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9-10.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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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노동자민중의 대안인가

자본에 맞선 노동권 생존권 투쟁을 강화하자

최윤정 | 정책위원
무상급식, 반값등록금과 같은 단일 이슈 중심의 ‘복지’ 담론과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사회모델로서 ‘복지국가’ 담론을 구분지어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참여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 담론을 다룬다. 논자들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들의 공통된 문제인식은 신자유주의가 빈곤층의 확대, 비정규직 양산 등 다양한 사회적 위험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다양한 논자들이 제기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에 대해 일정 정도의 컨센서스가 존재하는데 ▲노동과 기업 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와 편중 심화를 극복하기 위한 공정한 경제를 실현하고, ▲노동유연화를 지양하고 고용안정과 임금격차의 축소를 도모하며, ▲교육비, 의료비, 주택마련과 관련한 국민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한 공정한 재정 마련 방안이 제기되는데 논자들마다 관점이나 방법은 다르다.
복지국가 담론은 이념적 차원과 야권연대라는 정치적 전략 차원의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복지국가론자들은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정권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야권연대나 민주대연합을 주장한다. 한편,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야권연대를 위한 내용적 매개로 복지국가 담론을 활용한다. 한편, 7월 20일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를 포함한 3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시민사회 연석회의’가 결성되었다. 연석회의는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7대 기본원칙과 15대 의제(참고 1)를 발표하고 정기국회에서부터 법 제도 개선과 예산확보를 요구, 총·대선에서 쟁점화하기로 했다. 2단계 복지국가 비전(5개년 계획) 수립, 시민문화제 등을 추진하고 10월 말 본부와 지역본부를 결성한 뒤 총·대선에서 복지정책과 관련해 정치세력을 견인·견제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복지국가 담론이 확산되고 있는가. 복지국가 담론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빈곤이 심화되고 민중의 삶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복지국가가 현재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복지국가의 모순

복지국가론자들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말하며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안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가 있다. 1970년대 말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전환은 완전고용의 포기, 복지혜택의 축소, 민영화 등을 의미했고 이는 복지국가의 위기를 의미했다. 이로 인해 실업자, 빈곤층이 증가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그 와중에 미국-영국의 자유주의 복지국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보수주의 복지국가보다는 스웨덴과 같은 사민주의 복지국가가 불평등지수도 가장 낮고,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지출을 유지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위험에 대한 적응력이 가장 높았다, 따라서 영미식 복지국가의 잔여적 복지보다는 스웨덴과 같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복지국가의 내재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회 또는 완화한다고 해서 복지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거나, 한국의 경우 복지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국가가 내부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었는데 세계화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실행되었기 때문에 위기가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복지국가에 모순이 내재했고, 이윤율 하락국면에서 그 위기가 폭발하면서 복지국가들이 케인즈주의를 철회하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것이다.
서구 복지자본주의 국가들은 예외 없이 복지지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내재하기 때문에 재정위기 가능성이 상시적으로 존재한다. 대규모 법인기업들은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수행하는데 생산성 증가는 기술진보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들의 성장은 교통, 통신, 연구개발, 교육, 기타 설비 등의 더욱 많은 사회적 투자를 필요로 한다. 대규모 법인기업의 입장에서는 숙련 노동력과 자본집약적 기술을 결합시키는 것이 합리적인데, 이때 숙련 노동력을 훈련시키는 비용은 조세에 의해 충당된다. 또 대규모법인기업의 성장은 실업과 빈곤을 수반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다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 국가가 사회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재정을 확대하려면 또 다시 생산성이 높은 부문의 산출 증대에 기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높은 부문의 산출 증대는 경제 위기 시에는 더더욱 구조조정, 임금삭감 등 노동자들에 대한 더 많은 착취로 이루어지고, 이는 또 다시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적 지출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반면, 기업의 성장을 위한 비용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부담되지만, 기업의 이윤은 사적으로 전유된다. 따라서 사회적 비용부담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잉여 사이의 괴리는 점점 확대된다. 만약 국가가 독점부문에 기업을 설립하고자 한다면 이윤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잉여를 통해 일반적인 예산지출의 자금조달을 도울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은 정치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독점자본이 자신의 ‘자연적인 지배영역’에 국가자본이 침투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복지자본주의 국가들에 내재한 구조적 모순은 전후 성장기에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시도되었다.

둘째, 복지국가론자들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지만 사실 신자유주의를 철회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의 김기식씨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IMF 이후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 도입은 불가피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완화하기 위한 복지를 제도화시켰기 때문에 전 민주당 정권의 성격은 이중적이며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케인즈주의에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보완하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전과 달리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경제정책의 목표에 종속되게 된다.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이자율 조절을 통한 통화정책 우위의 경제정책을 통해 금융자본의 우위를 보장해준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다. 그리고 재정정책이 이러한 통화정책의 기조에 종속됨에 따라 재정정책에 대한 정부의 재량권도 축소된다.
동일한 경제기조 속에서도 사회정책은 그 범위나 방식이 차이가 날 수 있다.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가 빈곤층을 노동시장에서 영구 배제시킴으로써 이들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택했다면, 이로 인한 양극화와 사회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블레어가 제시한 제3의 길은 배제된 실업자를 노동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사회정책은 노동연계복지처럼 강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권한강화(empowerment)라는 ‘자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또 목표대상도 등록된 실업자에서 빈곤한 독신 부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비용과 지속시간도 다양하다(영국이 그 목표대상이 제한적인 잔여적 복지를 제공한다면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정책들간에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통화정책 우위의 경제정책, 자본이동의 자유화, 노동유연화를 수용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복지의 대상을 얼마나 넓게 제시할 것이냐를 두고 서로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와 같은 공통점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지국가론자들은 ‘복지국가는 단지 여러 복지정책들의 조합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운영 원리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보다 근본적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사실 상 복지정책의 조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정책의 변화로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혁, 원하청 불공정 거래 철폐 등 공정한 경제를 제시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복지국가의 경제적 토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삼는 논자들도 존재하는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원장은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금융거래세를 부과하고 (중략)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운 금융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케인즈주의적 주장은 위와 같은 복지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모순을 건드리지 않는다. 케인즈주의는 금융억압과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고용과 복지를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해방을 역전시키는 금융억압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감독의 강화를 의미한다. 케인즈주의자들은 금융억압의 구체적 수준과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금융억압의 국내 국제적 수단을 입법과 집행의 정치적 의지에서 찾는 데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은 금융의 정치적 압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확립하거나 정치적 세력관계를 변화시키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억압은 단순한 정치적 의지로 실행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초의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던 1930년대 금융억압을 통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이번 금융위기는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발생했으므로 금융을 억압한다고 해서 새로운 경제성장이 출현할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케인즈주의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1970년대에 이윤율 하락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융이 해방되고 실물경제적 축적이 금융적 축적으로 대체된다. 이에 따라 금융적 축적을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실행되는 것이다.
금융억압만으로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케인즈주의자는 수요를 자극하여 실물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정책을 강조한다. 케인즈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공급이 아니라 수요, 즉 생산이 아니라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므로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임금인상과 총고용보장이 경제성장을 위한 대안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적극적 재정지출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며 사회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경제위기 책임 전가에 맞서기 위해 방어해야 할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20세기 초처럼 이윤율을 장기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기술혁신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임금인상과 재정적자에 기초한 수요의 증가는 단기적 효과만 가질 따름이다. 설사 기술혁신의 가능성이 존재할지라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하에서 기술혁신은 고정자본을 소비하고 노동을 절약하는 편향을 가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자본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하락이라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넷째, 서구 복지국가는 전후 경제성장이라는 조건 하에 노동과 자본이 타협한 결과물이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전후 장기적인 완전고용의 결과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증가되었고 이는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형성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대해 임금인상 투쟁을 자제하는 대가로 사회적 임금의 개선을 제시했다. 그러한 사회적 타협은 기본적으로 전후 호황기에 자본이 노동에 양보할 만한 여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회적 타협으로는 노동자계급이 얻을 것은 없다.
복지국가론자들은 자본과의 타협 없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는 과정이 복지국가의 모순이 심화되는 과정이었고, 세계화로 인해 자본의 힘, 특히 초국적 자본의 힘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유연화를 제어하지 못하고 각국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재량권이 제한되고 있다. 경제위기 시대 노동자계급이 자본에 맞선 투쟁 없이 국가, 자본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양보와 후퇴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위기 전가에 맞선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강화하고 계급 역관계를 역전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사회임금의 한계

복지국가론자들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서 언급하는 것은 ‘사회임금을 늘리자’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 등은 노동자운동이 이제 시장임금만이 아니라 사회임금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국가들의 사회임금이 매우 높음을 주목하며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사회임금 수준이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는 사실이고 한국의 경우 복지를 확대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사회임금을 실제로 누가 부담하는가를 간과한다. 사회임금 비중이 높을수록 그만큼 국가의 역할이 크고 재분배효과도 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계급 내 재분배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독일, 스웨덴, 영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연구는, CEO 등 상층 관리자를 제외한 임금 노동자들이 지불한 세금이 그들에 대한 사회적 지출과 거의 일치하도록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림 2). 1960-1987년 사이 임금노동자들에 대한 전체 사회적 지출과 그들이 지불한 세금의 차이, 즉 순 사회임금은 GDP의 1~2% 수준이었다. 이 차이가 플러스라는 것은 임금노동자들이 자신이 낸 것에 비해 더 많이 받았음을 의미하지만, 복지 혜택을 받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국가경제의 생산량 가운데에서 그들이 배분받는 비중은 생각보다 적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에서 전후 성장기에 순 사회임금은 마이너스였다. 즉 임금노동자들이 자신이 낸 세금에 비해 혜택을 덜 받았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스웨덴에서 순 사회임금은 거의 0이었다. 즉, 전후 스웨덴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관대한 복지 지출은 사실상 노동자들이 거의 모두 스스로 부담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 순 사회임금은 성장기에 일반적으로 플러스였다(GDP의 4% 수준).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1970년대 이후 불황기에 진입하면서 사회안전망의 확대로 인해 사회임금의 비중이 상승하게 되는데 특히 스웨덴은 1970년대부터 정부의 이전지출이 급증하여 1980년대에는 순 사회임금 비중이 독일을 추월하게 된다. 스웨덴 모델을 표방하는 복지국가론자들이 스웨덴의 사회임금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스웨덴에서 순 사회임금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스웨덴 모델이 쇠퇴하면서부터였고, 막상 스웨덴 모델의 전성기에는 순 사회임금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그림3). 이 자료들이 보여주는 바는 노동자들의 세금지불과 사회적 급여 혜택 사이의 재정 흐름은 전체 임금 노동자들 사이에서 임금을 재순환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5개국에서 연구 결과는 사회임금의 실재가 거의 대부분 노동자계급 내 재분배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심지어 계급 내 재분배 효과도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계급 간 재분배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에 미달한다. 기업의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인데, 그 이윤은 일반적으로 자본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임금은 노동자가 계속 노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노동력의 재생산가치)인데, 자본주의적 노동은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한 노동강도 강화 등을 통해) 더 많은 산재와 (과잉생산, 노동절약적 기술발전으로 인해) 실업과 같이 노동자에게 ‘예측 불가한 위험’을 야기한다. 재생산을 위해서는 산재를 당했을 때 치료하는 비용, 해고를 당했을 때 다음 일자리를 찾기까지 ‘생존’하는 비용과 같은 것도 포함이 되어야 하지만 직접임금은 이러한 위험에 대한 비용은 포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브뤼노프는 이를 노동력의 ‘재생산가치’와 ‘일상적 가치’의 괴리, 즉 과잉착취의 경향 또는 ‘궁핍화’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게다가 실업인구의 형성으로 인해 노동자 내부에서 취업자과 실업자간 경쟁이 발생하고 이는 임금 하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잉착취의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복지제도가 발전하게 되는데, 그러한 사회보장은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위험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제거하지는 않으며 불확실한 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예방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 사회보장을 통해 제공되는 간접임금(사회임금)과 직접임금의 합은 여전히 노동력의 재생산가치에 미달한다. 한편 복지제도는 실업자와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법과 같은) 공적원조와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4대 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두 체계로 나눠지는데, 이 분할은 실업자와 취업자 사이의 분할을 지속시킨다. 이러한 분할은 지속적으로 노동자 간 경쟁을 유발하고 임금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임금이 계급 내 재분배에 가깝다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에게 닥치는 위험에 대한 비용을 포괄하지 못한 임금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 즉, 곧 노동자들이 실업을 비롯해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 노출되는 고유한 위험에 대한 방어조차 노동자 스스로가 부담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자본이 노동자에게 위험 부담을 부과함과 동시에 그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한편,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전체 산출 중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계속 증가하던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노동소득분배율 62.6%를 정점으로, 2006년 57.8%로 훨씬 악화되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소득분배율은 2007년 56.7%, 2008년 56.2%, 2009년 54.8%로 악화되었다. 이는 그만큼 자본이 더 많이 가져가고 있으며, 계급 간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역전시킬 계급 간 재분배 전략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계급 내 재분배는 ‘점점 더 작아지는 파이 나눠먹기’가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계급 간 재분배를 위한 전략이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주체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임금인상 투쟁에서와 마찬가지로, 계급 간 재분배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설사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의 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것일 것이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사회임금 재원의 형성을 위해 증세와 사회보험료 인상에 노동자계급이 동의하고 참여함으로써, 무조건 국가와 자본에 요구만 하던 패러다임에서 실제로 이들의 부담을 이끌어낼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임금은 특정기업의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구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해줌으로써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극복하는 연대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통의 이해관계란 같은 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쟁취할 때 형성되는 것이지 내부적으로 양보하고 나눠 갖는 것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즉, 공통의 이해관계가 성립하려면 싸우는 대상이 일치해야 한다. 또 노동자계급이 먼저 증세에 동의하고 이를 지렛대로 부자증세를 이끌어내자는 주장은, 복지국가들의 역사에서 봤듯이, 노동자계급의 증세가 계급 간 재분배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설사 정책적 효과로 계급 간의 재분배 효과가 향상되더라도, 양보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방식으로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급 간 재분배
계급 간 재분배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이 부자증세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복지국가론자들이 지적하듯 정치적 저항을 야기할 것이다. ‘부자’들의 정치적 저항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증세를 집행해도 계급 간 재분배는 제한적인데, 자본에 대한 과세를 높이더라도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거나 피해가기 때문이다. 기업은 개인소득보다는 법인소득에 과세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가격을 통제하여 법인 소득세를 소비자에 전가할 수 있다. (미국에서 세율이 12.5%였던 1920년 당시 대규모 제조업 법인기업의 과세 후 소득은 순장부가치의 12%였다. 세율이 52%였던 1955년에 그 수치는 여전히 13%였다.) 개인소득세는 누진적이지만 부의 대량 집중 현상에는 크게 충격을 줄 수 없는데, 법인소유자와 경영자는 소득의 대부분을 세금이 면제된 자치단체 채권 이자나 비교적 세율이 낮은 실현자본이득의 형태로 얻을 수 있고, 고액소득의 경우 소득을 분할함으로써 큰 편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법인기업은 조세를 차단하고 특례조항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세체계는 사실상 노동자와 소기업계급, 특히 과세대상소득이 비교적 높은 대기업 중산층 노동자의 착취에 바탕을 둔다. 한편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세는 임금을 억제하여 노동자에게 전가됨으로써 사실상 모든 부담이 임금에 부과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반적인 경향은 노동자계급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안김으로써 재분배정책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한국은 법인세의 경우 기업들이 각종 비과세, 감면 조치를 받고 있으며 이 혜택은 주로 대기업들이 보고 있다. 재산세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부동산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소득세의 경우 고소득층에서 소득세 탈세 규모가 높고 상위계층의 세금 부담이 소득수준에 비해 매우 작으며 금융자산소득에 대해서도 제대로 과세되지 않고 있다. 배당 소득세는 낮고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비과세되고 있다. 또 사회보장세에서 기업 부담률이 낮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비과세, 감면 혜택의 과감한 축소,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를 조장하는 간이과세 제도의 개혁, 세율 조정과 누진율의 상승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에 반대하는 정치적 저항을 상쇄할 만한 힘이 없다면 결국 여러 방안들 중 간이과세 개혁과 같이 노동자민중의 부담을 늘리는 정책만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즉, 부자 증세 정책을 실현시키는 데도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필요하고, 자본이 증세 부담을 다시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자본은 순순히 이윤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증세에 응하더라도 이윤을 보전하기 위해 임금삭감, 구조조정 등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이 부자증세를 마치 조세개혁 정책들을 입안하고 실행하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노동자운동의 힘이 없다면 부자증세의 집행도, 계급 간 재분배 효과의 달성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부의 편중이 가속화되는 경향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부자증세는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계층별 순자산(=부동산 자산+금융자산-부채) 보유의 변화를 한국노동패널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위계층의 자산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월세, 이자, 배당금 등이 포함된 재산소득의 증가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나타났는데, 1분위의 재산소득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전인 2007년까지 매년 5.8%씩 감소한 반면 5분위의 재산소득은 매년 3.3%씩 늘어났다.

계급 간 재분배를 요구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직접임금 인상 투쟁과 해고 저지 투쟁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 보건의료 등 직접임금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순)사회임금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접임금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복지 영역에 대해서는 단지 “복지확대, 부자증세”를 요구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쟁점을 제기해야 한다. 보건의료나 교육서비스를 공급하는 기관을 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보건의료에서는 병원, 제약, 보험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고, 대학 등록금 문제는 사학 재단에 대한 규제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부자증세를 하고 국가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더라도, 세금이 민간의 사적 이윤으로 귀결된다면 계속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보건의료나 교육 서비스에 있어 이윤을 추구하는 공급기관에 대한 통제 요구는 계급 간 재분배 요구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재정위기를 완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이 재정위기, 세금폭탄 등을 지적하며 복지 포퓰리즘을 공격할 때, 복지 서비스의 공급 구조를 적극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면 진보의 무조건적 복지 확대 주장은 그러한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민중운동이 복지국가 담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복지국가 담론이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의제들이 실제 노동자·민중의 요구와 부합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복지국가 연석회의의 기본 원칙과 의제는 마치 대선 후보 공약집을 방불케 하는 법·제도적 정책개선 목록이다. 5대 원칙, 15개 의제 하위에 총 70여 개의 과제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모두 법·제도 개선 관련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 복지 패키지를 홍보하고 여론화해서 이 패키지를 지지하는 정치인·정당에 대한 투표를 조직한다는 것이 이 운동의 개요다. 이는 구체적 쟁점에 대한 구체적 투쟁 주체의 조직화 없이, 국민들이 ‘복지국가’를 지지하고, ‘복지국가’를 약속하는 정권을 세우면 노동자 민중의 삶이 나아질 것처럼 호도한다. 여기에 당장 민주당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주요 구성 단위들의 성격과 운동 방식을 고려했을 때 민주당과 협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런 운동에 역량을 투여하면서 현장과 지역에서의 운동의 재조직화는 상대화하고 있다. 노동자 투쟁이 존재할 경우 관련 제도나 정책에 대한 사회여론전이 투쟁의 파급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운동이 없거나 구심점이 약한 상태에서 정책 패키지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는 방식의 운동은 도리어 정책 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한 동원에 머무르기 쉽다. 이는 역량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이나 복지의 문제가, 다양한 사회정책들의 조합을 고려해야 하는 복지국가 건설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순간 계급대립이라는 축은 희석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투쟁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정책개혁의 지지·협조세력 나아가 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더군다나 스스로 신자유주의자라는 것을 부정하지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인 민주당과 연합을 추진하는 전략 속에 노동자운동은 계급성을 잃고 포섭될 가능성이 높다. 또 노동자계급 내 분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없이, 무조건 사회임금이 많아지면 좋다는 식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계급 내 재분배에 머물면서 노동자 내부의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복지국가 담론은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을 탈각시키고, 우경화하는 데 일조할 가능성이 높다. 정권교체를 통해 복지국가로 가자는 주장이 빨리 갈 수 있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투쟁을 지체시킴으로써 실제 노동자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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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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