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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9-10.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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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자운동의 경제위기 대응 진단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도 않다

임월산 | 노동자운동연구소(준) 국제국장
지난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디트로이트주 미시간에서 개최된 2차 미국사회포럼(USSF)에 노동조합 간부, 비정부기구(NGO) 간부,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모였다. 포럼 행사는 참가자 수가 대략 1만 8천 명에 달할 만큼 상당히 큰 규모로 치러졌다. 5일간 열린 포럼에서는 1,062개의 워크숍과 50개의 ‘민중운동 회의’가 개최되었고 그밖에도 다양한 총회, 집회와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졌다. 실업에서부터 주택압류, 이라크·아프간 전쟁, 이주자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다. 포럼을 마친 뒤 주최 측이나 참가자들 모두 미국사회포럼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선언했다.
미국사회포럼의 규모는 최근 경제위기에서 노동자를 향한 공격에 대해 좌파들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대응했던 것과 상당히 대비되는 결과다. 부시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은 상당한 불만과 일부의 저항을 촉발했지만 (긴급경제안정화법으로 알려진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금융기관 구제 조치는 오바마 정부에 들어와서도 지속되었다) 이것이 전국적 운동으로 유지되지는 못했다. 일부 좌파 진영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가 2009년 2월 입법한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 정책 패키지(미국경제회복및재투자법)는 다른 조치들과 함께 거의 16%에 달할 수도 있었던 실업률을 낮추고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업률은 2010년 1-2월 9.5%에 달할 정도로 대단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고, 특히 흑인과 라틴계의 실업률은 백인에 비해 훨씬 더 높다. 불완전 취업노동자 숫자를 더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없어서 주택소유권을 박탈당했고 주택압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많은 주정부가 교육 보건 서비스나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한 공공서비스의 예산을 삭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물론 이러한 서비스노동에 의지하는 많은 이들이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노동자계급은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소득, 고용, 생활기준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악화되었고 향후에도 개선이 상대적으로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특히 유색인은 노동자계급 비율이 백인에 비해 더 높다), 자본의 위기 전가에 반대하고 고용 유지와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강력하고 통일적인 운동을 누구든지 기대하거나 최소한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투쟁 사례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그런 운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글은 노동조합과 여타 좌파 세력의 경제위기 대응을 살피면서 이것이 통일적이고 변혁적인 저항으로 통합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평가한다.

노동조합의 대응

2008년 12월 5일 전국 단위로 조직된 소규모 독립노조인 미국전기라디오기계노동자연합(UE)에 소속된 약 200명에 달하는 라틴계 이주자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합원들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Republic Windows and Doors) 공장 점거에 돌입했다. 불과 며칠 전 회사가 공장이 폐쇄될 것이고 근로계약에 명시된 해고수당이나 각종 수당도 없이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노동자들에게 느닷없이 통지한 것이다. 경영자들은 아메리카은행(BoA)이 회사의 추가적인 신용대출을 거절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사실 이 거대 은행은 최근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 투쟁은 노동자에게 위기 비용을 전가하려는 사용자와 금융자본의 의도에 맞서 전투적이고 공세적인 저항을 펼침으로써 미국 좌파는 물론 일반인에게 짧은 시간 동안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국 각지의 유색인 노동자 단체들이 연대투쟁을 조직해서 아메리카은행 지점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공장점거와 대중적 지지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오바마 대통령마저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언급을 할 정도였다. 투쟁을 통해 결국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은행과 회사의 2차 신용기관인 제이피모건체이스마저 UE와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점거 6일째, UE는 사측으로 하여금 체불 임금과 수당, 그리고 두 달 치 건강보험료를 지불할 175만 달러의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게끔 하는 데 성공했다. 일부 좌파들은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투쟁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격에 대한 전투적 대응, 특히 유색인과 이주자들이 주도하는 노동자계급의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잠시나마 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확산됨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사용자들은 재빨리 고용을 삭감하고 단체협정을 무력화했다.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투쟁과 달리, 주요 노조의 일반적인 태도는 양보 형태를 띠었다. 미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제조치를 실행하자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체결한 일련의 협정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제너럴모터스(GM) 및 크라이슬러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기로 했던 그 협정은 2009년 중반 만료되었는데,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퇴직자의 건강보험 기금으로 당초 약속한 현금을 공여하는 대신 회사 주식을 공여함으로써 노조들은 신탁기금을 통해 그 책임을 부담해야 했다. 그밖에도 전미자동차노조는 해고된 이후 실업수당이 소진된 노동자들에게 원래 급여의 약 85%를 제공하는 “일자리 은행”의 폐지를 포함하여, 향후 6년간 파업 금지나 초과수당 삭감과 같은 양보안에 대거 합의했다.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에서도 해고와 수당 삭감이 자행됐지만, 이에 대한 저항은 극히 미미했다. 예를 들어 2009년 봄, 뉴욕시 공공노조는 4억 달러에 달하는 건강보험 수당 삭감에 합의했고, 이는 55만여 명의 노동자와 퇴직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노조는 희망퇴직자에게 현금으로 수당을 제공하는 대가로 7천 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없애기로 뉴욕주와 합의했다. 주지사 아놀드 슈워츠제네거가 캘리포니아주의 노동자들에게 2009-2010년 2년간 월별로 2-3일씩 무급휴직을 강요했지만, 노조는 이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노조들의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민주당과 의 긴밀한 연계에서 연유한다. 미국노총(AFL-CIO)과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은 공히 오바마 지지를 공개적으로 확약한 뒤(비록 미국노총은 예비선거가 끝난 뒤에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지만) 재정을 후원하고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아래에서 자세히 논의되겠지만 이러한 양대 노총의 오바마 선거운동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주당과의 공조가 낳은 결과다. 이러한 노조-민주당 공조는 “뽑아만 주신다면 잘 할 수 있습니다”라는 후보자 개인에게 매료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러 친노동정책 입법을 취하려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노동법 개혁, 특히 노동자자유선택법(EFCA)을 입법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 소속 노조들은 오바마가 당선되면 EFCA가 통과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미조직 노동자를 신규 조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07년 의회에 제출되어 계류 중인 이 법안이 가까운 시일 내에 통과될 것 같지는 않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자동차 산업 사용자들과 대대적인 양보협약을 체결한 데에는 일반적으로 민주당과의 공조, 특히 오바마 정부와의 친밀한 관계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오바마가 자동차 산업 구제조치 과정에서 이러한 양보협약을 강력히 밀어붙였던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 정부와의 관계는 경제위기 시기에 노조가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의제를 선별적으로 지지하면서 의회 통과를 위해 로비를 하거나 때로는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경우, 보건의료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올해 들어 건강보험 개혁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최근 물러난 SEIU 전 위원장 앤디 스턴은 모든 미국인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논쟁적인 조항을 쟁취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미국노총 역시 민주당의 의제를 바탕으로 강령을 기초했다. 오바마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미국노총은 △학교 도로 에너지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추가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주정부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실업자 수당을 확대하고 △지방은행에 대해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메디케이드(65세 미만의 저소득자, 장애인 의료 보조 제도)와 교사들의 봉급을 지원할 수 있도록 주정부에 260억 달러를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의회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8월 5일과 10일 각각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다.) 이와 같은 의안은 대체로 노조들이 조합원들로 하여금 의원들을 압박하도록 장려하거나 노조 지도부 스스로 로비를 함으로써 법제화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미국 노조 지도부는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거나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요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또한 경제위기가 노동자에게 가한 타격을 다소간 완화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현 체제를 영속화하는 것 이상의 해법을 제시하는 데에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노조 지도부는 공공연히 실업과 저임금의 책임을 신흥경제국, 특히 중국에 돌리며 이들을 계속해서 비난할뿐더러,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라는 관점에서 사고하기보다는 미국 노동자의 이해를 강조하곤 한다. 단적으로 최근 8월 4-5일 개최된 미국노총 집행위원회 회의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집행위에서 노조 지도부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조치로 다음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① ‘바이 아메리카 프로그램’의 확대 ② 국가 제조업 전략 수립 ③ 환율 조작 중단을 위한 강력한 조치 ④ 미국인 일자리 보호를 위한 관세 정책 등이 그것이다.

역사적 기원: 코포러티즘적 합의와 미국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노동자 대중운동에 기반을 두고 경제위기 비용 전가에 반대하는 투쟁을 펼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미국 노조들의 상황은 비단 현 지도부의 노선이나 전략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멀게는 1900년대 초 미국노동조합연맹(AFL) 위원장을 역임한 새뮤얼 곰퍼스와 그의 후계자인 윌리엄 그린이 ‘빵과 버터 노조주의’(실리적 노조주의)를 발전시켰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실리적 노조주의는 AFL에 속한 고숙련·정주·백인 조합원들의 협소한 이해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계급투쟁을 등한시했다. AFL 초기 지도부들은 정치적 행동을 노동자계급의 동원이라는 의미보다는 로비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이들이 대표한 실리적 노조주의 경향은 전간기 동안 강력한 노동탄압과 몇 차례의 파업 실패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대불황 시기 동안 노동자운동은 코포러티즘과 전투성이라는 두 개의 경향을 모두 드러냈다. 1929년 경제위기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AFL은 친노조 공약과 케인즈주의 정책에 희망을 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프랭클린 로저벨트를 지지했다. 전국산업부흥법(NIRA, 1933년)의 7(a)조항과 전국노사관계법(와그너법, 1935년)과 같은 로저벨트 정부 초기에 통과된 노동개혁 법안은 단체교섭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불공정 노사 관행을 규제할 목적으로 전국노사관계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노조 조직화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올 기회를 제공했다. 1934년에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주도하는 몇 개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고조됐다. 그러나 여전히 AFL 지도부는 숙련노동자에 기반을 둔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숙련 기반 조직화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노총 내 좌파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들은 저숙련 노동자를 포함하는 산별 조직화를 추진했다. 이 세력들은 결국 1935년 산별노동조합회의(CIO)를 결성하고 산별 조직화를 통해 여성 및 흑인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다. 좌파들의 적극적인 조직화 노력과 더불어 AFL과 CIO 사이의 경쟁은 노동자운동의 급성장을 가져왔다. 로저벨트는 노동자들의 힘이 강력해진 것에 놀란 나머지 파업이 벌어지면 일방적으로 자본가들의 편을 들면서 노조 지도부들의 코포러티즘적 성향을 고무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CIO는 민주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노조 상층 간부들은 전시 ‘무파업 맹세’를 약속하는 대가로 정부 정책을 협의하는 자리에 참가하곤 했다. 이러한 합의는 꽤나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전후 자본과 노동 사이에 산업평화가 도래했다. 산업평화 속에서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냉전정책, 즉 반공주의와 해외침략을 신봉하는 조건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으로 통합되었다. 1947년에 미국 의회는 태프트-하틀리가 발의한 전국노사관계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태프트-하틀리법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사용자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노조의 전술에 심각한 제약을 부과하면서 노조 지도부들에게 더 이상 공산당을 가입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연방정부에 파업중단 명령권을 부여했다. CIO는 서약 강요에 저항하다가 1949년 이에 굴복, 1949-50년 11개의 좌파 성향 노조를 축출했다. 이후에도 5개의 노조가 추가로 CIO를 탈퇴했다. 좌파를 효과적으로 숙청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을 일소하는 데 성공한 결과 실리주의적이고 코포러티즘적인 노조주의 헤게모니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전미자동차노조와 GM 사이에 체결된 ‘디트로이트 협정’이었다. 이 협정에서 노조는 생활임금 인상, 사용자의 건강보험 보장, 연금안을 수용하는 대가로 파업권과 현장통제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나머지 자동차 산업에서도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후 CIO는 1955년 AFL과 재통합했고, 미국노총(AFL-CIO)은 공산주의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했다.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이 심각하게 침식됨으로써 노동자운동이 실질적으로 파괴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곧 자신이 선택한 ‘위험한 동침’의 결과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노조는 냉전정책을 지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안전한” 세계(즉 해외 자본투자)를 만드는 데 조력했지만, 이러한 ‘충성’에 대한 보상은 보잘 것이 없었다. 오히려 1970년대 초반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탈산업화·금융화를 통해 미국 경제 중에서도 노조로 조직된 핵심 부문을 탈노조화하고 중공업을 남반구로 이전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은 노동현장 인구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다. 노조로 조직화된 제조업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는 일자리로 쫓겨났고, 여성ㆍ이주ㆍ비정규ㆍ서비스부문 노동자들이 다수 증가했다. 조직된 조합원을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 집단을 조직할 전략마저 부재한 나머지, 노동조합원 숫자가 급락했다. 1950년대 중반 약 35%에 달하던 노조 조직률은 2009년 현재 12.3%로 추락했고, 민간부문에서는 고작 7.2%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는 처음에는 미국노총 내에서 새로운 조직화 모델의 도입을 촉발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노총의 분리, 더 정확히 말하면 ‘분열’을 촉발했다. 1995년 선출된 존 스위니 신임 지도부는 조직화 모델을 채택했다. 친노동 법제화에 희망을 품고 여전히 민주당을 강력히 지지하긴 했지만, 스위니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서 서비스의 제공이나 분규 처리수단에 의존하는 대신 동원을 선호했다. 그는 또한 미조직 부문의 조직화를 장려하고 지역사회 단체들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스위니의 조직화 모델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토대를 규정하거나 노동조합 운동의 코포러티즘적 태도와 기능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
게다가 스위니는 가맹 노조들로부터 전방위적인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일부 노조는 새로운 조직화 방식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중앙 지도부를 지나친 간섭주의라고 몰아붙이기도 했고, 일부 노조는 높은 액수의 민주당 지지 의무기금에 피로를 호소하기도 했으며, 탈산업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서비스부문에 기반을 둔 일부 노조는 보다 공세적으로 신규 조합원 조직화를 수행할 자유를 원하기도 했다. 뒤의 두 가지 입장을 보인 노조들은 결국 2005년 미국노총을 탈퇴하여 승리혁신동맹을 결성했다. 승리혁신동맹은 스위니가 도입하려고 시도했던 것과 유사한 강령을 표방했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의 분리는 미국노총의 취약함의 반영이자 단결의 토대가 되어야 할 계급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의 반영으로서, 노조의 부활과는 거리가 멀다. 승리혁신동맹의 강령은 민주당에 대한 독립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노동자계급의 정당한 정치적 행동의 발로라기보다는 민주당과의 공조에 대한 일종의 균형추로서 공화당의 환심을 사려는 것으로 종종 드러나곤 했다. 승리혁신동맹의 정치적 요구는 일반적으로 미국노총의 거울상에 불과했다. 승리혁신동맹의 중추 세력인 북미서비스노조(SEIU)가 신규 부문에서 거둔 조직화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와 (정치적 내용이 결여된 맹목적인 ‘조직 몸집 불리기’에 다름 아닌) 일방적인 하향식 조직화 방식, 그리고 유나이트히어와 같은 다른 노조의 내부 분쟁에 대한 개입 등으로 인해 크나 큰 비난에 처해왔다. 2008년 앤디 스턴 위원장은 유나이트히어의 위원장 브루스 레이너가 히어 부문과 갈등을 겪자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레이너 진영에 속한 10만여 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지역지부들은 2009년 3월 유나이트히어를 탈퇴하여 SEIU로 상급단체를 변경, 워커즈유나이티드(Workers United)를 결성했다. 워커즈유나이티드와 유나이트히어는 최근까지 쌍방간 부패와 실정의 책임을 묻는 18개월에 걸친 지난한 법적 분쟁을 벌였다. 미국노총-승리혁신동맹, 유나이트히어-워커즈유나이트 간의 분리는 공히 운동의 역량을 소진시켰다. 또한 이러한 노조의 분리는 노동자운동 내 개별 부문들이 각기 이전에 누려온 협소한 이해에 몰두하는 무능력을 표상한다.
요컨대, 스위니의 개혁 노력과 SEIU가 시도한 조직화 전략은 전후 노자 간 ‘대타협’에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던지려는 지속적인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치적(계급적) 방향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내부 분파 갈등은 상당 부분 이러한 결점의 결과인 셈이다.

미국사회포럼 참가 세력들의 현황

이상에서 미국 노동조합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보면 양대 노총과 그 가맹노조들이 최근 경제위기에 맞서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는 유의미한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를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미국사회포럼에 참가하는 노조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노총, 유나이트히어, SEIU와 기타 노조에 소속된 간부들이 미국사회포럼에 참가하긴 했지만, 이들은 포럼을 다른 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운동을 건설할 호기로 활용하려는 어떠한 통일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공유하고 행동 제안을 결의할 ‘노동조합 간부회의(Labor Caucus)’가 계획되었지만 이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번 포럼에서는 각 노조가 여타 세력과 함께 공동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어떠한 실질적인 기구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사회포럼에 노조만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노조는 미국 사회운동 전반을 대표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미국 노동자운동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노조 이외의 몇몇 운동 세력들은 미국사회포럼에 적극 참여한 것은 물론, 포럼 전후 프로세스를 통해 경제위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주자 권리>
아마도 포럼에서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이주자 권리 운동일 것이다. 이주자 권리 운동은 지역 노동자센터, 지역사회 단체에서부터 거대 NG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은 항상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대개 노조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주자 권리 부문은 애리조나 주가 이주자단속법 SB1070을 채택함으로써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이 법안은 정식 비자가 없이 애리조나 주에 체류 중인 이주자에게 범죄 혐의를 씌우고, 경찰관이 미등록이주자로 의심되는 모든 이들의 신원을 조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SB1070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국에서 대규모로 일어났고, 연방정부도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이 법안은 시행을 하루 앞둔 7월 28일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주자 권리 운동은 SB1070에 반대하는 투쟁 외에도 1,200만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자의 합법화 프로그램을 포함한 포괄적인 이주관련법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이슈는 포럼에서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진 주제였다. 이주자 공동체의 주체화를 목표로 하는 조직화 전략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은 서면 상으로는 포괄적인 이주개혁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입장 역시 이주자에 대한 감시·통제와 더불어 사업장에서 고용 허가 인증을 통과한 이주자만 입국을 허용할 것, 그리고 멕시코 국경의 경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이주자 조직화에 초점을 맞춘 양대 노총 소속 노조들은 투쟁의 주체로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목표를 병행하고 있지 않다. 비노조 이주자 권리 운동에 동참하는 많은 세력들의 경우, 이주자에 대한 공격과 노동자계급 일반에 대한 공격 사이의 연관을 분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일부 이주자 단체가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이주가 이뤄지는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이러한 이해는 투쟁방향에 충분한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향후 노조와 이주자 권리 운동 세력 사이의 상호 교류를 증진하고 양자가 서로 정치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반전운동>
지난 몇 년간 상당히 약화되긴 했어도 반전운동 역시 포럼의 주요 참가 세력 중 하나였다. 다양한 반전 활동가들은 경제위기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범죄 사이의 연관 고리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전비가 아닌 일자리와 공공서비스를!”(Move the Money)이라는 제목의 캠페인에 대해 논의했다. 보스턴 지역의 단체들이 최초로 발의한 이 캠페인은 일자리를 위한 재원 확충과 공공서비스를 요구하면서, 미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역별 투쟁을 연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역에서 투쟁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별 캠페인이 잘 실행된다면 향후 국방예산에 사용되는 돈을 일자리와 공공서비스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적 투쟁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비록 캠페인 규모가 아직 충분히 커지지는 않았지만, 캠페인 조직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반전단체인 평화행동(Peace Action)과 함께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여타 부문으로도 연계망을 확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유색인 노동자계급 단체>
다른 범주와 겹치긴 하지만, 포럼의 또 다른 주요 참가 세력은 필자가가 비노조 반인종주의·유색인 노동자계급 단체라고 부르려고 하는 세력이다. 이 부문에는 전국가사노동자동맹, 노동자공동체전략센터(로스앤젤레스), 아시아공동체조직(CAAAV, 뉴욕), 고용권쟁취민중조직(POWER, 샌프란시스코)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러한 단체들 중 다수는 그 기원을 1960-70년대 민권운동 및 유색인운동에 두고 있으며, 대체로 이들은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인종주의와 보수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노조를 주요 고려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인종주의가 어떻게 교착하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20-30년 전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비노조 조직화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가사노동자를 노동자 범주에 넣고 고급주택 위주의 재개발로 인한 유색인들의 강제 퇴거 문제나 공공운송 이용권과 같은 이슈에 주목하면서 노동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 이주자와 유색인 노동자들을 조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 이러한 운동단체들은 전통적인 노조들과 관계를 맺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다.
5년 전 이 단체들 중 많은 단체들이 선도적으로 나서서 60여 개가 넘는 각종 지방ㆍ지역ㆍ전국 단위 단체들의 전국적 연합체인 풀뿌리세계정의(Grassroots Global Justice)를 결성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빈민ㆍ노동자계급 공동체 속에서 기층 조직화 전략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빈곤, 분쟁, 환경파괴를 야기하는 세계 정치ㆍ경제 세력” 비판을 토대로 국제적인 “변혁적 사회정의 운동”을 건설한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2007년에 개최된 1차 미국사회포럼과 이번 포럼을 조직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2009년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반대 시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비아캄페시나(농민의길), 세계여성행진, 남반구사회동맹과 같은 국제적 반(대안)세계화 운동 세력들과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적 운동의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아마도 풀뿌리세계정의의 참가단체들이 정치적 관점이 꼭 일치하지도 않을 뿐더러 주로 지역별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동원을 위한 통일적인 강령을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규모 면에서나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나 노동조합에 상응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포럼에 참가한 또 다른 비노조 단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세계정의 참가 단체 중 하나인 일자리와정의(Jobs with Justice)라는 전국 단위 단체가 그것이다. 일자리와정의는 더욱 광범위한 경제ㆍ사회 정의라는 맥락에서 노동권을 옹호하기 위해 1987년에 결성된 단체다. 일자리와정의는 노조와 지역사회 단체들 간의 연대를 실질적으로 증진하려고 노력하고, 활동가들 역시 노조의 조직화 캠페인이나 노동현장 투쟁에 직접 지지ㆍ연대한다는 점에서 풀뿌리세계정의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많은 단체들과 구별된다. 일자리와정의는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고, 현재는 미국 전역의 하얏트 호텔에서 임금동결 중단과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유나이트히어의 장기 캠페인을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와정의 각 지부들은 포럼에서 다수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자신들이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캠페인을 홍보하기도 하고,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이주자의 권리 투쟁과 기존 노동자운동의 연대를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일자리와정의는 노동조합들과 함께 포럼 둘째 날 “은행이 아니라 일자리에 돈을”이라는 슬로건 하에 ‘노동자 행진과 집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더 많은 장애물: 개별주의, 오바마, 풀뿌리 우파

불충분하긴 하지만 미국사회포럼을 개관하면서 미국 사회운동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동시에 운동의 역량이 다양한 이슈로 나눠져 있고, 상이한 부문 간에 각자의 이슈에 선행하는 공통 과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도 살펴볼 수 있었다.
미국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적 노선에 비견할 만한 이러한 ‘개별주의’는 노동자계급을 탄압하고 냉전 시기 공산주의를 억압했던 미국 역사의 유산에 다름 아니다. 20세기 전반기 동안 미국에는 진보적 계급 분석이 부재했는데, 이는 미국의 해외전쟁과 국내 인종주의에 대응해서 1960-70년대에 출현한 운동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동안 진행된 투쟁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를 멀리 하면서 종종 단일 이슈에 집중하거나, 또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재분배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유색인ㆍ여성ㆍ성소수자 등 특수한 하위주체(subaltern) 집단의 대표성을 강조하곤 했다. 이 시기 또는 그 이후에 출현한 유색인 운동 내 일부 세력들의 경우 인종적 억압에 대한 분석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결하려고 노력하였고, 또 어떤 집단들은 여성 억압과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을 유사한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지만, 운동의 분열상은 지속되었다. 계급 분석의 결여는 반지성주의적 경향에 의해서 강화되기도 했는데, 반지성주의는 1960년대 구좌파의 교조주의와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억압적 본성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이래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밖에도 미국 운동의 통일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몇 가지 요인들이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비단 노조뿐만 아니라 좌파 일반이 오바마 정부에 반대하는 강력한 투쟁을 펼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 모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망에서 비롯된 문제로서, 오바마가 사상 초유의 흑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바도 아니다. 공화당원과 티파티운동이 조직한 풀뿌리 우파들이 오바마를 악의적이고 때로는 인종주의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좌파들은 오바마를 비판하는 데 훨씬 조심스러워하고 있고, 이로 인해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좌파가 오바마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대안을 제출하는 데 실패하는 와중에, 경기침체기에 터져나온 대중적 불만으로부터 티파티운동이 발전하여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티파티운동 동조자들이 건강보험 개혁이나 정부 지출에 반대하는 몇 차례 집회를 개최하여 언론으로부터 대대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반면, 미국사회포럼과 같은 행사는 어떠한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언론이 차별적으로 반응한 것은 티파티운동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라는 단일한 이념으로 무장한 반면, 좌파의 경우 이러한 이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일부 연유한다. 각 지역 수준 또는 개별 이슈별로 중요한 투쟁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좌파들은 경제위기에 대한 통일적 대응을 건설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결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나 개인이 혼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몇 가지 평가를 진행하고자 한다.
우선, 좌파 세력들이 경제위기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수행하고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노동탄압 및 냉전의 유산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유산이라 함은 미국 노동조합들의 코포러티즘적 노선과 신사회운동이 표방한 개별주의 그리고 좌파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및 이론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감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노조와 비노조 반인종주의·유색인 노동자계급, 그리고 지역사회 단체들 사이가 긴밀해지고 상호 협력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스위니 지도부 시절 미국노총이 이를 처음 시도한 바 있고, SEIU는 이러한 방식을 특정 조직화 캠페인에서 채택했다. 일자리와정의 역시 이러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으며 노조 조직화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매우 지난한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풀뿌리세계정의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과 같은 집단들이 노조와 교류하고, 비전통적인 부문에서 기층 조직화를 위한 집단적 전략을 논의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군사세계화가 개별 억압과 연결되는 맥락과 인종주의ㆍ가부장주의ㆍ이성애주의가 자본주의와 상호 연관되는 맥락에 대한 분석을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끝으로, 일자리와 공공서비스 등 노동권 투쟁은 이주자의 권리 쟁취 투쟁과 반전운동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는 이주자의 권리 쟁취 투쟁이나 반전운동이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고 전국적 규모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이 정부의 재정 지출이나 경제위기 시 노동자 통제 방식과 근본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상의 논의에서 확인하였듯이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실행되고 있다. 강력하고 통일적인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을 배가하는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노동조합 내부와 비노조 노동자계급 좌파 내부에서 지배적인 경향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실현할 구체적 방법은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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