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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3-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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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 개악, 노동조합 구조조정?

호성희 |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조직부장
시작이 어려운 이유

오늘 3일째의 도전이 성공했다. 글을 쓸 시간이 없어 새벽에 일어나려고 시도한 것이 이틀 연속 실패하였는데, 오늘은 드디어 지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다. 1년간의 외유(?)를 마치고 7년 동안 상근했던 사회진보연대로 돌아가지 않고, 과거 서울대병원 간병노동자 연대투쟁이 인연이 되어 작년 1월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365일 투쟁 중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정말 빡빡한 1년이 지날 때쯤 <사회운동>을 읽었는데,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어떤 ‘갈증’이기도 하고, 돌아볼 새 없이 산 1년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산별, 지역지부, 전략조직화

내가 지역지부에서 주로 맡고 있는 것은 중소병의원 전략조직화 사업이다. 대부분 5인 미만 사업장이라서 노동법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동네의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일이다. 이 전략조직화 사업의 방향은 ‘지역조직화’인데, 사업장별 노동조합 활동을 극복하자는 지역중심의 산별운동을 실천하려는 시도다. 중소병의원 전략조직화 구역인 은평구만도 300개가 넘는 의원들이 있는데, 일하는 노동자도 이동이 많고, 의원 자체도 개ㆍ폐업이 잦아, 애초에 사업장 단위로 조직하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이전에는 누구도 의원노동자를 조직하지도, 조직할 생각도 못했다.
아침 8시 반, 지역지부 전임자들이 의원들이 문을 열 준비를 하는 시간에 매주 혹은 격주로 노동자의 일반적 권리와 의원노동자들의 모임을 알리는 선전물을 들고 은평구 280여 개의 의원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선전전을 진행한지도 만3년이 지났다. 아직껏 조직화 성과는 크지 않다. 조합원으로 가입한 수로 따지면, 지난 3년간 전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여된 재정에 비례한 효율성으로 본다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역의 의원노동자들에게 의료연대 미조직센터인 병원노동자 ‘희망터’와 서울지역지부는 익숙한 이름이 되었고, 희망터는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곳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년 1년 동안 의원노동자들을 만나오면서 느끼는 거리감은 내가 살고 있는 성남에서 은평구까지 두 시간의 장거리만큼이나 아직은 멀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노동조합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그런 거리감의 한 뼘을 차지할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운동이 해당 조합원들의 권리 확보에 머물러 있는 역사와 현실도 변명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조건과 현실을 극복하고자 작년 중소병의원 전략조직화 사업이 설정한 과제가 지역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이었다. 서울시내 25개 구 중에서도 ‘은평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악랄한 노조탄압에 맞서 싸워온 청구성심병원 분회와 지역연대의 기반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쟁사업장을 지원했던 지역연대가 그 자체로 일상적인 노동조합의 조직화 사업의 기반이 되기는 어려웠다. 노동조합 활동이 지역운동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장시간 노동에 비해 평균 120만원을 넘지 못하는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의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다수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이다. 그래서 출퇴근이 용이한 의원에 다니는 것이고, 은평구 의원노동자들 대부분이 은평구민이다. 이미 법으로 보장된 휴게시간을 요구하더라도, 24시간 풀가동 시스템에 익숙해져 밥 먹는 점심시간에도 의원을 가는 것이 당연한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권리보장을 쟁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주민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통상적인 임단협이 불가능한 의원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이 될 지역운동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 작년 전략조직화 사업의 고민이었다. 그래서 ‘나만 잘살면 무슨 소용인교? 은평, 벼룩시장과 캠페인’을 시작했고, 11월에는 의료-건강권을 이슈로 한 ‘누구나 건강한 은평구 만들기 캠페인’을 제안, 시작하게 되었다. 어쨌든 시작은 했지만, 오늘 칼럼의 주제로 주어진 ‘노조법 개악’을 이제야 꺼내본다면, 아직은 갈 길이 멀고, 그만큼 재정과 사람이 투여되어야 할 사업이다.

유감에 유감

개인적으론 워낙 국회 앞 투쟁을 싫어한다. 국회 앞은 시민들을 만나는 공간이되지도 않고 통상 각종 개악법 통과 직전에야 하는 집회인지라, 무기력과 패배감을 준 기억이 많다. 작년엔 그마저도 한 차례의 농성투쟁만 있었을 뿐, 노조법이 통과되는 당일엔 집회도 취소되었다. 나 역시 TV에 나오는 걸그룹들의 쇼를 보던 중에, 아직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는 한 줄 뉴스를 보며 ‘당장 내일부터 전임자들 임금은 어찌 되는 거지?’하며 방관자적 유감을 표했을 뿐이다. 결국 어떤 법안인지 모르겠으나 날치기로 법 시행이 유예되었다는 소식에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쉰 게 나 뿐일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전임자 임금 대책을 산술적으로만 고민했던 나 자신이 더 유감이다. 또한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쌍으로 10년 넘게 시행이 유예된 ‘복수노조 허용’,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수십 년 외쳤던 복수노조 허용이 지금 민주노총의 각 조직에겐 어떤 의미의 요구일지 솔직하게 돌아보고 평가해볼 일이다.

“내가 어용이 될까봐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어느 노동조합 간부가 개악된 노조법에 따른 대응 토론을 하다가 한 말이다. 처음에 들었을 땐 너무 솔직하다 싶어 약간은 충격적이고 놀랐었는데, 계속해서 가슴에 남는 말이다. 현재 어용노조와 민주노조를 가르는 기준이 뭘까? 어용이라는 게 노동조합 대표가 조합원들의 의사에 반하여 노동조건을 양보하는 것이라면 그 말을 한 간부가 그런 대표는 아닌 듯 싶다. 오히려 그 간부의 두려움은 ‘조합원의 의사’에 충실할 때 어용이 되는 게 아니었을까. 비정규직의 확대와 고용의 불안정성이 증가할수록, 기존 조합원들의 요구와 활동이 자기 이해에 갇히기 쉽고, 사실 그조차 노동조합이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두려움이다. 많은 민주노총 사업장들에서 복수노조 허용은 곧 사측의 어용노조 건설의 현실화를 의미할 것이다. 만약 기존 조직된 노동조합들이 임단협의 성과를 중심으로 어용노조와 ‘경쟁’하고자 한다면 승패는 뻔하거나, 앞선 간부의 고백이 현실화되지 않을까. 어느새 노동조합의 집회에서조차 사라졌다는 ‘노동해방’의 정신을 노동조합이 실제 활동 속에서 다시 살리고,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 주체적으로 나서는 정도(正道)가 민주노조의 정신일 것이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돈이 보인다?

개악된 노조법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막막해하거나 방어적이다. ‘설마’가 노조 잡는다고, 10년 이상의 유예는 준비기간이었거나 법안 폐지 투쟁 기간이었겠으나, 어쨌든 전임자임금지급금지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현실이 되었다.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에서 전임자들이 하는 역할을 볼 때, 전임자의 축소는 현재 상황에선 노동조합 활동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 전임자의 수와 전임자 임금을 유지하려면, 결국 전 조합원들의 결의에 따른 조합비 인상이 불가피하다. 전임자 임금이 기업별로 지급되었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다양한 고용형태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는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는 ‘지역지부’ 차원의 전임자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몇 가지 예상될 수 있는 쟁점이 있다. 재정 지출의 50%를 차지하는 산별 및 상급단체 분담금이 논란이 되어, 산별회의론이 힘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교섭창구단일화 법안은 법제도적으로 노동조합을 기업별로 회귀시키고자 하는 노동조합 구조조정안과 다름없다. 내가 산별주의자(?)는 아니지만, 비정규-미조직 조직화를 위해서는 지역중심의 산별은 필요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현재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스스로 지키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어차피 헌신적인 전임자들의 활동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은 죽어가는 것이니까.

비정규직, 투쟁도 어렵긴 마찬가지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서울대병원의 청소용역 노동자들인, 민들레분회는 한 달에 가까운 파업을 이어오고 있었다. 하청업체인 대덕프라임은 민들레분회가 복수노조라며 교섭의무를 회피했고, “산별노조는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으니 교섭에 응하라”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과 파업권을 얻기까지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5월말에 결성된 민들레 분회가 파업을 시작하자마자 업체변경 시기가 되었고, 결국 파업은 변경된 업체로 고용보장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2008년 10월 조직된 식당분회도 작년 단체협약을 어렵게 쟁취했지만, 업체가 변경되면서 단체협약도 사라졌다. 그래서 첫 출근 때, 서울대병원 분회 사무실에서 “사무실에서 재미 재미있는~전 재미예요”(사실은 이름이 정재미다)라며 반갑게 맞아준 식당분회장도 현장으로 돌아가 어렵게 활동하고 있다. 원청인 서울대병원은 각 하청, 임대 업체들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되자,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넘게 계약하던 하청, 임대사업 업체들을 바꾸고 있다. 이런 업체변경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겐 고용불안이고, 어렵게 얻어낸 단체협약이 해지되는 것과 같다. 고용불안정이 노동조합 활동의 불안정과 직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설혹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어려운 마무리

결국 기관지 마감 꼴찌다. 변명 같지만, 이틀 연속 새벽 글쓰기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주시길. 금번 노조법 개악에 대한 현장의 대응방향은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노조법 개악이 노동조합 구조조정을 목표로 했다면, 우리의 대응 역시 노동조합을 체질을 개선하는 구조조정이면 되지 않을까. 처음 민주노조 건설의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조합원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 과거에 비하자면 노동조합 활동의 모든 조건이 나빠진 것은 아니다. 이제 누구도 초심으로 활동하지 않으려하는 것이 문제다.
만만치 않은 1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운 한 해였다. 지난 한 해 구호 속에 있었던 ‘지역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비정규직 조직화와 주체화’ 등을 현실 활동에서 경험했다. 미조직, 비정규사업에 대한 서울지역지부의 노력은 내가 먼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이런 노동조합 활동의 방향과 원칙이 전임활동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사실 장기적 계획과 실천을 필요로 하는 사업들, 어렵게 시작한 소중한 시도들이 앞으로 지속될지도 불확실하다. 작년 가장 소중한 경험은 성원개발분회와 민들레분회 파업에서 경험한 조합원들의 역동성이다. 나는 이걸 믿고 싶다. 그런 역동성을 끌어내는 노동조합 활동을 고민하는 것,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을 담당자인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나의 2010년 결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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