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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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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폭력의 곡필을 멈추라

최근의 시위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소고

이승철 | 편집위원, 전국언론노동조합 편집국
<b>이 땅의 우익을 죽었는가</b>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
'시일야방성대곡'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충분히 선동적인 문구다. 실제로 자신이 우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상당히 가슴벅차 오를만한 호소다. 어디, 이 이색적인 외침을 다시 한번 되뇌어보자.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
이 가슴 절절한 절규는 <월간조선 2001년 5월호>에 전문이 다시 실린 양동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치경제연구실 교수의 논문제목이다. 이 글이 처음 발표된 시기는 광주학살 청문회가 열렸던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역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양 교수는 이 문제의 글을 <현대공론>이라는 잡지 8월호에 기고했다.

그 글에서 그는 "노동·대학·언론·예술·정치·경제·법조·종교 각 분야에 좌익세력들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대한민국의 반공체제를 훼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익세력들은 연대다운 연대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음"을 개탄했다. 양 교수는 이어 "이 나라에는 처음에는 좌익세력과 제휴한 정권이 들어서고, 그 다음 단계에는 좌익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공산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힘주어 경고하고 있다. 자, 이걸 보고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약간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 논문을 조금만 더 살펴보자.

양 교수는 "좌익세력은 직장이나 부문 내에서만 연대협력하고 연대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문별 경계를 뛰어넘어 유기적으로 연대협력하고 투쟁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좌익 연극인이 공연을 하면, 언론사 문화부의 좌익 또는 좌익 동조기자들은 그 연극을 선전하는 기사를 써주고, 좌익 대학생과 좌익 노동자들은 관객을 동원하여 협력하며, 좌익 연극은 연극 속에 좌익 사상을 내포시켜 관객을 의식화한다. 또 좌익 기자가 월간잡지의 기자로 들어가면 좌익 내지 좌익 동조필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원고청탁을 하고, 좌익 대학생들은 그 잡지를 구독하고, 일간지의 좌익 기자들은 좌익계 필자들의 글을 좋다고 평가한다.

또 신문사에서 노조가 쟁의를 전개하면 좌익 대학생들과 좌익 노동자들이 몰려와 진치고 꽹가리 치며 그들을 지원하며, 좌익 노동자들의 투쟁현상에 좌익 교수가 지원 나가고 좌익 기자가 취재를 해 좌익에 유리하게만 보도한다"고 주장한다.
3문장 안에 무려 20개의 '좌익'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이 엽기적인 글은 논지를 전개해 나감에 있어 사뭇 진지하고 준엄하다. 그러나, 논문 한장 한장을 읽어내려 갈수록 씁쓸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이런저런 복합적인 감정으로 논문을 다 읽고 난 후,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월간조선>은 왜 이 논문을 다시 수록했을까? 논문 앞머리에 있는 '편집자 주'를 다시 한번 읽어봤지만, <월간조선>은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전문을 옮겨놓았을 뿐이다.


<b>때론 강하게, 때론 유연하게 - 우리 언론의 시위관련 보도</b>

도대체 왜 <월간조선>이 문제의 논문을 재수록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양 교수가 이 글을 집필한 이유는 얼핏 엿볼 수 있다. '좌익 정권이 들어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논문에서 "좌익세력의 규모는 정부의 공권력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1987년에 있었던 소위 좌경세력 주도의 각종 군중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고, 그들의 10분의 1만을 좌익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 양 교수는 기성세대 우익들을 상대로 "좌익이 더 설치면 정부가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군부가 나서서 좌익을 쓸어버리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일침을 놓았다. "지금 이 나라 대학가에서 좌익 학생들을 비판하는 학생들은 캠퍼스나 하숙방·자취방 등에서 좌익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인권유린의 현장폭로(?)도 적절히 가미한다.
그의 해법은 명쾌하다. "사회 각 분야의 우익은 총궐기하여, 이론가는 이론으로, 조직가는 조직으로, 재력가는 재력으로, 완력가는 완력으로 좌익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익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이다.

이렇듯 실속없는 이야기로 소중한 지면을 낭비해가며 서두를 시작한 까닭은, 양 교수(혹은 <월간조선>의) 논리가 갖는 극단적 현실인식과 저돌적 행동양식이 우리 언론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화염병 시위에 대한 강력대처를 주문하고 대우차 사태를 정치쟁점으로 교묘히 흘려버리며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우리언론의 지면·화면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왜곡과 축소의 수준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눈 하나 깜짝 않고 지면과 화면을 사용하는 그들의 행태가 오만을 넘어 방자함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b>신문에 화염이 춤춘다</b>

신문에 노동자·민중을 겨눈 화염이 춤추고 있다. 정권의 정책실패와 인력감축 중심의 잘못된 구조조정, 이에 따른 빈곤의 심화와 사회적 불평등이 가속화되자 민중운동진영에서는 자발적 분노와 저항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부평에 위치한 대우자동차 공장 주변은 물론, 인천지역 전역에 마치 계엄과 같은 억압적 상황이 한달이 훨씬 넘도록 계속됨에 따라 이러한 민중들의 저항은 점차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으며, 그렇게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화염병이다.

그러나 언론은 시위대오에 화염병이 등장하자마자 그간의 과정과 실체적 원인은 외면한 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노동자와 학생들의 '폭력성'에만 주목하며 총공세에 나섰다.
가장 앞서 나간 것은 역시 우익정론지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지난 4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에 걸쳐 무려 4,044자에 이르는 장문의 시리즈를 내보냈다. <시위문화 이대로는 안된다>는 제목의 시리즈 1편 <다시 도심서 난무한 화염병>에서, 조선일보는 지난 3월 31일 민중대회 이후 벌어진 연세대학교 앞 가두투쟁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화염병 수백개' '쇠파이프를 땅에 두드리는 시위대' '순식간에 200여개의 화염병이 하늘 위로 솟아 올랐다' 등 시위대의 폭력성을 묘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조선일보는 이어 다음날 <외자 내쫓는 '과격전투'>를 통해 '70억 달러 공장이 들어오면 5천명의 고용인원을 창출할 수 있는데도 그런 기회를 스스로 쫓아내고 있다'면서 시위대를 강하게 질책했다. 나아가 시위 때마다 막히는 시내교통비용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친절함도 내보였으며, 여기에 시민들이 느끼는 '짜증지수'까지 첨가했다. 사태의 본질과 원인은 제쳐놓고, 눈에 보이는 4칙연산에만 매달린 일차원적 보도였다는 지적이다.

마지막 3편은 왜곡보도의 결정판이었다는 평가다. <'립스틱 라인'에 시위대는 코웃음>라는 선정적 제목으로 시작된 이 기사는 '엄격한 법 집행이 무너진 자리에 통제불능 악성 시위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면서 더욱 강력하고 폭력적인 공권력 동원을 주문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조선일보는 이어 4월 3일자 사설 <화염병은 방화다>에서도 '일선 진압경찰이 다치건 말건, 화염병으로 도심이 불타건 말건, 무최루탄만 외쳐온 경찰 수뇌부의 자세전환이 필요하다'면서 '경찰이 폭력시위를 제압하려면 폭력시위자들을 두렵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를 양자간 힘겨루기로 몰아가며, 더욱 강경한 시위대 진압을 주문한 것이다.

중앙일보도 3월 19일자 <무탄진압 자랑만 할 일인가>에서 '이미 지난 두달 동안만도 1천2백 여개의 화염병이 쏟어져 나왔는데도 경찰 수뇌부는 무탄원칙 고수를 내걸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라며 강력대처를 주문했다. 노동자의 폭력성만을 중심에 놓은 채, 경찰에게 '받은만큼 돌려주라'는 식의 뒷골목 행태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역시 절망적이었다. 한겨레는 지난 4월 9일자 <화염병은 사라져야 하지만> 사설에서 '화염병을 동원한 과격 폭력시위는 과잉진압을 불러오기 쉽다'면서 폭력의 원인을 노동자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최근 들어 친정부 논조로 민중운동 진영의 정치적 비난을 받고 있는 한겨레는 '경제도 안좋은데 외자유치 등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일부에서 나온다'며 최근의 시위가 급격히 충돌 일변도로 나아가게 된 배경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가운데, 반노동자적 논조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한겨레의 이날 사설은 조선일보의 4월 3일자 일부를 그대로 가져다 옮긴 것이 드러나, 언론사의 도덕성과 논설위원의 기자윤리마저도 의심케 했다.

이 밖에도 동아일보는 4월 12일자 <민노총 "경찰 때문에">와 <상인들 "민노총 때문에">(27면) 두 기사를 수직으로 배치했다. 이 두 기사는 종묘공원 인근상인들의 주장을 빌어 폭력사태의 근원인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를 흐리게 하는 이른바 '물타기식 보도'라는 지적을 샀다.


<b>대책 없는 화염병 대책</b>

지난 3월 말 중앙일간지들은 일제히 '신종 화염병' 보도를 내놓았다. '민주노총의 홈페이지에 신종 화염병 제조방법이 소개되었는데, 경찰이 모의실험을 해보니 살상무기에 가깝더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다. 이어 경찰은 시위대의 신종 화염병 사용에 대비해 고무총탄을 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4월 4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화염병 사용 등 불법·폭력시위에 강력히 대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검토키로 한 대응책은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화염병을 소지하거나 취급한 사람은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고, 화염병 시위전력이 있는 사람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학사관리도 철저히 하겠다는 내용이다. 마치 악법으로 비난받다가 폐지된 1960년대 서독의 '과격세력 단속법'을 연상시키는 이 방침을 대부분의 신문들은 여과 없이 보도했다.
문제의 발단은 소위 '신종 화염병'에 대한 경찰의 과잉반응과 언론의 추임새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신종 화염병'의 제조비법(?)이 게시된 것은 민주노총 홈페이지의 '열린마당'. 그러나 '열린마당'은 누구나 제한 없이 글을 남길 수 있는 곳이고, 특히 최근 들어 수록된 글을 읽다보면 절반 정도가 의경 등 경찰들이다. 그 내용 역시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화학약폼이 나오는 등 화학이나 폭약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신종 화염병을 제조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언론의 보도와는 거리가 멀다.

이와 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작성시점에서 20여 일이나 훌쩍 넘긴 시기에 갑자기 쟁점화되어버린 것이다. 경찰과 언론의 기가 막힌 언론공조플레이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어 정부가 내놓고 언론이 비중있게 보도한 '화염병 시위대책'도 그야말로 대책 없는 수준이다.

자유민주적 기본권의 원리와 상식마저 무시한 이 '대책'은 화염병이 등장하게 된 근본원인에 대한 성찰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정리해고 일변도의 구조조정과 '민영화·해외매각 만능 경제정책' 등 근본문제에 대한 해법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더 강력한 대응과 더 폭력적인 진압이 시위를 막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과거의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고무총을 쏘면 시위대가 줄어들 것이라는 경찰과 정부의 일차원적 발상은 어이없음을 넘어 안타까움까지 안겨준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 대한매일 등이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b>늑장보도와 왜곡보도, 대우차를 두 번 짓밟았다</b>

지난 4월 10일 부평에서 일어난 경찰의 살인적 폭력진압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관련 경찰간부 2인의 직위해제에도 여론의 불이 꺼지지 않자,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하는 등('유감'이라니!), 사태는 오히려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여기에 경찰대동문회의 성명서 파동 등이 겹치면서 정권은 시간이 갈수록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4.10 부평사태에 대한 언론의 태도 역시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의 여론에 떠밀려 비판적인 논조를 나타내긴 했지만 그나마 늑장보도였으며, 지면 곳곳에 왜곡보도와 과장보도, 본질 흐리기와 같은 구태가 여전히 드러났다. 대부분의 신문이 국회상임위 보도와 함께 대우차 사태를 정치쟁점화하는데 급급했다는 인상이다.

사태해결과 원인분석을 위한 심층취재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태가 최초로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사건 다음 날인 4월 11일. 한겨레(693자), 문화(390자), 국민(551자), 중앙(715자), 동아(651자) 등에 의해서다. 세계(742자), 대한매일(640자), 조선(690자), 경향(1409자)는 13일 관련보도를 최초로 내보냈다. 대부분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데 그친 단신성 기사였으며, 경찰의 폭력진압을 크게 문제삼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최초로 보도된 기사들 모두에서 경찰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나열식·중계식 기사작성에 머물렀다.

각 언론사들이 본격적인 입장과 의견을 내오기 시작한 것은 13일 경으로, 12일 민변과 변협의 성명 발표 이후다. 중앙일보는 14일자 사설 <시위진압 경찰폭력 안된다>를 통해 사태의 원인을 '전경의 흥분과 진압대의 교육·훈련 부족, 현장지휘관의 능력, 수뇌부 개인의 성향'으로 꼽으며 본질을 축소했다. 심각한 왜곡이다. 사설은 이어 말미에 '노조원들이 경찰을 폭행하는 광경은 전혀 없이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위주로 편집한 테이프를 제작·배포함으로써 당시 상황을 일방적으로 몰고가려 한 의도가 있다는 경찰의 주장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대한매일도 <아직도 폭력진압이라니(2001. 4. 14.)>에서 문제의 해법으로 '경찰 내부의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제시했다. 경향신문도 같은 날 사설 <경찰폭력 근절방안 없나>에서 경찰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민주노총의 대응계획에 대해 '행여나 감정이 고조된 끝에 폭력시위로 이어져서는 문제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특유의 右왕左왕식의 논조를 유지했다.
타 신문에 비해 뒤늦게 사설을 게재한 조선일보는 16일자 <경찰 왜 갑자기 과잉진압?>을 통해 시위진압이 도를 넘어섰다고 비판하면서도, 뜸들인 만큼의 사태에 대한 한차원 높은 본원적 성찰과 사회구조적 진단은 부족했다.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윗분들이 과격시위에 적극적 관심을 표명하면서 경찰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보고 있으나'라는 수준에 머물렀다.

조선일보는 또 같은 날 대우차 기사를 사회면도 아닌 사회2면에 배치하는 것은 물론, 박훈 변호사의 발언을 전체 기사와 동일한 비중으로 편집하며 과대포장해 본질을 호도했다.
대우차 문제가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신문의 보도태도는 일대 전환을 맞는다. 대우차 폭력진압의 문제는 사회면보다 정치면과 종합면에서 다뤄지기 시작했으며, 여·야간의 정쟁 중계의 양상으로 흘러가며 '쟁점 흐리기'가 가속화됐다. 야당 의원의 국회발언을 인용한 제목과 공방기사만이 눈에 띌 뿐, 폭력의 본질에 접근하는 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권력 폭력에 대한 비판에 모두가 목청을 높이면서도 정작 이 비판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잇는 데 인색했거나, 신문고시와 같은 다른 사안들과 함께 인용하며 자사이기주의에 동원했다는 지적이다.


<b>언론도 폭력사태 책임 면할 수 없다</b>

경찰의 과잉진압은 4월 10일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대우 정리해고 집회현장에 참석한 노동자, 가족, 취재기자 등에 대한 공권력의 인권침해가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실제로 2월 17일 대우차 생산직 노동자 1,750명의 정리해고 이후 현재까지 연행자만도 7백 여명을 웃돌 뿐만 아니라 연행과 수사과정에서도 △진술서 작성 강요 △불법 감금 △적법절차를 무시한 마구잡이 검문 △알몸수색 △피의자의 기본권인 묵비권 제한 △집회불참 각서 강요 등이 자행됐다. 특히 경찰은 집시법상 하자가 없는 '1인 시위' 참석자까지도 무차별로 연행해 빈축을 샀다.

해고노동자 가족들의 피해가 집중됐던 백운공원 앞 연행 때에는 대우차노동자 부인 이옥선 씨가 6∼7명의 전경에게 가슴과 머리카락 등을 잡힌 가운데 연행된 뒤, 16일 결국 태아를 유산하기까지 했다. 경찰은 이날 연행과정에서 어머니와 같이 있던 어린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내 방치하고 방패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등 반인도적 대응을 보였다. 이와 함께 취재를 위해 집회에 참석한 기자들에 대한 폭행도 발생했다.
지난달 20일 부평역 집회에서 경찰은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SBS 기자의 머리를 폭행하고 팔을 꺾는 등 폭행한 것을 비롯해, 1일 경희대 교지편집위원회 소속의 백경원씨의 카메라를 방패로 내리쳐 파손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사태에 대해 언론은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 2월 20일 이후부터 4월 10일 폭력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일체 집회를 허용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을 '불법시위'로 내몰며 선전선동의 공간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심각한 인권유린과 집회·결사자유의 침해가, 전혀 지면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대우차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의 정당한 요구가 제도언론을 통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오히려 언론은 그간 대우차 사태 관련보도에서 해외매각, 공장정상화 시급 등 정부와 자본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어 왔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장기간의 인권탄압과 공권력 폭력에 침묵하고, 대우차 노동자들의 외침에 귀 막았던 언론 역시, 지금 사태의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


<b>민중을 눈멀게 하는 곡필의 손놀림을 멈추라</b>

4. 10. 대우차 폭력사태를 민중들에게 알려낸 주체가 대우자동차 영상패를 비롯한 '대우차 노조 2001 총파업투쟁 영상지원단'이었다는 사실을, 언론은 깊이 새겨야 한다. 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그대로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인권유린과 살인적 폭력을 예방하기는커녕, 생생한 현장마저 전달하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오늘날 제도언론의 모습이다. 현장과 동떨어져 자사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선별하고 왜곡해 지면에 펼쳐내는 지금의 양상이 결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음은 시간이 증명할 것이나, 이를 자성과 혁신의 계기로 삼지 못할 때 그 평가는 더욱 가혹하게 다가올 것이다.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행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폭력을 목적으로 시위를 계획하고 오직 도심에 화염을 일으키기 위해 '정리해고 철폐'라는 주장을 갖다 붙이는 경우는 없다. '화염병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식의 유아적 질문은 집어치우라. 문제는 폭력의 발단이다. 결국 폭력에 이를 만큼의 분노를 자아내는 정책이 오히려 핵심이다. 이유는 덮어놓은 채 현상만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우리는 본(本)과 말(末)이 전도됐다고 한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도청을 점거했던 시민군과 1987년 서울 도심을 가득 매웠던 시위대 때문에 겪게된 경제적 손실과 폭력사태를 이유로, 당시의 투쟁을 폄하할 수는 없다. 같은 이유로 당시의 금전적 손실을 하나하나 친절히 계산한 기사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물론, 당시에 시민군을 '폭도'로 몰던 신문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태의 핵심은 사태 그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불러온 실체적 원인과 본질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거침없이 지면 위를 날고 있는 펜들. 그러나 언젠가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와 같은 세인의 씁쓸함과 조소를 지어낼지 모르는 일이다. 언제까지나 문제의 핵심은 가린 채 민중의 눈을 멀게 할 수는 없다. 이제 곡필의 손을 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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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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