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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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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관계의 변수-남북공동선언의 분석과 전망

임필수 | 정책부장, 한반도팀
정부가 얻어낸 기대 이상의 성과

지난 6월 13∼15일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파격'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김정일 위원장 개인의 이미지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일 것이다. 그것은 방송관계자들이 스스로 설명하는 바대로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TV생중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김정일 위원장도 마치 이 점을 인식한 듯 유연하고도 세련된 매너를 보여줌으로써 가능해졌다. 이로써 남한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존에 갖고있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 일대 충격이 가해졌고 그가 회담을 전반적으로 리드했다는 이미지까지도 제공한 셈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를 볼 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정부측의 협상전략은 매우 흡족한 수준으로 관철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측 인사들 스스로가 정상회담에서 주로 다루어져야 할 의제들이자 '성공'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서, 남북 정부간 대화의 정례화, 경제협력과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된 북한의 진전된 조치를 꼽았었다. 그런데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명문화되었으며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었다는 점을 볼 때, 정부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애초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낸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부에게 있어서 전혀 예상 밖의 성과는 합의문 2항, 즉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대목이다. 그것은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 기존에 설정하고 있던 한반도 전략이 후퇴하였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며, 동시에 '평화공존'이라는 방식을 통해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방어에 주안점을 두고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특히 이번 정상회담이 직접적으로 성사된 데에 북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볼 때,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통일방안의 '공통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번 합의문 상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표현은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이는 지난 1991년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를 통해 표명한 '느슨한 연방제' 안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여기에서 '느슨한 연방제'란 초기단계의 연방이 지역정부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점진적으로 중앙정부에 그 권한을 이양하자는 주장이었다.(이 제안이 발표된 후 당시 북한의 여러 인사들의 발언에 따라, 초기에 지역정부에 권한을 많이 부여한다는 말은 외교권과 국방권까지를 포함시킨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1991년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발표되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이 당시에도 이미 일부 분석가들은 북측의 연방제안이 남측 국가연합안에 근접해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이 때에도 더욱 미묘했던 쟁점은 이와 같은 '통일방안'의 근접이 함의하는 바의 문제였다. 1980년 발표된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안'은 단순히 쌍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1국가 2체제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고, 그 연방국가 창설의 전제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것은 남한에서 군사파쇼통치 청산, 사회의 민주화 실현 (반공법·국가보안법과 폭압통치기구의 폐지, 정당, 사회단체, 개별적인 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보장) 긴장상태의 완화와 전쟁위험의 제거(북미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거), 미국의 '두개의 한국' 정책 저지,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 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의 고려민주연방제안은 '남한에서의 자주적 민주적 정부의 수립을 매개로 한 남북합작형태의 통일을 설정한 것이며, 다시 말해 남한에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지역혁명'이라는 전략적 요소가 담겨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었다.(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그 반대로 전두환 군사파쇼정권은 1982년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에서 통일을 위한 사전 실천조치 중 하나로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일절 간섭하지 아니한다"는 구절을 삽입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북한은, 제시한 전제조건 상에서 대부분 변화가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 물론 대통령직선제라는 형식적으로 심대한 변화는 존재하였지만 ― 남북 당국간 대화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관계의 개선을 도모하였고, 통일방안에 있어서도 느슨한 연방제안으로의 중대한 수정을 꾀한 것이다. (또한 북일관계 및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협상들과 시험적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적 변화들은 비록 '통일방안'의 형태변화라는 외양으로 표현되었지만, 실제로는 남한을 비롯한 미국·일본 등과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을 구상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즉 문제의 핵심은 '1국가'가 아니라 '2체제'에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아무런 단서조항도 없이 남과 북의 '통일방안'이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대목은, 이와 같은 1990년대 초반의 전략적 태도가 변화되고 그 구상을 북한 스스로가 명시적으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정부의 '평화공존' 구상은?

그렇다면 '국가연합'안으로 표현되는 바, 남측의 '평화공존' 전략은 역시 이러한 북한의 구상을 순순히 수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서울 도착 후 가진 인사말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한-미-일 3국공조체제가 반북적인 외세와의 공조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긴요한 틀이라는 점을 설득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는 흡사 '친미'(親美)가 아니라 '용미'(用美)라는 점을 강변이라도 하려는 듯이, 미국과 일본의 '선의'를 대변하려는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조차 한-미-일 공조체제는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의 '용미론'의 실체는 무엇인가? 현재 한국-미국-일본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햇볕정책'은 그 전제조건으로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확산의 봉쇄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의 핵심적 목표를 3국의 공동관심사로 승격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햇볕정책의 기본적인 기조는 과거 한때 검토했던 북한의 붕괴-즉각적인 흡수통일이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사활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다른 방편의 하나로서, 3국이 공동의 압박전선을 형성하여 '대량파괴무기의 봉쇄'라는 당면 목표를 획득해야 한다는 정책적 목표를 수용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단기적 목표가 구조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서,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을 '국제사회'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편입시켜 북한이라는 '존재' 그 자체의 위협을 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미국 주도의 전략적 시나리오에 착안하여, 중장기적인 한반도 경제통합에 방점을 찍으면서 이를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하고 '국가연합'이라는 통일방안을 대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구상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남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의 현존하는 정권에게 안정성을 부여해주면서, 점진적으로 한반도 '경제'통합을 추진하겠다는 해나간다는 논리에 다름아니다.(이를 위한 세부적인 방안으로서 남북간의 '무역자유화' 시나리오의 관철 즉 주로 남한경제에 통합(남한경제의 하위파트너),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제조업 생산기지로의 전환(가공무역형 수출기지) 등이 제출되고 있다. 또한 정치정세의 변화와 관계없이 남한 기업의 대북한 교역 및 투자를 장려한다는 이른바 '정경분리' 정책의 안정화도 제기된다)

오늘날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에 못지않게, 남북 경제협력을 중요시하는 것은 이러한 시나리오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미국의 구상은 남측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의 확장을 분명하게 지지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은 순전한 의미에서의 '평화공존'이 될 수 없으며 평화공존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실상의 (흡수)통일의 효과를 획득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이는 즉각적인 흡수통일이 수반할 수 있는 '불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절약한다는 의미를 갖는 셈이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무드'는 지속될 것인가?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볼 때, 남북간의 '평화무드'가 지속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합의문에서처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미국 클린턴 정부가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서에서 약속한 북한의 경수로 건설 및 중유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약속불이행에 대한 북한의 논박에 대해 마땅한 대항 논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만약 클린턴 정부가 2000년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을 껄끄럽게 느끼는 상황이라면, 남북간의 평화무드를 당분간 용인하면서 이를 통해 제네바합의의 불이행 문제를 무마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가정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물론 앞서 언급한 북한과 미국이, 각각 쌍방의 평화공존 구상에 대해 그 정확한 반대급부(예컨대 대량파괴무기 계획의 확실한 중단과 평화협정 체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최종적 승인으로서 북미협상 타결은 단기간에 끝을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미협상이 앞으로도 몇차례 굴곡을 겪을 가능성과 이에 따른 남북관계상의 파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페리보고서는 '평화협정' 문제를 어떻게 종결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정책구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북미협상의 결과로서 정전협정 및 주한미군의 형태 변경이 이루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진행과정에서 결정될 한반도 '평화공존'의 구체적인 세부형태는 아직 확정적이지는 않은 듯하며 '평화무드' 속에서의 대치상태 역시 잠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다.(하지만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북한 핵사찰 문제가 불거지고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1992.10.6)이 발표됨에 따라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냉각되었던 지형처럼, 앞으로 남북관계의 급격한 역풍이 불 가능성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것으로 여겨진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최종적 조건은?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미국측이 보다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남한 국내의 여론의 변화와 그것이 한국정부에 끼칠 압력인 듯하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온건' 성향의 어느 연구소에서 밝힌 입장은 미국이 가능성들을 우려하고 있는 몇가지 쟁점들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A Brookings Press Briefing: The Korea Summit', June 7, 2000, The Brookings Institution) 그 요지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한미일 3자공조체제에게 강한 긴장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한국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는 것을 회피할 가능성) 한국에서 미군주둔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것으로부터 부정적인 것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NMD 배치에 대한 미국의 노력을 침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물론 연구소는 이 발표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미연에 봉쇄하기 위해 현존하는 한-미-일 3자조정감독그룹보다 더 높은 고위급 채널을 가동시키고 여기에 국방부 인사를 포함시키며, 미국은 남북화해 과정에서 경제지원에 기여함으로써 미군주둔의 정당성을 확대해야 하며, 북한의 미사일 개발, 실험, 배치, 수출을 완전히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을 내놓고 있다)

결국 이러한 지적은 미국의 대한반도 구상에서, 현재 더욱 관심을 기울여 관리해야 할 것은 기존 분단체제의 변형과정에서, 미국의 통제력을 넘어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한국 내의 여론의 미묘한 균열지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서조차 미국의 구상이 한국 내에서 별다른 저항없이 관철된다면, 이제 한반도에서 민족분단의 형태변화는 '평화공존'으로의 재구조화로 귀결될 최종적 조건이 마련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국면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또다른 형태의 '분단고착'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전 한반도 수준에서 공고화되는 역사의 '나쁜' 방향으로 전개 될 것을 의미한다.
주제어
정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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