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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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를 통한 사회적 서비스제공의 정치학-남아메리카에서의 시민운동[2]

제임스 기던(James Gideon) | 번역>최이숙 편집부장
NGOs와 제3세계

위에서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듯이,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주요원리 중 하나는 바로 국가 역할의 축소이다. 특히 제3세계 국가는 비효율적이고, 부정부패한 데다, 대외종속적이며, 관료화 정도가 심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탈중심화, 민영화, 공공정책의 축소, 그리고 (부정부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긴축정책의 도입 등…. 이 모든 것은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방안으로 고려된다. 왈튼(Walton)과 세든(Seddon,1995)에 따르면, 자유주의 정부는 '최상의 정부'이다. 왜냐하면 시장의 자유로운 활동에 굉장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연합이 동의할 수 있을만큼 국가권력을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현재적인 맥락에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국제적 자본을 더 많이 유치해야 하며, 민주화의 여러 징표로 외국 정부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 각국은 자국국민에게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다. 포워레이커(Foweraker)가 주장하듯이 그 원인은 많다. 칠레의 경우, 군사정권이 의도적으로 실시하였던 탈산업화 정책과 사회복지에 대한 직무유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권위주의적 체제인 브라질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사회적인 동원을 촉진시킨 부정부패와 대외종속주의로 인하여, 개발 국가의 야심찬 경제사회적 목표가 계속 좌초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Forweraker 1995),

이러한 상황에서, NGO가 활용될 수 있었기에 NGOs가 국가를 보조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국가보다는 자발적인 민간기구가 공공복리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상황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국가는 여러 가지 이익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계급간의 이익을 들어주는 척 할 수도 있으며, 발생할 지도 모르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포워레이커가 브라질에 대해 간파한 것과 비슷한 종류의 실패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국가의 이같은 무능력은 보편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사회를 움직이고 사회적 관계를 조절하고 자원을 추출하고, 추출한 자원을 정해진 방식에 따라서 적절히 이용하는 능력을 포함하여 어떤 책무를 완수할 수 있는, 무척이나 발전된 능력을 지닌 강력한 국가는 이제 소수일 뿐이다.

그는 계속해서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 지방 실세들로 인하여 사회적 조절능력을 획득하지 못해왔다고 주장한다. 미그달(Migdal)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국가의 지배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직면해있던 국가지도자의 무능력은, 그들이 갖는 사회 성격에서 비롯된다. 지주, 부농, 부족지도자 등 그들의 다양한 사회조직을 통해 이루어지는 저항에 이들은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지역적인 수준에서 정책을 효율적으로 펴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 정책은 지역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뀌어 왔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지역 유지들의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중앙정부 통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미그달은 국력을 일구는데 중요한 요소가 사회적 통제를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이는 3가지 징후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지금 논의에 가장 적절한 요소는 바로 참여의 증대이다. 국가조직의 지도자들은 동의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한다. 정부는 국가를 구성하는 제도적 요소 가운데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국민을 조직하여 국력을 획득하고자 한다.

Migdal의 논지에는 여러 측면에서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NGO가 사회복지에 대한 책임을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는 사실상 지역적인 기득권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 미그달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국가와 국가장악이라는 목표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테판(Stepan) 역시 그의 1980년대 중반의 저술에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국가가 담당하는 업무의 수와 범위를 축소시킴으로써 국가는 그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된다. 칠레의 경우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적 개입능력은 국가지배력에 대한 체제적인 정의에서 벗어난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경제적 개입에 대한 국가의 역량을 축소시키는 것은 객관적인 목표였다. 이것이 국가가 경제 변화과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경제를 분리시키려는 노력-경제적 개입의 최소화-은 구조적으로 중요한 수많은 결과를 낳는데, 그것 모두에는 정치적 반대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을 줄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국가가 예전에 담당하였던 다른 책무의 경우, 이제는 NGOs를 포함한 외부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스테판이 이와 같은 계획은 단지 이것이 수행될 때 나타나는 두려움의 맥락에서 성공적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였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당분간 경제자유화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NGOs를 이용하려는 건, 어느 특정부분에 노력을 집중하려는 시도를 반영하고 있다.

사회복지업무를 국가가 아닌 비정부국가기구(NGO)로 이전시킨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략이라면, 지역 참여(local participation)의 의미에 대해서도 좀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서 기술하였듯이, 로페즈와 페트라스는 지역적 참여를 중시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NGO 프로젝트에 담긴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NGO의 저항의 역사로 인해, 많은 이들은 NGO를 신뢰하고 있다. 또한, 기층과 긴밀하게 연계된 NGOs라는 간판(얼굴, 외관)을 사용하여, 국가는 자발성에 기초하여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확신하게 된다. 많은 NGOs들이 창출된 보조적인 시장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들의 의제를 조정한다. 국가권력과 계급이행은 이 과정의 중심에 놓여있다.

발라(Valla)는 중산층의 이해가 걸려있을 때 NGOs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NGOs를 통한 조절에 집중하게 되면서, 국가가 계급이해에 영향 받으면서도 동시에 이에 복무한다는 점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다. NGOs의 폭넓은 역할을 국가약화의 한 징후로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다. 국가가 NGOs에 대한 기금배분에 있어서 전반적인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NGO의 새로운 역할은 결국 세계 자본주의와 국가와 이들간의 연계망의 이익에 복무하게 된다. 이에 덧붙여 이들은 이제 직접지배가 아닌 관리의 역할을 상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모델하에서 주창되고 있는 NGOs의 역할은 수많은 계급이해에 복무하며, 국가의 유연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후이다. 베빙톤(Bebbington)이 제시하듯이, 공공부문이 축소된 후에 NGOs는 이전에 국가가 고용하였던 많은 중산층의 전문직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주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NGOs가 Social Funds 등에서 제기하는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고용은 이 영역과 부문에서 창출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차지하고 있는 무시하지 못할 힘(power) 때문에, 이 단체들은 사회의 중요한 요소들을 대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NGOs가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책무를 맡게 되면서, 국가는 이에 대한 문제와 일어날 수 있는 정책적인 실패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위에서 논의하였듯이 NGOs는 기층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여겨지고 있으며, 지역적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잠재력이 있다. 따라서 국가는 강력한 지역의 네크워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지역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NGOs가 가져다 주는 정치적 이익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책무를 NGOs에 맡김으로써 국가는 발생할지도 모르는 정책적 실패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 역시 존재한다.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민주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며, 시민에게의 권한부여도 역시 한계적이다.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NGOs가 준정부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그들 고유의 의제가 왜곡되고, 시민들이 적확하게 제기하는 긴급한 요구에 대응하고 이를 확실하게 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이들이 국가와 시민 사이의 완충지대로서 기능하는 상황으로 귀결되고, 시민들의 권리 부여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면서, 이들의 책임성이 부족하다는 점으로 인해 특히 심해진다. NGOs 참여는 정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술관료들에게나 의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참여가 공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정치적 채널을 제한함과 동시에 관료층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NGO 프로그램의 효과

최근 NGOs가 직면하고 있는 비난은, 실행하고 있는 계획들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으며 그 대상을, 정부나 NGOs가 전통적으로 무시해왔던 그룹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그룹들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조가 요구지향적이 될 경우, 위와 같은 문제의 일정부분은 경쟁이 될 만한 적정 자원이 부족하며, 실현가능한 프로젝트를 제시하기 힘든 더 작은 규모의 NGOs가 주변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좀더 소외된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계획은 기금을 얻어내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 점이 볼리비아에서 FSE(Fondo Sociale de Emergencia)의 성공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이었다.(Graham, 1992)
Wurgaft 또한 NGOs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부응하고 시장의 힘에 의해 그 기금을 배분할 경우, 창출되는 일자리와 여기에 지출되는 임금이 진정으로 빈곤층에 도움이 되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주장하였다.(Wurgraft, 1992;40) 이와 관련하여 Graham은 FSE 관리하에 있었던 볼리비아에서, FSE가 분명히도 가난한 이들을 고용하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빈곤한 계층에는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볼리비아의) 인구가 적었던 관계로, 정부는 이들 약자와 이 조정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다른 이들을 무시할 수 있었으며, 좀더 넓은 의미의 빈곤층에 그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좀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Graham이 추론하였듯이 이와 같은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약자들은 정말 소수에 속하였으며, FSE는 볼리비아의 전체인구에서 '어느정도 가난한 이들'에게 갈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화된 반대세력이 좀더 많고, 자원이 더 적은 나라에서 조정의 정치적 지속성에 이바지하는 게 중심적인 가장 목표라면, 정치적 역동성과 프로그램이 목표로 하는 그 대상은 달라질 수 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많은 부분을 복구하기 위해 정부가 실시하였던 국가 재건 계획에 NGOs가 참가하였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정해놓은 조건하에서였다. 이 계획에 대한 주요한 비판은 이것이 극심한 빈곤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규모의 도시빈민들 보다는, 갈등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지지한다. 즉 정치적으로 민감한 단체들이 이와 같은 계획의 수혜자들이며, 이는 부분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을 피해가기 위해 계획되었다는 가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계획은 포괄적인 통제 과정이며, 여기에 참여하는 NGOs의 경우 그들의 의제가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책임성에 대한 문제

전국민 중, 좀더 주변화된 부분에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일정정도 성공했다 하더라도, 국가가 더 이상 담당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 책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NGOs는 이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기구들과 경쟁해야 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계획의 비용 측면에서 효율성과 결과가 빨리 눈에 보이느냐가 강조되고 있다. (Alatorre와 Aguilar) Wurgaft(1992)가 제시하듯이, 사회적 기금(Social Funds)를 통해 실행되는 계획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즉, 수혜자 그룹이 결정과정에 있어서(in decision) 하부조직들의 활동에(infrastructure work)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이 계획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공동체와 이웃들의 연합 등 다른 유사한 조직들을 실제 어느 정도로 고려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와 같은 계획이 이들 조직의 이해와 주도권을 반영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게다가 사회적 기금을 제공하는 가운데, 물론 계약 회사들이 (Contracting Firm) 노동중심성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지만, 이들은 보상의 형태와 계약직 고용에 대한 규제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지출의 일부분은 이들회사의 이윤으로 흡수되고 있다. Edwards와 Hulme은 이러한 경향에 대해 단언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많은 NGOs들은 그들의 고객보다는 기부자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NGOs, 권한 부여, 그리고 시민권

포워레이커(Foweraker)의 정의에 따르자면, 정치적 주체는 정해진 사회적 행위의 맥락에서 그 자신을 개발하고 규정한다. 이들 주체들은 다른 주체들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주체가 되어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개인들간의 네트워크는 시민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최초의 가시적 정치행위이며, 정치적 주체들이 자기를 구성하는 최초의 지점-개인이 정치적 행위자가 되기 시작하는 지점(역자)-이다. 정치적 주체 그리고 그들과 국가와의 협상을 이용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일은 정치적 교육과정의 일부분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정치적 과정이 그들의 사회적 삶을 반영하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Foreraker 1989;261) 그러므로 NGOs가 정치주체 형성과정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분석으로 자율성 개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NGOs의 책임성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기 때문에, 그리고 NGOs가 형성해왔던 요구의 특성으로 인하여 이에 대한 판단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NGOs가 그들이 대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이 없다면, 이들의 총체적인 시민권을 증대하고 발전시키려는 NGOs의 능력도 의문에 부쳐져야 한다. 포워레이커(Foweraker)는 사회운동과 NGOs가 제기해왔던 요구의 특성에 대해 평가하였다. 사회운동이 추구하는 바가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적 권리로서의 사회권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권한부여의 성격이 강한 사회권이며, 따라서 정치적시민 보다는 정치적 수혜자가 형성될 것이라고 그는 확언하였다. (Foweraker;1995) 사회운동은 국가보다는 사회적 공동체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시민권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이와 같은 방식의 투쟁이 과연 정치적 시민권을 완성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포워레이커(Foweraker)가 답변할 없었던 그 문제-을 해봐야 한다. 포워레이커가 지적하듯이, 예전에 협조적인 틀짓기 작업으로 등장하였던 노동운동이 시민의 사회적 권리 때문에 정치적 권리를 협상하는 결과를 맞았던 라틴아메리카에 적절한 것이다.
사회권의 중요성이 저평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포워레이커(Foweraker)의 주장처럼 라틴아메리카의 현존 체제하에서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데 있어서 이들의 효율성은 마땅히 제고되어야 한다. 캐맥(Cammack;1994)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시민권 없는 민주주의이다. 사회운동이 아직까지는 모든 시민의 완전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옹호해야 하지만, 이를 행할 수 있는 NGOs의 능력은 의문시되고 있다.


관료주의적 개혁

엔젤(Angell)과 그라햄(Graham) 역시 Social Fund 및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 하에 활동하고 있는 NGOs의 책임성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였다. 이전에는 국가가 행하였던 역할을 지금은 자율적 기구들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구가 자율적이라면 과연 이들은 누구에게 그들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비용적 측면에서 효율성이 강조될 때에는, 이들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의 수혜자들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엔젤과 그라햄은 비효율적이고 무책임한 관료들이 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생존할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개혁지향적인 자율기구와 개혁에 반대하는 중앙관료들의 체계가 만들어져 왔다고 한다. 결국 이 패턴 자체가 새로운 제도적 성격을 구성하는 데, 이는 당연히도 개혁하기 힘든 것이 되고 만다.

유사한 방식으로, 강력하면서도 책임성이 없는 이익집단의 도전 역시 비껴갈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NGOs의 무책임한 활동이 지속된다면, 지역적 수준에서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NGOs의 능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NGOs가 단순히 개혁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이들이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탈중심화에 있어서의 NGOs의 역할

탈중심화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지역적 민주주의 과정을 강화하고, 지역의 요구와 조건을 인식하는 효율적인 자원관리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몇몇 논자들에 따르면, 탈중심화는 NGOs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NGOs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며 지역개발정책을 결정하는 데 이들의 참여를 증대시킨다. 또한 탈중심화로 NGOs는 더 많은 기대를 받게 된다.
엔젤과 그라햄 역시, 탈중심화가 지역주민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지역적 참여와 개입이 늘어남으로써 민주주의체계가 전반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탈중심화는 더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지역민의 필요와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됨으로써 보건 및 교육서비스는 더 나아질 것이다.

베빙톤은 탈중심화의 결과로, 늘어난 지방정부의 자리가 시민영역에서 선출되면서 NGO와 지역주민이 지역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지역 엘리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역 정부가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느정도 그들은 지역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민간기구와 계약을 맺는 데 필요한 자원은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NGOs가 이 계약을 따낼 수도 있다. 베빙톤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중심화 과정이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았는 점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NGOs와 국가의 가장 혁신적인 관계가 지역적 수준에적 수준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러한 견해에 몇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라햄은 이론적으로는 1988년 피노체트 치하에서 탈중심화가 진행되던 칠레에서의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Graham, 1991;26) 비판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피노체트의 개혁법 사실상 변화를 조절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을 뿐이다. 1988년의 새로운 개혁에 뒤이어, 정부는 민주주의의 복원을 넘어 이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300명이 넘는 시장을 임명하였다. 관할지방내에서 시장은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예정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피노체트의 통치아래 놓여있었다. 그라햄의 주장처럼 지방자치단체의 개혁이, 탈중심화된 자원의 토대에 특정한 메카니즘을 제공한다고 해서, 탈중심화된 정치적 기반에도 그런 것은 아니다. 위에서처럼 결과적으로 (시민의) 참여는 제한되었다.

비록 1990년 Aylwin통치하에서 설립된 FOSIS(연대와 사회적 투자를 위한 기금)와 Social Fund가 공동체의 참여에 그 뿌리를 두려 하였지만, 이 역시 권위주의적 구조내에서 활동해야만 했다. 가장 주요한 도시의 몇몇 시장이 새로이 선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나머지는 피노체트하에서 선출된 사람들이었다. 지역공동체내의 권력은 여전히 시장과 CODECO(공동체 개발위원회)의 손에 있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시작된 이래로 Juntas Vecinales(지역단체)는 지역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시장과 CODECO는 여전히 외부 참여에 적대적이었으며, Juntas는 정치적 행위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의 권력구조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이로 인하여 FOSIS는 지방자치체 외부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다시금 비슷한 기금(Funds)의 활용에 있어서 책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탈중심화가 지역적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보장한다는 가정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위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Graham은 '빈곤층을 위한 정치를 새로이 시도하려는 FOSIS의 노력에도, 그리고 지역적 수준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브라질에서 역시 탈중심화는 겉으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자(Souza)에 의하면, 이전의 정치적 주체들 특히 국가통치자들이 새로우면서도 강력한 임무를 부여받은 채 투입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새 임무란 구정치 관행에 종속되어왔던 것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몇가지 새로운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즉 정치적, 재정적 체계는 현재 상당히 탈중심화되고 분권화되어 있지만, 그 기저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엘리트들의 세계관이 있다. 탈중심화가, 민주화와 민주화과정에서 NGO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현실적인 역할을 보조하는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Souez의 주장처럼, 권력분산은 민주적일 수 있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통제에 대한 동의라는 최소한의 의제마저도 결여된 나라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적 안정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지역적 참여와 NGOs활동에 있어서 지불되지 않은 노동

전술하였듯이, NGOs가 제안하는 프로젝트의 형식에서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지역적 참여가 필요한 부분에, 참여할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식을 개발하여 진행하였던 프로젝트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Arellano L pez와 Petras;1994)
이에 대해서는 좀더 세심한 조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선은 이같은 흐름의 기초가 되는 가정 때문이며, 두번째로는이 프로그램이 실제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적극적으로 투여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국가가 이전에 담당해왔던 책임의 많은 부분을 줄여가면서, 공동체가 요구하는 부수적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은 대개 여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에스피노자(Espinosa)와 로페즈 리베라(L pez Rivera) 그리고 팔루(Fal )와 쿠루체트(Curutchet)는 이같은 가설을 뒷받침하는 라틴아메리카 NGOs의 사례 조사를 제시하고 있다.

에스피노자와 리베라는, 도시의 기본적인 공적 서비스를 도시공동체에 제공하고자 과테말라시에서 진행된 UNICEF 프로그램에서 지역 여성들이 어떻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도록 요구받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UNICEF와 지역공동체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대표자라고 불리웠다. 그들의 업무는 지역에 대한 정보제공, 가정방문, 건강유지 등이 포함되었다. 이 대표자들은 적어도 한주에 8시간 정도 일을 하였으며, 이 모든 일에 대한 보수는 지불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여성중 대다수가 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이들은 이 업무와 생산 및 재생산 활동을 결합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 필요했던 수입을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역 공동체에 함께 할 것을 요청했던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육아서비스, 교통서비스 의료보험서비스와 같이 여성의 생산 및 재생산에 대한 짐을-이들의 직업노동,가사노동인 듯- 덜어주지 못한다.

또 이들이 좀더 효율적으로 이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보조적인 부분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여성들은 3중의 짐을 지고 있고, NGOs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책무가 지역주민들 특히 여성에게 부과되었지만,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Brodie가 논했듯이 이와 같은 경향은 결과적으로 대립적인 상황을 낳는다. 신자유주의적 모델은 한편으로는 여성의 생산적인 역할-노동시장의 진출-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이는 재생산의 짐을 더 부과한다. 이와 같은 일이 계속될 때, 여성은 그 성적 역할에 의해 시장에서의 동일한 조건에 대한 경쟁력을 갖출수 없으며, 점차적으로 주변화되어갈 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와 NGOs

표면적인 모습이 실망스럽다 할지라도 이는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민주화는 위로부터 강요된 것이었으며, 그 과정은 이미 통제가능하며 결정된 것이었다.
오도넬과 슈미터에 의하면,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중심요소는 제도화- 잠재된 갈등의 관리, 신자유주의적 모델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두가지 상황이 더 필요하다. 이는 바로 부르주아의 소유권은 신성불가침하다는 것이며, 군사력의 특권은 사라질 수 없다는 것(O'Donnell과 Schmitter, 1986;69)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공고화 과정에서 NGOs의 지위에 대하여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초기 분파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기금을 극빈층이 아닌, 정치적으로 민감한 집단에 맞출 것인가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갈등의 잠재적 근원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글에서는, NGOs가 어떻게 그들의 의제를,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된 재산분배의 결과와 목표를 충족시킬 요구에 맞추는가를 보여주었다. NGOs가 그저 단순히 사회기금의 청부인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했다.
NGOs의 잠재력을 민주화를 위한 것 정도로 간주하던 초기의 낙관주의는, 결국 NGOs들이 신자유주의적인 계획에 이끌리면서부터, 대부분 오판으로 밝혀진다. 이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세워진 민주주의 모델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1990년대 NGOs는 신자유주의적 모델의 명령에 그리고 요구에 완전히 통합되었다. 공적 서비스 제공에 관여했던 대부분의 NGOs는 지역적 권력망에 도전하지 못하며, 심지어 국가가 자신들을 우회하도록 한다. NGOs가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민주화의 순수한 집행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의문시되어야 한다.


NGOs의 기여 그리고 한계

이러한 근거에 따라 몇가지 결론이 나온다.

1.NGOs는 인구의 몇몇 집단에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였으며, 전지역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겨냥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에 기여하였다.

2 그렇지만, NGOs는 그 수혜자들에게 효과적인 시민권을 담보하거나, 민주화와 그 권한을 진진시킬 수 없었다. 현존하는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원조기능의 시장을 만들어 NGOs들이 그 속에서 재원을 가지고 다투게끔 하였다. NGOs는 계획을 입안하는 데는, 거의 관여하지 못하였으며 단지 계획을 실행하는 것에 초청받았을 뿐이다.

3. 그 의제가 급진적인 소수 NGOs들은 점점더 많은 한계에 봉착한다. 성적 평등, 토지 재분배, 계급 평등 등은 국가권력에 위협이 된다. 지신들의 의제 속에 그 주장을 받아들인 NGOs들은 수많은 기능적인 NGOs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부와 호의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현존하는 NGOs가 경쟁하기 위해 자신들의 활동규모를 확대해야 할 때, 그들은 목표의 수행척도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자신들 고유의 이데올로기를 표기한다.

4. NGOs가 국가 기관보다 성적 평등을 증진시키는 데 더욱 유능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중요한 사안은 진지한 재고가 필요하며, 고용수준의 성적 불평등과 결정과정에서 성적 차별이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NGOs가 성문제를 말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가능하기 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5. NGOs의 프로그램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집단에 맞추어졌으며, 따라서 민중의 동요를 방지하고 그 집단들과 고객같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6. 공적 서비스의 집행자로서 NGOs가 활동한 것이 관료사회의 개혁을 이끌었는지 혹은 정부로 하여금 힘있는 지역망의 영향을 약화시키게 하였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7. 지역에서의 탈집중화가 광범위하게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NGOs에 부여된 강조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사실보다 훨씩 명백하였다. 새로운 역할은 구래의 정치정당으로 귀결되었다. 이 맥락에서, 국가의 탈집중화가 수반되는 민주주화의 증진을 위한 NGOs의 능력은 보장받지 못한다. 그 경로 속에서 NGOs의 능력은 보장받지 못하며 NGOs를 이용한다는 것이 자율성이나 효율성을 향상시킨다고 말할만한 유용한 근거는 없다.

9. 공적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NGOs가 시민의 권리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우선 모든 NGOs가 성문제에 대한 실천을 그들의 의제로 상정하고 있지 않으며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둘째 이러한 NGOs는 정치적 권리보다는 사회적 권리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종종 정치적으로 의식있는 시민-정치적 주체-이 아니라 정치적 수혜자만이 형성될 뿐이다. 게다가 NGOs의 수혜자는 토지를 소유한 Elite 계층이기보다는 사회의 빈곤층인 경우가 많다. 리틴아메리 사회의 맥락에서 위와 같은 사실로 인하여 NGOs는 종속적인 통제와 가부장적 조작을 할 수 있게 된다.

10. 세계은행 그리고 IMF같은 기관들은 NGOs가 사회의 공공 서비스를 이같은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을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들이 민주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만일 이것-NGOs에 의한 사회적 서비스의 제공-이 지속되고 정부가 심각하게 진심으로 최후의 민주주의를 지역으로 돌려준다면, 이 문제에서 제기해온 이슈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성적 평등에 대한 문제를 풀어가는 NGOs의 능력을 소개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NGOs의 이익- 이들이 가져다주는 이익-에 대한 현재 가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까지 NGOs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그리고 빈곤층에게도 사회경제적 혜택이 가는 것을 계속 방해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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