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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8.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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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금속영세사업장 실태와 노동자의 삶

김민주 | 회원
현재 K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약 12만 명이다. 아파트형 공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다른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이전하는 회사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중 제조업 노동자들은 대기업의 하청인 중소영세사업장에서 거의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현재 제조업은 파견허용업무가 아니지만, 이 지역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 취직하려면 파견회사를 거쳐야 한다. 직접고용을 하는 사업장이 없지는 않으나 이런 곳은 대부분 10~20인 정도의 작은 사업장이다. 이런 회사들은 잔업, 특근이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미안해하기도 하고, 식비 등을 월급에 포함해서 시급은 적지만 최저임금위반은 교묘히 피해가는 회사도 있다. 노동자들의 이직률은 상당히 높은데, 자발적인 이직 뿐 아니라 도산ㆍ공장이전ㆍ해고 등으로 인한 이직도 상당하다. 주야 맞교대나 3교대, 야간 일을 하는 곳도 많다.
불법파견에 최저임금, 상시적인 해고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금속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주어졌다. 제조업과 운수업으로 파견업종을 확대하겠다는 노동부의 계획이 지난 4월 밝혀지고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결정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이 글이 이후의 우리의 투쟁에 더 많은 영감과 책임감을 줄 수 있길 바란다.

불법이지만 당연시되는 파견노동

A사에 다니는 B씨는 파견업체를 통해 현재의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에 직접 연락하는 것보다 파견업체가 노동시간, 시급, 잔업수당, 상여금 등의 노동조건에 대한 설명을 훨씬 자세히 해줬다고 한다. 파견업체에서 한꺼번에 다섯 명을 모아 회사로 가 면접을 봤다.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정도만 물어보는 간단한 면접이었다. 5분 뒤에 합격 결과가 나왔고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면접날이 파견업체 직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고, 첫 월급날이 가까워오자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원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라고 느끼진 않았다.
C사에 다니는 D씨 역시 파견업체를 통해 회사에 취직했다. 작은 회사보다 큰 회사가 나을 것 같아 찾아봤지만,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10인 이상의 회사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며,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면접에서 미리 통보받았다. 그래도 C사는 첫 달부터 상여금이 나오는 곳이라서 다른 곳보다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E사에서 일하고 있는 F씨는 직접 고용 계약직이다. 파견직보다 대우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2개월간의 수습기간 동안 월급 90만원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가 받은 임금을 시급으로 따져보니 오히려 A, C사의 파견노동자들의 월급보다 적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파견노동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하지 않거나 차라리 파견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정규직이 좋다는 것이야 알지만, 열심히 일해도 정규직이 될 희망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파견노동이 일반화되면서 파견업체도 점차 대형화ㆍ체계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약을 하는 시즌에만 연락이 오는 파견업체도 있지만, 노무관리랍시고 한 달에 2~4회 정도의 안부문자를 꼬박꼬박 보내는 곳도 있고, 불법파견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회사로 출근해 간단한 업무지시까지 직접 하는 곳도 생겼다.
이렇게 파견업체가 전문화되면서 노동자들은 점점 파견노동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직접 고용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 자체에 문제를 느끼고 제기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파견업체를 통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회사에 갑자기 일거리가 없어져 파견업체 통째로 계약이 해지되어도, 파견업체가 한 곳에서 일주일은 일해야 돈을 준다는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제시해도, ‘요즘에 다 그렇잖아’ 하고 넘어가버린다. 노동자들의 그 뛰어난 적응력과 강인함이 오히려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황은 진행되고 있다.

공정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 고용되었건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들은 단순 노동을 하게 된다. F씨는 지름이 0.5cm도 안 되는 원 모양의 배터리를 하루 종일 육안으로 검사하며 불량을 가려낸다. 그녀가 하루에 처리하는 물량은 10만 개가 넘는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이 작은 배터리만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고 목이 뻐근하다. 그녀는 함께 짝을 이루어 일하는 50대의 중국 동포가 주는 물량 압박 때문에 자꾸 쉬는 시간에도 일을 하게 된다고 곤란함을 호소했다.
무선통신장치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G씨는 20-30초에 하나씩 제품 검사를 마친다. 이것이 그 회사에서 시간이 적게 걸리는 공정이 결코 아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10-15초에 하나씩 물건이 쏟아진다. 무선통신장치를 연결하고 버튼만 한두 번 누르면 되는 작업인데도 일한 지 한 달이 넘어가자 손이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그러나 손으로 조립하는 사람들보다야 낫다. 그 곳에서 3년 일했다는 노동자가 보여준 손은,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오래 걸어 다녀 부르튼 발처럼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단순노동을 하면 몸이 뒤틀리고 시계를 하루에 몇백 번 쳐다볼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고 했다. 오히려 일이 없을수록 시간이 가지 않고, 노동자들은 더 힘들어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재가 들어오지 않아 라인이 돌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누구든 자기가 맡은 일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끝냈다고 쉬지 않는다. 쉬지 못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그제야 노동자들은 짧으면 9시간, 길면 12시간 머물렀던 공장을 떠난다. 그렇게 똑같은 일주일, 한 달이 금방 지나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월급날은 더디 오는지 모르겠다며 노동자들은 웃었다.
컨베이어 벨트와 세분화된 공정, 작업방법 및 작업조건을 표준화한 일일 과업량 설정은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의 특징이다. 공정을 세분화한 결과, 어떤 노동자는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에 부품을 놓아주기만 하면 되고, 어떤 노동자는 전선을 꼬아 끼우기만 하면 되고, 어떤 노동자는 스크류만 박으면 된다. 각 공정 사이에 약간의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빠르면 2-3일, 길면 1-2주 만에 완전히 그 공정에 익숙해질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근속이 짧던 길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해고해도 손해 따윈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인력 투입 며칠 후에 생산량이 정상수준으로 돌아와 노동자들이 힘겹게 조직한 파업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굳이 포드나 테일러의 이름을 꺼내지 않더라도 공장에서 얼마간 일을 하다보면 이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빠르게 공정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노동자들 대부분이 자신은 남들보다 일을 잘하고, 숙련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너무 쉽게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서야 안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그들의 일터에서 자존감을 지키려는 아주 당연한 사고방식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존감의 유지 방식은 종종 신입 노동자들에게 권위를 내세우거나 다른 라인, 다른 층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반장ㆍ조장이나 고참 노동자들이 신입들에게 친절하게 공정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공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스스로 많은 것들을 깨닫고 알아내야 한다. A사의 B씨는 처음으로 생산직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맡은 일은 검사였다. 조립이 끝나면 몇 가지의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검사 순서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자신이 일을 끝내면 어느 위치에 갖다 두어야 하고, 일이 밀리거나 없으면 어디까지 유연하게 공정순서를 바꿀 수 있는지를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며칠 지난 뒤에야 공정의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 뒤에도 계속 좌충우돌했음은 물론이다.
공정의 흐름 정도야 며칠 관찰하면 파악이 가능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공정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크고 작은 돌발적인 상황은 계속 일어나는데, 눈치 보며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고 관리자나 고참 노동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 두 번이다.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다 실수를 하면 한 번 크게 깨져야 한다. 그녀는 다른 층에서 넘어온 검사에서 엉뚱한 시리얼 넘버가 중간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넘겼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이 맡은 공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노동자 자신이다. 오히려 관리자가 제대로 모르면서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을 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고 회사도 그걸 알고 있지만, 지식과 통제수단을 보통 노동자들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공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네들은 훨씬 지혜롭게 일을 할 수 있다. 그 능력을 빼앗긴 채 오늘도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반복되는 노동에 매달린다.

인간답지 말라 강요하는 저임금

대학휴학생인 21살의 여성노동자를 만났다. 이외에도 20대 초반 노동자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반짝반짝 빛나는 애들이 왜 이런 힘든 일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20대와 공장에서 일하는 20대는 어떤 차이가 있는거지? 아르바이트 소개 사이트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는 곳도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맥도날드에 시급 4600원에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21살의 그녀가 해주었다.
“왜 다른 곳이 아니라 공장에 왔어?”
“잔업수당이 있잖아요. 한 달 월급, 꽤 쏠쏠하죠. 알바 했으면 이렇게는 절대 못 벌었을껄요? ”
20대건, 40대건, 잔업의 유무는 초유의 관심사고, 매일의 화제다. 차라리 미리 잔업이 있다고 알려주면 포기하고 일할 마음을 먹을 텐데, 빠르면 마지막 쉬는 시간에야 알 수 있다. 그래도 끝나기 10분 전에 알려 주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잔업 없고 특근 없는 날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공장에서 일하게 된 동인은 ‘잔업’과 ‘특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왕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녀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5월, 평소보다 2-3배 많은 양의 출하계획이 나왔다. 컨베이어 벨트에 제품이 놓이는 간격이 점점 줄어들었고, 관리자들은 뒷 공정 밀리는 것을 고려하지 말고 무조건 내리라고 지시했다. 끔찍한 노동 강도였다. 신기한 것은 이게 하루 생산량의 최대치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이 되면 그것을 또 갱신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한지 열흘 정도가 지난 날, 과장이 생산직 사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석가탄신일부터 시작되는 3일간의 황금연휴에 과연 쉴 수 있을까를 기대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는 ‘지금 한 명만 잔업 빠져도 너무 힘든 상황이다’라며, 지금부터 5월 말까지 단 한 번도 지각이나 조퇴를 하지 않고, 회사가 요구하는 잔업ㆍ특근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면, 10만 원을 더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적지만 많은, 10만 원. ‘제발 쉬었으면’ 이었던 생각은 ‘기왕 하는 거 버텨서 10만 원 타야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를 관두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그럴수록 남아 있는 이들의 잔업시간은 늘어나고 노동 강도는 심화되었다. 5월에 그녀가 다니는 회사는 어린이날 이후로 단 하루도 쉬지 않았고, 그녀는 96.5시간의 잔업과 특근을 했으며, 잔업수당으로 588,750원을 받았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잔업시간이 120시간이 넘었다. 이렇게 되면 잔업수당과 기본급이 거의 맞먹는다. 6월 초에 몇몇 고참 노동자들은 그제야 평일에 연차를 사용했다. 주말 특근을 빼먹는 것보다는 그게 낫기 때문이었다.
D사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E씨는 첫 월급이 체불된 경험이 있다. 15일에 나오기로 한 임금이 나오지 않았다. 상습적인 체불 사업장이라는 것을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래도 안 나온 적은 없었다고 하긴 하는데, 당장 내야 할 돈이 많은데 나오기로 한 날짜에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며칠 기다리다 결국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부장에게 항의를 하게 되었다. 왜 월급을 주지 않느냐.
그가 차라리 회사에 돈이 없다는 변명을 하거나 줄 때 되면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런 대답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대들고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월급을 달라고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한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깟 돈 얼마나 된다고 그래. 그거 좀 늦게 받아도 살 수 있잖아.”
아무도 100만 원 남짓한 월급이라도 그게 없으면 당장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우린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이미 대출회사에서 돈을 빌린 상황이었다. 월급은 예정된 날짜보다 9일 늦은 24일에 나왔다. 그 사이에 같은 부 평사원 8명 중 3명이 회사를 관뒀다.
거의 모든 사업장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에게 “어디나 똑같으니 여기 더 있자” 라는 생각과 “이럴 바에야 그냥 나가고 말지”라는 양면적인 생각을 갖게끔 한다. 노동자들은 비슷한 조건이지만 덜 억울하고 조금이라도 더 사람대접 받는 곳을 찾아 떠나지만,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

기본만 지켜줘도…

만났던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식사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구내식당이 없으면 근처 식당과 계약을 해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메뉴가 별로 변하는 일이 없고 질도 좋지 않다. 식당 주인이 노동자들을 하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많은 중소영세사업장이 휴게공간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함은 물론이다. 계속 서서 일해야 하는 곳인데도 휴게공간에 의자가 부족하다거나, 인원수에 비해 휴게실이 너무 작고 열악하거나, 아예 휴게실이 없어 비 오는 날에는 아무 갈 곳이 없는 곳도 있었다.
일하는 곳이 너무 더운데도 냉방장비가 없거나, 98% 황산을 사용하는데도 고무장갑과 앞치마만 줘서 옷에 구멍이 났다거나, 7년 째 건강에 해롭지 않은 무연 납을 사용한다고 말만 해놓고 가격이 싼 일반 납을 사용한다거나, 근속이 긴 노동자를 승진시키지 않고 외부에서 대리를 뽑아온다거나, 어머니가 쓰러졌다고 알리고 결근했는데 무단결근 처리되어 3일치 월급을 깎인다던가, 물량이 없어서 선거일에 쉬는 것인데도 쉬게 해주니 잔업 3시간을 수당 없이 하라던가, ‘이 새끼’, ‘저 새끼’라는 호칭으로 노동자들을 부른다든가…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금속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말하는 ‘복지’는 대기업의 ‘자녀 대학등록금 지원’과 같은 것들이 아니다. 커피와 종이컵을 사다 놓는 곳이 이 지역에서는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다른 곳보다 상당히 여건이 좋은 C사는 식당에 영양사가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실은 상시 50명 이상에 식사를 제공하는 집단급식소에는 영양사가 있어야 한다.
C사의 D씨는 사람들이 휴게실도 있고 식당도 좋고 해서 부러워하지만, 그런 것들이 최저임금사업장이라는 것을 자꾸 가리는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지역의 다른 회사보다 여건이 훨씬 좋은데도, 왜 더 줄 수 있으면서 최저임금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최저임금이 지역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되어버리는 상황, 주말에 쉬게 해주는 것을 감사해 하는 상황, 휴게실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상황, 이러한 기묘한 상황들이 지금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자에게 있다

지난해 상을 받은 모 언론사의 기획 기사의 전체 타이틀은 ‘노동OTL’, 절망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받으며 단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 안에 절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21살 여성노동자가 다니는 회사.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속도가 빨라지자 조립라인에 있던 노동자들은 요구를 했다. “하루 종일 이런 속도로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조립라인에서만이라도 공정 로테이션을 시켜 달라!”고. “원래 했던 일을 제일 잘하지 않느냐”며 요구가 거절당하자 조립라인 노동자들은 자신들 스스로 규칙을 세웠고, 로테이션을 시작했다.
청소기를 만드는 H사. 어느 날 갑자기 관리자가 “세금을 많이 떼이지 않냐” 며 신고를 다르게 해서 세금을 줄이자는 제안을 했다.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많이 받게 해주겠다면서 4대 보험 해지를 종용한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라 옳다구나 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일주일 뒤 노동자들은 모두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납땜에 불량이 많이 난다고 회사에서 실시한 불량실명제에 대항해 노동자 개개인이 피해보지 않도록 서로 감싸줬던 일, 식당을 개선해 달라며 집단적으로 항의한 일, 모두가 잔업을 거부하겠다고 관리자들에게 들고 일어났던 일…
작은 일들이지만, 노동자들 스스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하나하나의 사례들이 무척 크게 다가왔다. 여전히 저임금ㆍ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일하는 이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그네들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게, 노동할 수 있기 위해 끊임없이 벌이는 크고 작은 싸움에 최대한 가까이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주위에 있어 노동자운동에서 감히 희망을 찾자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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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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