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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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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 노동기본권이 쟁점이다

하반기 노동법 개정과 노동자운동의 대응 방향

박준형 | 공공노조 정책기획실장
노사정위 공익위원안 제출로 현실화된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지난 7월20일 노사정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소위원회에 복수노조 교섭창구, 전임자 임금지급 관련 노동법 개정에 대한 공익위원안이 제출되었다. 이 안은 향후 노동부를 통해 정기국회에 상정될 전망이다. 알려진 바대로 공익위원안은 사실상 정부안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이번에 발표된 안은 큰 변화없이 입법안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1997년 노조법에 규정됐지만 1999년, 2003년, 2006년 세 번에 걸쳐 연기된 후 2010년부터 시행키로 한 바 있는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제도가 실제로 도입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공익위원안은 서로 다른 이유로 두 노총과 자본 측이 모두 반대하고 있다. 법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너무 심한 누더기라는 것이 관련법 학계의 중론이지만, 노동부는 ‘노사정 합의가 안 되면 공익위원안으로 국회에 상정한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첨부기사 참조)

공익위원안 주요골자

1) 복수노조 관련

○ 창구단일화에 기초한 다수대표제(창구단일화 시 사용자 교섭의무 부담)

1단계> 노조 교섭창구의 자율적 단일화
- 복수노조가 연대로 교섭대표단을 구성하거나 2개 이상의 노조의 과반수 연합으로 교섭대표권을 갖는 방안 등은 전적으로 노조의 자율 사항

2단계> 노조의 자율적 단일화 실패 시, 사업장 내 과반수 조합원 대표 노조가 교섭대표가 됨.

3단계> 노조의 자율적 단일화 실패, 과반수 조합원 대표 노조 부재 시 노동위원회 등의 관장 하에 조합원 선거를 통해 과반수 지지 노조가 교섭대표권 보유. 다만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에는 결선투표

☞ 복수노조의 교섭대표는 공정대표 의무를 가지며, 체결된 단체협약은 여타의 다른 노조의 조합원에게도 적용됨.
☞ 교섭대표노조는 전체 노조의 협약의 유효기간을 포함한 협약체결권 보유
☞ 조합원 선거시 조합원수 산정은 노동위원회에서 결정

○ 교섭단위
- 사업장별로 교섭을 하되, 노동조합의 신청이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교섭 단위를 세분화 가능(즉, 같은 기업이라도 지역별로 사업장마다 임·단협을 벌이게 되고, 이에 따라 협약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형태임)


2) 전임자 관련

○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현행 노조법 24조 실효)

○ 유급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 time-off) 시행
- 원칙적으로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하되, 예외적으로 아래의 6개 업무에 대하여 노조활동을 했다고 인정되면 유급 근로시간 면제 인정
△ 고충처리업무
△ 사업장 내의 산업안전관련 업무
△ 단체협약체결과 관련된 업무
△ 법원, 노동위원회 등 권리구제기구에 참여하거나, 그와 관련된 업무
△ 노사협의회를 포함한 노사공동기구와 관련된 업무
△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

○ 300인 미만 노조재정지원 마련
- 별도의 특별법 제정을 강구


원래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의 부칙5조와 6조, 즉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적용유예 조항의 시한 만료에 따라 법 본조항 5조(부당노동행위)와 24조(노동조합의전임자)를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제출된 공익위원안은 이런 범위를 넘어 사안의 성격자체를 변화시킨다. 단순히 적용이 유예된 법안이 더 이상 유예되지 않도록 한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부가 자신의 의지대로 노사관계의 관행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아래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쟁점은 단지 복수노조 허용이 아니라 다수대표제에 의한 교섭창구 단일화로, 전임자 임금문제는 노조의 현장(사업장)조직의 위상문제로 변화, 확대된다. 물론 문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애초 1997년 법 도입 이후 법 적용이 유예되면서 부칙조항이 추가된 사정이 관련되어 있다. 2006년 유예 과정에서 부칙은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를 함께 도입하는 것으로 기정사실화했다. 정부와 자본의 ‘유능한’ 전략적 대응의 결과다. 논의과정 전체가 철저하게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고 유리하게 쟁점을 설정하는 과정이었다. 이에 비해 노동계의 대응은 ‘전략’이 부재한 것이었다. 또한 이번 공익위원안의 주요한 골자는 미국의 노동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노사관계를 미국식으로 개편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역시 한미 FTA와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개정법의 핵심은 ‘복수노조 허용’이 아니라 ‘다수대표제’에 의한 ‘교섭창구 단일화’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도입이 예상되는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서 설립된 복수노조가 다수대표제 방식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한다. 기본적으로 복수노조로 인해 자본의 교섭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해주기 위한 장치다.
공익위원안은 복수의 노조가 자율적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고, 자율적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에는 과반수 노조에 대표권을 부여하며, 과반수 노조가 없거나 확인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주관한 조합원 선거를 진행해 과반수 노조를 결정한다. 이 노조에만 교섭권을 부여한다. 요컨대 ‘승자독식’이다.
이 과정에서 애초에 복수노조 허용의 취지로 논의되었던 단결의 자유는 완전히 형해화된다. 어용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에서 민주노조를 설립하기 위한 시도라든지,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동자의 가입과 단결을 모두 막고 있는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노력도 사실상 별 의미가 없어진다.
법적 노동3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구성된다. 세 가지 권리는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그 일부라도 보장되지 않으면 전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도입 과정에서 노동3권의 적용범위가 첨예한 쟁점이 되었던 것도 이런 사정이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소수노조의 경우에는 단체교섭권이 박탈된다. 구체적으로 이번 공익위원안에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단체교섭권의 박탈에 따라 단체행동(파업)도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법안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교섭과 협약체결은 다수 노조가 독점하지만, 쟁의행위 결의는 소수노조를 포함한 전체 조합원의 투표로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체행동권도 박탈된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으로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보장된 단결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된다.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산별노조 지부와 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신규노조를 설립하고, 교섭권을 보장받고 있는 현재 상태와 비교해보면, 복수노조 허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노동3권은 후퇴한다. 신규노조의 경우 교섭대표 결정을 위해 조합원 명부를 공개해야하기 때문에 조합원 개개인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파괴공작에 노출되고 조직화가 어려워진다.
미국에서 연방노사관계위원회(NLRB)가 진행하는 노조대표권 인증 선거 절차가 진행되는 사례를 참고하면 몇 개월의 시간이 이 과정에서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간 동안 단체교섭이 진행되지 않으면, 사용자는 적대적인 노조를 흔들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신규노조인 경우에 사용자의 이런 지연작전은 노조를 파괴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복수노조 허용에도 불구하고 어용노조 사업장에서 민주노조 설립이나 미조직사업장에서 신규조직화는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다수노조라고 해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개정방향은 다수노조, 소수노조를 가리지 않고 노동3권을 제약한다. 다수노조라고 하더라도 쟁의행위에 대한 제약이 심해져 단체행동권이 크게 제약된다. 또한 다수노조라고 해도 사용자나 소수노조의 이의가 제기되면 다수노조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사용자는 시간을 벌게 된다.
한편 교섭창구 단일화의 범위도 문제가 된다. 두 가지 방향에서 그렇다. 첫째, 사업장 안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다(교섭창구 단일화의 수평적 범위). 법안은 창구단일화의 범위를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사업 또는 사업장’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국에 소재한 기업의 한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인사, 노무 관련 사항을 처리한다고 할 때 이 공장에서 다수지만 기업 전체로는 소수인 노조는 교섭권을 갖는가? 혹은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직종에 대해서만 다수를 점하는 노조는 해당 직종에 대한 사항에 교섭권을 갖는가? 또는 전국적인 규모의 시설관리용역업체에 형식적으로 소속되었지만 원청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교섭창구 단일화 범위는 원청사업장인가, 아니면 하청 시설관리용역업체 전체인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하나의 사업’에서 일하므로 공동(산별)교섭단을 구성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함께 교섭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결정은 노동위원회가 관장하는 것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노동위원회가 사실상 노동부의 산하기구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방적으로 자본에 유리한 방식으로 교섭단위 구획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섭권 박탈을 매개로 노동3권 전체가 침해될 것이다.
둘째, 초기업노조의 교섭권 문제다(교섭창구 단일화의 수직적 범위). 산별노조, 지역(일반)노조와 같은 초기업노조의 경우에도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할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형태, 조직형태와는 무관하게 자본의 입장에서 편리한 대로 교섭창구를 설정한다는 의미다. 산별노조 전환 추세에도 불구하고 실제 노조운영은 초기업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기업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섭의 분권화를 심화하게 된다. 결국 기업을 넘어선 보다 일반적인 이해를 노조운동에 반영하기 위한 산별노조, 지역(일반)노조와 같은 초기업노조운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합법적으로 회피하고 반노조 행위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절차가 된다. 또한 기업별로 노사관계의 분산성을 심화시킨다. 복수노조를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다수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3권을 축소한다. 따라서 다수대표제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허용은 기만이라는 점에서 반대해야 한다. 자율교섭을 전제로 할 때만 복수노조 허용이 의미가 있다.

전임자 임금지급 쟁점에서 노조 현장조직의 성격문제로

노조 전임자는 한국의 노조운동에서는 노조활동의 자원으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다. 한편으로는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지원이라는 성격, 따라서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개입이라는 성격이 있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측면도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노조의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서 쟁취해왔다는 점, 사용자의 노무관리나 사업장 내의 노사관계에 묶이지 않는 활동을 할 수 있는 활동가군을 형성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초기업적인 노조활동을 자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사업장별로 사용자에 의해 주어지는 전임자의 비중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며 노조가 이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임자 임금지급을 법으로 금지시키더라도 조합비의 적절한 인상 등, 노조가 조합원이 스스로 책임지는 재정자립을 통해 전임자 급여문제로 위협받지 않도록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하자.
법안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 개정에서 정부와 자본의 의도는 노조의 자주성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점에서 문제점을 살펴보자. 전임자 임금문제와 관련해서 공익위원안이 제시한 ‘대안’은 ‘유급근로면제’ 제도다. 사업장 안에서 노사관계에 필요한 시간이나 사용자를 대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노조 업무 시간을 유급으로 보장한다는 의미다. 그 예로 고충처리, 단체교섭, 노사협의회, 산업안전보건 활동, 노동위원회/법원 관련업무 등 6개 업무가 제시된다.
우선 이러한 유급근로면제는 조삼모사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자. 위에서 유급근로면제 대상으로 언급하는 내용은 대부분 이미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유급으로 하도록 정해져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익위원 안에서 진정으로 새로 만들어진 것은 무엇일까?
바로 노조전임자만이 아니라 유급 노조활동시간 전체를 규율한다는, 사업장내 노조활동에 대한 포괄적 제한, 사실상 근무시간 중 노조활동 금지다. 현재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정해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24조2항의 내용, 즉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이하 “전임자”라 한다)는 그 전임기간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된다”라는 조항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전체 근무시간을 모두 노조활동에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거나, 급여를 사용자로부터 직접 지급받지 않는 경우에는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공익위원안은 애초 전혀 언급된 바 없었던 근무시간 중 유급 노조활동시간 전체를 문제 삼고 있다. 사업장에서 자주적인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계기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이렇게 되면 노조간부들의 전임 활동은 물론이거니와, 회의참석과 같은 노조활동 전반, 그리고 심지어는 간부활동만이 아니라 조합원에 대한 노조교육시간, 총회와 같은 활동시간도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사업장 현장에서 노조활동을 거의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만들어진다. 노조간부에게 부여할 수 있는 활동시간으로는 기존 법안에 이미 있는 것 정도만 제시하면서, 오히려 새롭게 전면적으로 노조활동을 제약하려고 하는 안이다.
게다가 보장하겠다고 말하는 유급근로면제의 대상에도 주목해야한다. 이 항목들은 모두 사업장 내 노사관계에 국한된 영역이며, 노조활동이 아니라 사실상 사용자를 대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노조활동’ 보장은 법으로 배제하고는 ‘기업의 노무관리를 대행하는 활동’으로서 ‘노조의무’만 보장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복수노조 교섭창구 문제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노조활동의 기업별 분산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최소한 초기업노조 활동을 위해서는 유급근로면제 시간을 사용할 수 없으며, 별도로 노조가 비용을 부담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초기업노조는 물론 각 상급단체(산별연맹, 민주노총 및 각 지역본부)나 외부연대단체에서 노조 전임자가 활동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노조활동의 기업 내 몰입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더구나 노조 간부활동이 유급근로면제를 중심으로 재편되면, 고유의 노조활동은 자연스럽게 쇠퇴하고 사용자를 대리하는 업무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노사협의회와 같은 비노조 작업장 조직이 노조를 차츰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노동운동의 전투성의 근거였던 노조의 현장장악력은 크게 침해되고 노사협의회가 노조를 대체하게 될 수 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결정의 번거로움을 생각해보면, 노사 모두 노사협의회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총 일부에서도 노사협의회 ‘활용’을 검토할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맞물려 작업장 조직을 노조가 아닌 것으로 대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특히 법적인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도 불구하고, 사업장 안에서는 ‘업무협조’와 같은 방식으로 단체협약에 근거하지 않은 전임자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이다. 노조의 전임자는 아니지만 ‘노조업무’를 볼 수 있도록 인사조치하거나 업무분장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전임자처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도 일부 사업장 노조에 존재했던 이런 방식은 노사관계가 비적대적일 경우(말하자면 ‘담합적’인 경우)에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가 악화될 경우, 노조가 사용자에 대해 자주적으로 활동할 경우 언제든지 사용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철회될 수 있다. 따라서 노조가 이러한 방식으로 전임자를 확보하려는 시도를 확산시키고, 이것은 다시 노조의 사용자에 대한 종속을 깊어지게 만든다.
물론 서구의 산별노조, 특히 독일의 경우를 생각하면 사업장 단위로는 직장평의회와 같은 조직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노조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직장평의회를 사실상 노조가 장악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산별교섭과 산업별 교섭의 관행, 법제화가 이미 이루어진 독일과는 달리 한국의 산별노조는 법제도적인 보장도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아직은 내부적인 통합도 달성하지 못한 ‘무늬만 산별노조’ 상태다. 따라서 노사협의회와 같은 협의기구가 노조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노조 활동을 기업 안으로 가두고, 산별노조와 같은 초기업적인 노조활동의 발전과 기업을 넘어선 단결을 제약하게 될 것이다. 전임자 임금지급을 위한 비용부담을 이유로 산별노조와 같은 초기업노조활동에 대해서 후퇴하여 기업별 조직, 기업별 활동으로 돌아가려는 원심력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편 사업장 안에서 소수노조는 유급근로면제조차도 보장받지 못한다. 노사협의회에 대해서 규율하는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근참법)에서는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이하 “근로자위원”이라 한다)은 근로자가 선출하되,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대표자와 그 노동조합이 위촉하는 자로 한다.”고 정한다. 따라서 고충처리, 노사협의회 등과 관련된 유급근로면제도 다수노조만 사용할 수 있다. 소수노조는 현장활동이 더더욱 힘들어진다.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특별법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재정지원과 함께 ‘노사교섭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위원회가 단체교섭의 사적 공적 중재를 선호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업장 교섭에서 쟁의행위를 억압하고 ‘노사화합’을 촉진하는 ‘컨설팅’으로 예상된다. 소규모 사업장 노조의 교섭지원이 주로 산별노조나 상급단체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조에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업장별 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재정지원의 경우도 노동부, 한국노총, 경총이 함께 설립한 ‘노사발전재단’과 같은 기구를 통해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는 공익위원안이 제출되면서 철저하게 다른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노조 간부와 조합원의 노조활동 전반을 법으로 제약하는 문제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대응하자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법 개정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관한 법 시행을 계기로 노사관계 전반을 정부와 자본의 의도대로 개편하기 위한 의도를 깔고 있다. 정부는 비열하게도 노동3권 보장을 위해 논의된 쟁점들을 노조활동 제약을 위한 것으로 전환시켰다. 애초에 논의되었던 명분과는 달리 헌법에 보장한 노동3권을 제도적으로 제약한다거나, 노조의 현장활동과 노조활동의 영역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별노조, 지역(일반)노조 운동과 같은 초기업적인 노조활동을 제도적으로 제약하고 노조활동을 기업 안으로, 그리고 기업 내 노조 활동을 노사협의회와 같은 협의기구로 대체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런 과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노조운동은 기업 내의 협소한 이해를 대변하는 이익기구로 퇴락할 가능성이 크다. 산별노조, 지역(일반)노조와 같은 초기업노조도 쇠퇴할 우려가 크다.
더구나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조합원 선거나 창구단일화 범위 판단 등에서 노동위원회가 개별 노사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법안에는 내용을 모호하게 정하고 구체적인 방안은 노동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면 노동위원회의 권력은 극대화된다. 이미 공공부문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필수유지업무 결정과정에서 노동위원회 권한 강화가 이루어진 방식과 같은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연방노사관계위원회(NLRB)가 교섭단위 결정에 전권을 휘두르고, 사업장단위 노조대표권 인증 선거 절차를 관장하는 등의 제도를 일부 모방한 것이다.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미국에서 시도되고 있는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 EFCA)의 제정은 오히려 노조 가입이 확인되면 NLRB가 주재하는 인증선거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개혁한다.) 이는 노사관계에 대한 국가 개입과 제도화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노무현 정권(초기)에서는 노사관계의 제도화를 위해 노사정 삼자협의기구와 산별교섭을 통한 포섭을 통해 코포라티즘적 노사관계를 시도하는 개혁을 시도했다면, 이번 이명박 정권에서는 노사관계에 대한 국가기구의 직접적인 개입과 노조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강화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많은 노조들이 이번에도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의 타협을 통해 법안이 연기되거나 혹은 실제 시행과정에서 유예제도 등을 통해서 법을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문제 각각에 대한 현대와 삼성 등 대자본 분파의 상이한 입장 때문에 법안이 다시 유예될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권의 노동정책을 볼 때 어느 때보다 법안 적용 유예 가능성은 낮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법 개정방향이 갖는 의도가 노사관계의 전반적인 재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에는 관망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또 일부에서는 이번 노사관계 법제도 개편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사용자와 적절히 타협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법안 개정을 통해서는 복수노조 허용에도 불구하고 아예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할 소수노조의 경우만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최근 경총의 입장에서도 보이듯 복수노조도 계속 금지하고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는 시행하는 ‘창의적인’ 방안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조운동은 우선 올해 하반기,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단순히 노조활동에 이런 저런 제약을 몇 개 더하는 것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계기로 밀어붙이는 이 개편은 노동기본권의 근본까지 건드리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조 운동의 비상한 대응이 요구된다. 게다가 이 투쟁은 법 개정이 된다고 해도, 그 이후 시행령 문제 때문에 6개월에서 1년 정도 후 시행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또한 각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가를 놓고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 투쟁은 이런 투쟁 전체의 첫 단추를 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쟁점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 있어 많은 노조활동가들은 ‘노조 이기주의’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주저한다. 물론 노조의 대응이 기존 노조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만이라면 그런 우려는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노조의 대응이 보편적인 노동기본권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때, 그러한 우려를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이 쟁점은 ‘복수노조’, ‘전임자’에 대한 것만이 아니며, 투쟁도 그러한 쟁점으로 제한되지 말아야한다. 노동3권을 침해하고 노조활동을 제약하려고 공격하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맞선 절박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힘찬 투쟁을 전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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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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