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9-10.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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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와 노동자 운동

현황과 과제

한지원 | 노동자운동연구소(준) 연구실장
동시 진행 중인 두 개의 위기

이윤율 저하를 배경으로 한 경제 위기는 좌파들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던 자본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의 위기가 노동자 운동의 희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고 선언했던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한 대안세계화 운동은 몇 년째 정체되어 있고,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의 노동조합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투쟁이 때때로 승리하기도 하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며, 진정한 성과는 노동자들의 확대되는 단결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의 노동자 운동에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경제 위기는 자본에게도 타협 의지보다는 계급투쟁의 투지를 불태우도록 만든다. 노동자 운동에게 승리보다는 패배가 일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이 확대될 수 있다면 우리 운동은 대안 세계를 위한 한 걸음을 더 내 딛는 것이다.
문제는 일희일비하는 승패를 넘어 노동자 단결을 위한 전략적 과제를 찾는 것이다.

노조운동의 이념과 정체성 - 사회운동노조

지금까지 노동자 운동의 전략과 관련된 논의들은 특정 ‘모델’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 조직이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를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으로 독일 노조 모델을 수입한 산별노조-노동자정당 건설 운동과 유럽의 사회 협약(또는 노사정협약)을 따온 노사정협조주의 전략이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 고성장 시대에 정착된 1950~1960년대 유럽 사민주의 모델을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과 금융 세계화가 한창이던 1990년대 반주변부 국가에서 실현하려 했으니,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려 했던 격이다.
안정적 노사관계를 기초로 한 사민주의 모델은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모두 파탄이 났다. 중앙교섭 쟁취를 중심으로 했던 금속 산별 운동의 정체, 국민정당화의 길로 들어선 진보정당 운동, 이명박식 노사민정으로 희화화된 노사정협약을 보면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에 독일 산별모델을 1990년대 초부터 열정적으로 소개해 왔던 임영일 소장조차도 산별노조운동의 재설계를 주장하고 나섰다. 투쟁에서 사회협약 정치로 중심을 이동할 것을 십여 년간 주장해온 김유선 소장은 이명박 정권에서 노사정 사회협약은 어려우니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야당과 시민운동 진영을 파트너로 사회연대전략을 펴자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시했던 노동자운동 혁신론은 사회운동노조주의다. 이는 20세기 주류를 이룬 노동조합주의가 한편으로는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익의 방어에만 몰두하는 사회경제적 노조주의(실리적 노조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를 정당의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대상으로 간주하는 정당중심적 노조주의 양자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는 기구임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노동자들이 생산 통제, 민주주의, 생태 평화 페미니즘을 배워나가는 학교다.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노동자들의 대중운동을 통해 대안 세계의 이념과 주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운동노조는 소수의 조직 노동자를 위해 다수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비즈니스 노조나 국내 노사관계 제도화를 통해 자본간 국제 경쟁의 하위 파트너로 노동조합을 격하하는 코포러티즘 노조 모두를 지양한다.

국내외 경제전망

지금부터 검토해 봐야 할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된 사회운동노조주의가 최근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도 적합한가 여부다. 모든 노조 노선은 정세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사회운동노조주의는 한국 자본주의가 금융세계화 국면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했던 시기에 등장했다. 이 시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코포러티즘적 약속들을 남발하며 노동자 민중 운동에 환상을 심어주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운동노조주의는 금융세계화에 맞선 국제적 네트워크의 건설, 재벌 대공장 노조의 실리주의, 국민파 지도부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비판 노선으로 정세적 적합성을 획득했다.
그렇다면 금융적 축적의 막바지로 이윤율 저하 궤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세에도 사회운동노조주의는 정세적 적합성을 가질 수 있을까? 먼저, 현재 정세를 보자. 수년간의 저성장/위기 국면이 반복되는 가운데, 중국의 성장 속도, 각국의 정부 재정 위기 진행 과정이 세계 자본주의의 결정적 위기 시기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 지출을 통한 위기 완화는 미봉책일 뿐
이번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었던 장기적 이윤율 저하 추이가 변한 것은 아니다. 각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자본 회전률(자본 조달, 생산, 소비에 걸리는 시간의 역수)을 임시로 높여 이윤율 저하 속도를 잠시 늦춘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적자 재정은 미래의 세금을 담보로 현재의 소비를 늘리는 것일 뿐인데, 정부 지출로 인한 경제 성장 증가가 예상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남유럽 재정위기 사태와 같은 국가 부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헤게모니가 아니라 19세기로의 퇴행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 증가는 착취율을 높여 이윤율 저하 속도를 늦춘다. 중국의 자본 수출과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 증가는 세계적 수준에서 자본 축적 둔화를 늦출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의 경제 성장이 언제까지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감싸 안고 갈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이룬 생산과 경영의 혁신은 전후 세계 자본주의를 재조직할 정도의 힘으로 작용했지만, 20세기 후반 미국 이중적자의 파트너로 성장한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 혁신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중국 폭스콘, 혼다 자동차 부품 공장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성장은 20세기 미국 노동자보다는 19세기 영국 노동자 상태에 가까운 퇴보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럭저럭 버티는 가운데 저성장과 국지적 위기 빈발
세계 경제는 세계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추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미래 세입을 담보로 한 정부 지출과 중국의 성장으로 몇 년간 그럭저럭 버텨나가는 상황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이 당장 1930년대 공황처럼 발전할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발전시켜 놓은 위기 관리 도구들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으며, 중국이라는 변수를 간과하는 것이다.
당장 대공황과 같은 시장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저성장이 계속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무담보 채권, 모기지 파생상품, 주식 등을 통한 신용 확대가 1990년대 이후의 세계 자본주의 성장을 이끌었는데, 더 이상 이러한 신용 확대를 통한 고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자산 시장 활성화, 자금 조달 비용 감소, 생산과 소비 확대라는 금융-실물경제의 성장이 역전되어 자산 시장 침체, 자금 조달 비용 증가, 생산 감소와 소비 축소, 자산 시장 붕괴라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국면이다.
각국 정부들의 공세적 통화 재정 정책이 속도를 늦추고는 있지만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주의의 잠재적 성장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악순환의 속도 조절이 다시금 세계적 경기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많은 통화 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는 점이나, 유럽 재정위기에 이은 유럽 은행 위기가 언급되고 있는 점이 그 예다. 최근에는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이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저임금 착취를 받아온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정세 변수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라, 세계적 차원에서 생산이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은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속했고 그 중에서도 중국은 농민공에 대한 저임금 정책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최근 중국 내 초국적 기업에서 농민공의 파업과 시위가 폭발적으로 전개된 것은 출혈적인 저임금 정책에 맞선 투쟁을 통해 세계적 차원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양하는 실마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 경제 정세의 세 가지 포인트는 재벌의 수탈, 유럽 금융위기, 부동산 거품
한국은 2008년 4/4분기, 2009년 1/4분기 이후 빠르게 경제 성장률을 회복했다. 일부에서는 2010년 6% 이상의 성장을 점치기도 한다. 한국은 2008년 4/4분기부터 증권 시장을 탈출한 미국, 유럽계 금융 자본으로 인해 2009년 초 외환위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2008년 10월 이후 경상수지 흑자와 2009년 중반 이후 국제 금융 시장 위기 완화는 한국 자본주의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① 재벌의 수탈
경제 회복을 주도한 것은 재벌 대기업의 수출이었다. 2008년 6월 400억 달러에서 2009년 1월 243억 달러까지 줄어든 수출은 2010년 5월 다시 400억 달러 선으로 회복되었다. 세계적 무역 감소 속에서도 수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4분기 46.5%에서 2010년 1/4분기 47%로 상승했다. 수출 대기업들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는 100대 대기업의 순이익은 2008년 43.7조원에서 2009년 55.2조원으로 늘어났고, 이들의 순이익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2%에서 5.5%로 크게 늘었다.
재벌 대기업들의 당기순이익 증가는 2009년 환율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늘어나 매출 감소 폭이 적었지만, 그에 반해 비용 절감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들과 중소 부품 업체의 부등가교환으로 인한 가치 이전이 이들 대기업 자본 축적의 중요한 경로 중 하나다. 단적인 예로 현대차는 2009년 매출이 전년에 비해 1% 가량 감소했지만, 오히려 과감한 비용 절감을 통해 영업이익을 19% 가까이 증가시켰다. 2009년 현대차의 납품 단가 인하로 인해 현대차의 상위 10개 부품사의 매출액 감소는 현대차의 매출액 감소에 비해 3배 가까이 되었다.
한국의 경제 구조는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 계열화 구조이며, 정부의 각종 정책 역시 이들 재벌들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제공한 공적자금은 이들 대기업들의 부실 채권을 정리하는데 쓰였고, 당시만 해도 반주변부 국가의 제조업 기업에 불과했던 재벌 대기업들은 이후 현재와 같은 명실상부한 초국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2008~2009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은 세계 경제 위기 와중에서도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한 걸음 더 발전했다. 더군다나 이들 재벌들은 2000년대 호황을 기점으로 주요 자금 조달 경로를 내부 자금 조달로 바꾸어 신용 경색의 영향도 덜 받고 있음이 이번 경제 위기를 통해 드러났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을 계속한다면 이들 대기업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비용 전가를 확대할 것이다. 심지어 이들 재벌 대기업들은 수출 비중이 커 국내 경제 성장률 증감에도 상대적으로 둔하다. 현대차의 경우 2009년 전체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를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고, 생산 역시 국외에서 절반 가량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외 매출이 국내 매출에 4배 가까이 되고, 해외생산 비중도 매출액 대비 절반 가까이 된다.

② 유럽 금융위기
남유럽 재정 위기 이후 더욱 위험도가 커진 유럽 금융 시장은 한국 금융 시장 위험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2009년 말 외국인증권투자 중 33%(1,274억 달러, 약 140조 원)가 유럽계 금융 자본으로 미국보다도 많다. 유럽 금융자본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내 증권투자를 560% 가까이 늘렸고, 또한 경제 위기 시기에는 가장 빠르게 자본을 빼냈는데, 2008년 말에는 2007년 말에 비해 47%의 자본(816억 달러, 당시 환율로 약 110조 원)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2009년 2월 환율은 달러 당 1,560원 선까지 치솟았다. 유럽발 금융 위기 발발 시 한국의 외환위기가 다시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③ 부동산 거품
부동산 거품 붕괴 역시 한국 금융 위기의 뇌관 중 하나다. 은행이 가계에 대출한 주택담보부대출은 500조 원 규모며, 건설사에 대출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50조 원 규모다.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 경우 한국의 일년 국내 총생산의 50%에 가까운 규모의 잠재적 부실 채권이 발생하는 것이며, 상환 및 이자 연체가 발생할 경우 93조 원에 달하는 국내 은행 이자 수익(국내 총생산의 약 30%에 달하는 규모)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자, 건설사, 금융자본 삼자 간의 투기 동맹은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거품을 이끌었다. 은행은 실제 가치가 확정된 것이 아닌 미래의 부동산 개발 기대 수익을 담보로 건설사에게 대출(프로젝트 파이낸싱, PF)을 해주고, 그 부동산의 수요를 높이기 위해 부동산 투자자에게 또 다시 주택담보부대출을 확대해왔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해 건설사는 분양 수익으로 대출 이자를 갚고도 남을 수익을 올리고, 부동산 투자자는 매매 차익을 얻고, 은행은 양자에게 이자 수익을 올리면 문제가 없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여 기대 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3자가 동시에 파산하게 된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은 자산가 계층의 이해도 있지만, 한국 경제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국민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거품을 계속 확대할 수도, 꺼뜨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의 노동현황과 노동조합

한국의 실질 실업률은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0년 2/4분기 실업률은 3.5%로 2008년 1/4분기 3.4%에 근접했다. 2010년 1/4분기 4.7%까지 상승한 실업률이 2/4분기에 들어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 고용률도 2008년 1/4분기 58.5%보다 높은 59.6%다.
하지만 정부 공식 실업률은 실업자의 수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으로 최근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취업준비자, 구직포기자 그리고 취업자로 분류되는 불완전취업자들을 실업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흔히 확장 실업률이라고도 불리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실업지표를 구해 보면 실업률은 2008년 6월 10.7%, 2009년 6월 12.5%, 2010년 6월 12.5%로 경제위기 이후 낮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 통계에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 그리고 취업자 중 18시간 미만 취업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1분기와 2분기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체감 고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수출 재벌을 위한 내핍형 위기 극복으로 임금 및 고용 조건이 악화되어 많은 노동자들이 취업을 포기(혹은 대기)하고, 소비 감소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사업 포기가 속출한 것이 원인이다.

고용 완충 역할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의 원자료를 재가공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 규모는 2008년 3월 858만 명(경제활동인구의 53.6%)에서 2009년 3월 841만 명(52.3%), 2010년 3월 828만 명(49.8%)로 줄어들었다. 정규직은 2008년 3월 741만 명(46.4%)에서 2010년 3월 833만 명(50.2%)로 늘어났다.
비정규직 규모는 2008년 초에 비해 2010년 초 30만 명 가까이 줄었고, 정규직은 92만 명 가까이 늘었다. 비정규직은 제조업, 도소매업, 건설업에서 감소 폭이 매우 컸으며, 정규직은 사업서비스, 도소매업, 운수, 교육, 보건 서비스 분야에서 증가했다. 상용직 증가도 대부분 상용직 평균 임금 이상에서 증가한 것으로 보아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인한 정규직 전환 효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질 임금 감소, 임금 격차 확대
노동부 사업체임금근로시간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 노동자 평균 월임금은 2010년 1/4분기 276만 9천 원으로 2009년 4/4분기에 비해 실질 상승률이 3.2%를 기록했다. 2008년 3/4분기 -2.7%를 시작으로 6분기 연속 실질임금이 하락하다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아직까지 본격적인 임금 회복은 되지 않고 있다. 2008년 1/4분기와 비교하면 실질임금은 여전히 -3.6% 하락한 수준이다.
이러한 감소는 고용 형태별로도 차이가 난다. 고용형태별 근로조사에 따르면 정규직(노동부 기준) 임금은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에 비해 2009년 8.48% 상승하여 0.9% 정도 증가가 있었던 반면, 비정규직(노동부 기준)은 4.98% 상승하여 2.6% 이상의 실질 임금 감소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역시 2007년 월 88만 원에서 2009년 월 1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벌어진 것은 경제 위기로 비정규직의 노동 시간이 크게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의 노동시간은 2007년에 비해 2009년 월 2.5시간 증가한데 반해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은 4시간 줄었다. 더군다나 통상, 수당이 정규직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노동 시간의 감소는 더 큰 임금 격차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노사연이 재구성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2008년 3월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1.2%였으나, 2010년 3월 47.5%까지 하락했다.

이후 전망: 파견근로 확대와 노동시간유연화
한편 정부는 작년 초부터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노동법 재개정과 정부 고용 정책을 논의해 왔다. 정부가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밝히고 있는 장기적 고용 전략은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노동 수요 측면에서는 제조업 일자리 창출이 더 이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며, 노동 공급 측면에서는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대비하여 여성 노동 활용을 위한 상용 단시간 근로 확대와 정년 연장, 그리고 대학 구조조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노동 시장의 효율화를 위해서 임금유연성 확대(성과급 확대)와 고임금 정규직 보호 완화(해고 요건 완화), 실근로시간단축과 변형시간근로제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10년이 넘게 이야기되는 방안들이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확대 방안의 경우 생산자 서비스와 사회 서비스를 예로 들고 있다. 생산자 서비스는 보험, 부동산 등의 금융서비스, 회계 연구개발 등 기업 특정 분야의 외주화된 서비스를 말하는데 금융 서비스는 두 집 건너 보험 설계사가 있고, 상가에 부동산만 넘쳐나는 현실만 보아도 탁상공론임을 알 수 있고, 기업 외주 서비스는 재벌 대기업이 수직 계열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상태에서 그다지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사회 서비스업 확대 방안은 여성 노동자를 상대로 한 저임금 노동 시장만을 만들고 있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실상 정부 부문을 민영화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정부의 서비스업 확대 방안은 일자리 창출의 곤란함을 정부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실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수요 공급 정책보다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정부는 중간착취를 규제하는 직업 안정법을 전면 개정하여 파견중개업을 대형화하고, 파견법개정으로 인한 논란을 우회하기 위해 고용서비스촉진법을 새로 만들어 파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이미 공무원 노동자를 상대로 시범 실시하고 있는 단시간근로시간제 역시 전 산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많은 사업장에서 불법이지만 일반화된 불법 파견 노동자 사용을 아예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며, 자본의 의도만큼 활성화되지 않은 노동시간의 유연화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 보겠다는 것이다. 1990년대 대폭 확대된 노동 유연화의 종점인 셈이다.

노동조합 상황
총연맹 집행부 스스로가 평가하듯이 2009~2010년 대부분의 투쟁은 물리적 파급력이 없는 상징적 투쟁과 지지 연대 정도로 그쳤다. 총노동투쟁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총노동투쟁전선이라 부르는 것은 가장 높은 수위의 집중 투쟁인 총파업에서부터, 대규모 조합원 동원을 통한 위력적 가두 시위, 산별노조부터 단위 사업장에 이르는 임단협 투쟁 시기와 기조의 통일, 조합원들의 결의와 범사회적 지지 여론 조직 등 여러 수위가 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은 총파업은 고사하고 가장 낮은 수위의 전선 구축에도 실패했다.
산별노조의 경우 이명박 정권 이후 더욱 강경해진 자본가들의 태도로 인해 산별교섭 자체가 대부분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민주노총에서 가장 집중적 형태로 산별교섭을 펼쳤던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단체 해산으로 인해 대각선교섭을 진행 중이고, 금속노조는 2만 수준의 중앙교섭 명맥은 이어가고 있지만 완성차 3사와 대공장을 포함한 중앙교섭 투쟁은 사실상 잠정 유보된 상황이다.
금속노조가 최근 조직발전특별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고 있는 바는 2006년 이후 금속 산별노조 완성의 척도처럼 여겨졌던 중앙교섭을 유연화하고, 기업지부 해소를 장기적 과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중앙교섭 참가를 강제할 만한 조직적 제도적 힘이 없는 상황, 현대차지부, 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의 실리가 분명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동의지반도 크지 않은 상황을 당장 타개하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공공운수연맹은 조직을 공공운수노조준비위로 개편하고 오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이후 조직 통합 일정을 밝힐 계획이다. 하지만 통합의 키를 쥐고 있는 운수노조 업종본부(철도본부, 화물연대본부)들이 대대적 탄압을 받아 역동적인 조직 전환을 결의할 상태가 아니고, 공공서비스노조의 전국단위지부들 역시 단협해지와 탄압(사회연대연금지부, 가스공사지부) 속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규모 있는 연맹 직가입 노조들 역시 탄압으로 인해 노조의 생사 기로에 처해있거나(도시철도노조, 발전노조) 어용집행부가 노조를 장악하고 있다(서울지하철). 공공운수 산별 노조 건설의 현실적 장애는 정권의 탄압이지만, 좀 더 근본적 원인은 산별 건설의 동인이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와 자본은 민주노조 진영의 전략적 지역에 탄압을 집중하고 있다. 공공운수연맹의 대규모 사업장들과 금속노조가 그 전략적 타겟이다. 재벌 대기업의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조업 공단의 핵심 노조들에서부터, 파업 파급 효과가 전산업에 미치는 운수 노조들, 초국적 자본 이동에 제약이 되는 외투기업의 노조들, 노조 조직률이 높은 공공기관 노조들에 이르기까지 정권과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노동조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한편 타임오프제로 인해 노조운동 기반에 큰 변화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현재 금속 및 공공 대형 사업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보건의료노조 지부들 중 상당수는 아예 사용자가 타임오프 건을 가지고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타임오프제가 가장 첨예하게 걸린 금속의 경우 현대차 그룹 계열사, 두산그룹 계열, S&T 그룹 계열사 등 재벌 대기업 계열사들이 노조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사업장 수로는 약 80% 가까이가 단협을 타결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60여 개 사업장(대부분 500인 이상)은 8월까지 단협투쟁을 진행 중이다.
타임오프제로 인한 전임자 축소 규모도 문제지만 타결 이후도 문제다. 사회공헌기금 등의 우회로를 통해 합의를 하더라도 이후 전임자에 대한 규제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기존 조합활동이 타임오프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떼를 쓸 수 있다. 단협을 체결했음에도 상근단체 파견에 대한 임금지급을 중단하는 사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철도의 경우 무급전임자에 대해서도 사측이 규모 제한을 두려 하고 있다. 별도의 단협 조항이 없다면 무급전임자에 대해서도 무급휴가 처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비 인상, 사측에서 제공받은 전임자 기금 등으로 전임자 수를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전임자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산별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법 개정이 당분간 어렵다고 전제하면, 현실적으로 버티는 기간이 사회운동을 포기하는 기간이 되어서는 투쟁의 의미가 퇴색해 버린다. 타임오프산정범위 등으로 옭아매면 사실상 노조판 국가보안법이 되는 것이다.

사회운동노조의 노동자 대중운동 강화를 위한 지향

이러한 정세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흐름은 두 가지다. 위기는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고전적 사민주의적 입장과 대공황에는 이행적 강령을 내걸고 사회주의 정당으로 노동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고전적 좌파 입장 등 다시 고전적 방식들이 부활하고 있다. 전자는 복지동맹(민주대연합), 사회연대노조(복지동맹에 참여하는 노동운동 노선으로)등으로 불리고 후자는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 사회변혁적 노조 등으로 불린다. 한편 현실에서는 정치세력들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대공장 노동자들의 실리적 선택이 더욱 많아 있다. 2년간 무쟁의 임단협을 진행한 현대차 노동자들, 타임오프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사측의 선물 공세에 별다른 투쟁을 만들고 있지 못한 기아차 노동자들, 단협효력상실이라는 노조 붕괴 상황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만들지 못하는 발전, 도시철도 등의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대표적 예다.
복지동맹-사회연대노조 전략의 문제점은 복지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로 노동자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상황, 현 정권의 노골적인 친기업, 부자 우선 정책에 대한 분노를 고려할 때 응당 노동자들이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지동맹-사회연대노조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사회운동이 노동자운동을 상대화하는 ‘알리바이’ 역할을 하고, 노동자 간 격차 확대와 분열에 대해 눈을 감도록 한다는 데 있다. 이 전략의 실행 경로가 노조 외부(정당에 대한 특정 시기의 지지)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노조 운동의 우향우에 대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회주의정당-사회변혁노조 전략은 노동자운동 위기의 문제를 오로지 전위당 건설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한계를 보인다. 이같은 맹점으로 인해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복구라는 현실의 대중운동적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세적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운동노조주의 관점에서 중요한 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로 보인다. ①노동자 계급의 분열과 내부 갈등이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② 국제적 대안세계화 운동강화에 복무해 나가며 ③ 정세에 걸맞은 노조 체계와 이념을 다시금 세워나가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경제위기와 노동자 계급의 단결: 연대임금 전략과 투쟁

임노동제에서 노동자 간 갈등의 핵심은 임금 격차다. 이는 급증하는 산업 예비군, 상대적으로 더 보호를 받고 있었던 대기업 노동자들의 보수화 등으로 타협의 여지가 줄어드는 경제 위기 시기에는 더욱 첨예한 문제로 등장한다.
좌파 일각에서는 현 정세를 ‘대공황’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혁신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당장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우리의 정세 분석 결과다. 저성장과 국지적 위기가 한동안 지속된다고 봐야 하고, 그에 걸맞은 투쟁을 논의해야 한다. 즉 한동안은 저성장 시대 핵심 문제로 대두될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한 투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임금 격차를 축소시키면서도 노조의 수동화를 가져오지 않는 방식의 연대임금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연대임금은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물가연동제와 스웨덴 렌 마이드너 모델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1970년대 중반에 도입된 이탈리아 물가연동제는 물가연동 표준 임금(1974년 2,389 리라)을 소비자물가(1974년 8월-10월을 100으로 기준) 인상분만큼 상승시켜 그 정액 인상분을 모든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 전체 임금 평균이 1982년에는 1974년 대비 250% 이상 오르고 임금 격차도 크게 축소했다. 스웨덴 모델은 1950년대 물가 인상과 수출 대기업 경쟁력 저하에 따라 도입된 것으로,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억제, 저임금 노동자 임금 인상, 대규모 복지정책, 한계기업의 퇴출과 구조조정, 정부의 적극적 완전 고용정책 등을 핵심으로 한다. 이 역시 임금 격차 해소에 기여했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1980년대 세계적 저성장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유지되지 못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우 세 노총의 분열, 피아트 노조, 공공부문 독립노조 등 고임금 노동자 층의 저항,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통화동맹 가입 조건에 따른 물가 안정이 1994년 제도 붕괴에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역시 1980년대 고임금 노동자 층이 연대임금으로 인한 임금 억제에 저항하며 비공인 파업을 광범위하게 벌이며 제도가 붕괴했다.
위와 같은 적극적 연대임금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을 연대임금의 한 형태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그리스는 노사 교섭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정부가 이의 적용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형태다. 그리스 노총은 최저임금 인상분 요구를 가지고 매년 파업을 벌여, 평균임금의 40%선까지 최저임금을 끌어올렸다. 프랑스의 경우 평균임금의 50%선까지 최저임금이 보장되는데, 물가인상분과 실질구매력 상승분 등의 지수를 통한 결정과 동시에 정부 재량에 의한 결정권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매년 총연맹은 정부 재량에 의한 인상분 수준을 제한하며,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다.

한국에서의 연대임금
현재 한국 상황에서 1970년대 이탈리아와 같은 연대임금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1969년 대투쟁이라는 대중운동과 1970년대 이탈리아 경제 성장이 만나 만들어진 제도는 현재 대중투쟁 약화, 경제위기라는 한국 조건과 괴리가 크다. 더군다나 1970년대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고임금 노동자들의 반발이 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에서 정규직과 사내하청의 임금 격차는 크지 않았다. 1987년 이전 사내하청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80~90%였다. 울산과 거제의 금속 사업장들에서는 정규직 사내하청이 함께 임단투를 벌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노조 민주화 투쟁과 전투적 임단투 이후 이 격차는 계속 벌어지는데, 연대임금 없이 진행된 노동조합 임단투의 결과다. 현재 현대차의 경우 1차 사내하청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60% 수준이다. 2,3차 하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에서 연대임금투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해볼 수 있다. 먼저 한국노동자운동의 혁신의 중요 사안으로 연대임금을 다시 세워내는 것이다. 수년 전에 노동자운동 내 일부 정파에 의해 연대임금이 정규직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금 조성이라는 형태로 제시된 적이 있다. 사실상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보호 심리를 자극하는 논의 제기였다. 현재 민주노총 임금 요구안에 나오는 연대임금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이용한 “기금 조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해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할을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결하여 함께 요구할 수 있는 제도로 연대임금이 제시되어야 한다. 연대임금을 ‘단결’의 이데올로기로 내세워야 한다.
단결의 이데올로기로 연대임금은 우선 민주노총 차원에서 “재벌에 의한 국민 수탈 저지” 투쟁을 범사회적으로 펼쳐보는 것으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로의 부의 집중과 하청기업 수탈 문제를 노동조합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 문제들로 제기하는 것이다. 내수 육성과 같은 공허한 이야기보다는 재벌들의 이윤을 사회화하며 사내하청 노동자, 부품업체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을 상향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최저임금 실질화
제도적 연대임금으로 최저임금 실질화 투쟁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임금 격차가 매우 크고, 노조 조직률이 낮은 한국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그나마 저임금 노동자들의 보호막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투쟁은 지금까지 여성연맹, 공공서비스노조 등으로 조직된 저임금 노동자들 일부의 투쟁으로만 진행되었다. 하지만 저성장 위기반복 국면이 계속되면 고용, 임금 유연화 정도가 매우 큰 한국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위기 과정에서 위기 비용을 민간 자본이 일정하게 부담하는 방법으로서도 효과가 있고 노동자가 언젠가는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정부 재정 적자 방식보다 바람직하다. 전체 노동자의 42%를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할 점이다.
최저임금투쟁이 총연맹 차원의 연대임금투쟁으로 더 많은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 위원이 사실상 아무런 기준도 없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제도는 문제가 크다. 법적 기준과 정부 재량권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프랑스식 제도가 바람직해 보인다. 현재 정치 구조에서 장기적으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법적 기준으로만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것은 대중운동 활성화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초 발표되는 민주노총 임금 인상 요구액과 최저임금인상액을 동일액수로 맞추며 전국적 임금 요구 설정의 틀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민주노총 임금 요구안은 조합원 생계비 조사를 통해 임금 인상액을 설정하고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을 최저임금요구안으로 만든다. 이 과정부터 하나의 틀이 필요하다. 같은 액수의 정액 인상을 요구하며,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공동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남녀 간 임금격차 문제
마지막으로 연대임금의 다른 핵심 과제로 남녀 간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연대임금은 주로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를 중심으로 언급되지만 격차 수준을 놓고 보면 남녀 간 격차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남성 정규직 대비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38.3%에 불과하고, 남성 비정규직에 비해서도 80%다. 여성 노동자 중 전체 노동자 평균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77%에 이른다.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남녀차별에 관한 법제도가 있으나, 성별 분업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효과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좀 더 복잡한 것은 남성 노동자의 경우 1990년대 후반 노동시장 유연화가 본격화된 이후 임금 계층이 중간층이 두터운 구조에서 저임금과 고임금으로 양극화되는 변화를 보였다면, 여성 노동자의 경우 저임금 계층에 극단적으로 몰려 있던 임금 구조가 저임금부터 고임금까지 고루 확산되는 변화를 보였다. 이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와 중위임금 이상의 여성고용이 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남성 노동자 임금 격차 문제가 중간층이 저임금 층으로 몰리는 문제라면, 여성 노동자 임금 격차 문제는 아예 노조와 노동자운동에서 배제되었던 여성 직무와 여성 업종에 대한 문제이다. 일반적 연대임금과 종별적인 여성 노동권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는 직무, 업종에 대한 노조 조직화와 운동 의제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2011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맞선 대응
제도적 요구로는 우선 2011년 상황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11년 하반기부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다. 현행 노조법은 기본틀부터가 창구단일화의 틀을 기업노조로 설정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거부감과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을 봤을 때 민주노조 사업장 내 어용노조를 만들어 교섭 체계를 흔들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금속, 보건, 공공 등에서 사용자들이 노조를 흔들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기업에서 노조 간 경쟁은 실리적 노조에게 산별의 정치적 교섭 의제들을 회피할 명분을 쥐어줄 수도 있다.
결국 승패는 얼마나 준비된 투쟁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집단교섭 혹은 중앙교섭을 통한 산별노조 임단협이 연대임금 실현에 보다 유리하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임단협 의제 개발이 시급하다. 이러한 사회적 힘을 바탕으로 노조법 재개정 요구를 하고, 산별교섭의 이유를 보다 대중적으로 확인해 나가야 한다.
노조법 재개정 투쟁이 국회 앞에서 진을 치는 투쟁이 아니라 중앙교섭 혹은 전국교섭의 사회적 우위를 확인해 나갈 수 있는 준비에서 비롯된다는 점, 그리고 핵심의제는 임금격차를 줄여볼 수 있는 연대임금 의제라는 점을 본격적으로 토론해봐야 한다.

국제적 대안세계화 운동의 강화

반주변부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에서 일국적 수준의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수 중심 경제 변화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미 초민족기업화된 재벌 대기업, 국내총생산 증감에 90% 가까운 영향을 미치는 수출 비중 등 금융세계화된 21세기 한국 경제 체계에서 내수 중심 전환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우리는 이러한 한국 상황으로 인해 일국적 집권 전략 중심의 대안보다는 국제적 수준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대안 세계화 운동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대안 세계화 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검토를 요한다.
세계사회포럼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새로운 국제 흐름은 현재 정체다. 1994년 북미자유협정 반대 투쟁, 1999년 시애틀 투쟁, 2001년 세계사회포럼으로 이어진 이 흐름은 2007년 이후 정체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더 이상 변화가 없으면 운동이 계속되기 힘들다는 평가도 많이 나오고 있다. 세계경제위기 한 복판에서 열린 2009년 벨렝 세계사회포럼과 2010년 지역사회포럼들은 정세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세계사회포럼을 주도해 왔던 남미와 유럽의 노동자 대중 운동이 침체해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세계경제위기가 남미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 않은 가운데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주요 중도좌파 정권들은 기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절하게 관리하며 사회운동을 국가 정책 내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좌우파 정권 할 것 없이 사회협약을 통한 노사관계 안정화와 정부 경기부양 정책으로 노동자 운동에 대한 코포러티즘적 관리에 일정 부분 성공했다.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한 대안세계화 운동이 왜 한계에 봉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비판적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현재로서는 오히려 대안세계화 운동에 친화적인 노조운동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① G20 투쟁
대안세계화 운동에 친화적인 노조 운동을 위해 올 가을 G20 투쟁을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 의제를 다루는 대중적 운동으로 만들어 보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즉자적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한국 노조 운동을 국제적 운동에 친화적으로 변화시켜본다는 목적 의식 하에 가능한 국제적 운동과 매개할 수 있는 의제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주로 논의되는 국제적 의제는 금융 통제다. 대안세계화 운동 진영과 일부 케인즈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만 이야기되던 은행세, 금융거래세, 금융상품규제 등 여러 정책 대안들이 이제는 우파 정부들의 국제 회의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자본은 실상 금융 규제에 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국제회의 상의 요란한 립 서비스로 무마하며, 실제로는 대형은행의 리스크 관리 수준의 조치들만 취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7월 15일 통과시킨 도드-프랭크 법안은 대형은행에 대한 정부 감시를 높이고 부실은행을 조기에 퇴출시켜 금융 시장 교란 요인을 줄여보겠다는 수준에 불과했다. 국제적으로 공조가 안되고 있다는 이유로 유럽과 미국은 핑퐁 게임을 벌이며 은행세, 금융거래세와 같은 금융 규제안은 회의 석상에만 올려 놓고 있는 상황이다.
G20을 계기로 한국 노동자 운동은 국제적 노동 조건의 상향 평준화를 위한 의제들에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좋은 일자리’, ‘사회보장확대’ 정도로 의제화되어 있는 노동 문제는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자주 제기되는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남반구 노동자와 북반구 노동자의 갈등이나 초국적 기업에 의한 노동권 파괴 앞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지속되고 국지적 위기가 반복될 경우 국제적 노동권 보호 문제는 노조 운동에 있어 핵심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속노조가 작년과 올해 초국적 기업들의 구조조정, 자본 철수로 곤욕을 치루었듯이 경제위기 시기에는 자본 철수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보호무역 혹은 국가 경쟁력 우위를 위한 저임금 경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상징적 수준에서 주요 노조들이 국제적 수준의 노동헌장 제정 운동을 펼치는 것에서부터, 무역협정에서 노동권 기준과 노동권 파괴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의제들의 개발,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 투쟁을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 마련 등 여러 수준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하반기 G20 투쟁을 준비하며 한국 상황과 국제적 흐름을 반영하는 요구들을 만드는 토론이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② 초국적 자본의 구조조정 및 철수에 대한 대응
대안세계화 운동의 다른 경로로 초국적 자본의 구조조정 및 자본 철수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안을 만드는 것도 모색해 볼 일이다. 한국에 있는 초국적 자본의 자본 철수와 구조조정으로 작년부터 금속노조 십여 개의 지회가 심한 타격을 입었다. 공장을 폐쇄한 발레오공조부터 자본 철수 압력으로 노조를 파괴한 발레오만도, 대규모 해고와 임금삭감을 단행한 캐리어, 만도위니아 등 초국적 자본에 의한 피해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에 의한 국외 현지 노동자들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최근 인도 현대차, 포스코 사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사태가 벌어지면 대응하는 현재의 투쟁 방식은 초국적 자본의 휘발성으로 인해 효과를 보기 힘들다.
2~3년 전부터 브라질 CUT와 프랑스 CGT가 양국에 서로 진출해 있는 초국적 기업의 단체교섭, 사회적 의무, 최저임금 적용 방법 등에 대해 사전적 조치를 취하는 전략적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10년에 CUT, CGT는 발레오, 패넥스, 미쉐린, 까르푸 등 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일종의 양자 간 ‘투쟁협정’인 셈이다.
한국 노조 운동 역시 구조조정, 자본 철수 등의 사태가 터지고 난 후 원정투쟁 등을 통해 어려운 싸움을 하는 것보다 위와 같은 방식의 총연맹, 산별 수준에서 초국적 기업과 관련한 장기적 전략, 단체협약 및 기타 의무조항들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을 검토해봐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에 진출해 있는 유럽계 자본의 노조들, 인도 노총과 인도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계 자본의 노조들이 단체협약 또는 노동 기준의 국제화를 이루는 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것이다.

정세에 걸맞은 노조 체계와 이념의 구축

2010년 그 어느 때보다 총연맹의 존재감이 없는 가운데, 총연맹 위상 문제는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 반드시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더군다나 올해 하반기부터 타임오프제로 인해 노동조합 간부들이 어디로 배치되어야 하는지는 모든 노조 조직에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총연맹의 위상
잠시 국외 노조의 사례를 살펴보자. 산업 발전이 일정 수준 이상인 중심국과 반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내셔널 센터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조건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이를 정치세력화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다. 1990년대 초 전노협이 그러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노총이 ABC공단 파업과 이후 전국적 노조 조직화로 정권의 반노조 정책에 맞설 때가 그러했다. 비슷한 시기 남아공노총 역시 아파르트헤이트 체계에서 흑인 노동자의 노조 설립 자체가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인종차별 투쟁에 대한 민중연대 투쟁이 그러했다.
1990년대 이후 브라질 노동자운동은 1980년대와 같은 총파업 투쟁을 통한 전선 구축보다는 PT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에 주력하고, 총연맹의 역할 역시 정당 건설 강화의 센터로서 역할이 커졌다. 정부 민주화로 그나마 노조 교섭 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화되고 산별노조가 대부분의 교섭을 담당하게 되었다.
남아공노총은 1990년대 ANC 집권 이후 정부 집권 세력의 한 파트너로 총연맹의 역할이 커진 경우다. 주로 저임금 흑인 노동자가 조합원의 대다수인 남아공노총은 교섭 수준에서의 안정화보다는 정부 정책을 통한 문제 해결이 여전히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제도적으로 총연맹이 (중앙 및 지방)정부, 사용자 단체와 임금, 연금 등에 관해 의미 있는 교섭을 하거나, 복수노조 상태에서 제도적으로 어느 한 총연맹 소속의 단위노조에게 유리한 조건이 법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총연맹이 사용자단체와 전국단위통합교섭을 하는데, 실업보험 퇴직연금 등의 사회보험관련 문제부터 노동법 개정 사항에 대한 사전 사후 교섭을 주로 한다. 프랑스의 단협 효력확장제도에 의해 교섭은 사실상 전노동자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지방정부들은 지역내 고용 문제나 투자 유치 문제 등으로 노자 대립 문제에 대해 깊숙하게 관여해온 전통이 있는데, 이 때 총연맹의 지역본부가 지방정부 사용자단체와 중요한 교섭을 해왔다.
이탈리아는 1969년 이후 현장 노조 운동이 확대되는 가운데 1970년대 중반부터 물가연동임금제도를 통해 총연맹이 중앙정부, 사용자단체와 물가 통제, 임금 인상 등에 관한 교섭을 해왔다. 1994년 이후 물가연동제가 폐지된 이후 총연맹의 제도적 교섭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20세기 초부터 계속되어 온 이탈리아 노조의 중앙 집중적 전통으로 인해 총연맹에 의한 산별노조 관장력이 유지되는 편이다. 특히 2000년대 베를루스코니 집권 이후 펼쳐진 각종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 많이 펼쳐졌다. 총연맹 지역본부들은 제도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지방정부가 관장하는 각종 보험 기금들에 대해 총연맹 지역본부들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노조 간 경쟁이 첨예한 상황도 총연맹의 역할과 지도력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원인이다. 프랑스는 법률로 보호하는 5개 총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기업 내 노조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고, 전국 교섭이나 산별 교섭에도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탈리아 역시 기업 내 노조 선거에서 주요 총연맹 소속이 아니면 RSU라 불리는 기업단위 노조통합 대표단에 끼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의 정세적 조건과 총연맹
한국의 경우 정부 노동 정책에 의해 크게 변화하는 노동 시장, 국가적, 산업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초기업 교섭, 낮은 노조 조직률 등의 조건으로 총연맹을 강화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위의 국외 사례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다만 유럽과 같이 총연맹이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대한 안정적 개입 경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한계다. 명확한 공동의 투쟁 과제가 있지 않으면 산별노조나 기업별 노조가 총연맹을 경유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총연맹의 지위가 제도적이기보다 운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총연맹 지도력 상실의 원인은 총연맹 지도부의 운동 노선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흔히 양날개론이라 불리는 초기업 교섭 제도화를 핵심으로하는 산별노조, 의회 진출을 통한 집권 세력화라는 노동자정당 건설 운동, 무늬만 코포러티즘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정부에 대한 대립과 참여를 반복하며 노동자 대중운동의 힘보다는 정부의 정책 변화에 의지했던 사회적합의주의 운동 등이 그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의 집행부 노선이 핵심 문제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집행부를 바꾸면 되는 문제인가? 집행부 교체와 더불어 총연맹으로 힘을 모으기 어려운 조건들이 동시에 고민되어야 한다. 하나는 노동자 운동 전반적으로 현재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별 건설 운동에서조차 금속 자동차 지부들과 공공운수연맹 대형 공공기관들이 사실상 저항하고 있는 상태다.
다른 하나는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뿌리 깊은 관념이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민주노조 운동 진영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산별노조 건설이었고, 이는 총연맹에 대해서 산별노조 협의체로서 위상을 암묵적으로 전제했다. 한국에서의 산별은 독일식 산별 모델을 이상화하여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독일식 총연맹-산별은 유럽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다. 많은 다른 나라에서 오히려 총연맹의 역할이 산별노조와 더불어 중요했다.

지역 대중운동의 중심으로 총연맹 지역본부 강화
총연맹의 지도력 재구축은 지도부 문제와 더불어 몇 가지 조직 혁신 ‘운동’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선 지역연대운동의 구심으로서, 총연맹 활동의 집행기구로서 지역본부의 위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노조 조직화, 정세대응을 높일 수 있는 지역 연대의 활성화를 위해서 지역본부와 산별지역본부/지부의 통합적 운영 및 공동기획ㆍ공동집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 지역본부에 대한 인력, 재정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다만 지역본부 강화를 위한 한 조건으로 예산에 대해서만 잠시 살펴본다. 산별노조 연맹과 총연맹 예산을 총연맹 지역본부로 가능한 집중해 사업의 규모를 키워 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예를 들면 금속노조 수입 중 7.6%가 총연맹 납부금으로 올라가고, 이 7.6%의 43%가 지역본부 예산으로 교부된다. 금속노조 예산의 3.3%만이 사실상 금속노조 지역지부와 함께 하는 지역본부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CGIL의 경우를 보자. 금속노조는 조합비를 총연맹에서 교부받는 형식으로 예산을 받는데, 금속노조 조합비는 1%가 총연맹 예산으로, 9%가 총연맹 지역본부로, 16%가 총연맹 지구지역협의회로 분배된다. 금속노조 전체 예산의 25%가 총연맹 지역본부에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역 본부에 대한 기여도가 8배 가까이 된다. 참고로 우리 금속노조의 지역지부에 해당하는 산별 지역본부는 9%, 지역지회에 해당하는 산별노조지구협의회에는 56%가 배정된다. 이탈리아 공공노조의 경우도 규모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산별노조 안정화와 전략적 공동 투쟁 과제 정립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산별노조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별노조를 포기하고 다시 기업별노조로 돌아가자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조직 전환이란 머릿속의 모델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투쟁의 성과와 정세 조건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조직 전환 논리는 관념적 발상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금속노조와 공공운수연맹은 산별건설 운동을 조직 형태를 갖추는 방식에서 공동 투쟁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금속노조의 경우 한국 제조업이 수출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산별노조 운동이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의 제조업 산업 조건은 수직 계열화를 통해 경영혁신을 달성했던 20세기 초 미국 대기업들과 하청 기지 건설을 통한 부등가 교환으로 이윤을 극대화했던 일본 대기업들의 전략을 종합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은 파워트레인(엔진, 변속기) 등의 핵심 부품사를 수직 계열화하며 동시에 국내 2,3차 부품사들을 강하게 수탈하고 있다. 최근 친기업 정부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 내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경제 위기 와중에 재벌 대기업들의 수탈은 국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내 지불 능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기업별 노조로는 재벌 기업 노동자들과 하도급 기업 노동자들의 격차 축소는 고사하고 적대적 대결 구도를 피할 길이 없다.

미국 전미자동차노조의 퇴행 사례
금속노조가 기업별 노조 전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이유는 CIO의 전미자동차노조가 전후 산별노조와 산업 평균 임금 정책을 포기하면서 걸었던 길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유럽식 산별노조로 조직된 CIO는 전쟁 기간 중 정체된 임금 인상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본가와 정권의 탄압을 우회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업별 교섭 전략을 취했다. 지엠, 포드, 크라이슬러 완성차 기업과 5~6개 대형 부품사는 큰 인상을 해줄 여력이 있었지만, 2천여 개에 달했던 하도급 기업들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CIO는 ‘능력만큼의 지불(ability to pay)’이라는 슬로건으로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서 많은 하도급 기업의 노동자들을 조직에서 배제했다. 사회운동노조주의가 비판했던 비즈니스 노조의 세계적 첨병으로의 발전 경로가 시작되었다. 전후부터 1970년대까지 고성장 시기에 전미자동차노조는 완성차와 핵심 부품사, 그리고 일부 하도급 기업들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실리를 챙겨왔지만 1980년대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에 조합원 수는 200만에서 40만까지 줄어들고, 결국 2009년 경제위기 와중에 노조 자체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기존 투쟁에 대한 평가와 대안
무리한 조직 전환과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중앙교섭에 당분간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남은 금속노조의 쟁점은 완성차 지부들과 지역지부의 관계를 대립 관계로 몰고 가지 않을 전략적 공동 투쟁 의제를 만들어 내는 것과 조합원의 구성 비율을 조정하고 계급적 대표성을 높여낼 조직화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금속노조의 공동투쟁 과제는 지금까지 주로 주간연속 2교대제나 노동시간단축 등이었다. 이 중 노동시간 단축은 쟁점이 있는데 노동시간단축 투쟁은 1990년대 독일, 프랑스 등에서 기업노조 혹은 종업원평의회에 비해 영향력이 줄어들어가는 산별노조가 취한 전략 중 하나였다. 독일의 경우 산별협약을 통한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변형근로시간제와 맞물려 결과적으로 노동강도의 강화로 귀결되기도 했지만, 산별 노조의 전략으로는 유럽 대륙 노조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한국 노동자운동에서도 유럽 사례(특히 독일)를 들어 2000년 이후 전략적 투쟁 과제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도 노동시간유연화를 통한 노동 효율성 강화와 시간단축을 통한 고용 증대 방안이 공공연히 이야기된다. 다시 말하면 저성장 시대에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노자간의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대공장과 중소영세사업장 간의 공동 요구가 될 수 있냐는 점이다.
이번 2009년 경제위기 과정에서도 보았듯이 현재 제조업 임금 체계에서는 노동시간이 줄어들 경우 통상, 수당이 뒷받침되는 대공장 노동자보다 시간외 수당에 의해 임금 변동폭이 커지는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가 큰 타격을 입는다. 독일과 같이 산업 평균 임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노조 전략으로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단결과 노조 지위 상승의 매개보다는 오히려 대공장 노동자의 이해만 관철되기 쉽상이다.
저성장 시대의 금속노조는 현대-기아 노조와 금속노조 간의 대결 구도에 대해 고민을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기아 노조와 현대-기아 기업 간의 싸움이 아니라 산별 금속노조와 현대-기아 자본 간의 싸움을 사회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노동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직적 산업 구조에서 금속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의 중심에 현대-기아 자본이 있다. 성장의 열매는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하락의 고통은 중소제조업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조그만 실리의 분배로 완성차 노동자들을 포섭하는 현대-기아 자본에 대한 싸움은 단순히 한 기업에 대한 투쟁이 아니다. 특히 앞으로 많은 고통 전가가 예상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 노조 내에서 이야기되었던 여러 의제들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근절, 자동차 산업 내 노동소득분배율 상향 조정을 위한 사회적 기금 조성, 모비스, 위아, 동희오토 등 무노조 공장에 대한 노무관리정책 변화, 사내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등이 있다. 이러한 의제들을 공허한 정책 선전 수준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완성차지부, 지역지부의 부품업체지회, 금속노조 중앙이 함께 실천적으로 책임지는 투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저성장 국면에서의 손실을 현대-기아 자본 스스로가 지게 하고, 이 과정 속에서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사업장 노동자로 분열되어 있는 금속노조의 ‘단결력’을 높여내는 것이다. 현대-기아의 문제를 현대-기아 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게끔 만드는 것이 내용 있는 산업 차원의 교섭, 투쟁의 과제다.

공공부분의 2010년 공동 투쟁 과제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
공공부문의 노조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정부의 임금 통제로 민간기업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임금을 정상화시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투쟁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이러한 공동 투쟁 속에서 1999년 공익노련, (구)공공연맹, 민철노련이 공공운수연맹을 결성하고, 2006년에는 공공운수연맹, 화물통준위, 민주택시, 민주버스가 산별노조 건설 결의를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부족하게나마 운수노조와 공공서비스노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민간 부문 임금의 정체와 정권의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코포러티즘적 대응으로 민간부분에 비해 오히려 임금과 고용안정 수준이 높아졌고,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대규모 민영화 계획도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과 임금 유연화 정책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동 이해로 자리잡기도 했으나, 대규모 정리해고가 아닌 추가 고용에 대한 감축과 조기 퇴직 확대, 미시적인 임금 유연화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고강도 탄압을 뚫어낼 만큼의 동인을 만들지는 못했다.
공공부문 역시 일각에서는 굳이 무늬만 산별인 조직통합을 할 필요가 있냐고도 주장하지만 현재와 같이 기업별 노조로의 복귀 흐름이 강한 상황에서 공공운수노조를 포기하는 것은 훨씬 해악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전임자임금지급금지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다 내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까지 시행된다면 기업별로 나뉘어져 대응이 가능한 단위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시급한 문제는 수차례의 연맹 대의원대회에서도 드러났듯이, 공공운수노조 건설에 대한 공동의 관심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경우 금속노조와 같은 산별노조에 대한 당위론적 동의지반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제어
경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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