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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9.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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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공동체가 파괴되는 개발은 착취다 ; 새만금갯벌살리기 운동의 성과와 전망

이민영 | 새만금 즉각 중단을 위한 전북사람들 사무국장
"우리넌 이것없이는 못살아, 이 놈이 효자지."
"그래가지고 갯벌엔 어떻게 나가세요?"
"우리넌 갯벌 나가먼 하나도 안 아파. 온몸이 쑤시다가도 갯벌만 가머는 훨훨 날라댕겨. 많이 캘수록 들고 나올 때 더 가볍당게, 근디 쪼금 잡으먼 그 날은 다리도 더 무겁고 온몸이 쑤셔서 밤에 잠도 안 와. 우리는 그려, 안그런가?"
"그라죠." 하하하.
5월 24일 새만금간척사업 강행결정 하루전이다. 부안 계화도에서 군산 내초도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아보겠다고 짐챙겨 서울로 올라온 할머니, 어머니들이 첫날 숙소에서 고단한 하루의 무게를 파스로 달래고 계셨다.
'새만금 갯벌은 그곳 여성들에겐 생명과 자립의 밭이었습니다.… 거기 여성들은 갯벌에 의지하고 갯벌 속에 인생을 섞으며 사는 자신들의 처지와 삶에 당당했습니다. 갯벌은 그곳 여성들을 쉬이 자립하게 하고, 여성들에게 속한 식구들과 공동체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습니다. 갯벌과 만나며 그곳 여성들은 평화와 생명과 공존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 천주교 여성생태모임 레헴의 현장 방문기 중

주민의 삶과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이 새만금지역 뿐만은 아니다. 그러나 대규모 개발사업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삶과 공동체 파괴는 보상으로 치유되거나 희생으로 미화될 수 없다.
전라북도는 농업인구가 21%를 넘고 생활보호대상자가 5.8%를 넘으며, 노령인구 또한 전국평균 6.1%를 넘는 9.8%에 이른다. 그러므로 전북지역의 발전은 농사짓기 편하고, 가난한 사람이 살기좋고, 노인이 살기좋은 곳이면 된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사업은 이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오히려 대다수 도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농지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최소분양단위가 6헥타르, 총공사비를 6조라고 할 때 12억7천만원이 있어야 분양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소규모 영농농민들 중 이 땅을 분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규모 영농으로 끌어가려는 정부 농업정책에 따라 기업농 형태만이 새만금 간척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기업농과의 경쟁을 간척지 밖의 소농들이 이겨낼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어쩌면 외국의 농업자본이 들어와 농사를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훌륭한 식량안보 계획이 아닐 수 없다.
수질개선비를 떠안게 될 전북의 재정부담은 지방비 3873억원과 지방양여금 7400억원이다. 가뜩이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전북에서 이 돈을 마련하기는 매우 어렵다. 도민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 쓰였던 돈들이 한 곳으로 몰리게 되면 당연히 세금부담만 늘어난 채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줄게 될 것이다. 8월14일자 한겨레신문에 의하면 현재 지방양여금 중 2892억원이 부족할 것이라는데 이 돈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를 털게 될 것이다. 양여금은 주세 등 국세의 일부를 지자체의 도로정비·농어촌지역개발·수질오염방지·청소년육성 사업에 지원하는 것인데,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전북의 다른 사업에는 이름내기식 지원이상일 수 없을 것이다.
새만금호 수질개선을 위해 전북면적의 45%, 인구의 83%가 규제지역과 규제대상이 된다. 오염총량제, 농업시비량 감축, 전주권 그린벨트 규제, 축산농가 감축, 인구억제, 산업화규제가 그 내용이다. 간척지를 분양받을 수 있는 부유한 소수를 위해 2만2천이상의 어민이 생업을 잃고 165만8천명의 도민들(규제대상에 포함되는 도민수치)이 희생돼야 한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대대로 지역의 자연환경에 뿌리박고 살아온 수만 명의 주민들을 아무런 경고 없이 내쫓고, 광범위한 지역의 모든 자원을 착취하고 있다. 지도 한 장 펴놓고 책상 위에서 5년 뒤, 10년 뒤를 계획하는 대한민국의 개발계획에는 고유의 역사와 생활공간을 가진 자유로운 인격체로서 개인은 없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아니래도 마찬가지다. 도시 재개발은 개발의 혜택과 전혀 관계없는 빈민들을 더 열악한 곳으로 쫓아내고 있으며 섬이나 해안 후미진 마을을 타겟으로 하는 핵 폐기장, 핵 발전소 등은 중앙중심의 전력공급에서 가장 소외되는 곳이었다. 대도시 용수공급을 위한 댐들은 산골마을의 평화로운 마을을 해체시킨다.
그리하여 국가, 혹은 국토 수준의 계획은 그 기본요소인 생명, 그리고 한 묶음의 생명인 인간·생태공동체의 내적인 발전 가능성을 사상한다. 단지 사상할 뿐 아니라 봉쇄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발은 착취와 다르지 않다. -서형원, 환경운동연합

새만금간척반대운동의 성과

민관공동조사단이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은 잠시 소강상태였다. 상호간 약속도 있었고 달리 계기나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침묵을 깬 사건이 매향제였다. 2000년 1월 마지막날 상여를 타고 해창갯벌로 나가는 향나무에 갯벌의 천년 장수를 기원하는 전통과 해양문화가 함께 한 행사였다. 간척사업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지금까지 새만금 반대운동에 함께 하지 못했던 지역주민이 새로운 동력,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주민생존권과 공동체 파괴로 어민들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모든 투쟁에는 현장과 주체가 있기 마련인데, 이전까지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에는 현장은 있되 주체는 적절하지 못한 격이었다. 이 빈틈이 채워지고 민관공동조사단의 결정이 한 달 두 달 미뤄지면서 그 대의명분을 상실하자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종교인들이 모이고 환경이외의 다양한 시민운동세력이 한 목소리를 냈다.
아직 새만금 사업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운동으로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 자연을, 인간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는 대상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공존의 주체로, 하나의 거대한 생명으로 인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의 전국적인 조직을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연대'라고 이름지으며 생명과 평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자 했다.
미래세대 소송은 어른들의 양심에 의해 배려차원에서 부여됐던 권리를, 어린이들의 적극적인 자기 권리 찾기로 진행되었다. 많은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의 미래를 착취할 수 없음을 경고하는 의미가 되었다.
인권단체들은 새만금 문제를 전국민의 환경권과 현지 주민의 생존권을 포함한 인권으로 받아안았다. 농민단체는 농민들이 농지를 버릴 수밖에 없는 정책을 펼치면서 식량안보를 무기로 더 많은 식량자원을 파괴하고 어촌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에 반대하며 새롭게 수질, 특히 농업용수에 대한 고민을 받아안았다. 노동단체가 민중생존권 파탄과 비경제성을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보건의료단체는 국민 건강권의 침해와 미래를 학살하는 사업을 중단하라 외쳤다. 교사들은 미래세대의 안정과 생존을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교육을 위해 사업중단을 요구했다. 문인들마저 재앙과 폐허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새만금 간척 중단운동은 그간의 환경운동의 성과와 국민환경의식의 변화를 총결집하는 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업강행을 결정하였다.
강행결정의 배경에는 전북 표심이 있었다. 4월 26일 보궐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참패였다. 그 중 특히 전북지역의 패배는 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민주당은 선거결과를 경기침체와 의약분업 실패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대신, 아전인수격으로 새만금 사업에 대한 반발의 결과로 애써 축소해석했다. 그리고 한 달만에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DJ정부는 경제성, 환경성, 국민 83%의 반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당장의 표밭을 다독거리는 것이 중요했다.

새만금갯벌살리기 운동의 한계

전북을 설득하지 못한 결과로 강행되었지만, 다른 지역어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만금이 전북이 아니라, 수년간 인구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고있는 개발소외를 경험한 조건을 가진 경기도나 전남이나 경상도 어디쯤에 있었다 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개발에 대한 기대가 보존의 필요성을 앞지르고 있고, 지역감정과 지역이기주의가 뿌리깊게 내재되어 있다는 증거다. 서울사람이 지역의 어느 골짜기를 보호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골짜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개발을 통해 무언가 얻을 것같은 환상을 포기하고 환경보호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이 그간의 성과를 결집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환경의식은 폭력과 착취를 내재한 개발이데올로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또 환경과 그에 기반한 삶과 공동체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으로, 공존의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 산을 넘지 안고서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설령 중단된다 해도 새만금 갯벌과 주민들의 삶과 공동체가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전북민심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개발소외를 극복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대안이 있어야 했다. 개발은 그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지는데 반해, 개발 '중단'은 전북도민들이 수긍할만한 구체성과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 전북도민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이 전북도민의 생존권과 개발을 오히려 제약할 것을 알지 못했다. 전북 지방정부와 정치인과 언론 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도민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 사안에 대해 양자를 공개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 상호설득과 토론이 가능케 함으로써, 민주주의 실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천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다양한 쟁점도 사실상 모두 수용하지 않았다. 새만금 갯벌의 생명은 중요한 가치가 되지 못했고 주민들은 보상했으니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단지 수질만이 문제였다. 수질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강행결정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막대한 돈을 들이고 상상가능한 모든 대책들을 끌어들여 농업용수 기준을 맞추고 기어이 강행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환경에 대한 미천한 수준을 보여주고 만 것이다.

새로운 국면의 갯벌살리기 운동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작년과 올해까지 그 큰 흐름이 겨우 공사 지연의 결과에서 끝났다면, 중단을 위해서는 더 큰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우리 자신들 속에 있는 개발에 대한 환상을 깨고 지역이기주의,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개발은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형평성, 세대간·생물간 형평성이 보장되고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전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만금 지역의 어민들과 전북도민의 여론이 관건이다. 이 곳의 여론을 뒤집지 못하면 새만금 간척사업이 중단된다고 해도 전북은 상처만 남게 될 것이다. 이에 전북사람들은 새만금 즉각 중단을 위해, 새만금 사업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홍보와 교육을 밑바닥부터 시작하고 있다. 공사가 재개되면서 절망하고 있는 주민들을 다시 조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천만인 서명운동이 진행중이다.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내용을 준비하는 중이다.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은 앞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계속 유지하면서 전북민심을 변화시키는 두 축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금 계화도 하리 갯벌입구에는 천막과 현수막을 걸어놓고 외지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간척사업 반대운동으로 유명해진 탓에 외지인이 갑작스레 늘어나니 생업에 지장이 있다고 한다. 전에는 외지인이 관광차 와서 조개 캐가는 것을 나무랄 인심은 아니었는데, 날이 갈수록 생산량이 줄어들다보니 이런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들의 생존권, 공동체, 생태계와 그를 이용한 삶의 방식은 지도 한 장 펴놓고 자대고 선 긋는 개발계획과는 공존할 수 없다. 개발은 이(것)들을 착취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PSSP
주제어
생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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