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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10.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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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와 희망버스

이동규 |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지부 사무국장
2011년 7월 30일. 부산의 길목 길목들에서는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찰은 영도로 들어가는 모든 버스를 통제했고 이미 탑승한 승객마저 강제로 끌어내려졌다. 승용차는 물론 오토바이까지 검문 받았고 심지어 걸어가는 사람도 신분증 검사를 하여, 영도주민이 아니면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 희망의 버스를 ‘절망의 버스’라고 외치며 가만둘 수 없다는 ‘어버이연합’도 이에 가담했다. 용역깡패와 어버이연합은 희망버스 참가자나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공권력은 이를 방관하다가 시민들이 항의하면 느릿느릿 나타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거들 뿐이었다.
이런 난리통을 거치며 겨우겨우 희망버스가 도착한 영도 안의 상황은 더욱 가관이었다. 2차 희망버스에서 시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도로는 여전히 경찰의 차벽에 의해 막혀있고, 그토록 가고 싶던 85호 크레인이 있는 한진중공업과 3차 희망버스의 집결지인 청학성당으로 가는 모든 골목까지 경찰에 의해 차단되어 있었다. 심지어 한두 명이 통과할만한 골목에도 경찰을 배치하여 영도를 원천봉쇄 하고 있었다. 경찰은 7,000여명의 경찰을 배치하여 그야말로 영도의 모든 길을 꽁꽁 틀어막았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이 모든 사건은 2011년 1월 한진중공업이 400여 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한진중공업은 3년 동안 수주를 하지 못하여 경영상의 위기가 왔다는 이유로 400여 명을 정리해고 할 수밖에 없다면서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였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의 지도위원이자 한진중공업의 해고자인 김진숙 동지는 “나는 한진 조합원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조합원을 지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2011년 1월 6일 새벽 85호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하였다.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은 단순한 크레인이 아니다. 2003년 129일 농성끝에 김주익 열사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리이다. 그리고 그 때 그 참혹했던 자리로 김진숙 지도위원이 다시 오른지 벌써 230일이 지났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지금까지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사측의 구사대와 용역들로부터 공장 밖으로 끌려나온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은 정리해고철폐투쟁위원회(정투위)를 조직하여 지금도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공장 건너편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희망버스의 출발

희망버스에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희망버스를 만들었던 것은 주류언론이 통제할 수 없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트위터로 전해지는 한진중공업의 소식은 그 어느 언론사의 신문보다 더 빠르고 정확했다. 사측과 언론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만들어냈지만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외국에서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1차 희망버스가 부산에 도착하는 날. 한진중공업 조합원과 연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한진중공업 조선소 안에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희망버스가 영도조선소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끝낸 상황이었다. 용역을 동원하여 사수대가 지키고 있던 동, 서, 정문을 침탈했고 컨테이너 벽을 쌓아 외부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게다가 85호 크레인마저도 침탈하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조선소 안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선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적은 숫자로 용역과 어렵게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희망버스 참가단이 조선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은 점차 많은 숫자가 되었고 결국 전세는 역전되었다. 상황이 크게 바뀌면서 조선소 안에 있던 용역들은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후 2차 희망버스는 경찰의 최루액, 물대포, 살수차 등 폭력진압에 가로막혀 한진중공업까지 닿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밤새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가 있었다. 3차 희망버스 때는 경찰이 아예 영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리고 8월 27일, 4차 희망의 버스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

1, 2, 3차 희망버스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가 전국적인 문제가 되면서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이 마지못해 8월 18일 청문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간절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전부터 밤까지 이어졌던 청문회에서 조남호 회장은 답변자세, 화법, 자세, 표정 등을 적어놓은 '청문회 대응문건'을 준비하고, 8월 초 기자회견과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는 절대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청문회에서도 확인했듯이, 정리해고를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측에 맞서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정투위의 투쟁은 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매일 저녁 7시 30분 한진중공업 길 건너편에서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희망버스

4차 희망버스는 영도가 아닌 서울로 떠났다. 앞으로도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를 철회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희망버스가 조금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적인 바람을 적어본다.
무엇보다도 먼저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을 향하여 출발하던 그 본래의 의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 희망버스는 주식배당금 등의 기업과 임원의 이익은 다 챙기면서도 경영위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고집하는 한진중공업에 대한 분노와,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조합원을 지키기 위해 35미터 상공의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지도위원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부산 영도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희망버스에 어떤 사람이 참가를 하든 간에 이 목적을 잃어서는 안 된다.
희망버스는 정당에서도 많은 참가를 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유명정치인의 참가가 많이 조명되고 있다. 물론 더욱 많은 사람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 참가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정치인들에게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의 투쟁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한진 정리해고 철회 투쟁이 내년 선거에서 또다시 무원칙한 반MB 신자유주의 선거연합에 한 소잿거리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산자와 죽은 자로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크레인에 올랐다. 그리고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절망하지 않고, 85호 크레인 밑을 지켜왔기 때문에 지금의 투쟁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어디를 봐도 대중투쟁은 힘들고 지친 상태다. 누구도 이렇다 할 투쟁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런 와중에 희망버스로 이름 지어진 한진투쟁은 말 그대로 우리의 희망이다. 우리는 희망버스로 모아지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한진중공업을 넘어, 전국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리해고 문제뿐만 아니라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간접고용 철폐 등 기본적인 노동권 쟁취를 위한 목소리도 함께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그 길만이 한진 투쟁을 전국적인 연대의 힘으로 지켜내는 일이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노동자 민중에게 한진 투쟁이 희망이 되는 길일 것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김진숙 지도위원의 외침은 절절한 외침에 맞서는 자본 측의 역공세는 참으로 터무니없고 치졸한 양상이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느니, 해고자 한명이 ‘한진중공업을 망하게 한다’, ‘나라 망할 일이다’는 둥. 하지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은 이미 <추적 60분> 등의 언론 보도와 청문회를 통해서 만천 하에 드러났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물론 정리해고 자체가 부당하다.)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면서 임원의 임금을 인상하거나, 3년간 못 받은 수주를 정리해고 다음에 발표하는 모습들만 봐도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 수 있다. 적자가 난 부분은 조선부분이 아니라 건설부분이다. 또 수빅 조선소 등에 과도한 투자를 벌여 발생한 막대한 이자 부담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명확히 영업외 비용 적자이다. 이런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를 합리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해고문제는‘경영자의 권리’와 같이 사고된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것이지 어쩌겠냐’는 식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유를 불문하고 해고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일까? 사장님, 회장님이 짜르면 노동자들은 그냥 포기해야하는가? 해고는 신성불가침인가?
2009년, 쌍용자동차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치며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벌였다. 그 힘겨운 투쟁의 끝에 얻어낸 합의안이 461명의 무급휴직이었다. 하지만 1년의 무급휴직을 거쳐 노동자들을 순차적으로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지금까지 15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차례로 죽었다.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해고가 개인을 넘어 가정까지 파탄 내는 사실상의 살인행위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정리해고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선 안 된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은 해고가 발생하고 있다.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며 해고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사측은 언제나 기업의 이익, 경영의 위기, 유연성과 효율성을 내세우며 손쉽게 해고를 자행한다. 때로는 계약만료, 업체 변경 등을 이유로 명백한 해고마저 해고가 아닌 것으로 둔갑시킨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현 사회는 ‘너무나 경직되어서, 효율적이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의 막대한 이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생을 강요받고, 생존권과 노동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리해고 문제를 단지 개인의 희생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 우리에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절절하지만 단순한 외침, ‘정리해고 철회하라’. 이것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만을 위한 외침이 아니다. 그것은 정리해고를 일삼는 이 땅의 자본과 그것에 저항하고자 하는 노동자 민중을 향한 외침이다. 그래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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