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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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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노사 관계: 막다른 골목인가 모델인가

그레고리 앨보/크리스 로버츠 |
European Industrial Relations: Impasse or Model?

●번역 노선호(회원)



1970대의 기나긴 경제적 구조조정은 격렬한 경쟁 및 불안정과 결합되어 북미 노동운동을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서의 자동차 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총파업과 UPS에 맞선 Teamsters (트럭운전 노동자 조합)의 예상치 못한 끈질긴 투쟁 등 노동운동 부활의 희망적인 전조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들은 계급간 힘의 균형을 변화시킨다거나 새로운 사회주의적 정치 형성을 가져오는 일반적 경향을 구성하지는 못했다. 북미의 노동운동과 좌파의 대부분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적 접근에 있어 수세적이다.

노동자들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압력은 즉각적인 도전이다. 지구화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국가와 회사를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합심하는 경쟁적인 민족적 팀으로서 묘사한다. 북미의 신문들은 해외 경쟁에 맞선 캐나다 팀이나 GM 팀의 활약상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지구적 경쟁력 순위는 자본가들로 하여금― 그리고 점차로 국가들―두려움에 떨고 있는 노동자들로부터 새로운 노동 규율과 임금 양보를 착취할 수 있도록 유용한 장치를 제공한다. 요체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지구적 자본주의의 현실에 굴복하고 민족의 혹은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노동자는―심지어 자본가와 경영자들도―해외의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사 관계를 배우도록 권고받는다. 심지어 노동운동 스스로가 경쟁력에 있어 유럽의 대안적인 합의 모델을 자주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북미 스타일의 경직된 경영관행과 노동시장 유연성에 반대하기 위해 스웨덴이나 독일의 예가 등장하며, 최근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영국의 신노동(new labor)이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조합원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종종 북미 노동운동은 유럽의 국가적 훈련체계(training system), 노동시장 관리, 노동자 대표제의 형식, 집단 교섭의 유형, 사회복지 지원, 그리고 노동자 권리 보호의 법적 틀거리를 우호적으로 바라본다. 노동운동에 대해 동정적인 자유주의자들―특히 Robert Reich와 Richard Freeman―은 격렬한 경쟁적 관행을 피하는 방법으로써 노동시장을 조정하는 이러한 대안적 형태를 선호한다.

외국의 모델을 끌어오는 이러한 관행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많다. 그 한가지로 자본주의는 경쟁이라는 불가피함을 부과한다 할지라도―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기업이나 국민경제가 경쟁자들을 모방함으로써 그들을 따라가도록 한다―이러한 압력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다양한 조건하에서 작동한다. 각각의 국민경제는 특수한 역사와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특수한 위치, 계급간의 힘에 있어서 특수한 균형, 그리고 특수한 계급투쟁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이식될 수는 없는 특수한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의 목적이 모방의 한계들을 단순히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는 좌파들에 의해 제기되는 모델들을 검토함과 동시에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실제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노사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에서 시작해서, 세가지 종별적 사례, 즉 독일, 스웨덴, 영국을 분석하면서 최근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에 그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많은 민족적 차이들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경제적 구조조정의 시기에 공통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는 유럽의 모델이 이러한 공통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북미적 모델에 대한 대안인가, 아니면 우리는 단순히 강화된 착취―북미에서와 같은 강화된 착취이지만 역사적으로 종별적인 유럽적인 제도에 의한 착취―의 유럽적 변이들을 목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b>전후 유럽에서의 노사 관계</b>

유럽의 전후 재건은 민족적 정체성, 정치 시스템 그리고 노사관계의 틀을 형성하는 제도적 창조의 시기이자 격렬한 계급갈등의 시기였다. 비록 초기의 계급 형성이 잔존하긴 했지만, 일국적인 노동조합 운동은 사회주의 정당의 부상, 전시 정부에서의 노동자들의 역할, 자본가 계급의 파쇼적 정서에 대한 불신 그리고 노조가 강한 제조업 산업의 경제적 우세에 의해 강화되었다.
보통 유럽의 노사 관계 체계는 노조 조직화 정도와 경제 및 임금 정책의 민족적 협력 정도에 따라 분류된다. 북유럽계와 독일어권 국가들은 네덜란드와 더불어 광범위한 협력과 강한 노조를 가진 협조주의적 그룹을 형성한다. 지중해 국가들은 파편적이고 고립된 노동 운동의 그룹을 형성한다―그리하여 모델로써 상정되지 못한다. 그리고 영국은 강한 부문 노조와 대체로 임금 제한에 있어 국가 개입에 제약된 약한 중앙을 결합하는 복수의 교섭으로 특징지워진다.

영국의 노사관계 체계는 노조 운동이 경제적 정책 결정에 있어 주변적이었다는 의미에서의 노사관계와 정치의 분리라는 맥락에서 북미와 가장 유사하다. 또한 전후 집단적 교섭의 탈집중화에 있어서도 유사한데, 영국에서 이 체계는 자발적인 기준에 의해 규제된다면 북미에서는 노사 관계법에 의해 규제된다.
그러나 60년대 영국에서 노사 갈등의 심화는 노동자 계급의 분규를 제한하고 영국의 경쟁력 쇠퇴―경쟁력 쇠퇴는 제한적인 노동 관행과 수많은 분규 때문인 것으로 가정한다―의 극복이라는 필요성으로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많은 노사 위원회가 생겨났다. 그러나 자유로운 집단 교섭 역시 임금 인상이 경쟁력 악화와 맞물리면서 더욱 경직되었다.

서독에서 새로운 노조연맹(DGB)은 파시즘의 잿더미 속에서 산별로 구획된 노조들의 일원적 구조로 출현했다. 새로운 노사관계 체계는 이해 대표의 이중 구조 위에 구축되었다. 부문별 수준에서의 노조와 사용자 연합의 임금과 노동시간에 관한 집단적 교섭―임금 분배와 생산성과 관련한 양적인 문제를 다룬다―이라는 한축과, 기업 수준에서의 경영자와 노동자의 노동 위원회를 통한 회의―기술과 경쟁력과 같은 질적인 문제를 논의한다―라는 다른 한축이 그것이다.
매우 법률형식적인(legalistic) 노조 환경을 가진 독일에서의 계급투쟁은 일국적인 협력과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일국적 협력과 공동결정(codetermination)이라는 사회적 파트너쉽을 통해 조정된다. 이러한 과정은 기독교 민주 연합(Christian Democratic Union)이 주도했던 형식적인 국가 기구들과 민족적 경제 정책과는 분리되어 유지되었다.

전후 직후의 고실업은 노동비용을 국제 경쟁력과 연계짓고, 강력한 금융정책을 재분배적인 사회정책과 결합하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모델의 등장을 추동했다.
1960년대 노동시장의 조건이 엄격해지면서, 최초로 집권한 사회민주당 SPD는 공장평의회(the works council)의 역할을 점차 확장시키는 가운데 일국적 협력을 통한 임금 제약을 조장했다. 독일 노조운동의 법률형식주의는 매우 모순적임이 판명됐다. 즉 법률 형식주의는 경제가 호황일때는 노동계급의 성과물을 제한시켰으며, 쇠퇴할때에는 경영측의 선택범위를 제한시켰다.

대조적으로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SAP는 1930년대부터 집권했으며, 그들의 정책은 노조 연맹 LO와 더불어 스웨덴식 모델과 노사관계를 형성했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케인즈주의의 수요관리―나중에는 통화가치 절하―와 공공부문의 확장을 통해 고실업의 정책을 위한 공공소유를 회피했다. 노사관계 체계는 국가의 외적 규제 없이 LO와 사용자 단체인 SAF간의 중앙 협상을 통해 임금 교섭을 통제했다.
전후의 임금 협상은 하부국가적 수준에서 임금 기준의 실행의 통해 인플레이션과 임금 드리프트―전국의 평균 임금률을 웃도는 개별 기업 등의 임금 적립금―를 막아내는 가운데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실질임금 성장을 생산성 성장에 연계시키려는 것을 의도했다. 중앙 D임금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또한 낮은 생산성과 그 결과 낮은 임금수준을 가진 기업들의 퇴출을 의미하기도 했다.

1950년대 노동시장위원회라는 체계는 훈련과 고용 보조금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높은 생산성과 고용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확장되었다. 1970년에 이르러 높은 노조 조직률과 저실업을 배경으로, 스웨덴 노조는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임금 연대와 성장하는 화이트 칼라 노조와 LO과의 관계 설정 그리고 공장 수준의 활동을 통한 직장위원(shop steward)체계의 점진적인 진화에 집중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적인 스웨덴의 모델의 공고화는 1970년대 여타 유럽국가들이 그러했듯이 자본주의 경쟁의 지상명령에 빠르게 종속되고 만다.
1960년대 말의 대중적인 봉기들은 서유럽에서의 계급 갈등의 종결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일국적 노사관계에 대한 부상하는 도전의 지연된 기간의 시작임을 표상했다. 1973년 오일쇼크 이래로 선진 국가들의 경제적 불안정성은 낮은 고용 조건과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를 결과했다. 어떠한 국가도 극복할 수 없는 노동시장의 실패라는 유형이 형성된 것이다.

더욱 저조한 산출량 성장에 대한 적응은 다른 방식들로 행해졌다. 미국에서는 임금을 억제하고 실업을 저생산성, 저임금, 그리고 불안정 고용이라는 형태로 위장하는데 있어 가장 유연적인 노동 시장을 형성했다. 유럽에서는 사회적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압력은 강화되었다기보다는 노동 시장 기구들에 의해 다소 완화되었다. 그러나 지중해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유럽 연합 국가들 중 독일이나 북유럽의 국가들은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실업과 복지 기금으로 고실업을 완화시키려 했고,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 분배를 낮은 노동력 참가율과 불안정고용이라는 형태의 위장실업을 결합시켰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임금과 고용수준을 가진 곳에서는 침체되거나 추락하는 생활 수준과 재정적 압력, 자본의 유출을 결과했다.

적응에 대한 경험은 다양하지만, 북미나 유럽연합 어디에서도 노조 운동은 증가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평등한 생활수준을 부여하지 못하는 노동시장을 직면하고 있다. 이는 노동운동이 점차 고실업과 증가하는 파트타임 그리고 임시 고용의 조건을 저지하기 어려운 결과이다. 또한 이는 임금 설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GDP에서의 임금 몫은 몇몇 나라들은 전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1980년대에 급격하게 하락했으며, 90년대에는 정체되었다. 유사하게 유럽 전역의 파업 투쟁은 엄청난 하락을 기록했으며, 노조 조직률의 수준과 유형은 다양할지라도 노조 조직률은 덴마크를 제외하고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유럽전역의 노동시장의 실패와 노동의 후퇴는 사회적 배제와 우익 극단주의 그리고 심화되는 빈곤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그런데 유럽의 노사관계 체계에는 불안정에 대한 뿌리깊은 동력이 있다. 유럽의 저성장 시장에서의 격렬한 경쟁은 경쟁력을 위한 노조의 희생을 요구했다. 이는 스웨덴이나 독일과 같은 협약주의적 코포러티즘에서 더더욱 계급간 긴장을 가중시켰다. Leo Panitch가 오래전에 주장했듯이, 코포러니즘은 전후의 경제 성장기에서조차도 아래로부터의 불안정에 약하다. 이는 노동자의 요구를 표현하는 계급조직이라는 위치와 동시에 자본의 축적을 보장하기 위한 임금 정책을 통한 임금억제를 수행하는 기구로서의 위치라는 노조의 모순적인 위치 때문이다. 1973년 이후의 경제위기는 스웨덴, 독일 그리고 영국에서의 노동운동에 대해 이러한 모순을 더욱 격화시켰다.

그리하여 유럽의 노조운동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스웨덴이나 영국에서는 산출량을 늘리기 위해 소득정책을 노동시장과 산업정책에 연계시키는 케네의 플러스 방식으로 전후의 패턴을 유지시키려 했고, 한편에서는 북미가 그랬것처럼 방어적인 방식으로 자본의 증가하는 공격에 저항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웨덴의 임금기금을 위한 메이드너 플랜(Meidner Plan)과 프랑스의 Common Programme과 같이 자본을 사회화시키기 위해 더욱 광범위한 정치적 기획을 추진하려 했다.

이중 마지막 기획은 실행될 수 없었는데, 이는 특히 1970년대에 노사 정책이 유럽의 자본가들에 의해 격렬하게 반대됨에 따라 그러하다. 1980년대를 경과하며 일국적 수준에서의 노동시장 정책의 팽창과 부문과 지역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노조의 시도가 출현했다. 게다가 유럽의 노사관계 체계는 특히 강한 노조와 코포러티즘적 교섭조건을 가진 모델들에서 매우 다른 방식을 작동하게 된다. 저인플레이션을 통한 더욱 안정적이고 높은 산출량을 위한 전후 집단 교섭에서의 명목임금제한 기준은 고용을 늘리고 실업을 막기 위한 실질 임금 제한 기준으로 전환되었다. 전후 유럽의 주요국가들에서의 노사관계 체계는 성장하는 산출량 중에서 노동계급의 몫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러한 목적은 충분히 한계적이었는데, 더욱 낮은 성장을 직면한 지금 더더욱 제약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것이 LO와 SAP를 통해 중앙차원에서 협상되었다.

독일에서는 DGB를 통해 부문적 수준에서 실행되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대처주의의 경험이 이미 주변부적인 코포러티즘조차도 끝장내버렸다. UTC의 노조들은 북미에서와 유사하게 부문이나 기업별 수준에서 협상양보를 강요받았다.
그런데 노조운동이 분명한 패배를 겪지 않은 곳에서는 노동계급에게 일종의 고통 분담을 강요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강력한 사회적 부문을 대가로 저임금과 높은 세금을 받아들이고, 자본가들이 국내 투자를 유지하고 거대한 공공부문을 용인하는 한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유럽의 통합력 증가는 이러한 코포러티즘적인 교섭에 강한 압력을 가했다.

일반적인 가정과는 대조적으로, 유럽통합은 유럽국가들의 협력의 증가를 의미했을 뿐만 아니라 격렬한 경쟁을 의미하기도 했다. 1980년대 동안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코포러티즘적 교섭은 이윤의 유지라는 압력에 종속되었다. 느린 사적 부문의 투자와 최소한도로 지속되는 생산성은 낮은 고용 조건과 임금 제약 그리고 국제 경쟁력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예산을 위한 노동자들의 과세를 의미했다.
다른 말로 하면 민족적 노조 운동은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성의 보증자로서 전환되었다. 자본가들은 임금 제약을 조건으로 투자하게 됐고, 고용은 높은 과세를 조건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관행은 북미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적·정치적 진전의 모델을 의미할 수 없다. 대신에 이러한 제도들은 유럽노동자들의 착취율이 강화되는 독특한 형태가 되었다.

사회적 계급들간의 불평등과 자본의 압력이 확대된다는 맥
락에서의 노동계급의 연대와 평등에 놓여진 강력한 압력은 스웨덴과 독일의 노사관계의 재분배적인 요소를 침식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에서는 노동자계급에 취해진 긴축정책은 사용자들이 낮은 이윤과 높은 세금, 거대한 공공 부문으로 인해 자본을 국내에 투자하기보다는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무너졌다. 노동자들은 고통전가의 압력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자본가들의 지속적인 공세, DGB의 관료주의적 관성 그리고 통일의 부담은 사회적 파트너쉽 모델의 장기적 위기를 표상했다. 노조가 패배당했고, 여전히 공격당하고 있는 영국과 같은 국가들에서는 불균등한 정치적 재구조화와 함께 점증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결과했다.


<b>위기에 빠진 사회적 시장 모델 </b>

통일에 따른 재정적 충격, 90년대 초반의 급격한 경제 침체 그리고 고실업의 지속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 모델의 미래에 대하여 심각한 불확실성을 야기했다. 독일 노사관계 구조는 집단 교섭을 모든 노동자을 포괄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 임금 비용을 직접적 경쟁으로부터 부분적으로 단절시킴으로써 역사적으로 단일한 노동시장을 구성하는데 있어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80년대 이래의 증가하는 고실업은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더욱 많은 노동자층의 주변화, 낮은 고용율 그리고 재정적 압력을 결과했다. DGB는 쇠퇴하는 부문에서의 기록적으로 높은 실업률과 서비스부문과 같이 조직화하기 힘든 부문에서의 고용증가 그리고 내외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노사관계 체계라는 도전에 직면한다.
기업수준의 공동결정의 형태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법적 권리는 고용관계의 변화가 협상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더욱 광범위한 정치적 경제적 세력들은 노동시장의 규제를 완전히 제거하는 형태가 아닌 완화시키는 형태로 탈규제의 압력을 심각하게 야기했다. 한때 비용절감이라는 경쟁적 압력과는 무관하고 노동관리의 유연한 적응의 모델로서 부러움을 샀던 고가치, 미디어 산업의 기업들 역시 미국과 일본의 경쟁상대로부터 압력을 경험하고 있다.

자본의 배당액을 통제할 수는 없는 직장평의회의 공동 결정 하에서 이러한 기업들은 점차 해외 직접 투자를 확대하고, 생산망 요소들을 규제와 고비용을 우회할 수 있는 동쪽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연합으로서의 중앙 및 동부 유럽 국가들의 가입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받을 것이다. 이는 고실업상태인 동쪽 지역의 저비용, 고기술 노동이 독일의 비용절감 압력을 강화할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가들이 부문별 교섭에 결정적인 사용자 연합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증거들이 있다. 이는 심지어 노조와 공장 평의회에 하드쉽 조항과 고용을 위한 임금 제한의 형태로 양보를 강제하는 상황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외부 환경 역시 저실업과 임금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시장에서의 성장과 수출에 의존하는 수출지향적 독일 모델에는 도전이다. 지속되는 침체와 격렬한 경쟁, 그리고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고실업을 유발하는 국내 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한다.

이러한 문제는 서부 유럽의 독일의 주요한 무역 상대국들이 분데스 은행의 반인플레이션 정책에 의한 경쟁적 압력과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설정된 유럽 금융 조합(EMU)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디플레이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가중된다.
실업인구·비경제인구·고령의 연금수령 노동자로부터의 재정적 자원의 압력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기준을 충족시키리 위한 긴축 정책 및 매년 동독으로 천억달러의 이전과 결합되어 사회적 교섭의 한계를 확대하고 있다. 사민주의자와 협조주의적인 노동관계 그리고 국내 산업에 제공되고자 하는 인내심있는 자본사이에서 독일식 주주 자본주의가 유행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그 모델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어떤 이들은 독일 모델이 EU를 통해 유럽 전역에 보편화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독일 모델의 강력한 지지자들도 인정하듯이 공동결정은 현존하는 법적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 또한 독일식 노사 관계 체계가 부과되지 않고서는 다른 EU국가들에 확장될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반박된다. 그리고 독일자체에서도 자본가들은 그 체계를 재정의하거나 제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동독으로의 이전마저도 공고화하기 힘들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노동 운동은 전략적 방향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 독일의 노사관계 모델은 투쟁을 위한 운동의 역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산별 교섭의 체계는 개별 노조원이 직접적 관계를 갖지 않는 관례를 확립했는데, 이는 교섭의 성과가 멤버쉽에 상관없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더욱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파트너쉽 모델의 효과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탈결집화를 가져왔다. 노조가 과거의 유산에 매달려 있는 동안, 독일의 자본가들은 사회적 파트너쉽 모델에 의해 부과된 많은 제약들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통일에 의한 정치적 개방과 국가주도의 동독 노조 체계의 붕괴는 노동운동의 곤경을 설명한다. DGB는 동독의 노동자들을 통합해나가면서 동독에 현존하는 구조를 이전하고자 하였다. DGB는 조직적인 개혁의 순간을 이용하지 못하고, 대신에 조직적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을 피함으로써 확장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로 했다. 서독에서 DGB는 소속 노조를 통합하고 노조 강화와 조합원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가운데 조직률의 쇠퇴에 직면했다.
그러나 몇가지 극적이고 성공적인 투쟁이 있었는데 특히 IG Metall에 의해 주도된 금속 산업의 1993년의 투쟁은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노동공급을 줄인다는 캠페인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진전은 노동운동과 거리가 있었던 생태운동과의 정치적 연계를 형성시키는 이득을 가져오기도 했다. 유사하게 1997년에는 탄광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성공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끝으로 DGB는 좌파의 정치적 재배치는 아직 요원하긴 하지만, SPD와는 별도의 정치적 공간을 열었다.

이러한 진전은 부활의 희망적인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은 전략적으로 혼란스럽고 결집을 위한 지속적인 역량의 부재라는 일반적인 상황의 예외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자동차 부문과 같은 IG Metall의 비판적 세력만이 독일 자본주의의 경쟁력 의제를 분쇄했다.


<b>스웨덴: 모델 이후 </b>

독일의 노동운동이 경쟁력과 노사관계의 기구들에 관해 독일 사용자들과 갈등을 겪었다면, 스웨덴의 노조는 공격적이고 유동적인 자본 계급에 맞섰다. 1980년대 이래로, 스웨덴의 초국적 기업들은 효과적으로 스웨덴 모델을 잠식해나가는 가운데, 해외로 확장해갔고 유연성을 공격적으로 요구했으며, 국내의 임금 교섭을 탈집중화했다. 사용자 조직 SAF는 메이드너 플랜이라 불리우는 노동운동의 임금 기금 제안에 맞서 1980년대 초에 정치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 SAF는 중앙화된 임금 협상을 산업이나 기업별 수준의 교섭으로 성공적으로 대체했다. 1991년에는 일방적으로 최상위 수준 교섭을 폐기했다. 또한 탈규제와 공공자산 매각을 주장했으며, 사회민주주의적 재정정책과 공공지출에 반대하는 대중적인 캠페인을 이끌었다. 실업의 증가와 SAP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의 수용이라는 상황에서 최상위 수준의 코포러티즘적 교섭은 임금을 인상하는 위험부담 없이 탈집중화된 교섭이 추진될 장래에는 불필요한 것이 될 것이다.

고실업은 최근의 일이지만, 스웨덴 모델의 불안함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이에 대한 초기의 징후는 LO, SAF, SAP사이의 정치적 협상의 사회적 성과물을 고용 확산으로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다른 징후들도 있다. 임금격차는 60년대와 70년대에 좁혀진 이후에 80년의 하반기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쟁력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정기적인 통화가치절하는 생산성의 침체와 임금확산과 결합되어 노동자 계급의 소득에 부담을 전가했다. 가령 평균 세금 공제 임금은 1973년과 1985년 사이 약 20%정도 하락했으며,1990년에는 1973년 수준의 아래로 떨어졌다. 결과는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의 침체였는데, 훨씬 발전된 공공재의 공급에도 불구하고 이는 북미노조가 직면한 임금 정체와 유사했다.

LO는 노동계급만이 긴축에 따른 고통을 전가받는 이러한 상황을 정정할 수 없었다. 이런 무능력은 메이드너 플랜에 대한 자본의 반대를 결과한 스웨덴 모델의 파열을 반영했다. 1980년대 스웨덴 사용자들의 자본의 수출은 사적 투자 전략의 변화와 전후 자본 통제 체계의 종결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높은 고용과 생산성이라는 스웨덴 모델을 형성했던 국내 계급간의 협력을 위한 물질적 토대의 잠식은 의미했다. 해외 직접 투자는 1985년 전산업의 10%에서 1989년 28%로 상승했으며, 1990년에는 GDP의 6%를 차지했는데, 이는 선진국가들중에서 가장 높다. 1988년에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윤의 60%이상은 해외로 재투자되었으며, 해외 지사의 전체 고용은 1960과 1987년 사이 세배로 증가했다.
부분적으로 점증하는 국제화에 대한 반응으로서 의도된 80년대 경개 붐 동안의 금융시장 탈규제는 90년대의 대량실업과 침체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게다가 보수 정권의 짧은 집권이후 재집권한 SAP는 재정과 금융 긴축이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랐고, 과거의 연대정책에 대한 완전한 단절을 공개적으로 선전했다.

그래서 LO는 새로운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대응해야 했다. LO는 우경화된 SAP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가령 반노조(Union Opposition)가 대개 금속노조에서 생겨났는데, 이들은 집단교섭에서의 계속적인 후퇴와 SAP 정부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실패에 반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LO는 개정된 연대 임금 교섭에 대한 반대이외의 어떤 일정한 전략을 갖지 못했고, 심지어는 독일의 사회적 파트너쉽 모델에 대해 경솔한 호소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부문 수준에서 노조와 교섭의 얼마간의 재구조화가 있었다. 화이트 칼라 노조의 힘은 노조운동을 재배치함에 있어 특히 중요했다. 주요한 혁신은 노동연대에 대한 전략적 재사고인데, 특히 여성노동자와의 관계에 있어 그러하다. 비록 노동력에 있어 여성의 참여는 독일과 비교가 되지만, 여성 고용의 많은 부분이 파트타임이고 불안정노동이며, 성별로 분절화된 노동시장으로 인해 임금 격차는 일반적이다.

사적 부문과 공적 부문의 노조사이에 긴장을 형성했던 노동력에 있어서의 여성의 분절화와 불평등한 통합을 알려내는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LO와 산하 노조에서의 여성들의 정치적 결집은 공공 부문의 방어라는 차원의 일부로서 상승하고 있다. 비록 자녀 양육과 모성 정책이 노동시장으로의 여성노동의 평등한 통합을 위해 획득되었지만, LO는 노동운동을 재활성화시키기 위해 성평등을 일련의 이슈에 직접적으로 녹여내기 시작했다. 1990넌대에 LO는 개별적인 여성 간부회의와 독립적인 여성 노동자들의 정치적 조직의 등장을 지원했다. 건강과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가장 큰 노조인 Kommunal은 노조원의 80%이상이 여성이고 게다가 가장 열악한 임금을 받는 곳인데, 시장 합리화에 맞서 공공서비스를 방어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다.


<b>블레어 정권하의 영국 노조: 똑같다 못해 더 심각한가?</b>

스웨덴에서는 거대한 사용자들이 노사관계 관행에 공격을 주도했다면, 영국에서는 국가가 경쟁력에 있어 노조의 제약을 제거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1980년대에 대처는 노동자들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도처의 신자유자들로부터의 존경을 받기 위해 이미 약해진 영국의 고용관련 권리체계를 공격하는 최선두에 섰다.
시장지향적인 적응의 결과로서 영국은 서부유럽에서 가장 유연한 노동시장과 가장 높은 실업률을 가진 나라중의 하나가 되었다. 실업은 부분적으로 영국 경제의 계속적인 탈산업화로 인해 1980에서 1995년까지 평균 9%이상이 상승했다. 이러한 공식적인 실업률의 상승은 1979과 1992년사이 주로 낮은 기술력을 가진 130만명의 비학생 노동연령인구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퇴장을 동반했다.

그리하여 1997년 약6%라는 공식적인 실업률은 노동의 퇴장이라는 장기적인 경향과 더불어 순환적 경제 회복과 저임금 고용의 확장의 결과였다. 이러한 예비노동의 성장은 비록 공식적인 실업률 통계에 나오지는 않지만, 영국 노조를 수세적이게 하면서 노동시장에 압력을 가한다.
사용자들의 노조 불인정 전투를 도왔던 대처의 반노조 법안의 직접적 결과와 계속되는 탈산업화의 결과 때문에 영국의 노조조직률은 1976에서 1980년 동안의 55%에서 1990년대에 40%까지 하락했다. 이러한 조직률의 하락은 몇몇 주요 부문에서의 중앙화된 산별 교섭의 기업별 교섭으로의 대체와 결합되었다. 이는 노조 계약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보호받는 노동자들을 1984년 70%에서 1990년 54%로 감소했다.
이러한 경향은 토리 정부에 의해 수용된 일련의 유연한 노동정책의 결과이다.

영국의 이미 최소한적인 노동자 보호와 노동 기준 입법은 희석화 되었고, 실업자들에 대한 연금대체율(benefit replacement rate)은 급격하게 하락했으며, 등등. 영국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의 결과는 엄청났다. 1970년 말에 임금 불평등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선진국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했으며, 영국내에서는 지난 일세기중 최고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임금 불평등의 증가는 부분적으로 1990년대 저임금 파트타임, 불안정노동의 증가와 같은 노동시간 분배의 양극화 때문이었다. 노사관계 체계의 희생도 엄청났다. 1990년대까지 영국은 일본의 공장이전에 의한 유럽지역 생산을 저임금 지역이 되었다. 많은 주요 노조들과 UTC 스스로도 린생산방식을 결국 받아들였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의 집권은 거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다. 최초로 최저임금 기준을 정하기 위한 저임금위원회와 일정정도 강제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노동-복지와 청년 고용 계획. 대처와 메이저 정권의 반노조 입법에 대한 반전은 없었다.

토리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노조원들의 열망 때문에, 노동당은 노조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및 TUC와 많은 부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노조인정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입장과 좀더 온건한 유럽연합 조항을 수용하는데 있어서조차 보이는 정부의 망설임은 노조의 인내력을 한계까지 밀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Amalgamated Engineers나 전기부문의 몇몇 노조들은 신자유주의를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경쟁력과 고용안정을 위해 제조업자본과의 생산성동맹을 구성하고자 하였으나, 이러한 노력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는 80년 말이래―특히 광산노동자들의 파업의 결과로―의 많은 노조들이 그러했던 그저 구래의 노동관행을 폐지하고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기업 노조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블레어와 기업에 의해 기획된 주주 자본주의는 자국에서 생산성동맹을 분쇄했던 독일이나 스웨덴 모델에 대한 사용자들의 공격은 말할 것도 없이, 영국 노조운동에 가해졌던 오랫동안의 공격에 의해 창출된 거대한 장애에 직면한다. EU를 통한 사회적 보호와 함께 '사회적' 유럽에 대한 희망 역시도 미미해지고 있다. 이러한 희망은 EMU의 디플레이션적 편향과 경쟁적인 긴축으로 자본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EU전반의 경쟁에 의해 좌절될 것이다.
유럽금융조합(EMU)은 구조조정을 대처하는데 있어 공급측면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촉진시키는 국가 정책 외에 어떤 선택지도 남기지 않으면서 일국적 경제 정책을 제한시키고 있다. 그래서 유럽좌파의 일부는 블레어리즘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히 이탈리아의 올리브 동맹이나 프랑스 조스팽 정부의 일부, 스페인의 PSOE와 같은 매우 높은 실업률을 가진 지역의 사민당이나 그 동맹조합들이다. 똑같은 차원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유연화'에 대한 추구는 네덜란드 모델이 회자되는 이유이다.

유사하게 블레어리즘은 미국 비즈니스 노조주의자들로부터 회자되는데, 이는 단순히 블레어리즘이 강경한 우파정부로부터 위안을 주고, 지구화를 대처함에 있어 협력의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노동자들의 경험은 노동당의 영국 모델은 영국바깥에 있는 북미 대륙의 노동운동에 어떤 의미도 주기 힘들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b>노동운동과 앞으로의 대안들 </b>

유럽 노사관계 체계의 전환에는 많은 경로가 있어왔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자본주의의 요구의 극대화됨에 따라 많은 도전을 받아왔는데, 그것은 특징적 노사관계를 가지고 있는 독일, 스웨덴, 영국에서의 대조적 경우들에 의해 증명된다. 어떠한 국가 모델도 과거에 그러했던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조정에 따른 파괴에 대한 보호기제를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전후 집단교섭의 기초가 붕괴되고, 어떤 면에서 구래의 협정은 긴축에 따른 고통을 부과하고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이는 유럽에서 일국적 노조운동에 의해 새로운 전략적 방향성에 대한 탐색을 수반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느리고 소극적인 것이었다. 노사관계의 민족적 시스템의 부적합성이 증명되면서, EU 프로젝트는 유럽 노동운동 사이에서 다국적 협력에 대한 희망을 제기하게 되었다. 유럽노조연맹(European Trade Union Confederation)에서의 형식적인 회의와 EU의 조항에 대한 협상 압력, 몇몇 초국적인 교섭 협력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전략적 방향성도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 운동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동안, 유럽 자본은 더욱 빠르게 자기 자신을 전환시켜 가고 있다. 유럽의 경제와 화폐 통합의 추진은 대륙적 규모에서 생산과 유통의 기업주의적인 통합을 동반하면서 전 유럽 차원에서 투자와 고용에 대한 경쟁이 심화를 야기했다. 마스트리히트에서 설정된 유럽 단일 시장(Single European Market)과 EMU 기준의 탄생은 사회적 유럽과 유럽 공장 평의회에 대해서는 미약한 조약을 수립하면서, EU 국가들 전반에 걸쳐 기준과 규제를 통합하려는 정치적, 법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유럽 노동운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략적 전환과 정치적 집결의 필요성은 단지 일국적 수준에서 뿐만이 아니라 유럽 연합 안의 초국적 수준에서도 제기된다.

북미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전지구적으로 자본이 유연화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TINA(There Is No Alternative 더이상 대안은 없다) 이데올로기가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자본 축적의 필요에 종속되는 가운데 몇몇 사회 복지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대안을 모색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자본주의 모델―자본가가 아닌 자본주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자본주의 모델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더 경쟁적이고도 협력적인 자본주의 모델의 추구는 자본주의와 근대화 그리고 과정의 본질에 대한 회의스러운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모델 국가나 모델 노사관계체계는 발전했으며, 반면에 다른 사회들은 퇴보하고 있어 근대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모델로 떠오른 경제들은 마치 자신들이 종별적 계급 투쟁의 산물이 아닌 것처럼, 또 자신이 자본주의의 압력과 위기에는 무관한 것처럼 실제 역사로부터 추상화된다.

사회주의 투쟁의 목적, 전략, 그리고 지형은 어떤 시간에도, 어떤 공간에서도 특정한 역사적 전후관계에 의해 영항을 받는다. 동시에, 그러한 특정한 정세는 그것의 자본주의적 특성과 떨어져 생각될 수 없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들의 "운동법칙"에 의해 영항을 받는다는 점에서 각각의 노동운동은 서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교훈은 어떻게 서로 다른 자본주의의 일국적 모델이 모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접근은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의 경쟁 논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자본주의의 지상명령을 역사적으로 특정하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구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그 결과는 노동운동의 원리―평등주의, 연대, 협동경제와 경쟁적이지 않은 무엇, 그리고 교환이 아닌 필요에 따른 생산―을 허물어뜨리게 한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접근 방식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유토피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적 산물, 바로 독립적인 노동자 계급 조직의 존재, 그리고 경제적 평등과 시장 논리를 벗어난 전망의 가능성이 존재함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자본 축적과 경쟁에 대한 요구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맞서야 한다. 이것은 시장으로부터 해방된 시간과 공간을 넓혀나가려는 목적 하에 시장의 한계지점을 짚어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한 국가에서의 노동운동은 서로에게서 모범을 찾을 수 있으며 국경없는 지지와 연대를 통해서 다양한 정치적 설정에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문제점들에 맞서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북미의 노동운동은 자본의 통제와 임금기금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스웨덴 노동자들을 지원해 줄 수 있다. 또는 독일 노동운동은 노동 시간 단축에 대한 미국의 파업을 지지하는 전유럽적인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좌파가 제공하는 경향과는 매우 다른 유럽과 북미의 노동운동을 전환시키기 위한 전략을 내포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쟁을 길들이려는 무익한 노력에서 촉발된 사회적 파트너쉽 모델에 의존하려는 태도는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이다.
주제어
노동 국제 이론/학술
태그
민주노동당 분당 진보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