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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7-8.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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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노동자의 빈 밥그릇, 정부의 무기 '실업급여'

유의선 | 실업정책생산모임, 서울지역실업자연대
최근 실업급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업이 구조화되고 장기화되면서 '실업'은 '사회적 문제'라기보다, 어느 정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실업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업급여 등 실업부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나 기관의 관심은 실업률과의 관계에 있다.
대량실업 이후 정부통계상 실업률은 3.8%까지 떨어졌지만 체감되는 실업률은 이보다 높고 실업급여 신청자수를 예로 들어 실업률과 경기회복정도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량실업이후 고용보험 적용대상을 계속적으로 확대하면서 5인이하 사업장 및 일용직과 60세이상 고령취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등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b>고용보험 적용되어야 급여수급이 가능</b>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업급여는 실직전 18개월(기준기간)동안에,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근무한 기간(피보험단위기간)이 180일 이상인 실업자 중 근로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지급된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간과 이직시 연령에 따라 90∼240일 범위내에서 각각 차등 지급되고 있는데, 단 개인사정(전직, 가사, 자영업 등)으로 이직하거나 본인의 중대한 잘못으로 해고되었을 경우에는 지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재로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고용보험에 6개월 이상 가입을 했어야만 지급대상이 된다. 현재 제도적으로는 5인이하 소규모 사업장까지 고용보험에 의무가입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 적용률은 절반에 못 미친다고 한다. 경북 구미상공회의소는 최근 이 지역 사업장 70여곳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중 의료보험과 산업재해보험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가 각각 11.6%와 4%에 그쳤으며, 고용보험 가입자는 0.5%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경기침체 및 구조조정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 비정규직이라고 할 때, 실업급여의 수급대상에조차 포괄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1998년 대량실업 이후 장기실업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다수의 중고령 장기실업자는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일용직이나 중소사업장의 노동자이다. 구직의사가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대다수의 장기실업자의 경우, 실업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실업급여의 드넓은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b>짧은 수급기간과 낮은 급여</b>

고용보험에 가입하여 실업급여 대상자가 되었어도 수급기간은 너무나 짧다. 고용보험 자체가 1995년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에 실업급여 기간이 최장 240일이라고 하나, 이는 10년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우여서 해당자가 없다. 현재로는 50세 이상이 210일, 50세 이하는 180일이 최대 수급기간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90일 정도의 수급기간이 전부이다.
문제는 장기실업이 늘어나면서 고용보험에 가입했었다 할지라도, 실업급여를 받고나면 다른 어떠한 실업부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생활안정에 기여했다는 공공근로가 대폭 축소되었으며,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도 차상위계층의 장기실업자를 포괄하지 못한다.

실업급여가 실업기간 동안의 생활안정을 통해 실업의 충격을 분산시키기 위한 목적을 갖지만, 현재 급여 역시 턱없이 적은 액수이다. 원칙적으로는 평균임금의 50%를 받게 되어 있으나 상한액이 일35,000원(2000년 12. 31일 이전 이직자는 30,000원)이어서 월 100만원을 넘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평균임금이 200만원을 넘었던 실업자에게만 해당된다.

평균임금이 낮을수록 급여액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최저액을 최저임금법상의 시간급 최저임금액의 90%로 정해놓았지만, 시간당 1,800원 가량의 최저임금액을 지급받는다 해도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다. 특히 대부분 실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저소득 일용직층은 단기간의 실업기간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인데, 실업급여는 수급자격이 되더다도 실질적인 생활안정을 꾀할 수 없는 실정이다.


<b>이직자에 대한 엄격한 제한기준</b>

개인적 사정으로 이직을 했어도 실업급여 대상에 포괄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수급권의 제한이 매우 엄격한 편이다. 이직 후 12개월(수급기간)이 경과했거나 학업, 가업 등을 위하여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었거나 본인 과실로 해고된 경우뿐만 아니라, 직업안정기관의 직업소개·직업지도, 직업능력개발훈련지시에 응하지 않은 경우나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경우도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당한 이유 없는 자기사정에 의한 이직과 징계해고자의 실업급여 수급권은 완전히 박탈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의 지급을 유예한 후 수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장기실업자에 대해서는 이직사유에 따른 수급권 제한을 완화하자는 제안이 제출되고 있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경영계는 자발적 이직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보험사고를 스스로 유발한 경우에도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라는 점과 재정상의 부담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실업급여 수급의 장애들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실업급여 수급률로 나타난다. 일본, 독일, 미국, 영국은 실업자 대비 실업급여 수급률이 각각 39%, 44%, 36%, 30%인데 비하여 한국은 2000년 하반기 9%에 그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의 경우 실업급여 이외의 실업부조 수혜자를 합하면 전체 실업자의 89%, 71%가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실업급여 이외에 이렇다 할 실업부조제도가 없으며, 실업대책도 사각지대가 넓어 대부분의 실업자가 실업의 충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b>실업급여 활용, 실업자 통제하는 정부</b>

정부는 최근 실업급여와 관련된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다. 지난 4월초 <IT·3D업종 인력부족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3D업종에 정당한 이유 없이 두 번 이상 취업알선을 거부할 경우, 실업급여 지급을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최근 3D업종에 취업하는 실업자에게는 잔여 실업급여 전액을 받을 수 있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현재 4인이하 사업장인 경우, 실업급여는 노동자와 사업주가 각각 노동자 임금총액의 0.5%를 부담하고, 고용안정사업과 직업능력개발사업은 임금총액의 0.4%를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게 되어 있다. 즉, 정부의 기금 없이 사용주와 노동자가 낸 실업급여를 담보로 '눈높이취업'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눈높이 취업'의 발상은 실업의 원인과 책임을 개개인에게 돌리며 실업자들을 직업선택의 자유마저 없는 한낱 정부 실업대책상의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만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시간의 노동을 실업자들에게 강요하며 실업자들의 자발적인 직업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저임금노동력을 노동시장에 계속 공급함으로서 전반적인 노동시장에서의 경쟁강화와 임금하락효과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실업급여'를 통해 실업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낮은 고용보험 적용률, 엄격한 수급 제한조건, 짧은 수급기간과 낮은 금액의 실업급여는 실업자의 생활보장보다는 정부의 '눈높이 취업'을 강제하는 도구로 쓰여지고 있을 뿐이다.


<b>실업문제와 실업노동자 권리에 대한 다양한 접근</b>

직장인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이 '실업'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살아간다. 당장 불안감이 없다 해도 언제 어느 때 '실업자'가 될 지 알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노동자들은 매달 월급명세서 빠져나가는 고용보험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싫어서 직장을 그만두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취업알선한 곳이 자신과 맞지 않아 거부해도 급여를 받을 수 없으며, 최대한 6개월에 임금의 50%를 받고 열심히 구직활동한 증거를 실업인정일에 딱 맞추어 제출하지 않으면 그나마도 지급되지 않는 실업급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실업급여는 실업노동자의 유일한 생활보장책이다. 그러나 실제로 생활보장책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며 이를 담보로 더 낮은 임금과 강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그럼에도 실업자에 대한 인식변화와 실업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좀처럼 보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실업의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고, 실업자를 관리·통제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점점 치밀해지며 노골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업급여는 실업노동자의 생활보장책으로서의 제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하며 정부의 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
실업급여는 하나의 작은 예일 뿐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의 깃발을 기대하기 이전에, 실업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업의 문제는 곧 소외된 노동의 문제이며 구조적인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업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실업노동자의 권리찾기를 위한 하나의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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