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2.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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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혁신/분당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

대중운동의 재건과 계급형성을 위한 운동의 재편이 필요하다

이현대 | 공동운영위원장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참담한 패배 이후,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으로 촉발된 당내 논쟁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월 12일 중앙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하였으나 1월 26일 총선 전 진보신당 창당을 표방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공동대표: 김석준 부산시당위원장,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조승수 전 진보정치연구소장)이 공식 출범하는 등 총선 전 신당 추진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월 3일 임시당대회를 앞두고 비대위가 ‘쇄신안’을 제출하였는데 대선 평가, 편향적 친북행위, 북핵 및 자위론, 패권주의와 민주주의 왜곡, 재정·조직혁신, 제2 창당 추진 등을 둘러싸고 상당한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나 소위 일심회 사건 관련 최기영, 이정훈 당원 제명 등 첨예한 쟁점에 대한 자민통 진영의 태도에 따라 ‘심상정 비대위’의 실패와 대규모 탈당이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임시당대회에서 비대위의 쇄신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총선 직후 선거 평가와 당직선거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은 87년 이후 남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상징적으로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한 한 축인 민주노동당의 위기와 향후 행보는 사회운동(민중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논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외부자적 비판이 아니라, 남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총체적 위기와 새로운 운동질서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의 적극적인 입장 마련과 개입이어야 한다.
우선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민주노동당의 대선실패를 둘러싸고 지금껏 진행된 논쟁 과정을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위기의 원인이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에 있다는 ‘평등파’의 주장은 불충분하거나 일면적이다. 그 동안 지역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는 점에서는 심정적으로 공감하지만, ‘자주파’에 대한 이념, 정치 공세를 통해 대선실패 혹은 민주노동당의 위기에 대한 ‘평등파’의 공동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조선일보와 같은 극우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종북주의’나 ‘주사파’ 식으로, 이념에 대한 마녀사냥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것의 효과로, 부르주아 언론과 우익, 사민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주체사상/스탈린주의, 레닌주의, 사회주의 등 좌익적 이념 전반을 공격하고 대안적 이념과 사고를 봉쇄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선동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라도 ‘평등파’ 혹은 ‘신당파’들은 이러한 논쟁 과정을 자성해야 하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위해서 ‘종북주의’에 대한 공격이 아닌 그 동안의 민주노동당 활동에 대한 철저한 자기평가를 선행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사회적 합의주의)-민주노동당(의회주의)…전국민중연대 전략의 실패

이번 민주노동당의 대선 실패는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 대중조직들의 배타적 지지방침과 공동선거 대응의 실패라는 점에서, 짧게는 97년 대선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의한 ‘국민승리21’ 결성 이후 10년의 진보정당운동, 길게는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으로 폭발했던 ‘민주노총-민주노동당…전국민중연대’ 운동의 한 순환을 마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은 군부독재 하에서 억압되었던 대중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노태우의 6·29 선언과 재야운동세력의 대통령 직선제 수용은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를 확장하지 못한 채 노태우 군사정권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이후 자유주의 세력들은 취약한 자기기반으로 인해 보수정치세력과 연대하거나 혹은 독자적 방식으로 집권(90년 3당 합당을 통한 민자당의 창당과 YS의 집권, 97년 DJP연합을 통한 DJ의 집권, 2002년 노무현의 집권)하여 ‘민주화’와 ‘자유화’의 이름으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급진적·전투적 부위를 이데올로기적·물리적으로 탄압함과 동시에 노사정 협의틀과 같은 ‘제도적인 타협과 통제’를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의 반주변부라는 한국 사회의 취약한 구조와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적 조건 때문에 코퍼러티즘적 통제를 제도화할 수는 없었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변신한 자유주의는 한편으로 인민주의적 동원과 정치의 호도를 통해 대중을 탈정치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실제로는 사회구조를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특히나 노무현의 집권과 몰락 과정은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코퍼러티즘적 안정적 통치체제의 설립에 실패하고 사회불안정성이 고조됨으로써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위기가 심화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노동자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전략은 자유주의 세력들의 코퍼러티즘적 통제 전략을 넘어서지 못했다. 87년 투쟁의 성과는 90년 전노협, 전농 등 대중조직의 결성으로 이어졌으나, 91년 계급투쟁의 패배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맞물려 급진적, 전투적 세력에 대한 지배 계급들의 이데올로기적·물리적 공격이 진행되었고, 운동 내부적으로도 ‘중진자본주의론’ 등이 제기되면서 변혁적 노선을 폐기하고 합법주의로 노선을 전환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한 민주노총의 건설 과정은 전노협의 전투적이며 연대지향적인 지역 중심의 운동 구조를 약화시켰고, 제도적인 교섭을 중심으로 한 산별체계를 강화하는 출발이었다. 민주노총의 출범 이후 민주노총/산별·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성격(진보정당 vs 계급정당)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으나 크게 민주노총의 합법화와 제도화 전략, 진보정당 건설과 의회를 통한 제도개혁이라는 전략이 관철되었다. 한편 DJ의 집권과 IMF 경제위기 국면에서 민주노총의 공식방침을 어기며 노사정합의를 통해 정리해고제 법제화와 파견근로제 도입 등을 합의한 사건은 이후 노동운동을 약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대중적 비판에 직면하여 지도부가 사퇴하지만, 비상대책위(단병호)와 새로 선출된 이갑용 집행부조차 노사정위원회 참가-불참을 반복하고, 5월 총파업 선언을 번복, 사실상 정리해고제 철회에 대한 총파업투쟁은 조직되지 못하였고, 이후 수세적-방어적인 성격의 사업장별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혼란 이후 계급투쟁의 시험대에 오른 98년 8월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38일 파업 투쟁은 정리해고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여성노동자의 외주화를 타협함으로써 성별화된 구조조정과 자본의 노동자분할전략을 받아들였고 이후 민주노총의 ‘패배주의’와 ‘실리주의’로의 경향을 예고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98년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을 둘러싼 국민파(제도화전략)와 현장파(총파업 혹은 투쟁동원전략) 간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논쟁의 구도는 산별노조/진보정당 즉 내셔널 센터(정치세력화, 정부와의 정책협의)-산별노조(산별교섭, 산별조직화, 정책개발·교육사업)-단위사업장(추가적 교섭, 노동자경영참가) vs 계급적 노동운동/노동자정치조직 즉 내셔널 센터(노동자투쟁의 정치적 구심)-지역본부(지역 차원의 노동자 공동투쟁 및 민중연대투쟁)-단위사업장(현장조직활동) 간의 논쟁이었다. 이후 현장파가 민주노총 지도부를 수권하기도 하였고 공공부문 사유화저지투쟁과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 등이 지속되었으나, 후자의 입장에 입각한 일관된 정치적 실천과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민주노총은 크게 ‘사회적 합의주의’로 상징되는 제도화의 경향 속에서 ‘패배주의’와 ‘실리주의/조합주의’의 강화로 귀결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정치방침에 근거하여 건설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을 지탱하는 큰 힘이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이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계급적으로 단결하지 못하고,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정주노동자/이주노동자 등으로 분할되어 자기이해를 방어하려는 실리주의가 팽배해져 있는 조건 하에서는, 노동운동의 한계가 고스란히 당 내부로 이전되어 당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경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과 대중운동의 혁신 및 정치적 재조직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실리획득에 주로 의존했다. 특히나 2004년 총선에서 10명이 의회에 진출한 이후 모든 관심이 원내로 쏠리는 가운데 ‘의회주의’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당의 인력과 재정의 배치가 의정지원 쪽에 심하게 쏠려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고 대중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기보다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들에 의한 사당화(私黨化) 경향이 강화되었다. 또한 당원의 지속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당원들을 의식화·조직화하기 위한 당의 교육프로그램은 부재했으며, 국회의원과 유명 인사들의 강좌에 머물렀다. 저임금 여성노동자, 비공식노동자, 이주노동자, 빈곤층 등 당의 정치활동의 기반이 되는 지역 차원의 대중운동을 형성하는 것은 당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또한 99년 이후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담지해 온 전국민중연대의 사실상 해체(한국진보연대의 출범)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를 확대·활성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외연으로서의 성격, 즉 제도권 정치적 지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는 사회운동(민중운동)이 자유주의 세력들의 코퍼러티즘적 통제와 노동자 분할 전략에 맞서 정규직/비정규직, 대공장/중소영세사업장, 남성/여성, 정주/이주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고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는 운동 전략을 통해 대중운동을 형성하기보다는, 87년 투쟁의 성과에 기대어 제도화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통해 사회적 합의주의·의회주의를 추구한 결과이다.
이러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실패의 배경에는 7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분석 능력의 결여가 있다. 특히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의 성격,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론적 공백 때문에 3저호황이라는 한국자본주의의 예외적 호황에 대한 우편향적 해석(종속약화, 자립화/개량화) 및 이에 입각한 급격한 우경화에 맞서는 데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제위기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고 이론적 모색들이 본격화된 98년까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혁신인가 신당인가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혁신이냐 신당이냐가 아니라, 지배 세력들의 노동자 분할 전략을 넘어서기 위한 대중주체·대중운동을 형성하는 것이다. 분할·배제되어 있는 노동자대중을 조직함으로써 새로운 대중운동의 활력을 만들 때에만 기존의 관성화된 운동을 혁신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심상정 비대위가 지역에 기반한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비공식노동자 등 대중주체·대중운동의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전조직적인 역량투여에 대한 구상 없이 그럴듯한 전략공천을 통한 총선 득표 전략에 머무른다면 설사 대선보다 높은 득표를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의 근본적 쇄신의 길을 동반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기층 조직에서 교육·조직·투쟁 사업을 결합시켰던 노동자운동의 역사적 강점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조직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 또한 여의치 않을 것이다. 신당 흐름 또한 진보정당운동, 대중운동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직화의 전략 없이 ‘종북주의 청산’을 되풀이하거나 당면한 생존을 위해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 선거 전략에 매몰된다면 스스로 비판한 민주노동당 운동에도 미달하는 더욱 강화된 ‘의회주의’나 ‘자유주의’로 전락할 뿐이다. 조급한 신당 창당과 생존 투쟁이 불러 올 ‘우향우’ 경쟁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대중운동을 재구축하기 위한 전략과 이념노선의 혁신’ 논쟁을 사회운동(민중운동)으로 확장해야 한다.

정당인가, 사회운동인가

오늘날 현실에서 목도하듯이 기층 대중들의 운동, 사회적인 역관계의 변화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제도정치에 들어간다고 해서 사태가 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라 국가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실정이고, 그 특징 중 하나가 초민족적 행정기구들과 연결된 행정권력의 영향력 증대와 의회권력의 쇠퇴라는 점에서 의회를 통한 개혁의 관철은 이전보다 훨씬 더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 서구의 ‘제3의 길’에서 보이듯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따라 관리주의와 합의주의, 실용주의와 중도주의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힘을 갖는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과 민중의 목소리를 대표하려는 시도 자체가 거대한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어설프게 제도정치에 발을 걸치고 감당할 수도 없는 자본주의 위기관리의 책임을 나눠 맡다가 제도정치의 정당성과 역량에 대한 대중들의 일반적인 불신에 휩쓸려 완전히 몰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제도정치 안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보인 ‘의회주의’적이고 ‘정책대안’적인 행태에 실망하여 대중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다시 정당을 중심으로 운동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논점 역시 제기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중들의 삶과 투쟁의 조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합법적인 의사결정 및 집행이 이루어지는 영역이자 사회적 갈등이 대표되는 제도정치를 우회한다면 사회운동은 주변화될 것이며, 투쟁의 진전이 번번이 제도정치의 장벽에 막히는 데서 생기는 사기저하 때문에 사회운동도 쇠퇴하고 말 것이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동반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사회적 갈등의 대표 일반을 억압하고, 부르주아들은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는 세력과의 타협에서 노골적인 배제·추방 입장으로 선회했으며, 제도 내외부의 압력에 따라 많은 제도정치세력들이 중도주의로 투항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려는 세력이 제도정치 안에서 의미있는 존재감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만일 제도정치 안에서 사회적 갈등 일반이 배제된다면 이는 사회 전체에 커다란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미쳐 결국 제도 외부에서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는 세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간 자체도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문제는 사회운동의 성과를 소진시키는 방식의 정당이 아니라 사회운동을 활성화함으로써 사회적 역관계의 역전을 앞당기는 정당, 출세주의와 당의 우경화와 직결되는 조급한 집권전략에 매몰되기보다는 당의 근본이 되는 ‘대중운동’을 재건·형성하는 운동을 목표로 하는 정당, 그 정당의 노선과 강령, 활동방식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정당과 사회운동 전체를 아우르는 헤게모니 전략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 정당과 사회운동의 고유한 역할 및 공동의 작업을 밝히는 과정의 일환일 것이다.
정당과 사회운동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 같은 헤게모니 전략을 위해서는 정당만을 특권화하고 사회운동을 주변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정파·현장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주체들의 수평적인 연대연합운동이 필수적이다.

‘반신자유주의 연대연합운동-당-대중운동’의 새로운 질서 재편이 필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87년의 투쟁성과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합의주의’와 ‘의회주의’로 상징되는 제도화 전략의 실패라면, 그것을 대표하는 ‘민주노총-민주노동당-한국진보연대’를 대체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대중운동의 재건과 급진화,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 재편이 절실하다.
이러한 운동 재편을 고려할 때 87년 이후 남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주류 세력인 자민통운동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자민통 세력은 내부의 다양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주의 개혁의 실패와 남한자본주의의 급속한 신자유주의화’라는 조건에서 ‘북한사회주의 역량’을 염두에 둔 민족민주정당(민주노동당), 민족민주전선(한국진보연대)을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와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와의 코리아연방 구성을 통해 ‘민중 중심의 경제구조’를 형성한다는 전략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미국과의 핵 협상을 통해서 자국의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획득한다는 북한의 전략과 맞물려, 이러한 전략을 엄호할 수 있는 남한 내의 정치지형 형성과 정권 창출(자주적 민주정부)에 집착함으로써 자유주의 세력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동요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힘을 바탕으로 한 남한 주도의 경제통합을 목표로 추진되는 남북경협에 대해 적극적 지지의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사실상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로 수렴되고 있다. 하지만 중심국의 주변국에 대한 경제지원이 결국 민중적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종속적이며 불구화된 경제체제를 이식한다는 관점에서 남북경협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절실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지배 세력이 국가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가족주의 등을 통해 노동자대중에 대한 끊임없는 분할과 배제를 강화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민족끼리’와 같이 민족주의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자민통 운동은 오늘날 민중들의 저항의 언어로서의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한편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은 이러한 자민통 노선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물론 자민통운동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대선투쟁이 참혹히 패배함으로써 자중하고 있지만, 이후 민주노동당의 성격 전화와 민주노총의 재편으로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동당의 자민통운동의 문제가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동요라면 민주노총 안에서는 노사협조주의 혹은 어용세력과의 공조를 통한 집행부 장악의 형태로 패권을 유지하는 전략이 문제다. 향후 이명박 정부가 노사민정을 통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하고, 공공부문과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뉴라이트 운동 등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때, 자민통운동의 우경화 행보가 더 노골화될 수 있다. 또한 자민통과 범좌파 각각 내부의 다양한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판단의 시점에서는 ‘자민통’ 대단결 구도가 작동하는 우리 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전체운동에서 자민통운동과의 분리구축은 불가피하다. 그럴 때에만 자민통운동 내부의 분할과 급진적 분파의 성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대안 이념과 가치를 표방해야 하는가? 과잉축적과 이윤율의 하락에 따라 세계자본주의는 장기불황, 즉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부르주아들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체계의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자본주의의 투기화와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노동자 대중의 삶을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주의 세력 간의 정권교체가 반복되고 있으나 이들의 정책은 체계의 구조적 위기라는 조건에서 신자유주의로 수렴되었다.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 계급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으며, 이는 금융화를 심화시켜 경제의 투기화와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노동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을 통해 착취를 강화한다. 따라서 현재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지속되는 한에서 노동자, 민중들의 전반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 이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에 기초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권리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성적 차이를 확대할 권리, 지적 차이를 축소할 권리, 나아가 생태파괴-질병-전쟁으로부터의 안전(지속가능한 발전-건강-평화)에 대한 권리가 실현되는 대안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대안 이념을 현실화하는 이행 과정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사고하는 ‘국제주의’의 관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여성, 생태 등의 ‘의제’를 발굴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조의 변혁이 가능하도록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전략과 실천의 문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이념과 노선은 역사적 사회주의에 미달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민주의 노선은 우리의 대안일 수 없다. 사민주의 정당 노선은 이미 중심부 국가에서 ‘제3의 길’, ‘새로운 중도’의 이름 아래 신자유주의 노선을 수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 사회적 합의의 기구 및 협약들은 외형적인 절차와 형식은 이전 사민주의적 유형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실질적 내용은 노동의 열세라는 지형 하에서 자본이 헤게모니를 쥐고 신자유주의적 개혁들을 관철시키는 ‘공급주의 코퍼러티즘’이나 ‘경쟁력을 위한 코퍼러티즘’으로 전화되었다. 또한 정치영역에서의 정당 활동과 노조의 경제투쟁이라는 양 날개 전략은 현장의 계급형성을 방기하고 상급단위로 책임을 넘겨버리는 관료주의를 배태시켜 왔다는 점에서 우리의 전략이 될 수 없다.
민주노동당 혁신세력, 신당추진 세력, 변혁적 계급정당 혹은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세력들 모두 향후 당 건설 운동을 사고함에 있어서 87년 이후 남한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전략에 대한 진지한 평가―여기에는 민주노총-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자기운동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를 바탕으로 부르주아들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노동자 분할전략에 맞서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대중운동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운동의 재편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당 건설 논의가 당 추진세력들만의 세력결집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전국적 연대연합 운동의 조직틀을 구성해야 하며 이를 중심으로 ‘민주노총’과 ‘당’ 운동 전반의 틀을 새롭게 구축한다는 전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는 당 건설 세력들만의 폐쇄적인 논의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당 건설을 직접적인 목표로 하지 않거나 당 중심의 운동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과 함께 개방적인 논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현실의 운동 재편 논의를 진행할 때 각 운동세력들이 주의할 점이 있다. 87년 이후 지난 20년의 운동의 실패를 반성하면서 다수파 전략을 비판하고 새로운 전략과 운동질서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다수파 전략에 대한 비판으로 그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비롯한 현실의 많은 투쟁과정에서 목도하듯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투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현재적 조건에서 민주노동당(신당세력 포함)을 제외하고 지역운동을 사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입장을 갖고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세력들 중 상당수는 현실의 역량 상 운동에 대한 영향력이 미약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 건설 흐름들이 일부 세력결집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역적 정치역량을 구축하기 위해서 현장 활동가들이 당으로 활동을 이전해야 한다고 결의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활동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현장 대중 활동의 축소로 귀결되지 않도록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운동(민중운동)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다양한 운동노선과 경향들을 고려할 때, 기존의 정파갈등을 상대화하고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수평적 연대연합운동을 구축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당 운동을 특권화하고 사회운동을 주변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당과 사회운동 모두가 개방적으로 지배 세력의 신자유주의와 노동자분할 전략에 맞서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는 ‘대중운동’의 재건·형성을 목표로 하는 연대연합의 운동을 구축하고, 대중운동에 대한 공동의 개입과 실천을 전개하며, 정당과 사회운동 전체를 아우르는 헤게모니 전략을 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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