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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7-8.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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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현대차그룹이 나선 민주노조 파괴 프로그램

송민영 | 민주노총 충북본부 총무차장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는 충북의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제조업 사업장의 활동가들이 공공연히 “유성처럼만 하자”며 목표로 삼을 정도로 모범적이고 탄탄한 조직이다. 법에 따라 시행되기 2년 전에 단협을 통한 주5일제 시행, 파업지침을 단 한 차례도 어기지 않고 수행하는 것, 질 나쁜 체육복을 좋은 것처럼 속여 제공한 사측에게 사과를 받아낸 일 등 쓰려면 끝이 없는 숱한 모범사례와 통쾌한 무용담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당당하고 때로는 담담한 조합원들의 태도는 (투박한 문구로만 여겼던)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을 배출한 사업장이기도 하고, 싸워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가깝지 않은 영동에서 청주까지 달려오는 덕에 더욱 각별한 마음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 어긋나도 공권력 투입 강행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에 관한 특별교섭에 들어가면서 ‘사측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말이 들려왔고, 급기야 2시간 부분파업에 사측이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쌍용차 등 대표적인 금속 사업장이 하나 둘 깨져가는 것을 보아왔기에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노조의 발 빠른 대응은 사측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어그러뜨렸다. 사측이 다급해진 와중에 용역이 인도에 있던 조합원을 향해 돌진해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고, 분노한 조합원들은 모두 충남 아산으로 모여 공장 점거에 들어갔다. 물량이 많이 남지 않았고, 생산라인은 멈췄고, 공권력도 투입될 명분이 별로 없는 등 노조에게 유리한 국면이었다. 승리가 멀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공공사업장도 아닌 일개 사기업에 유례없이 빠른 공권력 투입이 이뤄졌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유성기업 노조를 비난하는 연설을 해댔다. 이후 노동부 관계자의 ‘현대차가 피해를 과장해 공권력을 투입했다. 속은 느낌이다’라는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현대차그룹이 실제 노조 파괴 공작의 지도부라는 의혹이 확인되었다. 정부와 자본의 공생관계야 뻔하디 뻔한 것이지만, 유성기업 노조파괴에 청와대는 물론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청구조가 만연한 한국 산업구조에서 많은 노조에게 협박이 되기에 충분하다.


현대기아차, 하청사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이유

유성기업은 결품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시간당 18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도록 돼있다. 하루에 430억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하청부품사인 유성기업이 감당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용역 인력비도 하루에 몇 천 만원이 든다. 유성기업은 왜 이토록 비싼 값을 치러가며 노조를 파괴하려 할까?
배후에 정권과 현대기아차 그룹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된 노조파괴 문건의 한 페이지는 현대기아차에서 직접 작성한 것으로 분석됐다. 워드프로그램으로 작성된 다른 페이지와는 달리 유독 프레젠테이션으로 작성된 그 문건은 유성기업에는 없는 부서가 명시되어 있으며, 유성기업의 노사합의가 현대차 기아차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주간연속2교대제를 현대차 이후 시행 합의할 것을 권고하고, 발레오 사례를 맹신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현대차가 생산중단을 각오하면서까지 거의 독점적으로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사의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이유는 예상이 가능하다. 현대차도 계산기를 두드려 봤으리라. 많은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이 기회에 유성기업 노조를 깨는 게 이익인지, 유성기업을 시작으로 주간연속2교대제를 허용해주고 하루에 공장이 8시간 동안 멈추는 게 이익인지.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는 부품사의 생산계획 뿐 아니라 노동시간, 근무제도에까지 개입하려 든다. 재벌 대기업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노조에 직접적으로 칼날을 들이댄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고 싶다는 소박한 꿈

심야노동을 없애는 주간연속2교대제는 2009년에 이미 노사 간 합의된 내용이다. 2011년 시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열 번이 넘는 교섭에서 사측은 시행에 관련된 구체적인 안을 한 번도 제시하지 않았다.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요구는 몇 년 전 동료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도에 영동공장에서 동료 한 명이 통근버스에서 목숨을 잃었다. 주간연속2교대제를 합의한 2009년 이후에도 아산공장에서만 5명이 돌발사하거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더 편하게 일하겠다는 배부른 요구가 아니라, 죽음과 사고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다.
파업에 돌입하기 전 유성기업 사측이 조합원들에게 뿌리고 다녔던 마타도어 중의 하나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면 임금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안전과 임금을 저울질 하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낮은 기본급과 시간제 임금제도에서 노동자들은 건강과 안전을 팔아가며,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낮은 기본급과 잔업특근에 의존하는 비정상적인 임금체계는 자본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가져다준다. 호황기에는 잔업특근을 늘려 이윤을 극대화하고, 불황기에는 잔업특근을 줄여 실질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위기비용을 전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간연속2교대제와 기본급 인상을 통해 잔업특근 수당의 비중을 줄이는 월급제의 도입은 소박한 꿈이지만 노동-임금 체계를 혁신하는 급진적인 요구다.


민주노조 말살 프로그램을 멈추자

5월 24일, 공권력이 투입되어 5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공장 밖으로 끌려나오는 장면은 결코 패배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겪으며 잔뼈가 굵은 유성기업지회는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고 단결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결코 잃지 않았다. 남행열차를 부르며 경찰차에 올랐다. 연행되어 조사받을 때도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풀려나자마자 조합원들은 아산공장 앞으로 또 다시 집결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조직력이라면 남부럽지 않던 발레오만도도 깨졌고, 장관과 대통령이 나서 파업을 공격했다. 현대차의 엄살로 공권력이 빠르게 투입됐다. 상대가 유성자본 뿐이라면 모를까, 일개 지회가 거대한 현대차그룹과 정권을 상대로 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은 ‘파업-직장폐쇄-공권력투입-노조파괴’로 이어지는 정부와 자본의 노조말살 프로그램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선포하는 승리의 첫 사례가 되어야 한다.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승승장구 했다면, 이제는 우리도 그에 맞서는 승리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성투쟁은 지회, 지부를 넘어 금속노조, 민주노총, 전 민중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유성의 패배는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민주노조의 생명과 자존심을 건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단결과 연대가 노동자의 생명

6월 14일, 지회는 일괄 현장복귀를 선언했다. 사측이 주장하는 선별적 복귀에 맞서 다 같이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출근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5월 18일 직장폐쇄로부터 한 달이 되는 6월 18일, 민주노총 충북본부 주최의 결의대회와 진보정당, 단체들이 주최한 문화제가 진행됐다. 조합원들은 현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한 달 넘게 현장을 떠나 공장 앞에서, 비닐하우스 안에서 지내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들의 고생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끼 밥값도 만만치 않아 믹스커피 살 돈도 없어서 믹스커피를 후원받는 희망커피운동까지 벌일 정도다. 극한의 상황까지 몰린 것은 노조도, 유성자본도 마찬가지다. 유성기업 관리자들은 퇴근도 하지 못한 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얼마 전 작업 중 부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성년자 용역을 고용하고, 망루를 설치하고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입구를 막았다. 18일 집회 도중 용역이 던진 소화기와 돌이 집회 대오를 향해 날아올 정도로 노-사 관계는 긴장이 극에 달해있다.
공권력 침탈 직후 공장 앞에 내걸린 현수막의 문구가 기억난다. “지회는 지난 20여 년의 노조 역사상 단결과 연대를 노동자의 생명으로 알고 투쟁해왔습니다. 이랬던 저희들의 투쟁이 진실이었음을 전국의 동지들이 증명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연대투쟁을 벌여온 유성기업지회에게 우리가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도 유성투쟁을 열심히 뒷받침하고 지원하고 있다. 매일 아침 공단 입구 선전전, 경찰청 앞 1인 시위, 현대차-기아차 지점 앞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으며, 시기 별 청주 시내나 아산공장 앞 집중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충북의 사업장들도 임단투로 바쁜 시기지만 여력을 모아 민주노조 사수투쟁에 힘쓰고 있다. 충남도 마찬가지로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다. 충청권 뿐 아니라 금속노조, 민주노총 차원의 집중력 있는 싸움, 현대차-기아차의 연대투쟁 등 활로를 뚫는 투쟁이 절실하다. 대통령과 현대차그룹이 나섰다면, 이쪽에서도 그에 걸맞은 연대투쟁의 태세로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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