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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3.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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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노동자 조직, 1864-1997: 역사의 무게와 현재의 도전[1]

드미트리스 스테비스(Dmitris Stevis) | 콜로라도대학 사회학과 교수
<font color="##003366">이 글은 장기간에 걸친 국제노동자 운동조직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노동자 국제연대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 국제노동자 운동조직의 역사를 일별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글의 길이를 고려하여, 2회에 걸쳐 연재할 것이다. 참고로 인터내셔널의 역사에 대해서는 [이론]3호를, 인터내셔널과 마르크스주의의 연계에 대해서는 [역사적 맑스주의](새길), [맑스주의의 역사](민맥)을 각각 참조할 수 있다. <편집자주></font>


<b>들어가며</b>

신자유주의적 통합의 심화, 냉전의 종결, 그리고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당들의 쇠퇴나 타협 등은 국제 노동 정치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세계적이며 지역적인 노동자 조직들의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이러한 상황전개를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한계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의 일반적인 목표는 국제 노동자조직들이 현재 처해 있는 곤경을 거시적인 역사적 맥락에 위치짓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다음 사실 즉, 현재의 노동자조직들이 기본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약간의 혁신을 필요로 하는 건지 아니면 국제 노동정치에는 근본적으로 부적합한 것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이론적으로 국제 노동자조직들은 우리에게 풍부한 기록들을 제공해주며, 그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와 국가-사회의 수준에서 국제적 관계를 탐구할 수 있다. 두 가지 가정이 이러한 연구기획에 지침이 된다.

첫번째 가정은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승리와 비극의 역사에 능동적인 참여자였다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적 특징들과 동학들은 고유한 구조적 궤적을 그리지만, 그 과정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형태 속에는 역사적으로 우발적 요소들이 포함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는 해방을 추구하지만 국가가 이를 억압한다는 마니교식 태도의 희생양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회이며, 어떤 종류의 국가인지 질문하는 것은 언제나 현명한 태도이다.

두번째 가정은 활동가들과 노조는 조직화와 조직의 문제에 직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 노조주의와 사회형성적(societal) 정치를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환기한다고 해서 조직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현재 생명력있고 해방적인 정치가 열망해야 할 어떤 종류의 조직형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직적 문제를 노동자 정치의 중심에 둘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주로 국제 노동자 조직의 형성에 기여해왔던 역사적 요인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국제 노동자 조직들의 다양한 시기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를 위해서, 나는 두 가지 차원에 집중하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연구할 것이다. 편의상 한가지 차원은 정치적 차원으로, 다른 것은 조직적 차원으로 명명하기로 하겠다.
노동자 정치는 그것이 자본주의와 국가 체계에 대해 어떤 형태의 접근방식을 취하는가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대략적으로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에 우호적이거나, 자본주의를 개혁하려 하거나, 그것을 변혁하려 한다.

그러나 이 각각의 범주들은 다양한 역사적 선택들을 포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개혁은 사회민주주의적이거나 코포라티즘적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변혁은 생디칼리즘적이거나 혁명적 사회주의일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노동자들은 국가와 국가체계의 본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한다. 어떤 노동자 이데올로기나 운동은 국가나 국가체계를 자신이 토착민이라는 이유로 지지해온 반면, 다른 노동자 이데올로기나 운동은 국가나 국가체계를 타국의 개입에 대한 보호물로 인식한다. 또 다른 노동자 이데올로기나 운동은 국가의 우선성을 거부하거나 사회 조직의 대안적인 단위를 제시함으로 해서 국가를 초월하려 한다.

노동자의 내부정치 역시 중요하다. 내부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나는, 노동조합과 그것의 역사적인 정치적 동맹 사이의 관계와, 노동자 운동과 노조 사이의 내적 관계를 분석할 것이다. 노조-정당 관계는 역사적으로 국내적인 그리고 국제적인 노조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국내의 조직적 특성들도 국제적 조직에 대한 선호에 영향을 미쳤다.

조직적 차원에서 노동자 조직은 회원과 자율성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회원이라는 관점에서 국제적 조직은 배타적 대표권을 가진 단일한 전국 조직들로 구성될 수도 있고, 복수의 전국 조직들로 구성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이나 단체의 참여가 일국적인 '문지기 조직'에 의해 매개되는 국제 조직은 간사회적(intersocietal) 조직으로, 반대로 개인이나 단체를 직접적으로 허용하는 조직을 초사회적(transocietal) 조직으로 부를 수 있다. 앞으로 보겠지만 회원 선별기준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회원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노동자 조직의 자율성에 대한 역량이다. 어떤 경우에 조직의 주요한 목표는 구성된 단위가 전국적이건, 더 하위의 단위이건간에 그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일 수 있다. 보통 이러한 것들을 약한 연합(weak confederation)이라 부를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가간 정치를 사회의 수준에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경우 조직은 구성된 단위에 대한 연맹적(federal) 권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 또 다른 경우에 조직은 모든 단위들에게 똑같이 제한된 자율성만을 제공하는 초단위적 권력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조직들은 일원적(unitary)이라 부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특정한 정치적, 그리고 조직적 선택은 그 길을 함께 한다. 그러나 이러한 친화성이 불변적인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전술적이거나 전략적인 이유로 인해 정치적 전망과 조직적 전망이 분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친화성에 대한 빈번한 탈구현상이 있어왔다는 점이다. 그 예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율적인 노동자 조직을 선호했으나, 볼셰비키는 그렇지 않았다. 제3인터내셔널은 일원적인 조직이었지만, 그 구성원은 간사회적(intersocietal)이었다.

이 논문의 목적상 나는 국제 노동자 정치의 주요한 유형들을 가장 잘 반영하는 형태로 다섯 가지 시기를 구분할 것이다. 각각의 시기에서 나는 그 시기를 특징짓는 정치적, 조직적 요소들에 집중하면서, 그 시기의 주된 조직을 둘러싼 논의들을 부가시킬 것이다. 그 결과 국제 노동자 정치의 총괄적인 설명은 제공되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 시기는 1880년 말까지, 즉 새로운 인터내셔널(이후에 제2인터내셔널로 알려진)과 최초의 국제노동총국(International Trade Secretariat, ITS)이 결성되기 전까지의 시기이다. 여기서 논의는 제1인터내셔널에 집중된다. 두번째 시기는 1890년부터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와 함께 제1차 세계전쟁의 종결까지, 그리고 세계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분리까지의 시기를 포괄한다.

ITS의 등장과 국제 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Trade Unions, IFTU)의 등장은 이 시기의 주요한 결과이다. 세번째 시기는 1919년 IFTU의 재건과 1945년 세계노동조합연맹(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 WFTU)의 형성까지의 시기이다. IFTU를 느슨한 연합체 이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종국적인 실패의 이유들이 이 시대에 중심적인 문제이다. 네번째 시기는 냉전의 절정기인 1945년부터 1960년까지를 다룬다. AFL-CIO의 헤게모니적 역할이 이 시기를 특징짓는다. 마지막 시기는 네번째 시기 이래부터 현재까지로 노동자 운동의 역사적인 분열의 느린 치유와 몇몇 국제적 노동자 조직의 출현이 특징적이다. 이 시기에는 국제적 노동이 직면하고 있는 내외적 도전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이 주어진다.


<b>국제 노동자 조직, 1864-1997</b>

<b>1889년 이전의 노동자 조직들: 경쟁하는 국가간 정치와 자본주의

▶제1인터내셔널의 형성과 그것의 성격. </b>

1864년 9월 28일 수많은 국내, 이민, 국제 조직들은 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를 만들었는가? 18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급진적 정치 이데올로기, 숙련 노동자들의 공유된 경험, 그리고 대륙에서의 파업방해 노동자들의 수입에 대한 영국 조합의 고민 등에 기인하는 국제적 행동의 요구와 기획들이 존재했었다(Braunthal 1967a, Part 1).

따라서 제1인터내셔널은 과거 다수의 시도들에 기초하여 형성되었고, 상이한 정치적 조직적 선호를 지닌 조직들을 규합했다. 제1인터내셔널은 육체 노동자들에 의해 제안되었지만, 그들에게로 제한되지 않았으며, 정치적 집단들이 노조와 다른 것으로 거부되지도 않았다. 제1인터내셔널의 참여집단은 두 가지 형태로 구성되었다. 개인들은 단체를 형성할 수 있었고 제1인터내셔널에 직접 가입할 수도 있었다. 조합이나 당과 같은 조직 역시 가입할 수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그 조직들의 성원들은 제1인터내셔널의 성원이 되었다. 제1인터내셔널의 규약은 일국적인 조화와 통일을 도모하고자 했으나, 그것을 강제하지는 않았다.

제1인터내셔널의 지도력은 총평의회(Governing Council)에 의해 발휘되었는데 총평의회는 매년 대회에서 선출되었다. 총평의회는 제1인터내셔널의 민족적 기초를 반영했지만, 각 국가의 성원들에 대한 특정한 비율과 같은 규정은 없었다. 유사하게 각 단위들은 연차대회에 참여할 대표를 선출했고, 그 대표들은 총평의회를 선출했다. 총평의회의 책임은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쟁점에 대한 정보교환과 토론을 위한 회의를 준비하고, 노동자 계급정치와 운동을 위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점차 총평의회는 위원을 축출할 권리를 포함하여 회원에 대한 권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1871년 파리 꼬뮌에 대한 심각한 의견 불일치와 더불어 총평의회의 권력에 대한 경쟁은 제1인터내셔널이 1870년 초에 분열된 두 가지 주요한 원인이었다.

일반적으로 총평의회에 주어진 일정한 연방적 권력과 더불어 제1인터내셔널의 회원 규정은 초사회적인(transocietal) 것이었다. 그렇다면 조직의 초사회적 성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나는 이미 몇 가지 중요한 이유들을 암시했다. 첫번째 이유는 개별 사회로의 접근을 통제할 수 있는 일국 차원의 노조나 당의 중심이 부재했다는 데 있다. 두번째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주의를 포함한 당시 주요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국가간 정치와 자본주의의 성격에 대한 계속적인 논쟁에 있다. 세번째 이유는 국내적, 국제적 정치가 노동자 운동 내에서 강력한 경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의미한 국내적, 국제적 노동관련 입법의 부재에 있다. (국내 노동정책은 de Vries and de Vries, 1948. 참조, 1차 세계전쟁 이전의 국제 노동정책에 대한 정보는 US Bereau of Labor Statistics, 1919. 참조).

노동관련 국내 정책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을 때, 그것들은 국제주의적인 요소들에 대해 거의 실천적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제1인터내셔널은 오늘날 몇몇 생태주의적 조직들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제한된 수단 내에서, 제1인터내셔널은 국제적인 행동에 개입했고 노동자 조직의 형성을 도모했으며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신망과 영향력을 가졌고 노동자의 의제에 국제주의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우리는 제1인터내셔널의 고유한 특징들을 설명해주는 역사적 요인들을 인지해야 한다. 분명히 제1인터내셔널은 노동조합에 대해 우위성을 가지는 정당의 권력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와 국가의 역할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전국적인 노동계급을 대표하고자 하는 정당이나 조합은 부재했고, 노동정책 또한 부재했다. 30년 뒤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b>1890년대부터 제1차 세계전쟁: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 경쟁하는 노동자 정치

▶변화하는 국가 정책: </b>

1890년 초반에 이르러 몇몇 전국적인 노조 중앙(연맹)이나 당이 자리를 잡았고, 국가는 국내 노동정책을 고려하거나 수립하였다. 국내적으로 증가한 의회의 역할은 노동자들의 행동이나 선거에 부가적인 기회들을 제공했다. 국내 정치의 이러한 변화는 노조나 당이 국내 정치를 개혁하는데 힘을 쏟도록 했다. 이는 전혀 근거없는 전략은 아니었다(Tilly 1995; Espring-Anderson 1990).

국제적으로 국가들은 노동입법을 협상하기 시작했다. 이 의제에 관한 첫번째 국가간 회합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national)의 첫번째 모임 일년 후에 요청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1차 세계전쟁 이전까지는 의미있는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정책 결정에 대한 노조의 직접 참여가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다는 사실이다. 대신 노동관련 대표는 노조와 전혀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정책 전문가들에게 넘어갔다. 이들 전문가들은 곧바로 노동입법을위한국제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Labor Legislation)와 국제노동사무소(International Labor Office, ILO)를 설립했다.

<b>▶사회주의적 정치: </b>

노동자 정치의 관점에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진전은 대륙의 급진주의 내에서 독일 사회민주주의 당의 헤게모니가 형성된 것이었다(Braunthal 1967/1961; Cole 1960; Lorwin 1929, ch. 3). "새로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1899년에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되었지만,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제1인터내셔널의 후신으로 사고되었다. 이러한 조심성으로 인해 1890년대 동안 국제 사회주의자들의 접촉은 주로 국제적 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1900년에서야 비로소 국제 사회주의 사무국이 설립되었고, 제2인터내셔널은 강력한 연합주의(confederalism)를 향해 나아갔다. 사무국은 자원이나 중요성 면에서 상당히 성장했으나, 제2인터내셔널의 정기적인 총회가 여전히 정치와 중요성의 주요한 장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은 노조, 단체, 개인들을 포괄하려 하기보다는 정당들의 조직을 지향했다. 프랑스처럼 정당이 없는 나라는 예외였겠지만 대체로 하나의 국가에서는 오직 하나의 당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조직의 간사회성(intersocietalism)은 사회주의적 원칙과 관련한 정치적 조화를 달성하고 국내적 분열을 방어하고자 함이었다. 그 결과 제2인터내셔널에 참여하는 조직들은 경쟁 조직들을 배제할 수 있었다. 실제로 몇몇 조직들은 주로 경쟁 조직들을 배제하겠다는 이유로 제2인터내셔널에 가입했을 수도 있다.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한 정치적 특징은 국내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를 개혁한다는 사회주의 정당들의 프로그램적 목표에 있다.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목표는 점차 국제 정치를 변형할 어떠한 사고도 굴복시켰다(Amstrong, 1942). 1차 세계전쟁의 재앙을 볼 때, 이러한 해석은 대체로 정당화된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제2인터내셔널 내의 각 나라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정당 내에서도 주요한 차이점들이 발견된다(Wheeler, 1977 참조. 이는 아래에서 다룰 1차 세계전쟁 이전의 시기에도 주요한 자료가 된다)

<b>▶국제 노동자 정치의 조직적 형태들: </b>

사회민주주의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국제 노동자 조직들의 기원은 제2인터내셔널보다 훨씬 다양하다. 영국의 직종-노조주의자(trade-unionist), AFL 숙련공-노조주의자(craft-unionist), 프랑스 생디칼리스트, 그리고 다양한 기독교적 무정부주의적 노동자 조직들은 1차 세계전쟁 이전에 국제 노동자 조직들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했다. 국제노동총국(ITS)으로 알려진 것처럼 1889년 이후에 몇몇 산업 부문적 국제 노동자 조직들이 형성되었다(Rutters 1990; Macshane 1990; Neuhaus 1982; Lorwin 1929, ch. 4). 1914년까지 28개의 총국이 설립되었고, 그 중 24곳이 독일에 근거지를 두었다. 이 총국들은 압도적으로 유럽적이었지만, 1904년 이후 미국 노조도 점차 가입하기 시작했다.

총국들은 직종에 상관없이 조직되었고, 일국적인 노동자 조직들을 규합했다. 하나의 나라에서 하나 이상의 조직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되었다. 가장 잘 조직된 총국 중의 하나인 인쇄노동자들의 총국이 보여주듯, 회원들은 강력한 연맹적(federal) 조직을 건설하는 것을 주저했다(Reberieux 1990). 이는 강한 총국이 독일 노조의 헤게모니를 훨씬 강화시킬 것이라는 영국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AFL의 불안을 반영한 것이었다.

1차 세계전쟁 이전기간동안 총국은 노조주의자들이나 정치적이지 않은 활동가들에게만 한정된 정보 교환소였다. 활동지원은 예외적이었으며, 투쟁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제운수연맹과 같은 몇몇 총국들은 독일 노조주의의 조직적 편향을 반영하여 더욱 중앙집중화되고 합리화되었다. 그러나 총국은 초기부터 줄곧 스스로를 연맹적이거나 초사회적인 노조로 간주하지 않았다.

총국의 부문적 성격과 정당에 대한 제2인터내셔널의 편향은 1901년 국제노조중앙총국(International Secratariat of Trade Unions Centers, ISTUC)의 설립을 낳았다. 그 총국은 사회주의적 노조 뿐만 아니라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이나 미국의 AFL 같이 당이 없는 노조들이나 영국 노조처럼 약한 당을 가진 노조들을 수용하기 위해 제2인터내셔널의 정치적 조직적 그늘 아래에 있었다. 이 총국은 모든 나라에 하나의 회원조직만을 두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주의적 지향의 노조들에 우호적인 반면 급진적인 생디칼리스트에게는 불리한 것이었다.

1차 세계전쟁까지의 기간 동안 총국은 1913년 국제노조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Trade Unions, IFTU)으로 전화하면서 노조에 관한 정보 수집과 유통 그리고 정보와 의사소통의 주요자원 창출에 집중했다(Sassenbach 1926; Schevenels 1956, chs. 1 and 2; Milner 1990, ch. 4). 1차 세계전쟁 기간에 이들은 다국적 스텝들을 확보했고, 정보 수집과 유통은 정례화되었으며, 파업지원 기금이 모아지고 분배되었다. 그러나 IFTU는 대륙(특히 독일)으로의 파업 방해 노동자들의 수입에 대한 어떤 일반 전략도 세우지 않았고, 부상하는 국제 노동입법에 대응하는 입장을 정식화하지도 않았으며, 이주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권리와 분쟁을 조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IFTU의 조직적인 강화에 대한 반대는 주로 AFL과 그 지지세력인 영국 노조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이것이, 이처럼 약한 조직은 국제 노동자 정치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공통적인 이데올로기나 노동자 담론을 형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담론과 실천을 협소화하는 방식으로 국제 노동자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IFTU 내에서 공통의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강한 조직을 형성하는 것보다 더 도전받는 것이었다. 영국 노조나 AFL은 사회주의나 독일의 노조-정당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총국은 프랑스와 미국의 생디칼리즘에는 충격을 주었다(이러한 운동배경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oss 1976; Brissenden 1919). 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효과를 미쳤다. 하나는 생디칼리스트들의 더욱 전투적인 초사회성을 무디게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급진적 생디칼리즘을 배제함으로써 국내적 세력 균형을 변형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Milner 1990).

프랑스 생디칼리즘은 전쟁을 막는데 그들의 국제적 정책을 집중했다. 그들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했을 때 노조는 군사적 기구들을 마비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독일 자유노조와 사회민주주의 역시 같은 입장을 밝혔지만, 하나의 행동계획을 형성하자는 프랑스 생디칼리스트들의 요구에는 저항했다. 조직 내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궁극적 승리는, 사회민주주의의 노조-당 접근도 영국과 AFL의 노조주의도 따르지 않았던, 가장 거대한 유럽적 중심의 영향력을 제거했다(비교를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 Mommsen and Husung 1985).

세계산업노동자동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이 총국에 가입해서 그와 관련된 위신을 획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껏 미온적이었던 AFL은 총국에 가입신청을 냈다. 이들은 사실 IWW보다 더 늦게 신청서를 냈지만 애초 규약과 달리 1911년에 이들의 가입이 허용되었다(Milner 1990: 113-114). 이러한 선택은 유일한 초사회적 노조들의 조직이라는 노선이 채택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좌절된 선택지들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국내적 국제적 정책의 대안적 전망을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초사회적 노조라는 통념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초사회적 노조는 가능한 하나의 선택지였다. 생디칼리즘이 유럽에서 가장 두드러졌지만, 멕시코, 칠레, 호주에 지부를 세워 초사회적 노조를 만들려 한 것은 미국의 IWW이었다.

좌절되고 세력을 얻지 못한 것은 IWW의 초사회적 노조 전략뿐만 아니라, 프랑스 생디칼리즘의 이데올로기적 초사회성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국제 노동자 조직의 성격은 노조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적 차이뿐만 아니라, 노동자 정치에 있어 증가하는 국내 영역의 역할에 영향을 받는다.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왜 국제 노동자 조직이 연맹적인 성격을 띠는 것에 반하여 간사회적인 성격으로 끝이 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외적인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로, 이러한 방향을 향한 운동의 증거가 존재한다.


<b>전간기: 경쟁하는 세계 정치 그리고 개개</b>

전간기는 점증하는 국가주의의 시대로 간주된다. 이 시기는 국가 자율성이 증대한 시기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국가적 변형의 뿌리에 사회적 변형과 갈등이 존재했던 시기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소련, 이탈리아, 독일, 다수의 남미국가, 스페인 그리고 이외의 많은 국가들은 그들 자신에 내재된 원초적 수단이 아니라 승리하는 사회적 세력들의 통제하에서 강력해졌다.
이 기간 동안 노동자에 대한 국가정책의 영향력은 국내적, 국제적 정책의 채택에서부터 노조의 강제적 해체나 코포라티즘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국제 정치의 양극화는 노동자 조직들에게서 외적인 것만큼이나 내적인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한 노동세력 중 몇몇과 관련 조직들이 출현했고, 이들이 AFL을 제외한 모든 경쟁 상대에 손상을 입힐 정도로 노동자 정치에서의 경쟁이 치열했다. 노동은 그 스스로 비극을 펼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b>▶IFTU의 재건: </b>

제2인터내셔널은 전쟁 동안에도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1차 세계전쟁으로 해체된 후 사실상 결코 복구되지 못했다(Braunthal 1980/1971).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는 노동 세력에게 제2인터내셔널이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국제적 임무를 남겨놓았다.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노동 세력은 남겨진 공백을 채우는 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1차대전의 분열로 인해 이 러한 임무는 더더욱 어려워졌다(Horne 1991, 특히 초. 8; Van der Slice 1941).
IFTU는 "역사상 최초로 개최된 국제 노동조합 총회"(Lorwin 1929, 191)였던 1919년 암스테르담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구성되었다. 조직적으로 IFTU는 회원 국가들의 전국적 중앙들을 결합시켰다. 어떤 개별노조도 가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활동은 일국 노조의 규모를 반영하는 일정한 수의―그러나 AFL이나 AFL의 영국 동맹세력이 요구했던 것처럼 각국 규모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자들의 정기적 회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에 덧붙여, IFTU는 회원국가 사이의 의사소통을 개선하고, 집단행동을 조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 의제를 추진하기 위한 조직적 형식들을 갖추었다. 의사결정은 만장일치가 아니라, AFL이 선호하는 다수결에 의해 행해졌다. 회비는 대륙쪽 노조가 요구했던 것보다 낮았는데, 이는 AFL과 그 영국 동맹세력의 반대 때문이었다. 요약하면, IFTU는 그 이전의 조직들보다 더욱 연맹적인 조직체로서의 전망을 가졌다. 그러나 내부 반대로 인해 사회주의자들이 바랬던 것처럼 그렇게 강력해지지는 못했다.
전쟁 직후에 IFTU는 노동운동 내에서 헤게모니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적극적이었고, ILO에 노동세력의 대표로서 위치를 가졌으며, 전후 복구에 대한 입장 개진과 헝가리와 폴란드의 정책에 대한 대응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대체로 IFTU는 로윈(Lorwin)이 명명했던 것처럼 '개량주의적 국제주의'를 표상한다(Lorwin 1929, 395). 1919년 ILO의 창립은 사회주의와 '초국가주의적' 전망을 분쇄했다. 1922년 세계 노동 운동의 분열은 사회주의적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적 조직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전망을 해체시켰다. 1926년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시기에 그러한 분열은 이미 너무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b>▶우파의 정치와 ILO의 창립: </b>

국가간(interstate), 사회간(intersocietal) 노동자 정치의 가장 중요한 진전은 ILO였다. 몇몇 유형의 국제 노동자 조직들은 전쟁 전의 사회주의와 노동자 조직의 의제에 기반해 있었다. 그들은 노동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노동의 이익을 대표하고 증진할 수 있는 강력한 연방적 조직을 사고했다. 전후 노동자 정치의 급진화와 혁명적 사회주의의 호소는, 정부로 하여금 승리한 사회주의 우파, AFL영국 노조 그리고 노동 전문가들과 협력하에서 노동이 하위파트너가 되는 덜 강력한 조직을 형성하도록 했다(역사적 배경은 다음을 참조. Shotwell 1934; Van der Slice 1941). 최종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IFTU가 반대하였는데, 이는 그 결과가 정책목표와 노동 입법을 통과하고 이행할 역량의 관점에서 볼 때 수준이하였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자들과 IFTU는 비록 ILO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만 그것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Schevenels 1956). 그러나 ILO의 삼자 협약과 제한된 권리부여는 세계적 코포러티즘의 자문적인 형태를 고착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LO는 국제정부기구들 사이에서 매우 기괴한 형태로 유지되었고, 따라서 1차 세계전쟁 이후 국제적 조직을 향한 운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줄 논쟁과 갈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b>▶좌파의 정치:</b>

1919년 봄 공산주의 제3인터내셔널의 형성은 전간기 정치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제3인터내셔널은 정당과 노조 양자를 포괄하는 조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정당들의 조직이 되었고, 정당의 절대적 우위 관계에 기반한 정당-노조의의 관계를 취했다.
제3인터내셔널의 비참한 궤적은 그 조직적 대담성을 모호하게 만들어 왔다. 제3인터내셔널은 일원적인 조직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모두 보여준다. 국내적, 국제적 정치에서 제3인터내셔널의 영향력은 증대했다. 그리고 제3인터내셔널은 결국 그 응집력으로 인해 소비에트 국가의 권력에 종속되었다.
애초에 공산주의 당과 노조주의자들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국제 노동자 조직을 구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기존의 민족적 조직을 해체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기존 조직들을 급진화시키고 운동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생디칼리즘에 대한 대응으로, 다른 한편으로 노조내의 경쟁 경향들의 활동을 받아들이지 않은 IFTU에 대한 대응으로, 공산주의자들은 1921년에 국제노동조합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 of Trade and Industrial Unions)를 구성했다(Losovsky 1920, 1976).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 동안 적색국제노동조합(the Red International Labor Union, RILU)은 유럽 노조 운동을 놓고 IFTU와 경쟁했다. 그리고 그것은 IFTU를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에 중대한 손상을 입혔다.
1920년대 중반동안 영국과 소비에트 노조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무산된 반면, 1928년부터 1934년 기간의 '사회파시즘' 전략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히틀러 독재와 인민 전선 전략의 개시 후에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국내적으로 약간의 성과가 있었다. 적색국제노조는 스스로 해체했으나, 우파의 득세는 독일과 스페인을 포함해 가장 중요한 조합들 중 상당수를 파괴했다.

2차 세계전쟁 이후로 넘어가기 전에 국제 노동자 정치에 있어 전간기 양극화의 몇 가지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유럽에서의 한계로 인해 공산주의자 조직은 세계의 나머지 지역으로 확장하고자 하였고, 다소간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점차 노동자 조직은 비유럽 국가들에서 형성되고, 이미 존재해 왔던 비유럽 조직들은 유럽 모델에 가까워졌다. 공산주의의 비유럽 세계로의 증대하는 영향력에 대한 대응으로 IFTU와 AFL 역시 지평을 확장했다. 그래서 1930년대 동안 우리는 점점 확장되고 경쟁적인 국제 노동자 정치의 정치적 지형들을 보게되는데, 이는 2차대전 후 지속되는 양상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정치적 불협화음과 더불어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양극화는 1920년에 국제기독교노조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Christian Trade Unions, IFCTU)을 낳았다. IFCTU는 가톨릭과 개신교 노조를 규합했고, 또한 스스로의 사무국을 설치했다. 전간기 동안 IFCTU는 두드러지게 성장했으나 IFTU나 RILU의 규모에 이르지는 못했다.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그러했듯, 나찌즘의 등장은 그들로부터 몇몇 주요한 노조들을 제거했다. <다음호에 계속>

<약자설명>
AFL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CGT (Confederation Generale du Travail)
CIO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
CTM (Confederation de los Trabajadores Mexicanos)
ECOSOC (Economic and Social Council of the United Nations)
ETUC (European Trade Union Confederation)
FI (First International)
ICEF/ICF (International Federation of Chemical and General Workers' Unions)
IFTU (International Federation of Trade Unions)
ICFTU (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IFCTU (International Federation of Christian Trade Unions)
ILO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ITS (International Trade Secretariat)
IWW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ORIT (Inter-American Regional Workers' Organization)
RILU (Red International of Labor Unions)
WCL (World Confederation of Labor)
WFTU (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
WTO (World Trade Organization)
SSI (Second Socialist International)
주제어
노동 국제 이론/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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