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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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노동자2.HWP

남과 북의 노동자(2) Workers North and South

Beverly J. Silver & Giovanni Arrighi |
* 번역 : 진보저널 읽기모임

제3세계의 의문의 죽음

우리는 정치-이데올로기 세력인 제 3세계가 1980년대에 붕괴됐다는 해리스, 호오펠트, 그리고 그라이더의 명시적인 혹은 암묵적인 주장에 대해 반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 3세계의 붕괴가 경제적 기회의 평준화를 동반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해리스와 다른 많은 이들이 표면상 ‘발전’의 가치로 간주하는 산업설비의 확산 과정은, 실제로 제 3세계 인구 대부분과 제 1세계를 분할하는 거대한 소득 격차와 결합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 2세계와 함께 제 3세계가 붕괴한 것은 급속한 산업확장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부가가치 위계에서 상위로 올라가는데 일반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붕괴와 관련된 의문은 이것이 제 3세계 국가가 빠르게 산업화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정치에서 유례 없는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발생했다는 점이다. 제 3세계는 주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구성체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중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 미소간 세계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싸움의 과정에서 탄생한 제 3세계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점증하는 힘과 영향력을 경험했다. 부분적으로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쏟아 부은 군사적 노력과 관련되지만, 당시의 경제적 국면은 제 3세계에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제 3세계의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는 대단히 많았으며, 풍부하고 값싼 자본에 대한 수요도 마찬가지로 컸다. 선진국의 은행가들은, 자국에서는 투자를 해도 수익을 얻을 수 없어서 값싼 가격으로 풍부한 자본을 제공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제 2세계와) 제 3세계 정부의 대기실에서 줄서서 기다렸다. 무역조건은 제 1세계에 급속하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뀌었고, 제 1세계와 제 3세계간의 소득격차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79년 오일쇼크 직후, 세계인민의 경제적 기회의 즉각적인 평준화에 대한 어떤 기대(나 두려움)도 시기상조임이 분명해졌다. 새로운 냉전체제를 확산시키고, 자국 선거에서 세금감면을 통해 유권자들의 표를 ‘매수’하기 위하여 재정이 필요했던 미국은 세계 화폐시장에서 유동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을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제 3세계와 제 2세계 국가에 대한 자금공급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으며, 세계 구매력에도 중대한 위축을 가져왔다.
제 1세계가 불리했던 방향으로 무역조건이 바뀌었던 1970년대만큼이나 무역조건은 빠르고 급격하게 제 1세계 국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되돌아왔으며, 제 1세계와 다른 세계간의 소득격차는 이전보다 더 확대되었다. 1982년부터 제 1세계 은행가들은 제 3세계 국가에게 풍부한 자본을 빌려달라고 더 이상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통합되고 경쟁이 심해지는 세계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제 3세계 국가들은 제 1세계 정부와 은행에게 신용을 제공해달라고 애걸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제 3세계는 제 2세계와 유동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고도금융으로 인해 유동자본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변변치 않긴 하였지만 제 3세계의 결속은 해체된다. 이것이 대처-레이건 반혁명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이다. 반혁명은 투쟁의 장소를 금융투기 영역으로 변경시켰으며, 이로 인해 (제 2세계와) 제 3세계는 완전히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제 1세계 특히 미국은 부활하게 된다. 금융투기 영역으로의 변경만이 제 1세계에게 다시 지배력을 부여한 유일한 요인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군사적으로 보면 포클랜드/말비나스(Falkland/Malvinas) 전쟁은 전쟁의 영역을 노동집약적인 영역에서 자본집약적인 영역으로 이동시켰는데, 이는 만약 제 3세계가 자본집약적인 영역에서 싸움을 했다면, 미국에게 베트남전의 패배를 가져다주었던 것과 같은 제반의 불리함은 없었으리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전의 전쟁이 가져다 준 교훈의 효력은 걸프전에서 극적으로 나타났으며, 걸프전에 비해 덜 극적이기는 하지만 1999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다시 입증되었다. 그러나 제 3세계와 제 2세계를 파멸시키는 데에 있어서, 앵글로-아메리카의 지휘 아래 제 1세계가 휘두른 가장 결정적인 무기는 군사적-산업적 무기라기보다는 경제적-금융적 무기였다. 제 3세계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힘을 경제적-금융적 힘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능력이 없음을 간단하게 증명하였다.
아무튼 이러한 무능력은 제 3세계 국가에 특유하게 존재하는 결점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오히려, 국가 간에 존재하는 부의 위계를 지탱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계의 경향과 관련이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부의 위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1938-79년 시기에 대한 일련의 연구에 의해 증명된다1). 특별히 세 가지 점에 주목할만하다. 첫째, 1인당 국민소득을 로그를 취해 분류한 세계인구는 두 개의 낮은 빈도수를 가진 층을 사이에 두고 세 개의 층(하위소득, 중위소득, 그리고 상위소득)으로 밀집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두 개의 낮은 빈도수를 가진 층을 전후하여 국가의 상향이동이 단기적으로(10년 혹은 20년) 일어났지만, 이러한 국가들이 장기적으로(30년 혹은 40년) 상향이동을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이러한 결과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이스터리 등(Easterly et al.)의 연구에서도 다시 나타난다.2) 결과적으로, 소수의 국가만이 하위소득 층으로부터 중위소득 층으로(타이완, 남한) 혹은 중위소득 층에서 상위소득 층으로(일본, 이탈리아, 그리고 최근에 싱가포르, 홍콩) 상향 이동하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이와 같이 상향이동에 성공한 몇 개의 국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국가의 빠른 인구증가율로 인해, 세 층의 상대적인 인구 규모는 대체로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1960년대부터 고소득 층 국가와 다른 두 층(특히, 중간소득 층) 국가사이에 산업화 정도의 차이는 감소했으며, 이 경향은 1970년대의 경우에는 상위 층과 하위 층 간의 소득 차이의 감소와 결합되었다. 그러나 1980-90년대의 경우, 산업화의 차이의 지속적인 감소는 소득 차이의 큰 증가와 결합되었다. 1997년의 경우 중위소득 층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은 2,465달러로 상위소득 층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의 12.5%이었다. 반면에 하위소득 층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은 466달러로 상위소득 층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의 2.4%이었다.3)
위의 경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발전의 상은, 중하위소득의 국가들이 부유한 나라들의 ‘근대화’의 이러저러한 측면(그 중에서도 특히 산업화)들을 수용하여 세계경제의 부가가치 위계에서 상승하려는, 일종의 경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전체적으로 일어난다. 근대화 추구의 일반화는 더욱 희소해진 자원을 놓고 국가 간 경쟁을 유발하며, 이로 인해 그들의 목적은 대체로 실패한다.―게다가 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이러한 경쟁에서는 일반적으로 고소득 층 국가가 저소득 층 국가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다. 모든 국가들이 근대화를 수용하여 고소득 나라의 국민적 부의 기준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임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서 더욱 산업화되고자 하는 중하위 소득국가의 산업화 시도는 경제의 부흥을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산업활동의 악화를 가져왔다.4)
세계 소득 불균형의 이러한 고착성은 해러드(R. Harrad)와 히르쉬(Fred Hirsch)의 관점에서 보면 ‘과점적 부(oligarchic wealth)’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노력의 정도와 효율과는 관계없으며,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결코 모두가 차지할 수 없는 일종의 장기적인 소득.5) 1980년대 많은 정치적 혼란과 이와 관련된 다양한 유형의 발전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위기들은, 근대화를 통해 과점적 부를 얻어보려고 시도했던 중하위소득 국가들이 비용만 많이 들고 이익은 거의 없었던 산업화로 인해 좌초하게 되었던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핵심 자본의 금융중개거래와 투기로의 ‘퇴각’은, 더 큰 파이(pie)를 얻기 위한 북반구 노동자들과 제 3세계 (그리고 제 2세계) 국가들의 요구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활동의 경쟁 압력이 강화된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이러한 후퇴는 시장의 힘이 자발적으로 행동하여 가져온 결과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는 미국정부의 지시와 보조 아래 움직이는 시장의 힘이 가져온 결과였다. 복지국가와 발전국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실천의 동시적인 해체는 1970년대 자본의 위기를 1980-90년대 노동과 제 3세계(그리고 제 2세계)의 위기로 전화시켰다.
제3세계 엘리트들이 미국의 발전주의 프로젝트 청산에 따른 수동적인 희생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들의 일부는 해체작업을 수행한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의 강력한 지지자들이었다.7) 이러한 사례들에 한정해서, 제 3세계 엘리트들은 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조장했던 사회세력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청산에서 북반구 노동자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유사한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요컨대 뉴딜 정책을 파기시키고 세계의 유동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을 가속화시키기 위하여, 공화당에 힘을 부여했던 것은 (이른바 레이건식 민주주의자로 불리는) 미국 노동계급의 표였다. 그리고 경쟁이 가속화되자, 북반구의 국가들(특히 미국)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자국이 자본 유치를 위한 (특히 빈국과의) 상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자국정부를 지지하였다. 그 결과 경쟁의 압력을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전가시켰다. ‘자기방어’에 대한 이와 같은 노력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북반구의 노동자들은 ‘국제주의자’로 신임받기 위해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자기방어’ 노력들이 북반구의 노동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국가와 복지국가의 해체에 대한 책임의 주요 부분이 남반구 노동자들에게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오히려 1980년대9) 남반구 노동자들이 수행한 IMF를 반대하는 항의의 커다란 물결은 (1995년10) 파리 그리고 1999년 시애틀을 강타한 ‘반격’의 훨씬 이전부터) 이 전환을 더디게 만들었다.
요약하면, 제 3세계 엘리트들과 북반구 노동자들이 레이건-대처 반혁명의 성공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주요하게는 복지국가와 발전국가가 세계적 뉴딜이라는 약속을 지키는데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반혁명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또한 미국의 지배집단이, 세계적 뉴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발전국가와 복지국가를 유지하기보다는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북반구의 노동자와 제 3세계 엘리트를 설득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시애틀 투쟁이 가지는 중요성은 북반구의 노동자들과 제 3세계 엘리트들에게 복지국가와 발전국가의 해체가 주로 북반구 자본에게만 이익이 되고, 지키지 못할 세계적 뉴딜이라는 약속을 이행하는 데에는 거의 혹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즉각적으로 깨닫게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즉각적인 깨달음의 긍정적인 결과는, 세계적 경쟁의 법칙을 규정하는, 저항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흥하는 미국의 일방주의가 지닌 한계와 모순을 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보다 정당한 대안을 구성할 수 있는 자본-노동 관계와 핵심부-주변부 관계의 비젼을 제시하거나 기초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와는 반대로 북반구의 노동자들과 남반구의 엘리트들은 이제까지는, 어떠한 대안적인 세계질서가 이해관계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세력들과 연합하기보다는, 현존하는 세계질서 내에서 그들 자신의 특별한 이익을 더욱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이나 신드롬

자본의 권리의 일반적인 보호라는 이슈와 북반구과 남반구간 세계화 비용/이익의 분배라는 이슈가 시애틀 전투의 배후를 구성하는 유일한 이슈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앞의 두 이슈를 포함하는 세 번째 이슈가 있었다. 곧, 중국의 WTO 가입에 관한 이슈이다. 비록 중국의 WTO 가입이 WTO 회의의 의제는 아니었지만, 여러 소문에 의하면 이 문제는 많은 시위대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시애틀에서 차기 사업에 대해 토론하면서, 네이더(Nader) 그룹의 조직책인 도란(M. Dolan)은 ‘중국, 우리가 너에게로 간다’라고 외쳤다. ‘차기 사업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차기 사업은 중국이다.’ AFL-CIO가 후원하는 경제정책연구소의 책임자인 파욱스(J. Faux)는 중국이 너무 크기 때문에 WTO에 중국이 가입한다면 노동기준과 환경기준을 확정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은 세계화에 관한 모든 문제에서 대변자가 될 것이다’라고 AFL-CIO의 미첼(D. Mitchell)은 말한다.11)

콕번(A.r Cockburn)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 제공을 통해 중국대중을 억압하는 중국엘리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중국을 비난하는 서양 진보주의자들의 시각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20세기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상기한다.―‘서구 열강의 군대는 베이징에서 있었던 대사관에 대한 의화단의 공격을 쳐부수었고, 황태후(당시 서태후)의 궁전을 약탈하였으며, 그리하여 이 시기 중국의 식민지 착취를 중단하기 위한 영웅적인 민족주의자들의 투쟁을 괴멸시켰다.’ 이후 100년 동안 중국은 일련의 혁명을 경험하였다―이러한 혁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한 나라들에서 서구에 반대하여 일어난 무수한 반란의 일부였다. 토지와 부는 재분배되었고, 산업기반은 내수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건설되었으며, 가난한 국가들이 수출할 수 있도록 상품에 대한 공정 가격이 매겨졌다.

서구 열강들은 그들이 의화단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 의화단이 동정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에 개의치 않았다. 여러 혁명에서 몇 십 년 동안, 전면적인 공격, 불매운동, 선박억류, 경제적 사보타지 등 다양한 형태의 투쟁이 벌여졌다. … AFL-CIO가 후원하는 경제정책연구소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중국의 ‘국가통제 시스템’을 ‘시장왜곡’으로 공공연히 비난하였는데, 이들은 쿠바의 봉쇄를 관리해왔던 사람들이기도 하였다. 많은 자유주의적인 NGO 단체들은 성향상 간섭주의자들이다. 소말리아의 붕괴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코소보의 악몽은 그들의 흥행물이다. … 제국주의 세기말에 처한 우리는 … 황화[Yellow Peril, 黃禍: 동양인종의 세력신장이나 저임금 노동력의 유입에 대한 서양인의 두려움] 캠페인에 서명할 필요가 없다.12)

지난 150년 동안 중국에서 행한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기록은 중국을 비난하는 서구 진보세력이 불편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앞에서 언급한 ‘일반적 노동권’과 ‘위대한 분배정의’에 관한 이슈가 중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데에는 두 개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세계노동운동에서 중국 노동계급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관련된다.
20세기 중국과 북/서구 노동운동의 역사적 기록은, 중국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지배 엘리트에 대한 북반구의 압력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시애틀 시위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기록은 중국노동자 계급의 전투성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수 있으며, 또한 뒤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192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노동소요는, 중국의 프롤레타리아트화의 수준을 고려할 때, 당시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가장 큰 폭발적이었다.13) 이러한 폭발은 서구의 지원을 등에 입은 국민당 체제에 의해 피로 물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험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의 정책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새롭게 구성되게 되었으며, 모든 유용한 지표로 측정했을 때 결과적으로 이전의 체제에 비하여 보다 노동계급의 조건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체제의 성립을 가져왔다.14)
다른 한편,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북/서구에 조직된 노동자들은 중국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조금도 지지하지 않았다. 1920년대 중국 노동자 운동에 대한 국민당의 억압을 서구가 지원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중국공산당에 대한 미국 주도의 공격, 불매운동, 통상금지를 AFL-CIO가 전폭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파업의 일부 목적은 미국 노동시장으로부터 중국 노동자들을 배제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AFL은 반(反)중국 정서의 불에 부채질한 바도 있다. 1905년 한 연설에서, 곰파스(S. Gompers)는 그의 청중들(아마도 백인)에게 ‘백인들은 흑인, 중국인, 일본인, 혹은 다른 인종에 의해 생활수준이 파괴되는 것을 용인하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였다.15) 실제로 색튼(A. Saxton)에 따르면,

90년대를 통해 그리고 20세기 내내, AFL은 공개적인 인종주의자의 말투로 중국과 다른 동양인에 반대하는 포화를 퍼부었다. 그래서, (1893년의) AFL 총회에서는 다음의 사항을 논의하였다. 중국인들은 오직 더러움, 악, 그리고 질병만을 가져왔다 ; 중국인들을 더 높은 생활수준으로 향상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무익한 것으로 판명났다 ; 중국인들은 태평양 연안의 우리 국민들의 생활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중국인들을 지구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우리 국민들의 분노는 올바르고 정당하여, 이에 대해 자세하게 책으로 발간할 수 있을 정도이다.16)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노동자들이 중국을 WTO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 주요하게는 (혹은 적어도) 국제적인 노동자 연대 때문이라는 주장은, 20세기의 중국과 세계노동운동사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완전한 기억상실증이 있을 때에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의화단 반란, 1920년대의 대규모 파업의 물결과 1949년 혁명―를 통해, 중국 노동계급은 가난, 불안, 그리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국내적인 동맹에 주로 의존해야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중국의 노동계급이, 자신의 더 나은 해방을 헤쳐나가는 데에 무능력하게 되어, 20세기 내내 문제해결의 주체이기보다는 문제의 일부였던, 북반구 노동조직의 도움을 필요로 하겠는가? 물론 미국이 WTO 가입을 조건으로 중국으로부터 끌어낸 어떤 종류의 양보가 중국 노동자들의 이익을 주기보다는 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중국노동자들이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노동자의 의도를 국제적인 연대행위의 일환으로 해석해야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은, 20세기 초 중국 이주민 노동자를 배제하려는 미국노동자의 행위와 세기말 중국노동자의 생산물을 배제하려는 미국노동자들의 행위 사이에, 근본적인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많은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AFL-CIO가 2000년 4월 워싱턴에서 반(反)IMF/세계은행 시위를 승인하면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정상적인 무역관계를17) 막으려는 캠페인에 정치적 에너지들을 집중하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미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국제주의에 대한 신뢰의 깊이를 의심케 하는 가장 최근의 대목이다. IMF의 구조조정과 외채정책은 중국의 수출보다도 (노동시장 경쟁의 강화를 통해 북반구의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을 포함하여)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훨씬 커다랗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두 번째 이슈, 곧 세계적 분배정의의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이를 염두에 두면, 중국이 서구가 지배하는 세계적 부의 위계를 전복할 기회를 가지는 가난한 나라 중 유일하게 등장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 서구 진보주의자들이 일제히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특히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 반혁명으로 인해 일어난 제 2세계와 제 3세계의 황폐에서 탈출한 국가는 중국만이 아니다. 몇몇 다른 국가들, 가장 주목할 만한 국가들인 남한, 대만,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 등은 중국보다 훨씬 더 잘 해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소규모 국가들이며, 세계인구에서 그다지 큰 부문을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이들 국가들의 세계적인 부의 위계 관계에서의 상향이동은 위계 자체를 여전히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면에 세계인구의 약 1/5를 보유하고 있고 하위 소득 나라들의 총인구의 1/3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우에는, 얼마 안 되는 성장으로도 부의 세계적인 위계 피라미드 구조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통계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위협적이다.
중국의 빠른 성장이 천연자원의 절대적 및 상대적 희소성의 문제를 독특하고 예리한 방식으로 제기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이는 전후 세계의 과점적인 부가 세계인구의 대부분을 서구의 대중소비의 규준으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조절되어왔다는 문제이다. 미국이 후원하는 대중소비보다 덜 낭비적인 새로운 발전 모델이 세계의 보다 큰 분배 정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불행히도 중국의 지배 엘리트들이―다른 서구의 엘리트들 이상으로―그러한 대안적인 모델을 고안할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고 할만한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서구의 진보적인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직간접적으로 중국의 앞으로의 경제발전을 고의로 방해하자는 것은, 도덕적으로 옹호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잘못된 해결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 도덕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서구의 부유한 나라들 일반, 그리고 특히 미국이야말로 자국 및 해외에서 세계의 주요한 천연자원들을 오염시키고 파괴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된 해결책이 되리라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과 부유한 나라들 사이에 거대하게 증가하는 생활수준의 불균형이야말로 중하위 소득 국가의 엘리트들로 하여금 부유한 나라들의 소비규범과 환경파괴적인 방식들을 채택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일으켰고 그리고 금세기에 계속 문제를 일으킬 많은 과제들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진보적인 이들은 중국의 경제 발전을, 두려워하고 고의로 방해하려 하기보다는, 다음 두 가지 주된 이유에서 환영해야 한다. 하나는 중국의 경제발전이, 유럽의 식민 제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지고 미국 헤게모니 아래 공고화되었던 극단적인 세계적 불평등들이 결국에는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에 굴복하리라는 희망적인 전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중국의 발전이 지속되는 것은, 강력한 노동운동이 앞으로 나타나 자기해방을 향한 중국 노동계급의 ‘대장정’을 한 발짝 더 딛게 할 수 있으리라는 가장 좋은 보증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노동운동이 출현하리라는 징후는 중국의 산업화/ 프롤레타리화와 더불어 증가해왔다.18) 세계사회에서의 중국 노동계급의 규모와 중요성이 점차 늘어남을 고려할 때, 강력한 중국 노동운동은 세계노동운동 전체를 북돋는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결론

클로슨(D. Clawson)은 ‘세계 노동운동의 문제와 전망’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좌파 학자들이 ‘대부분의 노동자들과 많은 노동조합들’의 보호무역주의 전략을 정치적으로 퇴보한 것이라며 기각시켜버리고 있다면서, 이들을 비난하고 있다.19) 클로슨은 보호무역주의가 인종주의 및 외국인 혐오증(그리고 그로 인한 위험한 결과들)과 잠재적으로 친화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들은 또한 중요한 진실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의 국제화의 영향을 제한하려는 시도로서, 보호무역주의는 거의 항상 인종주의(예를 들면, 反日)와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인 자세 (‘그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그들’을 우리 안에 들여와서는 안 된다)를 포함해왔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가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바가 또한 있다. 즉 경제는 고삐 풀린 시장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되며, 이윤 추구에 대한 제한이 부과되어야 하며 그리고 인간의 필요를 비용-편익 분석보다 우선할 수 있도록 노동자와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20)

클로슨은 이어서 주장하기를, ‘고삐 풀린 시장으로부터의 일정 수준의 보호와 계획에 근거하여 세워진 지역공동체의 필요를 인식하고 있는’ 국제적인 노동의 연대에 대한 일반 이론이 필요하며, 동시에 국제적인 노동의 연대는 인종주의와 외국인혐오증을 거부해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균형을 과연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 글에서 우리는 노동의 위기가 산업재배치나 혹은 ‘세계화’와 관련한 다른 현상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투자가 생산과 교역으로부터 이제는 금융과 투기로 막대한 자본이 이동함으로 인해 생겨난 것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는 현재 자본의 금융화가 전래가 없는 것이 아닐뿐더러, 가장 가까운 시기로는 두 번의 세계대전, 제국주의, 그리고 파시즘으로 이어졌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기간과 유사함을 주장하였다. 과거와 지금의 금융팽창 모두 국가들 간 및 국가 내에서 부가 지독하리 만치 양극화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기존의 삶과 생활의 양식들을 불안정하게 급속히 바꿔버리고 있는 것과도 관련된다. 국수주의적-보호무역주의적인 반동은 인종적 그리고 외국인 혐오증적인 함의를 풍기면서 강력해져왔던 것이다.21)
알다시피, 노동운동은 국수주의적-보호무역주의와 제국주의가 성장함에 있어 기껏해야 애매한 역할을 해 왔다. 카(E. H. Carr)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전야에 있었던 제 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논하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국가는 중간 계급의 것이었고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었던 19세기에 사회주의는 국제적이었다. 그러다 1914년의 위기가 닥치자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태도는 순식간에 모든 곳에서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많은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빵의 어느 쪽에 버터가 발라져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 국제 사회주의는 불명예스럽게 무너져버렸다.22)

핵심적인 노동운동이 다시 한번 그들의 ‘빵’에다 국수주의적-보호무역주의의 편에 ‘버터’를 바르는 것으로 결정하는 한―다시 말해, 세계적인 불평등을 유지하고 세계 노동자를 분할해내는 자신들의 국가 권력의 뒤에 있는 한―, 또 다른 긴 시간의 체계적인 카오스와 ‘종족주의’에 빠져들 위험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국수주의적 보호주의 (그리고 이와 동반된 어떤 인종주의)를 추동하는 것들은 노동자들이 실제 경험하고 있는 불안정에 그 뿌리가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의 인종주의로 빠져들었던 그런 실수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색튼이 지적한 것처럼, 19세기 말 반(反)-중국 십자군들을 조금이라도 비판했던 이라고는 노동운동 활동가들 중 사회주의자들이 유일하긴 했지만, 그들조차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교육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반(反) 쿨리(cooliey)’[중국․인도 등의 하층 노동자]의 ‘깃발 아래 나아가는’ 전술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술은 … 습성이 되어버리는 것이기도 한 지라’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한 전술의 깃발’을 다시 끌어내리고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전략적 깃발’을 대신 들어올리고자 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사건의 과정에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반(反)-중국의 수사들을 그대로 놔둠으로써 그들은 중국과 다른 이민자들을 배제할 수 있는 길을 닦았을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이 흑인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인 노동운동으로 전환하게 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23)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는 클로슨의 용어를 빌리면, 지역 공동체가 계획을 할 수 있고, 노동자들의 삶이 고삐 풀린 시장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으며, 인간의 필요욕구가 비용-편익 분석보다 우선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동친화적인 새로운 국제체제를 요구해야 한다. 이 글에서 우리가 주장한 것처럼, 금융팽창은 기업들의 의식적인 이윤전략이자 핵심국가들, 특히 미국의 의식적인 파워전략의 결과이다. 그래서 ‘대안은 있다’. 노동운동가들은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인 수준에서 투기 거품을 ‘부추기는’ 정책에 맞서 투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투기거품을 ‘터뜨리는’ 정책을 옹호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요하네스버그에서 COSATU의 의장이 행한 연설은 칭송 받을 만하다. 그는 사적 부문의 ‘투자[를 무기로 한] 파업’을 끝장낼 것을 요구하고 자본이 주식투자보다는 일자리에 투자하게 해야 함을 주장하였다.24)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국제적 수준에서의 변혁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국내의 투쟁과 국제적인 투쟁간의 악순환은 20세기 중반 미국 헤게모니 하의 노동친화적이고 발전친화적인 국제체제가 확립되면서, 그리하여 아래로부터의 운동들이 명시적, 그리고 암묵적으로 제기하였던 요구들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들어주면서 종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이 단지 과거 체제의 주된 요소들로 복귀하는 것일 수는 없다. 미국의 후원을 받는 체제는 대중운동들의 열망을 충족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는 가운데 몇 가지 이슈들을 적당히 날조해냈다. 특히, 끝없는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고도의 대중 소비 시대”에 진입할 수 있고 진입하게 될 것이라 약속하면서 자본주의의 한계와 환경적인 한계들은 깡그리 무시하였다.
이런 약속들과는 반대로, 미국의 세기는 소득과 자원의 사용/남용에 있어서 전 세계적인 불평등을 공고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더욱이 환경 파괴가 인류 역사에서 유래 없는 속도와 규모로 계속해서 진행되는 가운데, 인종적 분리와 세계적 규모의 부의 분할간의 중첩 또한 강화되었다. 실제로, ‘생산자본의 파업’이 끝날 때가 되면, 보편화되고 급속한 성장에 대한 환경의 한계가 두드러지면서, 그러한 자원의 향유로부터 세계 인구의 상당 부분을 배제하기 위한 새로운 충격들이 수반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 궁극적으로 21세기 북과 남의 노동자들은 커다란 도전을 맞고 있다. 즉, 착취와 배제에 맞서 투쟁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 수준과 안정된 생계수단을 모든 이들이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고 이를 실질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밀어붙여야 하는 투쟁의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PSSP

* 번역 : 진보저널 읽기모임
(진보저널 읽기모임은 세계 진보 진영내의 정치, 경제, 사회, 철학 등 전반적인 사회과학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을 지속적으로 추적․발굴하여 국내에 유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Capital & Class, New Left Review,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y, Socialist Register의 일부를 번역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http://jinbojournal.jinbo.net 를 참조)

1) Giovanni Arrighi and Jessica Drangel,'the Stratification of the World-Economy. An Exploration of the Semiperpheral Zone', Review (Fernand Braudel Centre), Ⅹ, 1, Summer 1986, pp. 9-74 ; Robert P. Korzeniewicz and William Martin, 'the Global Distribution of Commodity Chains', in g. Gereffi and M. Korzeniewicz, eds., Commodity and Global Capitalism: Westport, CT: Prager, 1994, pp. 67-91 ; Arrighi and Silver, 'Global Inequalities'.

2) William Easterly, Michael Kremer, Lant Pritchett, and Lawrence H. Summers, 'Good Policy or Good Luck? Country Growth Performance and Temporary Shocks',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32, 1993.

3) Arrighi and Silver, 'Global Inequalities', based on World Bank data.

4) Arrighi and Deanger, 'the Stratification of the World-Economy' ; Arrighi and Silver, 'Global Inequalities'.

5) Roy Harrod, 'The Possibility of Economic Satiety―Use of Economic Growth for Improving the Quality of Education and Leisure', in Problems of United States Economic Development, 1, New York: Committee for Economic Development, 1958, pp. 207-13 ; Fred Hirsch, Social Limits to Growth,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6.

6) Giovanni Arrighi, 'The Developmentalist Illusion: A Reconceptualization of the Semiperiphery', in W.G. Martin, ed., Semiperipheral States in the World-Economy, New York: Greenwood Press, 1990, pp. 11-42 ; Giovanni Arrighi, 'World Income Inequality and the Future of Socialism', New Left Review 189, 1991, pp. 39-64 ; Silver, 'The Contradictions of Semiperipheral Success'.

7) Lance Taylor, 'The Revival of the Liberal Creed―the IMF and the World Bank in a Globalized Economy', World Development, vol. 25, no. 2, 1997, pp. 145-52.

8) 짐바브웨 상품의 수입에 대해 남아공 방직 노동조합의 보호주의적 자세에 관한 다음의 논의를 보라. Patrick Bond, Darlene Miller and Greg Ruiters, 'The Southern African Working Class: Production, Reproduction and Politics', in this volume.

9) John Walton and Charles Ragin, 'Global and National Sources of Political Protest: Third World Responses to the Debt Crisi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 55, December 1990, pp. 876-7, 888.

10) R. Krishnan, 'December 1995: The First Revolt Against Globalization', Monthly Review, vol. 48, no. 1, May 1996, pp. 1-22.

11) Alexander Cockburn, 'Short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Nation, 3 January 2000, p.9.

12) Cockburn, 'Short History', p. 9.

13) Beverly J. Silver, Giovanni Arrighi and Melvyn Dubofsky, eds., 'Labour Unrest in the World Economy, 1987-1990, a special issue of Review (Fernand Braudel Centre), vol. 18, no. 1, Winter 1995, pp. 1-206 ; Mark Selden, 'Labour Unrest in China, 1831-1990, Review (Fernand Braudel Centre), vol. 18, no. 1, Winter 1995, pp. 69-86.

14) Selden, 'Labour Unrest in China' ; Mark Selden, 'Yan'an Communism Reconsidered', Modern China 21, 1, pp. 8-44.

15) Quoted in Alexander Saxton, The Indispensable Enemy: Labour and the Anti-Chinese Movement in Californi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1, p. 273.

16) Saxton, 'the Indispensable Enemy', p. 271.

17) Finnegan, 'After Seattle', p. 49.

18) 다음의 사례를 참조할 것. James Kynge, 'Riots in chinese Mining Towns', Financial Times, 3 April 2000 ; Dorthy Solinger, Contesting Citizenship in Urban Chin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9, pp. 284-6.

19) Dan Clawson, 'Contradictions of Labour Solidarity', Journal of World System Research, vol. 4, no. 1, Winter1998, pp. 7-8 [http://csf.colorado.edu/wsystems/jwsr.html]

20) Dan Clawson, 'Contradictions of Labour Solidarity', p. 8.

21) Silver and Slater, 'The Social Origins of World Hegemonies' ; cf.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Boston: Beacon, 1957.

22) Edward H. Carr, Nationalism and After, London: Macmillan, 1945, pp. 20-1.

23) Saxton, 'The Indispensable Enemy', pp. 266-7.

24) Eddie Jayiya, 'Mass Action Brings Jo'Burg to Standstill', The Independent, 13 April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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