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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7-8.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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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_서평_우지영.pdf

반핵운동가·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시민과학자로 살다』를 읽고

우지영 | 회원
올해 3월 일본 대지진 후 한국에 처음 비가 내릴 때 사람들은 심각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방사능을 해독시켜준다는 요오드가 함유된 약품이 약국에서 동나고 사람들은 비를 한 방울이라도 피하기 위해 우비와 우산으로 무장을 했다. 그러나 두어 달이 지나 간간히 가랑비가 내리는 때 우산 없이 종종걸음을 걷는 이들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이는 것을 보면 방사능위험은 일상 속에서 묻혀가고 있는 듯 하다. 방사능이 오지 말라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체념과 함께 말이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 사건의 원인이 된 무분별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분노는 어디로 가고, 어째서 그때의 공포와 분노를 오히려 한때의 호들갑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원자력발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근본적 결함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는 과거의 ‘원자력은 관리만 잘 하면 안전하고 좋은 에너지원’이라는 믿음은 사라지지 않고 원자력발전 지지의 흐름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 문제 인식이라는 토대 없는 분노는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기 쉬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호들갑’을 떨 수 있으며 그 호들갑이 근본적 문제 해결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때 지식인, 전문가들을 생각해본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포함한 환경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심도 있는 전공공부가 필요하기에 일반인의 접근성이 낮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은 거대자본과 정부의 시각에 따라 발전되고 실현되고 있다.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녹색평론사, 2011)은 일본의 반핵운동가로 살아온 다카기 진자부로가 원자력발전 신화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책이다. 원자력발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책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원자력발전의 장점에 대해 그는 만들어진 신화적 믿음이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각각 신화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먼저 이번 일본 대지진 사고로 완전히 무너진 안전신화를 살펴보면 애초에 그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 수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1975년에 발표한 에서는 원자로에 거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대체로 매우 낮다고 말한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자 라스뭇센 교수 등은 거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양키스타디움에 운석이 떨어질 확률보다도 낮다”고 했다. 이 말은 원자력 안전에 대한 보증수표처럼 쓰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0년에 한 번 꼴로 대사고가 있었다. 원자로의 거대사고는 ‘당첨이냐 아니냐’라는 복권식 확률로 계산될 수 없다. 일본에서도 몇 번의 원자로 사고로 인해 더 이상 기술적으로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다중방호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이는 큰 폭발이 있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원자력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일본정부는 몬쥬 사고 이후에 원자력 안전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몬쥬 사고의 조사심의를 통해서 일반사회가 말하는 ‘안심’이라는 것과 기술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안전’이라는 것, 두 가지 ‘안전’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으며 … 원자력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과 원자력 사업자도 ‘안전’뿐만 아니라 ‘안심’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진정한 안전을 달성하려면 비전문가라도 납득할 수 있는 ‘안심’이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안전백서 발표 1년 이후 JCO 사고에서 더 이상 일본정부는 원자력의 기술적 안전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몬쥬 사고 이후 원전이 집중되어 있는 현 지사들이 내각총리대신에게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등 원자력 안전의 불신이 점차 퍼져나가고 더 이상 원자력사고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신화를 알아보자. ‘원자력은 관리만 잘 하면 청정한 대체에너지’ 라는 신화다. 그러나 이 신화 역시 허구적이다. 대체에너지는 석유위기와 환경오염에 대응하여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원자력은 과연 대체에너지가 될 수 있는가? 먼저 원자력이 대체에너지로 등장한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석유위기는 원자력발전의 타당성을 위한 카드로 쓰였다. 실제 석유위기가 있었으나 그 대안이 원자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원자력은 일본의 1차 에너지 공급량에서 13%밖에 차지하지 않는다(석유 53%, 석탄 17%). 그리고 원자력은 전력 형태로만 사용될 수 있어 석유에 비해 융통성이 매우 떨어진다. ‘청정’에 있어서도 원전 증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온난화 방지를 위해 화력발전에서 원자력발전으로 전환하자고 하는 것은 에너지 전환 부문인 발전부문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전환 부문 자체가 실은 이산화탄소 배출에서 10% 이하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발전에서 원자력 비율이 50% 가까이 된다 해도 그것으로는 전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대량 배출형인 이 사회를 크게 전환시킬 수 없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오늘의 사회가 석유의존형 사회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은 운수부문에서 증가하기에 원전을 늘리는 것보다 자가용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것이 더 큰 이산화탄소 억제효과를 낳는다.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라는 위험요인에 못지않은 방사능으로 또 다른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원전에서 1킬로와트시(1kW/h) 발전하는 데 약 10만 베크렐의 방사능이 나온다. 큰 사고로 여겨지지 않는 일상적인 노동자 피폭만 보아도 원자력발전이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다.
더불어 ‘태양이 아닌 원자로부터 얻어내는 무한한 에너지’라는 신화 또한 그 실상을 살펴보면, 일단 원자력발전의 원료가 되는 천연 우라늄은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다. 또한 한번 사용된 뒤 발생하는 플루토늄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하나 그 시도의 하나인 고속증식로 몬쥬 실험로는 사고를 일으키고 이제 그 기술은 사장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원자력발전이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게 되었는가? 원자력에너지의 상업적 이용은 미국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이 배경이다. 1953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아이젠하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정치적인 선언을 했다. 핵의 군사적 이용이나 수평적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 미국 또는 미·소가 함께 주체가 되어 다른 국가들이 원자력에 대한 상업적 이용으로 눈을 돌리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산업적 필연성이 없었던 원자력 이용은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사업의 타당성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신화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책에서는 이 외에도 ‘원자력 발전은 경제적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지역발전에 기여한다’, ‘원자력의 평화이용은 가능하다’라는 여러 신화들을 파헤치고 있다.
한국은 원자력발전 6위국이다. 작은 나라에 21개의 원자로가 있다. 2005년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설치 지역 선정으로 지역 간 갈등이 극에 치달았고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방폐장을 건설 중인 경주는 불안전한 지반임이 밝혀지고 있다. 이렇듯 원자력발전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신화들로 인해, 특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라는 선전문구로 인해, 원자력발전은 필요하다는 여론을 잃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일어난 원자로 폭발사고를 옆에서 보아도 한국은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카기 진자부로의 원자력발전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도 유효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의 시스템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원자력 안전의 허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도 원자력발전의 다중방호시스템을 설명할라치면 원자로의 구조를 이야기해야 하고 사람들은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에 외면하게 된다. ‘전문적’인 이야기를 ‘시민’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군축이나 환경 등 시민이 관심을 갖는 분야를 ‘시민과학’이라고 하고 그것을 연구하고 운동하는 이가 바로 시민과학자이다. 『시민과학자로 살다』(녹색평론사, 2011)는 다카기 진자부로의 자서전이다. 됴쿄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그가 어떻게 대학조교수라는 엘리트 지식인의 길에서 나와 시민과학자로 살게 되었는지, 시민과학자의 삶은 어떠하였는지를 이야기한다.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내용들에 대한 지식과 동시에 시민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다카기 진자부로와 같은 ‘시민 과학자’의 노력이 대중의 분노와 불안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인 행동으로 바꾸는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지식인, 전문가가 운동에 발을 들이면 곧 ‘학문연구냐 직접적인 행동이냐’라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자서전에는 시계와 쇠망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과학자와 전문가는 정밀기계인 시계로, 대중행동의 주민운동은 쇠망치로 비유하며 시계를 쇠망치 대신으로 쓰다가는 시계만 망가뜨리게 되고 결국 시계도 쇠망치도 안 된다는 비판을 듣는다. 시계와 쇠망치로 이분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계냐, 쇠망치냐는 고민은 운동을 하는 지식인, 전문가가 부딪히는 문제일 것이다. 다카기는 “적어도 쇠망치가 될 수 있는 시계가 되고 싶습니다. 시계가 망가지더라도 최소한 쇠못의 역할만이라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한다. 더불어 절대로 ‘망가진 시계’가 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일본 반핵운동의 1세대인 다카기 진자부로는 반핵운동가이자 시민과학자로 양쪽 모두를 삶 속에서 실천한 인물이다. 원자력발전의 신화를 깨부수고 싶은 이들, 파편화된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고단한 이들에게 다카기 진자부로의 두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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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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