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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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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산업 여성노동자의 실태와 요구

이유미 |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통계국장
경제위기 속에서도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의 성장은 멈출 줄 모른다. 오히려 창사 이후 최대 경영성과를 자랑할 정도다. 그러나 이들 대기업과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으로 고용되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허덕인다. 원청대기업의 위기비용 전가와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경제성장을 이끌어 간다는 전자 대기업이 승승장구할 수 있던 배경이고, 그 중심에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가 전자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한국경제에서 전자산업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전자산업 여성노동자의 실태는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전자산업 노동자의 조직률도 매우 낮다. 금속노조 역시 남성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중공업을 주된 조직 대상으로 삼아오면서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전자산업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투쟁이자, 금속노조의 편향을 바꿔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자산업의 전반적인 특징과 노동자들의 실태를 분석하면서 조직화를 위한 단초를 모색하고자 한다.

전자산업의 특징

전자산업은 기술개발이 빠르고 제품의 수명이 짧다. 신제품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 급속히 팽창한 뒤 과잉공급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 물량변동이 잦다. 이에 따라 전자산업은 위기비용을 전가하고 생산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로 생산을 외주화하는 특성을 가진다. 외주화 생산방식은 크게 일본식과 미국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일본식은 핵심 공정은 자체 생산하고 주변 공정을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대표적 기업은 노키아, 삼성 등이다. 반면 미국식은 본사가 설계와 디자인만 담당하고 생산 일체는 전자제품 수탁제조 서비스업체(EMS)에 생산을 위탁하는 탈(脫) 생산방식이다. 대표적 기업으로는 애플, 시스코 등이 있다.
전자산업의 특성인 유연생산방식은 전자제품 생산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불안을 야기한다. 탈 생산방식이든 일부 하청생산을 통한 방식이든 외주화는 경기변동에 따른 설비투자 및 고용유지 부담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최종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른 단가인하 압력과 경기변화에 따른 물량변동은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물량이 넘쳐날 때에는 초과노동을 강요당하고, 물량이 적을 때에는 계약해지 위기에 놓일 뿐만 아니라 초과노동수당 감소로 임금 역시 감소한다. 이것이 바로 대규모 EMS 기업 생산시설이 있는 중국, 말레시아, 필리핀 등의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제품제조를 위탁한 초국적 전자산업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부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EMS 기업인 폭스콘에서 드러났다. 폭스콘이 노동자들을 군대와 같은 방식으로 통제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시키자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의 자살이 잇달아 발생했다. 그러나 애플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으며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이처럼 외주화는 복잡한 하청사슬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주체가 모호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편 외주화된 생산시설은 이동이 자유로워 저임금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외주화 초기에는 대만이나 싱가폴에 있던 생산시설이 말레시아나 필리핀, 태국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최근에는 중국으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 이 같은 이동은 저임금 경쟁을 유발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봉쇄하는 효과를 낳는다. 생산시설이 이주한 이들 지역에서는 전자산업 생산직으로 여성과 이주노동자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적 지위가 취약하고 이데올로기적 통제 아래 두기 쉽다는 점을 활용하여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생산의 유연성을 확보하는데 노동조합의 존재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들로 인해 전자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조직률은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 전자산업의 특징

한국에서 전자산업은 가장 큰 수출 산업이자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다. 전자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는 2009년 기준 76조로 국내 총부가가치의 8.6%를 차지한다. 수출액은 2010년 기준으로 184조 9천억 원으로 전체 수출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제품별로 살펴봤을 때, 전자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분야 세계시장 50%를 점유하고 있다. 휴대폰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통신기기 생산국가의 지위를 점하고 있으며, 디스플레이는 LCD패널 세계시장 점유율 55% 내외일 정도다.
이처럼 한국경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전자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의해 좌우된다. 두 기업과 관련 계열사의 생산액 비중은 전체 전자산업의 86%를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의 전자산업 기업들은 대기업을 정점으로 수직하청 계열화되어있는 시스템 내에 위치한다. 삼성과 LG가 미국처럼 탈 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본과 같이 핵심공정을 그룹 내부화 하고 주변공정을 하청에게 맡기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탈생산 방식은 불황 시 생산리스크를 외부화할 수 있으나, 생산에 대한 통제 능력 역시 외부화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상품이 잘 안 팔려 생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유휴설비와 고용유지에 별도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위탁생산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된다. 반면 탈제조 업체들은 자체설비와 숙련기술을 활용한 신속한 생산통제가 어렵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자체 생산을 통해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하청시스템을 이용해 리스크를 외부화하면서 탈생산 방식의 이점을 동시에 누리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가능한 것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고,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를 통해 본 전자산업 여성노동자의 실태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 중에서 전자산업 여성노동자가 가장 많다. 2009년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상용 종사자 266만 명 가운데 여성노동자는 64만 명이고 이중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13만 명으로 제조업 여성노동자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 전자산업 노동자 임금, 근속, 노동시간, 근무일 수 성별비교

전자산업 여성노동자의 실태를 남성노동자와 비교해 보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낮고 근속연수가 짧다. 전자산업 여성노동자들은 전자산업 남성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인 322만 6천원의 49%인 157만 9천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근속년수 역시 여성이 57.1개월로 86.9개월인 남성에 비해 짧다.
이처럼 전자산업 여성과 남성 간 임금격차가 큰 원인은 성별직종분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의 경우 숙련도가 낮은 단순업무를 수행하는 생산직이 많고, 남성들은 연구개발 및 엔지니어 같은 전문직이 많다. 한국직업능력 개발원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 공정은 연구개발을 맡은 엔지니어, 개발된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제조공정 엔지니어, 장비를 관리하는 기술자, 생산을 담당하는 작업자 등의 인력으로 구성된다. 작업자를 제외한 모든 인력은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하며 주로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생산을 담당하는 작업자는 고졸 여성이 다수를 이룬다. 휴대폰 생산도 유사하게 숙련도가 낮은 조립생산 공정 여성생산직이 많다. 전자산업에서 생산직으로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경향이다. 전자제품 생산 공정의 특징이 단순반복 작업이면서 섬세한 손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산유연성을 통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봉쇄하는 것이 사활적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통제 아래 두기 쉽고 순종적이라고 여겨지는 여성이 선호된다.

[그림] 전자산업 노동자의 성별 연령분포

남성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특징은 연령별 분포에서도 드러난다. 여성의 연령별 분포를 분석해 보면 25세~29세가 23%로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통계청은 2010년 여성의 초혼 연령이 28.9세라고 발표하고 있는데, 30대 초반 여성들은 출산 및 육아 과정에 있을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한 경력 단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출산 양육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는 시기부터 50세 이전까지 연령에서 여성노동자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40세에서 49세까지 규모는 33%로 20~30대 보다 높은 수치이며, 남성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도 40대 이상 연령대 여성노동자 분포 비중은 높은 편이다. 전자산업 생산직이 특별한 숙련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40대 이상의 여성들이 생산직으로 대거 유입되는 것이다. 경력단절 이후 여성들이 전자제품 단순 조립공으로 취업하는 경우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패턴은 경제활동 인구조사를 통해 전 산업 여성의 연령대별 취업자와 근로형태를 분석한 결과와 유사하다. 분석에 따르면, 출산시기 경력 단절이 발생해 연령대별 취업자는 M자형 곡선을 그리며 재취업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비중이 급격히 상승한다.

[그림] 전자산업 사업체 규모별 연령대분포 성별비교

전자산업 노동자의 연령대 분포를 사업체 규모별, 성별로 비교해보면 여성의 경우 대기업은 20대 여성이 절반 이상이며, 중소기업은 40대 이상이 57%를 차지한다.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연령별 편차가 크지 않다. 대기업은 채용과정에서 젊은 여성들을 선호하나,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보아 근속이 길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고 경력 단절을 경험한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중소기업에 고용된다. 40대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중소업체에 대거 몰리는 이유는 기혼여성 노동력의 저평가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한국사회에 지배적인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가계수입의 보조자 지위로 고정시키면서 기혼여성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전자산업 사업체 규모별 노동조건

기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전자산업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임금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생산직 여성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고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기본급으로 받는다. 임금격차는 성과급 등의 변동급에서 벌어진다. 이에 따라 전자산업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은 잔업특근 수당으로 수입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할 수 밖에 없고, 임금이 물량에 좌우되므로 안정성이 낮다.
노동안전에 있어서도 사업체 규모별로 제품과 공정이 달라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등의 조건은 다르지만, 보호 장비가 불충분하다거나 안전교육을 진행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삼성반도체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백혈병, 뇌종양 등 희귀병에 걸려 숨졌다는 사실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특별하게 사회쟁점이 되지는 않았지만 납땜이나 세정작업 등의 공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된다거나, 단순반복 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차이점은 기업 규모별 노동자의 연령대이다. 대기업은 고강도 노동을 견뎌낼 체력이 있는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한편, 중소하청업체들은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기혼여성들은 우선적으로 가정을 돌봐야 하고 가계수입의 일부를 보충한다는 성별이데올로기가 기혼여성들의 저임금 고용불안을 정당화하고 있다. 때문에 노동조건이 열악한 중소하청업체로 기혼여성들이 대거 유입되는 것이다.
고용형태 역시 차이가 있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하청업체는 파견업체를 통해 노동자들은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소하청업체가 원청으로부터 전가받은 위기비용이나 단가인하 압력 등을 파견노동자에게 다시 전가하면서 수익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최근 전자대기업에서도 사내하청 비중이 상당하다는 보도가 있다. 생산유연성 극대화와 위기비용을 보다 용이하게 전가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정규직 비율을 줄이고 사내하청을 확대하는 것이다.
전자산업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어 근속년수가 길지 않은 편이다. 견디기 어려운 생산현장을 노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러나 연령대에 따라 양상이 다르게 드러난다. 대기업 젊은 여성들은 결혼을 통해 생산현장을 탈출하는 경우가 다수다. 중소하청업체 여성들은 대다수가 기혼이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생산현장을 떠날 수가 없는 처지다. 다만 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로 옮겨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인근 공단지역을 떠돌게 된다.
이처럼 한국 전자기업들이 국내 생산과 해외생산을 조절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탈제조 전기기업들의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EMS 업체들은 주로 노동자의 권리보장이 취약하거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지역에 선택적으로 진출한다. 이러한 지역은 법적 제재를 피하고, 성별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여성노동자들에게 유순하게 일할 것을 강요하거나 저임금을 정당화하기 쉽기 때문에 EMS 업체들이 선호한다. 한국의 전자기업들 역시 다르지 않다.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저임금을 정당화할 수 있었으며, 불법파견을 도급으로 위장하고 있음에도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아 법적인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활용한 착취와, 탈법을 방치하는 정부의 친자본적 행태가 전자산업 대기업 성장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노동실태에 기반한 조직화의 매개를 찾아보자

한국 전자산업은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여 하청업체들이 원청대기업에 종속된 형태로 공급사슬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자 조직화 방안으로는 삼성과 LG같은 대기업 현장을 조직하고 노조 민주화 투쟁을 하는 것, 공급사슬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대형 부품 하청업체를 조직하는 것, 공단지역의 하청노동자를 조직하는 것 등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주요부품 하청업체나, 공단지역 노동자들의 노동실태에 기반 한 조직화의 매개 고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공급사슬의 하위에 위치한 중소부품업체들은 상위기업들에 종속되어 있어 협상력이 약하고 노동자들 역시 교섭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개별사업장 조직화방식이 봉착하게 되는 물량협박과 폐업이라는 위협을 넘어서기 위해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이슈를 제기하거나 다양한 연대를 조직하는 것, 공단지역의 집단적 투쟁을 기획하는 것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전자산업의 유명 기업들은 깨끗한 첨단산업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전자제품 생산과정의 가혹한 노동현실은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시설이 중심부 국가에서 주변부 국가로 대거 이전해버린 전자산업의 특성이 은폐를 더욱 쉽게 만들기도 했다. 때문에 전자산업의 초국적 기업들을 규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캠페인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삼성과 LG전자는 국가경제성장에 커다란 기여를 하는 대기업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크다. 그러나 삼성과 LG가 이룩한 경영성과의 원천이 사실상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건강을 담보로 한 것이자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를 출혈적으로 착취한 결과임을 폭로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반올림 활동을 주목하면서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문제, 간접고용 문제 등도 사회쟁점화 할 기획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공단밀집 지역은 온갖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법제도를 활용하여 공단지역의 여론을 환기하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전자산업 여성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기반하여 조직화의 매개가 될 수 있는 단초를 살펴보겠다.

①고용- 불법파견
공단지역의 중소하청업체 대다수가 불법적으로 파견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도급의 형태를 취하지만 중소하청업체가 파견노동자에 대한 작업지시를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사용사업주이기 때문에 위장도급이다. 그나마 규모가 큰 업체들은 정규직과 파견노동자의 작업을 분리하고 파견업체별로 라인 작업을 시키는 등의 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도급으로 위장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파견업체들은 직업알선소 수준이다. 파견노동자는 항상적인 고용위협에 놓여 있어 권리를 요구하기 어렵고, 파견업체가 챙기고 있는 수수료는 사용사업주가 지불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파견노동자의 임금 몫에서 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임금을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런 실태에 기반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기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법파견 투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의 사업장에서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법원판결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불법파견이라 하더라도 현행법상 파견계약 기간이 2년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더욱 그러하다. 또한 같은 회사임에도 부서별 라인별 법인을 분리한 경우가 있어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면 폐업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불법파견을 공단지역에서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집단 진정, 중요 거점 업체를 대상으로 동시다발 투쟁 기획 등을 통해 지역차원의 이슈를 제기하면서 해결책을 요구하는 방법 등이다.

②임금- 무료노동, 포괄임금제, 통상임금 소송
공단지역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에 고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잔업특근으로 부족분을 보충하는 상황이다. 근로기준법에 초과수당 할증률 조항을 두는 이유는 사용자가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매우 낮은 시급이 노동자들에게 초과근로수당을 통한 소득보전을 위해 연장근로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업주들은 임금지급에서 탈법적인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특히 공단의 중소하청업체들에서 무급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일이 빈번하다. 규정 노동시간 외 조회, 교육, 정리정돈 등이 존재하며, 규정 노동시간 종료 이후에도 5~10분, 많게는 20분에서 30분까지 짜투리 노동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는 명백한 근로기준법위반이다. 그리고 최근 공단지역의 상당수 업체들에서 포괄임금제 형식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실제로 연장근무를 한 만큼 수당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정금액을 정해놓고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로 포장되어있을 뿐 실 근로시간을 따지면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장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대법원에서는 업무 성격상 연장근로 시간을 계산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근무시간을 따져 수당을 줘야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임금삭감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행되는 포괄임금제의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2010년 1월 대법원에서 잔업, 특근수당 등을 계산할 때 기본급과 함께 통상적인 수당도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를 빼고 지급해온 것을 소송으로 제기한 호남여객 퇴직자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공단지역 전자업체들을 대상으로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무료노동, 임금삭감을 포괄임금제로 은폐, 통상임금 소송 등의 임금과 관련된 쟁점을 매개로 투쟁을 기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개별 대응을 했을 때 위험부담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단순히 법원의 판결에 기대 체불성 임금을 되찾는 것을 넘어 노동조합으로 조직될 수 있도록 투쟁을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노동안전
공단지역 중소하청업체들은 원청대기업의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일이 많아 작업자체가 단순반복적이다. 또한 영세한 기업들이 수익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적은 인원으로 짧은 시간 안에 물량을 소화하려 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장시간 동안 고강도 노동으로 골병이 든 노동자들과 함께 근골격계 투쟁을 기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대우조선에서 시작된 근골격계질환 직업병 인정 투쟁은 노동강도 강화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권 침해를 개별적인 산재 보상을 넘어 집단요양을 통해 자본을 압박하면서 노동자들이 조직되었던 사례이다. 한편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대기업 청정실(클린룸) 작업에서 발생하는 안전문제와 같은 위험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해물질을 다루는 작업공정이 상당수 존재한다. 납땜을 한다거나 유기용제 성분의 세척액을 사용한 작업 등이 있으나 노동안전 교육이나 충분한 보호장비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실태를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하면서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④성폭력 및 비인격적 대우
중소하청업체의 경우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연령은 평균 30~40대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근속이 길어져도 관리자로 승진하는 일이 드물고, 관리직은 처음부터 젊은 남성을 고용하는 일이 많다. 여성노동자들은 젊은 남성 관리자로부터 반말을 듣는다거나, 비하하는 발언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상사로서의 권력과 기혼여성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청소노동자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로 제기되었던 것이 관리자의 태도였다. 청소라는 업무 자체가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던 일로 여겨져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저평가 되고, 따라서 해당업무를 하는 여성들 역시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부터 관리자들이 함부로 굴지 못하게 되었고, 본인들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후련한 일’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비인격적인 대우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여성일수록 성폭력적에 처하기 쉽다. 어느 지하철역에서 청소하는 중년의 여성노동자가 용역업체 직원으로부터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도 자식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 말도 못하고, 문제를 폭로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반격과 해고이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던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는 현대아산 사내하청 노동자가 관리자로부터 일상적인 성적 괴롭힘을 당해, 이를 해결해달라고 제기하자 부당해고 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비인격적인 대우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사회적 쟁점으로 제기하는 기획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저임금 노동으로 이어지고 직장에서의 비인격적인 대우와 성폭력적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을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청소노동자가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취급되고 이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이어졌음을 사회적으로 고발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은 좋은 참고사례가 될 수 있다.
주제어
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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