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9-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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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민주노총의 경제위기 대응 진단

박준도 | 노동위원장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층대중조직의 운동양상을 분석하고 노동자운동 스스로 내건 정치적 조직적 목표의 논리 정합성, 현실 적합성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위기에 따른 기업의 손실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지배세력들의 시도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힘도 대중운동에서 비롯되지만 더 나아가 오늘날 사회운동이 경제위기를 넘어 대안세계를 향한 운동으로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힘도 기층대중조직의 운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을 이끌고 있는 민주노총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물론 현실의 민주노총은 과거의 오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지금 당장 쉽게 극복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1997년 IMF 위기 당시 드러났던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목표의 부적합성, 실제 전개된 투쟁에서 계속되는 고립과 패배, 노동자계급의 단결보다는 도외시하며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현실 타협, 정파갈등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갈등, 정규직 비정규직 갈등의 심화 등.) 그럼에도 우리가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이 어떤 오류들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지, 비판적 쟁점이 무엇인지를 재확인하려는 것은 기층대중운동,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우리는 민주노총이 제시한 『2009 민주노총 요구와 과제』를 검토할 것이다. 또한 요구와 과제를 정식화하는 과정에서 실제 진행된 투쟁의 양상을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하반기 민주노총이 내건 반MB투쟁의 실질적 함의를 가늠해 볼 것이다.

민주노총의 2009년 대정부 교섭 요구안

2009년 5월 19일 고용위기, 지배세력들의 경제위기 책임전가 공세에 맞서며 민주노총은 다음 다섯 가지 대정부 교섭요구안을 제안하였다. 첫째, 실업급여 지급기간 및 지급대상 확대, 실업부조제도 및 청년고용의무제 도입 등 전 국민 실업안전망을 실시. 둘째, 비정규직 관련 악법(비정규직법 개악 안) 폐기,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제도 도입, 원청사용자성 확대, 차별시정제도 전면 개정 등 비정규직 관련 법률의 전면 재개정. 셋째, 고용유지지원금제도 확대운영, 적극적 해고회피 사업장 세제지원, 노사고용안정기금 재정지원, 사내유보금 특별세 징수 등을 골자로 하는 고용안정특별법 제정을 통한 일자리 공유(유지). 넷째, 최저임금 시급 5,120원, 한 달 1,070,080원 보장을 통한 최저임금 현실화, 최저임금법 개악 중단. 다섯째,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 명예회복, 건설노조 탄압 중단,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중단과 공적자금 투입 등 당면 노동현안 해결. 이렇게 대정부 교섭요구안에서 확인되는 민주노총의 2009년 제도개선 요구는 총고용 보장과 국민기본생활보장, 그리고 노동운동탄압 분쇄(반MB전선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2009 민주노총 요구와 과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자료집이다. 이하에서는 쟁점을 선별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총고용 보장을 위한 고용안정 특별법

『2009 민주노총 요구와 과제』에서 제 1과제는 총고용보장과 구조조정 중단이다. 민주노총은 이명박 정권의 일자리창출 정책을 비판하며 무엇보다도 공공부문 민간부문 할 것 없이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은 1997년 당시 민주노총이 탈법적 정리해고 철회, 노조의 인력감축 동의서 요구 철회, 재벌개혁을 요구하며 “경제민주화와 고용안정을 위한 총력투쟁 총파업”을 결의했던 것이나, 1998년 당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철폐와 부당노동행위 근절, 재벌해체 IMF 재협상을 요구하며 총파업 투쟁을 조직했던 것에 비하면 여러모로 미달한 것이다. 실제 진행되고 있는 (정리)해고에 대해 구체적인 비판도 없거니와 이를 쟁점화하기위한 경제위기 책임공방 계획(금융위기에 대응하는 지배세력, 사회제도 비판)을 전면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해고에 맞서는 총연맹 혹은 산별차원의 투쟁계획이 미약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위해 해고회피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도입을 요구한다. “기업의 경영상 긴박한 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노동시간 단축, 직업훈련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할 경우 이에 대해서 세제감면 및 직접 지원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의 개정과 한시적으로 고용안정특별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고용안정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고용유지지원금제도의 확대운영(6개월에서 1년으로, 비정규직에게까지 대상 확대, 금액은 통상임금 삭감분), 세제지원, 노사합의로 조성된 고용안정기금에 대한 재정지원이며,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599개 상장기업 사내유보금 10%(약36조)를 4년에 걸쳐 고용세로 징수하자는 특별세 징수 제안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제안한 고용안정특별법은 해고회피 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자는 것일 뿐, 해고 자체를 제한하는 제도도입을 촉구하는 내용은 아니다. 유인책만으로 개별기업들이 해고를 자제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에서 더더구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도입의 핵심은 사용자의 권한 제한이라는 사실은 공정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도 알고 있는 바다.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해고나 계약해지 권한을 강제적으로 제약해야 한다. 고용안정특별법은 여기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법안이다. 또한 6개월에서 1년으로 고용유지 지원 기간이 확장된다고 기업이 끝까지 해고회피 노력을 다할지는 알 수 없다.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는 기간만 연장한 것에 그치고 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용안정특별법은 실효성이라는 측면에서 제고해야할 점이 많다.
해고에 맞서는 총연맹 차원의 투쟁계획도 부재한 상황에서 고용안정을 위한 제도개선책이 이렇게 사용자의 관용을 촉구하는 수준이라면, 총고용 보장 문제는 결국 개별 단위사업장 차원의 노사 간 세력관계 문제로 넘어갈 뿐이다. 해고에 맞서는 노동조합운동은 다시금 단사 노조의 힘(교섭력)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교섭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노조(대공장 정규직 노조)나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해고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내유보금 10%를 특별세 형태로 환수하여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을 검토하자. 이러한 주장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고통분담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언뜻 합리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현재 신자유주의의 금융적 수탈구조에 대한 비판을 우회하며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잉여를 노동자가 어떻게 영유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전혀 고려치 않은 인민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사내유보금은 주식배당, 이자지불을 제외하고 남은 금액으로 기업에서는 재투자를 위한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현재와 같은 금융적 수탈이 노동자 대중의 임금 하락 경향의 기원인데도 이를 우회하고 정작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발상은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정작 세금을 부과해야 할 대상은 막대한 주식배당이 낳는 각종 금융적 소득, 이자 소득, 그리고 외환 차액으로 인한 자본이전 소득 등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사내유보금이 기업설비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투자나 채권투자 등 또 다른 금융적 투기수단이 되었다 하나 그것은 사내유보금의 사용내역 공개와 이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 강화로 주장되어야 할 일이지, 사내유보금을 나누어 고용안정기금으로 전용하자고 할 일이 아니다. 이는 노동자통제의 기본방향을 망각한 처사일 뿐이다.
물론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은 세금의 형평성 논리상 실제로 실현되기도 어려운 측면도 있다. (사내유보금은 부동산투자소득, 주식투자소득과 같이 전형적인 불로소득이 아닌 만큼 특별과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총고용 확대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앞서 고용안정특별법 제정이 총고용보장을 위한 것이라면 총고용 확대를 위해 민주노총은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150만 명 일자리를 나누기. 둘째, 100만 명 공공서비스 좋은 일자리 창출. 셋째, 200만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정규직화.
무엇보다도 쟁점은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150만 명 일자리를 나누자는 것이다. 먼저 이 주장의 핵심 목표가 ‘노동시간 단축’보다는 일자리 나누기(총고용 확대)에 있음을 분명히 해두자. 즉 경총 등 사용자 단체들이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다면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민주노총은 독일의 폭스바겐사 사례와 프랑스의 오브리법 도입, 일본의 노동년 단축 등을 사례로 꼽으면서 연간 노동시간을 2,362시간에서 2,000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제안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연장근로제한, 2주 이상 연차휴가보장, 휴일영업 제한, 교대제 개편을 촉구했다.
통상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유지 확대 사례로 독일의 폭스바겐사의 28.5시간 도입(하루 7시간 4일)과 프랑스의 오브리법 도입(주 35시간제)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독일의 폭스바겐사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유지 방침이 실제로 가져온 결과는 (동서독의 격심한 임금격차가 야기한 시간급 저하, 자발적인 노동시간 연장,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야기한 임시직화가 급격히 확대된 상황에서) 140가지가 넘는 작업시간표 작성과 그로 인한 노동시간 사회시간 분절화, 이질화, 개별화였고 그에 따른 노동자의 단결력 약화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노동시간은 비전형적 형태로 증가했고, 작업속도도 급격히 상승했다. 결과는 2-3년 사이 전체노동자의 25%에 이르는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작업장을 탈출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오브리법은 주 35시간 법을 일체의 임금삭감 없이, 그것도 자본가들의 공개적인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자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시행했다는 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사례다. 1998년 오브리법을 시행할 당시 프랑스는 이미 1987년과 1993년에 걸쳐 주 39시간 노동제 도입과 함께 ‘근무시간 선택제’와 같이 노동시간 변형을 허용했다. 사실 오브리플랜의 실제 목표는 노동시간의 전면적인 재조직화로 회사의 생산성 향상, 더 적은 시간에 동일한 노동을 하도록 촉진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서 제일 먼저 노동시간 계산의 기준이 바뀌었다. 이제 노동시간은 작업장에 있는 시간도 아니고, 통근시간을 포함하는 근무시간도 아니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실질 생산시간만이 노동시간이 되었다. 노동시간 변형제도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시간 신축화는 더욱 확대되었으며, 노동시간을 크게 단축한 프랑스정부는 노동자에게 임금인상을 자제시켜 결국 몇 년 후에는 실질임금을 하락시켰다. 35시간 노동주로 일자리를 늘어났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정작 시행된 다음해인 2001년에는 오히려 실업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은 노동시간 분절화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탈조직화만 목도했을 뿐이다.
이렇게 유럽에서 진행된 법정노동시간 단축(혹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은 노동신축화의 확대와 함께 ‘빈틈없는 노동의 확대’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실질노동시간 증대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처럼 원하청 구조가 확대된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대기업의) 일자리 증가가 아니라 저비용 하청의 증가로 이어질 뿐이고, 이는 도리어 실질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증대를 위한 또 다른 압박 요인이 될 뿐이다. 더구나 변형근로시간제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주도 아니라 노동년 단축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변형근로시간제의 도입을 촉구하는 결과를 야기할 뿐이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인가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인가 역시 허구적인 대립이다. 앞서 프랑스 오브리법 사례에서 보듯 설령 ‘임금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해도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임금인상 자제로 수 년 내 자본가는 실질임금삭감효과를 누릴 것이며, 노동자의 분절화로 실질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자본가의 의도는 손쉽게 관철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노동시간 증대를 위해 노동을 재조직하기 위해 지배세력들은 온갖 방책들을 다 내놓고 있는 가운데, 더구나 ‘실업의 조직화’라는 목표아래 노동신축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비판 없이 단순 계산법에 입각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책대안에 민주노총은 더 이상 역량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은 노동재조직화와 노동신축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다.

총고용 확대를 위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중소영세기업의 비정규직 200만 명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30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에서 2년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의 90% 정도를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2009년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1,200억에서 2조 5천억 이상으로 대폭 증액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게 2009년부터 2012년까지 18조 2천억 원을 투입하여 정규직화를 추진하면 비정규직 비율이 40% 정도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내용적으로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즉각적 시행(혹은 확대)을 촉구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기간제 노동자의 해고가 확대된다며 한나라당이 제기한 논란의 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현 비정규직 법안의 즉각적인 시행으로 정규직화를 확대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정규직 전환 지원금이라는 인센티브가 정규직 전환을 촉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경제위기상황에 내몰린 (중소)기업들이 정규직 전환 지원금만 믿고 비정규직 해고를 지양하여 정규직 전환을 실행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기업이 계약해지로 정규직화의 부담을 회피하거나 노동 감독이 허술한 틈을 타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 재계약을 맺거나 암묵적으로 해고를 하지 않을 뿐이다. 2009년 8월 30일자로 발표된 노동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7월 1일 이후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중 30%만이 고용조정(외주화, 계약해지, 다른 기간제 근로자로의 대체) 되었을 뿐 70% 정도는 고용을 유지하거나 재계약을 체결하고 일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해고대란설이 사실은 아니라 할지라도 비정규직 법안으로 정규직 전환이 촉구되었다고 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임금과 근로조건의 차이가 거의 없고, 근속연수가 짧기는 마찬가지여서 정규직 전환의 효과가 그다지 높지 않다. 더구나 현실에서 비정규직 근속연수가 늘어나는 것은 계약해지를 하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여서 이들이 실제 정규직 전환되었는지 여부는 실제 계약해지를 당했을 때 그것도 해당 노동자가 부당해고여부를 다툴 때나 확인된다. 이를 비정규직 법안의 효과에 따른 정규직 전환 사례로 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유예 논란은 2007년 시행된 비정규직 법안이 고용의 불안정화를 제어할 수 없으며 지배세력들의 생색내기 제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은폐할 뿐이다. 여기다 전환 지원금 규모를 늘려 빠른 시간 내에 2년 이상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것은 지배세력의 기만에 들러리 서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쟁점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정규직 법안이 정규직 전환은커녕 비정규직의 고용안정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거나 (무기계약직 전환 논란에서 확인되듯) 차별을 구조화하고 사각지대를 확산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쟁점은 그나마 차별시정의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차별시정신청권자에서 노조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전혀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 법안의 즉각적 시행 혹은 확대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고용확대를 도모할 수 없다.

경제위기 인식과 대안으로서 내수증대론

민주노총의 제도 개선 목표가 이처럼 노동권 방어라는 최소한의 목표에도 미달하는 것은 고유한 정세인식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윤진호 교수의 분석을 따라) 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개방화된 금융시장과 내수기반의 취약성을 지목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금융과 실물경제 양 측면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외부 충격에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나라들이 규제강화, 국유화, 보호무역주의, 정부개입 강화와 같은 정책수단으로 반신자유주의(?) 정책도입을 강화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이렇게 가야 하는데 이명박 정권은 이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다며 비판한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한 대안으로 고용창출 및 내수확대에 기반을 둔 선순환 경제구조 수립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출부진의 원인이 전 세계적인 소비 위축에 있는 만큼 수출지원보다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생존기반과 고용확대를 통한 구매력 창출이라는 내수확대로 정책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재정지원확대 → 고용창출 → 내수확대 → 경기 회생이라는 선순환 경제구조 수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 경제위기를 이윤율의 하락과 같은 구조적 원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소비위축에 따른 실물경제의 위기, 즉 시장 왜곡이나 분배의 실패라는 일시적 불합리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비롯된다. 자본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인상(고용확대), 소비진작으로 현 경제위기에서 결정적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며 설사 일시적으로 성공한다 할지라도 (2000년대 초반 한국경제 내수 진작의 거품이 빠졌을 때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겪었듯) 바로 그 순간 자본주의 위기를 다른 형태로 맞이할 뿐이다. 작금의 경제위기는 미국 등 중심부 국가의 이윤율 하락이라는 구조적인 동학 위에서 미국헤게모니의 금융세계화 시스템이 붕괴되는, 세계적 차원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조 사수와 노동운동 탄압 분쇄

이러한 정책 대안들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투쟁계획이나 교섭전략이 어디에도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취약해진 지도력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원인은 투쟁동력이 상실되고 (노사정 기구와 같은) 교섭 협약 틀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IMF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민주노조운동은 수세적 국면을 면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투쟁 의제가 협소화되고 노조 내 자기중심적인 실리주의가 확산되면서 민주노총의 투쟁동력은 단위사업장의 이해관계를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이것이 투쟁동력 상실의 기원이 된다. (총파업 실효성 논란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쟁점이다.)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 논의 당시 노사정협의에서조차 배제 당했던 뼈아픈 과거가 웅변하듯 민주노총은 이미 노무현 정권시절부터 정부의 교섭파트너로서 위상을 부정당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노동조합을 대화상대로 여기지도 않는 이명박 정권이 2008년 집권한 이후로는 사회적 교섭전략 자체가 아예 실행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민주노총 총연맹의 정책들이 실질적인 대중동력과 교섭방침에 근거한 투쟁과제가 되기보다는 정책담당자들의 입론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런 사정에서 연유한다.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실질적인 계획과 실효성 있는 투쟁을 전개한 것은 노동운동탄압분쇄투쟁과 반MB투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08년 7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저지 총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구실로 이명박 정권은 민주노총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건설노조와 운수노조 등 산별연맹을 불법화하려는 시도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전교조, 공무원 노조의 단체행동을 불법화하고 단체교섭을 부정하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업무방해 등 각종 민사상의 제약요건을 강화해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더 나아가 이명박 정권은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으로 정부정책과 기업주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맞서는 정치적 행동을 원천봉쇄하기 시작했다.
2009년 5월 ‘박종태열사 명예회복, 화물연대 탄압 분쇄’를 내걸고 전개된 화물연대의 파업투쟁은 중간에 좌초하고 말았는데, 화물연대 인정이 유일한 쟁점이 되는 상황에서 파업동력을 더 이상 확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이 ‘민주노조사수’만을 내걸고 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을 진행할 수 없는 주체적 한계상황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에 대한 금속노조의 투쟁조직화 실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정리해고 강행시가 아니라 ‘공권력 투입시 총파업’이라는 금속노조의 쌍용자동차 관련 유일한 투쟁계획이 시사하듯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에서조차 금속노조가 투쟁동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동인은 노조탄압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에서 77일간의 파업투쟁이 종료된 이후 정리해고 투쟁전선의 성격과 방향, 대안을 둘러싸고 논쟁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금속노조는 부분적이나마 총파업을 실행하고 평택공장으로의 집결투쟁을 조직했지만 대중조직화는 실패하였다. 그나마 모였던 집회대오들은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금속노조마저 노조탄압저지투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사방에서 조여 오는 공권력 침탈 앞에서 쌍용자동차 지부는 정리해고를 수용한 채 77일 간의 공장점거 파업투쟁을 중단했다.

반MB 전선과 고착화되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노무현의 죽음을 전후로 노동자운동의 동요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자신의 조직역량으로 시내에서 마땅히 집회를 개최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자 민주노총은 이른바 ‘노무현 서거 국면’을 지렛대 삼는 투쟁계획, 더 나아가 야4당과의 공조에 의존하는 반MB전선의 확대를 꾀하게 된다.
비정규법 개악 저지투쟁은 민주노총의 자체 투쟁동력보다는 미디어법 개악저지투쟁이라는 상황이 제공한 지렛대에 의존한 바가 컸다. 최저임금인상 투쟁은 과거에 비해 더 많이 고무되긴 하였지만,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2.75% 인상 수준에서 마무리되고 만다.
민주노조운동의 대중적 지지기반이, 민주노총의 투쟁동력이 아래에서부터 무너진 상황에서, 단위 사업장의 결사항전을 전제하는 일점돌파 투쟁마저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반MB전선의 확대라는 상층차원의 연대를 통해 소시기 목표(노동운동탄압 분쇄)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민주노총이 현재까지 제출한 반MB전선의 유일한 투쟁계획은 두세 차례의 민중대회와 이명박 불신임투표 정도다. 노동조합운동 주체의 대중적 힘을 아래로부터 복원할 계획이 부재한 상황에서 (야4당을 포함하는) 상층연대를 통한 몇 차례의 집중투쟁, 이명박 불신임투표 운동 정도로 민주노조운동의 무너진 대중적 지지기반이 복원될 리 만무하다. 더구나 반MB전선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치적 목표도 모호한 상황에서는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선거연합 승리가 최종목표로 보이지만) 더더욱 그렇다.

경제위기 대응 계획과 노동조합 재건 계획이 동시에 수립되어야 한다

도시철도, 인천지하철, 인천공항공사, KT노조 등 대형 노조들이 연이어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있고, 금속노조의 산별전환과 공공연맹/노조의 산별전환 계획은 점점 안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복수노조시대를 목전에 두면서 이명박 정부는 다시금 노사관계법 개악을 통해 남아있는 노동조합운동마저 완전히 무력화하려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투쟁 조직은커녕 노동운동탄압에 맞서는 계획도 제대로 수립 못하는, 내적으로는 산별노조 전환조차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은 이제 위기의 임계를 넘어선 상태다.
노동자대중의 상태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 내부의 위계질서를 활용한 국가와 자본의 손실 떠넘기기가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파고들어 분열을 확대할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임금격차, 고용격차 등등 노동자 내부의 갈등이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첨예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고용, 임금)를 방어할 수 있는 기본조직마저 부재하다면 그 결과는 노동자운동의 참담한 패배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계급적 이익(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고 쟁취하는데 있어 기본대중조직은 필수 불가결하다. 여기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의식을 확대함과 동시에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전체 노동자대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회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그 전제조건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대중의 자기 조직화, 주체화, 그리고 운동역량의 강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 대중운동은 결국 모래성일 뿐이다.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는 운동이 아니고서는 사회운동의 이념 형성은 먼 미래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대중이 스스로 조직하려는 대중조직의 운동이 아니고서는 거대한 대중운동의 물결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경제위기에 맞서는 투쟁계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조합운동을 재건하려는 계획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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