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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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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 원칙 마련을 위한 토론회

류미경 | 정책부장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가 그동안 조직보위 논리로 은폐, 왜곡되어왔던 성폭력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가해자들의 실명을 공개한 이후, 운동진영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각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이 성폭력, 가부장성등 여성활동가들을 억압하는 구조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고, 은폐되었던 성폭력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으며,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각 단체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또한 성폭력 근절이 각 조직의 활동에서 일상화될 수 있도록 '규약'을 제정하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노조 집행부에 의해 가해자가 조직적으로 옹호되고 있는 한편,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되는 등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은폐되고 왜곡되는 전형을 보여주는 'KBS노조 부위원장 강철구 성폭력 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하여 20개 시민·사회·노동 단체들이 모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활동이 전개되면서 그동안 운동사회내에 전무(全無)했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원칙이 세워지고 합의를 모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23일 'KBS노조부위원장 강철구 성폭력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및 여성단체들의 공동주최로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 원칙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5월 23일에 열렸다. 그 자리에서 50여명의 참석자들은 그동안 운동진영내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착종된 논의들을 정리하고 합의점들을 확인해갔다.


<b>성폭력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b>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변황혜정(한국 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화여대 '성문화'강사)씨는, '남성중심적인 성폭력의 구성요건, 이에 대한 통념들, 성폭력에 대한 현행법이 갖고 있는 문제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인 '성폭력'이 성폭력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는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성폭력의 개념에 대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에 반한 행위, 원하지 않는 성적 언동'이라고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놓고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대립이 성별 대립으로까지 이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이러한 문제가 '성폭력 범죄에서 남녀 관계라는 특수성, 즉 제3자가 있을 수 없고, 증거도 없는 성폭력 피해에 대하여 대부분의 경우에 이러한 특수성은 무시되고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는 현실'에서 빚어지는 것이라며, '성폭력 범죄의 남성 중심성을 드러내어 역으로, 여성의 피해경험이 왜 거짓인지를 가해자로 하여금 입증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 받는 사람이, 자신의 성적 제의에 피해자가 동의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오해를 벗어나기 위하여 성적 제의를 한 사람은 동의의 증거를 남겨둘 정도로의 성인식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함'을 덧붙여 언급하였다. 반성폭력운동이 성폭력을 '다루는'운동이 아니라 성폭력을 '끝내는'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둘러싸고 관통되는 성별권력의 문제를 과연 어느 정도 풀어 가는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운동사회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의 발생과 해결의 양상을 분석하고, 해결의 원칙을 수립하기 위해 구체화되어야 할 지점을 확인하는 내용의 김혜란(한노정연 사무처장)씨의 주제발표가 진행되었다. 발표자는 '운동사회의 조직과 권력구조가 남성중심적으로 위계되어 있고, 남성활동가들이 여성활동가를 동지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경향속에서, 운동적 신뢰관계가 여성이 성폭력에 노출되는 과정이었다'고 분석했다. 운동사회내 성폭력 사건의 특징으로, 사건이 발생하면 주변인들은 조직보위의 논리에 따라 가능한 조용히 해결하고자 하며, 가해자는 가해자로 확인된 이후에도 크게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반면 피해자는 자신의 운동 전반을 회의하며 활동이 왜소화되는 경향을 드러낸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한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에게는 변명의 구조가 끊임없이 뒷받침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덧붙여 조직보위의 논리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와 남성중심적 조직의 해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100인위의 발표 이후 몇몇 사건에 대한 해결의 과정에서 자리매김되고 있는 해결방식에 대해 분석하였다. 발표자는 '공대위, 대책위 등 공동 대응기구 구성', '피해자중심주의', '재발방지의 의미에서 피해자 접근금지, 실명공개, 사후감시', '처벌의 의미에서 활동정지, 물질적 배상, 2차가해에 대한 처벌'등이 원칙으로 자리잡히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b>성폭력 사건 해결에 모든 운동사회 구성원들이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야</b>

뒤이어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KBS 노조부위원장 강철구 성폭력사건'에 대하여 시타(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원회)는 운동사회의 구성원들 모두가 책임 있는 주체로 사건 해결에 나서는 것이 운동사회 성폭력의 올바른 해결방식임을 확인시켜준 사례였다고 했다. 또한 이 사건은 운동진영 내에서의 성폭력 사건이 왜 더욱 해결이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발표자는 '가해자 실명공개'를 '피해자들이 성폭력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실질적인 사건 해결'로 연결시키기 위해 수많은 장벽이 존재함을 드러냈다.

우선, '현행법보다 나은 원칙을 전혀 가지고 있지도 못하면서 현행법을 무시하는 운동진영의 문화는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의 손발만 묶었을 뿐 가해자의 명예훼손 고소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행사하지도 못했고', '그동안 진보진영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여성운동단체들의 "노조의 자정능력을 믿어보자"는 입장 역시 피해자들을 좌절하게 했다고 했다. 더구나, 운동사회의 특수성을 악용한 가해자 나름의 전략이 적극적으로 구사되고, 이러한 가해자의 전략에 조직이 호응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성폭력 사건이 제기될 때마다 뒤따랐던 '정치적 음해론'이니 '배후설'등이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운동사회 구성원들의 주체적 연대행동과 여성운동단체와의 신속하고 긴밀한 공동행동'이 사건해결의 원칙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례발표는 마무리되었다.


<b>성폭력방지규약 제정 및 정기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 실시해야</b>

뒤이어 운동사회의 가부장성과 성폭력 문제를 스스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한 원칙을 '내규'로 정리한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의 사례와 조직내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에 관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사례 발표가 진행되었다. 민언련의 사례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동정 여론의 우세', '사건 은폐 시도'등이 예외 없이 드러났으며, 특히 성폭력 방지 규약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대책위의 결정이 상부단위에서 번복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음을 확인하였다.


<b>몇 가지 원칙들</b>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합의되어야 할 몇 가지 원칙에 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한창 논란이 되었던 '피해자 중심주의'와 관련하여서는, '성폭력사건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한 종료하는 시점에서 피해자의 입장이 일차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며, 피해자/가해자의 주장이 엇갈릴 경우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해되어야 함이 확인되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가해자에 대한 재활교육'과 관련된 문제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가해자가 얼만만큼의 근신을 해야 활동에 복귀하도록 허락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피해자가 어떻게 하면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임을 확인하였다. 객석의 한 활동가는 "성폭력 사건 해결의 모범으로 언급되는 수원대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징계 기간 중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계발해가며 징계에 적극적으로 임했으며 자신의 재활에 대한 책임을 대책위에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가해자 재활을 담당했던 여성활동가들은 또 다른 피해를 입었다."고 언급하며,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가해자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뒤이어, '여성에게 가해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폭력, 폭언 등까지도 성폭력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2차 가해의 범위를 '피해자의 경험을 축소/왜곡해서 모욕감을 주는 등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행위', '가해자를 공공연히 옹호하는 등 사건해결 자체를 저해하는 행위'등으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대략 3시간 동안의 발표와 토론을 통하여 확인된 것은 운동사회 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하여 여성들간의, 각 단체들간의 연대가 절실하다는 점이었다. 발생한 사건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데에 운동진영 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은 물론, 성폭력 예방을 위한 규약을 공동으로 재정하는 등 서로의 노력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과정을 통해, 반성폭력 운동이 피해여성들만의 왜소한 싸움이 아닌 운동사회내의 성차에 기반한 관계를 재구조화하고 운동사회 전반을 쇄신하는 투쟁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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