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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1-2.86호
첨부파일
86_분석_권미란.pdf

건강권을 넘어선 재산권, 이에 맞서는 의약품 접근권 투쟁

권미란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필연적 경험들: 글리벡, 푸제온 그리고 스프라이셀

1980년대 말에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마련되면서 1990년대 보건의료운동은 건강보험제도의 운용과 보장성확대를 주된 의제로 삼았다. 1995년에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2001년에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시작되면서 서비스개방 등에 대처하게 되었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이 의료 보장성마저 위협한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01년 ‘기적의 약’이라 불리던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의 비싼 가격 때문에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부터이다. 노바티스가 전 세계에 동일하게 글리벡을 한 알에 25,000원(월 300~750만 원)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자들은 ‘약값인하’와 ‘보험적용확대’, ‘글리벡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 허여’를 요구하며 1년 반이 넘도록 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피해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2003년 1월 복지부는 노바티스의 요구대로 글리벡 가격을 한 알에 23,045원으로 결정했다. 대신 노바티스는 약값의 10%를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강제실시는 불허결정이 내려졌다. 특허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사익과 공공의 이익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로 특허권자만 독점 생산할 수 있던 약을 제3자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당시 인도의 6개 제약회사가 글리벡과 똑같은 약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 중 낫코라는 제약회사는 한국의 환자들에게 글리벡과 똑같은 약 비낫을 1달러, 즉 글리벡의 1/20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공급할 것을 약속했었다. 특허청은 강제실시에 대한 국제적, 국내적 법적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실시가 청구된 지 1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특허청이 글리벡 약값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자마자 불허결정을 내린 의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밝힌 바대로다. 그는 후보시절 글리벡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에 대해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복잡한 측면이 있다’(한겨레 21 제438호, 2002년 12월 12일)며, 초국적 제약사와 미국의 압력, 무역보복을 당하면서 환자의 생명을 책임질 수는 없다는 뜻을 에둘러 밝혔다. 비낫이 글리벡 약값의 1/20도 안 되는 가격에 공급됐던 점이나 글리벡의 한 알의 생산 원가가 최대 760원밖에 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글리벡 한 알 약값 23,000원 중 22,000원이 노바티스의 순이익이 되는 셈이다.
5년 후 백혈병환자들에게 같은 시련이 닥쳤다. 스프라이셀은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백혈병환자의 치료에 쓰는 약이다. 약제비가 급격히 증가하여 건강보험재정의 30%를 차지하게 되자 2006년 복지부는 약값 통제정책인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마련하였다. 약제비적정화방안 시행 후 첫 사례로서 스프라이셀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스프라이셀의 비싼 가격도 한 몫을 했다.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는 스프라이셀이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이므로 글리벡의 약값을 기준으로 결정해야한다며 연간 5,000만 원을 요구했다. 이 약값 결정과정은 환자생명을 담보로 4,000만 원, 5,000만 원 판돈을 거는 노름판이나 다름없었다. ‘약값을 결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환자들의 질문에 돌아온 답은 ‘약값은 오직 신(神)만이 알 뿐’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2008년 5월 7일 약제급여조정위원회는 스프라이셀 가격을 연간 약 4,000만 원으로 결정하였다. 표면적으로는 20%의 가격인하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약제급여조정위원회가 스스로 밝혔듯이 약값 결정기준은 없으며 복지부가 알아서 ‘제약사가 공급거부를 하지 않을 수준을 고려해 결정’해준 것뿐이다. BMS의 제법특허 US2006/0004067에 따라 합성을 해보면 스프라이셀과 같은 약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최대 1,890원이다. 스프라이셀 1년 치 약값 4,000만 원 중 3,800만 원 이상이 BMS의 순이익이 되는 셈이다.
또 다른 사례는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이다. 2004년 11월 보건복지부는 약값을 연간 1,800만원으로 정하고 보험적용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로슈는 연간 3,200만원을 요구했다. 복지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로슈는 노바티스처럼 약값이 싸다며 공급을 하지 않았다. HIV 감염인들은 푸제온 약값인하와 공급을 요구하며 싸웠다. 이에 대해 로슈는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해당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약업신문, 2008년 5월 22일). 즉 로슈는 구매력이 없는 환자는 푸제온을 이용할 자격이 없다며 공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약을 먹고 건강할 ‘권리’를 ‘자격’으로 둔갑시키는 제약회사에 대해 복지부는 사기업의 ‘상품’을 강제로 공급시키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복지부는 의약품, 의료보험관련 법상에는 의약품의 공급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음을 인정했다. 환자, 시민사회단체는 특허법 106조 1항 2호에 따라 복지부 장관이 푸제온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동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특허법이 복지부관할이 아니라며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약들이 이토록 비싼 이유는 기적의 약이거나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팔릴 수 있는 최대의 가격을 정하고 그것을 전 세계에 관철시킬 수 있었던 제약회사들의 뛰어난(?) 상술과 그것을 뒷받침해준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그리고 이를 적극 받아들인 한국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특허로 부여된 독점: TRIPS부터 FTA까지

보건당국의 약값통제는 물론이거니와 약이 필요한 환자의 요구를 모두 묵살할 수 있는 제약기업의 강력한 무기는 독점체계에 있다. 그러한 독점을 부여하는 것이 현재의 의약품특허이다. 처음에 특허는 사회(혹은 국왕)가 마음대로 허여하거나 박탈할 수 있는 자격으로 인식되었다. 미국은 특허를 최초로 헌법에 명시한 국가인데(1787년), 미국의 최초 특허 심사위원이자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은 1813년에 “발명은 본래 재산이 아니다. 사회는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에 독점적 권한을 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회의 의지와 확신에 의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거기에 어떤 이도 주장이나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특허권은 재산법과 연결되었다. 1983년 미 연방순회법원은 “어느 법령에서도 특허는 독점으로 기술되지 않는다. 특허권은 단지 ‘재산’처럼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권리다. 특허를 ‘독점을 규제하는 일반적 법칙에 대한 예외’로 부르는 것은 단지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고 선언했다. 법원이 특허가 재산권이라는 견해를 채택한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첫째, 정부의 권한이 특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는다. 둘째, 재산권 침해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사법적 기회에서 이전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셋째 특허권에 대한 의회, 법원 그리고 대중의 인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재산권 개념은 독점은 물론 독점으로 높아진 가격을 정부가 규제하는 것에 대한 기업의 대항권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약값은 재산권이다. 국가가 함부로 깎거나 훼손할 수 없다’고 한 것이나 복지부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사기업의 상품을 강제로 공급시키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제약회사의 독점력의 세계화를 보장한 결정판은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다. TRIPS협정은 1986년에 지적재산권을 무역대상에 포함시킨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의거, 1995년에 출범한 WTO체제에서 채택된 협정 중의 하나다. 1986년에 우루과이라운드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농산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부문은 세계 무역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루과이협상을 주도했던 Quad그룹(미국, EC, 일본, 캐나다 등) 중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처음에는 지적재산권을 포함시키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지적재산권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을 뒤엎은 것은 컴퓨터 회사 IBM과 제약회사 화이자였다. IBM과 화이자는 1980년대에 레이건 정권이 개발도상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를 바꾸어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통상정책을 전개하도록 강한 입김을 넣었다. 두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보호를 강제할 수 있도록 무역제제를 가할 수 있는 GATT를 이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루과이라운드가 출범하기 6개월 전에 화이자는 미국의 13개 초국적기업을 부추겨 지적재산권위원회(IPC)를 결성하였다. IPC는 유럽 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에 지적재산권의 국제협정안을 민간에서 만들 것을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미국, 유럽, 일본의 경제단체로 구성된 ‘지식소유권에 관한 미, 일, 유럽 민간3극회의’를 발족시켰다. 민간3극회의는 TRIPS협정의 시안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각국정부를 설득하였다. TRIPS협정은 10년에 걸친 화이자의 작품인 셈이다. 제약산업은 불과 10년 만에 전 세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지만 더 많은 이윤을 위해 TRIPS협정보다 더 강한 특허보호를 원한다. 그러나 매번 WTO각료회의가 전 세계 민중들의 투쟁으로 무산되는 등 TRIPS협정을 바꾸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자 미국은 WTO보다는 양자협정인 FTA를 서두르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미국정부는 TRIPS협정보다 강력한 특허보호기준을 요구할 뿐 아니라 의약품정책이나 제도에 간섭할 수 있는 조항, 각국의 의료정책이나 제도로 인해 손해를 보았을 때 기업이 직접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FTA협상안에 담았다. FTA는 양자협정이지만 양국의 약속으로 끝나지 않고, 도미노게임처럼 다른 나라의 특허권을 강화시킬 것이다. 최혜국 대우 원칙을 포함하고 있는 FTA의 속성상 협상 대상국들과 초국적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다시피 더 높은 수준의 FTA를 요구할 것이다. 또 한 번의 ‘세계 규칙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제약기업들은 특허권을 혁신성에 대한 보상이라며 그러한 보상이 없이는 신약개발의 동기를 얻지 못한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오히려 현재의 특허제도는 제약회사가 기술발전의 방향을 왜곡하고 기술 확산을 막는 것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로 변질되었다. 더군다나 지적재산권을 획득하면 공적기여로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사유화할 수 있다. 한 예로 미극 국립보건연구소에 따르면 1995년 당시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리던 5가지 의약품의 연구개발과정에서 77~95%가 공적부문의 기여로 이뤄졌다.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연구자들이 신물질을 찾아내는 어려운 일을 해놓으면 제약회사는 그 중 상품이 될 만한 것을 골라 로열티를 주고 산다. 그리고는 특허를 얻고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도 임상시험지원이나 세금공제 등의 혜택을 받는다. 제약회사가 신물질을 고르는 기준은 기존보다 치료효과가 더 기대되는가, 그 신물질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는가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가다. 그래서 ‘무시되는 병’(neglected disease)이란 말이 생겨났다. 새로 개발된 돈 되는 약이라고 해도 기존약보다 치료효과가 항상 더 나은 것은 아니다. 2001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보고서에 따르면 1989년~2000년 사이에 미국에서 허가된 신약 중 기존치료제보다 ‘나아진’ 효과를 보인 약은 24%에 불과하다. 제약회사는 더 나은 치료를 위한 의약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유사의약품(me-too drug) 개발이나, 기존 약물의 사소한 변화에 치중한다. 이러한 사소한 변화에 대해서도 특허를 얻을 수 있도록 각국의 특허제도를 바꿀 것을 강요한다. 기존 약보다 효과가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특허로 인해 유일하기 때문에 신약은 기존 약보다 비싸다. 제약회사는 세계 의약품 시장의 80%이상을 차지하는 북미, 유럽, 일본에서 팔릴 수 있는 최대의 가격을 요구한다(IMS Health 에 따르면 2007년에 세계 의약품 매출 중 북미가 45.9%, 유럽 31.1%, 일본 9.4%,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가 8.85%, 라틴아메리카가 4.8%를 차지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그 약을 사 먹을 수 없다 해도 제약회사는 개의치 않는다. 여기서는 애초부터 돈벌이를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세계규칙을 깨기 위한 질병과 국경을 넘는 연대

초국적제약회사의 독점적 권한에 맞서는 의약품 접근권 투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구호와 논리는 ‘이윤보다 생명’이다. 이 표현은 건강권이 재산권으로서 특허권과 충돌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현재 의약품 접근권 투쟁은 제약회사가 생명이라는 절박성을 내세워 돈벌이를 정당화한다는 점을 폭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명이 돈벌이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는 데 머물러있기도 하다. 제약회사가 재산권으로서 특허권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체제의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약품의 연구개발의 방향이 왜곡되고 생산과 분배에서 종속과 배제가 생긴 이유가 돈이나 기술이 없어서도 아니고 공적기여를 제약회사가 독점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라면, 어떤 대안을 상상할 수 있을까? 태국에서의 의약품 접근권 투쟁과정은 글리벡, 푸제온, 스프라이셀 투쟁을 경험하고 한미FTA타결을 맞이한 우리에게 의약품접근권투쟁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준다.
태국의 HIV감염인과 활동가들의 에이즈치료제 확보투쟁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정부는 TRIPS협정이 발효되기 전인 1992년에 미국정부의 압력으로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했다. BMS는 1992년에 에이즈치료제 바이덱스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여 1998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1998년 태국국영제약회사(GPO)는 강제실시를 통해 바이덱스와 같은 약을 싸게 공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의약품특허재조사위원회는 과도한 약값이 공중보건의 이해에 반할 경우 강제실시를 촉구하도록 권고했다. 그러자 미국 무역대표부와 미국 제약협회는 강제실시 폐지, 의약품특허재조사위원회 폐지 등을 요구하며 태국의 최대 수출품인 보석과 목재에 대해 무역제제를 가하겠다는 위협을 하였다. 태국의 HIV 감염인들은 미국의 활동가들과 연대하여 미국의 압력에 대항하고, 스스로 강제실시청구를 했을 뿐 아니라 BMS와 태국지적재산권부(DIP)를 상대로 특허법위반소송과 특허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살고자 하는 열망과 지속적인 투쟁은 2004년 2월에 BMS가 바이덱스에 대한 특허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들의 투쟁은 의료보장체계 속에 에이즈치료를 포함시켰다. 태국에서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된 것은 2002년 국민건강보장법이 제정되어 일명 30바트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부터다. 태국의 의료보험은 공무원보험, 고용보험, 30바트 의료보험으로 구성되어 있고, 6,200만 명의 태국 국민 중에서 각각 500만 명, 850만 명, 4,850만 명에게 혜택을 보장하고 있다. 30바트 의료보험은 국공립 병원에 한번 방문할 때마다 30바트(약 천 원)만 내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지금은 30바트조차도 내지 않는다. ’30바트 의료보험‘은 흔히 탁신 정부의 성과로 평가되지만, 전국민의료보험 초안을 만든 것은 보건의료운동진영이다. 바이덱스 사건에도 깊이 관여하였던 소비자 재단은 2001년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모아 30바트 의료보험의 모태가 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여러 노동조합과 보건의료운동단체가 이 운동에 참여했으며 에이즈운동진영 역시 깊이 관여하였다. 그러나 2001년 4월부터 전국민의료보험을 시범 실시했을 때 태국정부는 에이즈치료제를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태국의 HIV 감염인들은 에이즈치료제를 싸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그 방법은 태국국영제약회사를 통해 직접 생산하는 것이었다. 에이즈치료는 세 가지 계열을 같이 사용해야 내성을 줄이고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그리하여 2002년 5월에 태국국영제약회사는 세 가지 에이즈치료제를 한 알로 만든 복제약 GPO-vir을 생산하게 되었다. 일부 HIV 감염인들에게 치료지원을 해왔던 치료접근프로그램은 GPO-vir의 생산으로 인해 2002년에서 2004년 사이에 40%의 예산 증가만으로 8배 이상 확대되었다. 비용을 절감하게 되자 태국정부는 2004년부터 ‘HIV/AIDS감염인을 위한 에이즈치료제접근프로그램’으로 확대하였고, 2005년 10월부터 전국민건강보험체계에 에이즈치료를 포함시켰다.
2006년에는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으로 하여금 에이즈치료제 콤비드의 특정제형에 대한 특허와 특허신청 모두를 취소하게 만들었고, 태국-미국 FTA협상을 중단시키게 만들었다.
전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에이즈치료가 가능해졌지만 50만명이 넘는 생존감염인중 에이즈치료제를 필요로 하는 이들 모두에게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GPO-vir에 부작용이나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위해 새로운 치료제를 공급해야 했다. 에이즈치료제를 구입하기위한 예산이 2001년에 약 1000만 달러에서 2007년에 1억 달러 이상에 이르러 6년간 10배 이상 증가했다. 2차 치료제의 비용은 1차 치료제보다 평균 14배 이상 비싸다. 에이즈치료제 구입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질병관리부는 2004~2005년 동안 제약회사들과 에이즈치료제의 가격인하를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더불어 2005년 4월에 특허의약품 가격인하를 위한 협상실무그룹이 구성하여 1년간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태국정부는 2006년 4월에 어떤 약에 대해 강제실시를 발동할 것인지 검토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다. 2006년 11월 30일 태국에서 최초로 몽콜 보건장관이 두 가지 에이즈치료제(스토크린, 칼레트라)와 심장질환치료제(플라빅스)에 대한 강제실시 계획을 발표하고 2007년 2월에 정부의 강제실시 이행에 필요한 모든 공식 협상을 책임질 위원회를 승인하였다. 강제실시로 생산된 세 가지 치료제는 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공적보험을 통해서만 공급하고, 태국국영제약회사가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인도의 제약회사로부터 복제약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 치료제들은 2~10배 이상의 가격인하효과로 인해 건강보험적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어 2008년 1월에 페마라(유방암치료제), 글리벡(백혈병치료제), 타세바(폐암치료제), 탁소텔(폐암 및 유방암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노바티스는 태국에서 연간 가구 소득이 5500만 원 이하일 경우 글리벡을 무상공급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노바티스가 무상공급을 중단할시 강제실시를 지속하기로 했고, 나머지 항암제는 태국국영제약회사에서 생산이 불가능하여 인도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태국정부가 강제실시를 고수하고 확대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미국정부와 제약협회는 물론 세계보건기구까지 태국정부가 불법으로 해적질을 하고 있다며 국제적으로 압박을 가하였다. 그리고 복제약의 질을 문제 삼았다. 애보트는 태국에서 의약품을 철수하는가하면, 약값을 인하하여 강제실시를 철회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HIV 감염인들은 가장 직접적으로 각종 압력에 대항하였고, 그간 연대해왔던 전 세계 보건의료, 에이즈운동단체들과 강제실시의 정당성을 피력하였으며, 국제공동행동을 펼쳐 국제적 지지를 모아냈다.
태국의 경험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HIV 감염인들이 초국적 제약자본의 독점에 파열구를 낸 당당한 주체였으며 오랜 투쟁과정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일주체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점이다. 제약회사의 선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언제든지 공급의 불안정성을 담보해야하는 약가인하가 아니라,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을 파괴할 수 있는 투쟁전술을 택했다.
태국의 경험이 준 교훈은 초국적 제약회사 앞에서 환자의 처지는 백혈병환자든 에이즈환자든 태국에 살건 미국에 살건 모두 같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질병의 종류와 국경을 초월하여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연대가 필요한 이유는 우선 제약회사가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기술의 발전과 공유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연대는 더욱 절실해진다. 뿐만 아니라 세계규칙의 변화를 통해 특허권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제실시를 못하게 하려던 미국정부와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항하기 위해 국제공동행동을 벌였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런 투쟁의 성과는 그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태국에서의 콤비드 특허반대투쟁은 모든 국가에서 콤비드 특허를 취소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태국정부가 강제실시를 발동하자 애보트는 40여개국의 개발도상국에서 칼레트라의 가격을 인하했으며, 머크도 최빈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스토크린 가격을 인하했다. 이에 고무된 브라질정부도 스토크린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표하게 되었다. 태국정부가 강제실시를 발동하는데 있어서 인도 제약회사의 치료기술을 백분 활용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제 한국이나 선진국시장에서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투쟁전략이 필요하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한 경험은 대부분 최빈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쟁취한 것들이다. 콤비드의 특허가 취소되었고 애보트나 머크가 에이즈치료제의 가격을 인하했지만, 이는 한국이나 선진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환자들의 투쟁과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면 초국적 제약회사는 그제야 선심을 쓰는 것처럼 최빈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가격을 내리거나 특허권을 양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최빈국이나 개발도상국은 애초에 시장으로서 공을 들이지 않았고, 이윤은 선진국시장에서 창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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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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