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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여름.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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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트너십으로 진화하는 한미동맹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전망

류주형 | 정책위원장
5월에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위기가 비상하게 고조된 상황에서 60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었다.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의 본원적 기능이었던 군사동맹을 한층 강화하는 가운데 ‘지역적세계적 안보 및 경제발전과 불가분으로 연계되어 있는’ 한미관계를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한미정상회담 결과 채택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은 최근 한반도 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태평양으로의 선회’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고 한국이 이러한 미국의 지역적세계적 전략의 하위 파트너로 적극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최근 한미동맹 대 북한의 대결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이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현 정세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감축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오늘날 한반도 위기의 구조적 요인이자 역사적 기원으로서 세계적지역적 차원의 미국 헤게모니와 한반도 차원의 냉전적 구도의 존속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한반도 위기의 정세적 요인이자 현실적 모순으로서 ▲세계 경제위기에 따른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변화와 미일동맹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제고 ▲한미연합전력 대 북한의 군사적 대결과 박근혜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과정을 차례로 분석한다. 끝으로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전망하면서 평화주의와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의 과제를 논의한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북핵 위기’

탈냉전 이후 (아버지) 부시 정부는 레이건 정부의 ‘2차 냉전’이나 ‘두 개의 중국’ 노선과 단절하며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 수립에 착수했다. 이후 탈냉전 시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공식화한 것은 클린턴 정부로, 이들은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과의 ‘교류’(engagement)를 시도한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한 (아들) 부시 정부 1기에는 신보수주의적 국방부를 중심으로 중국위협론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전환’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의 재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추진된다. 반면 부시 정부 2기에는 신자유주의적 국무부가 중심이 되어 주요2개국(G2) 구상에 따라 2005년 미중전략대화를 시작하고 2006년에는 전략경제대화를 시작한다.
1990년대 이후 역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상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정확히 조응하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아버지)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 상응하여 1990년과 1992년에 각각 소련, 중국과 국교를 체결하고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도 각각 클린턴 정부와 (아들)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관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한편으로는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하는 모순을 내포했다. 또 동북아 금융물류 중심국가 구상과 연계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부시 정부의 대테러 전쟁과 ‘북핵 위기’ 정세에서 한미동맹 현대화와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귀결되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은 한소 국교수립, 한중 국교수립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와중에 경제위기와 함께 에너지식량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가 사실상 붕괴했다. 그리고 1994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선군정치’가 출현하게 된다. 선군정치는 인민군이 ‘주체혁명’의 방위자에서 그것을 완성하는 주력군으로 격상된다는 의미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쳐 2000년대 들어 선군정치가 본격적인 핵무장으로 발전했다.
한국전쟁 이후 불안정한 정전체제 하에서 미국이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계속 유지하는 상황에서 ▲탈냉전 이후 중소 핵우산의 공백 ▲주한미군의 핵우산과 남한의 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 ▲‘수직적 확산’을 유지한 채 ‘수평적 확산’만 규제하려는 핵비확산조약(NPT) 체계의 이중 잣대 ▲장기간에 걸친 대북 경제 봉쇄제재의 파괴적 효과 ▲첨단 재래식 무기 대비 핵무기 비용의 상대적 이점 등이 북한의 핵무장을 유발한 요인이다.
1993-94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과 폐연료봉 추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 제재안 결의로 빚어진 1차 ‘북핵’ 위기 국면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되었다(미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대가로 경수형 원자로 2기,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북한은 1998년 3단계 로켓 발사 실험으로 대응하였고, 이 국면은 2000년 ‘조미 공동 코뮤니케’ 체결로 봉합된다(미국이 북한에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 원조를 약속하는 대신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부시 정부 들어 미국은 일본을 향해 배치된 100여 기의 북한 노동미사일을 문제 삼으며 또 다시 기존 합의를 파기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미 국무부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여부를 추궁하면서 2차 ‘북핵 위기’ 국면이 시작되었다. 이에 북한은 ‘인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NCND)으로 일관하면서, 미국의 안전 보장과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일괄 타결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의 제안 거부와 그에 뒤이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선언, IAEA 사찰단 추방, NPT 탈퇴 (재)선언으로 위기가 고조되다가 이 국면은 2003년 8월 6자회담 개최로 일단락되었다.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선언, 2007년 213합의, 2007년 103 합의가 도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상 틀은 기본적으로 북미협상이라는 일대일 협상에서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을 여러 나라로 분산하는 구조였다. 더구나 미국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북한을 ‘정권교체가 필요한 깡패국가’로 규정하였고,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부시 정부 말기 북한은 2008년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하고, 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 의혹이 제기되면서 같은 해 12월 6자회담은 결렬되기에 이르렀고, 지금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위기와 대화가 끊임없이 교착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2009년 2차 핵미사일 실험, 2012-13년 3차 핵미사일 실험으로 핵미사일 역량을 단계적으로 제고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에는 ‘북한과의 협상이 핵 공갈과 그에 따른 갈취의 악순환만 조성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런 인식은 오마바 정부의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 정책기조에 반영되는데, 이는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시키기 전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외전략과 대북정책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심화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위기는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연준의 통화정책(제로금리수량완화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과 같은 비상위급대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힘입어 미국은 ‘더블 딥’을 예방하는 데 얼마간 성공하지만, 일련의 정책은 금융위기로 인한 민간의 부채를 정부의 부채로 이전한 것으로, 이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위기와 달러위기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유럽연합의 재정위기은행위기를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 경제는 추가적인 적자재정정책 실행의 곤란과 주택시장의 부진이라는 두 가지 역풍에 직면해 있다. 비상위급대책에 의해서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음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차선책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2011년 오바마 정부가 선언한 ‘태평양으로의 선회’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중시 정책은 미중 관계(G2)를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동맹(G3)을 강화하는 이중 노선으로 구성된다. 이중에서도 최근 부각되는 것이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모형으로 삼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TAAP)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이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북한이란 등이 ‘세계적 공유지’(global commons)인 황해남중국해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의 작전을 방해한다(Anti-Access/Areal Denial, A2/AD)는 인식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합동작전접근개념’, 즉 ‘해상공중전’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게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데, 미국은 역내 안정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유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2010년 제출된 미국의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는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옵션을 유지했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축소될 수 있으니 ‘3원 전략 핵전력’(전략 폭격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방어망(MD),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유지해 전략적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선전대로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북한이나 이란 같은 비확산 체제의 이탈 세력을 관리하여 핵독점 체제를 유지하려는 명분일 따름이었다.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초당파적으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 재검토하였다. 이 보고서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더 이상 사용가능한 마땅한 옵션이 없어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명시적 묵인’(explicit acquiescence) ▲북한을 비핵화하는 데에는 장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협상과 압박의 수단을 병용하여 북한의 수직적수평적 확산을 방지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는 ‘관리와 봉쇄’(manage and contain) ▲제재와 인센티브를 병용해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비핵화의 길로 복귀하도록 시종일관 압박하는 ‘원상복귀’(rollback) ▲경제적 제재를 확대하고 해상 봉쇄를 강화하는 등 북한 지도부를 전복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펼치는 ‘정권교체’(regime change) 등 네 가지 옵션을 검토한다.
첫 번째 옵션인 ‘인정’ 정책은 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연계하지 않는 접근법이다. 이는 긴장 완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역내 동맹국들의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은 미국 힘의 약화와 NPT 체제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핵 보유를 추구하는 여타 국가들에 대한 협상력을 침식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 옵션을 채택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네 번째 옵션인 ‘정권교체’ 접근법은 일체의 대화와 협상을 북한이 핵 위기를 고의로 지연시키기 위한 구실로 간주한다.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남북통일이나 또는 개혁성향의 북한 지도부의 수립 등과 같은 정권교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안정성이라는 대가를 감내하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나 중국이 지역 평화와 안정을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고 남한도 갑작스러운 정권교체 시 부담해야 할 비용을 우려한다는 점이 이 옵션의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수평적수직적 확산을 지속하면서 비핵화의 길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오바마 정부는 비핵화를 계속해서 압박하는 공식 방침에 병행해서 이 옵션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한다.
두 번째 옵션인 ‘관리와 봉쇄’ 접근법은 오바마 정부 초기의 대북정책과 가장 유사한데, 이는 북한의 수직적수평적 확산 방지를 최우선적이고 직접적인 목표로 삼으면서,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관리와 봉쇄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는 방책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관리와 봉쇄 접근법은 또한 미국이 오로지 반확산에만 관심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결과적으로 비핵화보다는 북핵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관리와 봉쇄는 비핵화 노력과 결합되어야 한다.
세 번째 옵션인 ‘원상복귀’는 미국이 역내 국가들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핵 포기를 강제한다는 구상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할 경우 2005년 ‘9.19 공동 성명’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받게 될 것인 반면 그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은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보고서는 북한을 비핵화 프로세스로 복귀하게 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본다. 중국의 경우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보고서는 옵션 2의 잠정적 편익을 인정하면서도 옵션 3을 중점적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오바마 정부에 권고하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시리아, 리비아 등으로 수출되거나 이란과 연계되는 것은 미국 국가안보와 지역의 안정에 직접적 위협이 되므로 수평적 확산을 금지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추가적인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수직적 확산을 중단시켜야 한다. 셋째,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세계 NPT 체제에 중대한 도전이 되므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해야 한다. 넷째, 난민의 발생, 핵무기핵물질에 대한 정권의 통제력 상실, 내부 혼란의 장기화와 같은 북한 우발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의 고립이 현 지도부의 지속에 도움이 되는 반면 노출은 궁극적으로 정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므로 접촉(engagement)을 확대해야 한다. 여섯째, 인도적 지원과 인권 개선 등 북한 인민들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미국의 대응

이런 정책적 옵션 내에서 오바마 정부 1기의 대북정책은 실제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6자회담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비가역적 조치’를 취한다는 보장이 없는 한 거부한다. 둘째, 6자회담이나 북미 대화에 앞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남북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평가를 변경하도록 노력한다. 넷째, 합동군사훈련과 한미일 삼각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에 대응한다.
이러한 미국의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에 따라 대화와 협상이 교착상태에 처하고 한미일의 군사적 압박과 국제적 제재가 한층 강화되자, 북한은 오바마 정부 2기 출범 직후인 작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주기를 명분으로 로켓 실험을 강행했다. 이번 로켓 실험 성공은 이미 확보한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에 도전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서 올해 2월 진행된 3차 핵실험은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의 소형화개량화를 목표로 한 실험이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과 3차 핵실험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에 대한 기술적 평가와 더불어 ‘전략적 인내’에 대한 정책적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전에 행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이 지역안정을 해치는 것은 물론 미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미국 국방부가 보고서에 공식 반영되어 있는데, 여기서 미 국방부는 북한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안보적 도전’이라고 평가한다. 북한이 남한, 일본, 태평양 전구(theater)에 도달할 수 있는 이동식 탄도미사일 역량을 확보했고 핵기술 개량과 함께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개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고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제한된 자원 투입 규모와 실험 빈도에 달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미사일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은 따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에 제출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했다거나 ICBM이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초고열과 압력에 견디는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보고서는 정보당국 간 이견을 보인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수준에 대한 평가도 다루지 않고 있다(4월 미 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다고 평가했으나 국가정보국(DNI)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에 제출된 다른 기관의 보고서는 북한이 아직 높은 수준의 핵폭탄 위력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북한이 핵탄두를 충분히 소형화경량화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 군사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미국에 대해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최소억제’ 수준의 핵전력을 구축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현재 소형화경량화된 핵탄두를 ICBM에 탑재해 미 본토를 타격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국방연구원의 한 분석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서는 남한의 재래식 공격을 제2격하여 무력화할 수 있는 충분한 핵무기 수량과 위력을 확보한 상태라고 평가한다.
이런 기술적 평가를 바탕으로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을 부분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비판의 요지는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핵확산 활동을 봉쇄하는 데 주안점을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이 상황을 통제하도록 허용한 것이 오바마 정부 1기 대북정책의 결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유화 시기에는 접촉을, 긴장 시기에는 압박을 병행하며 북한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동안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미사일 역량을 키웠고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확대되어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 2기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결함을 보완하여 일관되게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정책적 옵션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3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오바마 정부의 일련의 입장은 ‘전략적 인내’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도 세부적인 정책의 효과를 높이는 추가적 조치를 적극 구체화하고 있다. 미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안정화와 비핵화를 위해 한미일의 공조가 필수적이며 미국은 동맹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재확인한다 ▲미국과 중국 간에 북한 문제에 대한 불신을 감소시킴으로써 중국이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여 북한의 행동을 순치하고 비핵화 프로세스에 복귀하도록 견인한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로 복귀할 경우 협상에 임하고 협상에서 합의한 약속을 이행한다. 이에 따르면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단중기적으로는 국제적 제재 강화, 중국과의 공조 강화 등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강제하는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확대하고 한미일의 군사적 압박을 강화함으로써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면서 북한이 계속해서 도발을 지속한다면 압박을 더욱 강화하면서 북한의 위협과 도전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정책적 옵션으로서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3-4월 한미동맹과 북한의 군사적 대결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북한의 대결 구도가 첨예해진 가운데 3월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여 한층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돌입하였다. 이와 함께 한미연합전력은 3-4월 확장억지 성격을 지닌 대북 무력시위를 본격화하였다. 한미연합훈련에서 전략폭격기 B-52, 스텔스폭격기 B-2, 핵잠수함 샤이앤이 동원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미국은 북에 대한 핵위협을 실제화했다. 또한 한미 양국은 북한의 국지도발시 도발원점과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한미국지도발대응계획’도 발효했다.
북한도 3월 들어 대미 공세 수위를 한층 높였다. 최고사령부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5일), 외무성의 ‘핵 선제 타격권 행사’ 발언(7일), 조평통의 ‘남북불가침합의 무효’ 선언(8일),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선언(27일,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은 강력한 핵 선제 타격이 포함된다”), ‘남북 관계 전시상황 돌입’ 선언(30일)이 차례로 이어지며 한반도의 위기감은 날로 고조되었다. 또한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하고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국과 인공위성 제작발사국임을 법령으로 채택했다(‘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 ‘우주개발법’). 그 후속조치로 2일에는 영변 핵시설 용도의 조절변경을 언급했는데, 이는 기존 핵시설을 이용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물질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4월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전개된 양측의 작용반작용은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우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사활적 과제로 추진 중인 ‘태평양으로의 선회’ 전략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단적으로, 미국은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온 MD 체제의 당위성을 이번 계기를 통해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한반도 주변에 전략 무기 외에도 F-22 스텔스전폭기, SBX 레이더,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는 파격적 군사 조치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격 실행하였다.
이와 함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주축을 이루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비핵보유국 중에서 유일하게 핵재처리 시설을 공인받고 있으며 핵물질과 핵기술 두 측면에서 언제든 핵보유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빌미로 핵무장화와 ‘보통국가화’를 계속 시도했다(2011년 무기수출금지 3원칙 수정, 2012년 우주관련법 개정). 그리고 아베 정부는 올해 2월 ‘긴밀한 미일동맹이 완전히 부활했다’고 선언하고 3월 TPP 협상 참가를 결정하고 4월 주일미군 재편 협정을 마무리했다.
박근혜 정부도 북핵 억지와 불용이라는 원칙 하에 각종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여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한편 한미 군사동맹 강화를 통해 핵억지력을 제고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보수세력들은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핵우산 등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적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거나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재래전 중심의 군비경쟁논리나 억제 방어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는, 전자의 경우 ‘국제법상 불법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세계평화 차원에서 부도덕하며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 ‘동북아에서 미중 간 새로운 갈등요소로 등장할 것이므로 미국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이러한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이유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간주해서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 측의 공약과 양해를 얻어내는 기제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가령,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서 남한이 동맹국과의 조정·합의를 거쳐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면 향후 유연하고 다양한 핵 억제 전략을 구사할 토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글로벌 파트너십으로의 진화

이런 상황에서 5월에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은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보다는 제재와 한미동맹의 군사적 압박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더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였다.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은 ‘북한의 핵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그리고 반복되는 도발행위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위기를 만들고 양보를 얻어내는 때는 지났다”고 말함으로써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로 표현된 기존 정책기조를 변경할 뜻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제사회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한 목소리로 단호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보조를 맞췄다.
대북 정책 공조를 뒷받침하는 군사동맹 강화 방안도 폭넓게 논의되었다. 공동선언에서 미국은 확장 억지와 재래식 및 핵전력을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 사용을 포함한 대한(對韓) 방위 공약을 재확인하였다. 특히 이번 공동선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정보·감시·정찰 체계 연동을 포함한 포괄적이고 상호 운용 가능한 연합방위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한국의 미사일방어망(MD) 체계 편입을 암시하고 있다. 향후 일본과 남한의 MD 참여와 함께 이와 연관된 한일정보협정 체결, 한일 양국의 재래식 전력 증강(첨단무기 도입) 등이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양국은 한미동맹을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에도 합의했다. 공동선언은 이러한 동맹 발전의 중요한 전기로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꼽고 있다. 한미 FTA가 한미 양국 간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여 양국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 군사동맹과 함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linchpin)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TPP 참여 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공동선언에서 언급된 것처럼 한미 FTA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조만간 미국이 박근혜 정부에게 TPP 협상 참여를 종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동맹은 2003년 노무현-부시의 ‘동맹 현대화’와 2009년 이명박-오바마의 ‘동맹 공동비전’을 거치며, 동맹의 범위를 한반도에서 지역과 세계로 확대하고 동맹의 이슈를 군사안보에서 경제문화 등으로 확장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해왔다. 가령, 이라크전을 비롯한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한국이 파병으로 호응하고, 해외주둔미군재배치전략(GPR)에 따라 주한미군기지를 재편하고, 한미 FTA를 체결발효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세계화·지역화 전략에 편입하고, 핵안보정상회의와 같은 미국의 핵독점체제 유지를 위한 거버넌스를 지지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들이다. 이번에 합의된 ‘글로벌 파트너십’ 개념은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인권, 인도적 지원, 개발 지원, 테러리즘, 원자력 안전, 사이버 안보 등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통치성(global governance)에 한국이 하위 파트너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한다.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도발을 중단하면 대북 지원과 경제공동체 건설 등을 추진하고 북한이 도발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대화와 억지가 배합된 정책으로서, 이는 오바마 정부의 ‘투 트랙’에 입각한 ‘전략적 인내’와 공조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또 정부는 한미 정상 간에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합의점을 찾았다는 것을 두고 향후 대북정책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상대적으로 방점을 찍고 있는 한국이 한미 대북공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공동선언은 2009년 이명박-오바마의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 기초하여 ‘비핵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 통일’을 재론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기존 노선과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최근 케리 미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현재 상태에서 신뢰프로세스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란 외교적 수사로 보는 것이 옳다. 한국이 대북정책을 주도한다는 것도 실은 북미대화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그간의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북핵 제거 및 확산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4월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나 5월 방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연이은 강경 발언 등 일련의 상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박근혜 정부 스스로가 신뢰프로세스를 선언 이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할 때, 최근 비상하게 고조된 한반도 긴장 국면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여기서 의미있는 합의가 도출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설령 단기적으로 대화 국면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미국과 북한은 지금까지 이뤄진 대화 또는 협상을 상대방이 진정한 의도를 숨기고 자신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기만술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미일 삼각공조가 북핵을 빌미로 점점 더 중국을 포위하는 형세를 조성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은 점증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의 과제

최근의 군사적 대결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적 충돌은 물론 핵전쟁의 가능성이 엄연히 실존함을 보여주었다. 오마바 정부는 동아시아 주둔미군의 전쟁태세를 한층 더 강화하며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 정책을 재확인하고 MD 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남한은 북한 핵을 빌미로 미국과의 동맹을 포괄적으로 강화하면서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비핵화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을 주장하며 핵미사일 역량을 제고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핵재래식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종국적으로 비핵지대를 구축하려는 평화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회운동은 대화나 협상을 통해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 외에 한반도에서 핵재래식 군비경쟁과 전쟁 위기를 감축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개월 간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사회운동의 대응을 간략히 평가하면서 향후 과제를 점검해보자.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으로 결집한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등 범 민족해방 계열은 ‘관련국의 군사적 행동 중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시작’을 요지로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미 군사대결 과정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단 북에 대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 주장의 밑바탕에 깔린 오류와 맹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한다.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협상수단 또는 자위수단으로서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해야 한다는 관념, 또는 최소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념을 내포한다.
우선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의’ 핵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핵비확산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크지 않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계속해서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부수적으로는 주변국의 보수적호전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진보적 평화운동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도 낳을 수 있다.
다음으로 이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이후 최근까지 전개된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핵무장을 단순한 협상용이라거나 자위용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2012년 새로 개정된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과의 일괄타결이냐 전면전이냐 양 극단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북한의 핵대결 논리는 처음부터 한반도와 주변국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었고 그 판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남한에서는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핵무기 반대’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확장은 고사하고 대중적 토대마저 유실할 위험이 크다. 강조하건대,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핵무기 그 자체가 전쟁의 억지 요인이 아니라 유발 요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핵 전략가들은 상대방의 핵 선제공격에 대해 핵으로 보복공격을 단행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해 핵전쟁을 합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전쟁의 가능성 또는 현실성을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전쟁을 예방한다는 것은 예상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위험, 하지만 그 대가가 인류전체의 절멸인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에 대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다.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
아울러, 설령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그 결과 일정한 타협이 도출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 한미일 삼각동맹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는 근본적으로 침식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동아시아 핵재래식 군비경쟁 또는 전쟁위기의 근본적 유발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해체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북미 간의 대화나 협상이 갖는 제한적 의의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자신의 일관된 요구로 채택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폐기,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 남한의 군비 증강 반대와 같은 ‘일방적 군비축소’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확장억지 성격을 지닌 합동군사훈련 저지, 미국산 첨단무기 도입, 한국형미사일방어망(KAMD) 구축 및 MD 편입 반대, 주한미군 방위비 추가 분담 저지를 목표로 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아울러 양국 간 입장 차이로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독자적 핵무장화와 핵수출을 용이하게 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핵무장을 해제하고 군사동맹을 폐기하기 위한 평화운동의 국제적 연대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끝으로, 이 글의 주요 분석 대상은 아니지만, 한국의 TPP 협상 참여 여부를 예의주시하면서 정부의 자유무역협정 전략 전반에 대한 포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한중 FTA, 한중일 FTA 협상 상황을 고려하면서 TPP 참여 문제를 신중히 결정한다는 입장을 가져왔지만, 한미정상회담을 전후로 미국 당국자들이 “TPP는 미국 정부의 우선 정책 과제”라고 거듭 강조한 사실을 감안할 때 TPP 참여 문제를 계속 우회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미 FTA가 한미동맹 현대화나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맥락에서 추진되었고 현재 일본의 TPP 협상 참여도 미일동맹 강화 맥락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글로벌 파트너십’ 개념은 향후 TPP 참여의 강력한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운동은 한국의 TPP 참여가 초래할 정치적경제적 효과를 비판하면서 정부의 FTA 추진 전략을 비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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