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2.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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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을 통해 본 여성운동 평가와 과제

김원정 |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 여성운동네트워크(준) 사무국

편집자주

여성운동네트워크(준)은 지난 2007년 8월 열린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계기로 모인 노조, 사회단체, 정당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의 여성운동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을 혁신하고 아래로부터의 여성 연대를 활성화하기 위한 공동교육 공동토론, 그리고 공동행동의 장을 표방하고 있다.
현재 여성운동네트워크(준)은 스스로의 위상과 활동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자 새로운 여성운동의 전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매월 월례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그 두 번째 포럼이 위 주제로 진행된 바 있는데, 필자의 동의를 얻어 당시 포럼에 제출한 발표문을 싣는다. 한국 여성운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여성운동을 모색하는 토론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들어가며

여성운동네트워크(준)이 결성 이후 두 번째로 마련한 오늘 월례포럼의 주제는 ‘한국 여성운동의 평가와 과제’이다. 너무나 큰 의제다 보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무척 곤란하게 느껴지지만‘새로운 여성운동’을 표방하는 여성운동네트워크가 자기 위상과 활동을 정립해 나가는 데 있어 피할 수 없는 의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찾고자 하는 해답은 ‘기존 여성운동단체(소위 ‘여성계’)가 아닌 다른 여성운동단체 혹은 조직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묻고자 하는 질문은 ‘기존 여성운동은 물론 사회운동 전반이 왜 여성해방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활발한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가’이다. 미약하게나마 사회운동 내에서 여성운동을 발전시켜온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포함하여 여성운동의 주체 형성과 세력화를 둘러싼 현재 한국사회의 지형을 총괄적으로 평가하는 것. 이는 결성 당시부터 여성운동네트워크가 짊어진 숙제이며, 기존 여성운동에 대한 단순한 ‘반정립’이 아닌 새로운 여성운동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향후 이 주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펼쳐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전제로,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화두를 던지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이 글이 다루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사회운동 내 페미니스트들 혹은 사회운동 주체들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기존 여성운동 평가의 내용은 무엇이며, 이는 타당한가 △신자유주의 사회 재편 과정에서 여성운동은 어떠한 한계에 봉착해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한계는 신자유주의 확산의 가장 심각한 젠더 현상으로 부각된 ‘여성의 비정규직화’에 대한 여성운동의 대응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 글을 바탕으로 한 논의를 통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결론은 아마도 첫 번째, 두 번째 쟁점에 대한 공통의 문제의식일 것이다. 세 번째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는 우리의 토론을 앞서 두 쟁점으로 모아나가는 효과적인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여성운동네트워크가 지향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사회운동 내 여성운동 비판의 틀 넘어서기

이 장에서는 먼저 사회운동 내에서 기존 여성운동을 평가해 온 주요한 문제의식은 무엇이며 앞으로 여성운동네트워크의 논의에서 평가 지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사회운동에서 기존 여성운동을 비판하는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외 비판 지점들, 예컨대 ‘여성운동은 중산층, 명망가 여성 중심’이라는 비판은 일면 여성운동과 그 주요 활동가들이 처한 조건과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며,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의 사회운동 특히 노동운동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는 비판 지점이라는 점에서 기존 여성운동‘만’의 한계로 지적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제도화’란 무엇인가? 사실 제도화는 넓게 말하면 제도 정치를 둘러싼 정치적 실천을 포함하는 사회운동의 경향을 일컫는 개념일 수 있는데, 이 경우 제도 정치 영역에 어느 정도 활동의 무게를 실으면 ‘제도화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굉장히 모호해진다. 때문에 ‘여성운동이 제도화됐다’는 엄밀하지 못한 비판을 되풀이하는 것보다는 그동안 어떤 경향을 두고 ‘제도화’를 비판해 왔는지, 그 쟁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도화를 둘러싼 기존 여성운동에 대한 주요 비판 지점은 전현직 여성단체 활동가들을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이 제도영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인적 진출’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운동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주장해 왔던 여러 여성 이슈들을 확장하고 실물화된 정책으로 만드는 데 인력을 배치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도 정치를 통해 다양한 여성 의제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최근의 경향을 설명할 수 없다. 여성운동의 ‘공급’ 측면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경향을 초래하게 된 ‘수요’의 진실이며, 우리가 착목해야 할 지점은 전자만이 아닌, 공급과 수요가 맞물려 형성된 지금의 현실이라 하겠다.
결국 기존 여성운동 평가에서 중요한 쟁점은 여성운동의 제도 영역 진출 그 자체라기보다, 여성운동의 의제와 인력, 조직이 제도 영역으로 통합되게 된 맥락과 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맥락을 짚어내지 못한 채 단지 신자유주의 사회 재편을 주도해 온 정부와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을 평가의 핵심으로 본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렇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운동이 필요하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또한 여성 의제가 제도 정치 영역에서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 될 수도 없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문제는 여성운동의 주체 형성과 세력화를 가로막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이며, 그러한 현실에 이르기까지 기존 여성운동의 역할과 위치는 어떠한가를 살펴보는 것이라 하겠다. 다음 장에서 이러한 평가의 틀을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자.


신자유주의 확산, 그리고 여성운동이 봉착한 한계

지난 10여 년간 사회운동은 물론 한국사회 전반에서 신자유주의는 매우 커다란 화두였다.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빈부격차 확대,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 확산, 근로빈곤층 증가는 이미 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으며, 더 많은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이든 그 반대이든 어떤 정치세력도 자기 해법을 제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이른바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비정규직화’로 대표되는 성별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는데, 이제 여성운동은 물론 사회운동 전반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논의는 조금도 낯설지 않게 됐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의 주도 하에 발전되고 있는 여성정책의 양상은 이와 전혀 다른 방식의 의제를 설정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여성정책의 대표적인 의제는 ‘여성인력 활용’이다.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OECD 국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전면에 등장하고, 2006년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 추진으로 여성인력 정책은 담론이 아닌 실물화된 정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성인력 활용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을 미활용된 인력, 경제성장의 도구로 대상화하며 노동시장 내 성별 불평등, 그로 인해 나타나는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저임금 노동 확산을 개선돼야 할 ‘문제’로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200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고령사회 위기론이 확산되면서 출산율과 여성고용율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안으로 제시된 ‘일-가정 양립’은 이러한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일-가정 양립에 대한 강조는 여성인력 활용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 힘을 실어 주었고 보육문제 해결에서부터 모성보호와 가족책임에 관한 다양한 정책을 빠른 속도로 제도화시켰다. 여성의 일-가정 이중 부담은 오랜 역사를 지닌 여성억압의 핵심적 문제이며, 그 해법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사회 구조 전반의 전환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여성문제의 가장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라 할 수 있는 이 의제에 대해, 최근 일-가정 양립 논의의 해법은 여성‘만’의 이중 부담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것, 개별 가족 내에서 남녀가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촉구하는 것에 한정될 뿐이다.
요컨대 이러한 여성정책은 여성을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닌, 경제성장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활용되어야 할 도구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한계를 갖는다. 정책의 대상은 노동력을 활용하고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할 ‘여성’이지 ‘성별 불평등’ 그 자체가 아니다. 여성정책이 신자유주의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그 타당성과 필요성을 입증해내는 과정에서,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비정규직화로 대표되는 성별 불평등의 심화는 더더욱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성별 불평등 문제가 첨예한 정치 의제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차단되는데, 최근 확산되는 알파걸 담론, 여성의 고위직 진출 확대를 둘러싼 능력주의 신화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는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무한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경쟁 사회의 속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여성의 이해와 욕구를 개별화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더 이상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를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운동의 대응은 어떠한 양태로 나타났으며 그 한계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현재 여성운동은 이러한 여성의 대상화, 젠더 문제의 탈정치화에 조응하면서 특정한 여성 집단의 즉자적인 이해와 실리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여성운동’을 표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17대 대선 당시 여연이 요구한 7대 영역 60대 정책과제를 대표하는 슬로건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봐요”였으며, 4대 핵심 과제는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대를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 △한부모가정 자립지원 확대 △방과후 아동지원 확대 △성인지적 평화인권교육 제도화였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요 슬로건은 성별분업에 따른 노동시장과 가족 안팎의 성별 불평등을 드러내고 ‘문제’로 제기하는 정치적 구호라기보다 개별 가족 내에서 남녀의 일-가족 책임을 적절히 분담해야 한다는 의식개혁 촉구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문제는 4대 핵심 과제를 포함한 정책과제가 현재 여성정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 변화의 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여성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개선 요구에 그치고 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실제 이러한 요구는 대선 당시 각 정당 간에 첨예하게 대립되는 여러 정치·경제·사회 정책들과는 달리 어떤 정당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여성공약의 나열로 반영됐다. 여성운동은 이러한 방식으로 여성문제를 저돌적인 신자유주의 발전 전략과도 전혀 충돌하지 않는 당위적이고 ‘착한’ 의제로 만드는데 기여한 셈이다.
물론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를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 몇 년간 여성운동은 이 문제를 꾸준히 핵심 의제로 제기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활동 양태에 있다. 여성노동단체를 포함한 여성운동은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초래하는 성별 불평등 구조를 드러내고 정치적 의제로 제기하는 활동이 아니라 빈곤 여성과 비정규직 여성 ‘당사자’의 이해와 요구를 제도적으로 또는 공동체적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전개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부모가족 운동, 빈곤여성 일자리 창출 사업, 돌봄서비스를 통해 저소득층 여성들 간의 상호 부조를 연결하는 사업 등이다.
이러한 활동들이 실제 여성 당사자를 조직하고 빈곤 여성의 현실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여성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빈곤여성 집단의 이익추구 운동이나 자조운동으로 대체되는 경향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예컨대 여연은 지난 대선 시기 전국의 한부모 여성들이 참여하는 대회를 개최하며 빈곤 여성가장 대책을 핵심 요구안으로 내걸었는데, 그 내용은 학자금, 직업훈련수당, 의료급여 등 좀 더 많은 자원을 빈곤 여성가장에게 배분하라는 것이었다. 빈곤의 여성화는 곧 여성가장의 빈곤 문제로만 사회화될 뿐 변화해야 할 노동시장, 사회복지제도 등 구조적 불평등 문제는 가려졌다.
결국 이러한 여성운동의 대응은 앞서 살펴본 정부 여성정책의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효과를 양산한다. 여성인력 활용정책이 ‘미활용된 여성집단’을 정책 대상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은 ‘빈곤한 여성집단’을 정책 대상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틀 안에서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사회 변화를 주도해 갈 주체의 위치가 아니라, 정책의 대상이나 제도 개선의 수혜자로 위치 지어질 뿐이다. 성별 불평등 문제를 비가시화하는 최근 여성정책의 한계를 돌파하지 못한 채, 그러한 틀 안에서 더 많은 실리를 챙기는 활동들―예컨대 저출산 고령사회 협약에 참여하여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을 꾀하는 방식―로 여성운동의 정치성은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운동 내의 페미니스트 활동은 이러한 여성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가.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 정당에서 여성관련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그동안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를 주요 화두로 제기해 왔고. 여성인력 활용,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여성의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못했으며 엄밀히 말해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역량이나 세력 자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러한 비판들은 오늘날 여성의 현실이 신자유주의 사회 재편에 따른 결과임을 강조하고 여성을 그러한 적대의 최전방에 위치 짓는 프레임 이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여성 빈곤과 고용 불안정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보고 그에 반대하는 여성들을 조직하고자 했지만, 실제 여성들의 삶과 신자유주의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구체적인 분석이나 담론 형성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사회운동 내 페미니스트들이 목소리를 내는 주요한 방식은 KTX, 이랜드-뉴코아 등 개별 사업장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그러한 투쟁에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라는 사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물론 투쟁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이중 부담과 성별분업의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 악법 폐기’라는 큰 흐름의 투쟁 속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생산과 재생산 영역의 다양한 문제들을 정치적 의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활동들은 자리 잡지 못했다.
어찌 보면 성별 불평등이 정치 이슈로 등장하거나 적어도 고쳐야 할 ‘문제’로 재현되지 못한 채 화려한 여성정책의 수사들 속에 묻혀 있는 지금의 상황은 앞서 살펴본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내 페미니스트 실천의 양 편향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운동을 어떻게 정의하든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 사회 재편이 변화시키고 있는 성별 권력 관계들의 역동성을 포착하고 그 과정에 개입하려는 페미니스트 실천은 실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천의 상을 그려가기 위해 우리가 착목해야 할 지점은 무엇일까. 다음 장에서 다룰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의 현실과 방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의 현재와 미래

이 글의 직접적인 주제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를 하나의 쟁점으로 끌어온 이유에 대해 먼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여성 비정규직의 확산이 여성의 일에 대한 평가 절하, 남성 생계부양자 중심의 노동관행, 뿌리 깊은 성별분업의 문제가 응축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즉 여성 비정규직 문제는 여성노동자 전체의 문제이며 총체적인 성차별 구조를 답습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이란 이러한 현상을 드러내고 지양해 나가는 활동이자 그러한 저항 주체들의 세력을 확장해 가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문제는 과연 그런 운동이 지금,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우리 가까이에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주축이 되는 노조운동과 다양한 정치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는 정규직화, 무기계약직화, 차별 해소 등 어떤 방식으로든 이전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한 여성들도 있다.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는 곧 여성문제라는 논의를 우리는 수없이 접하고 있으며, 그렇게 보면 다양한 주체들이 전개하는 비정규직 운동 모두가 여성 비정규직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을 우리는 앞서 말한 의미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런 운동이고 무엇이 아니라는 선 긋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운동들이 과연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야기하는 성별 불평등의 문제를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지, 그러한 문제를 일상에서 몸소 경험하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단지 비정규직이 아닌‘여성’이라는 주체로 구성해 내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운동은 미약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의 실질적인 이해와 요구만을 중시하는 실리적 경향이, 또 한편으로는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그냥 일반적인(?) 비정규직 문제로 다루는 몰성적 경향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의 정치화를 가로막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글의 주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양 극단의 흐름이 여연으로 대표되는 여성운동(‘여성계’) 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노동계’) 양자의 경향으로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여성집단의 실리를 추구하는 활동이 곧‘여성운동’으로 표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여성의 실리 추구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의 전부로 표상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가 느끼는 가장 답답한 지점이다. 정작 확산되는 성별 불평등, 그 대표적인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는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긴 서설을 마무리 하고 구체적인 현실로 이야기를 옮겨 보자.

1) 비정규직 운동의 몰성적 경향
먼저 현재의 비정규직 운동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그간 노동운동이 주도해온 비정규직 운동에서 얼마나 젠더 문제가 다뤄지지 조차 않았는지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여성’과 ‘남성’이 아닌 ‘전체’ 비정규직이란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다. 더욱이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두드러진다는 점은 비정규직 확산 배경에 성별에 따른 요인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남녀 구분 없이 성 중립적인 주체로, 비정규직 문제는 성 중립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이 노동운동 내에서 보편화 돼 있다. 그나마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는 주된 방식은 비정규직 다수가 여성이라는 총량적 통계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는데, 이는 ‘여성이 왜 비정규직화 되는가’라는 문제를 드러내고 정치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많은 여성노동자가 비정규직이라는 결과적 사실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방식에서도 성별은 또 한 번 비가시화된다. 많은 운동 주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을 정규직과 다른 다양한 불안정 고용상태에 있는 노동자를 포괄하는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정작 비정규직 운동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는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절대적’ 이분법이 존재해 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정규직 분류 방식은 그들이 ‘정규직이 아닌 원인’별 분류이다.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 평생계약이 아닌 단기계약,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닌 자라는 분류는 비정규직 운동이 전개되는 전형적인 틀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화는 비정규직이 누구이며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짓는 데 있어 성별을 부차적인 범주로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절대적 이분법이 ‘고용형태가 무엇이냐’로 분류할 수 없는 다양한 여성 불안정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운동의 시야에서 배제하는 경향을 낳는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비공식 노동자들이다. 사실 모든 여성노동자가 정규직 남성노동자라는 전형적 노동자 모델과 달리 노동시장의 성별 불평등 구조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비전형’ 노동자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비정규직 운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주체와 범주, 목표를 갖게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 분리되어 각자의 싸움에만 매진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상의 한계를 짚어보자. 대개 비정규직 운동은 개별 기업 내 비정규직이나 비정규직화 되어 있는 직종 자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투쟁과 노동관련 법·제도 개선 투쟁 양자의 축으로 전개돼 왔다. 그러나 여성의 비정규직화라는 구조적 문제는 물론 개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생활상의 문제들은 개별 기업이나 직종, 고용정책 차원의 해법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여성노동자들은 현장과 지역, 일과 가정을 수시로 넘나들며 가사·육아부담 등 고용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총체적으로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당면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비정규직 운동의 영역은 성별 불평등 문제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세력화를 더디게 하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의 영역을 한정짓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단적으로 현재 다수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의 목표는 정규직 노동자, 즉 ‘정규직 종일제 노동자’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 외의 다른 어떤 목표, 특히 여성 비정규직화의 원인인 여성의 경력단절, 성별 직종 분리, 여성노동의 평가 절하 등 성별 불평등 문제 해결은 그 자체로 운동의 목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고용형태 차별과 성차별을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현재 비정규직 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실제 우리은행 분리직군제와 같이 성차별을 제도화하는 다양한 노동 유연화 양상에 대처하는 데도 무기력함을 노정하게 했다.
‘정규직 종일제 노동자 되기’라는 비정규직 운동 목표의 또 다른 문제는 정규직 남성 종일제 노동자 모델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궁극적인 지향이자 성찰의 여지가 없는 이상(ideal)로 설정함으로써 그러한 모델이 기초하고 있는 성별분업을 문제 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규직 종일제 노동자는 가사·육아 등 가족생활에 대한 책임을 다른 가족구성원(대체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성별분업 체계 하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노동자 모델은 가족책임이 있는 노동자(대체로 여성)를 ‘특수한 노동자’, ‘잠재적 노동자’로 주변화하고 현실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기 어려운 기혼 여성노동자의 고용 불안과 일-가정 이중 부담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결국 그동안의 비정규직 운동이 여성의 비정규직화, 주변노동자화를 초래하는 정규직 종일제 노동자 모델을 보편화하는 데 주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괜찮은 비정규직 노동자 모델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대 비정규직 철폐라는 오래된 논쟁에서 전자의 입장은 비정규직이 아예 없을 수는 없기 때문에 차별 개선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되는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확산, 비정규직이라는 점이 고용형태 문제를 넘어 사회적 신분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타당한 주장인지는 차치해 두더라도 비정규직 차별 개선의 논의는 말 그대로 괜찮은 비정규직 만들기에 그쳤을 뿐이다. 성별분업에 기초해 있는 노동자 관념과 각종 노동관행이 왜, 어떻게 변화되고 재구성돼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둔 채 말이다.

2)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은 ‘현실적’ 대안 찾기?!
이와 같이 비정규직 운동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의 발전 전망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비단 노동운동(노동계)만의 문제인가. 여성 비정규직을 주요 조직 대상으로 하는 여성노조 활동, 여성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여성운동(여성계)의 인식은 기존 여성운동 역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인 조직이라는 상징적 의의를 넘어서 여성 비정규직화 문제를 정치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정규직-비정규직의 절대적 이분법에 기초한 분류 방식과 다른 ‘여성’ 비정규직 주체를 형성해 가고 있는가. 개별 사업장·직종과 고용정책 영역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 양태를 제시하고 있는가. 정규직 종일제 노동자 모델에 기초한 노동시장 관행 전반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접목시키고 있는가.
물론 이러한 운동의 실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기존 여성운동 내에 다양한 문제의식과 시도들이 전무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업장 또는 직종, 부문의 여성 비정규직을 위한 ‘현실적 차선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여성운동의 합리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과 무기근로계약에 대한 입장이다. 2006년 5월 여연이 주최한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과연 여성에게 평등한가!” 토론회에서 조순경 교수는 무기근로계약을 현실적 차선책으로 수용한 전국여성노조의 입장을 그에 반대하는 ‘남성 정규직 중심’ 노조의 입장과 대비시켰다. 여성노조의 입장은 “고용안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노동조합의 틀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중시하는 것이며,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성희롱이나 다양한 형태의 일상적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 안정성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여성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이러한 타협은 합리적인 선택이며 무기계약직을 반대하는 입장은 노동운동의 대의나 원칙만을 강변하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의 태도라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데 있어 다양한 경로가 있을 수 있으며 어떤 경로를 택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노동자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상징적·정치적 의미들이 부여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매우 해악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여기서 주장하는 바는 다른 문제, 즉 기존 여성운동의 비정규직 문제 대응 방식이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현실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이 기존 노동운동과 대비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으로 대표되는 양상이다. 성차별적 비정규직화가 문제이고 여성 비정규직이 더 많은 차별을 받는다고 해서 여성‘만’을 또는 ‘여성집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정규직화 하자는 것이 여성운동의 전략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보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이란 누가, 어떤 목표로,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도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처한 막막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이라는 말을 꼭 짚어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를 둘러싼 성별 불평등에 대항하는 실천은 여성노동운동, 나아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전체의 변화 속에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여성운동,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

지금까지 ‘여성운동’의 상을 새롭게 정립하자는 광범위한 문제의식에서 진정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운동’의 출발점을 찾아보자는 세부적인 논의까지, 너무 많은 문제들을 그냥 풀어해쳐 놓은 셈이 되어 결론을 맺는 것이 무척 난감해 진다. 더군다나 새로운 여성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리하려니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다.
여성운동이 여성 당사자의 실리를 추구하는 이익집단 운동이 아니라 성별 불평등 문제를 끊임없이 정치적 의제로 제기하고 그 원동력을 여성들 자신의 주체화·세력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의 실체를 만들어 가는 것, 특히 지금의 신자유주의 확산이 가져오는 여성정책과 성별 관계의 지형 변화를 오늘 당장 여성들이 겪고 있는 삶의 변화로 읽어내고 의제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왜 우리는 그러한 운동을 만들어내지 못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는 모색이 필요한 몇 가지 문제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제기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이슈로 제기한다는 것은 무턱대고 ‘신자유주의 반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철폐’를 구호로 외치고 투쟁 과제로 삼자는 게 아니다.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양상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국가·자본·기존 운동들이 여성의 경험과 문제를 해석하고 재단하는 틀을 넘어서는 다양한 담론과 문제제기의 틀을 구성해야 한다. 가령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확산되는 맥락의 핵심인 여성의 일에 대한 가치 저평가를 문제화하는 대중적인 담론을 구성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하고 여성의 저임금을 개선하자는 ‘제도개선 요구안’에 그치지 않는 ‘담론’ 형성을 위해 지금 한국사회에서 국가와 자본이 어떻게 여성의 일을 주변적이고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 그것이 여성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노동에 부여하는 가치, 의미와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으로 어떤 여성을 어떻게 조직화·세력화 할 것인지 그 경로와 운동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조합, 투쟁하는 개별 사업장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던 여성 주체화·조직화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과 현장, 지역사회와 노동시장을 넘나드는 다양한 정치활동의 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사업장과 지역, 노조와 풀뿌리 조직 중 어느 한 공간을 전략적인 운동 영역으로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분리되어 가는 현재의 운동 영역의 구분을 넘어설 수 있는 정치활동 방식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모색은 비단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과 남성 중 어느 한 집단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별 불평등이 드러나는 양상을 가시화하고 그에 저항하는 주체를 세력화하는 운동은 반드시 젠더 인식을 포함하는 담론과 정치활동의 틀을 필요로 하지만 그런 운동이 사회운동단체, 노동조합, 여성단체 어느 하나의 활동으로 단순 대체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노동운동 등 현재 분별 정립돼 있는 일정한 운동의 경향들을 서로 비교하며 차이를 부각시켰지만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이란 지금 운동의 어느 한 경향을 발전시키는 데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운동의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 각각의 운동을 넘나드는 여성운동네트워크가 추구해야 할 몫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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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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