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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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9.77호

아프간 피랍사태가 남긴 반전평화운동의 과제

이소형 | 정책부장
8월 28일, 탈레반에 의해 피랍된 한국인 19명의 석방이 합의되었다. 7월 19일 피랍이후, 꼭 41일만의 일이다. 한국정부와 탈레반 간의 네 번째 대면협상을 통해 결정된 합의사항은 연내 한국군 철군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 이달 말까지 철수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의 선교활동의 중단 인질 석방 중 탈레반을 공격하지 않을 것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의해 구금된 탈레반 포로들의 석방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것. 이상 5개 항이다. 인질의 몸값 지불여부, 한국의 외교 협상력의 치적, 기독교의 배타적·공격적 선교라는 맹비난 여론 등. 몇 가지의 선정적인 뉴스거리를 남기면서, 아프간 피랍사태는 일단락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미군사동맹이 초래한 죽음과 비극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몰고 온 끔찍한 증오와 폭력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이라크와 레바논서, 그리고 중동지역 전역에서 한국은 이미 그 전쟁의 한 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참극은 이미 예고되고 있다.

'대 테러동맹'의 참혹한 대가
정부와 언론은 피랍초기부터 줄곧 사태의 원인을 '기독교의 무리한 선교'로 돌리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탈레반은 처음부터 한국인이 탑승한 버스인지도 몰랐고, 따라서 파병국가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이 표적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한국군 파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 국가'를 찾아간 23명의 '공격적 선교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1명의 피랍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히고 나섰다. 이 얼마나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주장인가.
아프가니스탄을 '위험국가'로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이 참전하고 있는 미국의 아프간 점령이다. 가옥과 결혼식장, 장례식장을 무차별 공격하는 미국과 동맹국의 점령이 탈레반의 민간인 납치, 살해행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이미 많은 이들의 무고한 목숨을 전쟁의 희생양으로 삼으며 '테러와의 전쟁'에 온갖 충성을 갖다 바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탈레반은 23명을 납치, 살해할 수 있는 명분을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백번 양보해 23명의 피랍자들이 '무리한 선교'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치자. 한국정부의 파병과 한·미 군사동맹이 아프가니스탄을 향하지 않았었다면, 탈레반은 민간인을 살해하고 장기간을 피랍 할 수 있는 어떠한 명분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한국정부를 통해 미국과 카르자이 정부에게 요구할 협상카드도 사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 배형규, 심성민 씨가 무참히 살해되는 그 순간까지, '즉각 철군' 이라는 카드를 결코 꺼내지 않았다. 잔인하고 참혹한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미국과의 '대테러동맹'을 굳건히 지켜냈다는 치적을 뽐내며, 이제 살려놨으니 돈으로 갚으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에 이어, 아프간과 레바논의 파병은 오무전기 노동자들과 김선일 씨의 피살, 윤장호 씨의 죽음과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까지 죽음과 비극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참혹한 기록이 말하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한·미 전쟁 동맹이 앞으로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비극을 예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테러전쟁'이 몰고 온 증오와 폭력은 이제 어느덧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은 한·미 동맹의 이름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레바논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면서 언제든, 누구든, 어느 때이든 폭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 공포는 더 많은, 더 강력한 '대 테러동맹'을 원할 것이고 그 결과 더 많은, 더 강력한 폭력이 그에 대한 대가로 돌아올 것이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9일 교보문고 앞에서 '아프간 피랍자 무사귀환 및 즉각 철군 촉구'촛불집회릘 진행했다.(출처: 참세상)

<파병반대 국민행동> 내의 논란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점령반대, 한국군 즉각 철군을 요구하며 시민과 함께 하는 촛불집회를 지속해나갔다. 그러나 정부의 파병정책에 대한 분노는 위력적인 대중운동으로 형성되지 못하였다. 대중들의 지배적인 정서는 기독교 선교에 대한 반감으로 표상되었고, 미국의 점령과 파병이 사태의 본질적인 측면이라는 인식은 지배적 여론에 밀려 대중적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한편 반전평화운동 내적으로는 무엇에 초점을 두고 운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시각차이가 드러난 계기였다. 탈레반은 23명을 납치한 직후, 아프간에 있는 한국의 동의·다산부대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했다. 반전평화운동은 <파병반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을 중심으로 기자회견(7월 21일)과 촛불집회를 시급히 조직하였고, 즉각 철군과 미국의 점령 중단을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에게 피랍자 석방을 요구할 것인가"의 문제가 쟁점으로 등장했다. 7월 26일 열린 <국민행동> 기획단회의에서는 '피랍자 즉각 석방'의 요구를 슬로건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이 제출되었다. 탈레반에게 인질석방을 요구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양비론으로 몰고 갈 위험(미국 반대/탈레반 반대)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현 시기 운동의 방향은 점령과 파병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토론 끝에 이 문제는 결국 다수결을 통해 결정되었고 결국 다수 안으로 <국민행동>의 핵심요구는 "피랍자 석방, 점령종식, 즉각 철군"으로 정리되었다.
7월 말, 피랍 20일이 경과하면서 탈레반의 인질석방 조건이 '탈레반 수감자 석방'으로 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행동>은 당면 핵심요구에 탈레반의 '포로교환요구 수용'을 추가하는 것을 논의에 부쳤다. 이는 또 한 번의 논쟁을 일으켰는데 "민간인의 생명을 볼모로 한 탈레반의 잘못된 요구를 대변할 수 없다."는 입장과 "미국의 점령을 비판하고, 점령 종식을 압박할 수 있는 요구로써 탈레반의 요구는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 대립되었다. 이 문제 역시 다수의 의견을 따라 '포로교환요구 수용'이 핵심적인 요구에 추가되었다.
이러한 쟁점들은 성명 발표, 촛불집회 기조를 결정할 때마다 참가단체들 간에 상당한 논란을 빚었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피랍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는 활동을 독자적으로 조직하기도 하였다. (8월 7일, 평화 여성 환경 종교, 문화 분야 78개 시민단체, '노란 리본 달기'운동.)
논란은 8월 27일에 개최된 <국민행동> 운영위원회에서 일단락 되었는데, 당면 슬로건을 "무사귀환, 점령종식, 즉각 철군"으로 정리하고 이외에 '포로교환요구 수용'은 미국의 책임을 묻는 내용과 결합시키자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78개 시민단체들의 '노란리본 달기'를 호소하는 성명에는 탈레반에 대한 비판과 인질들의 조속한 석방이 가장 중심적인 내용으로 담겨있다. 이들은 무고한 민간인을 납치, 살해하는 탈레반의 폭력을 즉각적으로 중단시키고, 인질을 구해내는 것으로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국민행동>의 촛불집회 기조와 관련해서도 한·미 동맹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무사귀환의 염원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한편에서는 이 사태를 계기로 반전·반미의 목소리를 보다 확산시켜 나가는 적극적인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운동진영이 해야 할 역할은 피랍자 석방의 기술적 방법 자체를 제시하는 것에 있지 않으며, 한·미 동맹 반대라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여 반전평화운동의 정치적 고양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양자의 입장은 모두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한 각자의 '평화주의적 해결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고도의 군사공격에 의해 격퇴 당한 탈레반이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복을 감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랍자들의 생명구제는 무엇보다 긴급한 문제일 수 밖 에 없다. 또한 탈레반 전쟁포로들이 미군에 의해 최소한의 포로대우도 받지 못하고, 끔찍한 인권유린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은 탈레반으로 하여금 민간인 납치를 볼모로 포로석방을 요구하게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추동하고 있다. '피랍자 즉각 석방'의 요구나 '탈레반 수감자 석방'의 요구들은 각각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것 하나가 '절대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자의 입장이 모두 가로막혀 있는 지점은 결국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전쟁과 새로운 폭력의 양상들에 대해 반전평화운동이 어떠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범세계적 공안정국과 새로운 폭력의 시대
9·11이후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시작으로 이라크 전쟁, 가자, 레바논, 소말리아 전쟁으로 번져갔고, 현재는 이란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테러'는 정치· 군사적 약자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제아무리 압도적인 정치· 군사적 우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확산해 나간다 하여도 반복적으로, 심지어는 새로운 유형의 폭력으로, 출현할 수 밖 에 없다. )1)따라서 '테러'에 대한 공격은 승리도 패배도 없는 끝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오직 항구적인 전투과정과 그렇기 때문에 더 넓고 광범위한 전장을 필요로 할 뿐이다. 2001년 10월 미국은 9·11의 배후세력인 빈 라덴을 '죽이거나 생포하는 것'을 전쟁의 목표로 삼았으나 7년이 지난 지금, '테러와의 전쟁'은 더 이상 알카에다, 탈레반과 같이 이미 드러난 무장단체만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 이는 점차 이슬람 전체에 대한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재등장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폭력을 재생산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의 위협을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켰기 때문에 이제 전쟁은 단지 중동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거대한 '대 테러 동맹'을 결성하여 범세계적인 차원의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 '악마화'된 이미지를 유포하여 새로운 종교적, 종족적 분쟁을 촉진한다. 또한 각 국가는 다양한 차원에서 대 테러정책을 계발하고, 대 테러 대비 군사안보 시스템을 첨단화하고, 테러를 겨냥해 기존의 군사동맹의 성격을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유형의 국가폭력을 자연스럽게 양산하고 있고, 이와 동시에 새로운 저항수단, 새로운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레반에 의한 외국인 피랍, 살해의 방식 역시 새롭게 등장한 폭력의 한 유형이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그들의 '피의 보복'인 것이다.

반전평화운동에게 던져진 질문
민주주의와 정치가 말살된 장소에서, 증오와 보복의 폭력들은 반전평화운동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일부 시민단체들의 '노란리본 달기 운동'은 이 폭력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답하였다. 그러나 탈레반의 극악무도한 테러행위가 아프간의 평화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는 점이 분명한 사실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폭력을 직접적으로 작동시키는 '대 테러전쟁'의 정교한 시스템을 사고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요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다만 무고한 인간의 생명 볼모로 하는 저항수단이 '평화'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반전평화운동의 다른 측면에서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탈레반의 요구와 행동을 '테러와의 전쟁'의 시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 민중의 평화적 원칙의 시각에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반전평화운동은 그 원칙과 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하고 토론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전쟁으로 얼룩진 아프간의 대지에 미국의 점령과 대 테러전쟁의 암흑을 거두어내고 어떠한 대안과 전망으로 새로운 민중의 평화를 건설해 나가야 하는가? 이것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는 것이 탈레반의 극단적 폭력을 비판할 수 있는 우리의 출발점일 것이다.
이제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이 새로운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졌다는 점에서, 아프간 피랍사태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국가적, 지역적 틀을 넘어서는 국제주의적인 반전평화운동의 성장은 어떠한 '평화주의'를 필요로 하는가?
세계적 차원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증오와 보복의 폭력들에 대해 반전평화운동은 '즉각적인 거부'와 '맹목'이라는 양자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무엇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정치가 말살되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인류 절멸로 치닫고 있는 전쟁에 맞서 평화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대안이다. 대안 세계화로서 반전 평화운동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우리에게 던져진 이 질문들에 차근차근 답해나가자.

1).「미국은 결국 패배할 것이다」,사회화와 노동 105호 참고.본문으로
주제어
반전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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