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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미래는 갈등의 복권에 달려 있습니다

알레산드라 메코지 인터뷰

장진범 | 편집부장

편집자주

알레산드라 메코지(Alessandra Mecozzi)는 이탈리아 3대 노총 중 하나인 CGIL의 금속노조(FIOM) 국제 서기를 맡고 있다. 그녀는 현재 유럽사회포럼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반전평화운동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녀는 1980년대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에도 참여한 바 있다[편집자 - 이에 관해서는 알레산드라 메코지, 「일하는 여성: 노조」, 『사회진보연대』 39호(2003. 10.) 을 보라].
이 인터뷰는 2007년 9월에 진행한 것이며, 1·26 등 최근의 상황에 관해서는 메일로 추가 인터뷰를 하였다. 바쁜 와중에도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하고 연대를 아끼지 않은 알레산드라 메코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와 함께 당시 인터뷰에서 통역을 해 주신 윤애림 동지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사회운동: 당신은 지난 2007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다른 노조 및 사회운동들과 함께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를 발의한 바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의 문제의식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알레산드라 메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시대는, 노동에 관한 이론 및 실천 전반을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동반하는 불안정노동이나 비공식노동의 확산은, 노동에 관한 기존의 규정 속에서는 다뤄지지 않았거나 부차적이던 쟁점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주체들을 조직할 수 있는 방식을 긴급한 과제로 제기합니다.
알레산드라 메코지

그런데 이 같은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행위자들 및 행동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를 발의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은, 매우 다양하고 서로 다른 행위자들과 함께, 공통의 사회적·정치적 의제를 함께 건설하기 위해 논쟁하고 의지를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본적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 앞에서 노동, 문화, 그리고 노동권에 관련된 쟁점들에 관한 우리의 작업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조, 사회운동, 연구자, 그리고 연구소 등과 함께 할 수 있는 지속성 있는 국제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현재 이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접촉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쟁점들을 심화시키고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2008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번째 국제회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사회운동: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열린 사회운동 총회에서, 1·26 세계행동의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금속노조 차원에서 어떤 계획이 예정되어 있습니까?

알레산드라 메코지: 제가 속한 이탈리아 CGIL 금속노조(FIOM)에서는 1월 24일, 산업재해로 7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독일계 티센크루프 그룹에서부터 인도 농민들을 강제이주시킨 인도계 타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초민족적 기업들이 노동과 발전의 조건에 미친 재앙들을 공유하고, 노조와 사회운동들의 대응을 토론하기 위해, 브라질과 인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운동들을 초청하여 대중적 회합을 조직할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1월 26일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는 여러 노조들 및 사회운동들의 연대체로서 2001년에 조직된 <이탈리아 평화 행동> 주최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저항에서의 인내, 거부하기 위한 용기. 점령과 장벽에 맞서 가자 봉쇄를 끝내자!”라는 제목의 공개 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대회에는 가자 지구 출신의 팔레스타인인과 텔아비브 출신 이스라엘 난민이 참석할 것입니다. 유사한 행사가 22일 밀라노, 23일 볼로냐, 24일 그로세토, 25일 나폴리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사회운동: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의 핵심적 문제의식 중 하나는 공식노동과 비공식노동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 노동운동에서는 어떤 시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알레산드라 메코지: 제가 속한 CGIL 금속노조의 경우, 몇 가지 차원의 접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기본 입장은 불안정노동(precarious work)을 제한하고 축소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는 전국적 단체 협약이 진행되는데, 여기서 관련된 요구안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작업장 외부에서 불안정노동자들과 접촉·조직할 수 있는 사무소를 전국 곳곳에 설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 성과가 썩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 불안정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불안정노동의 제한·축소라는 우리의 기본 입장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서로의 관계맺음 자체가 양면적인 데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안정노동자들, 특히 청년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단체들과의 연대 사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노동에 대해서 우리와는 매우 다른 관념,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들은 기본적인 보장 소득, 공적 소득을 중요시하며, 이것만 갖춰진다면 불안정노동은 선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데,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특정 사안에 대한 단순한 입장 차이가 아니라, 노동에 관한 근본적인 문화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끊임없이 접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아가 상호변화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세계 사회운동의 중요 쟁점 중 하나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입니다. 관련해서 이탈리아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알레산드라 메코지: 최근의 가장 훌륭한 사례라면, 2006년 로마에서 벌어진 대규모 불안정노동 반대 투쟁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투쟁에 100,000 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CGIL을 포함한 노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CGIL의 경우 상당한 논란을 겪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중도좌파 정부와의 관계입니다. 실제로 CGIL 지도부 중 일부는 현재의 중도좌파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정당의 일원이며, 이 때문에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단체협약 과정에서 연금이나 불안정노동에 관해 정부가 내놓은 안이 매우 나쁜 내용인데도, 노조 지도부들이 이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금속노조의 경우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 안건을 다루는 전국 대회에서 부결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비단 노조 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전반이 정부에 대한 입장을 두고 분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한편에서는 정부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일체의 협력을 거부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맞다, 정책이 좋지 않고 우리도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정부가 무너지면 베를루스코니 같은 더 나쁜 우파 정부가 들어서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들어가면 사실 굉장히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브라질 같은 곳에서도 마찬가지 문제를 겪는 것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독립성은 유지하지만 현실 개입력은 없는 상황이,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현실에 포섭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두 가지 극단을 벗어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실 개입력을 확보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관건일 것입니다.

사회운동: 당신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알레산드라 메코지: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노조 내외부의 페미니스트들의 연계는 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화되면서 80년대 동안 발전했는데, 그에 비해 지금은 상당히 침체한 상태입니다. 물론 지금도 단체 협약 안에 여성들의 요구를 반영하려는 시도 같은 것은 있습니다. 오늘날의 주요 문제는 불안정노동이지요.
이처럼 노조 페미니즘이 침체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요. 그 중 하나를 말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여성운동은 기본적으로 매우 갈등적이고 능동적인 운동입니다. 다양한 수준, 특히 공/사 모든 수준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런데 여성운동 안에는 항상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정치 제도와 노조를 비롯한 기존 조직 안에서 여성 지도자를 늘리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습니다. 다른 방향은, 그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한 것은 기존 조직에 대해 여성운동, 페미니즘 문화 및 정치가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지, 단순히 기존 제도 안에서 여성들이 양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중 지배적인 것은 전자였습니다. 후자는 더 어렵기도 하고, 또 주변화될 위험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말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기존 조직들이 여성운동의 급진성을 중화시키는 한편, 여성들을 조직 안에 흡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경험에 입각한 저의 해석입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여성들의 대표라는 문제를 보자면, 의회는 아주 낮습니다. 그에 비해 노조는 상당히 높은 편이지요. CGIL의 경우를 보자면, 사무총장은 50:50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질적인 의미를 갖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요.
실제로 최근 들어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2006년에 낙태의 권리에 관한 큰 운동이 일어난 바 있습니다. 사실 이미 1970년대에 낙태가 합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우익 정당이나 교황을 필두로 한 교회의 공격이 아주 강력하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문화적 압력이 아주 강력합니다. 이와 함께 경제적·사회적 조건의 악화도 있습니다. 불안정노동의 증가로 인한 노동시장의 악화라든지,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의 매우 낮은 출산율은 이 같은 상황과 연관이 있는데,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낙태의 권리에 대한 보수적 공세가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말씀을 듣다 보니, 언급하신 여성운동의 첫 번째 경향은 한국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을 연상시킵니다. 성 주류화 전략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알레산드라 메코지: 북경 여성 대회에서 제안된 것을 말하는 건가요? 저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류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기존 주류에 참여하자는 얘기지요. 저는 그것이 배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주류화가 종종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진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여성들의 권리를 실현할 것인가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갈등 없이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여성운동의 진보나 발전은 갈등 없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주류 내부에 진입하여 그 곳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요컨대, 변화를 위해서, 주변화되지 않고 내부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갈등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질문이자 쟁점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모든 종류의 갈등을 회피하면서, 사회를 정상화(normalize, 표준화)하려는 시도가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시도입니다. 갈등은, 노조 등이 대표하는 사회적 갈등을 비롯하여, 진보적인 힘, 에너지와 착상과 변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며, 이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갈등을 억압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인데, 이는 매우 모순적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한편에는 갈등의 극단적 형태인 전쟁이, 다른 한편에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평화적 갈등을 중단시키려는 시도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저는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대안세계화 운동이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은 이른바 ‘유일 사상’(pensiero unico), 즉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냉전의 종말 이후, 하나의 체제만이 최선이라는 식의 이데올로기와 단절했습니다. 그들은 갈등의 힘을 보여주고 있고, 사회적 비판, 변화에 대한 사회적 열망을 부활시켰으며, 이로써 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여성운동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여성운동은 갈등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갈등에 대한 평가절하는 여성운동 자체를 쇠퇴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진전을 위해서라도 갈등의 가치를 복권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대안세계화 운동을 비롯하여 오늘날의 사회 안에서 갈등을 대표하는 여러 운동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운동: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은 뤼스 이리가레(Luce Irigaray)의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과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도 듣고 싶습니다.

알레산드라 메코지: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과 급진적·사회적 페미니즘은 80년대에 서로 밀접하게 결합했습니다. 왜냐하면 양자 모두 기존의 제도 안으로 점점 더 많이 진입하기 위한 투쟁보다는, 기존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보다 발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는 사회적 페미니즘은, 다른 이념과 가치를 제시하는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에서 자신의 운동을 강화시키는 수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가레는 남성과 여성이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자율성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통찰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율성이란 완전한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분리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반면, 자율성은 모두를 위한 발본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독자적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80년대의 노조 페미니즘과 사회적 페미니즘은, 상징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결합시키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새로웠습니다. 이 같은 시도는 페미니즘 안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수준에서의 대중운동이 없으면 상징적 변화를 거둘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그 견해가 여전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양자가 분리되면 양쪽 모두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운동: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제어
노동 여성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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