본적인 운영, 개최 주기, 개최지 등을 다루는 의사결정 단위로, 세계 여러 부문에 걸쳐 150여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위원회 회의는 1년에 두세 번 개최된다. 최근 개최된 회의로는 2004년 4월에 열린 이탈리아 파시그나노 회의와 5차 세계사회포럼 개막 직전인 올해 1월 24-25일에 열린 포르투알레그레 회의가 있다.
2)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 과정과 이를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논쟁은 다음 글 참조: 전소희, 세계사회포럼의 성장통, 사회진보연대 2003년 7-8월 호.
3) 세계사회포럼이 ‘공간’이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세계사회포럼의 발의자이자 현재 세계사회포럼 국제사무국 브라질부문 일원인 치코 위테커이다. 다음 글에서 그가 주장하는 ‘공간론’을 볼 수 있다. Chico Whitaker, “The WSF as Open Space”, www.choike.org
4) ‘포르투알레그레 컨센서스(consensus)'란 5차 세계사회포럼 때 진행된 한 토론회의 결과로 나온 문서이다. 이 문서는 ‘G19'란 별칭을 얻은 19명의 인사들이 발의했는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12가지 의제를 서술하고 있다. 19명은 세계사회포럼 모든 참가자들이 이 문서에 연명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 문서가 반대를 넘어 ‘다른 세계’에 좀 더 근접해지기 위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문서는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참가자들 간 공동의 의제와 행동을 수렴해나가기 위한 시도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다. 12가지 의제는 그 동안 이미 제기되어온 의제로서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저명인사들 중심이라는 점(그래서 G19라 불린 것이다), 조직적·운동적 결의가 바탕이 되었다기보다 개인적 명망성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 19명 중 18명이 남성이라는 점 등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무엇보다도 19명 대부분 국제위원회 위원이기에 세계사회포럼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 문서를 발의한 19명은 2명의 노벨 수상자를 포함하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베르나르 까쌩, 이그나시오 라모네, 에미르 사데르, 엠마누엘 월러스타인, 월든 벨로, 타리크 알리, 아돌포 에스끼벨 등이다. 문서 내용 및 관련 기사는 www.ipsterraviva.net에서 볼 수 있다.
5) “사회운동의 호소문: 전쟁, 신자유주의, 착취와 배제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국민행동 홈페이지에서 번역본을 찾아 볼 수 있다. htttp://antiwto.jinbo.net
6) 물론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1년으로 유지하자는 주장에는 여러 다른 맥락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두드러진 입장을 중심으로 서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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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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