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5.54호
첨부파일
054_책속의책_히르쉬.hwp

NGO, 국가의 새로운 외피

비정부기구와 국가의 국제화 (상)

요하임 히르쉬 |
[역주] Joachim Hirsch, 'The State's New Clothes: NGOs and the Internationalization of States', Rethinking Marxism, Vol. 15, No. 2, 2003. 이 글은 미국의 좌파 이론지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생각한다}에 실린 것으로 국제정치경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한 요소로 비정부기구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히르쉬는 국내에도 몇 권의 책이 번역되어 있는 독일의 국가이론가로서 최근에는 유럽의 금융과세시민연합(ATTAC)의 학술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글은 '조절이론'의 국가론적 함의를 둘러싼 몇 가지 이론적 쟁점에도 불구하고 비정부기구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중요한 이론적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특히 NGO가 허구적 성격이 강한 '전문적 지식'에 기초한 '확대된 국가기구'라는 주장은 비정부기구의 성격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며 비정부기구와 사회운동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구별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글 분량이 많아 이번 호와 다음 호 두 번에 나눠 싣는다.


비정부기구(NGO)는 숫자 면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이 언론인과 정치학자에게 갖는 의미라는 면에서도 일종의 성장 산업이다. 이 개념은 몇 년 전의 '새로운 사회운동'이나 '시민사회'에 비견될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동안에 몇몇 사람들은 다시 지상의 현실에 눈을 떴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NGO가 해방적인 사회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NGO는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발전을 보장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념은 특히 국제적 수준에서 널리 적용되고 있다. 국제적 수준에서는 이론적인 차원에서조차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시대에 국제적 수준에 관한 논의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사람들이 NGO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거는 까닭은, NGO가 정치적 투사를 위한 이상적인 스크린을 제공해 주는 동시에 사회과학자들의 자기정당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주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종종 NGO의 세계와 가깝게 접촉하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문화적· 정치적으로 NGO와 밀접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NGO 개념의 인기는 무엇보다, 최근까지 '새로운 사회운동'에 걸었던 주요한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이 시들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근본적인 사회 변화에 대한 수많은 희망들이 좌절로 끝이 났고, 이제 '새로운 사회운동'도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1989년 이후 몇 가지 추가적인 난점들, 즉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로 보이는 현상들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거스르는 정치적 방향성의 난점들이 존재한다. 1980년대 말 '시민사회'의 (재)발견이라는 사례에서처럼, NGO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체념의 표현, 즉 기본적인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회 구조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내에서 실행 가능한 것을 찾아 임시변통으로 대처하려는 태도의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Narr 1991).
따라서 NGO가 '90년대의 가장 과대평가된 행위자'가 되었다는 피터 바흘의 논평에는 얼마간의 진실이 있다(Warl, 1997: 293). 이러한 과대평가는 정치적으로 왜곡된 관점뿐만 아니라 그것과 이론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다. NGO를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들은 국가와 사회에 관해 완전히 부적합한 이론적 개념들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일찍이 1989년 이래로 '민주적 시민사회'에 관한 논쟁을 특징짓던 이론적 결함들이 지속된다. 그 결과 소위 세계화의 와중에서 개별 국가들이 종속되는 세계적 변형의 과정들을 올바르게 분석하는 것이 어려워진다(Hirsch, 1995, 1998; G rg and Hirsch, 1998; Hirsch, Jessop, and Poulantzas, 2001; Hirsch, 2002). '국가'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정치적 조절 양식 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이와 연동되어 자유민주주의 구조 내에서 주요한 변화가 발생한다. 비정부기구는 이런 과정의 표현임과 동시에 행위자다.
이 논문에서 나는 NGO를 더욱 엄밀하게 정의하고 이와 같은 정치적 조직 형태가 점차 두드러질 수 있게 된 조건들을 서술할 것이다. 국가 이론의 몇 가지 기본 개념을 명료하게 한 후, 나는 소위 세계화 과정에서 국가들과 그들의 국제적 체계가 종속되어 있는 변형 과정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을 서술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관한 논의에 기초해서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국제적 조절 체계 내에서 NGO의 역할이 파악될 것이다. 이는 특히 국제적 수준에서 NGO가 얼마만큼 그리고 어떤 조건하에서 민주화의 추진자로 간주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비정부기구'란 정확히 무엇인가?

NGO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사적인 조직들이 민족적·국제적 수준에서 정치과정에 점차 더 빈번하게 개입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러한 조직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문제는 이 조직들이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정부기구'는 일종의 잡동사니 격의 용어로서 매우 잡다한 함의를 갖는다. 그 함의의 일부는 외부의 관찰자들이 활용하며, 다른 일부는 NGO 자신들이 활용하고,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상당한 이데올로기적 어조를 갖는다. 서술적 개념과 규범적 개념은 종종 양자를 구분하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함께 뒤섞인다. 그렇긴 하지만, 비정부기구의 '비(非)'는 진지하게 취급해야 할 변증법을 지시한다. 어떻게 보면 NGO는 형식적으로 사적인 조직들이 어떻게 국가의 특성들을 띠게 되는지, 또는 국가의 기관들이 어떻게 '사유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비(非)'는 일반적으로는 국가와 사회의 구조 내에서, 그리고 특수하게는 민족적·국제적 수준에서 국가 및 국가 조직들과 관련하여 NGO의 지위에 대한 분명한 묘사라기보다는 모호한 용어가 된다. 여기에 덧붙여 'NGO'라는 용어는 대체로 매우 다양한 조직들에 일반적으로 붙여질 수 있는 특정화되지 않은 이름표의 역할을 한다. 이와 연관된 딜레마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조직된 비정부기구(GONGO)와 의사 비정부기구(QUANGO) 따위의 역설적인 약어들이 등장하게 된다. 사실상 'NGO'들은 비록 정부에 의해 설립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때때로는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고 정부의 목적을 위해 활용된다. 예를 들어 주변부의 종속국가들에서는 종종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인 NGO의 설립이 국제적 원조를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자본주의 중심부와 그들의 신흥 NGO 사업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진다. NGO는 종종 '국가의 권력'으로 불릴 만한 기능을 한다. 소위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Gebauer, 2001)에 대한 병참적·정치적 지원에서 이는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NGO들이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지 않거나 정부 자금을 자신들에게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많은 수의 NGO들이 존재할 것인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이는 NGO가 국가 조직이 아닌 진정한 '시민사회'의 조직인지, 아니면 사실상 정부적·조절적 복합체의 일부로서 그람시의 표현을 빌자면 '확대된 국가'의 일부로 파악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Gramsci, 1986; Anderson, 1979; Kramer, 1975).
바흘(Wahl, 1997: 313)에 따르면, NGO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 자발적 연합체다. 국가나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 자선과 우애, 비영리적 정향, 그리고 인종·민족·종교·성별의 관점에서의 비배제성. 그러나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는 것처럼 이는 규범적이고 자기-기술적인 기준들의 집합으로, 현실에서는 온전히 만족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민족적·국제적 수준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조절형태라는 맥락에서 NGO의 역할을 조사하고 싶다면, 애매한 부정적 특징('비정부적')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훨씬 좁게 정의되고 분석적으로 정확한 용어를 채택하는 게 필수적이다. 나는 바흘의 정의를 출발점으로 삼아서 민족적·국제적 수준에서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아래와 같은 특징을 드러내는 형식적으로는 사적인 일체의 조직으로 NGO를 정의하려고 한다:

비영리적 정향(자선적 지위)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대표하지 않고 자발적인 지지 활동에 대한 참여
국가와 영리적 기업으로부터의 조직적·재정적 독립
전문가적 자질과 조직으로서의 영속성

특히 마지막 특징이 중요하다. 조직의 자기이익(예컨대 피고용자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유지하려는 이해관심)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과 특수이익 또는 공적 복리를 대표한다는 목표 사이에는 기본적인 긴장이 존재한다. 대체로 NGO는 인류적 이해의 이상주의적 담지자일 뿐만 아니라, 비록 그렇게 정의된다고 할지라도 불가피하게 경제적·재정적 제약의 기초 위에서 작동하는 '도덕 기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의는 NGO와 다른 조직들 특히 정치적 전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다른 '비정부' 조직들 을 (비록 매우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구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에 따라 NGO는 사적 영리 기업(비록 자선적 지위를 갖는 상담회사처럼 혼성적인 조직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자기 구성원들의 특수이익을 대표할 뿐인 결사체와 집단들(예를 들어 노동조합처럼 거대한 관료적 결사체와 기층의 풀뿌리 이익집단들), 그리고 일시적으로 또는 느슨하게 조직된 정치적 발의와 캠페인과 같은 여타의 형태들과 구별된다. 반면 NGO와 사회운동을 구별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대체로 사회운동은 단일한 조직과 구별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복합적 네트워크로 정의된다. NGO가 사회운동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때대로 NGO는 특정한 운동 네트워크의 다소 안정적인 요소를 이루거나 운동이라는 하부구조의 조직적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Roth, 1994). 다른 한편 NGO는 종종 사회운동의 해체의 부산물로 간주되기도 한다(Brand, 2000). 그리고 만약 사회운동이 기성의 제도적 체계 이와 관련된 NGO 구조를 포함하여 로부터 독립적이거나 또는 갈등관계에 있다면, NGO는 사실상 운동과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G rg and Hirsch, 1998: 606).

NGO의 발전 조건들

1864년에 창설된 적십자를 생각해보면 NGO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점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NGO가 숫자가 크게 늘고 공적 영역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얻게 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 한편으로는 국가제도의 종별적인 실패와 그것에 연동된 기성의 정치적 대의 및 이익 매개 형태의 쇠퇴의 직접적 결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의 증가하는 분화 그리고/또는 제도화의 직접적 결과다(Messner and Nuscheler, 1996; Brand and G rg, 1998; Brand, 2000). 이것은 근본적인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변화―즉, 소위 세계화 과정에서 새로운 축적 및 조절 형태의 확립(포드주의에서 포스트-포드주의로의 이행)과 이에 관련된 민족-국가의 '민족적 경쟁국가'로의 변형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Hirsch, 1995, 1998; Brand, 2000; Hirsch, Jessop, and Poulantzas, 2001). 다음과 같은 발전양상은 특히 중요하다.

· '새로운' 사회운동의 쇠퇴, 이는 1980년대 이래로 발생해 왔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좀 더 분명한 구별이 필요하다. 쇠퇴가 가장 뚜렷한 곳은 자본주의 주변부의 민족해방운동으로, 이들은 동-서 갈등의 종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토대를 크게 박탈당했다. 대체로 보면, 사회운동 영역 안에서 분화와 제도화의 과정이 벌어지는데, 이로 인해 느슨하게 조직됐던 운동들이 보다 견고한, 그리고 어느 정도 전문화된 조직으로 변형되었다(Roth, 1994). 이는 전직 활동가들이 국가와 상업적 기업 외부에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과 영역을 찾고 발전시키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문제는 사회운동의 쇠퇴라기보다는 차라리 구조적 변화다. 이는 의회 외부 정치의 광범위한 위기의 표현으로, 여기에서는 협력적인 정치 활동 형태가 비제도적인 항의와 저항을 지양하고 있다.
· 세계화 그러니까 국제적 통신·운송·자료관리의 발전과 상품·서비스·금융·자본 시장의 자유화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화된 생산 형태의 확립. 이는 개별 국가들이 개입 능력의 일부를 상실하고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적 제도들이 침식되어 대의체계의 위기가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적어도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에 따르면 둘 이상의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 문제들은 개별 국가에 의해서는 적절하게 혹은 아예 처리될 수 없다. 이것들의 기저에 깔린 원인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사실은 동-서 갈등이 종말에 이른 까닭에 세계 질서가 그 구조와 단층선이라는 면에서 훨씬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 세계적 과정의 관리에서 새로운 쟁점들과 난점들의 출현. 과학적 이론과 지식은 정치에서 점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급기야는 항의와 저항보다 지식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에서 점점 더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고 있다. 이는 특히 환경 위기 같은 사례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G rg and Brand, 2001). 과학적 분석과 문제-해결 전략이 정치적 갈등에서 점점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관료적 국가 조직이 이러한 업무에 부적합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적 목표들은 오직 다양한 국가적·비국가적 행위자를 참여시킴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고, 특히 사회적인 현대화 및 조정 과정이 관련된 곳에서는 더 그렇다. 이와 함께 세계화와 지역화의 모순적 과정('세계지방화'(glocalization)) 때문에 다양한 수준 지역적 수준에서 국제적 수준까지 의 정치들 사이의 교통의 통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점점 더 긴급해진다.

국가와 국가 체계의 변형

'국가'와 '시민 사회': 몇 가지 간략한 정의

NGO의 기능과 역할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 및 시민사회 이론의 전제가 되는 가정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용어로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극히 중요하다. 여기서 나는 유물론적 국가이론과 조절이론에 따른 자본주의 분석에 기초해서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1970년대 서독의 국가논쟁, 그리고 풀란차스와 그람시의 기여가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몇 가지 기본 전제에서 이들 접근을 연장하는 것으로 논의를 제한하지 않을 수 없다(Holloway and Piciotto, 1978; Poulantzas, 1978; Jessop, 1982; Hirsch, 1995).
유물론적 국가이론에 따르면, 분리된 실체로서 국가의 존재와 '경제'로부터 '정치'의 분리, 또는 '사회'로부터 '국가'의 분리는 비록 기능적으로 보증되지 않고 언제나 갈등의 주제가 되긴 하지만 부르주아-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적 특징이다. '국가'와 '사회'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단순한 형태로 서로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모순들로 가득 찬 사회체계의 특수한 표현이다(Gramsci, 1986; Poulantzas, 1978; Hirsch, 1995). 국가는 물리적 강제력의 집중과 그것의 사회계급들로부터의 분리의 산물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들 중 하나다. 국가는 자본주의 생산체계의 일부이자 그 재생산의 전제조건으로서 비록 특정 계급의 단순한 도구는 아닐지라도 일종의 계급 국가다. 따라서 국가는 하나의 인격, 주체 또는 그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순수하게 합리적인 조직 등으로 간주될 수 없다. 대신 국가는 사회 내부의 적대 관계의 결정체(crystallization)로 이해되어야 한다. 동시에 국가는 그 자신의 역동성과 제도적 안정성을 보여주며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 이는 국가가 폐쇄적 조직이 아니라 일종의 복합체로, 즉 사회의 상이한 계급 및 집단과 다양한 때로는 갈등적인 방식으로 관련되고 종종 서로 대립적으로 행동하는 집합적 실체들의 복합체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가는 물리적 강제력 행사의 재량권이라는 수단을 갖는 중앙 집중적인 지배체(ruling body)다. 반면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모든 사회·정치 조직들을 지칭하는데, 여기에는 특수이익을 대변하는 결사체, 정치 집단, 언론매체, 교회, 학술기구, 연구소, 지식인 집단, 그리고 '두뇌 집단'(think tank) 따위가 포함된다. 시민사회는 공적인 논쟁에서 상이한 관점들과 이익들이 표현되고 대결할 수 있는 포럼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들, 즉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임금노동자, 시장, 핵가족 등에 의해 광범위하게 규정된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권력 행사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상이한 경제적·정치적 강제형태들에 예속된다. 공적 토론과 논쟁은 국가권력 정당화에 봉사하며 국가가 그 지배권(dominance)을 주장할 수 있게 해 준다('합의'). 동시에 국가는 공적 토론과 논쟁에 개입할 수 있다('강제'). '시민사회'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전장으로 볼 수 있는 바, 여기에서 사회 질서와 발전의 대안적 개념들이 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는 모순으로 가득 찬 권력관계의 복합체, 또는 강제와 합의 양자 모두에 기반한 '지배 체계'―그람시적 용어로 '헤게모니 블록'이라 불리는―를 형성한다. 우리는 시민사회의 모순적 본성을 고려함으로써 시민사회를 '확장된 국가'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매우 많은 (민족) 국가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체계의 근본적인 측면이다. 국경에 따라 계급들(과 계급들 안의 집단들)을 분할하고 국경을 가로질러 계급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체계를 조절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이는 무엇보다 계급들과 그 분파들을 서로 반목시켜 어부지리를 꾀하고 민족국가 내에서 사회협약을 확립할 수 있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이질적 제도들의 모순적 복합체로서 국가의 본성은 국가들의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국제적 수준에서 재생산된다(Hirsch, 1995: 31.).

변형 과정: 탈민족화, 사유화, 그리고 정치체제의 국제화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세계화'라 일컬어지는 은 부르주아-자본주의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정치구조의 주요한 변형을 동반해왔다. 바로 이러한 연관 속에서 NGO는 현재적 의미를 획득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발전양상이 중요하다(Jessop, 1997a; Sassen, 1996, 1999; G rg and Hirsch, 1998; Z rn 1998).
첫째,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는데, 이는 '탈민족화'로 묘사될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생산의 국제화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내부 시장의 발전 포드주의에 전형적인 '민족' 경제 안에서 에 초점을 맞추는 축적과 조절 체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려고 한다. 세계화와 이에 동반되는 탈규제 전략의 핵심적 구성 요소는 특히 경제·사회 정책의 영역에서 개별 국가의 개입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사회발전을 일관되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축소한다. 이 과정에서 민족적 사회들은 더 이질화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사회적 불균형과 분할이, 다른 한편으로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경제관계의 확립이 증가한다. 이와 동시에 국제적 불균형으로 인해 이주자와 난민들의 흐름이 더욱 거대해진다. 이는 다시 계급구조의 재조직화, 노동형태의 전화, 그리고 사회에서 권력 관계의 변화를 초래한다(Sassen, 1996: 59; Samers, 1999; Pellerin, 1999). 그 결과 사회들은 전반적으로 점점 더 '다민족적'이고 '다문화적'이게 된다. 사회적 불균형과 분할의 증가는 분명한 역설로 귀결된다. '탈민족화' 과정은 점증하는 민족주의적·인종주의적 경향을 동반한다. 민족국가라는 현상은 그 자체로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족국가는 여전히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에 기초하여 계급관계의 조절 및 일정한 사회적 응집력의 창출이라는 목적에 복무하는 핵심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Jessop, 1997b).
둘째, 경향적으로 정치가 '사유화' 또는 '탈-국가화'된다. 이때 핵심은 조절적 네트워크의 발전인데, 여기서 국가 다소 독립적인 사회적 행위자와 집단들의 집합체를 조정하고 매개하는 존재로서 는 다만 동급 최강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은 국가를 포함하는 더 포괄적인 사적 협상과 (가장 넓은 의미에서) 집합적(corporate) 구조로 이동한다. 이러한 '협상' 국가가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은 아닌데, 왜냐하면 정부는 언제나 강력한 사회 집단들과 타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사유화 과정에서 국가는 점점 더 빈번하게 이러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시장의 탈규제화가 행정적 개입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반면, 강력한 '사적' 행위자들 특히 점차 개별 국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게 된 초민족적 기업들 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 덧붙여 점증하는 '지방적 활동들의 경쟁'에 직면해서 다양한 권력 및 지식 자원을 동원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사법적·행정적 수단을 통해서는 제한된 정도로만 달성될 뿐이다. 따라서 '협력적' 전략들이 요청된다. 바로 이러한 배경 위에서 '거버넌스'와 '네트워크' 이론들이 지금 현재 붐을 일으키고 있다―물론 그 이론들이 언제나 이러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Scharpf, 1996; Messner-Nuscheler, 1996; Messner, 1995, 1997; Kommission, 1995; Rosenau, 1999).{이러한 이론들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적 평가를 위해서는 Brand et al. (2000)을 참조하라.}

거버넌스나 네트워크 같은 개념들은 종종 그릇된 관념, 즉 모든 국가들, 국제기구들, 상업적 기업들, 그리고 비-정부 조직들이 다소 동등한 수준에서 서로 협력하거나 대립한다는 관념을 동반한다. 이런 식의 관념은 경제적·정치적 자원이라는 측면에서의 주요한 불균형을 고려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의 물리적 권력 국가에 고유한 정당성을 동반하는 이 여전히 국가의 '교섭력'의 주요한 원천을 이룬다는 점을 무시한다. 너무 자주 간과되고 있지만, '거버넌스' 구조의 발전과 연결된 국가와 사회의 관계 변화는 민족적·국제적 수준에서 계급간 관계의 근본적 전화를 의미한다.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적 자본의 출현, 다른 한편으로 사회 안에서의 점증하는 이질성과 분할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비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발전은 정치의 '재-봉건화'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제도적 의사결정 과정의 중요성이 쇠퇴하고 비공식적 협상공간들이 선호되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러한 공간들은 전통적인 민주적 제도와 절차의 통제로부터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있다(Maus, 1991; Sassen, 1996: 40). '경쟁력 있는 국가'나 '심의 민주주의'라는 개념들로의 '현실주의적' 변화도 이러한 배경 하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개념들은 민주주의를 지극히 불평등한 행위자들의 시민사회 내에서의 협상 절차로, 또는 단순히 지방들의 국제적 경쟁을 위한 참여적 동원으로 축소시킨다(G rg and Hirsch, 1998: 326).
셋째, 정치 조절체계가 점점 국제화되고 국제적 수준에서 조직, 제도, 그리고 비공식적인 '체제'의 한층 밀집된 네트워크가 창출된다.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 이유로는 세계적 축적과정 및 그 결과들(국가의 붕괴, 금융시장의 현재적 위기, 세계적 환경 위협 등)이 만들어 낸 문제들이 개별 국가의 능력과 국경을 넘어 확장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동시에 정부들은 개입 범위의 상실을 보완하기 위해 국제적 조절 체계를 창출하거나 강화시키려 한다. 이는 정부들을 새로운 협력 형태에 속박하고 특히 약소국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Hein, 1998). 또한 세계화는 점증하는 지역화와 민족이상적인(supranational) 경제 블록을 창조하려는 시도들을 동반한다. 따라서 지역적·민족적·거시지역적(macroregional) 수준들 사이의 조정의 필요성이 증가한다. 전통적인 국가-행정적 정치 제도의 맥락에서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새로운 국제적 권력 구조에서는 자본주의 3극의 더 강한 국가들이 갈등적 협력 형태를 통해서 세계를 다소간 지배한다. 이는 이들 중심의 공통이익을 대표하는 국제조직들(특히 신자유주의적 입헌주의의 중심적인 제도적 표현으로서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WB), 국제화폐기금(IMF),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덜 제도적인 조정과 네트워크 형태들도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초민족적 기업들과 비정부기구(NGO)들이 각각 차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협상 국가'는 국제적 수준에서도 발전 중이다. 다른 한편 전후 시대의 구(舊)세계질서가 종언을 맞고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적 우위가 확립되면서, 과거에 평화로운 '신(新)세계질서' 창조라는 거대한 희망과 기대를 받고 있던 국제연합(UN)은 점점 더 그 의의를 상실―적어도 국제연합이 자본주의 중심부의 이해에 복무하도록 활용될 수 없는 한―하고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와 같은 환경에서 세계시장 수준에 배태된 경제적 과정의 단순한 탈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특히 국제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입헌주의에 조응해서 새로운 정치적·제도적 '배태성'의 새로운 형태들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에 더 부합할 것이다(Gill, 1995; Scherrer, 2000).
국제적·민족이상적 기구들, 그리고 어느 정도 제도화된 각양각색의 협력관계와 '체제'(Mayer, Rittberger, and Z rn, 1993)의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고 해서 개별국가들로부터 진정으로 독립적인 국제적 정치 영역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조직 및 체제는 협력체 내에서 더 강한 국가들의 이익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하며, 더 강한 국가들은 국제조직과 체제의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제한하고 규정한다.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비공식적 네트워크는 회원자격과 의사 결정 과정에 관해 분명한 규칙을 갖고 있는 공식적 국제조직와는 대조를 이루는 데, 이는 더 강한 국가들과 초민족적 기업을 한편으로 하고 약한 국가들을 다른 한편으로 할 때 그 양자의 불균형을 반영한다. 가장 강력한 국가들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은 강대국들의 우위에 의해 협력을 강제 받는다. 오직 미국만이 협력의 압력에 때때로 저항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특별한 사례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민족이상적 국가의 몇몇 특징을 띠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의사결정 권력이 여전히 개별 국가들에게 있으며 이 국가들이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입안 '체제'의 국제화는 확실히 개별 국가들의 체계를 지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국가들이 행동할 수 있는 맥락과 제도적 구조 내에서 영속적인 변화를 초래하는데, 왜냐하면 광범위한 부정적 결과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무시할 수 없는 구조들과 조절형태들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국제조직과 체제의 중요성이 점증하면서, 다수의 민족적 사회들에 관련된 국가 관료기구는 더 큰 적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국가의 '국제화'

종합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발전들은 국가장치의 국제화를 구성한다. 이는 국제조직, 체제, 그리고 여타 국제적 협력 형태들의 중요성이 점증하는 것으로, 그리고 지역적·민족적·민족이상적 수준들의 한층 복잡한 연계들이 발전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 과정의 주요한 특징은 국가장치 그 자체의 국제화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것에 동반되는 탈규제 및 사유화의 과정에서, 개별 국가들은 점점 국제 금융시장에 의존하게 되는데, 여기서 일차적 행위자들 무엇보다도 '강대'국과 초민족적 기업들 은 효과적인 경제적 메커니즘에 힘입어 개별 국가들의 정책을 점점 더 많은 정도까지 결정한다. 이는 개별 국가들의 정부적 장치의 배치의 중대한 변화를 통해 제도적으로 표현된다. 이 과정의 의미심장한 부분은 재무부와 중앙은행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인데, 이 장치들은 대체로 민주적인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으로부터 독립적이다. 양자 모두 국제 자본의 이해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국제적 자본의 흐름과 개별 국가의 정책들의 매개자, 심지어는 아예 단순한 전달 벨트로 행동한다. 이는 무엇보다 개별 국가들의 정치 과정에서 세계적 규범의 행정적 내면화를 제도적으로 표현한다.
민족국가는 지리적 경계로 둘러싸인 사회 내에서 집중된 권력과 의사결정 능력을 갖는 통합적 실체인 한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재배치, 분산화, 그리고 분절화라는 강력한 힘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족국가가 '민족적 경쟁 국가'(Hirsch 1995, 1998)로 변형된 것은 정부의 수준과 정치적 기능의 점증하는 지리적·사회적 분기와 연관된다. 민족국가는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함으로써 여전히 현존 사회질서와 사회적 통합의 주요한 보증자로 기능한다. 그것은 여전히 계급간 관계 조절의 주된 중심이다. 또한 그것은 여전히 기본적 생산 조건, 즉 하부구조, 연구, 기술 등의 공급을 보장하는 과업을 맡고 있다(Sassen, 1996; Boyer and Hollingworth, 1997; Hirst and Thompson, 1997). 사회 내에서 집단간·계급간 갈등 관계를 조절하는 것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개별 국가의 소관이며, 이로 인해 세계시장이 극히 불균등한 생산 및 가공 조건을 가진 민족적 '생산 현장들'의 체계로 존속할 수 있게 보증되는 바, 이는 여전히 세계적 착취와 축적의 근본적 토대가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부 수준 및 국가 기능의 분화 포드주의적 민족-국가라는 역사적 현상과 비교해 볼 때 는 정치적 과정과 관련된 중대한 결과들을 낳는다. '협상 국가'로의 변형이 진척되고 국제조직 및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점증하면서 여전히 개별 국가의 경계로 제한된 민주적 체계는 심각히 침식되고 있다(Hirsch, 1995, 1998; Hirsch, Jessop, and Poulantzas, 2001). 이 때문에 대의 구조의 위기가 초래되고 정치 체계의 정당성은 더욱 부족해진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NGO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지구 전체에서 점증하는 불평등과 이 때문에 생겨나는 이주와 난민의 물결들 때문에, 강력한 거대중심(metropolitan) 국가들의 민주적 체계는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시민들의 결사체로 변질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러한 특권적 결사의 일차적 목표는 타자들을 내쫓음으로써 부자들의 요새를 지키고 주변부의 위기 지역에 군사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민족적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모두에서 물리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민족적 경쟁 국가'는 또한 '민족적 안보 국가'가 되기 위해서 무장력을 갖춘다(Hirsch, 1998). 여기서 개별 국가들이 단순한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차라리 전략적 행위자라는 사실을 주되게 강조해야 한다. 이들은 국제 정치체계에서 진정으로 핵심적인 행위자들인데, 왜냐하면 군사적 강제력에 대한 최종적 통제권이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국제화는 세계적 수준에서 계급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원인이자 결과다. 개별 국가 안에서 정부의 행정적 장치의 구조조정은 금융제도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사회사업부, 정당, 그리고 사회적 협력의 코포러티즘적 구조 등과 같은 제도 광범위한 주민대중의 이해를 대변하고 통합적 역할을 수행한 의 약화를 수반한다(Baker, 1999; Lukaukas, 1999). 세계적 수준에서 볼 때 개별 국가들의 체계는 점점 더 피착취·예속 계급들을 민족적 경계 내에서, 그리고 그 경계를 따라 분할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세계화는 자본의 국제적 신축성과 이동성을 더욱 촉진했다. 이에 따라 분절화와 분할의 과정이 더욱 분명해지는 반면, 노동자들과 그/녀들의 조직은 여전히 민족적 경계 너머로 시야를 넓히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와 국제화의 결과로 '국가'와 '자본'의 관계도 변형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본이 '무국적화'되어 간다거나 국가로부터 상당한 정도까지 독립성을 갖게 된다고 가정하면 잘못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탈규제화의 과정에서 확실히 국제적 자본은 자본축적에 대한 국가적 조절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졌고 국가의 조절제도는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또한 초민족적 기업은 세계적인 다국가 체계 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위치에서 유연하게 행동하는데, 이는 그들이 '생산 현장'으로서 개별 국가들의 비교우위를 이용하고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국가의 권력과 조직적 능력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국가는 자본들 사이의 경쟁적 이해를 초월하는 '자본의 정치'를 확립하는 데 있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국가는 세계시장 내에서 특수한 자본 집단에게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국제적 자본이 점차 WTO나 세계은행, IMF 등과 같은 국제조직에 준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본이 국가적 토대를 활용해서 세계시장 내에서의 분절화를 심화시킨다는 논의의 중요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 기구들의 정책들은 여전히 상당 부분 개별 국가 내에서 형성된 이익들에 의해 결정된다. 초민족적 기업들은 민족적 시장, 관련 생산 조건, 그리고 사회협약 등에 점차 덜 구속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훨씬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국가들을 서로 반목시켜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생산 및 유통의 국제화는 '민족 자본'과 '민족 부르주아지'라는 용어의 타당성을 의문에 부친다(Poulantzas, 1974: 77; Jessop, 1997b). 국가와 (국제화된) 자본의 관계는 새로운 형세를 취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자본과 국가 장치의 상호연계 정도가 감소되지는 않는다. 초민족적 기업들은 여전히 국가에 의지하여 시장이 제공할 수 없는 생산 조건의 공급을 보장받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며, 필요하다면 강제력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이해를 보호한다. 거의 모든 초민족적 기업들이 세계적 체계의 강대국 내에서 활동하거나 그곳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Sassen, 1996: 1). 이 때문에 그들은 이들 국가의 군사적 우위와 이들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 구조(예컨대, 특히 군산복합체의 틀에서 유래하는 선진적 기술 발전에 대한 적합한 환경)로부터 편익을 취할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국가를 자신들만의 이해에 복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초민족적 기업과 국가의 관계는 여전히 모순적인데, 왜냐하면 이 관계는 협력과 함께 갈등의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갈등은 개별 국가 장치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국제적 자본, 국가, 그리고 국제조직의 복합적 상호연관 때문에 국가간의 국제적 관계의 수준에서도 재생산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삼극의 기업들이 지배적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에 기반을 두려고 시도할 때 이러한 모순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좀더 비판적으로 살펴보면, 정치학자들은 종종 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OECD 세계'(Z rn, 1998) 역시 초민족적 자본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국가와 다국적 기업들 간의 갈등적 관계는 특히 다자간투자협정(MAI)에 대한 합의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한 것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MAI는 무엇보다 산업화된(초거대) 국가들이 초민족적 자본의 이해를 주변부 국가들에게 강제하려는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MAI에 대한 합의에 실패한 것은 범세계적인 여론의 동원과 주변부 국가들의 저항(서서히 조직되고 있는)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초거대 국가들과 추정컨대 그들이 대변하는 기업들의 이해가 분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9년 가을 시애틀에서 열린 국제무역기구 총회가 실패한 것도 유사한 이유 때문이었다. 초거대 국가들과 주변부 국가들 간의 이해 갈등 외에도, 미국 정부와 유럽 연합이 대변하는 기업들의 이익 갈등(예컨대 유전공학 분야에서)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McMichael, 2000; Chakravarthi, 2000). 초민족적 기업들은 통일된 블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경쟁한다. 이러한 경쟁은 국제적 국가 체계와 국제조직 내에서도 벌어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자본과 국가의 모순적 관계는 자본주의적 계급 체계의 일관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PSSP



주제어
정치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